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5일차 (2024.03.29) / 마가복음 15:16~32 / 설교 : 강정규 목사

2024-03-29 · 마가복음 15:16~32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 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 알고 있던 그렇지만 상황을 신경 쓰며 예수님을 넘겼던 빌라도가 있었고요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환영하였고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해면겠습니다 내가 빌라도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소리치던 사람들이거나 저희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남보다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크다는 것을가 기억하며 주의 있음 을 생각하며 우리가 이 시간 찬양으로 다시 고백하기 원합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 십자가를 지시은 십자가를 지심을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랑들 메시아 주면 피와 같이 피와같이 붉은 죄 느이가 없네 십자가로 로로 능과 같이 내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고배 피르 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며 영원 영벌 받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도의 피를 흘리니 죄임 받으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도의 피를 죄임 받으소 보배 피를 흘리니 보배 피를 흘리 죄임 받으소 자격 없는 자격 없는 내힘이 아니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자격 없는 내임 아닌 자격 없는 내이 아니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십자가를 생각하며 함께 고백합시다 십자가에 보여 완전하신 사랑 깊이 보 나니다 십자가에 모여 완전하신 사랑 희어 예배 우리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닌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니 오직 예수님의 복 열로 자격 없는 내힘이 아니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십자가에 보여 전하신 사랑 비어 당합니다 십자가의 보혈 십자가의 보혈 아멘 완전하신 사람 완전하신 사랑 기어 예배합니다 십자가 십자가에 모여 완전하신 사람 힘이 원합니다 아멘 십자가에 모여 완전하신 사람 이어 예배 우리이 시간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내 힘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과 그 완전하신 사랑으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수 있으매

그 은혜로 우리가 항상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고백하며이 시간 기도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사 우리가지 우리 약 주님 우리가 주님과 예배할수록 주를 더 알아가고 더 느끼며 주와 함께 더 해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이 마음을고 우가 주님의 이 아에 모여서 예배하며 하를 시작합니다 주님 리가 함께하셔서 십자가를 욱더 깊이 되며 말 진 내가 어떻게 이제 주님의에 동행하며 그 일에 수 있는지 고하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옵서 하나님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 함께하셔서이 말씀의 간의과 귀를 어 주옵시고 보다 우리 마음이 주 잘받을 수 있는 그 마음의 상태로서 아버지 말씀을 전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옵서 사 예수님 이드 는데 서로 민망하니까네 그럼 우리 마지막 날이니까 좀 옆에 있는 분들 가좀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아 한 주간 함께 예배해 감사합니다 좀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어 저희 교회가 평상시에는 세명이 배를 잘 안 하는데 어 작년까지 이제 고난 주간 하고 올해는 두 번

어 잡혀 있습니다 올해이 첫 번째 전반기 이제 5일의 시간에 마쳤는데 한 주 동안 같이 또 예배하는 분들 또 상황이 안해서 또 온라인으로이 시간에 또 배하는 모든 분들 수고하셨다고 또 함께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아침마다 일찍 와서 어 예배를 찬양을 인도해주신 예배 인도자도 수고하셨고 방송에서도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어 볼 말씀은 계속해서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마가복음 말씀이고 오늘 15장 16절부터 32절에 있는

말씀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아 오늘도 말씀을 교독 어 읽으려고 하는데요 제가 흰글씨 읽고 노란글씨 읽고 마지막 자로 함께 읽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함께 오늘 말씀을 읽겠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을며 희롱을 다 한 후 자세 곳을 벗기고 을라 예수를 끌고 골고다 하는곳 번의 이십 여비를라 그에 있는 대인의 왕이라 지가는들은 기 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이 아하 을에

는다는 자 기관들과 함 하며 서로 말하 그가은 구원하 자기는 구할 수없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 십자가에 못힌 자들도 예수를라 아 어 늘 차 설교는 예수 십자가에는 그입니다 계략과 어 어제 말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불법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불법적인 것임을 알면서도 그 악에 동조한 총독 빌라도의 정의가 무너진 판결에 의해서 십자가형을 받게 됩니다 이 오늘 저희가는 날이 성금요일 불려지는이

금요일인데 바로 이날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은 성경에 나오는 시간으로 보면 제 3시 오늘날로 말하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때문에 판결과 또 그 이후에 어떠면 폭력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쯤에 행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3시가 되면 이제 십자가에서 운명하면 약 섯 시간이라는 시간을 십자가에 달린 채 보내신 것인데 사실은 어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 보통 십자가에는 사람을 훨씬 더 십자가에 사람이 훨씬 더 오랜 시간 달려 있다

