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금요기도회 설교

2025-10-17 · 야고보서 5장 13~16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 지난 야고보서 시리즈를 잠시 되짚어 보면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 첫 번째는 고난과 시련을이기는 믿음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어,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약하게 하고 또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었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이 약할 때 강함이 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했으며 또 불안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의 샬롬을 누리게 한다고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어 그래서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의 순간에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권면하고 했었죠. 두 번째는 믿음과 행 어 행함의 관계였습니다. 어 믿음과 행함은 마치 어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랑 비슷하다고 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여러분 혹시 손바닥이 없네 손등이 있을 수 있을까요? 손등이 없이 손바닥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네 당연히 그럴 순 없습니다. 모든 손에는 손바닥과 손등이 존재하고 이것이 온전하게 있을 때 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죠. 마치 이처럼 믿음이 없는 순종은 있을 수 없고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둘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그 신앙은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할 것을 어 못할 것이라고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 그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올바르다 내가 정말 주님을 잘 믿고 있다라는 것을 보이고 싶다면 그 믿음에 합당한 순종이 과연 따라오고 있는가? 내 삶의 그런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고 했었죠.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이 있는 믿음이어야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종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신앙이란 우리 안에서 끝없이 차오르는이 순종을 방해하고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자꾸만 어 가로막는 나의 자기 중심성과 끝없이 싸우는 여정이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이기는 방법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었죠. 마지막 세 번째는 어 언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 삶으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고 우리의 믿음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가 바로 말의 행동이었기 때문이죠. 내가 어떤 것을 말하느냐가 곧 나의 위치와 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했었습니다. 나의 언어 안에 어떤 가치관이 담겨 있는지 내가 어떤 것을 자주 말하는지 나의 말이 평화를 지키는지 깨뜨리는지 나의 말이 상대를 용서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를 우리가 분별할 수 있었다고 어 말씀을 통해 보았습니다. 어

지난 시리즈 설교에서는 크게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어 야고보서 안에는이 외에도 많은 지혜와 권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여러분이 꼭 야고보서를 시간을 내서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어, 비록 다섯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지만이 안에 우리에게 너무 필요하고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여정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들, 우리를 지켜주는 말씀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어,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야고보서 자체가 이미 성도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전하는 신앙의 권면 권면들을 적은 야고보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어 야고보는 이 편지를 마치는 그 마지막 문장까지도 성도들을 향한 권면으로 어 마무리하고 있어요. 대부분 다른 서신서들은 인산말로 끝을 맺지만 야고보서는 조금 다르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마도 야고보는 그만큼 그 성도들이 또이 교회 공동체가 신앙적으로 바르게 성장하기를 그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 야고보는 계속해서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왔는데요. 마지막 그 결론부에서도 바로 이 믿음의 기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가운데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문답식의 방법으로 세 가지 상황을 설명하면서 각각 그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어요. 첫 번째는 고난을 받는 상황이죠. 이때 사용된 고난은 앞선

5장 10절에도 사용되었던 단어인데요. 어 보편적인 어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단어와 달리 흔하게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 중 하나입니다. 주로 예언자들 즉 선지자들이 받았던 어떤 고난에 대한 거 설명할 때이 단어를 쓰곤 했었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 그들에게 따라왔던 그 고난을 의미할 때 어 야고보서가 썼던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 사람들은 아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왜 고난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야고보는

앞선이 야고보서를 통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따라오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 중에 하나일 수 있다고 계속 설명했었어요.이 이것을 오늘 우리가 이해하기 좀 더 편한 어 방식으로 표현을 해 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역행하며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한 삶을 우리가 직접 살아갈 때는 세상을 역행하기 때문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그런 고난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선지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했던 모습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어요. 또 야고보가 썼던이 같은 단어를 바울도 종종 사용했었는데요.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상황을 설명할 때이 단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바울 자신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해라고 권면할 때도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었죠. 그러니까 지금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이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인

