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긴 시리즈가 시작되는데요. 바로 역대하 시리즈입니다. 어, 약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여섯 편의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과 이 역대하는 과연 어떤 말씀인지 주님의 뜻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 여러분, 우리가 역대하를 살펴본다면 그 전에 먼저 무엇을 살펴봤을까요? 네. 역대상을 우리가 지난 6월에 살펴봤었습니다. 어,이 역대하는이 역대하라고 하는 이름 때문에 왠지 역대상의 후속자 뭔가 이편일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대상과 역대하는 원래 역대기라고 하는 한 권의 책이었어요. 그런데 후대 이것을 번역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분량이 너무 기니까 이것을 역대상과 역대하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역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책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역대상은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고 역대하는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어, 그렇다면 우리가 이 후반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난 6월에 들었던이 역대상 전반부의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 잠시 여러분의 기억 창고에 오래도록 저장되어 있을 것들 한번 꺼내 보도록 할 텐데요. 어, 여러분이 역대기를 읽어 가시다 보면 어, 왠지 앞에서 읽었던 내용 같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랑 좀 비슷한 거 같다라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왜냐하면 역대기는 다시 쓰는 역사서이기 때문이죠. 어, 여러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다시 한번 기록할 때는 분명 저자의 어떤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역대기의 저자는 굳이 이미 길게 기록되어 있는 그 역사를 다시 한번
반복하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같은 역사이지만 그 같은 역사 안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역대기는 앞선 역사서들과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잘 살펴보면 어 다른 목적과 관점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어, 특별히 이 중에서 우리가 살펴볼 역대하는 역사적인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열왕기서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해요. 어, 먼저 열왕기서는 포로로 끌려간 공동체에게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포로 공동체에게 쓰였다는 거예요. 어, 북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죠.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남유다마저 어 멸망하고 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어 이때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어 우리가 이방 나라에 의해 망했다는 사실 우리가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언약 백성이야. 우리에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이 성전이 있어라는 그 믿음 때문에 자신들은
영원히 안전할 것이다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왜 우리는 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언약 백성인데 우리 성전도 있는데 우리는 왜 망하게 되었지라는 질문이 포로 공동체의 가장 핵심 질문이었어요. 그리고 열왕기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역사를 재조명한 책이죠. 그러나 여러분 역대기는 다릅니다. 역대기는 어떤 대상을 어
어떤 사람들 대상으로 쓰였던 책이었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 귀한 공동체를 향해 쓰였던 책이었어요. 그러니까 책을 읽는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목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의 질문은요. 우리 왜망했을까가 아니에요. 이제 이들의 질문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귀한 공동체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조상들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서 그들에게 익숙했던 어쩌면 평생을 가지고 살았을 그 포로의 정체성이 아니라 이제는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 나가야가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지를 배워가야 했죠. 여러분, 그런데 이 중심에는이 정체성과 삶에 대한 질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셨던 언약이 있었어요. 내가 너희를 다시 회복시켜 줄 거야라고 하는 회복의 약속이었죠.이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정체성을 다시 찾고 자신들의 삶의 목적, 삶의 방향성이 과연 무엇인가를 어 찾아갈 수 있었죠. 만약 이 언약이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 역대기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다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그 귀한 공동체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죠. 어, 이러한 역대기는 크게 두 가지의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족보입니다. 어, 역대기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무려 아홉장이라는 분량을 오직 족보만 기록하는데 할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역대상 처음 설교를 시작할 때 1장부터 9장까지 족보만 살펴보기도 했었죠. 여러분 우리에게는 아 굳이 종이도 없고 잉크도 부족했던 그 시대에 아깝게 왜 이렇게까지 족보를 길게 기록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시대의 공동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왜냐면 이 족보가 바로 우리는 누굴까? 우리의 정체성은 뭘까? 우리의 뿌리는 어딜까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족보를 통해서요. 공동체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너희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어. 너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야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어,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현실은 사실 너무 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은 오래 사라진지 오래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다시 알려 주세요. 너희의 이름을 내가 잊지 않았어. 너희는 여전히 내 백성이고 내
소유야. 나는 지금도 너희의 예배를 원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은 이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다윗 가문과 또 레위 지파의 족보를 강조하십니다. 여러분, 다윗 가문의 족보는 다윗에게 주어졌던 그 하나님의 언약이 아직 유효하다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 그 귀한 공동체 또한 너희도 여전히 언약 백성이야라는 것을 알려 주는 거죠. 그래서 역대기에서는요.이 언약이 매우 중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언약을 계승하고 있는 다윗 왕조 즉 남유다의
역사만 골라서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어 족보는 제사장과 성전을 관리했던 레위 지파의 족보였죠. 그들의 족보는이 공동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일깨어 줌과 동시에 너희의 예배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파트는 역사에 관한 것인데요. 이것은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한 답이죠. 어, 여러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실패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괴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실패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기 때문이에요.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라는 것을 우리가 배우고 그것을 교훈삼아 성공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선 역사서들 뭐 열왕기 같은 역사서들은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것을 말해 주는 책이었다면 역대기는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 거였구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인 거죠.
