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아.. 부담스럽다.." / 박예진 간사

2023-08-20 · 예레미야 19-25장 · 박예진 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이제 말씀을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여러분은 도자기를 빚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 도자기를 뒤져본 경험이 있어요 학교에 현장학습에서 비좁은 경험이 있는데 그때 작은 컵 하나와 물고기 다섯 마리가 달린 모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고기 다섯 마리 중에 두 마리가 깨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선생님께서 울고 있는 저를 달래주시고자 오셔서 선생님이 한번 고쳐볼게 하시면서 본드를 이만큼 들고 오셨던 기억이납니다 이걸로도 해보고 저걸로도 해봤지만

결국 물고기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 느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깨진 도자기는 다시 붙일 수 없는 거구나 깨진 도자기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라는 것을 저는 그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19장에도 저의 깨진 도자기 모빌처럼 그 물고기처럼 깨진 항아리의 내용이 나옵니다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예레미야에는 많은 상징 행동이 나옵니다 상징 행동은 어떤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상징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이 예레미야 19장에 나오는 깨진 항아리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지키셔서 도배시란 장소에서 항아리를 일부러 깨뜨리라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서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깨진 항아리처럼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것이죠 톰슨이라는 학제에 의하면 고대 근동에서는 항아리를 깨뜨리는 그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어떤 증오나 분노를 나타내는 행위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예레미야의 항아리를 깨뜨린

행동을 통해서 그들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이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를 전함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또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인데 그 시체가 너무 많아서 예루 더 이상 장사할 수 없어 도배 셋까지 와서 장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죠이 도벳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흰 놈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만나는이 붉은 지점에 위치한 한 골짜기입니다 이곳에는 몰렉에게 제사하는 산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윤아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가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이 도배 새아서는 몰렉에게 우상숭배를 행하는 영적 간음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죠 그래 제사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이들이 성경에 보면 자녀까지도 제물로 바쳤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7장에 보면 백성들이 자신의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거나 또는 태워서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실제로 역대하에는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이 자신의 아들을 몰렉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를 시행했던 장소도 바로 이 도배지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좋은 짐승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들은 자녀까지 태워 바치는 그런 잔혹한 짓을 행했을까요 아마 크게 그들에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오해이고 둘째는 이방 문화 세상의 문화에 대한 모방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너는 내가 추수한 것과 내가 짜낸 집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내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여호와께 돌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면서 그들의 장자 첫 아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였습니다이 말씀만 보면 정말 장자를 하나님께 모두 바쳐야 하는 것처럼 볼 수 있죠 하지만 우리가 민수기를 통해서 배웠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죠 바로 레위 지파를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자를 대신할 레위지파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시고 그들에게 제사장직을 맡기시면서이 말씀을 이루고자 하셨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유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들이 인신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말씀을 표면적이고 문자적으로 오해하고 해석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바치래 이걸 좋아하시나봐 이러면서 인신 제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지금 오해하고 있어 내가 명령한 것은 그런 의도가 아니고 내가 생각한 방향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유다 백수와 너희가 내 생각도 아닌데 내가 마음을 생각한 것도 아닌데

너희가 오해하여 죄 없는 자들의 피를 흘리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오해도 참 큰 문제인데 더군다나 주의를 둘러보니까 이방 나라들이 자신의 신에게 경배할 때 사람을 자녀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를 너무 떳떳하게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아 어떤 제물보다 사람이 가장 값어치 있는 재물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문화를 따라가게 된 것이죠 이 두 가지 이유가 뒤섞여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유익과 욕망을 위해서 가족과 친구와 자녀들까지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 안에는 그것이 자신들 나름대로의 경건과 열정이었을 수 있죠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오해 위해 생긴 경건과 열정은 결국 그들을 파국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는 참 많은 사람들로부터 폭력적인 종교 이기적인 종교라는 그런 주사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그 오해한 말씀 위에 우리의 경건과 열정을 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주변에게 본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탓이겠죠 예를 들어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이 예배당에 이렇게 모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인원수를 제안해야 했고 때로는 모든 성도들이 집에서 예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몇 교회가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지키겠습니다라는 그 명분하에서 예배당에 함께 모여서 다른 이들에게 코로나를 확산시키거나 아니면 질타를 받는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명분과 또 열정과 경건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 위에 세워진

