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는 지난 시간 마가복음이 어떤 책인지 알아보고 또 시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복음의 시작에 대해서 함께 나눠 보았습니다 다들 기억하고 계시나요 저만 기억하고 있지 않겠죠 혹시 바쁜 삶을 사느라 또 명절이라 또 예배를 못 드리신 분들이 계셔서 제가 여러분을 위해 퀴즈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갑자기 좀 긴장이 되시죠네 제가 그럴 줄 알고 쉽게 ox 문제를 한번 준비를 해 보았어요 틀려도 괜찮으니 복습한다 생각하시고 가볍게 풀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 첫 번째 문제입니다
마가복음의 장르는 찍어 주세요 네 마가복음의 장르는 시가서 이다라는 문장이 맞으면 O 틀면 x 해 주시면 됩니다 자 하나 둘 셋 약간 이렇게 하신 분들 계신 거 같지만네 정답은입니다 마가복음 장르는 시가서 아니라네 맞아요 역사서 있죠 역사서 중에서도 복음서 또 그 중에서도 공간 복음이라고 하는 장르에 해당하는 책이다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마가복음을 살펴보면서 그 책의 이름이 마가 복음이라는 것은 마가의 복음이 아니라 마가가 기록한 예수의 복음이다 뜻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었죠 자 다음 두 번째 문제를 보겠습니다 가버나움은 위로의 동네라는 뜻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맞으면 오 틀리면 X 보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오가 확실히 많네요 가버나움은 위로의 동네라는 뜻을 가진 곳이었죠 우리는 이 이름을 통해서 지난 시간 우리의 삶에서도 위로가 필요한 곳 그리고 우리의 가어함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버나움에 치료자 위로자로 가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삶에 있는 가남에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와 아픔 또 우리의 죄를 그분께 내보일 때 주님은 그런 우리를 치료하시고 온전히 회복시키신다 것을 또 배웠죠 이제 벌써 아쉽지만 마지막 문제입니다 마지막은 빈칸 맞추기요 아주 중요하지만 아주 쉬운 문제니까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네 시작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기록된 책이다 말씀드렸는데요 그런데 저자 마가가 지금 그 로마 한복판에서 복음을 기록할 때
가장 서두 세계 가장 첫 문장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로마의 강력한 통치권 아래 지배를 당하던 시대였고 황제는 감히 신의 아들이라 불리며 아무도 그를 범접할 수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황제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였고 그런데 마가는 황제가 태어나거나 또는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부를 수 있는 그 복음을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반전시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어 로마를
지배하던 그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 것이죠 마가는이 한문장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관을 뒤집으며 너희가 믿고 있는 황제가 진짜 신의 아들이 아니고 너희가 바라고 있는 복음은 진짜 복음도 아니다 진짜가 따로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말씀이 좀 더 기억이 나시나요네 오늘은 마가복음의 두 번째 시작으로 오직 단 하나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여러분도 최선의 예배를 드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 마가복음은 많은
복음서들이 그렇겠지만 유난히 더 예수님의 기적이나 행적들이 기록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짧은 분량에 비해서 많은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읽다 보면 책이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아 예수님이 기적을 이렇게나 많이 일으켰었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마가복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게 기록한 두 부분이 등장을 하는데요 바로 마가복음 4장과 13장 있니다 특히 우리가 오늘 살펴볼 마가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가르치신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그 많은 비유 중에 가장 유명한네 가지 밭의 비유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라를리는 사람이을 리하다을 부리는데을 가에 지니 와서을 다 는이지 않는 자 떨어지니 그이지 않도록 하지만가 자 다리고 리가 없어서 가라다 또 너는 다시 속에 떨어지니 다시 그서를지 못하였다 그런데는 좋은 다서고서를 다 그리하여 30대 60대가 되었다 이스라엘에는 비옥한 토양을 가진
이스르엘이라는 평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이 평지가 넓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대부분 이스라엘은 척박하고 바위가 많은 산지를 개관하여 계단식 농사를 짓는 것이 보편적인 농사 법이었습니다 어 한국도 농사를 지을 때 밭 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만들잖아요 그것처럼 이스라엘도 어 계단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방금이 비유에 등장하는 길가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계단식 농지는 바위가 많고 흙이 적은
토양의 특성 때문에 비가 오면 빗물을 따라 어 흙이 휩쓸러 내려가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빗물이 땅속 속으로 스며 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작물이 지탱하고 있는 흙을 다 쓸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각 계단 끝마다 담벽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계단이 이렇게 가면이 끝에 작은 막을 세워 주는 거예요 그러면 흙이 쓸러 내려가더라도 아이 밑으로는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비가와도 농작물이 흙과 함께 휩쓸려가는 것을 막는이 담벽이
그들의 농사법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근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이런 특징을 가진 밭에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비가 오면 흑이 쓸려 내려가면서 그 담벽 근처로 흑이 모이게 됩니다 그렇겠죠 그러면 위에서부터 쓸려 내려온 고운 흑이 쌓인 담벽 주변이 바로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보는 좋은 땅 영양분을 가득 가지고 있는 땅이 됩니다 빗물을 잔뜩 먹으면 땅이 그곳에 다 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담벽과 멀어지는 계단 끝으로 갈수록 흙이 부족해 토양이
얇아지고 바위가 많은 돌밭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담벽 주변은 농부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다른 땅과 비교해 봤을 때 유난히 더 잡초가 많거나 가시덤불이 많은 땅이었어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가시 덤불은 아마도 그 담벽 근처 있을 것이다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네 가지 종류의 땅은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 매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절에서는 비유를 시작하면서 씨뿌리는
