설교 · 주일

옥정 사귐의교회 주일 예배 설교 / 역대하 34-35장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사람 (요시야) / 강정규 목사

2020-12-20 · 역대하 34-35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르-아-아 / 여-여-아 / 아-요-아-웃 / 요-아-히 / 므-아-요 / 여-여-여-시 오늘이 역대기에 대한 주일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요시야 왕에 대해서 다룰 것인데, 그 뒤의 네 명의 왕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대한 이야기는 수요일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히스기야 시대의 예배의 회복과 성전의 정화, 유월절 회복 등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분열왕국 시대에 가장 빛나는 두 개의 별이 있다면 하나가

바로 그 ‘히스기야’요, 다른 하나는 오늘 나눌 ‘요시야’입니다. 그럼 3등은 누구일까요? 다윗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은 또 다른 한명은 ‘여호사밧’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이후에는 므낫세가 악한 통치를 펼치다가 반전처럼 돌이킨 것과, 아몬이 악한 길을 가다가 돌이키지 않고 신하들에 의해서 죽게 된 것을 살펴봤습니다. 역사적 정황을 근거로 볼 때, 므낫세와 아몬은 모두 ‘친앗수르’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반앗수르파’가 아몬을 살해한 것이죠. 아몬

왕이 죽자 백성들은 왕을 죽인 암살자들을 죽이는데, 반앗수르파를 제거한 것은 앗수르의 보복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기에 갑작스럽게 왕이 된 요시야의 나이는 8살입니다. 이것은 유다 왕들 중 요아스 다음으로 어린 왕입니다. (대하 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요시야는 참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이, 8살에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휘둘리지 않고 다윗의 길을 갔다는 것이죠. 사실 이 표현은 신명기 17:20을 인용한 것입니다. (신 17: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신 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신 17: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저희 교회에서도 신앙인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좌우치’ 시리즈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죠. 다윗의 길에 자신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기도는 하나님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한 노력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사실은 내가 바뀌어서 내가 주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이고 말씀 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요시야 왕 8년 _ 나이 16세 요시야는 왕이 된지 8년 째, 즉 16세의 나이가 되더니, 이제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역대기에 등장하는 왕의 스승들처럼 요시야에게도 좋은 스승이 있었을 것 같아요. 8세가 혼자 뭘 깨달을 나이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16세가 되어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찾기 시작하고 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누군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주는 신앙을 넘어서서 스스로가 하나님을 택하여 찾는 삶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제 평생을 다해서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할 수는 없지요.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을 찾는 삶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것을 보면서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느끼실 거예요. 그리고 요시야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성장합니다. (대하 34: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요시야 왕 12년 _ 나이 20세 4년 후, 즉 20세가 되었을 때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합니다. 정결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제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신앙을 넘어서서 자신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도록 행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이죠. 역대기는 항상 우상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을

보여주는 것만 같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항상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항상 우상을 제거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첫 단추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에서도 첫 계명이 이 문제를 다룹니다. 제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여기서 히브리어 전치사 ‘알 파나야’를 ‘나 외에’라고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그리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왜냐면 이 경우에는 다른 신도 있지만 나하고만 교제하자는 의미로

해석이 되잖아요. ‘알 파나야’를 더 의미에 맞게 해석하려면 ‘내 앞에’입니다. 그러면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가 되는 것이죠.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새번역)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공동번역)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그러니까 세상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 거짓된 신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른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그 앞에 절하고

섬기면 질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설교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우상은 물질, 권력, 성입니다. 숭배라는 것을 그것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행위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죠. 권력이 주는 힘을 하나님보다 더 강하게 여기고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세요. 김원준, 곽지영이라고 TV 동상이몽에도 함께 출연했다고 하는데요. 한 토크쇼에서 20대 초반부터 연애를 7년을 했는데 혼전순결을

지켰다고 하니까, 출연진이 모두 깜짝 놀랐던 것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고 내심 속으로 제발 이런 사람들이 다른 이유가 아니라 ‘크리스천’이어서였기를 바라며 검색을 해봤어요. 둘 다 크리스천이더라고요. 그냥 이제는 이런 커플이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나의 어떠함보다 앞세우는 것, 그것이 우선순위가 아니겠습니까? 역대기의 우상숭배 문제는 세상이 최고라고 하는 것과 말씀이 최고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 때에는 우상숭배를 했어요. 그러니 요시야가 다시 이제 이것들을 삶의 자리에서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우상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영토에서도 우상숭배를 제거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B.C 627년경에 앗수르바니팔이라는 왕이 죽게 되어 북이스라엘 지역에 대한 앗수르의 영향력이 약화됩니다. 그 틈을 타서 요시야는 당시 앗수르의 영지였던 사마리아, 므깃도, 갈릴리 지방까지 치고 올라가 유다에 편입시킵니다. 요시야의 이러한

