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여기 붙어라!" / 박예진 전도사

2024-02-25 · 마가복음 7~8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복음에 대한 반응을 교훈하는네 가지 밭의 비유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았죠 그렇다면 이 중에서네 가지 밭이 아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손가락으로 한번 대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혹시 오답 없으시죠네 정답은 4번 푸른 풀밭이었다 men 푸른 풀밭이 아니라면 진짜 정답은 무엇일까요네 맞습니다 좋은 땅이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유일하게 복음의 씨앗을 열매 맺게 하는 좋은 땅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이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힘쓰고 애써야 한다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또 다음 문제를 보겠습니다 자이 설명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문제가 길죠 잘 읽어 보시고 골라보시면 좋겠습니다 자 정답을 확인해 볼까요 자 하나 둘 셋 아직 정답을 잘 못 읽으셨나요네 정답은 2번입니다 입니다 네 가지 종류의 땅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고 그리고 그 마음을 심기는 것이 시앗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네 가지 땅에 모두 뿌려진다 했죠 좋은 땅에만 심기는 것이 아니라

뿌려지는 것은 동일하게 모든 땅에 뿌려진다 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오직 좋은 땅인 사람만이 열매 맺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땅이 되기 위해 는 환란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초와 같이 자라는 내 안의 염려와 유혹과 욕심을 이겨내어야 우리가 좋은 땅이 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설교로 나아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 우리 옆사람과

다시 한번 인사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땅의 마음으로 경청합시다 좋은 땅의 마음으로 합시다네 제가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거든요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7장과 8장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어 8장의 후반부 내용은 9장 10장과 연결해서 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7장부터 8장의 전반부의 내용까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 예수님은 마가복음 6장에서 5천명을 먹이신 일 이후에 다시 바다를 건너 갈릴리 바다 북서

쪽에 있었던 게네사렛이라는 땅으로 가십니다 게네사렛의 도착했을 때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만나기 위해 찾아 나왔습니다 병자도 있었고요 예수님을 꼭 만나야 하는 그런 위급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나 그들도 치료하시고 회복하시고 그런데 그 땅에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병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 또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의도가 조금 달랐죠 이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보자마자 비난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씻지 않고 어 빵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한 이유는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단순히 위생과 관련된 것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위생의 차원을 넘어서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정결 예식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뿌리깊은 전이었으며 그들이 꼭 지켜 하는 였기 때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다 그 다 을 하하 않다도 그에가 것 곧 자나 나를 당시 유대인들은 부정한 사물이나 사람과 접촉했을 때 그 부정함이 자신에게로 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정은 다시 물을 통해서 정결하게 된다라고 믿었죠 그래서 그들은 물을 뿌리거나 아니면 물에 담그거나 아니면 물로 신는 행위 등을 통해서 그들의 정결함을 유지하고 다시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된 손으로 음식을 먹어야만 정결한 음식을 먹는 율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죠 마가복음 7장 3절에는 모든 유대인이이 정결법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이 법은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는 유대인들만의 전통이었다 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여기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정결하게 사는 것에 매우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였겠죠 그래서 그들에게는 많은 정법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외에도 많은 규례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아주 최선을 다해 지켜 나갑니다 이러한 정결법에 따르면 방금까지 부정한 병자들과 함께 부정한 시장에 머물렀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부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물을 뿌려서 다시 깨끗하고 정결하게 한 후에야 음식을 먹는 것이 정결법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몸에 물을 뿌리기는 커녕 손조차 제대로 씻지 않은 채 빵을 먹습니다이 모습을 본 종교 지도자들은 좋은 트리를