경건과 열정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지는 일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혹 우리에게 오늘날 이런 모습이 있진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보이는 그 열심 교회 나와 섬기는 그 열정 여러분이 행하고 있는 그 모든 종교적인 경건의 행위들 그것이 과연 바른 말씀에 세워져가고 있는가 아니면 오해 위에 세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열정은 아닌가 한번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율법서를 통해 말씀을 깨달은 요시야 왕은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도배 새서 제사하지 못하도록 그 장소를 더럽혀 버립니다 왜냐하면 재산은 정결하고 깨끗한 장소에서만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도래하자 백성들은 다시 도배에서 돌아다 제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참다 참다 참다가 그들이 우상숭배를 행하는 바로 그 도배 한복판에서 너희가 그 죄로 인하여 심판 당하여 망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선포해 버리십니다

그래서 그 심판임하게 되면 너의 시체가 그곳까지 쌓여서 그런 참극이 벌어져서 결국은 그것이 더럽혀져 너희가 다시는 그곳에서 우상숭배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무시무시한 심판을 말씀하셔야 하셨을까요 사랑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항아리를 깨부수듯 우리의 삶을 산산조가 깨시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고집을 피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순종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부모님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이렇게 혼내거나 타일일 때 너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엄마 말 좀 들어 이런 말 되게 자주 하시잖아요 근데 그 말의 의미가 자녀들이 정말 귀를 다 틀어막고 나 엄마 말 안들을 거야 이런 행동 때문에 혼나는 건가요 그렇지 않죠 말을 들었음에도 그대로 행동하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 행동 때문에 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라고 혼나는 것처럼 오늘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향해서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책망하시는 것은 왜 듣고도 알고도 순종하지 않느냐라고 꾸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경고에도 유다 백성들은 철없는 어린 자식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정말 그렇게 되겠어 정말 우리가 혼나겠어라는 착각을 하며 돌이키지 않습니다 이런 그들의 태도의 하나님은 결국 심판의 회초리를 드시기로 결정하시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심판을 결정하신 이유가 한 순간에 어떤 감정이나 아니면

아 얘는 좀 예쁘니까 더 봐주고 얘는 좀 못났으니까 지금 바로 심판해 버려야지 이런 무책임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신명기를 통해 말씀했던 그 내용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다 기록하셨던 그 내용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고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법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저주가 여러분에게 내릴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들에게

포위되어 식량난을 겪다가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여러분의 자식까지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신명기에 예고되었던 내용이었어요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러이러한 저주가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고 그대로 그 말씀 그대로 예레미야 시대에 그 말씀이 선포되어집니다 우리 예레미야 19장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 내용은 그들에게 임한 심판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그들에게 심판이

임한다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구절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는데요 고려사전류라는 역사 기록에 보면 고종 46년에 몽골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성을 포위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이말 그 상황 그대로인 것이죠 근데 그때 가칭 그들이 이제 식량이 점점 줄어들다 나중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실제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다가 사람의 씨가 말라서이 나라가 망하겠다 전쟁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말라서 시가

끊어져서이 대가 끊어져서 망하겠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잔혹한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유다 백성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애가에 보면 실제로 어찌 어미가 사랑스럽게 기른 그 아이 를 잡아먹느냐라고 탄식하는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신명기는 또 이런 말씀도 있는데요 당신이 순종하지 않았을 때 당신들은 다른 민족에게 넘겨질 것이고 당신들의 왕 또한 함께

잡혀가게 될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그대로 예레미야의 보면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70년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이 나와 있죠 그리고 그 포로 가운데는 그냥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웠던 왕 또한 끌려가게 됩니다 시드기야라는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끌려 짐승처럼 끌려가는 그런 처참한 일도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신명기는 또 다른 말씀도 기록하고 있는데요 너희가 그렇게 심판 당하는 그날에 너희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를 돕는이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그대로 예레미야에 가서에는 그들이 기대했던 동맹국들이 그들을 외면하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죠이 사람이 이 나라와 내가 우호적 관 계를 맺으면이 나라가 날 도와줄 줄 알았는데 그런 관계들이 다 끊어지는 상황에 놓입니다 백성이 대적의 손에 잡혀도 돕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반드시 말씀을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백성의 자란 행동과 잘못한 행동을 판가름 하는 것 또한 말씀이 기준이며 잘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잘 하지 못한 불순종한 자들에게 심판을 명하시는 그 기준 동안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우리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우리는 때로이 말씀을 붙들고 살 때 우리에게 좋은 말씀만 더 많이 붙들고 살아가죠 하나님 주의 말씀은 풀처럼 치르지 풀처럼 마르지도 꽃처럼 시들지도 않으시니 그 복이 내 삶에 임하게 해달라고 그것을

