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금요기도회 설교

2025-03-28 · 야고보서 2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Amen. 성과 하 어이 시간 저희 예배에 앞서 우리 마음을 정돈하며 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시간 나의 예배가 온전히 주님 한분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가 수많은 일들을 겪꾸며이 자리에 왔을지라도 우리가 온전한 마음 하나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이 시간 나의 나의 예배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 계도 제목을 놓고 먼저 한번 기도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만며 가 아버지 나이 시간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더 가지고 기도했으면 좋겠 겠습니다. 우리 이곳에서 오늘 말씀 전달 어 전하실 전사님 위해 성령 하나님 함께하여 주시사 강건하게 붙잡아 주시고 오늘 전해시는 모든 말씀이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넣어 준 귀한 말씀 또 우리를 위해 예배하신 말씀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전사님 이곳에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오늘 때보다 힘 있고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해달하고이 시간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나적으로의 방법도 할 수 있지만 주 안에서 내 영혼 다시 태어나 이전 것을 지나고 새롭게 됐네. 죄 내 모습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 생명 내 안에 새로운 삶이 열려 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네 오직 내 삶의 오직 내 그가 주인되셨네. 제로든 내 모습 죄로든 내 모습 예수와 함께 주고 부활 생명 내 안에 부활 생명 내 아 삶이 열렸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 내가 너희 하여 세원이니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속에 그리스도사네 오직 내 삶에 오직 내 마음에 내가 주인네 내 생명 내 생명 그 안에 그의 생명에 나의 사랑이 이과 같을 수 없네. 내 생명 그 안에 내 생명 그 안에 그의 생명하네 나의 삶이 이거 영광 받 수 없네. 내 생명 그 안에 그의 생명 내 앞에 나의 삶이 이것과 내 생명 주 안 내 생명 내 생명 그 안에 그의 생명 내 안에 나의 삶이 나의 삶이 이 이광과 같길 수 없네. 아멘.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속에 그리스도 감사해. 모든 내 삶에 오직 내 주인 계셨네. 오직 내 속에 오직 내 안에 오직 내 속에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사네. 오직 내 삶에 오직 내 마음에 그다 주님께셨네. 아멘.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서 여러분 모두 기쁘십니까? 아멘. 여러분 삶 속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삶 평안이 함께 하십니까? 아멘. 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으니

우리이 기쁨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박수 주시면서 기쁘게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 날 구원했으니 주 날 구원했으니 어찌 잠잠하리 기쁨의 찬송드리 아멘 주의 죄사했으니 어찌 잠잠하리 기쁨의 경배드리 아멘. 주를 향한 나의 사랑. 주를 향한 나의 사랑 수 없네. 어쩔 수 없네. 주를 향하라. 나의 영을 수 없네. 수 없네주리 아멘 모든 슬픔 헤이 헤이 헤이 헤이 헤이 나 기쁜 말씀드리 내 모든 주에 아멘. 아멘. 주 날 구원했으니 주 날 구원했으니

남자리 기쁜 송드리니 주의 사했으니 어찌가리 기쁨에 드리 아멘 주 향한 나의 사랑 주 향한 나의 사랑 나의 사랑 없네 없을 수 없네 없을 수 없네 어 수 없네 주의 성 주의 열리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네 수 없네. 기쁨하신 주님 내 모든 슬픔 헤드리자 주 안에 있네. 나 기쁨의 충리 나쁘신 내 모든 세금을 바꾸셨습니다. 네 헤이 헤이 헤이나 기리 내 모든 삶 주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이 기쁨을 우리가 어떤 말로 주님께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노래로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이 시간의 마음을 다해 찬양하겠습니다. 거듭나 살 수 없네. 내게 자 넘치게 세워 주시네. 아멘. 무슨 노래로 이것을 모두 말할까? 멈추지 않으시는 나를 향하신 사랑 어떤 말로 모두 다 말할 수 없네. 내게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시 내게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시네. 무슨로 이것을 모두할까? 멈추지 않으시는 나를 향하신 사랑 아멘 멈출 수 없네 멈추지 않으리 주를 향해 부르는 이 노래 사랑이 영지하느니 구양에 넘치는 어떤 것말로도 어떤 말로도

모두 다 말할 수 없네. 내게 차도 넘치게 채워 주시는 은혜 무슨 노래로 무슨 노래로 이것들 모두 말할까? 아멘. 멈추지 않으시는 나를 사랑해질 수 없네 멈추지 않으니 주를 향해 부르는 이번에 없네 끝나지 않으니 우리는 치는 멈출 수 없네 멈출 수 없네. 멈추지 않으리 주를 향해 부르는 이 노래 마음이 없네. 끝나지 않으리 아멘 우리 향해 사랑 모두 다 말을 수 없네 넘치게 채워 주시든 노래로 이것들 모두 말할 멈추지 않으시는 멈추지 않으시는 나를 향하신 사랑 멈추지

않으시는 멈추지 않으시는 우리 멈추지 않으시는 멈추지 않으시는 나를 사랑 아멘 주를 향하여 멈추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이이 시간 이곳을 접고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광과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저 바다보다 더 기고 저 바다 보다도 더 넓고 상과 하늘보다 더 높은 주님의 은혜가 이곳에 가득케해 살아계신 주 살아계신 주말 나의 하나님 언제나 넘치는 주의 사랑으로 내 안에 가득 넘쳐리 더 바다보다 더 넓이고 더 바다보다 더럽고 성상과 하늘보다

