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희가 로마서 설교를 이제 이번 주에 끝내는데 로마서에 대해서는 페리배 시간에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다가 오늘 이제 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마서 말씀을 우리가 어 본문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함께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제가 10분 정도로 우리 주일에 했던 로마서네 번째 설교 답이 되는 복음에 대해서 함께 다시 나눌 때 어 주일에 여러분 안에 주셨던 마음들도 다시 떠오르고 또 오늘 하나님 주신 새로운 마음들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작해 보겠습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라고 인정받는 성경입니다. 로마 교회에 보낸이 편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성격을 담아내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편지의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론과 결론 16장 전체가 결론인데 인산말들이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선교에 대한 목적입니다. 아, 즉 내가 너희를 방문하겠다. 방문하고 싶다라는 것과 또 내가 너희가 날 좀 도와달라. 선교 나갈 수 있도록 로마의 서쪽으로 선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이런 내용과 너희가 내가 예루살렘 교회에 어 가져들려고 모금하고 있는 선교 헌금에 동참해라. 이런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몸통글인데요. 가장 중심에 있는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 로마서를 복음의 진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가운데 위치이 몸통글 부분을 우리가 다시 분석해 보면 여기에는 주제문과 함께네 개의 챕터가 등장합니다. 주제문 1장 16절부터 17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
즉 우리와 약속하고 우리와 언약하신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주셨는데이 복음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죠. 복음을 주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를 살게 한다라는 것이 이 주제문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문에 따라서 이어지는네 개의 몸통글 주제가 다음과 같은데요. 1부는 누가 어떻게 언약 백성이 되는가에 대해서 1장 18절부터 4장 끝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즉 여기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 바로 예수 사건 예수님의 어 성육신과 예수님의 공생애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이걸 통해서 믿음 이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을 때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는 거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그 변화들 이부에서는 언약 백성의 삶의 원리입니다. 즉 이제는 그렇게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성령의 주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데 그러나 그런 우리를 어 공격하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옛사람 죄의 지배 여전한 사탄의 공격이 우리 안에 있다라는
것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언약 백성 원래 첫 번째 언약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그럼 어떻게 되는가? 즉 그래서 옛 언약이와 백성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와 그리고 새 언약 백성 즉 이제 이방인 가운데 그리스도이 된 여러분과 우리를 포함한 저를 포함한이 새 언약 백성들이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어 설교에 주된 어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 주일에 다루겠지만 언약한백성 삶의 실제 언약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향한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명령이 무엇인지 이거를 다루고 있습니다.이 이 중 3부에 당한 로마서 9장부터 11장은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안타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왜냐면 유대인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구원에 대한 우선권 여기서 우선권이라 것은 그들에게 뭔가 다른 어떤 우선권 조정이 아니라 먼저 불러 주신 그 우선권이 있으나 도리어 지금은 나중된 자처럼 되어 있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부르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합당한 믿음으로서 유대인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이 하나님의 어떤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있어요. 그러나 선택하신 것이 곧 구원하신 것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받았지만 선택 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그리고 우리의 자유 의지에 따른 믿음 이것이 중요합니다. 둘 다 있어야 되는
거예요. 선택받은 유대인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나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한 반응한 사람만 하나님은 사용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달란트 비유의 예화처럼 주인이 누구를 부를지 각 사람에게는 무엇을 맡길지는 우리가 고를 수 없어요. 그 주인의 주권적인 결정 선택입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그 주인의 맡기심에 따라서 반응한 대로 그 결과에 따라서 한 달란트 받은 받은 사람은 어 구원의 물을 보지만 구원받지 못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 맡기신 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율법 때문에 어떤 면에서 오해했습니다. 율법이 있다는 것이 자신들의 구원 즉 언약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보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되심, 하나님이 우리 다스리신다라는 것에 대한 진실한 나의 인정, 진실한 고백,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어 저와 여러분, 우리들도이 부분에 대해서 잘 깨달아야 돼요. 종교적 어떤 행위, 내가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한다. 혹은