고난과 더불어 함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때로는 겪게 되는 그런 고난까지 포함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여러분 복음은 우리에게 어떤 소리죠? 복된 소리죠. 우리에게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이 늘 우리에게 달콤한 것만을 말해 주진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 입에 쓰디쓴 약초 같은 이야기,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그런 불편한 진실도 우리에게 말해 줄 때가 있어요. 복음에는 분명히 평안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말씀들도 존재하죠.이 이 복음 주님의 말씀 안에는 조건 없이 부어지는 사랑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음을 믿기 때문에 내가 받게 되는 세상으로부터 받는 미움도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광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고난을 함께 말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의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아요. 어 그런데 여러분 성경의 이런 불편한 진실 뒤에 항상 따라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바로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 박해받을

때 기뻐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고 또 야고보도 기뻐하라라고 말하고 있죠.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는 살기 때문에 박퀴를 당하고 시험과 고난을 당하는데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요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자주 마음이 충돌하곤 하죠. 어, 제 경험상 삶의 고난이 없고 평온할 때는 이 말씀이 그렇게까지 충돌하지 않아요. 아, 그냥 그렇지.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해야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진짜 고난을 만난 그

순간에 내가 너무 힘들고 버거운 나나를 보내고 있을 때는 이 말씀이 마음 안에서 강하게 충돌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 솔직히 고난 만나면 우리 하나도 기쁘지 않거든요. 그래서 너무 힘든 나의 마음과 기뻐해야 돼라는 말씀이 서로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이것을 몰랐을까요? 알았을까요? 네, 알았겠죠.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어요.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어, 저는 이 말씀을 어, 묵상하고 또 준비하면서 이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고난 속에도 우린 다른 길을 걷네라는 찬양입니다. 어, 야고보서를 묵상하면서이 찬양을 다시 보니까 어, 제가 느끼기에이 찬양의 가사와 야고보의 권면이 어, 같은 것을 같은 맥락을 말하고 있다라고 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 여러분 앞에서도 잠깐 어, 말했지만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다 보면 때로는 고난이 따를 때가 있죠. 물론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고난이 꼭 믿음 때문에 아닐 수 있고 또 반대로 말한다면 모든 평안이 내가 예수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약하기 때문도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지혜와 우리의 아주 한정된 그 경험 속에서 우리의 겪는 고난이 대체 왜 왔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알게 될 뿐이에요.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고난의 원인도 또 그 끝도 잘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고난의

시간을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다르게 지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성경에 말하는 기뻐하는 것이죠. 대체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우리 안에 있지만 저는 어이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보면서 어 이런 것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기뻐하라는 것은 제가어요 야고보의 첫 번째 시리즈에서도 말씀드렸었지만 그 고난을 하호 이렇게 웃어 넘기는 건 아닐 수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힘들고 무너진 마음을 다 아실 텐데 야, 힘들어도

웃어야지. 이겨내야지. 힘 내야지 이렇게 막 밀어 붙이시는 분은 아니시니까요. 어쩌면 기뻐하라는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 참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가까이 너를 미워하는 걸 보니 너 내 제자가 맞구나. 참 다행이다.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 나도 참 마음이 아파. 그런데 내가 그런 너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너를 도울 수 있는 아버지라고 너에게 불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기뻐할 수 있다. 어,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 렌즈로 우리의 고난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그 힘듦을 다시 해석해 볼 수 있다면 우리도 고난 속에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돕는 것, 우리 두 눈에 하나님의 렌즈를 끼우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마치 이 찬양의 가사처럼 말이죠. 고난 속에도 요동하지 않고 의연하게 견딜 힘이 기도할 때 생깁니다. 결단코 끊어지지 않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나의 시야가 기도할 때 틀 수 있어요.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께서 고난의 그 과정을 인도해 가신 그 주님도

볼 수 있지만 그 고난을 대하는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시선이 바뀌어 가는 것 또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두 번째 상황은 즐거운 상황이었죠.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라고 야고보가 말합니다. 즐거운 일이 생길 때 찬송하고 감사라는 거예요. 어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야고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찬송이란 단어는 프살로라고 하는 단어인데요.이 단어에서 시편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시편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죠?