잡은 것이죠 그리고 바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따지기 시작합니다 당들의 제자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 시니 유대인의 정결법을 모르지 않으셨을 거예요 어쩌면 예수님도 그 법을 잘 지키며 자라 왔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얼마나 진심인지 예수님도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아 내 제자들이 잘못했군요 죄송합니다라고 반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가 위선을 떨고 있다라고 꾸짖으십니다 성경을이어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그에게 하다이을고에 하였다 이렇게 록되어 있다이 술로는 나를 분명해도 마음 대에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문를 리로 가시며 나를 어 예배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명을 걸고 사귐의 전을 시키다 그들에게 말씀하다 너희는 너희의을고 하나님의을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사야서 29장 13절의 말씀을 인하여서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제가 이사야서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뿐 입니다 어 종교 지도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백이 거룩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진술이 달랐던 것은 결국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죠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어 위선자라는 단어를 히포크리시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이 단어는 는 배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어 지금이야 배우라는 직업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받고 있는 어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조금 무시당하는 그런 직업이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배우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여져 있는 각본 꾸며져 있는 거짓된 이야기를 흉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우를 생각 할 때 가짜 거짓말쟁이 흉내쟁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만약에 속과 겉이 다른 위선을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에게 히포크리시 너희는 배우처럼 흉내내는 위선자 그나라 꼬집었던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이 발언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굉장히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것입니다 누구보다 종교의 진심이었고 누구보다 정결법에 진심이었던 그들에게 너희는 흉내만내는 자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뒤에

이어진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더욱더 강하게 비꼬며 비판합니다 어 구절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져버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잘이라는 표현은 칼로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칼로스의 의미가 좋은 의미에 잘 하다라는 의미보다 약간은 조롱의 의미가 더 강한 단어입니다 그니까 예를 들면 우리나라 이런 것과 같죠 잘한다 잘해 이런 말 들었을 때 여러분 이게 칭찬으로 들리시나요 그렇지 않죠 이걸 칭찬으로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거예요 한글을 잘 모르는

사람인 거죠 그런데 마치 칼로스는 이런 뉘앙스와 어 같은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칼로스의 의미를 살려서 예수님의 대사를 다시 한번 읽으면 이런 말이 되겠죠 아니 너네 하나님 때문에 생긴 전통이라 경외하고 만든 전통이라 ja 그런데 하나님 계명은 잘도 무시 하던데 그게 너네 잘하고 있는 거니 이런 의미와 비슷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얼굴이 막 울그락불그락 하고 막 속이 부글부글 끓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람들 앞에 날마다 서서 강론하고 가르치는 교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분노에 차서 예수님께 반박할 말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전에 먼저 그들의 헐을 다시 한번 찌르시는 거짓됨을 고발하지 그것은 바로 고르반의 관한 것이었습니다 고르반을 예물을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고르반 이다라고 하면 하나님께 드려진 것 구별되어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손댈 수가 없는 것이죠 종교 지도자들은이

전통을 이용해서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교묘하게 무시하고 피해 갑니다 자신들이 소유한 물질에 대해 부모에게는 아 이것은 고르 반입니다 아 제가 드리고 싶지만 고르 반이라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그것을 자신이 여전히 취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물질은 소유하면서 부모에게 해야 하는 물질적 공경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서 그렇게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괜찮다라고 안심시키며 그것을 격려합니다 백성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길을 그들이 막은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들의 이러한 점을 으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이들의 전통이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규례와 예법이 처음부터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 유대인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율법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글로 기록된 성문이라고 한 율법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입으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구전이 있었습니다 에스라

시대 이후에 서기관들은 글로 기록되던이 성문을 어떻게하면 인 백성들이 잘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율법을 그들의 삶을 잘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구전이었습니다 그들이 입술로 말을 전해주는 것이죠 이렇게 하는 것이 예법을 지키는 거야 이렇게 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 그들이 지키고 있던 그 예법과 규례라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의미는 퇴색되어 버렸죠 오히려 그들은 이 전통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교묘하게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리 주변에도 법을 이렇게 교묘하게 잘 이용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했던 그 마음은 다 잃어버린 채 행위에 껍데기만 남은 히포크리티컬 그래서 먼저는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 있는 지도자들을 깨우치고 싶으셨던 것이죠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그지 조금은 강하게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지도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이웃 온 백성들 온 무리에게 확장되어 가는 것을 우린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집단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진짜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고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이 이야기를들은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대체 그 가르침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님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안타까워하시고 답답해 하시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 말씀에 대해서 풀이해 주시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에서 사람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속으로 어가지 않고 속으로 들어가서 기 때이다 예수께서는이 말씀을