실패를 딛고 일어난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은 하나님과 율법의 신실한 공동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 역사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열왕기서와이 역대기서는 결론도 다르게 끝나요. 기의 역사서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나라가 멸망하고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그 성전이 무너지고 모두가 포로로 끌려가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왜냐면 열왕기는 너희가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임하는지 하나님이 이것을 얼마나 싫어하시고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강조해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반대로 역사 어 역대기 역사는 포로로 끌려갔던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라는 명령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왜냐하면 이 역대기에서는 언약을 다시 붙들고 성전을 재건해서 하나님을 예외하는 그분께만 순종하는 신실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가 강조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것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 두 가지의 차이를 정리했는데요. 어, 역대기만 한번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면 역대기는 귀한 공동체를 위한
쓰인 책이고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알려준 책이며 또 회복을 소망하게끔 하죠. 그리고 다윗 왕조와 그 왕조로 계승되는 주님의 이 영원한 언약이 강조되고이 언약을 중심으로 예배의 회복과 성전이 재건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책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좀 기억이 나시나요? 아직 안 나시나요? 네. 좀 더 들으시면 기억이 나실 거예요. 자, 그럼 이제 좀 더 자세히 역대를 살펴볼 텐데요. 역대상은 다윗왕의 이야기로 어, 끝이 나고 있어요. 다윗왕의 이야기를 쭉 이렇게
전개한 다음에 그의 왕위가 다음 솔로몬으로 계승되는 전환점에서 끝이 나죠. 그래서 역대상의 마지막인 29장은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신의 왕위를 그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에게 넘겨 주는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나의 아들 솔로몬에게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과와를 지리고이 모든 일을 알 수 있게 하시며 내가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해 주십시오. 네. 방금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자신의 왕위를
개승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예요.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애었던 것처럼 솔로몬도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랬다는 거죠. 왜냐면 다윗왕은 알고 있었거든요. 그의 온 삶을 통해서 그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만이 자신의 아들과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그가 평생토로 소망하고
꿈꿨던 성전 건축을 솔로몬이 이어받아 이루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마 이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은 그 완성된 성전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은 이제 준비만 마치고 죽어야 하지만 이 완성된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는 그 이스라엘 공동체를 꿈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솔로몬은 이런 아버지의 기도와 꿈을 품은 채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되죠.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뒤에 가장 먼저 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말씀을 통해서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작.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에게 명령하여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부온 산당으로 갔으니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솔로몬이 왕이에 오르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거였어요. 그런데 여러분, 솔로몬은 혼자 예배하지 않고 온 회중과 함께 예배하러 나아갑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한 나라의 구강이 되신다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어, 아멘. 그런데 우리가 나라의 왕이라고 하는 건 좀
거리가 있으니까 만약 우리가 어떤 집단 또는 어떤 공동체 아니면 내가 어떤 부서의 리더가 된다면 우리는 아마도 어이 부서이 공동체 어떻게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또 앞서 이끌었던 대표 리더가 있었다면 그 리더와 그 공동체에게 좀 부족했던 부분은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까? 그래서 내가 맡은이 공동체를 더 나은 공동체로 세워가고 싶은 어떤 계획과 이런 회의들을 하겠죠. 근데 솔로몬은 그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먼저 행한 것이 온 회중과 함께 예배하는 거였어요. 여기서
