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솔로몬 왕의 시대를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그 솔로몬 이후의 시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누군가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내가 아는 사람을 또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야 하는 상황들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생깁니다. 어, 부모님이나 친구들 또는 내 가족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연인을 소개해 줘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직원을 구하고 있는 어떤 누군가에게 아,
내가 참 좋은 사람을 알아. 그 일에 딱 재격인 사람을 알아라고 추천하거나 소개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하죠. 여러분, 그럴 때 우리는 보통 어떤 어 마인드를 가지고 그 사람을 소개하려고 할까요? 만약 저에게 A라는 친구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는 아마도 최대한 그 A의 긍정적인 면, 좋은 면들을 위주로 소개해 주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개받는 사람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어떤 큰 일들이 아니라면 굳이 A의 상처나 그가 저질렀던 실수들 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약점들, 연약함들을 굳이 말하려고 하진 않겠죠. 또 만약 소개받는 그 사람이 아 근데 내가 A를 좀 아는데 A 이런 사람 아니야라는 어떤 그런 의견을 낸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아 맞지 A가 그런 약함과 실수가 있었지.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이런 좋은 점이 되게 많은 좋은 친구야라고 말해 주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이렇게 소개한다고 해서 A는 완벽한 사람이야. 걔는 절대 흠이 없어. 이렇게 소개하려고 하는 걸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A에게도 부정적인 부분들 어쩌면 어 약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친구를 소개해야 하는 그 상황에 맞게 A의 좋은 면을 강조하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부정적인 부분은 웬만하면 생략하고 또 반대로 강조해야 할 것들은 더 부각해서 말해 주려고 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 제가 방금 드린 이 이야기는 어 사실 완벽한 비유는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마치 이 비유처럼 역대기가 기록된 특징이 어 비슷합니다. 어 제가 지난 시간에 역대기는 다시 쓰인
역사서이다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그러면서 역대기는 다른 역사서와 다른 목적과 관점을 가진 책이며 그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 책이라고 설명드렸었죠. 그러니까 역대기의 저자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금 책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들 중에 하나는 다윗 왕조와 언약에 대한 거였어요. 마치 제가 A를 소개하는 것처럼 이 저자도 그 귀한 공동체 그 독자들에게 언약을 품고 있는 이 다윗 왕조를 강조해서 소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 다윗이 방주의 좀 부끄러운 모습들, 치부들, 그들의 실수 약점들은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았겠죠. 그것을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굳이 이것을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의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부분은 더 드러내서 말하고자 했을까요? 다윗 왕조의 긍정적인 모습들,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던 모습들은 더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어, 다윗왕주의
가장 대표는 아무래도 다윗이겠죠. 다윗왕은 여러분 이미지 속에 어떤 왕인가요? 어떤 이미지신가요? 선하고 뭔가 말 잘 듣는네 선하고 그런 좋은 왕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잘 보면 다윗 왕에게도 명백한 잘못들이 있었어요. 가장 큰 사건 하나는 자신의 충신이었던 우리의 아내 바세바라고 하는 여인을 성적으로 범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가 어떤 일을 또 버리냐면 그 우리아를 죽게 만들어요. 사무엘아는 이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의 죄를 책망하고 있죠.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그 이야기를 굳이 기록하지 않습니다. 등장하지 않아요.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봤던 솔로몬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도 비슷합니다. 열왕기에서는 솔로몬의 잘못들을 다 기록하고 있어요. 그가 성전 건축 이후에 많은 이방인 여자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이방인 여자들이 결혼할 때 그냥 왔을까요? 자기 고향 땅에서 섬겼던 그 우상들 그리고 그 이방 나라의 어떤 풍습과 문화들을 다 가지고
들어왔겠죠. 그래서 열왕기서에는 그 솔로몬이 그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면서 그 여인들에 의해서 타락하고 그도 우상숭배를 저지르는 거기에 물들어가는 그런 모습들을 악하다라고 말하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에선 의도적으로 성전 건축과 예배를 정비했던 그 좋은 모습들을 이야기하고 그 이후의 잘못은 생략하고 있죠. 그러나 여러분 역대기 저자 그렇다고 해서 다윗 왕조는 전혀 죄가 없고 그 왕조는 완벽하며 하나님 앞에서 전혀 실수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어찌면이 독자들은요 사무엘서나 열왕기서와 같은 그런 책들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렀는지 이미 알고 있어요. 혹시 모른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역사서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면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 그러나 역대기는 이렇게 흠이 많고 실수하는 다의 낭조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시고 도우셨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계속해서 이렇게 인도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은 책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에는 생략된 사건들도