하여 모든게 하셨다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께 나온 것 그것이 사랑는 것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과과 인과과과 아와과 악한과 과한것 모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서 분명하게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라고 강조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음식에 자기를 더럽게 한다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기 위해서 성경은 인클루지오 아는 기법 문학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클루지오 처음과 끝에 거의 비슷한 내용이나 거의 똑같은 단어 표현을 사용해서 어떤 내용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과 끝의 내용이 전체 내용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내용이죠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20절 23절의 말씀이 가운데 있는 21절 22절의 말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내용 중 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음과 끝에 나오는 것 마음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품고 있는 나쁜 생각과 악함이 우리를 더럽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깨끗함과 더러움 정결함과 부정함 기준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네가 손을 씻느냐을 씻지 않았느냐 네가 율법을 켰냐 네가 율법에 따른 규례를 지키지 않았느냐 가 아니라 정말 그 가운데 있는 마음을 주님께서는 바라보신다 것이죠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을 아주 깊숙히 들여다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질문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안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여러분은 과연

정결하고 여러분은 정말 나는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으십니까 겉모습은 종교적으로 잘 치장하고이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사실 나의 속마음은 누가 볼까 두려운 그런 부끄러움을 갖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우리는 어쩌면 모두 히포크리시 흉내만내는 배우의 본성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온화한 표정을 흉내내기도 하고요 거룩한 예배자의 모습도 우리는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습니다 또 마음과 달리 사랑의 말이나 사랑의 눈빛을 흉내내는 것이 사회생활 오래한 우리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웃기지 않아도 웃긴 척 슬프지 않아도 슬픈 처 우리 잘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인 척 회심을 흉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얼마든 우리의 속마음을 숨길 가면들을 거뜬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 가면에 사람들은 속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면 너머에 숨겨진 속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얄팍한 연극에 속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혹시 지금이 순간에도 가면을 쓰고 앉아 계시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지난 삶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았는데이 예배당에 앉아 있는 이 순간만큼은 그리스도인의 가면을 쓰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그 가면을 벗어야만 우리는 진짜 주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정결케 하시고 나를 깨끗게 하실 주님은 우리는 가면을 벗어야만 그분의 시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회심의 가면을 쓰고 어 회심을 흉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연극에 모두가 속았고 심지어는 저 자신도 속았던 거 같습니다

어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살다가 어떤 선교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아 내가 가짜일 수도 있겠다라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한테 나는 너의 진짜 모습을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았거든요 두려운 마음 있었고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답답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있었던 저의 분명한 진심은 만냥 내가 진짜 가짜라면 그 가짜의 가면을 벗고 진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라는 소망함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수련에 가서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있어요 하나님 저는 가짜였던 거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가면을 쓴 사람이었던 거 같습니다 교회에서 아주 많은 사역을 하고 교회에서 칭찬받는 는 청년 중 한 명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저의 진심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저의 가짜 된이 거짓됨을 용서해 주시고 진짜 그리스도인 되게 해 주십시오 어 그렇게 몇 시간 울며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회심의 기회를 주셨고 진짜 그리스도의 삶이 시작되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가면을 쓰고 싶은 순간들이 정말

많이 있죠 거룩의 가면 사랑의 가면 용서의 가면 기쁨의 가면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님은 그런 가면은 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완벽하게 잘 꾸며진 가면보다 차라리 조금 서투르고 차라리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연약해도 너희의 진짜 얼굴을 나는 보고 싶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우리의 깨끗한 마음 정결한 마음을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이것을 가르치시면서 주님은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파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정말 철저하게 구별하여 먹었던 사람들이었 율법을 모르시지 않았던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굳이 하셔야만 했을까요 모든 음식물이 깨끗하다는 선언은 왜 대체 필요했던 것일까요 어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과 자신들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주어지고