솔로몬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백성들과 함께 예배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온 회중은 백성을 돌보는 지도자들을 의미하거든요.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 백부장, 재판관, 방백과 족장들이죠. 솔로몬은 이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예배하러 지금 나아가고 있어요. 이들이 예배하러 나아갔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여러분, 여기서 지금 나아가서라는 단어가 보이시죠?이 이 단어는 다라쉬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찾다, 묻다, 예배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어 동사예요. 그런데 이 다라시 안에는 아주 간절함, 어떤 갈망 애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 찾는다라고 하는 것도 그냥 내가 무언가를 찾는다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바라시는 특별히 성경 안에서 기록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 그분의 존재 자체를 찾고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께 나아가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담긴 단어가 바로 다이죠. 또 하나님께 묻는 것도
그냥 형식적으로 묻는 절차가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에스는 모든 노력이 포함된 것이 바로 이 다이었습니다. 여러분, 마치 하나님의 의도와 가장 가깝게 그 뜻을 이루고 싶어서 꽃이 아주 세세하게 캐묻는 거 같은 그런 갈망함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다라쉬라는 것이죠. 어, 저도 어떤 일을 맞게 되었을 때 그 일을 정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질문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이거 어떤 방식으로 할까요? 언제까지 하면 될까요? 혹시 원하시는 형식이
있으신가요? 제가 이 일을 할 때 어떤 사람들과 협력하면 더 좋을까요? 등등과 같이 질문이 많아져요. 왜냐하면 그 일을 나에게 맡긴 그 사람의 의도에 맞게 그 마음에 들게 하고 싶기 때문이죠, 여러분. 다라시라고 하는 이 단어가 담긴 의미가 마치 이런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그분의 뜻을 계속 묻고 구하는 모습이에요. 여러분, 솔로몬이 드린 이 예배는 바로 이런 다라쉬의 마음이 있는 예배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봐야 할 거 같아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 이렇게 오늘 예배하러 모이셨는데 어떤 마음을 품은 채이 자리에 지금 오셨나요?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 찾으십니까? 어,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먼저 저에게 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어, 나는 언제 주님을 찾을까? 나는 대체 언제 주님 앞에 나아갈까? 저는 제가 주님과 참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래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이
말씀이 다라씨의 마음 앞에서 돌아보니까 아 내가 어떤 문제와 고난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함 앞에서만 주님을 찾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안할 때는 주님을 다라씨의 마음으로까진 찾지 않는 거 같아요. 내 삶에 문제가 없을 때는 찾긴 찾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절하게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어려움이 닥치고 나서야 주님을 갈망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아쉬운게 없을 때는 주님이 말씀하셔도 아네 그렇죠. 그렇죠.
동의는 하지만 아멘으로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다가 하나님이 필요해지면 뭔가 내게 주님에 대한 어떤 아쉬움이 생기면 그제서야 아 주님 왜 침묵하세요? 왜 말씀하지 않으세요? 왜 응답하지 않으세요?라고 주님을 찾는 그 염치없는 저의 모습을 저는 이 말씀 앞에서 이 다라씨의 마음 앞에서 보게 되었어요. 어 혹시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묻고자 예배하러 나왔을까요? 우리가 주님께 원하는 거, 주님께서 들어 주셨으면 좋겠는 거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자세하게 코치꽂치 다 낱낱이 고합니다. 그러나 정자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묻지 않죠. 때로는 우리는요 주의 뜻을 알면서도 입힌게 저핑계를 대며 그 말씀 외면하고도 어 외면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인의 마음에 드는 것보다 내 마음에 더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은 예배가 아니지 않을까요? 여러분, 솔로몬이 오늘 드린 예배는이 다라씨의 예배였습니다. 내 삶에 아쉬워서 주님이 필요하니까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인격적으로 깊은
사귐을 맺기 위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찾는 예배였으며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삶을 살아내고 싶어서 그분의 뜻을 묻고 또 묻고 또 묻는 그런 갈망함이 묻어 있는 그런 예배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도 이런 다라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또 솔로몬이 함께 예배했던이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어이 함께 예배했던 그 회중들 지도자들은 공동체 삶의 모든 영역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어, 먼저 천부장과 백부장은 군대 영역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이었고 재판관은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판단하고 또 해결해 주어야 하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방백과 족장들은 각 지방과 지파를 다스리는 사람들로서 그 지파와 가문의 일상 속에서 혹시 그들이 어, 어려운 것은 없나, 필요한 것은 없나라는 것을 살피고 돕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들과 함께 예배하러 올라가고 있는 나아가고 있는 이 솔로몬 자신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전체적인 정치와 외교, 사회 등등등 모든 것을 돌봐야 하는 지도자였죠.