붙어 기도합니다 근데 여러분 그 기도를 할 때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그 기준에 벗어났을 때 심판의 말씀 또한 그렇게 마르지도 시들지도 않고 우리 삶에 그대로 임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서 예정된 심판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했기에 어떤 기준에서 벗어났기에 이런 참혹한 일들을 당해야만 했을까요 저는 오늘이 여러분과 총 4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 주제는 사랑과 정의에 대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 또한 그렇게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셨어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지도자 리더 왕이라고 한다면 더욱더 그렇게 살기를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왕지를

통해서 세상에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실현하기를 원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유다 왕들은 오히려 불의와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이것 좀 넘겨주시겠어요 유다 왕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너희는 자랑하고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예레미야 고장은 이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다면 진짜 나를 안다고 말한다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너에게 뭘 요구하는지 너희는 알아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왕들은 하나님 안다고는 말했어요 그리고 나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고 좋아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배도 했고 모든 종교적 행위를 다 지키고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죠 구약에서의 앎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고백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들이 저 하나님 알아요라고 말했던 그 앎은 그냥 빈

껍데기 그들의 삶을 통해서 고백되어지는 실천되어지는 말씀이 하나도 없는 핀 껍데기와 같은 앎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아니 너는 나를 몰라 그렇게 사는 건 나를 모르는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왕들 중에 특별히 하나님은 여호야김 왕에 대해서 책망하시는데요 그 장면이 예레미야 22장에 기록되어 있죠 우리가 여호야김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가 처했던 상황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우야긴 왕이 되기 이전에 그 아버지였던 요시야 왕이

유다의 왕이었는데요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나라를 잘 이렇게 다스리고 있다가 애굽과의 무기 또 전투에서 그만 죽고 맙니다 그리고 애굽이 승리하게 되죠 그 이후에 요시야 왕의 뒤를이어서 그의 둘째 아들이었던 여호와 하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근데 여호와아스는 왕위를 3개월밖에 지키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에구왕이 와서 왕을 바꿔 버렸거든요 그때 바뀌어서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자가 바로 여호야김이었습니다 여우야김의 이름은 원래 엘리야김인데요 왕이 이름도 바꿔버린 거예요

넌 이제 여호야김이야 이렇게 이름도 바꿔 버린 거예요 이런 상황만 보아도이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지만 얼마나 꼭두각시처럼 그냥 빈껍데기 왕이었을지 우리는 예상할 수 있죠 입장에서는 당장 에고방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급한 문제였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이 왕위를 지키고 내 나라와 내 백성을 지키기 위해선 애굽의 눈에 들어야 돼 에고방이 날 예뻐해야 해라는 것이 그 마음에 가장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과한 세금을

부과하죠 백성들의 삶이 어땠을까요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됐어요 신실했던 왕은 죽었고 그 뒤를 이어 계속해서 왕이 바뀌는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조공을 바쳐야겠으니까 세금 내 근데 그 세금이 너무 무거운 거예요 백성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왕궁을 애굽 왕궁에 그 건축 양식으로 바꾸는 확장 공사를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그 공산을 진행하려면 어떻게 하겠어요 또 백성들 데려다가 일을 시키는 것이죠

백성들의 삶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로 점점 몰리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 더 문제인 것은 이 왕이 그래도 일한만큼 그 품삯이라도 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세금은 막중하게 내야 하고 하루 종일 왕궁을 건설한 노동을 해야 하며 그런데 들어오는 품삯을 하나도 없는 그런 절망 가운데 그들이 점점 내몰렸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여호야김의 모습에 분노하십니다 여호야김에게 네가 백향목으로 더 큰 근거를 짓고 애굽에게 조공을

바쳐서 힘을 얻는다고 해서 형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책망하시면서 너는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고 있구나 너의 동족에게 품삯도 주지 않는구나라고 글을 책망하십니다 그러면서 너에게는 형통이 아니라 화가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이 여호야김과 함께 대조되는 인물이 한 명 더 등장을 하는데요 그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여호야김과 대조되어 나오는 인물이 누구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의 아버지였던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어떤 정책을 잘 펼쳐서 그가 정치외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고아와 과부들을 돌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아마도 요시한 왕은 성전 수리 중에 발견되었던 율법책 그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깨달음을 통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그렇게 통치하려고 노력했겠죠 왜냐하면 신명기에는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 고아와 과부들 병들고 버림받은 자들을 잘 보살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라는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요시야의 순종을 보시고 이것이 진짜 나를 아는 것이다 너희가 머리로 많은 것이 아니라 너의 삶을 통하여 나의 사랑과 전혀 실현되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질문이