사람이 밭에 씨을 뿌렸다고 기록하죠 이스라엘은 토양의 특성상 쟁기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 계단을 쟁기질 하려면 굉장히 위험했어 그래서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릴 수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좀 다른 농사법이 우리나라는 땅을 이렇게 잘 어 개관하고 또 쟁기질 해서 좋은 땅에만 씨을 뿌리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씨를 흩뿌리는 농사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처럼네 가지 종류의 모든 땅에 씨앗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각각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익숙했습니다 결과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성장하여 열매를 맺고 추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뿐이었습니다 농경 사회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이 이야기처럼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는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지 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이죠 어쩌면 지난 시간에 가르침처럼 예수가 엄청난
가르침을 전한데라는 소식에 자신들도 좀 특별한 가르침을 얻고자 예수님을 따라왔다가 뭐야 뻔한 이야기 하네 예수도 별거 없네라고 돌아갔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백성들 뿐만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예수님네 가지 땅의 비유가 무슨 뜻입니까 거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이 비유에 관해 설명해 주십니다 성경이 길지만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너희의 모든를 이야기입니다 시를 부리는 사람은 말씀을 부리는 것이다 가에 어지는 것들이나 이런 사람들이다 그의 말씀이 어질 때에 그들의 말씀을 기 하지나 하로 사다이 와서 그들에게 어지 그 말씀을 하다 자하 어 한 사이다 그는 말씀을 들려고게 바라기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나가 어 계속해서 읽겠습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그 말씀을지만 상의 와의과 그 와 말씀을서에는라
그은 말씀을고 예수님은 설명하시기 전에 먼저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와 가르침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분리는 사람의 비유이네 가지 밭의 비유는 다른 비유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한 열쇠가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이 비유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네 가지 땅에 뿌려지는 씨앗은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땅에 씨앗이 뿌려지던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 이 땅에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유에 나오는네 가지 종류의 땅은 그 말씀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종류를 일컫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길가의 사람이었죠 길가는 씨앗이 땅 속에 제대로 신기기도 전에 새들에게 먹혀버리는 땅을 의미했습니다 다른 새 종류의 땅은 뭐 결과가 어찌 되었든간에 처음에는 씨앗이 그 땅에 그런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른 비가 오고 빗물의 흙이 모여 좋은 땅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씨를 뿌리며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씨를 뿌린 이후에 행해지는 특별한 어떤 단계가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이었냐 씨가 뿌려진 이후에 그 농경지 안으로 목자들이 가축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가축들이 씨가 뿌려진 땅을 밟으며 그 발굽에 의해 뿌려진 씨 들은 땅속 깊은 곳으로 기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때 가축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로는 가지 않았어요 그니까 길가로 가축들이 지나다니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밟히지 못한 길가의 씨앗들은 땅속에 심기 못하고 그냥
길가 위에 뿌려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흙속에 심기 못한 씨앗들을 먹으러 새들이 날아들었고 어떤 벌레들이 새들에 의해서 그 씨앗이 모두 먹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길가 말이 그사람 마음 깊숙히 뿌리내리기 전에 아니 기기도 전에 사탄이 날아와 마치 새가 그 씨앗을 먹듯 말씀을 빼앗아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수용하지 못하는 완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이런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누가 있을까라고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종교지도자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전통 또 사람의 침어 은 잘지만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전혀 받아들일 생각조차 없는 것이죠 그리고 오려 예수님의 말씀에 리를 잡으려 안 다리거나 예수님을 대적하기에 바빴습니다 종교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또 길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었던 나사렛 사람들을 들 수 있습니다 성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에 시니 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자는 자기 고양과 자기과
자기에서는을지 않는 법이었다 예수께서는 자에게서는 그리고지 않는 것에 다 예수님은 자신이 나고 달았던 그 고향 나사렛에서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드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감탄하고 놀라워했어요 어떻게 이런 지혜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지 그러나 곧 예수님을 깎아내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며 그의 말씀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이를 마가복음 6장 3절에서는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고향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에 오려 하셨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이를 메시지 성경에서는 그들의 완고함을 예수께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라고 번역하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듣지 않는 사람들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주님도 