많지만 반대로 추가된 사건들도 많이 있어요. 어, 히브리 성경 즉 구약 성경을 가장 처음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70인역 성경이라고 부르는데요.이 이 성경에서 역대기를 번역할 때 앞선 역사서에서는 기록되지 않았던 즉 생략되어 있던 이야기들이 어 추가로 역대기는 기록되어 있다라는 그런 의미를 담아서이 이름을 파말레이 포메논이라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이걸 우리말로 바꾸면 생략된 사건들 또는 보충한 것들이란 제목을 붙인 거예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역대아 10장부터 13장의 이야기에서도 11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보충된 사건들이 등장하는데요. 솔로몬 이후에 르오부암과 아비아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르호부암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르호부암은 솔로몬이 가장 아꼈던 아들이에요. 그 솔로몬이 죽고 나서 그 가장 아꼈던 루오부암이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죠. 여러분, 르오브암이 왕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먼저 한 것은 북쪽에 있는 세계이라고
하는 지역을 찾아가는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북쪽 지파를 만나고자 했기 때문이죠. 어, 여러분, 우리가 사무엘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처음 왕이 세워질 때 그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부터 어, 이스라엘은 왕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와 인정이 필요했습니다. 이건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백성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어떤 그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죠. 루오밤도 역시 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그런데 당시에 그 흘러가는 상황이 르오밤이
왕으로 인정받게 어 우리가 따를 만하다라고 백성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어 성경에 보면 솔로몬 시대에 성전과 왕궁을 건축했었죠. 그런데 그때 몇 년의 시간이 걸렸는지 아시나요? 약 20년의 시간이 거기에 소요되었습니다.이 시간 동안 백성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냥 구경하고 있었을까요? 물론 어 이방 나라 사람들 그곳을 살고 있던 이방인들도 그 건축에 고용하긴 했지만 사실 백성들이라고 해서 마냥 손놓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건축을 위해서 많은 세금을 내야 했고요. 또 많은 노동력을 어 그곳에 쏟아부어야 했죠. 게다가 성전도 또 왕궁도 다 예루살렘에 건축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나라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발달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한국은 어디를 중심으로 발달하죠? 네. 누구나 다 서울이지라고 할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 당시 보기에 아 이스라엘 하면 예루살렘이지라고 하는 인식들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들이 그 솔로몬의 그 통치 시대를 지나면서
아 너무 건축 많이 하고 세금 많이 내니까 지치기도 지쳤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예루살렘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었던 북쪽에 있었던 그 지파일수로 더욱더 불만이 쌓여가는 거예요. 똑같이 고생하고 우리는 그만큼 혜택을 못 누리는 거 같아라는 그런 불만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루오브암이 백성들의 그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살펴보기 위해서 북쪽에 있는 그 지파들을 만나러 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때 백성들의 대표로 앞장서서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입니다. 어 열왕기서에 보면 여로보암에 대한 소개가 좀 더 자세한데 그는 원래 솔로몬의 신하였어요. 기록에 보니까 어 꽤나 일을 잘했던 어 신하였던 거 같습니다. 그 솔로몬이 그를 감독간의 자리에까지 승진시켜 주죠. 그런데 어느 날이 여로보암이 길을 가는데 선지자 아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예언 하나를 듣게 됩니다. 우리 그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렇지만 그의 아들 대에 가서는 내가 그
나라를 빼앗서서 그 가운데서 열파를 너에게 주고 한 지파는 솔로몬의 아들에게 주어서 다스리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내 이름을 기리도록 내가 선택한 조성 예루살렘에서 다스릴 것이고 내 종 다윗에게 준 불씨가 거지 않을 것이다. 여로부암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 너는 내가 원하는 모든 지역을 다스릴 것이다. 어, 솔로몬이 앞에서 제가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하고 이방 나라 따라가는 그런 악을 행하니까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해서 내가
심판할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나라의 분열로 이어지게 되었죠.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어 네가 열지파의 왕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고 한 지파만 솔로몬의 아들이 다윗 왕조가 이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알게 된 솔로몬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자기 나라 지금 다 뺏기고 자기 아들은 한 지파만 받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그가 여로부암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로부암이 애굽으로 멀리 도망을 가요. 거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 소식에 들려놓은 소식에 솔로몬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여로보암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르호보암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오늘 역대기 10장에서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을 비롯한 백성들의 요구는 이거였어요.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예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매운 무거운 멍예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습니다. 아, 우리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 편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를 한 거죠.이 이 이야기를 드는 루오브안 백성들에게 아 그러면 내가 이것을 고민해 볼 테니 3일 뒤에 다시 자를 찾아오십시오라고 말해요. 그리고 나서 이 3일 동안 루오브암은 신하들을 불러놓고이 상황에 대해서 막 논의를 합니다. 이때 신하들의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갈리게 되는데요. 첫 번째 의견은 솔로몬 시대부터 나라에 대한 일을 같이 해 왔던 원로들 조금 나이가 있는 그런 신하들의 의견이었어요. 그들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왕이시요. 백성들의 말이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고생한 것도 사실이니까 조금 풀어 줍시다. 좀 받아들여 줍시다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편에서는 르오부암에게 좀 젊은 신하들이 반대되는 의견으로 조언을 해요. 아닙니다. 왕이시요. 그걸 받아주면 안 됩니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어 아마도 이 젊은 신하들은 왕이 더 강하게 나가면 백성들이 좀 깨갱하지 않을까? 어 백성들이 뭐 어쩔 거야? 이런 마인드였던 거 같아요. 이렇게
