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 팸 예배] 10분 메시지 + 3C 나눔 + 공동체의 약속 /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3가지 질문

2023-05-12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제가 뒤에서 이렇게 사냥하는데 조금 슬프지만네 앞에 있는 화분에 보면 한 예배당 안에서도 영적으로도 이럴 수 있겠다 나는 깊은 교훈을 안고 지금 올라갔습니다네 우리가 같은 예배당 안에서도 같은 예배는 안에서도 여러분 이럴 수 있어 얘는 옥토고 얘는 한 돌밭 거의 이것도 지금 위태로 오는데 여러분 마음도 잘 지키면서 우리가 같이 예배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우리 주일에 나왔던 민수기 20장부터 21장의 말씀을 갖고 오늘 우리가 함께 다시 한번 제가 10분 정도의 메시지로

나눠서 다시 줄여서 나눈 다음에 우리 그것을 갖고 오늘 우리의 삶을 거기에 맞춰서 나누는 나눔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페이퍼를 참조 들으셔도 되고 아니면 저를 보고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세 가지 질문 어떻습니까 첫 번째는 죄는 차이가 있는가이 질문에 대한 부분입니다 죄를 바라보는 기준이 몇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민수기 본문의 관점으로 볼 때 적어도 죄는 고의적인 재화 비고의적인 죄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죄의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상태에서도 알면서도 짓는 죄인가 아니면 몰라서 짓는 죄인가라고 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제가 아직까지 악해서 짖는 죄인가 아니면 아직까지 약해서 짓는 죄인가에 차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 시내산을 중심으로 해서 출애굽과 나눠지니까 시내산에서 언약 관계가 시작되었는가 아닌가 둘이 따지면 회심하기 전과 후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기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신빙성 언약을 기점으로 출애굽기와 민수기 광야 생활을 비교하면

이것이 뚜렷하게 대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그래서 민수기에서 우리가 민수기 책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있는 왕과 마음이에요 출애굽기 때는 아직까지 그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사랑할 때도 기다려 주셨지만 민수기 때는 그들의 그 돌같이 굳은 마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엄하게 다루시기 시작합니다 민수기를 보면 사실 그들은 밖에 있는 것 같고 불평하고 맨날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은 누구예요 이스라엘 적은 이스라엘이에요 그들은 자신을 들어서 환경 적군

사람 등을 늘 문제 삼고 저것이 문제를 말하지만 실상 민수의 말해주는 것은 너희의 적은 너희 내부에 있는 너희의 돌같이 굳은 마음이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마음이다 그것을 말하고 있어요 죄는 우리가 이거 죄를 구분하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잘못했는가라는 것을 우리가 사건을 통해서 나눠 썼습니다 모세는 물이 바라는 곳에서 물 문제로 다시금 불평하는 백성들의 태도에 화가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듣고 나서 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야 반석의 명령해서 물을내어 주라는데 그가 보인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바위를 했을 때 모세가 어떻게 했어요 그 다음에 무엇보다도 그 일을 행하면서 그가 뱉은 말이 망령된 말이다라고 표현되는데 어떤 말이냐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내는 주체가 누구라고 하면 우리 모세와 아론 자신이라고 본 겁니다 이것은 모세가 이 태도의 마치 기적의 은혜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께

망령된 말이었습니다 근데 특별히 이것이 더 문제가 민식이 됐던 것은 바로 그 모세가 보인 태도가 출애굽기 1세대 출국 1세대에 대표적인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가나안의 정탐 갔을 때 그다 갔다 왔을 때 자신들의 기준대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주시겠다 약속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믿음이 없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우리는 저들 앞에 메뚜기와 같다 이렇게 정체성을