어찌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 조종하여 믿게 하시거나 우리가 돌이키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걸음을 억지로 리실 수 있는 분 돌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이것은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길가의 사람에게도 뿌린 씨앗처럼 똑같이 복음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셨죠 하지만 그들의 완고한 마음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길가의 태도는 어찌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설교에 나누던 것처럼 복음이 내 삶에 시작되기 위해 는 가장 먼저 복음의 씨앗이 먼저 우리 마음에 신기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들어야 너희가 믿을 수 있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을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들을 기가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길가의 사람들은 복음을 마음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돌밭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곧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가 없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환란이나 박가 오면 넘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밭의 대표는 드로를 포함한 님의 제자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이 복음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부름을 받았을 때 성경이 기록하는 것처럼 그들은 곧 그 즉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며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가시는 곳마다 함께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분의 복음을 수없이 들 것며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매일같이 보고 들으며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귀신이 쫓겨 나갔고 병자들은 고침을 받아 일어났습니다 또 사람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지혜와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에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흔들렸고 믿음이 없다라고 혼나게 일수였죠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장 그런데 바이 일어나서 하 쳐으로 리 위에 벌써 가셨다
예수께서는 물에서를고시고 계셨다 자이 예수를 명하였다 그이가 주께 되는데로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시고라서 하고 하라 말씀하시니 바이시고 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를서 믿음이 제자들은 복음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곧 예수를 분명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제자들의 모습은 뿌리가 강하지는 못해 보이죠 예수님의 곁에서 그분의 사역을 따라다닐 때 아마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본인들이 믿음 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그들을 대우해
주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마치 예수님의 능력이 자신들의 것인냥 의기양양 든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많은 일들과 많은 환영과 많은 환대가 있었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또 그렇게 느껴질 때 그들은 거센 바람과 파도 앞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어떤 큰 배가 아니라 이 성경에 나오는 배는이 13명 몇 명의 사람 람 타면 가득차는 작은 배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셔도 제자들 바로 옆에 계셨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로 옆에 두고도 그 거센 바람과 파도에 무너지고 흔들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저는 생각보다 제가 이런 모습이 많다라는 것을 자주 경험하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나님 나라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 어쩌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삶의 현장에서 나의 직장에서 나의
가정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는 모습 여전히 무너지고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흔들리는 저의 모습을 저는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고난과 문제를 마주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서 주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손을을 때도 우리에게는 존재할 것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을 하이 내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그분의 음성이 당장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마치 주님께서 누워 주무시고 계시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삶의 거 바람과도 앞에서 두려워
떨며 주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말씀에 분명 기쁨으로 반했으나 뿌리가 없어 나풀거리는 우리의 힘없는 믿음을 스스로는 너무 잘알고 있습니다들의 없음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 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합니다 마가복음 4장 17절에 사용된 넘어지다 헬라어는 스킨 스칸다 원어의 단어입니다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용된 버리다 같은 단어이기도 하며 동시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는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다짐했을 때도 쓰였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단어를 돌작 밭에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따랐다는 이유로 환란과 박해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을 버리고 넘어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돌작 밭에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말씀을 붙들고 따라가지만 어떤 걸림돌이 생기거나 내 안에 도저 해결되지 않는 어떤 실족할 만한 이유가 생겼을 때 그만 넘어져서 말씀을 져버리고 스칸 달리조 도망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고속도로로 착각한다고