교회에 내가 어떤 직분을 갖고 있다. 혹은 내가 지금 복음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고 있다라는 것들은 다 필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주되심 때문이 아니라면 오히려 우리는 내가 무언가 하고 있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겠지라는 착각 속에 빠질 수도 있다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여기 한번 다음 표 부분 한번 읽어 봅시다. 시작.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놓았고 믿음으로 응답할 자유를 사람에게 주었는데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기로 선택하셨다. 네. 이거 저희가 메일 성경 어 해설서 메일 성경 보고 있는데 그 해설서인 묵상과 설교에 나온 일부분의 부분을 제가 발치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은 초대교회 사도들은 주대심 하나님 주대심에 대한 믿음 이것이 이제 주인을 바꾸는 거 이걸 다 말 회심이라고 하는 거죠. 주 되심에 대한 믿음과 그로 인한 성령의 임재를 보면서 이방인도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 신앙생활은
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하나님의 주대심 안에 들어갔을 때 내가 하나님 주인된 삶을 진짜 고백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세요. 변화된 존재. 우리의 비존가 달라진 것 이것을 이해해야 돼요. 옛사람에서 세 사람이 됐어요. 옛 사람과 세 사람 차이는 옛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삶이고 세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된 삶입니다. 옛사람은 내가 주인된 삶이고 세 사람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이제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서 내 존재가 변했기 때문에 이제 나의 정말 주님 되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될 두잉 행위의 모습입니다. 존재가 변했기 때문에 우린 거기에 걸맞게 살아가는 거예요. 코끼리의 예화를 제가 주의를 들었던 거 같이 이전에 어 새끼 코끼리는 그 밧줄에 묶여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성하면 툭 하면 끊을 수 있는데 여전히 그 밧줄에 매어 있는 것은 난 여전히 끊지 못해. 내 존재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똑같이
나는 옛날에도이 죄에 무너졌고 나는 이 죄를 벗어날 수 없어라고 하면 여러분의 존재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 잘 이해하지만 우리가 변화된 신분에 맞게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이전에 내가 이렇게 살았으나 이제 내가 이렇게 살겠다라고 다짐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제 나는 죄를 벗어지 못했으나 이제 성령과 함께하는 나는 죄의 유혹을 십자가에 못 받고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며 그 힘을 사용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혹이 찾아오면
그 유혹을 난 이제 못 박을 수 있어하고 못 받고 난 더 이상 짓지 않겠어라고 하고 살아가셔야 되는 거예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구원이 확신 속에 거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주대심 안에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보증이기 때문이에요. 성령이 내 삶에 주인되었는데이 주인됨을 끝까지 유지한 사람은 구원의 뭐 탈락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이 다스린 말에 내가 늘 살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구원받는다. 이것이 로마서가
말하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시작이지 구원이 우리의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구원으로 추청하신 후에 구원받은 자들과 자들을 모두 부르시어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바로 구원은 내가 그 하나님 백성된 것의 시작이고 그 구원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도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부르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그런 갈등을 해결하 힘은 이제 우리 모두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이 예전에는이 사람이 이방인이고 내가 유대인이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다 하나님 백성이 함께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모두 안에 거하시는 같은 성령님께 순종함을 통해서 극복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당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던 이유는 로마 세계에 가득한 분열과 갈등, 양극화 및 다양한 단절을 극복한 매우 혁명적인 모습으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세상과 달랐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 세상은 자기의 중심성이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기의 중심성을 버리지 않는 한 늘 분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이기주의 혹은 집단 이기주의를 조정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적대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분여시키는 사람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심 안에 있는 교회는 이런 세상의 모습과 반드시 달라야만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세상에도 세대별 갈등이 있죠. 네. 한쪽에서는 위세대를 꼰대라 그러고 네. 또 그것만 공격합니까? 위세대도
