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마가복음 15장 33절~16장 20절 / 박예진 전도사

2024-03-29 · 마가복음 15장 33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 금요일입니다 어 각자 오늘 예배에 나오신 어 마음들은 다 다르겠지만 오늘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 그 은혜를 더욱 더 깊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우리는 앞서 7주간의 주일 설교와 또 이번 주 5일간의 고난 주간 특새 설교로 마가복음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십자가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는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계속 살펴봤듯이 예수님은 많은 조롱과 핍박 그리고 고문을 당하신 상태였습니다 그 몸이 정말 너덜너덜 찍긴 상태였기 때문에 힘을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구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아 그 십자가를 겨우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십니다 그렇게 장 한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의 손에 밝아 벗겨진 그런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십자가의 하늘높이 매 달리셨습니다 사람들은에서 높이 솟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합니다 예수님을 비아냥거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커녕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사람일 뿐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간의 시간 동안 그 수와 조롱을 듣고 계셨는지 우리는 정확히 다 알 수 없지만 은 그때 낮 12시가 되었을 때에 온 땅에 어둠이 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셨다 추정되는 오후시까지 계속됩니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사실 해가 가장 쨍쨍 밝게 빛나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에 해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온 땅에 어둠이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이를 빛을 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당시 실제로 날이 급격히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날씨가 정말 어두워졌다는 것보다는이 사건을 신학적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보통 성경에서 어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큰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그 슬픔이 이 어둠을 통해 드러났다고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어둠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고 계심을 그 어둠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의 깊은 슬픔이 담긴 심판의 어둠 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채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약 시간 가량에 피를 흘리신 예수님께서 오후 3시가 되자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어찌를 예수께서는 리를 예수님은 사실 이미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모습이었 다가 나무에 모 박힌 채로 자기의 몸 체중을 다 지탱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입니다 학자들은 십자가 형이 식사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미 심한 고문을 당해서 약해질 때로 약해진이 몸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힘이 없어 그 체중을 기지 못하고 밑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러면 수들은

처음에는 숨을 쉬기 위해서 온갖 힘을 다해 그 몸을 하려고 하겠죠 점차 힘이 빠져 가기 시작하고 결국 그들이 스스로의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때가 되면 결국 아래로 처지는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서 숨을 잘 쉴 수 없게 되고 그것 때문에 질식하게 되었다라고 자들은 생각합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또 피를 몇 시간 씩이나 흘린 상태였습니다 질식 위기에 과다 출혈까지 겹친 아주 그런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서 그렇게 힘겨운 상태인 예수님께서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해서 큰 소리로 아버지를 향해서 부르짖으십시오 라는 말은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한 의인의 고난에 대한 외침이었습니다 앞서 나눴 듯이 의인이 예수님은 지금 온 인류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서 모든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가 향별로 인한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죄로 인해서 절대 단절될 수 없었던 그 하나님과 관계에서 단절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외침은

인간의 죄가 불러온 참혹한 고통이 서린 절망적인 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그분의 외침 그분의 십자가를 볼 때에 이것이 우리에게 절망이나 그냥 비명 정도로 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용하 시편 2편은 탄식이 담긴 탄식 시라는 장리 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탄식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그 끝은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끝을 맺 있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탄식과 절규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가 지금은 패배자와 같고 그분의 십자가가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이 온 세상의 승리와 소망의 찬양이 가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을 느꼈기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찬양하고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존 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지고 죽으셨기 우리는 이제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쁨을고 우리가 야 할 슬픔을 다 그러나 그가 린 것은 우리의 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그가를 받음가를고 그가를으로 주님은 사실 고난을 받을 이유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이유도 십자가에 달려 그렇게 수치스럽게 자신의 종말을 맞이할 이유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성경이 말하길 우리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셨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죠 빛으로 오니 우를 위해서 어둠 안에 갇혀

있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 참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와 반대로 어둠에서 빛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죄인을 버리는 것이 쉬울까요 의인을 버리는 것이까요 운이죠 쉽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의인이 예수님을 버리십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의인의 옷을 입히시고 굳이 의인인 자기