생기죠요 시야 왕 이후에 왕들은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았던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내시고 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알려 주셨어요 내 뜻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선 이렇게 말씀하시죠 다윗의 보좌에 앉은 유다의 왕아 나는 내 신하와이 모든 성문으로 들어오는 내 백성과 함께 주가하는 말을 들어라이 모든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을 지금 들으라는 거예요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지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듣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윗 언약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있었거든요 우리에겐 다윗 언약이 있어 바윗 왕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라고 하는 그 잘못된 신앙 때문에 그들은 나태하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나의 이 말은 나의 심판의 메시지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맹신하는 다윗 왕들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그 보좌에 앉아 있는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너희가 그 보좌에 앉아 있지만 너희가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우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경고를 듣고 돌이켰으면 참 좋았겠지만 유다의 왕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호야김은 장례도 치러지지 않고 성문 밖에 버려지는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이 이후에도 그렇지만 조금 더 시간을 주셨어요 여호야김이 죽은 이후에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돌이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 왕이었던 여호야긴 왕마저 심판해 버리시고 그들이 맹신한 그 다윗 언약을 스스로 파기해 버리십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떠신가요 요시야 왕과 같이 순종하여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다른 유다 왕들과 같이 실현하지 않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오늘날 여기 있는 우리에게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여러분의 직장으로 가정으로 학교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로 계속해서 흘러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요 두 번째 주제는 회계 즉 돌이킴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도 우상을 버리고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호소하셨습니다 그들이 지었던 죄를 회개하기를 계속해서 요구하셨어요 그러나 그들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계속해서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그들의 태도를 보고 하나님은 정말 고집스럽게도 돌아오지 않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서 심판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해요 처음에는 그럴 일이 없어라고 외면했는데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바벨론이 우리를 공격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죠 그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했을까요 그러면 좋았겠는데 일단 이 불부터 끄자라는 태도로 돌입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돌아오라는 그 요구는 여전히 외면한 채 도우심만

계속 구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죠 그들이 농사와 풍요를 위해서 풍요의 신 바알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의 앞에 놓인 전쟁을 위해서 전쟁의 신이라고 생각했던 하나님을 붙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저 선택한 것 뿐이었어요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의 삶은 이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여러 옵션 중 하나로 끼워 놓고 내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을 취급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필요할 때만 와서 기도하는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이거 해결해 주십시오 저거 주십시오 지금 유다의 모습이 딱 이러한 모습인 거죠 그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바벨로니아 왕 누브 갓네살이 우리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행여 주님께서 예전에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느부갓네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갈 것입니다 이들의 말만 들으면 사실 틀린 내용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들을 이끌어

내셨고 구원하셨고 보호하여 주셨으니까요 수많은 전쟁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뭐 먼 미래를 먼 과거를 갈 필요도 없이 히스기야 왕씨들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일보 직전에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은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세요 그리고는 오히려 내가 너희를 심판하겠다 내가 너희를 직접 공격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범죄함으로 언약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표를 함께 볼까요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를 한번 표현해 보았는데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돌보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임마누엘과 샬롬으로 표현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연약에는 반드시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은 바로 순종입니다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성립해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마누엘과 샬롬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아무리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약속한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이 복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와달라 강구해도 언약이 깨진 백성의 기도는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듣지 않는 외면을 넘어서 가끔은 그 깨진 항아리와 같이 너희의 삶이 깨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언약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인 걸까요 그냥 이런 계약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라면 우리가 굳이 하나님을 붙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아직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는데요 직업상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의

자주 이렇게 대면하는 일을 경험합니다 근데 제가 이렇게 관찰을 해보니까 아이들이 기어 다니다가 걸어다니기 시작하면 부모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으세요 무엇일 것 같으세요 부모님들이 이렇게 많으신데 모르시나요 엄마 아빠 손 잡아 이리 와 여기 있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말을들은 아이들도 공통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뭘까요 맞아요 다 자녀들이신가요 여기 싫어 안 잡아 하고 도망을 가죠 아이는 이제 비로소 자기 자유가 생긴 거예요 내

마음대로 걸어서 만지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그에게 생긴 겁니다 그런데 자꾸이 아이의 마음과 다르게 부모님이 그 자유의 제약을 거는 거예요 안 돼 이리 와 손잡아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이 행위는 부모님이 아이를 막 자유롭지 못하게 결박하거나 그를 힘들게 하기 위함인가요 아니죠 아이가 혹시 위험해질까 봐 다칠까봐 아이를 지키기 위한 엄마 아빠의 사랑입니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부모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잃어버려서 다시 찾지 못한 그 자녀의 인생이 부모를 다시 만나지 못한 그 자녀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할지 그 현실을 알고 있는 부모이기 때문에 자꾸 아이에게 손잡아라고 말을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 마치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자유로 억압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어떤 짐을 지우게 하려는 그런 요구가 아니라 내가 자녀된 너희의 삶을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유익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라고 말씀하시는 아빠