여러분, 그러니까 이 말은 지금 이들이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는 거예요. 그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집유하게 묻고 주님을 예배하러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묻지 않고 내가 어려운 것만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든 못하든 이것이 나에게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일단 주님께 나아가서 묻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내어드린 예배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다라시 예배는요. 곧 삶의 예배입니다. 이렇게
주일에고 어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만 아니라 나의 일상의 모든 영역과 모든 시간과 그 모든 관계 안에서 주님을 찾고 구하는 삶의 예배가 바로 이러한 예배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문득 주님을 잊을 때가 있죠. 처음부터 이 삶의 예배가 잘 되진 않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어렵더라도 우리의 예배가 조금씩 교회에서 삶으로 주일에서 평일까지 확장되어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원하신 예배가 바로 이러한 예배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어 것으로 통치를 시작한이 솔로몬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는데요. 어 솔로몬이 대체 성전을 왜 지으려고 했을까요? 아버지의 명령 뭐 선왕의 명령 또는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런 것도 어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에게도 솔로몬 나름대로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였습니다. 예배로
통치를 시작한 솔로몬이 그 나라를 다스려가고 성전을 건축하는 그 목적 또한 예배하기 위함이었다는 거예요. 이러한 솔로몬의 마음은 그가 쓴 편지에도 묻어나 있는데요. 어 성전 건축을 앞두고 솔로몬은 당시 이스라엘과 어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던 드로라고 하는 나라의 왕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냅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어 기술자들과 재료들을 두로에서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였어요. 왜냐하면 성전 건축에는 많은 나무 목재가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당시에는이
두로라고 하는 나라에이 나무를 잘 베는, 나무를 잘 다를 수 있는 그런 장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두로 왕에게 어 요청하는 거예요.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 나라에 있는 장인들과 그 목재를 우리에게 보내서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는 거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한 거예요. 그러면서 이 편지에 내가 왜 이렇게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지를 함께 적어 보냅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솔로몬이 쓴 편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가 곧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다라고 말하죠. 어 영원한 규례라는 것은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어 어쩌면
귀한 공동체는 이 역대기에이 부부를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아 우리는 영원히 예배하는 공동체구나. 여러분, 어 제가 예전 스가랴 설교를 할 때이 귀한 공동체 이들을 불에서 꺼낸 타다남은 노마 나무토막에 성경이 비유하고 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마치 이 그림처럼 타다함은 나무토막 같았다는 거예요. 쓸모 없어 보이고 가치 없어 보이고 볼품 없어 보였어요. 그리고 귀한한 공동체 그들조차 우리의 모습이 딱 이와 같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아 이런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나? 예배해도 되나? 성전을 지을 수 있나?라고 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 이것은 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묵상하면서 얻었던 어, 깨닫게 되었던 부분인데요. 제가 앞에서 성전은 어, 건축할 때 나무를 많이 사용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때 쓰였던 나무가 백향목과 같은 되게 어, 좋은 나무들이었습니다. 향기도 나고 튼튼한 그런 나무들이었죠. 그런데
그 성전을 지어야 하는 이 공동체 모습은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남은 나무토막 같았다는 거예요. 내가 지어야 하는 성전은 마치 저렇게 향기롭고 튼튼한 백향목과 같은 걸로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나의 모습은 쓸모 없고 작은 힘에도 의스러질 것 같은 저 타다남은 나무조막 같은 그런 모습이 대조될 때 이스라엘 공동체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내가 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스가라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사단이 정지하고 흔들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그런
마음의 공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오늘 하나님은 너희는 영원히 예배하는 사람들이야라고 말씀하시죠. 두로왕은이 솔로몬의 편지를 받고 편지에 쓰인 요구대로 어 드로에서 뛰어난 기술자들, 장인들과 어 좋은 건축 재료들을 이제 솔로몬에게 지원을 해 줍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성전 건축이 시작되어 가죠. 어 솔로몬이 성전을 어디에 지었는지 아시나요?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장소가 바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어야 해라고 알려 주셨던 장소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모리아사는 과거에 다윗 왕 시절에 다윗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어 역대상 21장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인구 조사를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건에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의 전염병이 돌게 하십니다. 그래서 며칠 사이에이 전염병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7만 명이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지죠. 다윗은 그 죽어가고 받는
그 백성들을 보면서 이 재앙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거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서 회개하죠. 어,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이라고 하는 사람을 다윗에게 보내어서이 재앙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 방법이 오른난의 타장 마당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였어요. 다윗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그즉시 순종해서 오르난의 타장 마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땅을 직접 값을 주고 사고요. 그곳에서 회개의 제사를 드려요.