아들을 버려 그에게 죄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매 다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렸던 참 아이러니한 하나님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함께 찬양으로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어 제가 사순절 다 참 많이 불렀던 찬양인데요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 불러보는 거 같아요 그런데 노래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이 가사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찬양을 골랐습니다 여러분도 가사를 묵상하며 이시간 함께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셔서 오시었네 말씀하신 대로 본이 되신 예수 얼마나 아프실까 갈보리 그 십자 우리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사랑하셔서 오시네 사랑하셔서 오시었네 말씀하신대로 본이 되신 예수 얼마나 까 잘보니 엉 그 십자가 림없이 피흘림 없이이를 수 없네 고난받을 이유 없으신 주 순종하셨네 그 십자가 지셨네 지셨네 우리 위해 우리 계속해서 고백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아버지의 뜻 이루소서 아버지의

뜻 이루소서 저여 오는 앞에 모든 거들 시니 얼마나 아프실까 처절한 고통 한 고통 우리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아버지의 뜻 이루소서 아버지의 뜻 이루소서 저여 오는 앞은 모든 죽거 드시니 얼마나 아프실까 처절한 고통 처절한 고통 그 십자가 피흘림 없이 피흘림 없이이를 수없네 고난받을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고난받을 이유 없 우리를 위해 순종하십시오 위해 흘림 없이 비흘림 없이이를 수 없네 고난받은 이유 없으신 주 순종하셨네 그 십자가 지셨네 우리이 시간 주을 묵상하며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고백하겠습니다 흘리신이를 수 없네 고난받을 이유 없으신 주 순종하셨네 그 십자가 지셨네 우리 위해네 우리가 방금 고한 찬양의 가사처럼 위해서 그 모든 고통과 십자가를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이 가셨던 그 길을 그 길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숨을 거두자이를 지켜보던 한 이방인이 놀라운 고백을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장은 당시 군인 100명을 지휘하는 로마 장교였던 책임자였다 그렇게 그는 십자가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위하는 사람이었고 모두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맞은편에 서서 그가 숨을 거두신 순간까지 아주 가까이에서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모든 것을 다 지켜보았던 그가 어쩌면 예수님 외에도 많은 죄수들을 십자가에서 처했을 그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았던 그가 고백하는 내용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게다가 이 고백에서 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관사가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사가 없다라는 것은

예수님이 어 신의 많은 아들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의 유일한 아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즉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 독생자 있다라는 것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한 고백이지만 당시 로마 군인인이 백부장에게 더욱더 의미심장한 고백입니다 백부장에게 신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오직 한 사람 로마 황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이한 예수를 보며 그가 짜 신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의 유일한 아들 독자라고 말입니다 황제와 같이 예수가 같은 등급으로 같은 급으로 그도 신의 아들이고 내가 충성을 맹사 황제도 신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매 놀라울인데 그는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만 방금 숨을 거은 저 사람만이 진짜 신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합니다 그고 이것은 마 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고백한 것과 같이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한이 고백은 마가복음의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외침입니다 로마 황제는 가장 높고 가장 화려한 곳에서 아무도 감히 덤비지 못할 강력한 힘으로 그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백부장의 눈에 가장 초라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곳에 올라 가장 연약한 한 죄인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그 예수가 바로 신의 아들이었고 자신이 믿었던 황제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것도 메시아를 그토록 기다렸던 유대인들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을 집행한 유대인을 미워하고 유대인을 잡아죽이는 것에 전 거이 없 이방의 입술을 해서 이 라운 진리가 선포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향한 참 아이러니한 고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백부장의 고백이 일어나던 그때에 다른 한편에서는 또다른 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 을하는 그순간에 다 한편에서는

아 찢어 폭으로 뉘는 사이 벌어집니다 성전의 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장을 찢었다 장이 높이 달기 때문에 아래부터 위로 졌겠죠 그러나 이 사건은 그렇지 않습니다 멀쩡이 잘 매달려 있던 그 회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뚝 끊어지게 됩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이 진짜 하나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에 그분이 일하고 계심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휘장에 찢어진이 사건은

어떤 하나님의 일하심과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일까요 먼저 휘장에 찢어진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성전 예배의 종식과 성전 멸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서 이제 타락한 성전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말씀하셨듯이 이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완성된 이때 타락한 성전의 시대가 진짜 종결을 맞이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들의 성전을 대신하 이제부터는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여 예수의 를 이제 제사상에 의한 성전 예배는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께서 그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렸기 때입니다 그분께 흘리신 피가의를 서하고 게 하기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이 시간 우리이