전부세 보면서 어 MG 세대는 약하고 나약하고 쉽게 포기하고 지대밖에 모르고네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어떤 것들이 갈등에 있어요. 계층별 갈등도 심각합니다. 직업에 따라서 뭐 전문직은 전문직끼면 놀고 또 어떻게 노동자는 또 노동자끼면 놀고 또 경제력에 따라서 어 부여하는 자 가난한 자가 양극화야 되고 또 거주지에 따라서 여러분 아시지만어야 임대 아파트에서도 저기 가서 놀아 이런 것들이 실제 우리 세상의 모습이지 않습니까?네 네. 또 세속적 삶의 형태에 따른 끼리끼리
여러 가지 문화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고 그 모습에 머물러 있고 그런 것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그 사람은 죄송하지만 사탄의 집배 아래 있는 거와 똑같습니다. 성별 어 남자 여자가 서로 갈라젠더 갈등하고 정치별 보수와 진보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내가 의견일 수 있겠지만 상대방에 대해서 무작정 무시하거나 어떻게 보면은 뭐 공격하거나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아직 하나님의 주대심 안에 들어오지 않은 모습일 거예요. 우리에게 그런
모습이 이전에 있었으나 그러나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됐으니까 이제는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각사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며 공동체를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이 안에서는 우리가 직업이 뭐냐? 우리가 어디에 사냐? 우리가 얼마를 보냐? 혹은 가정의 지금 모습과 환경이 어떠하냐? 이런 걸 다 떠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도 성경 보면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원래 가지가
아니라 젖붙침을 받아서 언약에 속하게 된 돌 감난나무 가지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에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었으나 하나님께 속하게 된 그 은혜를 늘 감사로 기억하되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를 우리는 늘 반명 교사 삼아야 됩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았지만 주대심이 무너졌을 때 즉 그들이 하나님 믿지 않고 언약에 불성실했을 때 이스라엘도 버리셨던 것이 하나님임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겸손함으로 또 감사함으로 늘 그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답은 우리를
만드시 주님께 있습니다. 복음이 그래서 우리의 답이 됩니다. 그러 우리가 그분께 붙어 있을 때 그는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 회복하며 더 나가서 우리를 채우고 넘치게 해서 우리의 안에서 고갈되지 않는 영원한 생수 마르지 않는 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 있다면 먼저 우리가 그 충만함을 누리고 그 충만함을 아직 잃어버린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그런 주님의 자녀들로서 우리가 끝까지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네. 어 이게 오늘 우리 나눔을 다시 한 거고요. 어 오늘 이거에 대한 3C는 어 오늘은 우리 또 다른 분을 제가 초청했습니다. 우리 박혜진 간사님 나오셔서 우리 본인의이 말씀에 대한 3시를 나눠 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박수로네 한번 맞이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 부끄럽지만 한번 저의 3C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사기 교회에 와서 배웠던 많은 내용들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교회와 신앙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어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진리와는 분리된 그런 삶을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교를 졸업할 물에 회심했고 그 제사 비로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제 안에는 많은 진리에 대한 오류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이것이 진짜다라고 믿었던 그 진리에 어 크고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구멍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 구멍들 사이로 저의 풍성한 삶이 빠져나가는 것도 저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중 가장 큰 구멍이 바로 이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 설교의 내용처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그가 하셨던 일과 하고 계시는 일 그리고 앞으로 그가 하실 일들을 전 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선명한데 이전에는 이런 믿음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저의 삶과 저의 신앙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늘 버림 받으면 어떡하나 전전 근 근긍긍하며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나의 신분이 바뀌었고 주인이 바뀌어서 나타나는 변화가 아니라 나의 삶이 어떤 변화라도 있어야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그 나의 믿음과 나의 구원이 안전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때문에 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비보다 두이 먼저 된 삶이었던 거 같습니다. 내가 행동을 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런 어떻게 보면 억지로 노력하며 사는 삶을 저는 좀 살았습니다. 