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남유다 왕조 song'을 한 번 더 부르며 시작해 보겠습니다. 르-아-아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여-아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요-아-웃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아-히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아-요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여-여-시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지난 시간, 우리는 역대기의 특징인 '역사 재해석'에 따라 왕들을 바라보는 4가지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①
신앙 : 하나님과의 관계(개인의 신앙), 공동체의 신앙을 위한 노력, 우상숭배에 대한 종교개혁 등. ② 회개 : 실수의 상황에서 맞이한 회개의 기회에서 회개했는가? 회개가 끝까지 없으면 평가가 좋지 않음. ③ 신실함 : 좋은 신앙의 모습이 끝까지 유지되었는가? 변질된 부분은 없는가? 회개했다면 그 후 삶은 어떠했나? ④ 백성들의 평가 : 죽은 후 백성들이 그 왕을 어디에 묻혔느냐? 또한 죽었을 때 백성들이 어떤 애도의 태도를 보였느냐? 이 네 가지 기준이면,
성경이 이 왕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구약의 파노라마를 열심히 하셨던 분들은 거기서 선한 왕을 몇 명이라고 했는지 기억하시죠? 8명입니다. 실제로 많은 성경 공부 교재나 설교자들이 8명의 선한 왕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저도 구약의 파노라마를 가르칠 때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분류는 기준을 한 가지로만 평가한 것입니다. 칭찬받았던 흔적이 있는 왕이 8명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왕들이 종합적으로
좋은 왕이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아사,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등에게 B나 C까지 주기도 했는데, 그들 모두를 선한 왕이라고 묶는 것입니다. 칭찬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명확한 빛과 그림자가 모두 있거나, 혹은 요아스처럼 처음에는 너무 좋은 모습이었다가 나중에 완전히 변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준에 따라 조금 더 넓게 유형을 분류해 본 것입니다. 6개 유형이었죠. 하나님의 자랑 (신앙·회개·신실함·백성평가
- 모든 영역에서 탁월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왕) 안정된 선한 왕 (전반적으로 선하고 신실했으며 약점은 있었으나, 전체 흐름을 무너뜨리지 않은 왕) 빛과 그림자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며 좋은 신앙의 모습 혹은 회개가 있었으나, 동시에 중대한 흠도 남긴 왕) 형식적 종교인 (하나님을 믿는 형식은 갖추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섬긴 적 없는 표면적 신앙에 머무른 왕) 완고한 불순종 (대다수 영역에서 악을 행하며 말씀을 따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았던 왕) 하나님의
대적 (하나님의 언약 자체를 끊거나, 신앙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했던 최악의 왕) 물론 더 세분화할 수도 있지만, 6개의 유형이 복잡한 왕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 다룬 8명의 왕 가운데 ‘S급 / 다윗급 / 하나님의 자랑’에 해당하는 왕은 없었습니다. ‘요담’ 정도가 ‘안정된 선한 왕’에 해당했습니다. 오히려 제사장 여호야다가 유일하게 그 시대에 빛났던 ‘하나님의 자랑’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지난주 마지막 왕은 12대 아하스였는데,
그는 아버지 요담과 딴판으로 '완고한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철저한 바알 숭배에 빠졌고,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 대신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통합니다. 지난 두 번의 설교에 모두 이런 장면이 나왔어요. 저도 조금 어렸을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믿으면 잘 되고, 하나님 떠나면 망한다.” 그런데 웬 걸요? 그렇게 안 보이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아주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만나고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우선시해서 툭하면 하나님을 뒤로 밀어내는 사람이 원했던 일들을 성취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럴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은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더 길게 제가 삶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잘 된 게 잘 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더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떠나서 조금 잘 되었던 사람은 그 경험이 그 사람의 신앙을 망치고 더 나아가 인생을 통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면서도 끝없이 어려움을 통과하던 그 사람은, 그 연단 속에서 더 정금과 같이 빛나는 사람으로 우뚝 서는 것도 보게 됩니다. 저도 아직 인생에 대해서 다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성경이 말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고, 잠깐은 그 믿음에 배신이 오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옳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라고 인정하며 따라가는 중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아멘. 이제
다시 8명의 왕에 대한 성경의 렌즈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3대왕. 히스기야 (S. 하나님의 자랑) 유다의 13대 왕은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는 지난주에 살짝 스포일러를 했죠. S급, ‘하나님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가 조금 엇갈립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의 잘못과 실수 또한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대하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우선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조상 다윗을 본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통치 말년에 아예 성전을 닫아버립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하지 않는 경우는 아달랴 통치 외에는 전례가 없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성전 문을 열고,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동원하여 성전 안의 모든 더러운 것을 제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힘썼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속죄제를 드리며 ‘온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합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통치 6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으므로, 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함께 예배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히스기야가 이전 왕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은 ‘유월절 예배’였습니다. 그는 그 땅에 남겨진 북왕국 백성들까지 초청하여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때 이 예배가 너무 기쁨이 커서 유월절 후 7일간의 절기를 다시 7일 연장하여 지켰고, 백성들이 자원함으로 드린 헌물이 성전에 쌓일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히스기야에게도 위기가 옵니다. 제가 앞서 신앙이 좋아도 위기는 만난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하나님이 날 싫어하시나 봐” 그런 것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일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 신앙의 민낯입니다. 위기 앞에서 반응이 내 내면 깊은 곳을 지배하고 있는 믿음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통치의 최대 위기는 앗수르의 침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앗수르를 섬겼지요. 열심히.
