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마가복음 5:21-43 / 믿음 맛 샌드위치 / 강정규 목사

2021-05-14 · 마가복음 5:21-43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성경은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정교한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의 깊은 연구의 결과에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이라는 책은 특별히 샌드위치 구조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16장으로 비교적 짧은데 이 안에 무려 9번이나 샌드위치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샌드위치 구조’라는 것이 조금 생소하실 수 있겠죠. 그러나 말 그대로 샌드위치를 떠올리면 됩니다. 햄버거 빵을 예로 들어볼까요?

빵 하나를 잘라서 그 안에 여러 가지 내용물을 넣는 방식으로 만들죠. 그 안에 치킨이 들어가면 치킨 샌드위치가 되고, 참치가 들어가면 참치 샌드위치가 됩니다. 가운데 있는 내용물이 그 샌드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나타냅니다. 동일하게 어떤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갑자기 중간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는 경우가 샌드위치 구조입니다. A-B-A’ 형태가 되는 것이죠. A라는 이야기 사이에 B라는 이야기가 삽입된 것입니다. 샌드위치에서 중요한 것은 가운데 있는 내용물입니다.

샌드위치 구조에서는 B가 내용물이죠. A라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B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제가 ‘무.성.무’라는 제목으로 마가복음 11장의 샌드위치 구조에 대한 설교를 작년 3월쯤에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5장의 말씀을 볼 것입니다. 여기서 A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야이로의 딸에 대한 것입니다. 그 부분을 먼저 읽어봅시다. (막 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막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막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 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야이로의 부탁을 받고 그의 딸을 고치러 그와 함께 가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B이야기가 삽입됩니다. (막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막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막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막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막 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고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 다시 야이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A’에 해당하는 것이죠. (막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막 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막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막 5: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이 부분에서는 야이로와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 이미 딸이 죽은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십니다. 그러니까 야이로의 딸에 대한 이야기

속에 혈루증 앓는 여인 이야기가 삽입된 형태이죠. 그런데 이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제법 있습니다. ① 여인 : 두 이야기 모두는 여인에게 행해진 것으로, 본문에 “딸”이란 단어가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23, 34절) ② 열두 해 : 두 이야기에서 “여인”과 “딸”은 모두 “열두 해”(12년)란 공통된 숫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 되었고(42절), 혈루병 걸린 여인은 “열두 해” 동안 앓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25절). ③ 엎드림

: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딸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고”(22절), 혈루병 걸린 여인도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엎드렸습니다”(33절). ④ 절망적인 상태 :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걸린 여인 모두 병 고침에 대해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었다. 야이로의 딸은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고(23절), 심지어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였지만(35절)다시 살아났고, 혈루병 걸린 여인도 많은 의사를 찾아가 보았지만 괴로움만 더하고 돈도 허비하며 병만 더욱 중하여진

상태(26절)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⑤ 접촉에 의해 고침 받음 : 두 이야기 모두 여인들이 예수님과 “접촉”함으로써 고침 받았습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27-28절) 병 고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41절)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시면서 아이의 병이 나았습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찾아온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예배하는 장소였죠. 회당장은 공중 예배를 주관할 책임을 가졌고, 회당건물을 관리하고 예배의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지하듯이, 삶에는 언제나 각자에게 주어진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종교인이든 아니든,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때로는 찾아옵니다. 야이로의 가정에 닥친 고난은 딸이 죽을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민을 갖고 예수님께 엎드립니다. 아마도 가버나움에서

잘 알려져 있었을 그가 자신의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발아래 엎드린 모습은 그의 간절하고 절박한 자세를 보여주며, 동시에 예수님의 진정한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예수님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질병입니다. 이 여인의 경우는 자궁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려 그 질병이 12년 동안 지속된 것입니다. 이런 혈루증은 병 자체도 고통이지만, 사실 우리가 이 시대에는 알지 못하는 당시의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규정에 따른 사회적 고립입니다. 피의 유출이 있는 경우에는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나병환자라든지 혈루증 여인은 모두 부정한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과 접촉을 하면 부정해지게 되고,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레위기 15장에 따르면, 여성의 몸에 피가

흐르면 부정해지고, 그 사람과 접촉이 있는 사람도 저녁까지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동침을 할 경우에는 7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결혼은 고사하고, 주변 사람들과 마음 놓고 어울리기도 힘든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치료를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던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막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힘든 상태였으므로 조용히 예수님을 만지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부정해집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것을 행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구원은 질병이 치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고, 예수님은 그녀의 그 믿음이 그녀를 치유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한 성경의 표현을 잘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만졌지만 믿음의 손길로 예수를 만진 혈루병 걸린

여인에게만 예수님의 능력을 임하였던 것이죠.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임하기 위해 ‘믿음’이 매우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무리가 많았어요. 그러나 무리가 아니라 제자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구경꾼이 아닌 믿음의 소유자로 적극적인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녀의 믿음은 율법의 한계도 뛰어 넘습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은 부정하였고 그녀와 접촉한 자는 부정한 자가

됩니다. 하지만 믿음은 율법이 규정한 부정함을 뛰어넘어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며, 정결한 자로서 예수님은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합니다. 앞선 야이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간청했지만,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핵심은 혈루증 앓는 여인의 행동에 있습니다. 그것이 샌드위치의 알맹이입니다. ‘믿음’이죠. 이제 야이로의 가정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이어지는 야이로의 이야기를 봅시다. (막 5:35)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질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여러분, 절망 앞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현재형 명령형 동사인 ‘피스튜에’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계속 지속할 것을 촉구하는 표현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끊임없는 신실한 믿음. 이 상황을 통해서도 일하실 그분을 향한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회당장은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죠. 그러나 지금 그에게 믿음이 흔들릴만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딸의 죽음.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주님은 계속 믿음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왔다가도 상황이 더욱 나빠질 때, 믿음을 포기하고 원망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샌드위치 구조가 가르치는 것.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하여 우리의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 심히 통곡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비웃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다 내보내십니다. 오직 제자들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아이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 쿰’. 달리다굼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아람어 ‘달리다 쿰’인데, 달리다는 ‘소녀야’라는 뜻이고, 쿰은 ‘일어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즉시’ 일어나서 걷게 됩니다. 이 집에도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의 삶이 새로워졌고, 소녀의 삶이 새로워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강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믿음’이죠. 믿음이 있는 자가 경험하는 삶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믿음이 있는 자가 주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 고난과 시련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혈루증 앓았던 여인도 저 치유 이후에는 고난이 없었을까요? 야이로의 딸은요? 우리는 모두 압니다. 저들에게도 계속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모습이죠. 고난의 상황과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입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어제 준형 형제와 카톡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삶의 아주 작은 일,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예배, 묵상, 찬양 등)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며... 내 방법보다 그분의 방법, 내 마음보다 그분의 마음을

따르는 일을 조금씩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깨닫는 거야. 그 깨달음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큰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런 것이 믿음의 성장의 과정인 것 같아. 자전거를 배우면서 넘어짐이 당연한 것처럼... 어쩌면 넘어짐은 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다시 일어서서 시도하면 돼. 나도 넘어져. 그러나 빨리 잘 일어나려고, 같은 곳에서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고 늘 노력해. 주님 더 붙들고.. 주님 힘주세요!" 오늘 우리가 이 시간 그거 합시다. 주님 옷 붙잡으면

해결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찬양으로 기도로 마음 다해 그분께 나아갑시다. 주님께 엎드려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절히 구합시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 손 붙잡고 일으키실 것입니다. 달리다 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