찬송도 있고 기도도 있습니다. 찬송과 기도가 담긴 시편이 파생되어 나온 이 프살로라는 단어의 의미도 그와 같아요. 프살로는 단순히 내가 어떤 기쁨의 노래 찬송을 드리는 것을 것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이 찬송은 어떤 하나의 기도의 형태도 의미하고 있어요.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음이 붙은 기도라고 이해하면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말하는 이 권면을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즐거운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도 기도하십시오. 야고보는 고난을

당하에 어려울 때나 또는 즐거울 때나 그리스도인은 늘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죠. 야고보서를 잘 보면 야고보는 믿음의 행위만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가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울타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렌즈로만 우리의 삶을 어 바라보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고난 당할 때 좌절하기가 쉽죠.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교만해지거나 나의 첫 그 사랑이 쉽거나 나의 그 마음이 헤의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도하면 하나님의 렌즈를 우리 두눈에 장착할 수 있게 됩니다. 고난을 당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기도할 때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보는 사람이다라고 우리는 이야기하죠.

또 기도하는 사람은 즐거워할 만일, 내가 좀 기쁠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잘 풀릴 때에도 쉽게 교만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루었지만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어요. 내가 수고해서 벌었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그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놓치는 그런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 여러분, 야고보는 성도들이 또이 교회 공동체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만 기도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라고 권면하고 있는 거예요. 어, 사실 우리는 음, 오히려 힘든 순간에는 주님을 더 잘 어, 붙드는 거 같아요. 정말 힘든 일이 생기고 아, 이거 내 힘모 안 되겠는데 이거 내가 해결할 수 없겠는데라는 상황이 생기면 사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도 어떤 무언가를 붙들고 종교가 없던 사람들도 신의 존재를 뭔가 찾으며 기도하는 것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쁘고 평안하고 뭔가 내일이 좀 술술 잘 풀리는 거 같아라고 생각하는 그런 좋은 일들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들은 주님을 놓치기가 더 쉬운 거 같습니다. 어, 우리는 이 고난을 넘으면 내 삶이 안정되고 내 마음이 조금 더 평안해지면 주님을 더 잘 따르고 예배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 슬프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꽤 많은 거 같아요. 어, 사업의 성공으로 인한 분주함이 예배의 자리를 한 번, 두 번 어, 빠지게 하는 경우들을 전 많이 봤습니다.

내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는 삶이 오래될수록 주님의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는 자리에서 점점점 멀어지는 그런 경우들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시험을 준비할 땐 오히려 예배의 자리를 더 찾아요. 내가 취업을 앞두고 입시를 앞둘 때는 기도의 자리에 더 잘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시험에 붙고 취업을 하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에서 어 하루 이틀 보이지 않다가 정어 영령 떠났던 그 청년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의 약점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기쁘고 평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어, 우린 요즘 주일을 통해서 역대화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어, 저도 주일 설교와 함께 매일 큐티를 하면서 역대화를 이렇게 어, 깊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아에 자주 반복되는 말씀이 있더라고요. 그들이 평안해지자 하나님을 떠났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어 사실 역아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성경의 역사 속에서 자주 반복되는 이야기죠. 그 신실했던 다윗조차