다윗이 이처럼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는 어 약속하셨던 대로 다윗을 용서하시고 그 이스라엘 땅의 그 전염병을 멈추게 해 주셨습니다. 이때 이 다윗이 제사했던 오르난의 타장 마당이 바로 이 모리아산이에요. 사실 모리아산은 다윗 이전에 아브라함이 올랐던 산이기도 하죠. 어쩌면 우리에게 모리아산 하면 다윗 어 아 다윗보다 아브라함이 먼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이 모리아산을 왜 올랐었죠?네 네. 자기 아들 이삭을 주님께 바치기
위해서 올랐던 산이었어요. 하나님이 그때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주님께 순종하는 그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세요. 아, 네가 나를 정말 경외하는구나라고 말씀해 주시죠. 그리고 이삭을 대신할 아브라함의 아들을 대신할 재물을 준비해 주십니다. 그 여호와 이래의 땅이 바로 이 모리아산이었어요. 여러분, 모리아산은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그들의 믿음의 조상들이 주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였습니다. 또이 모리아산는 예루살렘 중심에
있는데요. 그래서 만약 이곳의 성전을 건축하게 된다면 종교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이 성전이 그들의 중심,이 도시의 중심에 따른 의미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건축을 하는 것만 놓고 생각해 본다면 모리아 산이 그리 좋은 지형은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가 산의 어떤 건물을 짓는다는 건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 모리아 산도요. 어이 꼭대기가 평평하지 않을 뿐더러 바위가 굉장히 많은 산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대 기술력으로 그 산위의 성전을 세운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하는 아주 큰 공사였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이 굳이 이곳을 선택하시죠. 다른 좋은 곳도 있을 텐데 왜 이곳을 선택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이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계속 만나셨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리아사는 인간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가 만난 곳이었어요. 인간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이 만난 곳이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들었던 순종처럼 인간의 순종과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던 여호와
이래가 만났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성전이 지어지길 원하신 거죠.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곳이요.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예배는 그저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에 불과할까요? 예배는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좀 전에 우리는 다라쉬의 마음 있는 예배를 살펴봤었죠.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고 구하고 묻는 그런 예배예요. 여러분 우리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왜 뜻을 그렇게 물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과 내 삶의 순종이 서로 손잡게 하기 위해서예요.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안에서 회개와 용서, 기도와 응답, 순종과 은혜가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 크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어 하나밖에 없어요. 주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해서 먼저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와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내 이름을 부르길, 나에게 돌아오길 나는 기다리고 있었어. 너를 너그럽게 용서할게. 우리가 주님께 주님을 구하며 갈망하며 기도할 때 주님은 말씀해 주세요. 내가 내 나라와 의를 구하는구나. 그럼 나는 너에게 필요한 모든 걸 토해 줄 거야. 너의 삶을 돌볼 거야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우리가 왜 순종하려고 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렵고 두렵지만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또 말씀해 주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도 너를 사랑해.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너를 지킬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만약 다윗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절대 이 용서의 하나님, 은혜를 준비하셨던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님은 늘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주님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어 때로는 우리의 억센이 고집이 또는 불안과 염려가 어쩌면 내가 지금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어이 삶이 주는 어떤 편리함과 익숙함 과거에 나의 상처와 아픔들이 여러 가지 핑기가 되어서 회개를 미루게 하고 순종을 머뭇거리게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앞에 머뭇거리면 주님을 만나기 어렵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또한 자신의 아들까지내어 줄 정도로 그렇게 사랑하셔도 해 줄
수 없는 것이 있으세요. 우리를 억지로 만나 주실 순 없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주님을 외면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등을 억지로 돌려서 우리를 만나 주실 수는 없다는 거예요. 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우리도 우리 얼굴을 주님께로 돌리고 마주 봐야 하죠. 주님께로 얼굴을 돌리고 마주본다는 건 어떤 걸까요? 여러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 방금 내가 내뱉었던이 말, 내가 방금 저지른이 행동, 어 주님 기뻐하시지 않으신 거 같아, 말씀이
어긋난 거 같아라는 것들이 문득문득 깨달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소하든 아니면 크든 상관없이요. 그럴 때 아 내가 지금 내 삶이 주의 말씀에서 어긋나했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질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하는 것이 주님과 시선을 맞추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수시로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들이 옵니다. 그때 주님 제가 이때 어떤 것을 선택하는게 좋을까요? 나를 화나게 하고 억울하게 하는 저 사람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하는게
주님의 뜻입니까? 내가 나의 진로를 결정하고 또 우리 가정 안에서 우리 직장 안에서 어떤 것을 결정해 나아갈 때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은 무엇입니까?라고 우리 일상 가운데서 틈틈히 묻고 구하는 것이 주님의 걸음과 우리의 삶을 맞추어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우리 삶의 모리아 산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잘못과 연약함 위로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덮히는 곳. 순종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와 보호를 베푸시는지를 경험하게
