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금요기도회 설교

2025-07-18 · 야고보서 4장 1~10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먼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은데요. 어,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어,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우신가요? 여러분이 주님께 더 나아가기를 방해하고 여러분의 영적 성장과 어떤 성숙을 어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리게 만드는 장애물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어, 지금 잠시 시간을 드릴 테니 각자 한번 생각해 보는 어,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네.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어, 우리를 가로막는 신앙의 요소들은 참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떤 고난이나 갈등, 어, 또는 잘못 배운 진리에 대한 어떤 오해, 오류처럼 외부에서 오는 어려움들도 있습니다. 어,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저를 돌아볼 때 요즘 느끼는 것은 어, 저에게 있어 신앙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저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어, 분명 돌이키고 회심했음에도 여전히 제 안에서 순간순간 아주 꿋꿋하게 고개를 어 세우는이 자기 중심성이 가장 큰 장애물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또는 듣고 싶은 대로,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이 고집스러운 마음이 죽지도 않고 계속해서 찾아올 때 저는 저의 신앙의 가장 큰 걸림도를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아 내가 이렇게까지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이었나 하는 것을 더 깊이 느끼고 또 고민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볼 때 이것이 저만 느끼는 고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이런 고민을 한 번쯤 다 해 보셨을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사랑이 없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까지

수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까지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하는 이런 고민들 말입니다. 어, 우리에게 이런 고민이 쉬지 않는 이유는 아직 주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회복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전하길 힘쓰지만 온전하지 못한 우리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야고보는 이것을 두 마음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세상을 따르고자 하는 이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쩌면 야고보도이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또 씨름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던 한 사람이었을테니까 성도들이 겪고 있는 이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했을 것입니다. 어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갈등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도 않아요.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치열한 싸움을 성경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 주의해야 할 것은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일 수 있죠. 우리 안에 그 치열함이 없다면

혹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그 동력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 저도 어, 회심 이전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렇게 크게 고민하는게 없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아, 내가 잘하고 있으니까 내가 교회에서 하는 거 다 잘 따라가고 있으니까 나는 고민할게 없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어,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들은 말씀을 내 삶으로 적용하려는 생각조차 안 했거든요. 그땐 두 마음의 갈등이

없이 그냥 내 마음만 따라가면 됐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다가 진짜 주님을 만나고 아 주님을 정말 따라가야겠다라고 어 결단하게 되니까 아 이제는 고민하게 되는게 한 둘이 아닌 거예요. 선택지가 한 개밖에 없던 삶에서 이제는 내 뜻과 하나님 뜻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삶이 저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이와 같은 고민 또 어떤 갈등은 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과 그걸 방해하는

나의 자기 중심성이 계속해서 충돌를 일으키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경은 갈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 충돌 안에서 실름하며 결국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이 갈등을 인정하고 공감해 주면서도 거기에 안주하는 것을 원하진 않아요. 얼마든지 우리 안에서 이 두 마음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갈등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두 마음을 품은 채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것은 성경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이 두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끊임없이 성경이 우리를 향해 요구하고 또 그런 우리의 고민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이 야고보서는 이것을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쪽은 시계심과 경쟁심,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순결함과 평화, 친절, 온순함, 자비, 선한 열매와 같은 것들이 있죠. 여러분,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모습이 어느 쪽을 더 닮아가면 어, 좋겠습니까? 어, 당연히 오른쪽이겠죠. 저도 그렇습니다.이

모습이 우리 모두가 이루고 싶은 또 계속해서 닮아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따라야만 합니다. 어, 야고보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이 두 종류의 지혜와 그 지혜에 따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께 속한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땅과 육신에 속한 정욕적인 악마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지혜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혼란과 평화, 악함과 선함처럼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여주죠. 이것을 조금 다르게 말하면 우리 삶의 모습이 곧 내가 따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어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발자치를 잘 살펴봐야 해요. 그것이 곧 내가 걷고 있는 내가 따라가고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어 벌써 한해의 절반이 훅하고 지나갔죠.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벌써 7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어 그래서 저는 최근에 어 지난 반년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저의 신앙도 다시금 점검해 보낼 시간을 가졌어요.