가장 크게 실수했었 때가 언제였나요? 그가 가장 평안할 때였어요. 힘들 때도 주님을 더 악작같이 붙들고 예배하고 기도했던 그였는데 그의 왕권과 왕궁이 평안해지자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사도 그렇습니다. 강대국이 쳐들어오고 뭔가 기근을 만나고 고난을 만나고 힘들 때는 주님을 찾으면 부르짖어요. 막 살려 달라고 주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의 삶이 평안하고 그들의 나라가 안정되면 어떻게 되었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비하곤 했었습니다.이 모습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약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야고보가 그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즐거울 때도 삶이 평안할 때도 일이 잘 풀리고 안정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또 어쩌면 우리가 역대화 말씀을 통해서 배웠던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성공이 진짜 성공이 아닐 수도 있어요. 나는 기쁘고 즐거워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내 신앙에서는 가장 위기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기쁜 순간에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렌즈로 나를 다시 바라보고 겸손할 수 있어야 해요. 고난 속에서 다른 길을 걷는 것도 믿음이지만 그 평안함 속에서 내가 승승장고 잘될 때에도 변함 없이 주님을 찾는 것이 신실한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 마지막 세 번째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어, 세 번째 상황은 병들었을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어, 그런데 이번에는 야고보의 권면이 조금 다릅니다. 어, 앞에서 고난을 당했을

때 또는 즐거워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는 그 당사자에게 기도하라고 권면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도를 부탁하라고 권면하고 있죠.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만약 당신이 어떤 병에 걸렸다면 그 사람은 교회 장로들을 부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지금 야고보가 말하는

장로들은 교회 대표들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로들을 불러서 기도를 부탁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에게 당신의 아픔을 알려서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십시오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선 특별히 야고보가 질병에 걸린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약함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병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나 아니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겪게된 어떤 영적인 낙심까지도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는 누구나 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특별히 교회에만 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라기보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어 감추고 싶었던 어떤 나의 연약함 또는 감추여야만 했던 나의 약점들 그런 것들을 교회에서는 숨기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교회는 약자들이 많이 모인 것처럼 보이는 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약해도 괜찮은 공동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은 특별히 자신의 약함을 위해서 혼자 기도할 수도 있지만 교회에 알려서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너의 약함을 무조건 다 알려야 돼. 네가 힘든 건 다 낱낱이 말해야 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야고보의 마음이에요.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거예요. 무조건 나눠야 해. 무조건 너는 보고해야 돼. 이런 의미가 아니라 너의 약함이 있는 그대로 알려줘도 괜찮아.이 공동체가 그걸 같이 품을 거야라고 야고보가 말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어, 여러분, 세상을 살다 보면 약한 것을 드러내기 어려울 때가

더 많나요? 드러낼 때가 더 많나요? 드러내기 어려울 때가 더 많죠.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하고 내가 조금 더 낫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거나 나의 약함은 곧 나의 약점이 되고 내가 무시받는 이유가 돼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약함을 최대한 감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약점도 숨기고 포장한 일에 아주 능숙하죠. 어,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어, 여러분, 우리가 취업을 준비하거나 입시를 준비하면 자기 소개서를 주로 쓰죠. 그 자소서에

나의 약점을 적는 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기에 솔직하게 자기 약점을 쓰지 않아요. 약점이지만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이 약점도 괜찮은 것처럼 필요한 것처럼 설명한 것이 어 요즘 세상의 현실입니다. 진짜 솔직하게 적었다간 떨어질 테니까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세상과 반대로 가는 나라죠. 우리는 세상처럼 살지 않고 세상처럼 사람을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과 반대로 약해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공동체인 거예요. 나의 약함이 곧 약점이

되고 그 약점이 곧 무시받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과 어떤 약점과 어떤 부족함과 상관없이 사랑받기 충분한 것이 교회여야 한다는 거예요. 아니 어쩌면 약하기 때문에 그가 더 사랑받는 것이 바로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의 약함, 너의 병, 너의 실수, 너의 잘못 말해도 괜찮아. 우리가 함께 기도해 줄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그런데 물론 처음부터 우리의 그런 속 이야기를 다 나누기에는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

저도 패 안에서 나누기도 하고 또 교회 공동창에서 나눔을 할 때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솔직하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기도를 부탁하고 싶지만 어떤 부분은 너무 은밀한 문제라서 선뜻 기도해 달라고 나누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 지난 시간을 겪으면서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공동체 안전함을 경험한만큼 조금씩 조금씩 더 진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희 팬과 처음 나눔 했을 때 그 어 진실함의 농도보다