의견이 엇갈린이 상황에서 루오브암이 어디에 손을 들어 줄까요? 네. 자기 또래의 의견이었던 젊은 신하들의 손을 들어 줍니다. 그리고 3일 후에 백성들이 자신을 만나러 왔을 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으나 나는 이제 당신들에게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를 메우겠소. 내 아버지께서는 당신들을 가족 채찍으로 매질하셨으나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 아, 우리 좀 이제 편하게 해 주세요. 우리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왕에게
구했는데 왕이 아니, 내 시대는 그것보다 더 괴롭게 될 거야라고 말을 하게 된 거죠. 여러분이 백성들이라면이 왕의 어, 대답 앞에 어떻게 반응하시겠나요? 루오부암과 젊은 신하들의 예상대로 그들이 깨갱하고 돌아갔을까요? 그렇지 않았어요.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 아, 이런 왕이라면 우리가 따를 필요가 없어. 우리 마음도 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굳이 그를 왕으로 섬길 필요가 없어. 그러면서 선지자 아야가 예언했던 것처럼 유다 지파만 남고 나머지 열파가
모두 이 르호바 왕을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게 되었죠. 어, 르오보암에 어리석었던 그 한순아의 선택이 그 왕국을 이스라엘을 분열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 여러분, 그런데 성경은요이 사건을 또 다른 시선으로 어,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이야로 하여금 느밭의 아들
여보 이르신 말씀을 은하게 하심이더라. 우리가 방금 이렇게 들었던이 이야기 안에서 인간의 시선 또는 역사적인 시선으로만 본다면 아 루호범이 조금 어리석었네. 백성들을 좀 돌보지 못했네라고 생각하는 그 왕의 실수로 벌어진 일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역대기는이 일이 그것도 물론 맞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아 낫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해 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솔로몬의 우상숭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으며 동시에 여로보암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분이 말씀이 그러니까 루호부암 잘못이 없어. 이게 일 이런 하나님께서 버리신 일이잖아. 얘는 왜 잘못이 있겠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나라의 분열은 물론 솔로몬이 우상숭배했던 그 결과도 맞고 또 르오브암이 어리석게 선택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저자가이 안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낫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분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을 성취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 것입니다. 어, 여로보암에게 주셨던 말씀을 여러분 어, 기억해 보시면 제가 잠시 앞으로 넘겨 보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하나님 분명 심판도 말씀하세요. 그런데 거기에서 내가 심판하지만 다윗에게 주었던 그 언약은 이어갈 거야라는 것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솔로몬의 잘못, 르호보암의 잘못으로 나라가 분열되었어요. 하나님은 나라가 깨어지는 그 분열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지만 그 언약만큼은 깨어지지 않게 할 거야라고 말씀하신다는 거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난 것이다라고 한 것 안에는 나라에 대한 심판과 여로보암에게 하셨던 약속에 대한 성취도 있지만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어요? 그렇지만 다윗에게 주어졌던 그 언약도 내가 이루어 가고 있어라고 하시는 그 주권적인 주님의 일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때로 우리도 우리의 잘못과 또는 어리석은 실수 그런 것들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고난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고난들을 모두 다 우리의 죄 때문이야. 우리
실수 때문이야라는 그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우리의 잘못과 우리의 어떤 어리석음 때문에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일들도 분명히 존재하죠. 가끔은 이게 아 내 잘못 때문에 일어난 건가 아닌가? 그렇게 내가 헷갈린다 하더라도 때로는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우리에게 더 손해가 되거나 고난이 되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죠.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런 우리의 삶의 역사 안에서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물론 때로는 그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치실 때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감당해야죠.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약속들,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거라고 하셨던 말씀들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어, 우리는 지금 이것을 다 알고 있지만 루오부암은 그 정말 당면한 그 상황 속에서 그거를 잘 알지 못했겠죠. 하나님의 시선이나 그분께서 어떻게 지금 일하고
계시는지를 사실 잘 알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가 선택했던 방법은요. 자신을 떠난 그 열지파와 싸우는 거였어요. 내가 그들을 무력으로 다시 데리고 와야겠어.이 이 나라가 이렇게 분열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든 합쳐 보겠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마 르오보암이 아니라 다른 어떤 왕이더라도 나라가 분열되는 거를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테니까요. 여러분 심지어 한두 지파가 여로보험에 간게 아니라 무려 열지파가 넘어가게
된 상황이죠. 그래서 그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역대한 11장에 보면 그가 갑자기 그 전쟁을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함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어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로보암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으니 르오밤이 뜻을 돌이키고 되돌아왔던 이유를 성경은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이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야라고 하신 그 하나님으로부터 그 말씀을들은 후에 앞에서 보였던 그 어리석은 선택과 달리 지금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이 상황을 받아들인 채 걸음을 돌리는 선택을 보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게 하신 그 열지파는 내려놓습니다. 아 주님께서 이미 보내셨구나. 나에게 주어진 건이 유다 지파뿐이구나.