손 잡아와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실제로 부모님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싫어 안 잡아 그 중에 한 명이 저였는데요 제 마음대로 자유를 막 누리면서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문득 엄마 아빠가 없다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 제가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공포와 두려움이었습니다 기적 어떡하지 우리 엄마 어디 있지 나 어디로 가야 되지 이런 불안이 저를 막 부담 갖게 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하염없이 헤매며 울고 방황하던 저의

모습처럼 하나님이 손을 떠난 백성들의 모습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진짜지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수많은 두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우리는 헤맸던 경험들이 다 있으시죠 그리고 우리는 이런 모습을 깨어짐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저 멀리서 누군가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저를 찾으신 거죠 돌아봤을 때 저희 부모님 뛰어오시고 계셨는데요 정말 아프게 맞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어린 마음에

내가 제일 힘들었는데 나 무서웠는데 나를 좀 달래주지 왜 나한테 혼내는 거지 이런 궁금증이 저한테 있었어요 그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다 알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이해하죠 그때 엄마가 날 혼냈던 거 나를 때리면서까지 단호하게 말했던 이유는 다시는 읽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성인이 된 저의 기억 속에서 다시 보이는 장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엄마의 얼굴입니다 저희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호되게 저에게 다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엄마의 표정이 너무 슬퍼보였어요 저를 때리는 엄마의 손이 너무 매우 맵고 아팠지만 어머니는 같이 울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본심이고 우리 아빠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유다 백성을 호되게 혼내고 계시고 앞으로 혼내겠다 회초를 들고 계시지만 하나님은 사실 가장 슬픈 얼굴로 유다 백성을 바라보고 우리를 오늘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성묵 간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 애통한 우리는 함께 보았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잃어버린 채 공포의 진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것처럼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마음껏 흩어져 버린 그 백성들을 보면서 그들이 마주할 고통과 불안과 불행을 아빠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엄하게 때로는 호되게 회초리를 드시고 다시 아빠 손을 잡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관계처럼요 하나님의 심판과 회계 촉구는 단순히 불순종한 대가가 아니에요 네가 내 말 안 들었으니까 이런 대가를 당하는

거야 네가 먼저 계약 파괴했지 나도 계약 파기야 이런 것이 아니라 너희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데 왜 내 손을 안 잡는 거야 네가 아빠 손을 잡아야 나도 너를 보호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사랑입니다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도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과 보호의

손길은 반드시 이 언약 관계의 회복을 전제합니다 그들이 다시 그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 그분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회복하고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이 돌이킴에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꾸 회개하고 돌아와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과 시드기야 왕의 차이점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돌이켜 회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시드기야 왕은 끝끈에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그냥 내버림을 당한 것이죠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멸망 직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회개하라고 돌이키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이죠 하나님은 그의 그 회개를 보시고 그를 그 멸망 직전에서 건져내셨던 것입니다 돌이킴이 있었기에 그에게 그런 결과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시드기야 왕보다 히스기야 왕이 덜 악해서 도우신 것도 아니었고 그가 더 예뻐서 도우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이켰기 때문에 그를 도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시드기야가 히스기야 왕처럼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그의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럽지만 두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히스기야가 돌이킴으로 멸망 직전 구원을 받았듯이 시드기야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 건지음을 받았을 수 있죠 만약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다의 운명을 아예 바꾸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시드기야 시대에는 그 임박한 심판을 조금 더 뒤로 미뤘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이 향한 심판을 거두신 일들이 성경에 종종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도 그러하였고 심지어는 이방민족이었던 니느웨 성은 마저도 요나 선지자의 그 회개하라는 음성을 듣고 그들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 성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시드기야가 회개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면 통치했다면 적어도 시드기야 시대에는 구원이 임했을

수 있겠죠 두 번째는 혹시 심판이 그대로 임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비교적 안전한 삶을 살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서 끌려갔다라고 했었는데요 어쩌면 뽑히지 않고 그렇게 짐승처럼 끌려가지는 않았을 수도 있죠 우리가 시드기의 삶으로는 추측해 볼 수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같은 포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이켰던 백성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충분히이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누구였을까요 맞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바빌론의