지금 나누는 나눔의 농도가 더 깊어졌어요. 이것은 교회 안에 다른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 또 저 말고 다른 패먼들도 점점 더 진솔해지고 자신의 약함을 더 솔직하게 나눈다는 것을 이제 서로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 저희 팬은 나누기 어려운 거 또는 나누기 싫은 거는 패스할 수 있는 어, 그 룰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패스가 참 많았어요. 패스할게요. 패스할게요. 패스할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패스하는 것들이 줄어들고 최근에는 어떤 누군가는 내 마음속에

꺼내지 못했던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까지 깊어졌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는 그 시간 동안 그 공동체와 그 패 안에서 아 내가 이런 것을 나눠도 괜찮구나.이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위로해 주고 함께 기도해 주는 거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약함을 꺼내 놓아도 괜찮은 그런 믿을 만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어, 그 안전함을 느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사람의 성향 따라 다르고 또 겪어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먼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완전한 공동체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이것을 나눠도 괜찮은지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약함을 정지하고 무시하며 저 사람 왜 저렇게 생각해? 왜저러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같이 끌어안고 품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야고보는 이런 공동체 기도가 바로 믿음의 기도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간절히 믿는 그는 완전 사람을 받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인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는 그런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공동체 기도를 가르치고 있는데요. 공동체 함께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병든 사람이 낫게 된다고 말하죠.

야고보는 이것을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신다라고 말했는데 어 일차적으로는 육체의 치유를 의미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영적인 치유와 구원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이 치유를 말하고 그 뒤에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야고보는 질병을 포함한 우리의 어떤 연약함들, 우리의 깨어짐들이이 죄와 연감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약함이 생긴 거야.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병에

걸린 거야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깨어짐들의 그 근본적인 원인은 죄, 즉 하나님과의 단절에 있다라고 본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자기 중심성이다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어 저는 종종 이것을 어 설명할 때 내가 하나님과 손절한 것이다라고 어 설명하곤 합니다. 마치 내가 어떤 사람과 인연을 끊고 관계를 끊어 버린 것처럼 내가 하나님과 그렇게 관계를 먼저 끊어 버린 것 그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교회는 어 주님과 다 단절되었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겁도 없이 주님과 어 손절했다가 아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온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누군가는 돌아오는 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왜 돌아가야 하지? 나에게 정말 주님이 필요한 것일까라는 것을 깨닫고 알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이 회복의 가정, 주님과의 그 깨어진 것들이 온전해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아직 온전하지 못한

모습들이 있고 약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그런 문제들, 약함들, 고통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꼭 그것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공동체는 아니에요.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근본적인 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약하고 아프고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그런 고통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과의 그 단절을 위해서 그 회복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야고보가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 아마 풍삼을 하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배울 때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때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 기도, 공동체와 함께 기도할 때도 주기도문으로 기도해야 한다라고 나오는데요. 어,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위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위해서 서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함께 기도해 주는 거. 주님의 뜻과 우리의 필요를 같이 기도하는 것을 어 말하고 있어요. 야고보가 말하는 기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병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치료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만났다면 공동체는 그 일이 잘 해결될 수 있기를 위해서 정말 애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받은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가 잘 암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죠. 그런데 그것과 함께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지금 아파하고 있는 그 사람이 문제를 만난 그 사람이 상처받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회복되고 온전해져서 일어날 수 있기를 위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야고보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기도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게 다르게 말하면 어떤 말일까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나 혼자서는이 여정을 끝까지 감당하기 버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그 공동체와 너의 약함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든든한 가족들이 되어 주라는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동시에 가장

큰 효력을 나타내는 기도라고 말하죠.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서로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 깨어진 관계들이 하루빨리 더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 그래서 회복되어 가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그 기도 가장 큰 효력을 나타내는 믿음의 기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 것은 야고보가 기도할