그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그 지파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어 르오보암이 전쟁을 포기하고 돌아간 대신 예루살렘에 와서 했던 일은 그 남유다를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일이었어요. 이미 솔로몬 시대의 재정비는 끝났었죠. 그런데 여러분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됐어요? 분열되었죠. 그러니까 영토의 경기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맞게 다시 르오보암의 나라를 정비하고 다시 세워가는 일들을 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아 르우브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구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르호부암이 그 주님의 말씀처럼 자신이 어 나 열지 다시 얻어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니까 오히려 반대로 사람을 얻게 돼요. 자기는 포기하면 잃어버릴 줄 알았는데 포기했을 때 그가 얻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오보암에게 돌아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3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아 솔로몬의 아들 루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이는 무리가 3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나라가 분열되고 북 이스라엘은 지금 누가 다스리게 되었냐면 아까 그 백성들의 대표였던 요로부암이 왕이 되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요로부암도 왕이 되었으니까 어떤 일을 버렸을까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견고히 세우기 위한 노력을 했겠죠. 그런데
이 과정 안에서 여러부한 마음에 걸리는게 한 가지가 있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었냐면 자기 백성들이 예배하러 가는 거였습니다. 물론 예배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예배하기 위해 그들이 자꾸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이 그의 마음에 걸렸습니다. 여러분한 입장에서 혹시 우리 백성들이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로 혼락 넘어가 버리는 거 아니야라는 어떤 그 두려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에 있었던 베델과 단이라고 하는 곳에 금송아지와 산당을 지어서 우린 이제 여기서 예배할 거야. 이게 우리가 예배할 장소야라는 것을 만들어 주죠. 이미 이것만 해도 엄청난 죄악인데 여로부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그곳에 있었던 제사장들 레위 지파를 모두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우고 싶은 사람들을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우기 시작해요. 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때 그 상황을 만약에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어 이런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예루살렘 가서 예배 안 할 거야. 우리는 이곳에서 여기서 예배할 거야. 그런데 여러분, 예배를 그렇게 진심으로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들이 그걸 순순히 보고 있었을까요? 왕이시, 우리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는 지켜야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럼 너네 다 나가. 그리고 내 말 잘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부터 이걸 섬겨라고 했겠죠. 그래서 결국 예배를 지키고 싶었던 레위 지파는 그럼 우리는 남유다로 가겠다. 우리는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
하고 남유다로 넘어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을 찾는 신실한 백성들 마음을 굳게 했던 그 백성들도 그 레위 지파와 함께 남유다로 내려오게 되었죠. 어 여러분 어 르호부암이 앞에서 내가 전쟁이라도 해서라도 내가 그들을 다시 얻어와야겠어라고 했을 때 만약 그들이 전쟁을 해서 실제로 열지파를 다시 얻어 왔다고 하더라도 그게 르오보암에게 좋은 일이 되었을까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이미 그 열지판은 루오부암의 마음이 상했어요. 왕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억지로 갖다 놓다고 해서 그 말을 듣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어쩌면 르오범이 통치하는 시대 내내 그를 괴롭게 하는 어떤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자신이 생각했던 그 방법을 내려놓고 아 주님 말씀하시면 그냥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순종하서 다시 돌아갔을 때 오히려 그는 예배를 사모하고 그 남유다와 그 왕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신실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르오범의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을 때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그 넘어온 그들조차 어쩌면 그것이 큰 도전이자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일단 상황은 북 이스라엘이 훨씬 좋아 보이거든요. 영토도 넓고 숫자적으로도 훨씬 우세하죠. 그리고 왠지 여러분 우리 말을 잘 들어 줄 것 같아요. 또 지금도 우리가 어떤 고향을 떠나서 2주에서 정정착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집도 새로 구해야 하고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내 자녀들 학교 학원 다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아마
이 시대에도 그런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 알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을 찾아서 또 참된 예배를 찾아서 기꺼이 그 대가와 수고를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르호부암과 이렇게 신실한 백성들이 만났을 때 주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그들을 강성하게 해주십니다. 어쩌면 루오브암은 자신에게 많은 백성 또는 어떤 넓은 땅이 있어야 내가 강성한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전쟁을 해서라도 다시 되찾아오겠어라고