가없 주님의 은혜 이곳에 가득해 사랑의 나의 하나님 나이신 주 나의 하나님 언제나 던지는 주의 사랑으로 내 안 가득길 영을 내게 감각 내게 감게 반승 내게 반승가 없지 우리 내게 강받은 평화 내게 한 내게 한받은 평화가 넘치네 바다보다 더 바다보다 더고 성상과 하늘보다 더 우리의 은혜가이 권세가 살아계신 주 살아계신 주 나의 가이 언제나 없 주의 사랑으로 내 안에 가기 넘쳐들 아멘 내게 바같은 사랑 내게 내게 받아갔 내게 받아갔네 내게 받아 같은 사랑 내게 받아가는

사랑 내게 받아가는 사랑이 우리 목소리로 내게 샘솟는 기도 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생손는 기쁨이 넘치네 할렐루야 내게 생 기쁨 내게 생 기쁨 내게 생 기쁨이 내게 감각 평화의 강같음 평화가 평화가 평화시네 우리가 내게 감게 감게 같은 평화 없이 평화 평화 없이 평화 평화가 넘치네. 아멘. 이곳에 어떤 환경과 마음 가운데 오셨던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평강과 은혜가 또 기쁨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니다. 영광의 빛 잃고 죄와 절망에

단식 소리만 있네. 주의 사랑을 여전히 나 기다리시며 날 부으신네 하나님. 님은 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신 긴 속에 긴 어둠 속에 영광의 죄와 절망에 간식 소리만 있네. 주의 사랑 여전히 날 기다리시며 날 부르시네. 하나님은 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시니 주는 나의 빛이십니다. 주는 나의 기구원이시니 아멘을 두려워하리 주가 찾으시는 종이 되어 나를 주만 섬기리 주는 나의 힘 소망되시니 아멘 작은 자의 어둠 밝히시리 소망리 땅 위에 주의 영광 비추리 주와 함께 긴 어둠

속에 긴 어둠 속에 영광의 의 빛 죄와 절망의 단식 소리만 있네. 주의 사랑을 여전히 날 기다리시며 날 부르시되 하나님은 나의 거지 않네시니 아멘 기쁘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 주가 찾으시는 종이 되려. 나는 주성이 아멘. 주는 나의 힘되시니 아멘을 밝히십니다. 작은 자의 어둠 밝히시리 소망 잃어버린 빛이에 주의 영광 빛 주님 나의 빛 구원됐습니다. 주는 나의 기쁘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 주가 찾으신 은총이네요. 나는 어디

있지만 나는 주만 주는 나의 되시리 나는 자의 어둠 밝히시 소망이어 영원히 주의 영광 주는 나에게 구원했습니다. 주는 나의 비 구원하시니 내가 두려워하리. 주가 찾을 수여 나는 주방 주는 나의 힘리 자의 어둠 밝히 시리만 잃어버린이 땅 위에 주의 영광 주리 주와 함께 이 시간에 저희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등불로 사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도와주십시오.이 이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부탁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내가 어떤 삶을 영하기 바라시는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찾아낼 수 있고 마음속에 새겨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시간에 이곳에 말씀을 전하시는 전도사님 위에 힘 주시사 하나님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그 따는지 않으시사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 달라고 우리 함께 이 시간 주님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며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성령 하나님 아버지

하늘 하여 주시기로 간절히 주님을 아버지라고 자들 이곳에 모여서 한복만 예수님 기도하며 찬양하 천을 다하고 있니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 경배를 받아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방에 오신 여러분 인지하게 아버지 도와주시고 그 사 마음에 세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삶을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 도와주시고 아버지 나에게 물한 긴다 영가 밟을 수 있는게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을 통하여서 아버지의 말씀을 하시는 사랑하는 역사게 하여

주서 모든 말씀이 이같이 어떤 말씀보다 아고 영행 있는 말씀이 될 수 있도록 아버 도와주며 아버지를 의지하며 만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우리가 볼 수 있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주여 주시옵소서 바라 이 한 주간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이렇게 다시 함께 모여 예배하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특권으로 주어진 이 시간을 놓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풍성히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성령 하나님,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주님께만 두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온 열정을 다하여이 시간 주님만을 바라며 나아갑니다. 예배를 풍성히 누리고자 결단하며 나아가오니 성령님이 시간 도우셔서 우리의 예배를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않게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만을 예배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오늘은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하고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네. 네. 우리가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그분과 단절된 고통 속에 있던 우리가 이제는 사귐의 기쁨을 누리고 또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 이렇게 함께 모여서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참 다행인 거 같습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서 우리 삶에 주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를 느끼며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 오늘은 야고보서 두 번째 시간으로 야고보서 2장을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어, 과거에는이 바울

신학과 야고보서가 서로 반대된다라고 보았던 오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어, 종교 개혁과 루터도 야고보서를 지푸하게 서신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었죠. 흔히 바을 신학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이걸 떠올릴 것 같아요. 이신칭이 아마 교회 다니신 분들은 이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이죠. 바울이 쓴 로마서에서도 이렇게 그 신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다르게 야고보서는 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바로 행함에 관한 것이죠.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야고보의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야고보서 2장은 아예 대놓고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거의 일부 사람들은 야고보서가 행함을 얻는 구원에 대해 말한다고 오해하기도 했었고요. 또는 루터처럼 야고보서를 지푸하게