때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실제적인 도움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이 시대에는 어 어떤 치료법 중에 하나가 기름을 바르는 것이었거든요. 야고보는 앞에서 계속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공동체를 위한 사랑을 보여야 돼. 말로만 믿음을 말하지 말고 너의 행동 속에서 그 믿음이 보여야 돼라고 계속해서 말했었죠. 그리고 그 야고보의 가르침이 기도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어요. 만약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어, 가끔 제가 어, 저희 팬 안에 있는 청년들과 어, 고민과 어려움을 나눌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걸 들어도 제가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답답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 제가 그 고민에 뭐라도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거나 아니면 정말 그 친구가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에 내가 당장 가서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럼 참 편할 텐데 그 고민을 말하고 있는 그 청년이나 그걸 듣고 있는 전화 약한 건 똑같거든요. 어, 그래서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해결책은 없지만 그냥 찾아가서 오늘 시간 되니 만나서 밥 먹고 같이 고민해 주고 나도 한번 알아볼게. 어떤 방법이 있는지 나도 한번 고민해 볼게. 그리고 같이 기도해 주는 것이 다입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 여기 이 말씀을 듣고 계신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막상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경우가 우린 더 많은 거 같아요. 야고보의 말처럼 나도 기름을 발라 주고 싶지만 대체 어떤 기름을 발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정작

그 기름이 나에게 없을 때도 많습니다. 어 그런데 저는 그런 우리의 마음과 상황들을 주님이 아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기름을 발라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믿습니다. 여러분, 고치시고 일으키시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우리에게 기름을 바르라고 하신 이 요구는 그에게 딱 필요한 도움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도움을 줄 순 있다면 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들어주고 함께 해 주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 제가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그 짧은 시간을 지나고 나서 서로 헤어질 때쯤 되면 그들이 주로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좀 괜찮아진 거 같아요. 해결된 거 같아요. 정리가 된 거 같아요. 저는 해결책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밥 먹고 참하신 그 짧은 시간에 실제로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들은 해결이 된 것 같다고 웃으면서 돌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바를 수 있는 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말로만 아, 너 힘들겠다. 기도할게. 알겠어. 기도할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서 같이 있어 주고 들어주면서 같이 그 어려움을 견뎌 주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기름을 바르는 것이라고 어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에게 기름을 발라 주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하실 거예요. 우리를 고치시고 낫게 하시고 일으키시는 그분의 일을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크게 세 가지 질문의 어, 한 가지 답으로 우리에게 권면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 여러분 혹시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기도하십시오. 어, 기도해야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 때로 마음이 너무 지치면

말씀도 다 알지만 어, 조금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고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난에 대해 설교할 때 늘 참 마음이 무거운 거 같아요. 저도 그럴 때가 있었거 어, 있었기 때문이죠. 어, 사람들은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또 저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하는 말들이 오히려 저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이 시간 지나면 네가 더 성장할 거야. 성숙할 거야. 지금은 아프지만 분명이 시간에 누군가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될 거야.

여러분, 그런 말을들을 때 머리로는 무슨 의도인지, 어떤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지 다 이해가 돼요. 알겠어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참 감사하게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 근데 나는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성장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아프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 어 솔직하게 어 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안 겪어 보면 말은 쉽지라는 모난 마음이 제 안에도 있었습니다. 어 저도 그런 순간이 진짜 의연하고 싶었거든요. 고난 중에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솔직히 잘 안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짜증으로 기도한 시간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기도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나는 나은 걸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내 마음 들어 주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도 내 옆에서 위로 해 보겠다고 같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공동체가 있으니까 나는 그나마 다행이겠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딜까? 그러면서

혼자 이렇게 엉터리 같은 기도를 드렸던 어 기억이 났습니다. 주님이 저의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렇게라도 기도하니까 주님이 계셔서 그나마 다이라는 마음이 드니까 어 버텨지더라고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우리는 고난에 가려져 있던 그 불행에 가려져 있던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만 느껴지던 그 시간 속에서 주님이 계셔서 다이다라고 느끼는 그 시간들이 어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와 반대로 지금 즐거운