그런데 히스기야가 끊었단 말이죠. 그러니 앗수르가 히스기야를 괴롭힙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의 결단을 한 것인데, 찾아오는 것은 그런 히스기야를 향한 세상의 공격입니다. 히스기야도 이 공격 앞에 흔들리며 인간적인 면모도 보였습니다. 앗수르에게서 항복을 종용합니다. 이 세상에 앗수르를 막을 수 있는 신은 없다며, 백성들에게 히스기야를 믿지 말라고 조롱합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며, 옷을 찢고 베옷을 입은 채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앗수르에게서 받은 항복 권고 서신을 펴놓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앗수르 진영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 18만 5천 명이 유다 땅에서 죽습니다. 고대 역사가의 기록에는 ‘쥐로 인한 전염병’이라고 기록되기도 했습니다만 신비이죠. 또한 하나님을 조롱하고 히스기야를 괴롭히던 앗수르 왕은 후퇴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자기 아들들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그 후 히스기야는 개인적 어려움도 당합니다. 히스기야가
병으로 죽는 상황입니다. 히스기야는 적어도 ‘기도’에 있어서는 S급입니다. 그는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죽음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아직 후사가 없으므로 왕가의 지속과 국가의 위기가 걱정되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조금 더 하나님을 경험하며 신실함을 증거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와 관련된 두가지 에피소드. 이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며 생각해봅시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은 어떻습니까? 직장에서의 부당한 요구, 예측하기 힘든 경제 상황, 깨어진 관계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가장 먼저 누구를 찾고 있나요? 혹시 문제의 크기에 너무 압도되어 하나님께 기도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진 않습니까? 답이 없을 때, 사면초가와 같을 때, 그때가 우리 믿음의 진짜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때 예배를 택하고 기도를 택하고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더 선택하는 것이 히스기야와 같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의 실수도 보여줍니다. 당대 초강대국인 앗수르가 고작 유다를 정벌 못하고 크게 패하여 돌아갔다는 소식은 ‘빅 뉴스’였고, 그로 인해 히스기야가 명성을 얻습니다. 당시 서서히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바벨론에서 히스기야를 만나러 왔습니다. 히스기야는 마치 자신이 경험한 승리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자기의 것들을 자랑합니다. 그가 자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죠? 하나님이어야 하죠. 이 일로 인해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모든 것들을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집니다.