서신이라고 편화하며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정말 바울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을까요?이 야고보서의 말씀은 정말 잘못 잘못된 진리인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실 알고 보면 바울과 야고보 모두 참된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얼핏 보면 행함, 행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야고보도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 바울은 당시에 믿음이 없어도 행함, 특히 율법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어라고 오해했던 사람들에게 믿음과 올바른 구원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만약 어떤 사람이 상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또는 아끼는 마음이 하나도 없어요. 일도 없는데 꽃따발도 주고 선물도 주고 막 세레나들을 막 불러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보고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죠. 마치 이처럼 바울은 나는 이런

행동을 하고 있어. 나는 이런 예배를 드리고 있고 이런 율법들을 지키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구원받았어.라고 행동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야. 너희가 아무리 행동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믿음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어떤 사람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은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해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그의 삶에서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어떤 행동이나 표현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이 또한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야고보는 이처럼 어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삶에서 믿음에 따른 행동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이 야고보서를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구원에는 믿음에 따른 행동도 필요해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 저는 모태 신앙으로 어 자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어 마음

없이 또 믿음 없이 11조도 잘했고요. 매주 교회 청소도 했고요. 어 나름 성가대도 했고 심지어는 그때도 찬양 인도를 하기도 했었어요. 어 그렇게 저는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요구되었던 어떤 행동들 또는 어떤 사역들 어떤 태도들을 제가 다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의 신앙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연히 기독교인지, 나는 당연히 크리스천이지, 나는 모태 신앙이니까. 근데 만약 저와 같은 사람에게 누군가 바른 신앙에 대해서 또는 올바른

구원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면, 가르쳐야 한다면 아마 오늘 바울이 가르쳤던이 말씀을 알려 줘야겠죠. 예배를 빠지지 않고 아무리 사역이 열심이어도 믿음도 마음도 없다면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이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또는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만약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타나는 제 삶의 어떤 실제적인 모습이 없다면 구체적인 행동이 없다면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게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아마 알려 줘야 할 거예요. 말뿐인 믿음은

진짜 믿는다고 할 수 없어. 믿는다면 믿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떤 행동이 있어야 해라고 말해 줘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야고보서 2장도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본질적으로 보자면 참된 믿음 진짜 믿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함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아 참된 믿음이란 무엇일까? 진짜 믿는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의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또 잘 주목하여 보면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향해 꾸짖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죠.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야 야고보가

지금이 질문을 어떤 의미로 던지고 있을까요? 구원할 수 있다는 걸까요? 없다는 걸까요? 네. 야고보는 단호하게 미안하지만 그런 믿음으로는 너는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7절에 그런 믿음은 애초에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죠. 이건 믿음은 있는데 행함만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말해도 믿음이 있다고 해도 행함이 없다면 사실 그건 믿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 우리가 최근 주일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또 제자가 되는 것이 다르지 않다라고 배우 배 배웠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이이 두 가지는 같은 거야. 이게 다른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믿긴 하지만 제자로는 살고 싶지 않은데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모순일 거예요. 우리는 이 모순을 보고 그를 향해서 진짜 그리스도이라고 말하기 어렵죠. 어,이 야고보서도 이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표현만 다를 뿐이에요. 믿는다고 말하는데 그의 삶에 어, 그 삶에 합당한 삶이 없다면 그것 자체가 오류이고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너의 믿음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믿는게 아니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정말 믿는다면 그 믿음은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해요. 그래서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과 같이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두 사람의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란 인물입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네.

야고보는 지금 여기서 어 창세기에 기록되었던 아브라함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던 그 아주 유명한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죠. 그런데 여러분, 자세히 잘 보면 그것만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야고보는 지금 아브라함의 두 가지 에피소드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은 창세기 22장의 에피소드이지만 23절은 그것보다 좀 더 앞에 있는 15장의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두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기 전에

이미 15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겨졌대요. 15장에서 의롭게 여겨진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진 것이죠. 그리고 그 이후에 22장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아시나요? 그렇게 명령하신 후에 아브라함을 지켜보세요. 그가 어떻게 하는지이 말씀을 듣고 그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주님께서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경외한 줄 알겠다. 아브라함의 모든 반응과 행동을 다 지켜보신 후에 아 이제야 비로서 네가 정말 나를 믿는다고 내가 알겠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야고보서는 지금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22절만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도 말했지만 말씀드렸지만 믿음과 행함은 따로따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지금 믿음과 행함이 함께 작용한다라고 말해 말해요. 이것을 개혁 계정에서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한다라고 번역합니다. 믿음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행함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같이 존재하고 같이 일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이어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브라함이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그 약속을 받아들이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믿음이 22장에서 무엇으로 하나님께 인정되었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때 그의 믿음이 인정받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가 믿는 대로 행동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내가 이제야 알겠다. 야고보서 2장 23절이 이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가 순종했을 때 정말 그가 믿는 대로 행동했을 때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로워진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하나님께 인정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행함으로 인정받습니다. 여러분, 굳이 하나님께서 왜 이런 기록을 남기셨을까요? 아브라함이 진짜 믿는지 믿지 않는지 주님이 모르셨을까요? 우리의 머리카락고 다신다고 하신 분인데 얼마나 속속들이 우리의 속 마음을 다 알고 계시겠어요? 그런데 그런 주님께서 굳이 지켜보시고 내가 이제 알았어. 내가 이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에 믿음에 따른 행동이 중요하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아브라함을 보셨듯이 오늘 우리도 지켜보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우리의 믿음이 생명력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인지 아니면 껍데기만 남은 죽은 믿음인지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에 따라서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될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야고보는 아브라함에이어서