1차 포로로 끌려갔던 그 포로들 중에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킨 회귀한 자의 삶을 살아냅니다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고 그분께서 원하신 삶의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때론 그렇게 살았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빠지기도 하고 사자굴에 던져지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삶을 보면서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용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의 삶을 하나님이 그렇게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내게로

돌이킨 그들의 삶 그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의 끝까지 책임지셨고 그들을 지켜내셨고 보호하셨고 때로는 그들이 당한 어려움에서 그들을 건져내 주셨습니다 풀무불에서 건져내셨고 굶주린 사자들에게서부터 다니엘을 건져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들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통하여 바벨로 온 땅에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드러내시죠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돌이키고 회심했다고 해서 우리가 회개했다고 해서 우리 삶의 당면한 문제나 어려움이

아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돌이킬 수 있는 것 우리가 돌이킴을 망설이는 자에게 돌이켜도 괜찮아 회심해도 괜찮아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그런 삶을 통해서도이 온 땅에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하나님만이 진짜다라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렇게 다니엘과 같이 돌이킨 자들을

통하여 좋은 무화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 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너희가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너에게 비록 어려움이 여전히 있지만 돌이킨 너희의 삶을 내가 돌볼 거야 좋은 무화과처럼 내가 잘 돌보아서 다시 너의 삶에 터전으로 돌려 보낼 거야 유다 땅으로 다시 돌려보낼 거야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들을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때로는 비바람치는 고난이 있겠죠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거나 뽑히지

않도록 하나님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이킨 자들 아빠 하나님의 손을 기꺼이 잡기로 결정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임마누엘과 샬롬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요구하세요 너 돌이켜야 돼 그 죄의 자리 떠나서 회개하고 돌아와야 돼 아빠 손을 잡아야 돼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그 간절하고 절절한 요구 앞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 세 번째 주제는 메시지에 관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에게 회개하지 않는 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속이는 거짓 메시지였습니다 그 메시지 때문에 그 거짓말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방해받았거든요 당신 남유다의 상황은 거짓 예언자들의 타락으로 인해서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합리화 시키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하나님 이만큼만 섬겨도 적당히 적당히 믿어도 괜찮아라고 온갖 거짓말이 난무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거짓말의 속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느님과의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보시며 탄식하시면서 저들이 전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야 저들이 전하는 거는 그냥 그들의 생각일 뿐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의 이런 거짓말 때문에 백성들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같이 악한 길로 걸어가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거짓말이 없을까요 우리에게는 이런 거짓 예언자들의 달콤한 유혹이 없습니까 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해 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심어주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 함께 바알을 섬겨도 괜찮아 아니 농사 잘 지으려면 풍요롭게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겸하여 누려도 괜찮다고 하나님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나님보다 때로는 돈이 더 중요하고 나의 인맥과 나의 어떤 경험치가 더 중요하다고 속삭이는 것이 여전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그 음성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돈도 필요하고요 때론 힘도

필요하고요 뭐 지식적인 것도 당연히 필요하죠 어떻게 그런 거 없이 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피로들이 세상의 가치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올라 있거나 하나님 보다 더 먼저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죠 세상에 속임수는 계속해서 우리의 와 우리의 죄와 하나님 없는 삶을 괜찮다라고 말하며 남들도이 정도는 다 하고 산다라고 포장하고 합리화해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닙니다 바닷물처럼 잠깐의 목마름을

해소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더 갈증나고 더 공허하고 더 허무하게 만드는 거짓된 속임수라는 것이죠 제가 얼마 전에 교회에 다니는 한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요 그 친구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굉장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동료들끼리 이제 모이다 보면 서로 다 힘드니까 이런 말을 한대요 이렇게 벌어서 뭐 하나 그래 그냥 이렇게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니까 월급날 금융 치료라도 받아야지 이번에 뭐 할까 월급 들어오면 뭐 할 거야 나 이거

살 거야 난 어디 갈 거야 이런 말들을 많이 하면서 지낸대요 근데 그 말을 자꾸 듣다 보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래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난 돈 주는만큼만 딱 일하고 월급 받는 날 잠깐 행복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자기를 발견했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화백작 놀라서 아 이건 하나님 원하신 모습이 아니야라고 회개했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었는데요 저희가 양육대 사용하는 풍삼기 내용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노동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것 우리의 노동을 통해서 세상에 거룩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풍산기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를 전해 주는 거야 아 그거 아니야 돈이 목적이지 너 왜 이래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는 거 아니야 돈 준만큼만 해 이렇게 자꾸 돈이 목적이 되고 돈이 더 우선시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어디 돈에 관한 것 뿐일까요 세상에 너무나 많은 거짓말이 있죠 그런데 그 모든 거짓말들은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를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해 더 많이 배워야 해 젊을 때 더 많이 누리고 즐겨야 해 이런 거짓말들이 수없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교회 안에는 이런 거짓말이 없을까요 이런 거짓말은 세상에만 판치는 걸까요 예레미에서에 나오는 거짓 예언자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사실 교회 안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쟁이었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습니다

