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야고보서 1장 1~8절 / 박예진 전도사

2025-01-10 · 야고보서 1장 1~8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저는 앞으로 여러분과 이 금요 기도의 시간에 야고보서를 시리즈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이 시리즈를 통해서 야고보서 아고 하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와 신앙의 여러 지혜를 저와 여러분이 함께 알아가는 그런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먼저 야고보서 책이 어떤 책인지 함께 살펴봐야겠죠 신학 성경은 크게네 가지의 장로로 구분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입니다 어 야고보서 는이 중에 어떤 장리 해당한 책일까요네 딩동댕 정답입니다 서신서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특별히 그중에서도 일반 서신에 해당하는 첫 번째 책입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네 책계 저자는 이 편지 서신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자신 야고보는 것을 밝고 있 그런 여러분 성에는 야고보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꽤 자주 등장하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야고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두 야고보 중 한 사람이

기록했을까요 야고보의 저자인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 보입니다 예수님의 남동생이라는 거죠 그런 보는 신을 할 님의 생으로 소하지 않아요 나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보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명단 안에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것을 얼마나 자랑할 만하고 어쩌면 내세우고 싶은 그런 스펙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 야고보는 예수님을 형과 동생의 어떤 그런 가족 관계를 넘어서 하나님과 동등한 섬김과 경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고보의 신앙이 처음부터 이렇게 신실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예수의 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와 같이 30년 가까이 살았던 형이 어느 날부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내가 메시야라고 말하며

비상식적인 일들을 하기 시작해요 종교 지도자들과 대립하고 당시 사람들이 모두 꺼려하던 사람들과 골라가며 친구를 맺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죠 그래서 야고보는 처음에 자기 형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를 잡으러 다녔던 사람이 이었어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1년의 어떤 과정을 통해서 회심하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죠 그러자 그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형님이 아니라 주님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집안의 골칫덩어리

첫째 형이 아니라 경배 받아 마땅한 메시아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 여러분 저는 이것이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회심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어긋나 있던 위치를 바로 잡는 것 오해하고 있던 정체성을 바로 잡는 것 말이죠 야고보는 자신의 형이 미쳤다고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깨닫습니다 미쳤다고 생각했던 형의 이야기가 진짜 복음이었다 것을 말이죠 이 복음을 깨달은 야고보에게

회심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야고보가 무시하던 예수님이 야고보 삶의 주인의 자리로 올라 앉으 그리고 야고보는 종의 자리로 내려가죠 야고보에게 골칫덩어리 첫째 형이었던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되고 야고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정성이 바게 됩니다 이처럼 심은 대로 어긋나 있던 과의 위치 주님과 우리의 정체성이 제자리로 올바르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심 이후에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지도자로

있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의 박해가 일어나면서 많은 성도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다 흩어지게 되었어요 성도들이 교회를 향한를 피해서 이스라엘 밖으로 저마다 여기저기 흩 된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지도자였던이 야고보가 그렇게 흩어져 버린 성도들 즉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를 향해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돌보려는 목적으로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야고보는 특정 어떠한 교회에게 보낸 그런 편지한 다른 서신서는 조금 다르게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서신서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사역하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와 고난이 매우 많았는데요 그래서 이 야고보는 이 편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그 문제를 최대한 지혜롭게 이겨내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힌 후 곧바로 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네이 구절에서 시험은 크게 시련과 유혹으로 나닐 수 있는데요 이

중에서 2절에 사용된 의미는 시련이라는 것을 이어진 3절을 통해 소리 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시험 즉 여러 가지 시련에 빠질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 이야기예요 왜냐면 실현은이 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연적이기 때문이죠 죄로 인한 깨어짐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은 삶에서 고난과 역경과 여러가지 문제 만 되 있 게다가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시련에 빠질지도 몰라요 상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역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이죠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그런 련도 우리에게는 존재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때 을통해서를 르게 정하기도 하시고는 완전하게 연단하시는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를 향해서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것을 예고해 여기서 여러 가지라고 번역된이 단어는 헬라어로 포이킬리틱 다양한 종잡을 수 없는 가지 학습의 시현을 만납니다 직장에서의 시련 재정적 시련 가정의 실련 건강의 실련 불의의 사건 사고 등등이요

아마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우리 삶에 다양한 시련이 있다는 거를 공감하실 것 같아요 왜냐면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아무 고민이 없을 것 같던 10대도 2 30대 청년에게도 시련이 있습니다 이쯤 살았으면 어느 정도 경험과 노화가 생겼을 것 같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그 모두에게 시련이 있어요 시련이 없는 순간이 없다는 것이죠 그럼 여러분 우리가 시련을 만날 때 어떤 마음이 들죠 여러분은 시련 앞에서 어떤 것을 느끼시나요 힘들죠네 좌절하고 괴롭습니다