두 번째로 기생 라합의 이야기도 예시로 들고 있는데요. 라합 역시 아브라함처럼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되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야고보가 지금 인용하고 있는 이 라합의 이야기는 여호수아 2장에서 등장하는데요. 2장에 보면 라합의 믿음을 볼 수 있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이 온 땅의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녀가

고백합니다. 이것은 라합 그녀의 믿음의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라합의 고백을 보면 참 좋게만 생각하잖아요. 어쩜 이렇게 행동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어땠을까요?이 이 야고보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 회중들은 어땠을까요? 아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나왔던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주 모범적인

믿음의 조상이죠. 그런 라합은 좀 달라요.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그다 그렇게 갖고 싶지 않은 그런 조건의 사람이었거든요. 우선은 이방인이었고요. 당시 존중받지 못했던 약자 여성이었으며 직업도 기생이었죠. 라합은 아브라함과 달리 유대인의 기준에서는 좀처럼 의로운 믿음의 사람이라고 여겨질 만한 아 그래 이 정도 하면 믿음 좋지라고 말할 만한 그런 조건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그런 그녀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성경은 그녀가 믿음을 따라서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오늘 기록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의로운 믿음에 어떤 기준이 있었어요. 그 기준에서 보자면 라합은 이미 탈락이에요. 이방인 여자. 그것도 기생이니까요. 그런데 야고보는 지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그 믿음의 기준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행함에 따라 그 믿음을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기준에 조금 어긋나 보이는 라합도 믿음에 따른 그 행동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여러분 라합은 아브라함의 모든 조건과 반대편에서 있는 사람이었는데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만 라합은 이방인이죠. 아브라함은 존경받는 어 사람이었지만 기생 라합은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보면은 그 당시 강자인 남자였고 라합은 약자인 여자였죠. 그런데 이 정반대의 상황인 두 사람 모두 행함으로 그들의 믿음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어 아마도 야고보는 이 상반된 두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누구에게나 믿음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만 하고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행동하는 믿음의 구체적인 예시로 2장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야고보는 이웃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가장 먼저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행동을 교정해야 된다고.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죠. 여기서도 잘 보면 야고보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 믿음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또는 가진 것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죠.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한 제자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야고보가 오늘 경고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러면서 이번에도 또 한 가지 예시를 보여 주는데요. 두 사람이 회당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먼저 한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고 회당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당시 로마제국 시대에는 반지를 아무나 낄 수 없었다는 걸 아시나요? 적어도

기사 계급 정도 되는 부유한 사람들만이 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오늘날로 말하면 흔히 말하는 짱짱한 직업 갖고 있고 또 남들보다 더 많은 권력, 어떤 명예, 불을 다 거느린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 사람이 회당에 들어와요. 그런데 그와 함께 또 다른 한 명이 또 회당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앞서 설명한이 화려해 본이 사람과는 행색이 조금 달라요. 그는 남누한 옷을 입고 회당에 들어옵니다. 야고보가 말하길 그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렇게 너무나 다른 상황에 두 사람이 회당에 들어왔습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여러분 회당에는 얼마든지 부자도 올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을 맞이하는 그 회당 안에 사람들의 태도였어요. 사람들이 부자에게는요. 먼저 가서 막 좋은 자를 안 내요. 아,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어디에 앉든지 말든지 관심조차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렇게까지

말해요. 뭐 당신은 거기서 있든지 뭐 아니면 내 밝히 않던지 여러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누군가 여기 발밑에 안 던가요? 이렇게 말한다는 건 상대를 향해 구력스럽고 불명예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 또는 상대가 가진 것으로 차별하는 모습을 향해 야고보가 책망하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놓치지 말아 할 것은 제가 방금이 예시를 설명하면서

어디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씀드렸죠? 회당.이 악한 차별이 회당. 오늘날로 말하면 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믿음 있다고 주장하는 성도의 삶 안에서 행해지고 있던 악한 행동이었다고 야고보가 꼬집고 있는 것이죠. 어 아마도 어 회당에 나온 이 두 사람이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했던 것으로 볼 때 어 회당에 처음 방문한 방문객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 말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여러분

교회의 사람들이 처음 오면 우리가 대부분 어떻게 반응하죠? 방문객들이 어 교회 잘 적응하고 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안내 팀도 있고 또 새가족 팀도 있고 하지 않습니까? 박문객이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기를 바라는 교회는 아마 없을 거예요. 대부분 그들이 이 교회에 등록하고 또 정착해서 함께 신앙생활 하기를 손님에서 가족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어쩌면 야고보의 시대에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이왕이면이 두 사람 중에서 부자가