말을 했겠죠. 그런데 나라의 강성함은 그런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밖에 남지 않았고 땅도 좁았지만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백성으로 살기 위해 애쓰며 때로는 어떤 감당할 것을 감당하고 때로는 참아내할 것을 참아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그들을 강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어 이러한 신실함이 이런 좋은 모습들이 좀 오래 가면 좋았을 텐데 루오부암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어요. 르오브암이 어 나라가 강성해지니까 또 평안해지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버립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버렸다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들어서 내가 남유다를 쳐야겠다라고 심판을 결정하시죠. 아무리 그들을 사랑해도 죄까지는 그냥 두실 수 없는 것이 주님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이 소식을 르호보암이 선지자를 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르호범함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놀랍게도 그가 회개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에 이스라엘 당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매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사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솟하니라. 그들이 그 심판의 소식을 들었을 때 스스로 겸비하여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그들을 조금 구원하시겠다라고 말씀해 주시죠. 어, 여기서 조금 구원하신다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일까요? 어, 이어지는 12절에 보면 여서 그들을 다 멸하지 않으시겠다라고
말씀하신 걸 알 수 있어요. 너희가 돌이켰으니 나도 나의 노래를 돌이켜서 내가 너희를 다 멸하지는 않을게. 여러분, 그렇다고 이들을 어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고 해서 애굽이 이들을 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이 죄로 인해서 남유다는 애굽의 속국이 되었고요. 또 나라의 많은 보물들도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져요. 그러나 주님께서 그 나라를 완전히 멸하진 않으시죠. 그들을 남겨 두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의 정이 그 공의로 앞에서 섰나면 이미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 언약은 깨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그들이 먼저 주님의 손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이 다시 스스로 겸비하고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주님께서도 그분의 노를 돌이키세요. 다시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겸비하여 돌아오는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이 언약을 다시 붙들었다는 것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는 것, 그들을 남겨 두는 것이 내가 너희를 조금 구원할게라고 하는 그 단어 안에
담긴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이렇게 르오밤의 통치가 지나가고 그 이후에는 그의 아들이었던 아비아가 남유다의 왕이 되는데요. 아비아는 단 3년 동안만 나라를 어 통치했어요. 어 짧은 이 통치 기간 때문인지 열왕기서에서도 아비아에 대한 내용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뭐 거의 이런 수준이에요. 왕이 되었다. 왕이 왕에서 물러났다. 뭐이 정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베일에 쌓여 있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대체 그는 어떤 통치를 했을까 궁금하게 하죠. 그런데
역대아 13장에서는 그런 아비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가 북 이스라엘과 전쟁에 나갔던 에피소드를 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 사실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그의 아버지였던 르오브암 시대부터 이어져오고 있었어요. 성경은 아비아가 통치하는 그 시절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기록하는데요. 아마 그 많은 전쟁 중 하나를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 현재 남유다는 르호범에서 아비아로 왕이 바뀌었죠.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여전히 여로부암이 왕으로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아비아의 통치 기간이 불과 3년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아비아가 왕이 되자마자 이런 전쟁이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이 두 왕국이 서로 각자 뛰어난 군인들을 추려서 전쟁에 참전했어요. 그런데 아비아가 즉 남유다가 훨씬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우선 아비아가 이끌고 나갔던 남유다의 군인들은 약 40만 명이었어요. 근데 북 이스라엘에 몇 명을 데리고 참전하는지 아시나요? 네, 80만 명을 데리고 참전합니다. 두
배의 수가 참전한 거예요. 이미 수도 매우 불리한 상황이죠. 그런데 심지어 북 이스라엘은 군인들의 수도 많은데 성경에 보니까 그들은 큰 용사였다라고 기록해요. 큰 용사다라는 표현은 마치 정애부대 같은 사람들 그런 군대가 왔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라면이 전쟁에서 남유다가 승리할 수 있겠다라는 것이 예상이 되시나요? 지금이 상황만으로도 진짜 이길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어요. 북 이스라엘이 남유다를 앞뒤로
포위하는 전략을 펼친 것입니다. 남유다의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는 그런 진퇴 악란에 빠지게 된 거죠. 여러분, 그렇다면 수도 훨씬 밀리고 군사적 능력으로도 밀리고 전술로도 이미 포위되었고이 상황에서 본다면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남유다가 이길 수 있다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제가 그 상황에 그 남유다 군대 안에 있었던 그 군인이라면 이미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기를 잃뤘을 것 같아요. 이거는 우리가 보나 많나 질게
뻔해라고 생각하면서 어 아마 낙심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남유다를 이끌고 나갔던 수장 즉 아비아 왕은 전혀 쫄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쫄지 않았던 이유가 나는 질더라도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야겠어. 이런 마음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었어요. 이미 그의 태도는 어떤 태도냐면 이미이긴 것처럼 나아갑니다. 아니 우리가 이길게 뻔한데 왜 쫄아야 되지? 안 봐도 우리가이기는 싸움 아니야라는 그 어떤 당당함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아비아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뭔가 숨겨 놓은 비책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뛰어난 어떤 무기가 있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비아가 에브라임 산간 지역에 있는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소리쳤다.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은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소금으로 파괴될 수 없는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을 다윗이 다스릴 나라로 영원히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들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너희는 수도 많고 또 여로보암이 너희의 신이라고 만들어 준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해서 지금 다윗의 자손이 맡아 다스리는 주님의 나라를 감히 대적하고 있다. 계속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만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다 아론의 자손이다. 레위 사람들도 자기들의 직물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주님께 번제를 드리고 향을 피워 드리고 깨끗한 상에 빵을 차려놓고