어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어떤 걸 놓고 씨름했지 어 그 씨름 끝에서 내 삶에 어떤 모습이 나타났지 난 어떤 변화와 어떤 열매가 내 삶에 있었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 돌아보니 좋은 모습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모습들도 있었어요. 하나님이 아니라 내 마음이 좋은 대로 선택했던 땅 속에 어, 땅에 속한 지혜를 따랐던 모습들을 발견하게도 했습니다. 우리가 어, 자주 말하지만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신앙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죠.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삶을 보면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신앙하며 따라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삶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 믿음은 모순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나의 믿음이 삶에서 잘 작동되고 있는지 그 믿음이 나의 삶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의 믿음이 작동하지 않게 하려고 우리를 수없이 속이죠. 그래서 점검하지 않게

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나 사단이 던져 놓은 아 나는 잘 믿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 오늘 성경을 보니까 아마도 이 야고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위험한 착각에 빠져 버린 사람들 말이죠. 어, 야고보서는 제가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교회 공동체, 즉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 또 야고보의 표현대로 말하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따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들에게서 어떤 모습이 보여야 될까요? 이들의 삶에서 어떤 모습이 발견되어야 하죠? 네. 우리가 앞에서 읽었던 우리가 담고 싶었다고 선택했던 그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따르는 모습들이 보여져야 합니다. 성결하고 평화를 이루고 자비롭고 선한 삶의 모습들 말이죠. 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 당시에 편지를 받는 성도들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어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 자기 중심성에 매몰된 모습들이었습니다.

어 제가 이 야고보서 4장에서 발견한 자기 중심성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평화와 자비가 아니라 싸움과 분쟁으로 깨어진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야고보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어요. 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이 좀 더 직관적으로 변역하고 있는데요. 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러분은 이 모든 형편없는 싸움과 다툼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분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하고 싸워서라도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여러분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 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신 영적 싸움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혈기와 또 육체에 속한 그런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싸움은 형편없다. 너에게 유익하지 않다라고 말하죠. 이들 안에 있던 싸움과 다툼은 그냥 일어난 의견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의견 차이 때문에 또는 서로 어떤 일어난 일들 때문에 생긴 갈등 같아 보였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국 그것은 자기의 마음대로 하려는 자기 중심성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어, 만약 모두가 이 공동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들의 의견이 아마 한 곳으로 모였을 거예요.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데 한로 모이지 않는게 어, 더 이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각자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하나님이 아닌 자기 마음에 집중하고 있었고 저마다 자기 욕심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주님의 뜻을 따라서 한 몸으로 연합되기는 커녕 서로 싸움과 다툼으로 분열되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 여러분,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얻어내라고 말하죠. 경쟁하고 이겨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어 능력 있네, 유능하네,

지혜롭네라고 평가하죠. 자기 몫을 챙길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어 칭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런 모습을 향해서 그것은 땅에 속한 지혜라고 말하죠. 세상의 지혜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 땅에 속한 세상의 지혜의 모습이 당시 성도들의 삶 가운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 야고보서 4장 2절에는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바라본 당시 성도들의 모습이었어요.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쟁취해라고 말하는 세상의 가치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모습과 어 다르지 않았습니다. 싸워서라도 다투더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이 욕망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내가 원하는 거 얻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그 잔혹한 욕심이 그들 안에 남아 있었다는 거예요. 어 여러분 혹시 이런 말을 아시나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끝없이 다투고 경쟁하고 또는 시기와 미움으로 결국엔 망가져 버리고 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어 그런 말입니다. 마치 말처럼이 야고보의 시대에도 각자의 끝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깨어지게 하는 가슴 아픈 실수가 반복되고 있었던 거 같아요. 나 이제 그리스도인입니다. 저희 돌이켰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이 안타까운 실수가 그들의 삶에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야고보가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리고 세상과 같은 모양으로 살고 있는 그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야고보서의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거죠. 어 그런데 여러분 이것 자체가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어요. 당장 눈에 보이기에는 욕심 때문에 발생한 공동체 갈등이 가장 큰 문제처럼 보였 보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이게 자기 중심성이 보여주는 두 번째 모습이지만 동시에 더 근원적인 모습입니다. 어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가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보이 하나님과 등지는 이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이 가음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요. 새앙글 성경에서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어 번역하고 있어요. 지금 이들의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따르려는 애음. 주님이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려는 그 마음들이 그 공동에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주 위험한 신호였어요. 믿음을 저버리는

것. 그래서 그 믿음대로 살아내려는 우리 삶이 무너지는 것은 곧 하나님과 등지게 만드는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 주님께로 돌이킨 회심,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내가 정말 그분을 잘 따르겠다는이 진실한 결단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 믿음으로 회복이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회복되었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미세한

균열이 조금씩 조금씩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했던 관계가 다시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신밀했던 관계가 다시 원수가 되게 하는 아주 위험한 모습이 바로 믿음을 저버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위험을 감지한 야고보가요. 경고해요. 너희 무너지고 있는 그 믿음 다시 바로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과 다시 원수가 될 수 있어. 그러니 세상과 벗하지 말아야 해. 믿음을 하나님을 쳐져버리지 말아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어, 여러분, 우리에게 저는 이런 위기가 없기를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어, 바라고 기도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바람과 달리 아, 완전한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성경이 경고하고 있는 이 경고를 우리도 주의깊게 잘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중심성 또는 세상의 가치, 땅에 속한 지혜와 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고 돈독히 맺기 위해서 우리 각자가 모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어 나의 자기 중심성을