우리 교회 등록하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백수보다 소위 잘 나가는 직업 가진 사람. 이름 좀 있고 힘 좀 있는 사람이 우리 교회 등록하면 더 좋겠어요. 이왕이면 내가 도와주고 섬겨 줘야 하는 사람보다 나 도와줄 사람, 나 좀 섬겨 줄 사람이 이 교회에 있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금반지를 깨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안내하며 환대하고 초라하고 부잘 것 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여전히 교회 밖에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이죠. 어 여러분 야고보가 지금 책망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도 나름 하나님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나름 나 정도면 신앙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그들의 믿음이 정작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따르지 않습니다. 회당 교회에는 모여 있어요. 그런데 정말 그들의 삶이 교회로 살고 있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어,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과연 어떤 걸까요? 여러분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 그래서 세상과는 다른 방식 좀 별라 보일지라도 난 다르게 살 거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저는 하나님을 믿는 제자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도 오늘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고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여서 예배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야고보서가 이렇게 교회 안에 모인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죠. 당연히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나는 기독교인이야.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교회에 나온 여러분은 정말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따고 어 따르며 살고 있습니까? 정말 믿는 대로 살고 계십니까? 야고보가 계속해서 말합니다.이어서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의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이 야고보는 마태복음에서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특히 산상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이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어, 그래서 야고보서 안에는 이제 문득문득 마태복음에 기록되었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이 구절도 그런 구절 중 하나예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어,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푸토코스를 의미하죠. 하나님 왜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없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오직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으로 주어졌다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 말씀을 바탕으로 지금 야고보서 2장 5절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가진 거 없고 힘없고 초라한 사람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약하고 가진 것 없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천국을 보고로 받은

부유한 사람이며 그 나라의 상속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그들에게 야고보가 야 진짜 부유한 사람은 너희가 무시한이 가난한 사람들이야. 진짜 부유한 사람들은 너희가 무시하고 있는 그 연약한 사람들이야라고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앞에서 야고보가 어이 야고보서 2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영광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 영광의 주라고

야고보가 일부러 표현하고 있어요. 예수의 길이 곧 영광의 길이야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정말 그 영광의 주를 믿는다면 정말 여러분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이 영광의 길이라고 믿고 나도 따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이라면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최고의 법이라고 어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건 모든 율법 중에 이웃 사랑이 어 최고야. 이게

1등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 여기서 최고의 법은 어 헬라어로 노모스 바실리코스라고 쓰였는데 이것은 왕에게 속한 법, 왕의 법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속한 법. 하나님이 원하고 그분의 나라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르게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어 여러분 제가 보기에 어 우리 삶에는 아주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학벌, 재력, 외모, 장애, 성향,

출생지 등등등 우리는 저마다 모두 다른 차이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너무 어렵지 않게 우리 삶 곳곳에서 발견돼요. 가정 안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또는 교회에서 어디에나이 차이는 존재합니다. 어, 당연하죠. 우리 모두가 똑같을 순 없으니까요.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나라를 따른다고 해서 우리 삶에이 차이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도 세상처럼 부유한 사람과 비교적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죠. 학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어 주부도 있고 취준생도 있죠.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안타깝게 크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이 차이는 없을 수 없지만 차별은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것이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야고보가 요구하는 이런 차별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차이들, 우리 삶에 너무나 밀접하게 느껴지는이 차이들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차별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면 주님과 우리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커요, 여러분? 게임이 안 되고 비교가 안 되죠.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사랑에 있어서 주님과 우리 사이의 그 큰 차이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어요. 주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1만 달란트를 빚졌던 그 사람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고도 우리 사이에 그 작은 차이도 사랑으로 채울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자녀로 불러 주신 하나님을 없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런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할 거야라고 말하는데요. 우리이어서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긍휼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휼를 행하지 않았던 사람, 차별하고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그가 행했던 것처럼 똑같이 주님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비 없는 긍휼없는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여러분, 반대로 주님의 나라의 가치에 따라 그가 믿는 대로 긍휼를 행하며 열심히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가 행했던 긍휼과 사랑이 그에게 주어진 심판을 이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이 말씀도 역시 마태복음에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과도 연결되죠. 야고보는 마지막 심판을 염두해 두고이 말을 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긍휼과 사랑을 베풀었던 사람만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야말로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법, 왕에게 속한 법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았죠. 첫 번째는 우리가 믿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행동하는 믿음. 그리고 두

번째는 차별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님을 정말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 나라의 가치를 정말 발견한 사람. 그 나라가 내 삶에 정말 임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저는 이렇게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죠.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가치와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정반대 모습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우리의 사랑도 세상과는 다른 모양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러분은 다른 모양의 사랑을 갖고 계신가요? 우리의 사랑은 과연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오히려 답이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분, 우리가 따르는 분이 보여 주신 그 사랑을 우리도 닮아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잠깐 나눴지만 어떻게 보면 사실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차이 중 우리와 가장 큰 차이를

가진 존재는 하나님이죠. 감히 다할 수도 없는 그 큰 간극을 가진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여 주세요. 우리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여 주십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그 큰 차이를 그냥 훌쩍 뛰어넘는 그런 사랑을 그분은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주님의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차이를 극복한 방법이 세상과는 달라요. 여러분, 세상은 서로 차이를 느끼고 어떤 다름을 느낄 때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 거 같아요.