금잔대에는 저녁마다 불을 밝힌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께서 정하여 주신 법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 법도를 저버렸다. 방금 읽은 이 말씀은 아비아가 북 이스라엘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북 이스라엘 향해 선포했던 이야기입니다. 어 길어서 전부 다 읽지는 못했는데요. 지금 아비아는 북 이스라엘과 자신들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왜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인지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아비아가 외쳤던 첫 번째는 소금 언약이었습니다.이 어이 소금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었는데요. 여러분 지금도 그렇지만 어 고대 세계에서도 소금은 어떤 것에 부패를 막고 또 변질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어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언약이나 조약을 보존하고 지킬 때이 소금을 상징적으로 사용해서 어떤 언약을 맺곤했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 이곳의 주변의 그 문명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과 인간상에서 어떤 언약을 맺을 때 소금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금 언약이야라고 하는 것은
이 언약이 불변하며 영원할 거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죠. 그래서 민수기에서도 보면요. 하나님께서 언약의 영원성을 표현하실 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비아가이 언약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비아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너희도 다윗 언약 알지? 그렇게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그 언약 알지? 그거 우리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그 영원한 언약이 있지만 너희는 언약을 배신했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아비아가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버렸어. 금송아지를 숭비하면서 예배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어. 너희는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를 따라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법도대로 예배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그가 하고 싶었던 이렇게까지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그 자신감의 어 정말
결론적인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있는데요. 우리 말씀을이어서 한 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똑똑히 부활하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가 우리의 우두머리이시다. 그의 제사장들은 너희를 공격할 때에 불려고 비상 나팔을 들고서 있다. 이스라엘 자손 너희 주유 조상의 하나님과 싸울 생각은 하지 말아라.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비행 지금 무고 있는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어 대목이죠. 여러분, 북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많은 군대 그리고 그들의 어떤 군사적 능력과 뛰어난 전술를 의지하고 믿으며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이 여로부암의 모습이 더 전쟁에 어울리지 않나요? 뛰어난 군대를 조직하고 뛰어난 전술를 세워서 어떻게면 저 나라를 쓰러뜨릴까 고민하는 것이 전쟁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죠. 반대로 오히려 아비아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본다면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전쟁에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죠? 지금 거의 설교 수준이잖아요. 우리에게 있는 언약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전쟁과 어울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보면서 아까와 다르게 아비아처럼 무언가 한 가지를 예측하게 됩니다. 어떤 것을 예측하게 되죠? 왠지 남유다가 이길 거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조금 전까지는 아 이걸 어떻게 이겨라고 했던 마음이 어쩌면 혹시라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왜냐면 아비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죠. 아비아가 말해요. 너희는 지금 주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거야. 여러분 아비아가 봤을 때이 싸움은 누구와 누구의 싸움인 거예요? 네.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싸움이 아니라 지금 북 이스라엘과 주님의 나라가 싸운다는 거예요. 북 이스라엘을 봤을 때는 지금 남유다의 군인과 북 이스라엘 군인이 서로 대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아는 지금 말하고 있는 거죠. 아니야. 너희는 지금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거야. 여러분
어떻게 신이 아 어떻게 인간이 감히 신을 이길 수 있겠어요? 아비아의 전술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배장게 나갔던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설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아비아의 믿음처럼 하나님 때문에 그들이 전쟁에서 이기게 되죠.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유다군이 함성을 지르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아와 유다군 앞에서 치시니 이스라엘군이
유다군 앞에서 도망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군을 유다군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아비아와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을 크게 무찔렀다. 상황적으로 본다면 아비에와 남유다는 매우 불리한 너무 밀리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었죠. 여러분 아까 북 이스라엘의 군인이 몇 명 참전했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네만 명. 그런데 이 전쟁에서 그들이 무려 50만 명이 죽습니다.이 전쟁에서 무려 50만 명이 전사하게 돼요, 여러분.