거짓말은 거짓된 예언은 얼마든지 교회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잘못된 신학 잘못된 신앙이 그런 것들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다윗 언약 잘못된 성전 신학에 관한 것들이 그런 예시였을 수 있겠죠 오늘날로 말하면 잘못된 구원론이나 상급론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오류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라 우리를 방해합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이런 거짓말은 듣지도 말고 속지도 말라라고 단호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분별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 우리는 어떤 것으로 분별할 수 있죠 대체 거짓이 무엇이고 진짜가 무엇인지 모두가 다르게 말하는 이 혼란한 가운데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메시지를 분별하는 기준은 반드시 성경이어야 합니다 함께 읽어봤습니다 시작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요구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냐면 기록하신 성경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성경을 기준으로 진짜와 거짓을 분별하십시오

무엇이 진짜인 색깔일 때 나에게 말하는 그들의 말이 모두 달라서 내가 혼란 속에 있을 때 여러분 우리는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해석되고 해석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아가서 주님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뜻을 제가 분별하고 싶습니다라고 독대하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듣기는 좋았으나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했고 예레미야가 전했던 메시지는 듣기는 거북했으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썼지만 유다를 살리는 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찌르고 우리를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일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 우리의 육신이 원하는 것과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율법책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진짜인가 분별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거짓과 진짜를 구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유다 백성은 지금 당장이 찔리는 거 찔리기 싫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아프고 싶지 않고 당장 입에 쓰니까 그 말을 듣지 않겠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은 금성 앞에 오늘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쓰지만 진짜인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달달한 위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주제는 마지막 주제와 연결됩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인데요 세 번역 성경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부담스러워서 순종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개역개정에서는

부담이 되는 주의 말씀을 엄중한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엄격하고 부담스러워서 듣지 않겠다는 거예요 여러 우상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옵션으로 두고 하나님의 선택하는 그 결정을 쉽습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그 다른 모든 옵션들을 내려놓겠습니다라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불편할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내 삶이 어떤 것들을 기꺼이 내어주고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냥 한번 잠깐 눈 감으면

우리가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삶에 너무나 많이 있죠 그리고 모두가 다들 그렇게 하니 그렇게 선택해도 괜찮다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런 기회와 유혹들은 너무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우리가 그 달콤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사실 달콤하지 않습니다 어떨 땐 그 결과가 씁쓸할 때도 충분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하나님의 뜻만 섬기며 살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우리의

상황과는 맞지 않고 주의 말씀은 융통성도 유도리도 없이 그냥 엄중하기만 한 엄격하게만 잣대처럼 그들에게 다가왔던 거예요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 말씀과는 다른 삶이라고 오히려 소리칩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 중에 똑같은 부담감을 가지고 살면서 순종하는 길을 택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누구냐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유다 백성에게 보내셔서 심판 당할 것이다 너희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두 눈이 뽑힐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레미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 나의 이웃들이 다 모여있는 그곳에 가서 항아리를 깨뜨리면서 너네 이렇게 될 거야 너네 결국 이 꼴로 할 거야라고 말해야 되는데 미움 받을게 뻔하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요 아마 예레미야가 가장 부담스러웠던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부담감의

짓눌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합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나는 원하지도 않았던 삶인데 왜 나한테 이것을 요구하십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친구고 가족이고 다 떠나가고 나는 날마다 죽음의 벼랑 끝에서 있습니다라고 원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더 이상 주님을 말하며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결심하기도 해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결국 하나님을 선택하는 순종하는 길을 택하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버거워서 원망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서 결국 그가 하나님을 택하는 길을 걸어가도록 했다는 것이죠 왜 이러면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똑같이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어렵고 버거운 그 선택 앞에서 왜 그는 순종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예레미야가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주님 제가 너무 힘들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걸 제가 믿습니다 그렇게 제가 저희 억울한 상황 저의 힘듦을 주님께

아래입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낼 힘이 없어요 말씀이 부담스러운 것도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예레미야처럼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 달려가 도와달라고 매달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때로는 두렵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 너무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라는 그런 두려움이 우리에게 몰려올 때 부담감이 우리 짓누를