은혜를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찬양했으며 찬양의 고백을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부여를 지어 아버지 품으로 부여를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보혈을지나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 으로 부여를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기 존귀함 주 니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존귀한 주보 내 영이 새롭게 우리 다시 한번 찬양합시다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부여를지나

아버지 품으로 부여를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보혈이 존귀한 주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는 존귀한 주보혈이 존기 오늘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주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존귀 존귀 주 보여리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기하 주보 내 영이 우리 마지막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존귀한 주고 기한 주모 여리 내 영인 새롭게 하시네 전리 존하 주고 여리 내 영을 새롭게 하멘 예수님께서 그렇게 돌아가시고 또 성전의 회장에 그렇게 졌을 때 그것을 지켜본 것은 부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명의 여자들도 그것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 그리고 작은 야와 요새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습니다 살로메는 이전에 예수님께 찾아서 하나 우편에 하나는 좌에 안달 요청했던 바로 그 여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십자가형을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든 그런 경들이 아니었습니다 41절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섬겼던

여자들이라고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걸어왔습니다 리서 십자가의 길을 함께했던 그들은 예님의 죽음 이후 그 장의 길까지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장부터 부활까지의 여정을 바로 이 여인들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다의 사람이 왔다 그는 영 하라는 람 사람이서 을서 예수의을 서를 깎아서 덤고 덤 려다 라아 어 어 수 다 예수님의 장 정부터 부활 여정까지 성은이 여인들이로

목자였다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날이 안식일 전 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 유대인들의 하루는 저희도 말씀드렸듯이 오후 6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후 3시에 숨을 두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안식일 최대 세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안식일이라고 하는 거룩한 명절을 앞둔 유대인이 시신을 거두어 장래를 치르기 매우 촉박한 시간입니다 시을 만지면 그 유대인은 부정해 고 부정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시신은 현재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은 저주받은 자의 신이었습니다 모두가 껄끄러워하는 신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원래 십자가 형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습니다 시신을 그저 던져서 들짐승들이 먹게 하거나 그냥 부패하여 썩도록 버려두는 것이 일반적인 십자가 형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정법으로 십자가 처형 법으로 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은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스스로 나서 그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겠다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는 그가 명망 있는의 의회 의원이었다 소개합니다 여기서 의회란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했던 사내 들인 공의회를 의미합니다 불법으로 재판을 열고 법으로 주님을 들렸던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현재이 상황의 여론은 해들인 그 의를 중심으로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해 저주받아 죽었다며 소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반기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찌보면 사들인 그들의 승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수다는 것은 사들 의가 보았을 때 썩 달갑지 않습니다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의회에 속한 사람이었으면 명망 있는 사람이었으면 기꺼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43절 이런 요셉의 행동을 대담하게 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요셉의 요구는 로마 입장에서도 썩 달갑지 않은 어 요구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신성 모독으로

예수님이 잡히신 것이었지만 사실 로마의 입장에서는 예수의 죽음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즉 반란군의 선두 주자로 잡아드린 것이 그 명분이었지만 달라고 하는 것을 로마 입장에서 봤을 때 어 예수와 한패가 아닌가라고 오해하기 딱 쉬운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로마의 신기를 건드려이 요셉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것을 몰랐을까요 요셉은 그것을 다 알고도 빌라도를 대담하게

찾아가 예수님의 신을 달라고 대단하게 요구합니다이 요셉은 내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태는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마가복음에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의 소 은 마가복음 1장 15절에 선포 예수님의 가으니 하라가 가이 왔다 하여라 복음을 어라는 말씀에 답해 예수님을 따던 사람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은 자신이 르던 예수님의음을 지켜보고

그을 거 그 장라 치르겠다고 의이 요에게 얻을 것이 하나 없는 유익 것이 하나 없는 그저 그런 무무한 행동이었습니다 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리한 것 투성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대하게 행동하며 나아갑니다 저는 그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이는 성경에서 설명하듯이 그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합니다 하나 나라를 소망하며 기리는 사람은에서 지위나 부이 영화 따이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진짜 보화가 무엇인지