그들을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에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대로 행했던 것은 우리가 어떠하든 뭐가 중요해요 하나님이 주겠다는 그걸 믿어야지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그런 사람이 가난한 땅이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1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광야에서 주는 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근데 모세와 아론이 무리반 사건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냐 알면서도 이렇게 고의로 분노해서 행했고 또 하나 이들이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왔다는게 모세와론이 나를 믿지 않는다 즉 믿음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출애굽 1세대에 그랬던 것처럼 모세와 아론에게이 일에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도 1세대와 같이 광야에서 삶을 마치는 그런 결정을 결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설교 때문에 여기까지만 얘기했지만 조금 우리가 더 지켜볼 곳은 그들이 그래도 그 남은 삶 동안에 하나님의 결정을 잘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따라서 남은 삶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았던 곳은 중요한 포인트에요 그래서 아론은 그 나머지 사람들간에 살다가 죽었을 때 백성들이 30일 동안 애국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봤을 때 아론이 참 애썼지 힘썼지라고 할 수 있고 모세도 그 비스가 산에서 죽을 때 그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보는 모세의 그 모습을 높여주시는 그런 모습들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남게 했던 것을 왜 또 기억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 이것이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결정인가 우리 행동의 결과인가네 이건 어쩌면 교리적인 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를 본문을 통해서 제가 던졌던 질문이에요 교리라는 곳은 성경에 나타난 신학적 어떤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리한 개념입니다 삼위일체 이런 거는 성경에는 없어요 성령 삼위일체는 단어가 없습니다 근데 성경의 내용을 다 종합해 보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마음이 삼위일체족이다라고 이렇게 이해하는게 교리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이 하나의 교리를 가지고 모든 본문 모든 상황을 해석하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자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세상에 초월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의 시간과 다른 하나님의 시간 개념 안에서 쓰여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그 시선에서는 이미 결정된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스스톤 우리의 세상 우리의 관점과 이르렀을 때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현재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관점이 시작되었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언제나 그게 구원에는 우리의 믿음 우리의 반응이 필요하다라는 것이 적어도 우리의 관점에서 기록한 모든 성경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불평하고 원망하죠 하나님은 그 불평에 대해서 이번에는 심판하십니다 근데 하나님이 그냥 심판항으로 끝내도 됩니다 근데 하나님이 불변만 보낸게 아니라 그 심판한 사람 중에서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회개의 길을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다시금 이제는 순종하는 사람을 구원하기로 하나님이

결정하신 거예요 그것이 은혜입니다 놋뱀을 주고 안 주고는 하나님이 선택이에요 안 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주신 것이 은혜예요 구원은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이대로 보는 거예요 우리도 죄를 지었으니까 하나님 우리 구원해서 안으셔도 돼요 근데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 은혜인 거예요 애초에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결정하지 않았으면 우리 모든 죽습니다 구원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선물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의 보내셨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게 아니라 예수의

받아들이는 삶을 구원받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 받아들이고 놋뱀을 바라본 사람 말씀 무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이지 무시하는 자들은 은혜를 주어도 은혜 속에서 죽습니다 미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일이 중요한 것은 1세대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세대였어요 10장 속에서 구원하셨고 홍해 사건 속에서 구원하셨고 광야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또한 언약을 맺었어요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제사장 나라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지속적인 불신앙

그들의 행동에 결과들이 모여서 1세대는 가나안 땅의 못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한번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든지 이미 구원받기로 결정되어 있으니 괜찮다라는 태도를 혹시 여러분이 갖고 있다면 저는 그것이 잘못된 신앙을 하고 말씀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언약 백성도 순종하지 않으면 실패했습니다 언약에서 탈락할 수 있어요 성경에서 왜 그러냐면 성경에서 믿는 것은 내가 그냥 예수 믿는다라는 것이 아니요

믿는 것은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순종하지 않은 사람에게 구원은 영원하지 않아요 나는 순종은 안 해도 난 예수님 믿으니까 난 귀찮겠지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 나의 왕이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받기 원하세요 우리의 마음조차 하나님께 안드리면 우리 하나님께 드릴게 없어요 그 마음을 드린 것을 우리 선택이고 우리의 결정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결정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림 사람들이 회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성령을 보내오셔서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세요 성인을 우리한테 오셔서 하는 일이 뭐냐면 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군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시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성령님이 내 안에 말씀하실 때도 계속 순종하고 순종하지 않고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고 그러면 그런 사람의 구원을 우리가 어떻게 영원하다 할 수 있겠어요 성경 보면 성령께서 계속 보시당하면 근심하시다가 나중에는 성령이 소멸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자 하나님께 삶을 결단한 자에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시며 일하시고 깨닫게 하시지만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까지 억지로 구원하시지는 않아요 그럼 우리가 이 구원의 관계에 대해서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정리해 보면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결정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은혜에 대한 믿음의 반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도 원하고 계시는 거예요