네가 나한테 맞춰. 네가 나를 좀 이해해 줘. 한번 양보해 줘. 배려해 줘.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나에게 맞춰. 네가 나 있는 곳까지 올라와라고 말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유명한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요.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이 낮고 낮은 땅 위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낫고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더러운 우리에게 그분이 맞추어서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내가 너에게로 갈게. 이 차이가 너무 크니 괜찮아. 내가 너에게로 가면 돼. 그리고 그렇게 우리 편에

서서 사랑하시고 우리 편에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 삶을 속속히 공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우리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 내가 무엇을내어 줄까 고민하는 분이셨어요. 내가 뭘 포기해야 할까? 무엇을 참아야 할까를 고민하십니다. 여러분, 얼마든지 너희랑 나랑은 급이 안 맞지. 나는 거룩한 하나님인데 나는 창조주인데 피조물이 너희가 나한테 맞춰야지. 너희가 나한테 잘 보여야지.라고 하실 수도 있잖아요. 아니, 어쩌면 이 땅을 살아간 우리에게 이게

너무나 당연한 이치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과는 다른 모양으로 기꺼이 낮아지고 아낌없이 내어지고 미련 없이 포기하여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주님은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셨어요. 어 여러분 어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의 믿음이 오늘 우리 삶에서 어떤 행동으로 또 어떤 모양의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삶은 주님을 닮은 모양인가요? 아니면 여전히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런 모양입니까? 우리가 정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주님을 닮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 그래서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인 거 같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양보하지? 어떻게 한 번 더 배려해 주지? 어떻게 하면 더 이해해 줄 수 있지? 우리에게 무엇을 더내어 줄까? 내가 무엇을 더 포기할까? 고민하셨던 그 주님의 사랑을 닮은 것이 오늘 저는 이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이가 때때로는 보이지 않는 가부를 만들 때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요. 우리도 모르게 아, 당연히 내가 받아야지. 그 사람이 날 이해해야지 이러니까 나한테 맞춰 줘야지. 배려해 줘야지라고 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믿음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당연한 세상의 모양을 취하지 마십시오. 사랑하기 위해서 기꺼에 낮아지고 양부하고 아낌없이 내어주고 미련 없이 포기했던 그런 주님을 닮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을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믿음은 행동과 함께 일합니다. 믿음에 따른 많은 행동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야 하는 그 많은 믿음의 행동들 중에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 그분의 나라의 삶의 방식이 바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할 때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정말 그 나라를 믿는다면 그 나라의 백성이라면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 믿음이 이제는 사랑을 통하여 일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사랑으로 실현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기준으로 차별하고 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기준으로 사별없는 사랑을 보여주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의 삶의 발자국이 주님을 닮은 발자국으로 찍히게 하십시오. 한마디를 건네더라도 주님을 닮은 사랑의 언어로 하시고 주님의 시선으로 배려하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그 작은 말투 하나 우리의 작은 몸짓 하나도 다 지켜보고 계세요. 그래서 그 행동 안에 그 사랑 안에 정말 우리의 믿음이 살아 숨쉬고 있는가 아니면 싸늘하게 죽어 있는가를 보실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눈동자 앞에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아 이제야 내가 알았다. 네가 나 정말 믿는 줄 내가 알았다.라고 인정받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이 시간 잠깐 눈을 감고요.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야고보가 경고했던 교회 안에 있던 그 악한 사람이 혹시 우린 아닌지 혹시 나는 아닌지 조용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입니다. 이 시간 함께 내 삶의 주인이라는 곡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갈 텐데요. 어, 여러분, 만약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가 과연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요? 그분이 우리에게 맞춰 주지 않고 그분이 우리의 더딘 걸음의 속도를 맞춰 주지 않고 어 우리의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그 마음에 주님께서 먼저 다가 이해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이 이 시간 주님의 그 사랑을 한번 기억하며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습니다. 흘러가 제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 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함께 고백합시다. 흘러가 흘러가 너 제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창조의 사랑이 창조의 사랑이 나를 빚으시고 따스한 숨결 온전케 하네. 부터 영원토록 그 사랑 내 영혼 붙드시네. 내 모든 삶 내 모든 삶 속에 참 길이 되시고이 길 끝에서 나라 주시네. 내 평생에 모든 순간 그 사랑 내 삶을 인도하시네. 내 삶의 주인이라. 내 삶의 주인이라. 기뻐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이 이 시간 주님의

사랑을 함께 묵상하며 나아갑시다. 우리 함께 다시 한번 고백하겠습니다. 헬러간 어제일과 헬러간 어제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창조의 사랑 창조의 사랑이 나를 잊으시고 가스한 숨겨 날 온전케 하네서 영원토록 그 사랑 내렸고 붙이시네. 내 모든 삶 내 모든 삶속에 참길이 되시고 이게 끝에서 나아 주시네. 내 평생에 모든 순간 그 사랑된 삶 인도하시네. 찬송의 사랑이지시고 말세한