찾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에 의하면 요셉은 사회적 종교적 지위는 물론 재물까지 많은 부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지위가 어떠하든지 전혀 개의치 않아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도 대담하고 당돌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갔던 제자는 참으로 대조되는 모입니다이 요셉 이야기를 그것도 복음서 모두에서 기록하고 있는이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그고 복음서가 리

가르치고자 했던 제자의 습이 일 것니다 자신의 것을 을까 목숨 올까 려워 망 숨는 것이 아니라 치를고 든을 도 대담하게 나아가는 사람 말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세마포로 싸고 자신이 준비했던 돌무덤에 예수님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그 예수님을 따라갔던 그 여인들이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에 예수님이 계셨던 무덤을 다시 찾아갑니다 아마도 요셉은 안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느라고 매우 급게 행동했을 것 니다 그러니 시신 처리가 아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꼭 필요한 거 정말 꼭 기본적인 그런 절차들 거치고 그냥 예수님을 일단 무덤에 어 이렇게 모셨을 확률이 높죠 그래서 그것을 지켜보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요새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신의 향에도 발라야 되겠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난 첫날에 바로 찾아와 그 무덤 앞을 서성입니다 그녀들이 무덤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거였어요 그런데

그 큰 돌문을 우리가 어떻게 열 수 있지 누가 밀어줘야 할 텐데 우리로는 역부족이 그런데 그런 걱정과 달리 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이게 과연 무슨 일인가 누가 감히 우리 예수님의 무덤을이 문을 었는가라고 생각하며 그 무덤 안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자 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렀다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들은 십자가에 못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삼고 있지만 그는 살아가서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보시오 그를 앉아 있던시오 그러니 그들은 가서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고 그들은 나와서에서였다 그들은 벌며을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 여인들이 무덤 마으로 들어가 살펴보자 웬 젊은 남자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그를 보고 깜짝 놀랐던 여인들이이 남자에게 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자 그 남자가이 여인들에게 먼저 말을 건냅니다

놀라지 마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는 에지 않 그를 안했던요 그 말을은 여인들이 보자 정말 예수님의 시체가 있어야할 곳에 아무것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죽음 제자들과 제자들의 신과 부인이 그대로 취이 그분께서 말씀하셨던 부활도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의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서지 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도 함께 있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영육의 완전한 부활이었다 또 당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를 찾아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했으니 갈릴리로 먼저 가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갈릴리로 오라고 당부하 하라는 것이죠 이 말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 그들을 용서하시고 복다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보고들은 여인들은 그 자리에서 뛰쳐나와 도망가버리고 맙니다 성은 그 여인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스고 천사의 당부와 달리 아무 말도 못했다라고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부터 살펴보았던이 여인들의 이야기와

그 중간에 낀 아리마 사람 요셉의 이야기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샌드위치 구조입니다가에서 많를 뜻이 이 이야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가운데에 있는 비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이 마지막까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독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이게 진짜 중요한 거야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부활을 목격하고도 보만 여인들이 아니라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선택했던 요셉의 모습이었습니다 마가는 끝까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망 도망간 사람들과 두려우나 담대하게 주님

앞으로 로 나아간 사람들을 대조하여 우리에게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장치가 됩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다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어 마가복음은 원래 여기서 끝이 나는 책입니다 그들이 다 도망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라고 마가복음이 막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결말에는 사실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읽은 8절로 끝이 나는 짧은 결말의 견해가 있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20절지 기록된 긴 결말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힘이 있고 학자들이 이게 아마 원본일러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 짧은 결말로이 마가복음이 책이 끝이 났다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도 그저 잃고 무서워 떨며 도망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버리고 맙니다 우리가게 알던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이야기는 없이 말입니다 그저 두려움에 사로 잠채이 이야기가 그저 끝이 나버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짧은 결말 그 원본으로이 책을 읽었던 그 당시의 독자들은이 결말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독자들은 아마도 부활을 목한 여인들의 진솔하고 생생한 반응에 마치 자신들도 그곳에 있었던 것과 같은 몰입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히려 꾸며져 있는 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자라는 그런 꿈 꾸며진 말보다 어떻게 사람이 진짜 살아날 수 있지 그렇다면 예수님이 진짜 신의 아들이었고 하는 그 두려움과 말할 수 없는 그 떨림 때문에 그들이 도망갔다고는 그 진솔한 고백이 사실은 독자들의 공감을 더 많이 샀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뚝 끊 결말은 린 결말이 되어서 오히려으로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어 있는 그런 느낌을 받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다고 그것을 본 여인들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지금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나는 그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그런 것들이 그 독자들에게 없이 해지고 또 전해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을 의도하여이 짧은 결말을 썼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마가는 짧은 이 마가복음