믿음의 반응이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삶으로 보이는 그런 순종이며 그 진실함이에요 완벽하자는게 아니라 완벽하지 못해도 그래도 내 마음은 이만큼 이만큼을 못 살아도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는 것 놋뱀을 바라본 자가 살고 바라보지 않는 자 죽습니다 그럼 이때 놋뱀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은 계속 산 걸까요 그 이후에 그들도 불순종하면 그들도 심판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이후에 삶의 태도에 늘 달려 있는 거예요 신약에서 노폐물 예수의 십자가로

연결됩니다 주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우리의 주어진 삶의 순간 동안 끝까지 순종하면서 따라갈 때 구원은 바로 우리를 향한 약속이 될 줄로 믿습니다네이 문제 갖고 우리가 오늘 우리의 삶을 점검하고 나누려고 하고요 오늘 제가 먼저 저의 나눔을 하고 우리 공동체 약속 같이 보고 흩어지겠습니다 제가 먼저 3c로 저의 삶의 상황을이 본문에 근거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저의 삶은 단순합니다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수요일부터 주일까지는 그의 사역의

일정에 따라 지내고 있습니다 간혹 그 사이에 교회 밖에 모임이나 저를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삶의 상황과 다르게 제 삶은 늘 균일하지만 제 마음은 늘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관점을 보면 저는 가장 행복하게 목회하는 목사와 같아 보이 불구하고 어떤 관점에 보면 제 삶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구름 위를 나는 것 같다가도 호랑이 등이 올라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모세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경험하게 해주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너는 땅 위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야 모세가 하나님과 친구처럼 지냈다고 속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나는 것 같았겠죠 그럼 자신이 감당해야 될 사람 사명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모세의 마음은 또 급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입장에서 저는 아무래도이 본문에 보게 되는데요 결론은 간단하죠 화가 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당연히 잘 보게 됐습니다 결국 우리가 봤던 세 가지 질문에 나타난 3가지 요점은

저는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고의적으로 감정대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판단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또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그런 태도를 살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좀 연결되고 있어요 목사라는 자리가 그래도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인 성경을 많이 보고 전하는 사람인데 그렇다는 것은 동시에 저는 몰라서 죄를 졌습니다라는 것과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들이 무겁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언제나 가장 어렵다는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니 자칫 잘못하면 저의 감 행할 위험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의 실수는 저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경고가 됩니다 나는 감정대로 하지 않았는가 저도 돌아보면 특히 친한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아서 부족했던 저의 사역의 모습들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또한 젊은 날에 혈기도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도모한 것 샘의 변화를 도모한 것은 놋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제게 주어진 내임에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바라보고 의지할 것이 또 없다면 저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내가 내 힘으로 어려움들을 다 이겨내야 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면 저는 이미 번아웃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제가 마음에 고갈됨이나 영의 지침을 이겨내고 하나님이 충만한 가운데 저에게 주시는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바램이 있다면 제 삶의 끝이

모세와 아론 같기를 바랍니다 광야라는 어쩌면 그들의 삶의 주어진 목표를 다하는 것보다 주님 가나안이라는 삶의 주를 모두 다 아는 것보다 주님의 선택과 주님의 인도와 결정 앞에 순종하며 그래도 백성들에게 소중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그래서 적용은 오늘 적용을 썼는데요 적용은 주님이 내 삶에 행하신 일 주신 은혜 행하고 계신 일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 누군가에게 것을 나누어 봐야겠다라고 저의 나눔을 마치겠습니다 나누셔서 감사합니다

네 여러분도 더 풍성하게 더 깊이 있게 잘 나눠서 풍성한 은혜로 팬 메일 모임이 채워지기 바라구요 우리 공동체 하나됨과 평화를 위한 우리 약속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굵은 거부터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나는 이 시간에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이 예배와 우리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모임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에요 저희 사귐의 교회는 공식적인 예배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근데 그 중에 우리가 특별히 팸레벨을 귀하게 여겨서 2주마다 한 번씩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여러분들이 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도 보여서 감사합니다 더욱 소중히 여기 근데 특별히 이 모임이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 기억하시고 우리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마음으로 그 안에 있는 만나는 모든 표면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밑에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모임으로 함께하는 서로를 그분 안에서 존귀하게 바라봅시다 아멘 그렇게 해줄 수 있으시죠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