등지고 믿음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원수를 맺어야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싸을 멈춘다면 아마 우리도 이 성경에 기록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자기 중심성으로 망가져 가는 당시의 성도들을 향해서 또 자기 중심성과 계속 싸워내야 하는 우리를 향해서 권면하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네. 야고보가 지금 첫 번째로 권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세상의 방법으로 무언을 얻어내기 위해 다투고 투쟁하고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보니까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여러분, 그렇다면 이건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서 구하라고 하는 걸까요? 구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요? 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인격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기도하며 그분의 은혜를 구할 때 주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사람을 붙여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그 고난을 이겨낼 힘을 채워 주시기도 하시죠. 그러나 만약 그 기도가 우리의 욕심대로 우리의 욕망을 따라 구하는 기도라면 주님은 그 기도에 노라고 대답하실 거예요. 왜냐면 그 기도를 들어 주는게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어 지난주에 저희 조카가 잠시 여기 양지에 왔다 갔는데요. 어 제가 그 친구와 한 5일 정도를 같이 있으면서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떤 거였을까요? 어, 바로 정답 맞추시면 좀 곤란하는데 제가 그런 나쁜 고문 아닙니다. 제가 넌 사랑해, 넌 너무 귀여워. 이런 말들도 정말 많이 해줬거든요. 그런데 그중에는 여러분이 다 방금 맞추신 안 돼, 하지 마 하는 것들도 있었어요. 고모, 음료수 벗고 싶어. 안 돼. 고모, 내가 요리해 볼래? 안 돼. 고모 안 씻고 싶어.

안 돼. 제가 왜 그렇게 안 된다고 했을까요? 그냥 그 어린아이가 원하는 거 들어 줄 수도 있잖아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원하는게 그 친구한테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땀흘리고 신나게 놀았어요. 막 갈증이 납니다. 아이는 당장 입에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넣고 싶죠. 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는 갈증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자기도 막 요리해 보고 싶어 막 나서지만 칼이나 불 이런 것들은 아직이 아이에게 위험해요. 만지면 다칠 수도 있거든요. 아,

너무 귀찮아요. 당장 신는게 싫어요. 그래서 안 하고 싶다고 말하죠. 때를 씁니다. 그런데 그걸 들어 주는게 그 아이의 기분은 잠시 좀 좋게 해 줄지 몰라도 그 아이의 위생이나 건강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죠. 어, 여러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마치 이와 같은 거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에 이게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어, 저거 저렇게 해 주면 내가 나아질 것 같아서 그것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시선에서 볼 때 우리의 그런 기도는 어떻게 보일까요? 마치 저의 조카가 저에게 뗐었던 것처럼 보이겠죠. 마치 어린아이가 구하는 그런 기도와 비슷해 보인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요. 풍삼기에 보면 어릴 때는 내 마음의 욕심을 따라서 뭔가 정력적으로 구하는 기도가 많지만 신앙이 자라가고 성숙함에 따라 그런 기도가 점점 줄어든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 우리가 구해도 때로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안 돼. 그건 줄

수 없어라고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우리 요구를 거절하신다는 겁니다. 또한 애초에 기도 본질 자체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기도 해요.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주문서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빌고 빌어서 얻어내는 것일 수 있지만 적어도 기독교 안에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내 안에 있는 자기 중심성과 정욕을 비워내고 하나님의 뜻으로 다시 채우는

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우리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 내 자기 중심성을 따라 정욕적으로 구하는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전혀 맞지 않으니까요. 어, 그럼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기도해도 안 주실 건데 왜 기도해야 하죠? 여러분 차라리 세상의 방법은 방법은 싸우더라도 내가 이기기만 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죠. 그런데 어 그런 정력적인 기도는 들어 주지 않아라고

말하는 하나님께 우리는 굳이 가서 기도해야 할까요?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낼 수 없다면 말입니다. 어, 왜냐하면 기도할 때 우리의 욕망이 바뀌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항해했던 나의 정욕이 기도할 때 비워지고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다시금 향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주문서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내가 어 갖고 싶은 리스트들로 빼곡하게 적혀 있던 어떤 정욕의 주문서가 이제 지워지고 기도할 때 그 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정말 나에게 유익한 것을 새로 적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야고보가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가서 구해 보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원하는 걸 주님께서 주실 거니 가서 주님께 주문해라는 요구가 아니었을 거예요. 어쩌면 야곱보의이 권하는 권면은 가서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할 때 여러분이 구하고 있는 그 욕망이 얼마나 정욕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그 욕망을 주님께서 바꾸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여러분도 갈망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이 마음으로 어쩌면 이 기도하십시오라는 권면을 했을 것입니다. 어이어서 두 번째 권면은요. 하나님께 복종하십시오라는 권면이었어요.이어서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리하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 어, 야고보는 앞선 3장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지혜와 반대되는 것이 육신에 속한 땅 위에 지혜이자 그것이 곧 악마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어, 그러니까 여기서 악마를 물리치십시오라는 것은 우리에게 퇴마를 하라는게 아니에요. 악마를 물리치라는 말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그 세상의 지혜를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 자기 중심성대로 따라 살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 중심성이지지 않고 세상을 따르지 않는 또