안에 예수님을 따를 것 제자의 삶을 결단코 살아낼 것을 결단하도록 수도 없이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독자들로 하여금 너 그렇게 살면 안 되잖아 이렇게 살아야 되잖아 계속 재촉하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느꼈지만 마가복음은 그리 친절하고 상냥한 책은 느낌은 아닙니다 마치 연달아 펀치를 날리듯이 수없이 강조하는 그 샌드위치 구조를 연달아 사용하면서까지 우리에게 계속 질문하고 도전하고 너 정말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느냐고

그것이 정말 그리스도인 모습이 맞느냐고 결단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책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이런 마가복음의 분위기가 결말까지 이어져서이 이야기가 그저 한 신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삶에서 계속 영향력을 미치고 계속 이어지는 진행되어져 가는 그 이야기가 되기를 바을 것입니다 마가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읽고 있는 당신들은 이것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이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처럼 복음과 진리를 증거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망하지도 말고 대담하게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아내라고 말입니다 혹 마가복음의 결말이 20절지 긴 결말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러한 내용은 변하지 않고 이런 마가의 의도도 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마가복음의 결단 촉구에 더욱더 보충 설명이 될뿐입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총 세 페이지의 성경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와 함께 던 사람들이 슬고 있는 곳서 그 예수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보겠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그뒤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왔는데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가른 제자들에게 들어와서 였으나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지 않았다 그뒤에 열한 제자가 식을 먹을 때에서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등이 없고 마음이인 것을 보 그들이 자기가 사랑한 것을 온 사람들의 말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주님께서 그과 함께하시고 여러가지을 따르게 하셔서 말씀을 하여 주셨다 우선 억을 잃고 벌벌 떨며 도망갔던 그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처럼 제자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녀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입니다 사실 마가는 마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죽음 장래 그리고 부활의 목격자를 여인들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즉 증인의 자리에 여자들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실 이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 여자들은 목격자로서 또 증인으로는 신뢰 가장낮은 사람들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증인으로서의 법적 권한이나 효력이 여자에게는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인이 부활의 첫 증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첫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층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충성을 다해 끝까지 따르는 자가 참된 증인이고 결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는 처럼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다시아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제자에 선택한 첫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작 예수님의 제자라고 렸던 이들은 그 마리아의 말을 믿고도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 내가 부활했으니서 갈릴리로 오라고 말하는 그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꾸짖으십니다 마음이 참으로 무구나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만큼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하여 무딘 것을 꾸준히 꾸짖고

있는 복음서는 없습니다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과의 어떤 가르침의 모든 장면에서 믿음이 없다 너희 마음이 무디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혼나게 일수였습니다 그만큼 이 마가복음에서 믿지 못하는 무딘 마음을 회개하고 정말 예수님의 그 가르침을 깨닫고 예수를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꾸준하게 요구하고 있다라는 것이 믿음이 없다라고 혼인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무서워 도망가 숨어 있던 그들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믿지 않았던 그들을 예수님은

다시 찾아가 그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 결말은 믿음이 연약했던 이들이 회복되어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곳곳에 전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 여기까지 마가복음 든이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마가복음은 참 짧지만 참 굵은 책입니다 시작부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다고 정면승부로 도전장을 밀었습니다 또 그렇게 시작된 복음은 누구든지 오직 단 하나 좋은의 마음으로 믿고 나와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 나의 제자가 될 사람을 찾는다고 말씀하시는 그 주님의 손을는 사람은 자가 수 있고 그렇게 주님의 손을 잡은 제자들은 그 길 위해 부르시는 주님을 따라 반드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십자가를 치고 자기와 똑같은 길을 따겠다고 결단 이들에게 기대를 품으시며 먼저 없는 사랑을 으십니다 그래서 제자라고 하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 것지 않고고 기 자신의 욕과 함이 무음을 끝없이 배신하여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까지 마가는 두 상황을 계속 조시키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를 비겁하게 잡아 들인 회원들과 예수의 장를 위해 담대 간 들 요을 조고 있습니다에 를 조롱하는 유대인들과 십자가 맞은편에서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 고백하는 로마의 백부장을 대조 무서워 도망가 부활을 듣고도 믿지 않고 나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예수님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의심하여 숨어