시현이 안 힘드신 건 아니죠 다 힘드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걸 현대인들은 주로 이렇게 표현하는 거 같아요 아 스트레스 받아 아 짜증나라고 우리가 보통 반응을 합니다 저도 어떤 괴로운 상황을 만나면 아 스트레스 받아 아 머리 아파 아 힘들어라고 자주 말하는 거 같습니다 아무도 이게 일반적인 우리의 반응일 거예요 그런데 야고보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더할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시련을 당할 때 스레스 짜증나다 그게 다

끝나고 지나가야 그때 기쁜 것이 정상이죠 그런데 오늘 말씀은 지나가고 기뻐하라고 하지 않아요 시련을 당할 때 그때 기뻐하라고 요구합니다 그것도 더할나위 없는 기쁨으로 말이죠 이것이 야고보가 련을 만난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권면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어 가의 제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눌어 이런 노래하면서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돼 힘들어도 씩씩하게 웃음을 이으면 안 돼 뭐이 정도의 이야기일까요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기뻐하십시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그 시련들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이는 너희 믿음의 련이를 어는 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방금 읽은 3절에서 시련은 테스트 또는 제련하는 것을 의미하는 도키 미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이 단어는 평소에는 쉽게 잘 드러나지 않는 감춰져 있던 어떤 본질이나 능력이 테스트와 같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 진정성이 드러나고 더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을 진 단어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면 아시겠지만 신앙생활에는 참 아이러니한 모순들이 많아요 믿음의 실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평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 우리가 뭔가 힘이 있을 때 우리는 더 믿음대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면 리이 요치 의 절벽 끝에 겨우서 있을 때 드러날 때가 훨씬 많은 거 같습니다 그 절벽 앞에서 있을 때 내가 진짜 믿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 의지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잘 보이지 않던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본질이이 테스트와 같은 시련을 통해서 그 진정성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즉 시련을 통해 우리 믿음이 검증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더 온전한 모양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야고보가 말한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기쁘게 여기십시오라고 하는 이 단어에는 앞서 미리 생각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다시 말해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도키 미온 여러분에게 시련이 찾아올 때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온전하게 될 것을 미리 기대하고 앞서 생각하며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더 온전하게 될 것을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여러분 시련 앞에서 그리스도인과 찾는 이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예수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련을 다르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중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세우시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앞서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힘들고 마음이 지치고 기뻐할 힘이 없을 수 있죠 나조차도 내일이 기대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감정과 상황에 굴복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의 순간에도 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이 순간을 해서 라고 하는 그 믿음으로 앞서 바라보고 기대하고 기뻐하겠습니다 결국 시련 앞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보일 수 있는 믿음의 표현이고 하나님의 뜻에 신뢰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 그리스도인으로 시련의 때를 지나겠다 우리의 결단인 것이죠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이 야고보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하셔서 분료 달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시련을

만나 어 슬픈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베드로도 알고 있대요 슬플 수 있다는 거죠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힘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도 야고보와 똑같이 리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슬퍼할 수 있지만 슬퍼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앞서 생각하며 기뻐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실현을 통해 하나님이 믿음을 하시고 결국에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실 것을 미 바라보고 기뻐해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여야 믿고 손에 잡혀야 움직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것과 좀 다른 것 같아요 주님이 보이지 않고 주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지 않지만 마치 보는 사람인 것처럼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을 만난 리에게 야고보는 두번째 권면으로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했죠 인내를 온전히이라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을 번으로면 이습니다 을 충분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라는 거예요 즉 끝까지 버티고 견뎌 내라는 거죠 참아 보라는 것입니다 인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끝까지 견뎌낼 때 그 사람이 비로서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련이 찾아올 때는 굳 쉬운가요 흔들리기 쉬운가요 흔들리기 쉽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는 더 쉬워요 그리고 실제로 어떤 문제들은 그냥 다른 사람들 다 하는 그 방법대로 하면 빨리 해결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다 보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따라가려다 보니까 오히려 세상과 다르게 더디게 해결되는 것들도 있어 그래서 우리는 시련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 앞에서 쉽게 흔들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보면 야고보서가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권면은 시련을 빨리 통과하고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야고보는 우리의 시련을 빨리 해결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단 하나예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련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시련을 만나더라도 믿음으로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흔들리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다가 그 시련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그는 왜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 걸까요 그래야만 우리의 영적 근육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어 저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제가 작년에 한참 헬스에 빠져서 거의 매일 헬스장에 출근을 했던 어 적이 있습니다 근데 보통 헬스를 하면 어떤 그 운동 동작을 할 때 횟수와 세트를 정해 놓고 하잖아요 뭐 보통 뭐 15개씩 뭐 3세트 뭐 4세트 이렇게 하지않습니까 그런데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에 한 세트는 다 할 만해요 어 괜찮은데 할 만합니다 그런데 횟수가 늘어나고 두 세트 3세트