되는 삶. 이것이 곧 우리의 삶의 예배가 드려지는 주님을 만나는 모리아 산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 솔로몬은이 모리아산에서 어, 성전을 지은지 약 7년 6개월 만에 비로소 그것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완공된 성전에 솔로몬은 언약궤를 안치합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게 임하게 되죠. 우리 그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레위인들이 어 그들에게 주어졌던 그 율법의 절차에 따라서 언약궤를 안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요. 주님은 선하시다. 그러자 그 성전의 구름이 가득하게 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구름이 가득하게 임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게 임했다라는 표현이에요. 그래서 이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 그 성막이 지어졌을 때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이 구름으로 표현하셨죠. 구름이 회막에 덮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임재가 얼마나 강렬하게 임했는지 제사장들이 참아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주님의 임재에 압도당했다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 하나님 어 우리가 앞에서 나눴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고 또 예배하기 위해서 이 성전을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이렇게 강렬하게 임재하여 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같이 임하여 주시고 동행하기 시작하셨다는 거예요. 솔로몬이이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해요. 그리고 성전을 주님께 드리는 봉원식을
진행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데요. 그 기도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의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솔로몬이 기도를 통해서 주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주님 때문이라고 고백해요. 다윗이 재료를 잘 준비해 줬기 때문에 또는 두로가 우리를 좋아 도와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애쓰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렇게 성전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님께서 지키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죠. 솔로몬은 이것을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이루셨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어 여러분
귀한 공동체는 성전을 재건할 만한 여력이 사실 없었어요. 약속의 말씀도 알겠고 예배해야 하는 것도 알겠어요. 그러나 막막한 현실이 늘 그들의 발목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조상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내가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여호와야.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이룰 거야. 여러분, 이들은 우리에겐 재료도 없고 우리는 힘도 없고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도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이 무너지 성전을 재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에 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내가 말씀한 것, 내가 말한 것, 내가 이룰 것이다라고 말씀하세요. 내가 한 약속은 내가 반드시 지킬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이것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다른 거 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 여러분, 귀한 공동체가 재건한 성전은요. 사실 지금이 솔로몬 시대에 지었던 성전에 비하면 너무
작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고이 솔로몬처럼 기뻐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슬퍼하며 곡을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화려함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며 살기를 더 원하고 계셨어요. 성전의 모습이 초라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 화려함이 언약을 지키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이 그들에게 지켜진 조건, 그들의 회복이 시작되어진 조건은 얼마나 멋진 성전을 지었느냐가 아니라 너희가 얼마나 온 마음으로 나를
따르고 있는가. 너희가 얼마나 내 앞에서 온전히 행하려고 애쓰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 여러분,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에 기뻐하고 슬퍼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사역의 어떤 성과, 공동체 안에서 어떤 관계, 예배의 화려함 또는 내가 얼마나 오래 기도하는가, 내가 얼마나 묵상하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 어떤 지표가 되어서 우리가 기뻐하고 슬퍼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어, 저는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사역이 잘되는 거 너무 좋죠. 공동에서 서로 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거 너무 좋습니다. 이왕이면 오래 기도하고 말씀 오래 묵상하는게 더 좋죠. 그러나 너무 많은 순간 혹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기 싶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사역의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그 동기가 주님 앞에 생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내가 어딘가서 인정받고 나의 어떤 만족을 위해서 해낸 결과라면 그것이 주님 앞에서 무슨
소형이 있겠어요?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너희가 그렇게 잘못된 그릇된 동기로 사역하고 교회에서 헌신하고 일하는 거 주님의 심판날에 다 불타 없어지고 말 거야. 그런 거 말고 타지 않을 마음으로 너희는 섬겨야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 가슴 아픈 말이지만 아무리 우리가 화려한 예배, 뭔가 기술적으로나 어떤 내용적으로나 완벽한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내 개인적으로 많은 말씀을 묵상하고 내가 열심히 몇 시간씩 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정작
우리 삶에 나타나는 모습이 온전하지 않다면 여러분 그 예배는 오히려 주님과 우리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어 것일지도 모릅니다. 입니다. 여러분, 가슴 아프지만 우린 이걸 기억해야 해요. 여러분, 주님은 성전이 초라하다고 단 한 번도 슬퍼한 적이 없으셨어요. 아멘. 그들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떠나는 것을 슬퍼하셨죠.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온 마음으로 주님 앞에 행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잘 해내고 능숙하게 하고 멋진 결과를 내세우는 것보다 때로는
서툴고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주님이 보시기에 온 마음을 다해서 온전하게 예배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린 후에이어서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데요. 솔로몬의 간구는 크게 일곱 가지 상황에 대한 거였어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죄로 백성이 전쟁에서 졌을 때, 또는 가뭄이나 재앙이 임했을 때, 이방인이 기도할 때, 전쟁에 나갈 때, 포로가 되었을 때와 같은 상황을 어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어, 상황은 이렇게
