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역대하 32-33장 / 반전 (히스기야-므낫세-아몬) / 강정규 목사

2020-12-18 · 역대하 32-33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가 지난 주일에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회복하고 유월절 절기를 회복하고, 유다의 종교시스템을 재건하고, 북이스라엘과 분열왕국 이후 예배하는 일에 처음으로 하나 되는 그러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29-31장까지가 모두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역대기는 32장까지가 히스기야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서는 이제 성전의 이야기가 아닌 왕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절, 당시 최고의 국가는 앗수르(앗시리아)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앗수르의 사르곤 2세의 뒤를 이어 ‘산헤립’이 왕이 된 때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패권을 놓고 치고 박던 시기입니다. 산헤립 왕은 바벨론의 공격에 잠시 주춤하지만, 다시 쫓아내고 동쪽의 산악지대를 평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유다가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원정을 떠납니다. 앗수르의 최후의 목표는 ‘애굽’인 것이죠. 그 경로에 있었던 유다는 앗수르의 군대에 의해 공격을 받습니다. 앗수르의 기록이라는 당시의 문서에 따르면 유다의 46개 성읍이 다

함락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만 남은 것이죠. 히스기야는 성문 앞 광장에 백성들을 모읍니다. “힘을 내십시오! 용기를 내야 합니다! 앗시리아 왕과 그의 군대에 겁먹지 마십시오.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은 앗시리아의 왕과 함께 있는 자보다 더 큽니다. 그는 군대의 힘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에 백성이 힘을 얻습니다. 우리도 한번 좌우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권면해 봅시다. “힘을

내십시오.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앗수르는 예루살렘 몇 킬로 떨어진 곳에서 진을 치고 전령을 보냅니다. 이사야서에는 랍사게라고 불리는 직책인데, 그가 와서 유다 백성들을 선동하려는 것입니다. 랍사게가 이 연설을 ‘유다 말’(히브리어)로 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사야서에는 랍사게에게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아람 말’로 하라고 요청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가 앗수르 왕의 항복 권고를 대신 외치는데, 내용은

쉽게 말해 이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히스기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너희는 독 안에 든 쥐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리라고 해도 결곡 너희는 죽고 말 것이다. 나와 내 조상들이 파괴한 모든 나라 중에, 내게 맞섰던 신이 있느냐? 그런데 어째서 너희 신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히스기야에게 속지 마라.” 이어서 산헤립은 편지를 보냅니다. 역대기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이사야 설교 때 우리는 이 내용을 봤습니다. 이 편지는

최후통첩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편지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대하 32: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아마도 역대기에 있는 왕들의 내용 중, 선지자와 함께 기도를 한 내용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입니다. 그들에게 항복을 권하는 최후통첩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왕과 선지자는 함께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내어놓고 기도합니다. 성전에 이 편지를 펼쳐놓고 기도했다고

하죠.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의 천사(사자)가 산헤립의 대군을 진멸시켜 버립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기록물에서는 이 사건이 쥐들로 인한 페스트로 인해 18만 5천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비슷하게 ‘하룻밤에 수많은 쥐 때가 나타났다’고 기록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만, 그곳에서 앗수르 군대가 대패하고 돌아간 것은 역사적 정황에 나타나 있습니다. 산헤립은 그 후에 자기

신전에서 예배하다가, 그의 아들들에 의해서 죽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에서 기도하여 구원을 얻고, 산헤립은 이방 신전에서 아들들에게 죽었다는 이 결론은, 산헤립의 비웃음은 과연 누가 받아야 하는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이것이 국가적인 위기에서의 구원이었다면, 24절 이하는 히스기야 개인의 기록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죽을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8월 말에 이사야 설교를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뤘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에게 찾아온 중병을

놓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뜻을 바꾸십니다. 15년의 생을 연장해주신 것이죠. 그러면서 태양이 뒤로 10도 물러가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표징으로 주십니다. 이사야에서 한 장에 걸쳐 나오는 이 내용을 역대기는 아주 짧게 한 절로 기록합니다. (대하 32: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그러나 이러한 기적의 체험들이 쌓이자 역설적으로 히스기야가 교만해집니다. 바로 다음절의

고발이죠. (대하 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이 사건 또한 역대기는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이 또한 이사야서에서는 강력하게 고발을 하는데, 바벨론의 사절단이 히스기야를 방문한 사건이죠. 그는 바벨론 사절단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합니다. 바로 이 사건 후에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을,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 앞에서 자신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역대기적 표현이 등장하죠. (대하 32:26) 드디어 히스기야가 교만하였던 자신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도 함께 뉘우쳤으므로, 주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벌하지 않으셨다. 뉘우쳤다는 것은 곧 겸비하였다는 것과 같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충실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살았노라고