매번 버거웠고 모든 예배를 드리고 모든 사역에 참여했지만 어쩌면 유대인들처럼 그것이 저의 율법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았어. 그런데 진짜 믿음에 대해 알고 나니 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고 어 그 오해를 바로 잡음으로부터 인해서 저의 구멍이 메꿔졌고 저의 삶의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사단의 장난질에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곧 삶이 된다는 그것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믿음과 나의 구원을 증명해 내려 발보덩치한 삶에서 이제는 믿음으로 내게 주어진 축복들을 주장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또다시 도전받는 것은 초대 교회와 같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소금과 빛으로 세상의 갈등과 분열 단절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어이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많이 고민을 해 봤는데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저의 일터였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유치원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강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몇 명일 것 같으신가요? 어 적게는 900명 많게는 1천명의 아이들을 저는 일주일 동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있고 이해가 느리거나 발달이 느려서 뒤쳐진 아이들도 있습니다. 또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 티가 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단체 생활을 하는 유치원 시스템상 어 많이 어 소외되기도 하고 교사로부터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많이 받기도 합니다. 어, 이런 문제들을 교사들은 알고 있고 유치원도 알고 있지만 시스템상, 단체 생활상 어쩔 수 없이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이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직면하고 있는 그 단절과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어, 돕기로 결단했습니다. 발달이 느리고 이해가 느린 아이들에게 너는 왜 아직도 이것밖에 하지 못하느냐? 다그치는 대신 반복해서 설명해 주고 그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눅들고 소회되는 아이들에게는 어 최대한 밝고 웃는 얼굴로 그 아이들과 칭찬과 격려를 해 주려 노력합니다. 물론 이런 삶이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부대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제가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야함이 당연해져서 어 저의 일턴에서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살아보려 합니다. 존재가 복음이 되는 삶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답이 되는 복음이 있음을 그리고 많은 아이들에게 그런 삶이 여전히 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저희 뒷장에 있는 맨 뒤에 있는 공동체 하생과 평화를 위한 약속을 같이 고백하고 흩어지겠습니다. 굵은 글시부터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결의 같은 사람만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존중합니다. 다양성에 감사하며 성령의 주되심에 순종합니다. 네. 우리가 그 로마 교회를 지금 배우고 있지만 로마 교회에 있었던 갈등도 어쩌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혈통끼리 또 이렇게 묶여 있던 그런 부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공동체는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배경뿐 아니라 갖고 있는 마음의 결까지 어 우리의 어떠함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뛰어넘어서 나하고 다른 사람을 함께 존중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서 다양성에 감사하며 무엇보다 다양성이만 머물러는게 아니라 우리는 하나돼야 될 하나돼야 되는데 그 하나됨은 오로지 성령의 주되심에 순종해서 가능하니까 각 사람이 그 마음으로서 오늘도 서로를 대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말씀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에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네. 어, 주님의 기대는이 이상이라는 거죠. 우리가 때로는 주님의 끝 마지막 모습은 원수도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한 번에 거기까지 갈 수 없겠지만 날마다 주님이 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나를 품어주신 그 주님의 마음으로서 오늘 서로를 기쁨으로 대해 주고 잘 품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네. 우리 어 오늘 저쪽에 텐트가 약간 더울 수 있어서 저쪽 텐트에 페을 쓰시는 분들을가 보신 다음에 안 되겠다 싶으면 본당에서 와서 좀
이렇게 하셔야 될 수 있으니까요. 혹시 그렇게 하더라도 여기 먼저 자리 잡고 있는 팀들이 조금 이해해 주셔서 너무 더워서 센트가 좀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보시고 판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우리 흩어져서 어 모임은 한 11시 전으로 해서 끝내 주실 때 만약에 그 패원들 안에 좀 깊이 있는 그 나눔이 정말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조금 더 하고 터지는 걸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이제는 각 하나님이 묶어주신
소름별로 나눔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함께 나올 때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안에 함께 계심을 기억하며 성령께 이끄시는 대로 오늘도 그 안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감사합니다. 좋은 모인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