개혁은 구약 선지자 스바냐와 활동시기가 겹치므로, 아마도 스바냐의 심판에 관한 메시지 선포와 요시야의 개혁은 맞물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개혁의 성공여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이야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합니다. 요시야 왕 18년. 나이 26세 요시야는 성전을 새롭게 단장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여러분. 저는 건물은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당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일 확률은 거의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죠. 그런 오지랖은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시야가 성전을 보수하려고 사람을 고용합니다. 이 일을 위해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모두 성전세와 헌금을 내어 참여합니다. 11절을 보면 성전이 허물어져있기에 보수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앞선 왕들의 악행을 다시 고발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성전을 보수하는 작업을

하다가 이들은 율법의 두루마리를 발견합니다. (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즉, 이 율법책의 발견은 요시야가 성전을 보수하는 일을 진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성전에 대한 헌신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모세가 전한 율법책이라는 것은 토라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의미하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신명기’의 말씀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역대기에서 이 책은 ‘율법책’, ‘언약의 책’,

‘모세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의 책은 모세에 의해 기록되어 여호수아에게 건네졌고, 이후 필사되어서 전해 내려오다가, 이방인의 침입이나 우상을 숭배한 왕들로 인해 성전 구석에 숨겨진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제사장이 서기관에게 주고, 서기관은 왕에게 가져갑니다. 요시야는 그 책의 내용을 읽고 크게 놀라며 옷을 찢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구약에서 베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픔, 두려움, 후회, 분노 등의 표현입니다. 재난이 닥쳤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죠. 우리가 지금까지 역대기에서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돌이키십시오’라고 외치는 것을 봤다면, 이번에는 이 율법책이 스스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운명을 바꿀 ‘치트키’가 필요합니다. 요시야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듣다가 내가 돌이켜야 할 무언가를 발견하실 때가 있습니까? 여러분, 망하는 교회는 거기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세요? “저 목사가 나를 공격했어.” 물론 저도 아주

가끔은 설교를 빙자해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올바른 우리의 반응은 설교를 통해 겸비하고 나를 점검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가서 나와 이스라엘과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방금 발견한 이 책에 기록된 내용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아보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향해 불같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우리 조상은 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말씀에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소.” 요시야의 이 말 속에는 그가 히스기야처럼 북이스라엘을 여전히 자신들과 한 공동체로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또한 그가 말씀의 경고를 깊이 새기고 경각심을 갖고 겸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였음이 드러납니다. 왕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예언자 ‘훌다’에게 갑니다. 당시에 예레미야와 스바냐가 활동했던 때인데, 훌다에게 간 것은 그녀가 왕궁 선지자로서 궁 가까이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훌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해집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심판과 구원입니다. 이는 예언자의 전형과 같죠. 먼저 심판 메시지입니다. (대하 34:24)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유다 왕 앞에서 낭독한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내가 이 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대하 34:25)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그들이 한 모든 일이 나를 노엽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분노를

여기에다 쏟을 것이니,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다' 하셨소. 그리고 이어서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대하 34:27) 내가 이 곳과 이 곳에 사는 주민을 두고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에 느낀 바 있어서,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해져서, 네가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으므로, 내가 네 기도를 들어주었다. 나 주가 말한다. (대하 34:28) 그러므로 이 곳과 이 곳 주민에게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 내가 너를 네 조상에게로

보낼 때에는, 네가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이 말을 왕에게 전하였다. 다시 역대기의 치트키가 등장하며, 그로 말미암아 심판을 미루겠다는 이야기죠. 주중에 한 집사님께서 요시야 이야기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요시아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용서하시는데 그들의 선조(?)들의

죄를 후대에 물을 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많은 유다백성이 요시아를 따라 회개하고 돌이킨 것 같은데.. 그래도 재앙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생각이 되어서요.” 이 이야기를 지금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도 주어져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는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유다에게도 심판은 선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에도

그렇고 요시야 때에도 그렇고, 이들 시대는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심판이 미뤄집니다. 만약 이들 다음 세대도 계속 요시야와 같이 겸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심판은 계속 미뤄질 것입니다. 히스기야 때에도 심판이 선언되었지만, 히스기야가 겸비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니 그 시대의 심판은 미뤄졌습니다. 므낫세 때에는 악행으로 심판을 당하지만 므낫세가 회개하니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아몬이 악행을 저질렀지만 요시야가 다시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가자 다시 심판은

후대로 미뤄집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심판을 미루는 사람이 됩니다.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내가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 이것이 주님이 아니셨습니까? 그러므로 겸비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셨고, 그들을 찾고 계신다는 이 마음은 하나님의 분명한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때로는 왕들이 잘못했을 때, 백성들이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셨던 것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백성들은 항상 돌보시리라는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후에 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요시야 같은 왕이 나타나지 않거든요. 그러나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페르시아 때에도 에스더