있는 제자들과 무서워 도망갔지만 끝끝내 주를 포기하지 못하고 돌아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마리아를 조시키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2장 이야기를 통해서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이 모든 이야기를들은 당신은 어떻게 살겠는가이 모든 결말을 다 지켜본 당신은 어느 편에서 있겠는가 여러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떤 제자 어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막을 내리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 하나뿐이 그 귀한 생명을 어 편에 지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던져 드는 두려움에 몸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통해서 주님이 그토록 찾고 계시는 한 사람 물론 부족하고 물론 연약하고 때로는 무서워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끝끝내 다시 돌아와 나를 따르겠다 고백하는 그 담대함을 가진 세상에 감당하지 못할 제자를 찾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우리도 그런 제자들이 되어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이 마음을 담아 마지막 찬양을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두워 보이고 두려움으로

가득차 보이지만 사실 그 길에 빛이 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함 함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 시간 그 마음을 담아 함께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예수 우리들의 밝은 빛 예수 우리들의 밝은빛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주의 길를 따라가는 주의 자녀들 게 항상 밝은 빛을 비추시네 그는 구원의 주 하나님 그는 구원의 주 하나님 고의로 세상을 다스리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놀라운 주님의 영광 놀라운 주님의 영광 하늘에서 찬란함에 빛나는 주의 영광이 땅에

오셨네 어둠을 밝히고 생명 주시네 영원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높이 영광과 찬양받으실 그이를 경배합니다 슬픔을 거두고 내게 자유 주시네 기쁨의 노래를 영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주님 그 빛으로 오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밝히십니다 오셨네 어둠을 밝히고 어둠을 밝히고 생명을 주십 새생명 주시네 영원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높이 높이 영광과 찬양 받으신 그이를 경배합니다 슬픔을 거두고 내게 자유 주시네 기은의 노래 영원한 나의 빛 예수께

영원한 나의 빛 예수께 어 제가 마가복음 설교를 위해서 어 평소보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더 묵상해 그런지 이번에는 더 깊은 사순절을 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순절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마가복음을 한장 한장 더 알아갈수록 또 이번 고난 주간을 지나면서 제 안에 한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내가과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내가 정말 예수님처럼 나도 십자가를지고 그길 똑같이라 수 있는가지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살이 그러겠다고 입이 떨어지지 않아 울었던 거 같습니다

십자가 생각할 때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셨던 그 길을 생각할 때 여전히 제 아내는 제자들처럼 주님을 끝까지 선택하지 못했던 그 많은 사람들처럼 그 여인들처럼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내 십자가를지고 당당히이 길을 걸어가고 싶은데 나도 아리마 요과 같은 람이 싶은데 렵고 막막한 마음과 걱정이 먼저 앞서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앞에서는 여러분 우리 함께 제자로 살아봅시다라고 외친 저조차도 제자의 삶이 한없이 무거워 쉽게 그렇게 살겠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두렵지 않아서도 아니고 우리가 용감 상에서도 아니고 나의 생명이 전혀 깝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나의 어둠을 밝히시고 새생명을 주시는 나의 히 빛나는 나의 예수님 그분께서 우리와 히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리는 그분을 믿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의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지금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군가는 저처럼 정에 앞설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은 결코 쉽지도 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담대하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홀로 두시 않겠다라고 말씀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계속 영원한 우리의 빛되신 주님께 기쁨의 노래를 올려드립시다 주님 제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래도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나의 어둠의 길 가운데 빛을 밝혀 주시고 생명이 이를까 두려워하는 나에게 내가 너에게 참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날아갈 때에 세상속에서 주님의 빛을 밝히는 우리도 제자들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그런 제자로 살아냅시다 이시 이런 마음으로 계속해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