죽게 되는데 어 예수님은 어쩌면 더 그전에 받은 핍박이 강했기 때문에 더 빨리 어 돌아가신 것으로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일어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 사건들은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이제 그전에 계속 행해졌던 어 밤에 잡혀와서 밤새도 불법적인 그런 심판을 받고 낮에도 또 심판을 받고 이런 일 일어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이제 군인들에게 넘겨져서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군인들이 이제 로마의 군인들테니까

우리는 마인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 주둔하고 있는 그리고 총독에게 어떻게 배속되어 있는 이 군인들은 로마인들 이라기보다는 팔레스타인 인근 된었을 것으로입니다 아마 근처 있는 시리아나 가이라 레스타인 인근의라 신들의 군인들을 것이 이들은 인들에게 않은 정을 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인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진 수가 자들에게 넘으니 이제 예수님을 주어진 셈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동족인 유대인에게 버림받고 받았고 또 이방인들에게도 멸시와

고난을 받았는데 이것은 모두 구약의 이사야 50장 53장 있는 그런 예언들을 성취하는 내용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자색 옷으로 갈아 입히죠 그다음에 시간을 씌웁니다 이것은 모두 조롱의 의미였어요 왜면 여러분 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색상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자색 옷은 왕과 왕족 등 특별한 계층을 상징하는 그런 색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자세을 입힌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가시도 마찬가지죠이

왕관을 빚어서 왕이라고 하는데 왕간 하나 없네가 왕간 만들어주자고 하면서 가시관을 만들어 대인의 왕이 할지어다 하 이것은 제대로면 대인의께 충성 이런 의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에 대한 조롱의 의미였습니다 근데 여러분가 다 이것은 조의 의미지만 이것은 또한는면 실입니다 님은 오셨 우리 왕으로 오셔서 왕이시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왕으로 일반적인 세상처럼 보좌에 오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보여주는 설이고 십자가는 설입니다 그가 왕이 아니셨으면 그는 십자가에 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왕이기 때문에으로 자기 성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는 그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보이는 이 모든 행위는 조롱이었다 한 후에는 왕을 상징하는 그 옷을 벗기고 도로 그가 입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이제 못 받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로마가 당시에 갖고 있던 가장 극형이 십자가 형이라고 했습니다 왜 십자가 형을 그들은 고수했나 대해서

말하는 팍스 로마나의 하나의 모습입니다 박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있잖아요 로마가 너무 오랫동안 안정적인 통치를 해서 박스 로마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힘에 의한 통치에서 나오는 것이었어요 수많은 땅을 정복하고 속국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 정복된 그런 속들이 마의 치에 반하는 행동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공포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 형을 활용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형은 일반적인 우리가 그 죄인을 처단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십자가는 보통 로마의 대로 로마는 길이 중요하잖아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니까 그 대로의 길가나 혹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위에 세워지는데 십자가형의 목적은 죄인에 대해서 고통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선전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봐라 우리 로마의 한부로 까불면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우리가 이제 실제적으로 그림에는 그렇게 잘 표현되지 않지만 원래는 옷을 다 벗겨서 밝아 벗겨서 달거든요 그러니까

수치심 가운데 나무에 매달아 서서히 죽여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특별히 로마에 반역한 자들의 십자가에 이렇게 달려 죽게함으로써 로마제국의 힘과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 장수는 고다고리는 덕이었습니다 해를 타는 곳인데 언덕의 모양이 사람의 머리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멀지는 지역에 있는 덕이었습니다 그 골고다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수에게 해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보통의 죄수다

더욱 더 가혹한 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러분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인 그런 그림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십자가가 이렇게 있으면 십자가의 로대는 이미 사장에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죄수가 끌고 가는 것은 가로만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사실 로를 어지고 간다는 말이 안됩니다 말이 안되고워 높기 때문에 로를 수가 직접 이것을 가지고 운반해야 했습니다 근데 이 운반하기 전에 맞은 채찍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에요 뭐 다 들어보셨겠지만 그냥 채찍 맞는 것도 아프지만 채찍 끝에는