다양하고 일곱 가지나 되지만 사실이 본문을 읽어 보면 이 기도의 패턴이 거의 동일하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백성이 성전에서 기도하거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다면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회복해 주십시오라는 패턴이 계속 반복됩니다.이 백성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주님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또는 그들이 어떤 죄를 지어서이 범죄함 때문에 그들이 전쟁에서지고 가뭄을 만나고 재앙을 만난다면 여러분
어 하나님 그때 이 백성이 그것을 깨닫고 아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에 일어 일어나는구나 깨닫고 주님께 돌아와 성전을 향하여 회개한다면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시오라고 하는 기도였어요. 여러분 솔로몬의이 기도는 심지어 이방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주의 성전을 향하여 이곳에 나와 기도하거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이 일곱 번째 상황에 대한 이 포로가 되었을 때에 대한 기도도 비슷한 패턴인데요. 우리이 말씀은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폐역을 행하며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며 자기들을 사로잡아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솔로몬이 기도를 모두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솔로몬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시고 그 성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받으셨고 기뻐하신다라는 하나님의 표현이었죠. 그리고 이 솔로몬에게이 기도에 직접 말씀으로 응답하시는데요.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내 이름으로 읽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솔로몬이 주님께 간구하고 기도했던 것처럼 이 백성을 심판하셨다가도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다가도 백성들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땅을 고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이죠. 왜냐면 애초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멸하시고 없애 버리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정결케 하시고 회복시키시려는
주님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약속은이 말씀을 읽고 있었을 그 귀한 공동체 아마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이 말씀이 너무 자기들 상황 같잖아요. 포로가 되었을 때 우리가 우리가 범죄함 때문에 적곡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을 때 여러분 그 상황이 얼마나 자기들에게 이입이 됐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셨다가도 우리 버리신 것 갔다가도 와 우리가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간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받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구나. 여러분이 기도
앞에 어떤 기도가 있었죠? 솔로몬이 주님께 주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라고 기도했었어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 주님께서 이루어 가신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었어요. 그 말씀 뒤에 그 기도 뒤에이 기도가 이어지는 거예요. 주님의 이 말씀이 이어지는 거예요. 아 그렇게 주님의 약속 지키셨던 그 하나님이 이 약속도 이제 지키시겠구나. 우리는 주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그리고 이들은 그들에게 왜 성전이 필요한지 그들의 왜 예배가 왜 회복되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주님께로 돌아와 예배할 때이 회복의 약속이 그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되었겠죠.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이 말씀을 주신 다음에 뒤에 한 가지를 더 말씀해 주신데요.이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내가 성전에서 하는 너희의 기도에 눈을 들고 귀를 기울게. 내 이름이 여기에 영원히 있을 거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을 거야. 여러분 구약 시대에서의 이름은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곤 하는데요. 그러니까 이 성전에는 하나님의 눈과 귀, 그분의 마음, 그분의 이름, 그 존재 자체가 영원히 항상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앞서 기도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늘 위에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감히 다 담을 수 없을 텐데 우리가
최선을 다해 지은이 성전이라고 하지만 감히이 성전이 주님을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고백하죠. 하나님의 존재, 그 크심, 그 위대하심, 그 거룩하심에 비하면 아무리 넓고 화려하고 크게 웅장하게 지니 성전이라 할지라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솔로몬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세요. 그래, 부족한 거 알지? 근데 나는 거기에 있을 거야. 내 이름을 거기에 둘 거야. 내 마음을 거기에 쏟을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성전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찬양을 기뻐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주님은 기꺼에 그 크신 분이 이곳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말씀이 꼭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들아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단다. 여러분 주님은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 아주 작은 신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온 마음을 다 쏟아내서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어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또 이곳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예배자 여러분 혹시 주님 앞에서 범죄하셨습니까? 나 같은 건 역시 안 되나 봐.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 봐라고 하는 그 마음이 혹시 여러분의 마음을 너무 괴롭게 합니까?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향한 용서와 사랑을 이미 준비하신 채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혹시 삶이 막막한 현실 때문에 그 막막한 현실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깨어진 세상 속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혹시 눈물 흘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 아픔을 느끼지도 못할만큼 그 깨어짐 가운데 허무함과 무기력에 빠져 버리셨습니까? 여러분 길을 쓰고 예배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당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먼저 달려나가 지친 여러분을 끌어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어 여러분 주님은 항상 여기에 계세요.