이방인들에게는 절대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표면적으로는 모든 음식 깨끗하 나라는 이 선언을 통해서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은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나에겐 똑같은 대상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믿고 따르는 자는 정결한 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바로 이 말씀이 이후에 이방 선교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모든 음식 깨끗하기 때문에 이제 마음껏 먹고

마셔라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수해 오던 정결 전통을 폐지하라 그것 이제 필요 없다라는 것이죠 그런 것으로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결 전통을 계속 고수한다면 그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던 이방 사람들과는 접촉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질 수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에 들어올 기회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지금 그 정결법을 폐지하고 이방 선교의 길을 열고 계신 것이죠

이러한 의미는 후에 사도행전 10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떤 환상을 보여주시는데요 보자에 부정한 것들이 가득 담겨서 베드로의 눈앞에 주어집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시죠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이것은 너무 저 부정한 것입니다 저는 부정한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베드로는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곧장 로마의 부장이었던 고넬료를 찾아가 복음을 전해주죠 그리고 그 베드로의 복음을 통해서 고넬료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이야기 고넬료의 회심 사건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시나요 한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그 기쁨 이방인에게도 주님의 나라가 주어질 수 있다라는 그 기쁨에 감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베드로를 비난합니다 네가 감히 무할례자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구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죠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이 사건은 그들의 정결 전통이 얼마나 그들의 복음 전파에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가르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이 일이 일어났거든요 그렇다면 이 가르침을 받기도 전에 지금 예수님께서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해라고 말하는 이 상황에 그들은 절대 이방인들과 자신은 같이 섞일 수 없다는 그 강력한 장애물이 그들 있었다라는 것을 우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직접 나서서 그들의 그런 장애물을 무시고 이제 유대인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들의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고 그들이 어떤 전통을 따르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유대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것 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가르침대로 친히 이후에 이방 선교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가셨던 이방 지역은 도로라고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좀 특징이 있어요 어떤 특징이 있냐면 이방 지역 중에서도 유대인들과 가장 사이가 안 좋은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어 두로가 예전에 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갈릴리 지역을 이렇게 침범했던 어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특히 갈릴리 사람들은 로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거죠 우리가 여러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가 있지만 일본이란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더 감정이 해지요 그런 것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장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그 두로 땅에 그들 이방 민족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그 민족을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악한 귀신 딸을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아이의 엄마를 만나죠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 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의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녀를 수로보니게 여인 또는 시로페니키아 여인이라고 기록합니다 어 시로 페니키아는 시리아 지방에 있는 페니키아는 지역이었는데 어 성경의 표현으로는 수리아 지방에 있는 보니게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역이죠 동그라미가 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한 지방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페니키아는 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후에 이 두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 시리아 지역에 수리아 지역에 있는 페니키아는 시로페니키아 부르자라고 어 약속하고 그 이후로 시로페니키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친히 이방 땅이었던 그 땅에 방문하십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방 여인이었던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죠 성경이 길지만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는 여자가 바로 예수의 손을 보아서의 바람에렸다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신 각에서 귀신을라고 예수께 하였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불리 먹야 한다 자녀들이 밤을 어서들에 것 계속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있는 들 자녀들에게는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다 내가 그 있 예수님의 발 앞에 납작 엎드려서

자기 딸을 고쳐줄 것을 비는이 여자에게 예수님이 평소답지 않은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녀를 라고까지 부르면서 말 입니다 자녀들이 먼저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이방인들에게 주어질 구원 따인 없다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은 친히 유대인들과 논쟁까지 하시면서 유대인들의 전통을 폐하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토대를 닫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예수님은 지금이 수로보니게 여인 앞에서 가장 유대인이고 가장 전통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녀라고 믿었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평소에 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사람들을 개라고 불렀습니다 거리를 또 도는 야생계 같다 그냥 벌 볼 일 없다라고 여긴 것이죠 자신들의 이방인 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더 고귀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거 같습니다 어 구약에 보면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은 종말에 겨우 이루어질 그 정도의 사건으로 밖에 유대인들은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보편적인 생각이었고 지금이 상황을 보면 예수님도 그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의 이 말씀이 진짜 그분의 본심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그 여인을 도와주지 않았 합니다 그리고 그 이방 땅에 심지어 가장 싫어하는 그 두로 땅에는 발을 딛지도 않으셨어