늘어날수록 힘이 들죠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이 기구를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막 차오릅니다 그러면 그때 제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배운 건데 세 개만 더 두 개만 더 한 개만 더 하면서 그 생각으로 끝까지 겨우 버티는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 정했던 횟수를 다 채우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근육을 건강하게 잘 키우려면 횟수를 그냥 채운다고 되지 않아요 그냥 무조건 버틴다고 해서 다 운동이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정확한 동작을 하는게

참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치지 않고 근육을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이 차고 힘이 들고 버겁기 시작하면 아이 남은 색에 빨리 해쳐 버리고 싶어라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후다다 끝내버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면 다칩니다 건강하려고 했던 운동이 오히려 부상을게 돼요 그러니까 빨리 끝내버리고 싶지만 일을 물고 버티면서 정확한 동 동작을 하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그렇게 며칠을 꾸준하게 버티자요 그럼 어느 순간 같은 무게의 바벨이 무겁지 않아진 순간이 와요 근육이 자라서 이제

그 정도는 얼마든 버틸 수 있는 순간이 오는 거죠 우리 건우가 아주 공감하고 있는데요 마치 영적인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시험을 빨리 해쳐 버리는 거 후다다 끝내 버리는 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아 이거 빨리 끝내고 싶어 이거 빨리 지나가고 싶어라고 생각하지만 운동할 때 힘들어도 참으면서 버티는 것처럼 믿음의 실현도 힘들어도 인내하고 버티는 힘이 참 중요합니다 또 끝까지 정확한 동작을 해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끝까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야 우리가 만난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근육이 자라고 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느 순간 바벨이 무겁지 않아지는 것처럼 이제 어떤 시련은 더 이상 우리에게 시련이 아닐 정도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 이제 그 정도는 거든히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어진 야고보의 세 번째 권면은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구하는 것은 앞선 두 겉면 시련을

어떻게 통과해야 될 것인가 이것에 대한 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지혜가 앞서 말한 기뻐하는 것 인내를 이루어 온전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만난 우리가 세 번째로 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야고보의 권면은 꽤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죠

실현을 만났으면 당연히 기도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보다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찾거나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전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거나 기도하지 않는다는게 아니에요 다만 하나님이 뒤로 밀려나기 하는 것이죠 시련을 만났을 때 다른 도움을 다 제쳐두고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고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처럼 또 우리가 평안할 때 내뱉었던 그 말들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익숙한 방법들이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 누군가에게 돈일 수 있고 관계일 수 있고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위나 지식 권력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반응들이 저는 만약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어 보호 본능이 있기 때문이죠 저도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면 그걸 빨리 해결하고 싶어요 그래서 머리로는 계속 문제를 어떻게 하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속 생각합니다 얼마가 필요하지 이렇게 하면 그 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지 솔직하게 저도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또는 어 이걸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될까 그가 도와줄까 만약 이게 안 되면 어떡하지 그다음에 어떻해야 되지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어떤 시련 앞에서 이런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신가요 어 제가 오늘 아침에도 가슴이 쿵 할 만한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 소식을 들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하는 어떤 그런 마음보다 그 전에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라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이게 우리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이고 어쩌면 우리 삶을 우리가 통지하고 이끌고 싶어하는 우리의 본성 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우리에게 당연해 보이는 이 권면을 하는 거예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도 시련을 완벽하게 해결할 그런 탁월한 힘이 그런 지혜가 없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고민 끝에서 결국 우리는 다 같은 걸 느껴요 절망과 답답함과 어떤 무기력함을

느끼죠 제가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실현을 해결할 힘이 저한테 없더라고요 어쩌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었다면 그건 우리에게 애초의 시련이 아닐 거예요 내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걸 우리는 시련이라고 부르지 않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해결하기 어려운 진짜 시련 앞에서 우리는 막막하고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모를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해야만 합니다 지혜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련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비추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현 중에 기뻐하고 인내하고 온전하기 위해서 우리에겐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문제를 바라볼 수 없다면 기뻐할 수 없어요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없다면 우리가