사람이 계십니까? 그 사람도 기도해야 합니다. 평온하고 기쁜 그 순간에도 주님과의 관계를 소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죠. 그래서 고난 중에 절망이라는 함정을 파기도 하지만 평안하고 일이 잘 풀리는 그 순간에는 교만함과 아일함의 함정을 판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 혹시 나는 지금 삶에 그렇게 큰 문제가 없어.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도 없어. 그래 참 감사해.라는 마음이 드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그 여유와 에너지를 여러분의 주변으로 흘러보내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우리 주변에 또이 작은 우리 공동체 안에 혹시 힘든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흘려보내고 기도를 심을 일이 있지 않은가? 돌아보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병들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나의 약함이 극복되지 않고 나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혼자 있으지 말고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부탁해도 괜찮은 곳이 바로 이 공동체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공동체 기도는 큰 효력을 나타낸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비는 사람들이 아니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고 하나님의 뜻과 그 섭리 안에서 서로의 그 삶과 상처와 약함을 해석해 주고 또 함께 같이 우리 회복해 보자고 같이 우리 잘 견뎌해 보자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약함 다 드러내면 위험해라고

말하지만 주님의 교회는 그렇지 않아요. 교회는 마음껏 자신 약함을 고백해도 괜찮은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로 사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름을 바르며 기도해 주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어, 야고보의 세 가지 질문을 관통하는 답은 단 하나였습니다. 기도하는 것이었죠. 저는 그리고 이것이 야고보가 깨달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평온할 때나 내가 병들고 약할 때나 혹은 건강하고 강할 때나 주님은 우리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순간에도 늘 취지 말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 어떤 시간을 걷든지 어떤 순간을 마주하든지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어, 마지막으로 제가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예배팀은 함께 올라와 주시고요. 어, 기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까 제가 중보기도팀 사역을 하고 있거든요. 그 사역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여러분, 처음엔 제가 원해서 시작한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2025년 사역표가 나왔는데 거기 제 이름이 그냥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마치 어 약간 끌려간 거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시작된 사역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부끄럽지만 솔직히 그렇게 기쁘진 않았습니다. 아, 난 자유롭게 기도하는게 좋은데 뭔가 틀에 갇힌 거 같아서 좀 별로 같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역이 시작되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 중보기도 팀에

끌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나 끌려온 거 아니구나. 주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신 거구나라는 것을 강하게 어 느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그래도 약속된 시간을 지키면서 기도하면서 내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던 그 기도의 힘이 제 삶에서 또 신앙 안에서 또 사역 안에서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기도가 그냥 말로만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거 정말 나를 지키는 거구나. 내 마음 진짜 붙들어 주는 거구나라는 것을 저는 정말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머무는 그 시간을 통해서 저의 생각과 마음과 시선이 정말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저의 신앙과 사역의 그 마디마디마다 마치 기계의 기름치를 하듯이 스며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 여러분 어쩌면 제가 처음 그 중부 기도 사역을 시작하면 느꼈던 그 마음처럼 나는 내가 마음이 들 때, 내가 자유롭게 원할 때 기도하고 싶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의 시간도 참 중요하고 저는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혹시 너무 어 자원하는 마음 또는 주님 앞에 내가 자발적으로 드리는 마음에 어 주님 앞에 시간을 정해 놓고 내가 기도하는 시간을 지켜내고 주님 앞에 머무낸 시간을 지켜내는 것을 혹시 뒤로 미루고 있다면 저 오늘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하루 루틴에 기도의 시간을 꼭 넣으십시오. 여러분의 일주일을 계획할 때 내가 언제 주님을 독대하고 언제 주님과 마주할 것인지를 여러분 먼저 정하여 놓으십시오. 우리가

물질을 11조 드릴 때 먼저 주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처럼 여러분과 주님과 교재하는 그 기도의 시간을 먼저 구별하여 떼어 놓으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콧끝에서 여러분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고난을 견디게 하고 기쁨을 지혜롭게 하며 우리 악함을 일으키는 기도가 되기를이 시간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