해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걸까요 예수님에게 어떤 의도가 있으셨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말과 또 행동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보편적인 행동을 형상화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들의 모습이 딱 이와 같아 너희들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 딱 지금 내 모습과 같다 그리고 그 여인의 고백 고백한 믿음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복음의 장벽을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 주고 싶어하십니다 자신들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이방인의 구원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렇지 않아 이방인을 멸시하는 그들에게 그렇지 않아 이제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 모두에게이 복음은 주어질 것이 하나님 나라는 시작될 것이다라고 알려주시는 것이죠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진 때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개라고 하는 표현에도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키나리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그녀를 개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키나리이란 단어는 어

평소에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부르는 그 개와는 다른 단어였지만 어 물론 지금 현대인들이 느끼는 이 개와 그 당시에 느꼈던 개의 느낌이 조금은 다르겠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반려견이라고 한번 표현을 해 보겠습니다 어 당시의 문화에서 키나리이 반려견들은 어 주인이 식사할 때 그 식탁 밑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면 식탁에서 먹다가 떨어지는 어떤 음식이나 아니면 먹다 남은 것을 던져주는 주인의 음식을 받아먹기 위해서였죠 누가복음 16장에 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오는데요 그 비유도 잘 살펴보면 부자의 집에 어 식탁 밑에 개들이 누워 있습니다 마치 어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퀸나 리온을 의미하는 어 장면이죠 이것은 당시의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있음에도 그 당시에도 그 강아지들을 소중하게 여겼음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주인도 자기 자녀가 먹을 것을 개에게 주지는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먹다가 남은 것을 주거나 아니면 떨어져서 먹지 못하게 된 것을 줄 뿐이지 자녀가 먹을 음식을 잘 차려놓고 그것을

강아지에게 대접하는 어른은 주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27절에서 예수님이 로보니 여자에게 하신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제시되고 그 이후에 이방인의 차례가 올 것이다라는 의미이죠 그리고 언제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이방인들의 차례가 이제 이 여자의 고백을 통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다시 한번 그러나 그 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 있는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자에게 말씀하셨다가 그렇게 말하니 거라 귀신이 내 딸에게서 나갔다 예수님의 의도 어찌되었든이 여자는 예수님의 심을 정확하게 꿰뚫지는 했을 거요 또 그 인들이들을 어떻게는지 르는지 또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그녀를 키나리 온 반려견이라고 표현하셨다 하더라도 사실 그녀의 입장에선 그게 그거였거든요 믿음의 고백이 어 여기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저보고 개라고 하셔도 그래서

자녀들에게 줄 방을 저에겐 지금 줄 수 없다고 하셔도 자녀들이 흘린 부스러기라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거라도 먹어야겠습니다 그거라도 저에게 주십시오 이것이 이방 여인이었던 그녀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 내 딸에게서 떠나갔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그가 이방인이었던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녀의 고백을 들으시며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야 주실뿐입니다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마 그녀가 그의 입술로 주님이 진짜 주인이시며 나의 문제 해결하실 수 있으니 저에게 부스러기와 같은 은혜라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은 네가 그렇게 말하니 네가 그렇게 고백하고 나를 받아들이니 내가 너의 말을 들어 주겠다라고 반응하 그녀는 예수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찾아 왔겠죠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이 있었음에도 말이에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그의 고백을 통해 그의 믿음을 보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의 나라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도 사람을 가려서 전해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단지 주님의 계획에 순서가 있었을 뿐이에요 주님께서 이 큰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단계가 있었을뿐입니다 그 1단계가 유대인이 뿐이고 그 2단계가 이방인을뿐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마치 이것이 자신들에게만 주어지고 그것이 자신들에게만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죠