충격 날 엄청케 하네 영원토록 사랑 내 영혼 붙드시네. 내 모든 삶 내 모든 삶속에 참피고이 길끝에서이 길끝에서 나아 주시네. 내 평생에 내 평생에 모든 순간 그 사랑된 내 삶을 인도하 고백하겠습니다. 창조의 사랑 창조의 사랑이 나를 믿으시고 한 숨결 나로네 초부터 영원토록부터 영원토록 사랑 내 영혼 붙시네. 내 모든 덕에 길이 되시고이 끝에서 살아나 주시네. 내 평생의 모든 순간 평생의 모든 사람 그 사랑 내 삶 인도하 내 삶의 주이라 내 삶의 주인이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 내 삶에 내 삶의 주인이라.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야. 어,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신앙이 어, 또는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무언가에 넘어져 있거나 혹은 흔들리고 계십니까? 여러분, 어쩌면 신앙의 모든 부분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칠 때 쉬히 흔들리는 거 같습니다.이 시간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을 기억하고 바라보기 원하는데요. 여러분, 혹시 그 사랑이, 그 은혜가, 그 긍휼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면 다시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여 원합니다. 우리에게 맞춰 주셨다. 우리를 헤아리고자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이 시간 그분께 여러분의 지치고 상한 마음을내어 놓기를 바랍니다.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 가운데 혹은 고상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정말 모든 길로 올바른 길로 가기 원하지만 우리가 우리 걸음에 자꾸만 덮이고 실수하여 넘어지고 그러면 길을 잃고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주을 다시 한번 의지하며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먼저 사랑하셨던 그 사랑 우리의 삶을 끝까지 붙드시는 그 신실한 주님의 은혜와 약속이 여정히 우리의 삶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바라보기 원합니다.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창조의 하나님이 시간 그 사랑으로 허물하고 삼성하는 영혼들 있다며 다시 한번 빚어주셔서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 하나님 주의 따결이 우리 삶 가운데 빛과 같이게 하셔서 아버지 길을 꼬망한 우리들이 그 빛을 따라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이 찬수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며 아버지 시험 가운데 우리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 아버지 우리가 이 정편삼아 우리도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주인도 주시옵소서 모든 순간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주님이 기억하며 나가 연합니다 아버지 집어 고가 있는 마음이 다시금 주의 사랑으로 아버지 심을 얻며 체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래서 우리의 고백이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내 삶의 주인 당신이십니다. 내가 의할 것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고백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소서 주님. 주님 나의 마음에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받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보소서 주님. 오소서 주님 나의 마음이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바르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 주님 마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 마음 내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 내게 사랑해 가르치고서. 다시 내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다시 마 주소서. 주의 성령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게하소서. 주님 같이 마이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과 시선과 마음과 사랑의 모든 행동이 주님의 삶을게 다가고 우리도 주님의 삶에 없는 그런 사랑과 그런 헌신과 그런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될 수 있게 달라고 이제 함께 한복리로 주님 한번 부르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주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을 함께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야고보의 말씀처럼 어쩌면

우리 안에는 악한 마음뿐입니다. 내가 섬김받고 싶고 내가 사랑받고 싶고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것이 우리의 죄의 본성에 일어납니다. 아버지 그러나 그런 마음도 주 앞에 내려뒀사오니 아버지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셔서 성령님 우리를 고쳐 주셔서 아버지가 주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보과 그 기과 아버지 그 영광이 우리가 배우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따라 걸어가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지금 빈겁기뿐이 믿음되지 아니하도록

아버지 우리 마음에 악한 것처게 하여 주시고 정하게 하여 주셔서 우리가 침 따라갈 수 있도록 하여주시 주시옵소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이 영광에 따라가기 고백할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마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인되게 주소서. 나를 나가신 주님의 대신 이루어지도록 주님 우리 시간 목소리로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주님 마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어 사랑하는 우리 사귐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또 방향을 잃고 헤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서 끝까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아까도 나눴듯이 그런 연약한 우리의 걸음에 맞추어 함께 걸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그 주님을 의지해서 끝까지 영광의 길을 말뿐만인 걸음이 아니라 우리의 온 삶에 힘을 실어서 행동하는 삶으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믿는 대로

살아내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라합처럼 주님께 인정받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대로 실수할 수 있을지라도 쉽게 포기하진 않는 느리더라도 꾸준히 꾸벅 주님를 쫓아가며 닮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 함께 찬양하며 나가겠습니다. 습니다. 믿음과 삶의 사람의 일시 여기 너무나 다른 내 모습을 볼 때이 모습도 주가 사랑하실까? 사실 없는 내 모습 그저 주님 앞에 있네. 나 같은 나 같은 자도 살아가 주시고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네. 아픔 속에 주를

작게 여긴 날 부짖으시고 내 손 잡아 주시네. 오직 주님 안에 두려없네 고난을 통해 날 만드심을 믿네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강한 손 날 붙드시네. 오직 주님 안에 오직 주님 안에 소망인데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신 주님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선하신 나 노래하네.이 이 시간 주을 바라보며 한 번 더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믿음과 삶을 믿음과 삶을 살아내는 신령이 너무나 다른 내 모습을 볼 때이 모습도 주가 사랑하실까? 자신없는 내 모습 그저

주님 앞에 있네. 나 같은 자도 사랑하여 주시고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네. 앞 속에 주를 찾게 영인 날 꾸짖지 않으시고 내 손잡아 주시네. 오직 주님 안에 오직 주님 안에 두려없네 고난을 통해 날 만드심을 믿네 주님만이 내보는 것 되시네 주의 강한 손 날 붙으시네 모든 주님 소망인데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신 주님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하신 오직 주의 마음에만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에 두려없는 보안을 통해 날 만드시 믿네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강한 속 날 붙드시네. 오직 주님 안에 오직 주님 안에 서망인데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신 주님 주님만이 내 모든 것 외치네 주의 선하신 나노의 내 안에 매일 마주한 내일 마주한 슬픔을 연하다면 주 예수의 마음을 날마다 하네. 두려운 거를 받아 주가 동행하니 주지하며 오를 걷네 주의 진실한 소망이 깊이 가느 예수의 풍요를 채워하네 하나님의 자녀로 영하며 깊어진 삶을 내시게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어떻게 우리가 모든 행동으로