히스기야는 이 심판의 예언 앞에서 회개합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은 하나님만 의존하며 살아가겠다고 응답합니다. (대하 32: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완벽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무너질 줄 아는 자를 찾으십니다. 바로 여기서 히스기야는 다시 ‘다윗의 길’로 돌아온 것입니다. 한 줄 평가 : *기도로 역사를 움직인
왕. 14대왕. 므낫세 (B. 빛과 그림자) 히스기야가 얻은 15년의 생명 연장 기간에 태어난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고작 12살에 왕이 됩니다. 므낫세는 20명의 왕 가운데 평가가 가장 어렵고 엇갈립니다. 우선 열왕기와 역대기의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그의 초반부 모습은 완전한 ‘F’입니다. 남유다 최악의 왕입니다. 아버지 히스기야를 안 닮고 할아버지 아하스의 악행을 닮았는데, 더 심합니다. 성전 안에 우상을 세우고, 심지어 어린 자녀를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나라를 완전히 망쳐버렸던 왕입니다. (대하 33: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열왕기서는 이 므낫세의 악행 부분만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열왕기서는 ‘왜 망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역대기는 다시 돌아와 살아가는 귀환 공동체를 위해 쓰인 역사서입니다. “너희 과거가 아무리 무너졌더라도
회개하면 회복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역대기의 중요 주제입니다. 그래서 므낫세의 후반부에 주목합니다. 므낫세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앗수르의 침공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자기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을 붙든 것입니다. 메시지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음이 움직이셔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가 회개도 중요하지만, 회개 이후의
그 변화된 삶의 지속성, 진실성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돌아온 그는 우상을 부수고 성벽을 다시 세우는 개혁자가 됩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처음은 최악, 끝은 최고의 반전”이라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회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표본”으로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B. 빛과 그림자’인데, 그림자에서 빛으로 바뀐 반전의 인물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도 “나는 너무 멀리 와 버렸어.”,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다시 쓰실 리 없어.”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므낫세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그의 회개가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우상을 제거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을 기억하시고, 이제 더 물러서지 말고, 유턴을 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한 줄 평가 : *눈물의 회개로 반전을 만든 왕. 15대왕. 아몬 (D. 완고한 불순종) 참 이 집안은 요상합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또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후반부 모습은 하나도 안 닮고, 초반부 모습만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몬의 기록은 짧은 편인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 33: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아몬은 회개할 기회에서도 회개하지 못하였고, 결국 그는 2년이라는 짧은 통치 동안 악을 행하다가,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그는 ‘완고한 불순종’으로 기록됩니다. 한 줄 평가 : *기회를 거부한 완고한 자. 결국
“신앙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애석하게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에 있어서 유리함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신앙으로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애매한 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은 유산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해봐야 합니다. 악한 아버지 밑에서 히스기야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도 있지만, 성경에 다 기록되지 않은 신실한
신앙의 도우미들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므낫세의 회심이 이미 장성한 아몬에게는 영향을 못 주었지만, 손자인 요시야의 신앙 형성에는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선택은 가능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의 신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적인 환경을 우리가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16대왕. 요시야 (S. 하나님의 자랑)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악한 왕에게서 또다시 위대한 왕이 탄생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8살에 왕 위에 오르게 됩니다. 너무 어렸죠. 초반 8년은 그래서 별다른 내용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통치 8년. 그의 나이 16세. 성경은 요시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라고 기록합니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입니까? 요시야도 모태신앙이었습니다. 16세까지는 그냥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16세 때 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신앙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회심한 것이죠. 그리고 4년 뒤인 20세가 되자, 그는 강력한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그가 왕이 된 후 1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먼저 잘 세웠고, 이제 그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신앙을 세워가는 그런 순차적인 변화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시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대하 34:2)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다. (왕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이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런 것을 뭐라고 표현하냐면 ‘전무후무’라고 평가합니다. 요시야는 분열왕국 최고의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연히 그의 평가는 ‘S급-하나님의 자랑’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것을 다 없앴습니다.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정화’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온 나라
곳곳을 다니며 이 종교개혁을 주도합니다. 이스라엘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자, 그는 비로소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다윗이 어떤 왕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뭐든지 해드리고 싶었던 왕입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자신보다도 하나님이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더 큰 마음으로 자신을 위하시는 분임을 믿고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요시야가 그랬습니다. 특별히 요시야의 이야기 가운데 주목할 것은 ‘성경’을 발견한 사건입니다. 요시야 통치 18년,
성전을 리모델링할 때였습니다. 공사를 하다가 그 안에서 모세의 율법책 사본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신하들이 왕에게 가져와서 읽어줍니다. 우리로 따지면 성경 말씀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왕이 그 내용을 듣자, 크게 놀라며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측근을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소.” 그는 말씀으로 자신을 진단하고, 말씀으로 공동체를 진단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에서 지도자들을 소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그 앞에서 발견된 언약책의 내용을 낭독합니다. 왕이 먼저 하나님 앞에 언약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합니다. 이어서 모든 백성의 대표들이 하나님께 언약합니다. 요시야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신은 물론이고,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함께 설 수 있도록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대하 34: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저는 역대기를 보면서 ‘영향력’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세상의 피라미드 체제를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끄는 자가 없이 모두 동일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지요. 이끄는 자가 군림하지 않고 더 섬기고