동물의 뼈나 쇠부치 붙어 있어서 때린다 보다는 살점을 뜯어내는 도구였습니다 그서 심한 체질을 당한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홀로 질머지고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자꾸 못 가니까 아이 로마 제국이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운반할 사람을 찾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에 로마법이 그랬어요 로마법은 철저하게 이제 어떻게 보면 로마에 어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속국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지배권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에 당시 로마

구리는 피지배국 사람들에게 강제로 어떠한 것을 운반시 수 있는 짐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여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이 말씀 있잖아요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심리를 동행하고 이것이 바로 이 말씀을 어 반영하는 거죠 로마군이 너에게 억지로 오랫 동안 뭘 시켰거든 그 사람과 심리를 동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역설적인 사랑의 방식이었던 거죠 이렇게 해서 보는데 하필이 사람에 따지면 제수 없게 걸리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구레네 시몬입니다네이 마가복음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시몬이라는 구레네 뭐예요이 사람의 지금 지역입니다 가련 유다 그 가에 있는 유다 뭐 나사렛 예수 나사렛에는 예수 이런 것처럼 출신 지역을 이름 앞에 붙이는 거죠 구레의 출신의 시몬 이었어요 근데 마가복음은 그냥 구레의 시몬 쓰지 않고 그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경이와 별이의 아버지 어 주역 형제 이렇게 말한 것과 똑같잖아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그럴까요 아마도 알렉산더와 루포 마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후에 바울이 쓴 로마서에 보면 로마서에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 마지막에이 편지에 감사하는 동역자들 이름을 쭉 쓰는데 16장 13절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네이를 미뤄볼 때 구레의 사람 시몬과 그의 어머니가 나오니까 그 아 아내인 거죠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들 알렉산더와 루포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 아마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그날

수없이 우연히 십가 길에 동참하지만 그와 그를 비롯한 두 아들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어쩌면 계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역설이 아마도 그의 출신을 봤을 때 그는 북아프리카 북편에 구에서 유월절 명절을 지키러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우연히 예수 십가 행 마주하고 억지로 십자가를집니다 아시겠지만 예수님이 가르 제자도의 모습 뭐냐면 제자란 자기 십자가를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시몬은 어 자기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날 자기의 십자가를지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고 그러고 정말로 그의 제자가 되는 삶의 전환을 마주하게 된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골고다에 도착합니다 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이제 모 모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받지 않으셨다고 나옵니다 모을 포도주를 주은 건 뭐냐면 전통적으로 모략과 쓰한 포도주는 육체적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뭐 쉽게 설명하면 우리 아이 나을 때 그 뭐 주사제 안정제 같은 거 주지 않습니까 넣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제 십자가에 달린이 재수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까 조금은 그것을 약화시켜 줄 수 있는 것을 몰약을 탄 포도 주었지만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난 무통 주서 안 맞겠어 이거 똑같은 거예요 그죠 어 나는 어 그냥 가겠다라고 겁니다 아마도이는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한 정신으로 왜냐면 모략을 탄 것은 마약적발 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죄패 있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는 강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현장에서

사람들의 모욕은 여전히 이어집니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 사건을 보면 참으로 많은 역설이 존재하는데 예수님의 머리에 있는 이 죄패 자체가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이 세계의 언어로 기록되었고 그때가 이제 월 명 물으니까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왔고 많은들이 왔 그들이 세계

언 통해서 예수가 인의을 어죠 우 알다시피 아까 말처럼 그들은 조롱의의 붙지만 우 예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 왕이고 어 온 인류의 왕인 걸 알고 있잖아요 그것을 그 자리에서 죄인을 가장 참하게 죽이기 위한 십자가의 높은 장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각 다른 언어로 선포되고 있는 현장이 십자가 현장이었다는 것니다 율법들이 조롱의은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이 조롱은 도리어 역설적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와 구원 사역을 말해 주고 있어요 만약 그대

조롱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자신은 구원할 수 있지만 남은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내려오지 않고 달려 죽으심으로써 그가 남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십자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남을 구하지만 은지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 예수님께 십에 실 메시아의 사이기는 마는 기술하는에서 중요한 인축 이스스 수님 십 참게 당으로 하나님께 신정한 그리스의 선교를 수다 그 든것은 설고 있는에게 예수님이 분이지 그 라지만 는했지만 그 그분이