유대인이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주님의에 그들은 종교 행위나 하는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조금은로 밀렸을 모르는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여 주님을 붙드는 사람 예수가 정말 나의 메시아라는 그 복음을 붙드는 사람에게 주님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셨던 것처럼 똑같이 이방여인 스로의 여의 딸도 고쳐주셨습니다이가 게 여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후에 두로에서 시돈 그리고 다시

데가볼리 지방으로 가시고 그 후에 다시 갈릴리 호수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만나시죠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고 말람 수 시 하였다 예수께서 그로 어 고대인은 사람의 침이 어떤 치유나 액막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로 고서에 면마 황제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침을 사용하여 어떠한 소경의 눈을 고쳐 주었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그 당시에 문화를 따라서 침을 사용하여이 병자를 치료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에게

그러한 치료법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아마 아니었을 거예요 왜냐면 예수님은 그런 방법 없이도 얼마든지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일 이전에는 이렇게 침을 사용해서 누군가를 고친 경험이 없으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는 건 지금이 순간에는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택했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죠 아마 그 이유는 이 유대 어이 이방인 병자와 인격적으로 소통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 병자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말도 잘할 수 없었죠

그에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눈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으로 사람을 파악하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그가 지금 어떤 감정으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 의도적으로이 병자에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를 치유할 거야라는 것을 이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통하여서 그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가 당시에 이해할 수 있고 그가 당시 알아먹을 수 있었던 방법으로 그 이방인에게 다가간 것이죠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그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가셨습니다 이스라 성들은 그 하나님은 오직 자신들과 소통하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돌보고 자신들만 먹이고 입히는 자신들만의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주님은 때가 되자 이제는 이방인들과 소통하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그들에게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하시고 그것으로 그들을 돌보시고 치료하기 시작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위해 탄식하던 것처럼 이 작은 이방인 병자를 위해서도 똑같이 식하 그리고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병과 장애를 고치십니다 에바다 하는 표현은 단순히 어떠한 신체 특정 부위가 열리고 고쳐졌다 뜻으로 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가 있죠 이것은 인간의 전 인격적으로 억압되고 메인 상태에서 그가 자유하게 되었다 해방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혈증 을 고쳐 주셨던 것처럼 똑같이이 이방인 병자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이방인 선교의 행보는 이후에 유대인 5천명을 먹이셨던 것처럼 이방인 4천명을 먹이시는 것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5천명을 먹이셨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죠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께서 자 말씀하셨다는데 하였다가 그로려 것이다는 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5천명을 먹이신 사건과 매 한 내용이죠 이번에도 예수님은 자기를 보러온 어 먼데서 온 그 무리를 가엽게 여기시고 그들의 끼니를 걱정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합니다 지금이

빈들에서이 광야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이 모든 사람을 먹이겠습니다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미 그들이 걱정했던 것을 주님께서 해결하셨다는 것을 알았어요 5천명을 먹이신 경험이 있으니까요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때도 주님은 빈들 광야에서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심지어 어쩌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몰라요 빵과 물고기는 그때보다 더 많고 먹여야 할 사람들은 더 적으니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머뭇거립니다 과연

그들의 진심이 진짜 불가능하다라고 믿었는지 아니면 이 이방인 사람을 우리 보고 먹이라고라고 하는 마음이었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예수님 의 그 요청을 거부합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우리는 또 다른 문제 앞에서 주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죠 재정의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을 경험했음에도 또 다른 재정 앞에서 우리는 무너지고 좌절하곤 합니다 관계의 문제를 풀어 가셨던 하나님을 분명히 경험한 기억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사람과 또다시 관계가 엉어 시작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일하심 다 우리의 걱정을 먼저 앞세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다시 살리신 주님의 생명을 우린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냉담하게 반응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인 거 같습니다 주님을 꾸준히 성실하게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요 신뢰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번에도 직접 나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개를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주었다 또 그들에게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것을 축복하신 뒤에 그것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여 사람들이 배불리 먹으며 남은 부스러기를 주어 모으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주님은 유대인들을 먹이셨던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이방인들도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어 방금 제가 읽은 새번역 성보다는