때 하지만 주님 주님은 선하시죠 의로우시죠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죠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제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제게 힘을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그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그랬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조차 기도하며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너희가 이 백성을 위하여 너가이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를지고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예수님이라고 해서 그냥 왜 죽을게요 뭐 이런 정도의 가벼움이었을까요 아니었어요 똑같이 부담스럽고 무겁고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고백이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저에게서이 잔을 옮겨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고백 아닙니까 그런데 이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스승 되신 예수님 또한 어떻게 행동하시죠 기도하세요 엎드려서 힘들고 버거운 심정 아버지께 그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도 후에 일어나 그분은 십자가를지는 그 순종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로 결정하신 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기도했다고 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쉬워지거나 수월해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순종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더 행복하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때로는 냉혹할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순종하는 삶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더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가 그래도 순종에도 괜찮아 하나님을 선택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진짜 샬롬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과 거짓 예언자들이 아무리 샬롬을 외치고 괜찮다 괜찮다 위로했지만 그것은 진짜 간이 거짓된 위로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삶은 버겁고 힘겨워 보였으나 그들은 담대했고 그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샬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임마누엘과 샬롬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죠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나름대로 샬롬에 대한 것을 한번 정의해 봤는데요 이게 이렇게 표현되는지 모르겠지만 제 언어로 해석한 샬롬은 이것입니다 나의 믿을 구성이라는 것인데요 어떤 문제나 고난 앞에서도 유난히 의연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조선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배짱이 좋은데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저는 우리가 때로 이처럼 위험 부담이 있고 두려운 마음이 있음에도 기꺼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이 우리의 믿는 구석 믿을 구석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짧은

인생이지만 몇 번의 재정의 위기를 직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기에 영향을 가장 직통으로 받았던 사람 중에 한 명으로서 그 1년 반가는 월급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월급이 없으니까 가장 먼저 흔들렸던 것은 헌금에 대한 것이었어요 당장이 3만원을 아끼면 내가 한 3일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내 코가 석잔데 무슨 십일조를 하고 앉아 있나 내가 이런 유혹들이 사실 부끄럽지만 저에게도 있었어요 근데 정말 다행인 것은 제가 헌금을 그 와중에도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3만원 없으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어떻게 30만 원 중에 3만원 11조로 하면 나는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었던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지정을 채우셨고 저를 지금까지 먹여 살리고 계십니다 제가 그때 깨달았던 것은 아 돈이 나를 먹이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은 진짜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의 자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아가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백성을 그분을 끝까지 책임지시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때로 저는 재정의 문제를 마주합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또는 다른 세상과 세상 사람들처럼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재정의 영역에서 만큼은 하나님 이 저의 믿을 구석 샬롬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큰일 나지 않을까 죽지 않을까라는 그 가운데 괜찮아 좀 부족해도 괜찮아 기꺼이 하나님을 선택해도 괜찮아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입히실 거야라는 그 믿음이

결국 저를 다시금 순종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의 샬롬은 그 어떠한 요동함도 없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수업 샤나님을 배우고 경험했음에도 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여전히 고민하고 마음이 때로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절대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라는이 샬롬이 우리의 믿을 구석이 되어서 결국 우리를 다시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것이죠 이 샬롬 때문에 문제 앞에서도 의연하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선택한 이들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의 인생은 아빠가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가 아빠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 길을 기꺼이 걸어보겠다고 반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모든 임마누엘과 샬롬을 쏟아부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우리는 오늘이 4가지 주제와 두 가지 반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순종할 하나님 편을 택하는 자들이 있었고 순종하지 않고 무시하여 거절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반응은 사실 이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계속되던 반응과 질문과 고민이었어요 사도행전에 보면 이런 말씀이 등장을 하는데요 회개하고 돌이켜서 예수를 믿으십시오라는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들은 두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무리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얻었지만이를 갈면서 설교자였던 스데반을 죽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똑같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이 두 가지 반응은 우리에게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같은 예배당에 앉아 같은 말씀을 듣지만 이후에 우리의 반응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씀을 기억하여 순종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쪽으로 걸어가는 길을 걷겠지만 또 누군가는 말씀도 듣고 찔림도 있으나 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면 떠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혹시 여러분이 이런 갈등과 고민 중에 아 지금은 좀 아직은 좀 그런 선택을 하기에 부담스럽고

아직은 좀 마음이 보류가 되는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삶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하기보다 여러분의 그 고민 중에 그 잣대가 선택의 잣대가 하나님 쪽으로 더욱 더 기울여도 괜찮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해도 괜찮다고 하나님의 손을 잡아도 괜찮다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진 정한 안식과 쉼을 줄 것이라고 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