이사야서나 역대기나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겸비함이 어느 시대에나 있으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고 심판을 미루시고 평안함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이 역대기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이러한 신앙적 위기도 극복하고, 15년의 주어진 시간 동안 평안한 세월을 보내고 죽게 됩니다. 그는 다윗 왕족 묘실 중 높은 곳에 묻힘으로써, 그가 좋은 왕이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33장은 그 후 두 명의 왕을 기록하는데 14번째 왕인 므낫세와

15번째 왕인 아몬입니다. 이 므낫세 왕의 이야기가 우리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그는 매우 악한 왕입니다. 우선 그는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웁니다. 바알들을 섬기는 제단을 쌓습니다. 아세라 목상을 만듭니다. 하늘의 별을 숭배하여 섬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원점 정도가 아니라 전보다 더 극강의 타락으로 몰고 갑니다. 주님의 성전 안에도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듭니다. 성전

뜰에는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을 만듭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아들들을 불살라 인신제사를 드립니다.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그들에게 묻습니다. 또한 스스로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 전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러니까, 앞선 13명의 왕들이 저지른 모든 것을 다 합쳐도 므낫세 혼자 한 악행이 더 큽니다. 이 사람은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렇습니다. (대하 33:9) 그런데 므낫세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서, 악행을 저지르게 한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악은, 본래 이 땅에 살다가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멸망당한, 그 여러 민족이 저지른 악보다 더욱 흉악하였다. 제가 므낫세 이야기가 참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므낫세가 왕이 된 나이가 12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음으로 인해서 태어난 왕이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가 15년 생명 연장을 받은 후, 바벨론

특사들에게 교만 떨다가 유다가 심판 선언을 당하죠. 또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므낫세인데, 그가 왕이 되더니 히스기야가 했던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엎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알 수 없는 것이죠. 히스기야가 경험한 그 생명연장과 해가 물러가는 큰 역사가 자신의 오점과 유다의 오점을 남긴 일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다시금 역설적입니다. 전혀 돌아설 것 같지 않은 므낫세의 회심입니다. 주님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들이 죄악에 빠지자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몽둥이를 꺼냅니다. 몽둥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앗수르. 유다를 치고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 곤경 속에서 주님을 찾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역대기는 므낫세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다고 기록합니다. (대하 33:12)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여 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 앞에서 아주 겸손해졌다. (대하 33:13)

그가 주님께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 간구하는 것을 들어 주셔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왕이 되어 다스리게 하셨다. 그제서야 므낫세는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통을 당하고 나서야 겸손해집니다. 그가 회개하며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역대기의 치트키가 이 악한 왕인 므낫세에게도 치트키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나님도 자신의 말씀 앞에서 진실하시거든요.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스스로 매이십니다. 신실한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뱉은 약속들 앞에 신실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는 악한 자는 약속한대로 반드시 벌하고 심판하지만...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므낫세와 같은 삶을 살았을 지라도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진정한 회개이죠. 므낫세가 돌아왔고,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돌아온 므낫세. 그는

성전을 정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방 우상과 여신상을 제거합니다. 예루살렘 전역에 세어 놓은 이교의 제단을 성 바깥에 버립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보수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립니다. 그렇게 55년을 통치합니다. 유다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왕입니다. 반면에 15대 왕인 아몬은 고작 2년 동안을 통치하는데,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악한 시절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달리 반전이 없었어요. 끝까지 여러 악한 행위를 일삼다가,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습니다. 참

인생이라는 것이 알다가도 알 수 없는 것이죠. 인생은 반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전이냐가 중요하잖아요. 우리가 아사왕 이야기 때에도 그랬죠. 아사가 그렇게 좋은 왕이었다가 막판에 끝이 다른 남자가 되는 오명을 얻잖아요. 요아스도 그렇게 잘하다가 여호야다 죽음 이후 반전이 일어나잖아요. 반면에 바울과 같은 반전이 있죠. 삭개오와 같은 반전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우리 청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저희 청년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어려서부터

믿은 사람들이 많지 않거든요. 20대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배자로 세워져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죠. 이 친구들의 10대와 20대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뜨겁게 드려지지는 못하였을지 몰라도 저는 이 친구들을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로 키워내서 이 친구들의 30대와 40대 그 이후가 더 빛나게 되는 반전을 내다보거든요. 우리 중고등부와 아동부 아이들. 예배 시간에 째려만 보고 찬양해도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이 친구들이 다가올 나름의 삶에서 고난을 겪어내며,

그 안에서 거듭나서 후에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그러한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에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제대로 타올라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언제나 반전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반전은, 나 예전에 열심히 했는데.. 나 예전에 중고등부 회장이었어. 뭐 청년 때 어땠어. 이런 이야기에요. 내 신앙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오늘 3명의 왕. 히스기야는 V자 인생. 므낫세는 반전 인생. 아몬은 반전이 없는 망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과 제가 써내려가는 신앙인의 삶의 이야기를 함께 기대해봅시다. 예전에는 ‘이랬는데’가 아니라, 비록 예전에는 ‘이랬을지라도’ 내 앞은 더욱 빛날 것이라는 각오와 굳은 결심을 갖고, 우리 오늘도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