개혁 한글 성경이 이것이 더 잘 나타나 있는데요 우리 개혁 한글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가지사 축사하시고 다라고 하는 이 표현들은 성전 용어로 모두 성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하나님이 식탁에서 자녀된 우리가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유대인들 자신의 식탁에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이제 이방인들도 그분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성을

통하여은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그분의 식탁으로 초대하고 계시며 누구든지 그 식탁에 안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녀라고 생각하십니다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을 먹는 개와 같은 존재를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일으키시고 그분의 식탁에 치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자녀에게 주려고 예비했던 양식을 그들에게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어 책의 구조를 통해서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가 표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어 예수님의 순해 사역에 크게 두 번 마가복음에 등장을 합니다 하나는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행했던 유대인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갈릴리를 넘어서 더 확장된 지역까지 이방 지역까지 나아간 이방인 사역이었습니다 어 첫 번째 사역은 주로 유대인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 였고 두 번째 사역은 이방인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 그런데 이 두 가지 사건이 전개되기 전에 모두 공통적으로 바다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처음에 유대인으로 터 시작될 때는 바다를 잠잠케 하셨고 두 번째 이방인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는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 모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어 중에 일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죠 마가는 서쪽과 동쪽을 일부러 의도적으로 구분하기니다 서쪽은 유대인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동쪽은 이방인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마가가 지금이 표현을 통해서 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주님께서 이제 서쪽 유대인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다를 건너 동쪽 이방인에게 가고자 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이 구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패턴이 매우 어 유사하다는 것이죠 고치시고 광야에서 먹이신 일들이 똑같이 두 번 반복됩니다 심지어 광야에서 5천명을 먹 있었던 유대인 사건 그리고 4,000명을 먹이신 이방인 사건은 숫자만 조금 다를뿐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이렇게나 비슷한 이야기를 굳이 두 번씩이나 기록해야 했을까요 우리가 첫 시간

마가복음 프로필에서 배워서 알 수 있듯이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짧은 분량을 가진 책입니다 짧으니까 그 안에 얼마나 액기스들만 담 맞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가 똑같은 이야기를 두 번 썼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마가의 의도성이 다분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야 합니다 먼저 병자를 고치시고 광야에서 먹이신이 사역은 유대인 지역과 이방인 지역 모두에서 일어났습니다 어 좀 더 잘게 쪼개서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예수님께서는 공생의 사역 중에서

일으키셨다 많은 사역들이 있었는데 그 기적들이 크 크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귀신을 쫓는 것 다른 하나는 어 어 병자를 고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연 이적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똑같이이 세 가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5천 명을 먹이신 그 사건을 통해서 자연 이적을 보여 주시죠 그런데 유대인에게만 베푸셨던 그 기적을 이제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베푸시고 계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건을 통해서 그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 주셨고 귀먹고 말더듬는 사람의 사건을 통해서 그들도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명을 먹이신 지금이 사건을 통해서는 똑같이 유대인에게 베풀어졌다 자연 이적이 그들에게도 베풀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죠 아마 이 마가복음을 읽었던 독자들은 앞선 두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 예수님의 행보가 다 비슷비슷하네라고 어려 풋이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쭉 이렇게 읽다가 이방 광야에서 이방인 4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보았을

때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대하신 태도가 전혀 다르지 않고 똑같다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챘을 것입니다 마가는 바로 이한 내용을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의 1차 독자는 로마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로마 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또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방인 신자들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마가는 지금 이야기하죠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를 않으신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이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마가는 그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이방인들 예수님은 그들만의 것이잖아이 복음은 그들의 종교자 생각했던 이방인들에게도 아니야 너희도 믿고 따르기만 하면 이 엄청난 복음이 너희의 것이 될 수 있어 너희도 그분의 자녀 우리의 가족이 될 수 있어라고 이방인들에게도