먼저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권한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할 때 우리 안에는 은연중에 책임으로부터도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역대기는 이끄는 자의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보게 합니다. 이것은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각 사역 안에서도 이끄는 자로 세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자리가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자리라면 그 자리에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교사로서 맡겨진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고, 예배인도자로서 팀원과 회중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팸리더로서 팸원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제사장’으로 불렀다고 말합니다. 각 가정에서 여러분이 가정이라는 그 영적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 직장과 모든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믿는다면, 그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노력해도 안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애써도 돌아오지 않는 응답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아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이 나의 자리에서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외치는 영향력은 어떤 성과와 어떤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기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윗과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죄로부터 멀어지며, 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더 주님이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힘쓰고 있는가?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제가 목사로서 가장 부러운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의 통치 31년, 전쟁 상황에서 판단 실수로 비교적 빨리 죽게 되지만, 그것이 그의 평가를 무너뜨리진 않습니다. 한 줄 평가 : *말씀 앞에 선 마지막 불꽃. 요시야가 남유다의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4명의 왕은 모두 같은 평가를 받습니다. “D. 완고한 불순종.” 그리고 이것이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17대왕. 여호아하스 (D. 완고한 불순종) 요시야의 둘째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그는 겨우 3개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그는 요시야와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백성이 직접 선택한 왕입니다. 요시야가 전쟁에서 갑작스럽게 죽거든요. 백성들이 그를 선택했지만, 그는 민심과 하나님의 기대 모두를 저버렸습니다. 그는 결국 애굽에 의해서 폐위됩니다. 짧게 살고 짧게 평가받은 왕. “짧아도 방향은 중요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한 줄 평가 : *백성들의 선택을
오답으로 만든 왕. 18대왕. 여호야김 (D. 완고한 불순종)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킨 애굽은 그의 형, 요시야의 첫째 아들인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는 11년을 다스리긴 했으나, 그 또한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않은 완고한 불순종을 보입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에 던져버린 왕입니다. 그는 선지자를 핍박하고, 회개는 전혀 없었습니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폭정을 저질렀으며, 하나님보다는 권력에만
충성한 자라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줄타기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줄 평가 : *말씀을 불태우다 자신이 심판의 불에 던져진 왕. 19대왕. 여호야긴 (D. 완고한 불순종)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은 겨우 18세에 왕이 되었고, 18세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의 통치는 100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를 ‘악한 왕’으로 기록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가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바벨론의 공격 앞에서 바로 항복합니다. 그렇게 그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버립니다. 이때 유다의 지도자층 1만 명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는데, 우리는 이 사건을 1차 포로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여호야긴을 37년 후 바벨론에서 왕족의 지위로 회복시킵니다. 이는 그가 회개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징계하셨으나, 유다와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일하셔서, 유다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상징적 행동으로 여호야긴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한 줄 평가 : *하나님께 불순종, 세상에 항복. 20대왕. 시드기야 (D. 완고한 불순종) 이제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시드기야 또한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요시야 이후 4명의 왕 중 3명이 그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보겠습니다. (대하 36:12)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하 36:13) 느부갓네살은 강제로,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였다. 시드기야는 억지로 충성을 맹세하였지만, 마침내 느부갓네살 왕에게 반항하기까지 하였다. 다른 한 편으로, 시드기야는 고집을 부리며,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예레미야의 경고 앞에서 듣는 척만 했던 왕입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선지자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실제로는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그의 통치를 마지막으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결국 자기 눈으로 예루살렘 멸망을 보고, 두 눈을 뽑힌 채 끌려갔습니다. 한 줄 평가 : *말씀을 들었으나 듣지 않은 왕, 눈을 떴지만 보지 못한 왕. 결국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의 회개를 촉구했으나, 왕도 백성도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심판의 경고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그런데 역대기는 반전의 두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대하 36:22)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대하 36:23)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 바벨론의 시대를 지나 페르시아 시대에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을 성경은 기록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신실한 것인지, 그리고 이 기회 앞에 다시 선 유다 백성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역대기를 마무리하는 설교, 이 마지막 설교의 결론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역대기의 마지막 두 절은 역설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당신의 뜻을 따르고 선포하는 왕이 없으니, 이방 왕인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유다 백성들. 다시 얻은 기회 앞에서 그들은 이 역대기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했을까요? 오늘 설교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핵심은, “요시야의 타협 없는 신앙”, “히스기야의 생명을 건 기도”, “므낫세의 간절한 회개”, “그리고 함께 예배에 힘쓸 때 가장 힘이 있었던 유다의 모습”입니다. 역대기 속 왕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요시야와 같이 섰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요시야가 보였던 반응, 회개, 언약을 세우며 결단하는 다짐들. 오늘 무엇을 깨달으셨던지,
각자 붙잡은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주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