인내하고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을 의지해야요 야고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걸까요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렁이는 바다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성경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대요 여러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부담감이 확 오더라고요 오늘 아침만 해도 내가 하나님보다 어떻게 이걸 해결할 수 있지 이런 고민에 먼저 사로잡혔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니 난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그 어떤 종류에 의심도 없는 정말 100% 벽하고 순수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야고보서가 말하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의심하는 사람은 8절에 나오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에요이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등장하죠 마태복음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을 여기고 다른 쪽을 없신 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예수님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건 불가능하다라고 말씀하시죠 너희는 둘 다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불가능이 둘 중 하나만 섬길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우리 삶을 잘 살아보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 도구들을 우리 곁에 둬요 앞서 말했듯이 돈 관계 권력 지식과 같은 것들을 우리는 우리 삶에 최대한 많이 두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 하나님도 슬쩍 끼워 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세요 두 마음을 품는 것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다른 것들도 함께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추가로 구하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주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구하는 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아낌없이 주시고 하지 않으시는 선하신 하나님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이 크게 세 가지가 있었죠 그런데 잘 살펴보면 결국 이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일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인내하고 버티고 끝까지 그리스도인 답게 그렇게 온전하게 사는 것 그래서 믿음으로 바라보던 기쁨을 삶에서 실제로 내가 누리고 실현을 통하여 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 하나님은 이걸 위해서 때로는 우리가 힘들 줄 다 아시면서도 우리 삶에 시련을 허락하시지 우리도 모르게 빗나간 우리의 걸음을 교정하시고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또는 안일하게 멈춰 있는 우리 신앙을 지금은 더 나아가야 춰 있으면 안돼 한걸음 더 가야해

등을시기 위해 련을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련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깨달을 때도 있고 깨닫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야 할 때도 있죠 여러분 련의 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맞닥 버린 그 련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입니다 앞에서 내 믿음을 어떻게 하나님께 보일 것인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의지하며 나아갈 것인가 시험과 실현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시련의 고통과 슬픔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서 인내하고 자신을 더 온전하고 성 하나님의 상으로 빚어가는 그런 기쁨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죠 그러나 여러분 이런 태도와 이런 시련을이기는 힘이 우리 스스로에게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하나님께로 나아가 지혜를 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내 삶을 들고 계신 하나님의 주을 인정하고 능력을 신뢰함으로 나아가 온전한 믿음으로 구하는 지혜가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열쇠입니다 앞서 야고보가 회심의

변화를 어 야고보의 회심의 변화를 말씀드릴 때 그의 위치와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여러분 시련 앞에서 우리가 흔들리기 쉽죠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정체성이 다시 흔들리기 쉬워요 그럴 때 주님 앞에 나아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이 저의 삶의 주인이시니 주님이 저의 메시아 되시니 저의 삶을이 실령 가운데서 붙들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말씀을 함께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 것을 하 하나님은 락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신을 견디어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여러분 바닷가제 랍스터 잘 아시죠 어이 바닷가는 몸이 단단한 껍질로 이루어져 있고 또 그 집게발은 전복이나 사람의 손가락을 자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가도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지 아시나요 가가 껍질을 벗는

탈피의 순간에 그는 약해집니다이 껍질에 비해 몸이 커지면 가제는 스트레스를 받는데요 그리고 결국엔 탈피를 시도한다고 해요 그런데 탈피를 하고 나면 자신의 몸을 지키고 했던 그 단단한 껍질도 없고 한 발 대신 말랑한 속살만 기 때문에 이때가 가장 연약해지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제 이때 자신의 몸을 잘 숨겨서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단단하고 다시 강력한 새로운 껍질이 생기고 이전보다 더 강한 가제가 될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바닷 가제는

탈피를 많이 경험할수록 더 강한 가제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가 겪는 실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바다까지 탈피는 스트레스 받는 짜증난 일일 수 있어요 바닷가지도 시련은 우리를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힘들게 하고 우리를 약하고 흔들리게 합니다 련 앞에서 우리는 다 무력한 존재들이에요 이럴 때 사람들은요 모두다 제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딘가에 숨습니다 누군가는 돈이라는 바위 뒤로 숨고 누군가는 관계라는 해초 사이에 숨 있죠 그런데 저는 그리스도인은

이때 가장 안전한 하나님께로 숨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믿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련만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이겨내고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을 때 그분과 함께 있을 때 우리에게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를 더 강하게 하는 주님의 도구가 됩니다 여러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약한 순간인를 많이 한가 가강한니다 은 사람일수록

그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러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의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쌓이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된다고들 다 이야기해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파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경력이 쌓기 때문에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련을 통해서 그 제를 겪어낼 때마다 아 주님이 나를 지키는구나 나에게 피를 허락해 주시는구나 하나님을 그만큼 더 경험했기 때문에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내가 가장 약해지는 그 순간에도 강하신 주님 덕분에 내가 그 누구보다 가장 안전하고 강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을 다 방으로 이겨내길 선 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련의 모순된 신비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시간 눈을 감과 함께 묵상해 봤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예배하러 모인 여러분 지금도 시련의 터널을 겪고 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끝을 알 수도 없는 시련에 지치고 억울하고 어쩌면 주님께 조금은 미운 마음이 들지도 몰라요 그러나

오늘의 야고보서 말씀처럼 주님과 함께할 때 우리는 시련의 모순된 신비를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 제가 그 신비를 알고 싶습니다 제가 그 모순된 신비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주님을 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