그런데 성경에서 계속 말씀하는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보기에는 남유다가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나가서 싸우시면서 그들에게 가져다 주신 승리였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오늘 어 지금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에 적용해 본다면 여러분 과연 그렇다 우리 삶에서 우리에게 진짜 유리한 것은 무엇일까요? 반대로 우리에게 진짜 불리한 것은 또 무엇일까요? 어, 제가 느끼기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것,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굉장히 불리하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어, 여기서 있는 저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어, 10대 때는 어, 친구들 다 주말에 학원 가서 막 특강 들으면서 시험 대비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막 9시부터 나와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게 이게 맞는 건가? 좀 불리한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20대가 되어서는 내가 열심히 알바에서 번 본 헌금해야 한다고 하는 그 가르침 엄마가 그래도 11조는 해야지라고 하는 그 말씀이 되게 부당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얻은 건데 이걸 내가 왜 다 가지지 못하지라는 생각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친구들은 다 뭐 해외 여행 간다. 어디 간다 휴가 간다 막 바빠요. 그런데 저는 수련에 가야지 부흥에 가야지 선생님 손에 끌려가고 엄마 아빠 손에 끌려가는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여행 약속 하나 잡을 수 없는 저의 삶이 되게 좀 억울하기도하고나 좀 불쌍하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 물론 그때는 제가 주님을 진짜 만나기 전 진짜 믿기 전이니까 더
그렇게 어 느꼈죠. 어, 다이도 회심 의외에는 이런 마음들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은 문득문득 어떤 순간 앞에서 이런 고민이 또다시 들 때가 있어요. 진짜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진짜 이렇게 순종해도 괜찮은 거 맞을까?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까? 어 주님의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전도사까지 하고 있지만 때때로는 뒤쳐질 것 같은 어떤 불안감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그 두려움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저도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 쟤네들은 벌써 저만큼 간 거 같은데 나 지금 여기 있는게 맞나? 막 얼만큼 막 모았다 그러고 뭐 집 한다 그러고 이러면 저도 막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 주님을 따르는 길이 때로는 어 불리하게 느껴지고 이거 좀 부당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될 때가 있기도 하죠. 어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가요? 여러분 항상 편안하시고 항상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때때로는 불안하고 두렵고 불리하게
느껴질 때가 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지금이 장면에서 아주 용감하게 보이는 이 아비 아비아의 마음 속에서도 어쩌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아 지금 우리가 너무 밀리는데 내가 이렇게 큰 소리 쳤는데 짐이 어떡하지 이런 마음들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야. 우리는 주님 믿고 가자. 우리에게 주신 언약 믿고 가자라고 나아갔을 때 그가 알게 된 것이 있죠. 그 무엇보다 주님을 의지한 것이 가장 유리한 전술이었음을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배워야 할게 있어요. 눈에 보기에 좋아 보이고 빨라 보이고 편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려워 보이고 한참 뒤쳐지는 것처럼 보이고 불편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꼭 불리한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어쩌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의지하는 삶이 우리가 기대했던 또는 세상이 기대하는 그런 유리함은 아닐 수 있어요. 더 좋은 성적을 받고 더 부유한 삶을 살고 더 높은 성공을 이루는
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주어질 때도 있죠. 그러나 늘 그렇진 않을 수 있어요. 나 주님 열심히 따르는데 나 예배 열심히 드리는데 나 주일에 학원 안 가고 나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데 그러네 여전히 성적은 저조예요. 나 주님 앞에 정말 열심히 봉사하는데 정말 말씀대로 살아보려 몸부림 치는데 내 안에 있는 가난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목표한 것들을 원하는만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삶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유리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선두에서 앞장서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가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유리함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아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유리한 거야라고 느껴질 수도 있죠. 그런데 어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제가 주님을 따르면서 깨닫게 되어 가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갈 때 제 성적이 막 뛰어나게 높아지거나 제가 뭐 갈 수 없는 대화를 가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성적과 성과 중심에 과열되어 있는 그 경쟁 사회 저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제 가난이 막 드라마틱하게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친구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어요. 진짜 뭐가 없는데 쟤는 왜 저렇게 항상 즐거워 볼까? 실제로 제 대학 동기들이 정말 많이 하는 이야기예요. 때로 어 저는 제가 계획한 것보다 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것 같았는데 주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지금은 당장 좀 고대도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나에게 더 선하고 유익하고 안전한 길이었다는 것을 저는 아주 자주 깨달으며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눈에 보여서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갈 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단 머리로 이해되지 않지만 주님 말씀하셨으니까 그냥 순종할 때 내가 경험해서 맛보아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펴봤던