분이라고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장 32절 가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힌 자들도 예수를 조롱한 자들은 예수님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십자가에 다시 예수님은 그들 조롱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진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요 메시아이고 이스라엘 왕 예수 구양 모든 것이 이것을 증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십자가 자체가 온갖 이런 아이러니의 집합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죄를 그냥 눈감 하실 수 없는 정의를 갖고 계신 분이에요

그런데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우리를 그때마다 하시지 않고 용서하고 기회 주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으셨어요 그런데 죄는 봐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희생 방법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십니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돼요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대가 없이 그냥 해지면 우리가 그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가 가져오는 죽음의 가를 죄인에게 물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살 수 없고 주님을 향해서 향후에 변화되며 자라갈

기차 없기 때문에 희생제사를 통해 대신 동물의음 죽음으로의 죄를 사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변화해갈 수 있는 그런 기회의 어떤 방법을 만니다 그것이 구약 이었잖아요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만드신 그 희생제사의 룰을 사용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할 최후의 온전한 희생제물로 독생자를 사용하십니다 자신의 룰 안에 자신을 내던져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그것이 향한 사랑과 또한 하나님의 세계의 그 정의를 모두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로마가 가장 잔인한 사용 도구로 사용했던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를 살게한 나의 삶의 새로운 여정을 만들어 준 생명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로마가 만든 평화는 힘으로 억누른 그런 치였지만 그것의 가장 바에 있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왕은 그곳에 달리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 로마가 줄 수 없는 참된 평화 하나님의 평화 바로 그 샬롬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감히 줄 수 없는 평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화

어쩌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왜 믿어야 되는데 모르죠 왜냐 그들은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지 못하니까 지금 저 밖에서 그냥 살아가는 거 그냥 삶이다 이런 거지라고 하면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알잖아요 예수님의 안에서 우리가 어떤 변화를 겪어 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삶이 시작되었는지 세상은 감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어 아니 우리도 별 수 없이 밖에 있으면 그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함께 모여서 세상이 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세상이 할 수 없는 꿈을 갖고 을보는 마을 살아 있 그스에서다는 것을는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서 마무리하면서 오늘 속 다시한번 구의을 한번 떠올려보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말씀에는 그를 이렇게 록고 있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시 그들이 예수를 끌고가다가라는 람을 누가복음은 구의이기 하면서 중요한 한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예수의를다는 것이 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르 제자 가을 씀기를 르는를 해서든지 아무든지를

따라든기를인 쫓 것 고 말씀했던 것과 또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는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했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누가복음에서이 구의 시몬은 십자가를지고 예수의를 따랐던 제자도의 모델이며 누가복음은이 복음서 읽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이 모을 따라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주간에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고 또 금식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과 다짐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난이 역설적으로 그가 고난 받음으로 우리에게는 고난이 벗어난 새로운 삶이 주어졌던 것처럼 이제는 새로운 삶을 받은 우리가 그의 고난에 참하는 것이 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37절에서 예수님의 제중 세배대의 두 아들은 주님 주님이 영광받으실 때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근데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님 영감받는 곳은 십자가에요 그러면 그 요청은 주님 십자가에 달을 때 저도 오른쪽 십자가에 저도 왼쪽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십시오라고 요청할 같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너희는 지금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마시는 자 정말 너희도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정말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죠 그들은 호원 장담하지만 사실 그때는 그들은 전혀 그 길을 걸어갈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나중에 정말 그 길을 함께 걸어와서 모두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따라가며 그리스도의 남겨진 사명을 다하는 자들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입니까 아 나는 저는 성도인데 저는 성도이지 제자는 아닌데요 성도와 제자는 같은 말입 그리스도의 자을 함께 마실 수 있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세례를 평생에 걸쳐서 우리가 이 살아가는것 그것이 성의 삶이고 제자의 삶입니다 우가 그리스도의 클럽이 아니라 정말 그의 제자라면 리서 그에게 환하는 것이니라의 발국 그 신을 가며 그를 끝까지 르는서 이면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러한 성도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함께 그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행한 일을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 봅니다 내가 십자가 무관한 삶을 살았더라면 전혀 내가 알지 못하고 살 수 없는 삶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거듭난 나의 삶을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잘 동행하며 채워가며 나가 새롭게 되었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맡기신 이 땅에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함께

동하 나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내 에스를 고자 할 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무게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또한 내 삶에 주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감당해 십자가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며 그 은혜를 기억하며 기쁘게 감당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