악마를 물리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야고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어,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마음 하나도 제어하기 힘들 때가 참 많죠. 우리는 이 영적 싸움에서 너무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악마를 물리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힘을 의지해서 싸워야 합니다. 어 실제로 야고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복종이란 단어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어, 도저히 내힘으로 쌓을 수 없을 때 나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에게 복정해서 나를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존재의 힘으로 싸우겠다는 것이 바로 이 복종 안에 담겨 있는 의미죠. 하나님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곧 그분께 우리를 위임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내 힘이 아니라 그 주님의 힘으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다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의 자기 중심성이 우리 안에서 막 힘을 발휘하고 어 막 공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어 능력이

사실 없습니다. 그것을 막아낼 힘이 우리에게 너무 부족해요.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바꿀 능력도 없고 내 안에서 터져나온 어떤 불평과 불만을 감사로 바꿀 제주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가서 복종할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을 우리는 알죠. 내 힘이 부족할 때 주님께로 가서 도움을 구하고 그분께 매달리고 우리의 약함을 주님께 위임할 때 우리는 크고 강한 주님의 힘으로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까이 나아가라고

계속 권면합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주님께서도 우리 가까이 오신대요. 그런데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을 깨끗이 하고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손은 우리의 어떤 외적인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우리의 내면을 의미해요.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요구하고 있는 이 복종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외쪽으로 드러난 행실의 죄 또는 내면에서 은밀하게 쌓여가고 있는 그 죄에서 돌이키라는 거예요. 내가 주인되려는 그 마음을 돌이켜서 나의 왕자를 진짜 주인이신 주님께 위임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마음으로 갈려졌던이 마음이 다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로만 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는 복종하는 것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어, 제가 설교를 정리하면서 어, 오늘 설교를 어떻게 마무리를 하면 좋을까 좀 많이 고민을 해 봤는데요. 어, 그런데 어, 제가 어떤 말을 더 하는 것보다이 말씀을 같이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제가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 드릴 텐데 한번 집중해서 잘 들어 보시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이 모든 형편 없는 싸움과 다툼이 어디에서 비록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분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하고 싸워서라도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여러분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탐하고 살인까지 해서라도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다가 폭력까지 휘두르고 맙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는 않겠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질 권리가 없는 것을 구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매번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버릇 없는 아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속이고 있습니다. 온통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과 놀아나는 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바라면 여러분은 결국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과 그분의 길을 거스르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관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까? 잠언은 하나님은 맹렬히 질투하는 연인이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사랑으로 주시는 것은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기꺼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그분 뜻대로 일하시게 해 드리십시오. 마귀에게는 큰 소리로 안 돼 하고 외치고 마귀가 날뛰지 않는지 주시하십시오. 하나님께는 조용히 예하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럼 하나님께서 즉시 여러분 곁에 계실 것입니다. 죄에서 손을 떼십시오. 내면의 삶을 깨끗게 하십시오. 여기저기웃거리지

마십시오. 땅을 치며 하염없이 보십시오. 놀고 즐기는 일은 끝났습니다. 신중하게 참으로 신중하게 처신하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여러분 일어설 수 있는 길은 그 길뿐입니다. 어 제가 이 말씀을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한 문장의 머릿속에 떠올랐는데요.지는 것이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었어요. 어,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이 자기 중심성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가 거기에지지

않고 거기에 한몰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주님 앞에서지는 것뿐입니다. 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사람들은 예수가 다 졌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다가 또는 무식하게 복음만 그렇게 외치다가 결국 망했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여러분, 시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이 십자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죠? 실패의 상징인가요? 망해 버린 저주의 도구입니까? 우리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선명한 승리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의 시선에서는 그것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이 진짜이기는 것,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자기 중심성을 계속해서 부추인 세상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꺾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졌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향해 비웃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여러분 성경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지는 것이 곧 우리가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참으로 신중하게 처신하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지는 것만이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네.이 네.이 시간 예배팀 나와 주시고요. 함께 잠시 눈을 감고 우리를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 있습니다. 내가 끝내 이기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이기는 것이 결단코이기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주님 앞에서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고 주님 앞에 엎드려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살길임을

성경이 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