우리가 주님께 나아오기만 한다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해 찾고 구하는 조금이라도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고 묻고 또 묻는 그런 다라씨의 마음의 예배를 여러분 드리십시오. 말씀 앞에서 나 항상 여기에 있어. 나 너와 함께 하고 싶어.라고 말씀하신 이 초청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회개함과 순종함으로 나아가 주님을 만나십시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는 곳. 나를 지키시며 내게 꼭 필요한 은혜를 베푸시는 여호와 이래를
경험하는 곳. 내 삶의 모리아산이 될 것입니다. 주님 왜 이토록 예배 예배 예배 강조하실까요? 사실 오늘 설교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났잖아요. 왜 이토록 강조하실까요?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셔서 그러시대요. 역대아 7장에서 주님이 성전을 향한 약속을 주실 때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내가 내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내게 준 윤례와 규례를 지키라. 마음이 변하여 나의 윤례와 계명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겨 숭배하지 말라.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이
나는 신이고 너희는 백성이니까 나는 창조주고 너는 피조물이니까 내 명령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하는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나 너희와 함께 하고 싶어라고 하는 주님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나는 항상 너를 위해 여기에 있어. 그러니 너도 마음 변하지 말고 나와 함께 있자. 나를 떠나가지 마라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고백이죠.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이 귀한 공동체로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주님은 오늘이 시간에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셔서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낮고이 낮은 땅까지 오셨어요. 창조주이신 분이 기꺼이 피조물의 몸을 입고 우리 삶 한복판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그 예루살렘 한 가운데 지었던 성전에 강렬하게 임재하셨던 것처럼요. 그리고 이들에게 하셨던 말씀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죠. 나는 너랑 임마누엘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그렇다면 우리도 귀한 공동체에 주어진 이 말씀을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이 구절들에서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있었어요. 온 마음을 다해서 온 마음으로 여러분 주님이 원하시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이었어요. 나는 너희를 온 마음으로 사랑해. 너희도 나를 그런 온 마음으로 사랑해 줘. 난 너희랑 온 마음을 다해서 함께 살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그런 마음으로 나랑 동행하면 안 될까? 나는 항상 여기에 있는데 너를 기다리면서. 여러분, 우리도 온전한 마음으로 주심을 따르며 예배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아, 이처럼
하나님 같은 순해보가 또 있을까 싶어집니다. 그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을 동안 주님은 한 번도 먼저 우리 앞에서 돌아서신 적이 없으셨어요. 가슴이 찢기는 그 아픔을 겪으시면서도 기꺼이 또 사랑하시겠대요. 우리는 몇 번만 상처받아도 나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 그러니까 사랑 안 할 거야. 포기하잖아요. 근데 주님은 그러지 않으세요. 어쩌면 주님은 상처받을 거 알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등에 칼꽂은 그 몇 사람 하나 용서하지 못해 끙끙거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셀 수 없는 칼을 그 등에 꽂히시고서도 우리를 또 용서하시겠다라고 말씀하세요. 나 항상 여기에 있어. 돌아오면 용서할 준비가 됐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단다. 나는 너랑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단다. 오늘 여러분은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이 고백에 무엇이라고 대답해 할까요?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주님의 이 고백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이 고백과이 말씀 앞에서 주님의 초청 앞에서 저도요 주님 저도
주님이랑 영원히 함께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한번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나를 위한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예배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위한 주님을 찾는 주님으로 채우기 위한 그 다라씨의 예배입니까? 나의 삶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그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는 삶의 예배의 자리, 만남의 자리 모리아산이 되어지고 있습니까? 주님은 나를 항상 기다리신다는데 우린 주님께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어 종종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하실 때가 있어.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자녀들이 달려가 안기는 것이라고. 여러분, 주님 아버지가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그 아버지 품으로 달려나가 안기는 우리의 예배, 삶의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