두 왕의 인물이 있었죠. 르호부암과 아비아라고 하는 인물이었어요.이 두 사람이 열왕기서에선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아시나요?이 이 두 사람 모두 악하다라고 평가 당했어요. 악한 왕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 이야기 안에서는 물론 잘못된 부분들 그들이 잘못을 저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선한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또 아주 최선을 다해 앞장서서 그들을 도와주셨어요. 여러분 지난
시간에 봤던이 말씀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내 이름으로 읽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기 저자는 이 주님의 약속처럼 범죄하고 악한 길로 갔을지라도 다시 돌아와 회개하고 주님을 찾는 이들을 주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어 귀한 공동체는 추가로 기록된 이 보충되어 있는 이 이야기들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 오직 주님만을 예배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론 좀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아, 대체 왜 이런 왕들은 이런 좋은 모습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악하다라고 평가되었을까? 어, 저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도 역대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말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로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하지 아니함이었더라. 어
여러분 르호부암과 아비아가 100% 악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그들도 삶의 어떤 순간에서는 주님을 찾는 선한 마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악하다라고 평가되었던 것은 안타깝지만 결국 그들은 그 선한 마음 주님을 찾고 구하는 그 마음을 굳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온전한 마음,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눴던 그 다라쉬의 마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이 오늘이 말씀 앞에서 있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변하지 않는 꾸준하고 온전한 그런 신실한 마음과 태도일 것입니다. 귀한 공동체는 이 말씀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발견했을 것 같습니다. 유리하고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남유다로 이주했던 그 르호부암 시대의 레위 지파와 신실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현실은 불리하고 어 왠지 부족한 것 투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언약과 주님만을 의지했던 아비아 시대의 그 남유다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그 모습 속에서 비록 포로였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바벨론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익숙해서 그 익숙해진 그 삶에서 하나님의 언약 의지에 떠나왔던 그 자신들의 삶이 겹쳐 보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돌아왔더니 삶이 막 드라마틱하게 막 개선되었나요? 녹록치 않았어요. 여전히 힘겨웠어요. 해야 할 것들 투성이었어요. 그러나 자신들의 생계와 안이보다 예배를 먼저 회복하고 성전을 세워가고 있는 자신들의 애음이 결단고 헛되지 않다라는 것을 그들은 이 생략된 사건들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도 받고 도전도 받았겠죠. 아 성경에 보니까 역대기의 그 이야기들에 보니까 주님 의지했더니 손해 볼 거 없었네. 예배 추구하며 살았더니 그들 주님께서 지키셨네. 그러니까 이렇게 선택하고 사는 사람 우리도 괜찮겠네라는 그 마음이 그들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위로하고 잘하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 끝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주님을 선택하고 돌아왔다면 어쩌면 바벨론에서 그들에게 어 나름 살아오면서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들 그들에게
익숙하고 편하게 작용했던 것들 그것들 다 버리고 예배하기 위해서 너희가 왔다면 그런 공동체가 되기로 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을 굳게 하여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이라면 언약 백성 답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주님의 언약을 가진 언약 백성들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며 살아가죠.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언약 또한 소금처럼 변하지 않는 그런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언약을
가진 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도 소금처럼 변하지 않는 그런 삶의 모습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고난과 시형 앞에서 변질되어 버리고 시각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어떤 삶의 일부분에서는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그런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 없이 변질되지 않는 꾸준한 그런 소금과 같은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끝까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는 모습입니다. 어,
사랑하는 상임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깊어지게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주님을 만난 그 순간만 뜨거운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깝고 더 뜨거워지기를 애쓰십시오. 세상의 유혹과 고난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여러분의 그 신실함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소금의 언약을 가진 사람들 답게 소금처럼 우리가 살아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