이야기하는 것이죠 임의 가족 여러분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걸까요 그것은 아마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영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지고 님의 복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후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기적을 보고 자신들이 예수를 따를지 말지이 복음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마음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정말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왔다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도 남을 사람들이에요 이미 엄청난 것들 보았고 전에 들었기 때문 입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그 예수님을 비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오늘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속마을 꿰뚫어 보신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절대 기적과 표적을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가한 모습을 룩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제자들에게 누룩을

주의해라 조심해라 하시죠 종교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 보자 율법의 능통해 나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가면을 쓴 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분의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기적들을 많이 보고 들었어도 그것이 절대 그들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많은 회복을 일으키도록 그들을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외식하는 누룩이 그들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종교적으로 가장 외딴

곳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율법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이 백성이 될 수 없다라고 여겨졌던 그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분 앞에 엎드림으로 그분께서 베푸시는 그 표적과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베푸신 회복을 그들은 직접 경험하는 주인공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교회 안에 멋지게 앉아서 예배하고 아무리 멋진 봉사를 한다 할지라도 만약 그것이 우리의 누룩 우리의 면이라면 우리도 교회 안에 있으나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아니었던 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기에 내 모습이 비록 초라하고 연약 투성이라 할지라도 그습 그대로 진실하게 나오는 자 가면을 벗고 나오는 자들은 분명히 변화하고 회복될 것입니다 그들이 말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연약한 모습 다 괜찮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다 받아주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난 모습이라도 지금 당장 내

모습이 비록 비루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나를 고치시고 변화시키시고 회복하셔서 에 그분의 식탁에 일으 앉 그 주님을 신뢰함으로 나아갈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을 여기 어라고 붙였는데요 제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볼 때 친구들과 놀 때 이런 말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나랑 같이 놀 사람 여기붙어라라고 하면 친구들이 여기 붙었다 하면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언든지 동생이지 하던지 상관하지

않고 몇 명이 되었든지간에 함께 그 놀이를 하며 누렸던 기억이 제 어린 시절에 있습니다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같다라고이 설교를 준비하며 느꼈습니다 나랑 같이 할 사람은 여기 붙어라 네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 네가 아이든 늙은이인지도 상관하지 않아 나의 손을 잡는 자 내 음성을 듣고 기꺼이 나오는 자에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단다 하나님의 손을 잡은 사람은 그게 누구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나라에서 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풍성한 식탁을 누릴 것입니다 그분의 자녀 가족이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며 그분의 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억압과 매임에서 애아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전하던이 복음은 거대한 로마 제국의 둘이었던 아주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서 시작됩니다 그것도 아주 없다고 여겨지던 목수의 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다시 예수님을 통화해서 없다고 생각했던 볼품없다 생각했던

그 제자들을 통화해서 다시 로마 제국을 뒤엎고 온 땅을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복음을 듣고 좋은 땅에 반응을 하는 사람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분 앞에 엎드려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나는 필요하다고 주님이 없으면 안 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들의 깨어짐이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혹시 여러분 마음에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외식하는 누룩이 있으십니까 누룩을

버리고 주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혹시 여러분 아직도 벗지 못하는 꾸며진 가면이 있으십니까 그 가면을 벗고 주님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십시오 어쩌면 이 중에는 나는 자녀보다 개가 더 어울리지 나는 이 복음과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이 공동체와 나는 어울리지 않아 난 이렇게는 못 사는 거 같아라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를 바라보지 마시고 식탁 밑에 숨어 있는 나를 일으키셔서 그분의 식탁에 기꺼이 앉으실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손을 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구였든 지금 누구이든지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네가 나에게로 나올 수 없었던 그 모든 장벽을 내가 이미 다 허물었다 그러니 내 손을 잡아라 마치 자기와 함께 놀 사람을 찾던 한 꼬마 아이처럼 주님은 지금도 자신과 함께 할 백성들을 찾고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할 사람 여기 붙어라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 시간이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 함께 찬양으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