불아갈 수 있겠어요? 우린 연약하고 넘어지고 실수 투성이지만 그에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다 말씀하시는 그 주 의지하면서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겸진 한 사람 되기 원합니다. 두려운 마음 있으니까 주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힘들고 고난스러운 마음 있습니까?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이 자지하면서 믿음으로 따라낼 수 있게 달라고 주로 한번 부르며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우리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가 복잡한

상황들도 있습니다. 노래 녹찬 현실도 있습니다. 아버지 나 정말 믿음으로 살고 싶지만 주님 따라가고 싶지만 헛전히 흔내고 싶지만 아버지 그것도 못나 연약처럼 봅니다. 그러나 주님 내가 그럼 포기하자 그 길를 갈 수 있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저기 하나님 날마다 도어지신 줄 믿습니다. 아버지 그 집을며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의 말씀처럼 주님 많으면 안 됩니다. 주님 안 의지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부속부증처럼 덮혀가 매달리며 주님을

갈구하며 갈망한 자들에게 아버지 오늘이 시간 그들의 삶 가운데 주님을내어 주십시오. 아버지 주님의 삶을내어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를내어 주십시오. 주님의 위로와 풍성한 사랑과 충만함과 회복을내어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지 아니하고이 상태에서 걸어갈 수 있도록 진도 주시옵소서. 내일 마주 슬픔을 견뎌나가며 주 예수의 마음을 날마네. 두려운 걸음마다 두려운 걸음마다 주가 동행하니 주지하며 오늘 심실한 소망을 깊이 주 예수의 혈의 체원하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로 명예 지켜가며 기뻐진 삶을 주께 드리네.이 아멘.이 시간 올해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 나에게 짐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주님 말고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야고보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 믿는 대로 사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주님의 나라의 그 가치를 실현하며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도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 버겁기만 합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곁에들 함께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해 주시기에이 시간 그 가난한

자 주님밖에 의지할 거 없는 그 포토코스들처럼 주 앞에 나아가 매달리며 간구하고 간구하고 또 간구합니다. 주께 매달리는 자마다 주님의 바지가랑이를 붙드는 자들마다 주님의 위로와 풍요와 회복과 주의 사랑과 주님의 그 걸음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님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이런 마음 담아서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함께 자유롭게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아버지 이 시간 주 앞에 간절히 걸어 나아갑니다. 하나 부토큰것도와 같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아버지 나라의 살아가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그 말씀을 살아낼 수 있도록 아버지 정말 우리가 믿대를 행동하며 살아가며 아버지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라의 가치를 시어하면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 우리 마음과 달리 우리 연약하여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날리 우리 결단과 날리 아버지 날마다 우리 질수하고 넘어함을 아신 주님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너희와 함께할까

말씀하시오니 아버 상 그렇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우리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코스가 내 주 앞에 나아가 매달리는 자들마다 주를 구하며 구하며 구하며 또 구하는 자들마다 주의 바깥를 붙잡고 주여 나를 구하라고 나를 불쌍게 여겨 달라 구하는 자들마다 아버지 주의 위로를 분풍히 세워 주시옵소서 주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사랑을 보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오늘 보발되 있지 아니하도록 아버지 끊임없이 그 생명 주와 같은 아버 그 은혜가 우리의 갓철에게

도셔서 아버지 고난한 인생길을 아버지 견뎌내게 하시고 아버지 영광만 지 아니하고마다 고난과도 함께하는 이 길을 아버지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을지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힘을 잊지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상임의 가족 성도들 하나님 아버지 각자 어려운 상황 가운데 아버지도 어떤 상황 가운데는 알지 못하지만 주 앞에 나아가서 문제들을 포로하며 믿음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게 달라고 그리스도 앞에 살아갈 수

있게 달라고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이 행동의 갈림길에서 집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자를 내게 도와주시고 그게 질문한 자들마다 주님께로부터 아버지한 나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아침에 지혜를 구합니다. 아버지 주의 지혜를 구합니다. 주여 아버지 주님의 사랑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함께 하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심을 닮아가서 아버지 정말 우리가 해 거듭할수록 우리가 매일매일 걸어갈수록 아버더 깊어지고 정숙하고 더욱더

넓어지고 지하여지는 아버지 그런 삶을 주앞에 드려낼 수 있도록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가운데 함께하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아버지 주을 지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주셔서 아버지 마음을 구하 주의 마음 아버주 아버지 주시 아버지 한 것 없 마음 아주 주시고게 하시다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서 합니다. 도와주시 아버지 하 주 앞에 살아 있기 원합니다. 의 믿음의 거이 주 앞에 죽음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 생명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여 우리의 권 하나하나 우리의 말 하나하나 우리 행동 하나하나 우리 모든 자가 너를 꾸고 있다. 내가 너 알았다. 도와 위험을 찬양해 왕의 왕주서 회 안에서 회와이 나라와 사랑 아버지 예수님 예수님 예수 나 주와주지 아니하 아버 한도 되 갈 수 없 아버 감시고 주의 영 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