사건을 통해서도 지키시죠. 세상이 심판을 당해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시야가 이 예언의 말씀을 전달받게 됩니다. 그는 성전으로 향합니다. (대하 34:30) 왕은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다 데리고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왕은 주님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사람들에게

크게 읽어 들려 주도록 하였다. (대하 34:31) 왕은 자기의 자리에 서서,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맺었다. 기억하십니까? 여호사밧 때. 모두 그곳에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명확합니다. 히스기야 때에도 모두 모여서 한 마음으로 예배했고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요시야 때에도 이 일은 반복됩니다. 왕이 성전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읽어줍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주님께 약속합니다. 저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이러한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코 예배의 구경꾼이 되지 않기를 바래요. (대하 34:32) 왕이 거기에 있는 예루살렘과 베냐민 사람들도 이 언약에 참여하게 하니,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조상의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따랐다. (대하 34:33) 이와 같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 이제 2020년이 다 끝나 가는데, 우리교회의 2020년 표어가 무엇입니까? “모여서 함께 최고의 예배를, 흩어져서 삶으로 거룩한 흔적을.” 이것이 역대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요시야도

다시 사라진 유월절을 지킵니다. 히스기야가 그러했죠. 그러나 히스기야는 당시에 성전 정화로 인해서 유월절 날짜를 연기해서 지켰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북왕국 백성 중 소수만 참여했습니다. 요시야의 유월절은 지정된 날짜에 더욱 성대하게 치러져서 성경은 ‘예언자 사무엘 이후’에 최고의 유월절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았던 요시야 왕이 한 순간의 실수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요시야 왕 31년 _ 나이 39세 주전 609년. 종교개혁 이후

13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입니다. ‘이 모든 일 후’, 즉 왕으로서 31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가 해야 할 모든 사명을 다한 후에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의 시간이 여기까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는 앗수르가 무너지는 시점이었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강성할 때 식민지배를 했던 여러 나라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와중에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앗수르와 메디아(메대)가 동맹국이었는데, 메디아가

앗수를 배신하고 바벨론과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앗수르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기 수도였던 니느웨를 빼앗기고 하란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이 때 애굽이 움직입니다. 애굽 왕 느고는 앗수르와 동맹관계였고, 앗수르의 잔여 세력들과 힘을 합쳐서 떠오르는 강대국인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갈그미스로 진출해서 바벨론과 한판을 벌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이 올라오자 요시야는 군대를 일으켜 느고를 막아섭니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너와 싸울 마음이 없다.” 그는 이 편지에서 3번이나 하나님을 언급하며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무시합니다. (대하 35:22) 그러나 요시야는 그에게서 돌이켜 되돌아가지 않고, 느고와 싸우려고 변장까지 하였다. 이처럼 요시야는, 하나님께서 느고를 시켜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평원으로 진군하여 가서 싸웠다. 여러분, 우리가 봤던 왕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변장까지 하고 참여했던 왕이 있었습니다. 누구죠? 아합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그는 변장까지 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하고 전쟁에 나갔다가 우연히 날아든 화살에 맞아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요시야는 지금까지 너무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이 애굽 왕을 통해서 경고하여도 그것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자기의 판단,

자기의 경험, 자신의 감정이 앞서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요시야는 이 전쟁에 나갑니다. (대하 35:23) 그 때에, 적군이 쏜 화살이 요시야 왕에게 박혔다. 왕이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내가 크게 다쳤다. 내가 여기서 빠져 나가도록, 나를 도와라." 성경은 그런 요시야의 최후를 마치 아합의 최후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변장하고 참여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요시야는 므깃도 골짜기에서 활 쏘는 자에 의해서 중상을 입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아합과 다르게 전쟁터에서 빠져 나와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왕실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열왕기에서는 최고의 왕인 요시야의 이 죽음에 대하여, 국가적 위기를 보기 전 데려가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반면, 역대기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것으로, 아무리 요시야라고 해도 이 일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비록 경건한 요시야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요시야는 ‘여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순종하는 칼이 아닌 요시야는 하나님이 더 이상 쓰실 수 없는 도구였던 것이죠. 다만 31년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충실한 도구가 되었던 요시야이기에 비록 교만으로 삶을 마감하지만, 그의 끝을 지켜서 아합과 달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의 임무를 마무리 하고 죽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요시야의 생애를 통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신앙인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삶 - 말씀을 듣고, 기도를 통해 나를 바꾸어 가는 것 -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은 성숙해 가는 것 2.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도 우선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 우상숭배는 우선순위의 문제 - 세상의 소리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택하는 것 - 이 시대에도 우리를 늘 위협하고 있음을... 3.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사람이 됩시다. - 주님의 뜻을 듣기 위한 겸손한 마음 -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순종의 능력 - 좋은 신앙 :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여 삶으로 녹여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