저는 느낍니다 내가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음을 잘 믿으면 이것이 나를 더 높고 더 부유하고 더 화려하고 더 괜찮은 것으로 빨리 데려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예수를 따른 그리스도인의 삶은 좁은 문 좁은 길과 같다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내는 것은 고속도로보다 어쩌면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과 더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거센 바람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뽑히지
않을 수 있는 뿌리깊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같고 험한 골짜기와 같은 고난에도 넘어지지 않고 꿋꿋이 나는 그럼에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우리처럼 또는 제자들처럼 주님이 마치 주무시는 것 보지 않는 것 같다라고 느끼는 고난을 마주한 한 인이 장합니다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고난을 마주한 인은 당장이 이었습니다 어 당시의 회당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과 같은 곳이었어요 그리고 당장은 그곳에서
예배를 감독하거나 아니면 회당에 어떤 행정 업무 등을 맞는 사람을 일컬 지금 회당장 야이로의 삶에도 광풍이 불어닥친 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어린 딸이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죠 아마도 야이로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어 그는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그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해 가장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주로 복음을 또 그분의 가르침을 회당에서 자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회당 장이었던 야이로는
그분의 가르침을 어쩌면 더 자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예수님을 만나자 그가 그 발 앞에 엎드렸다 것으로 표현되어 나타납니다 이것은 야이로가 예수님의 대해 깊은 경의를 표현함과 동시 의 딸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한 아버지의 절한 경을 표하는 행동이었습니다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셨는지 내가 야의 집에 함께 가겠다라고 하며 따라가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요 야로의 주한 마음과 다르게 자꾸 걸음이
지체되기 합니다 왜면 야로 말도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들었던 때문에 예수님이 앞으로 나아가실 수가 없었거든요 마치 5월 5일 어린이날 놀이공원 한복판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마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 어린 고작 12살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의 어린 딸이 집에서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그 숨이 끊어질까 아버지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한데 자꾸 많은 인파들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게다가데 겹으로 예수님이 에 걸렸던 여인을 위해서
걸음을 멈춰 세우십니다 이미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으로 병이 나았어요 예수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그녀는 병이 나았으니 그대로 가게 두셔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긴급한 상황에서 야로의 마음을 모르실 리 없었던 그 주님이 굳이 그 여인을 찾아내시고 그녀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이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였던 야이로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새까맣게 타들어 갔겠죠 그런데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야이로가 우려하고 그토록
오지 않 오지 않기를 바랬던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 하겠습니까 예수께서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예수님께서 혈류에 걸린 여인과의 대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야이로는 자신의 어린딸이 죽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야이로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순간 그의 세상은 무너지고
자신을 둘러싸고 했던 그 많은 인파가 원망스러 자신의 타들어가는 속은 모른체하고 저 인과 대화하고 앉아 있는 그 예수님이 죽도록 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없이 살아가야 할 자신의 남은생을 저주하며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예수님께서 여전히 그의 곁에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끝났다 망연자실하며 슬픔에 빠진 그에게 예수님은 그의 곁에서 여전히 말씀하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그 말을들은 야이로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래 예수님 끝까지 믿어 보자 아마 이런 마음은 바로 들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쩌면 울분이 치소 샀겠죠 예수님 방금 못 들으셨습니까 제 딸이 죽었습니다 이제서야 간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빨리가 주시지 저 여인은 다 나왔는데 내 딸은 죽어가고 있는데 내 딸에게 한 걸음만 더 일찍가 주시지 제 딸라 이제 죽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고 이제는 주님도 제 삶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 세상은
이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예수님 앞에 다 쏟아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께 주님 대체 지금 뭐 하십니까라고 원망했던 제자들과 다르게 그는 침묵하며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었다께서 람들이며 하며을시고 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 영 있냐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바 시에 아이의 모한를 되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다 그와 아의을 다 아라이는
하라 내가 예수님이 야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의 죽음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슬퍼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셔서 슬픔에 빠진 그들에게 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있단다 그에 있는 이 웃 그 야이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딸아이가 누워 있는 그 방까지 갑니다 그고 그곳에서 그는 달리다이라는 소리 함께 죽었던 딸이 다시 살아나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는 자신의을 칠 수 있는 일한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고 그 망을 님을 마음님 너 집에 가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얼마나 뛸듯이 기뻤을까요 이제 내 딸이 살겠구나 내 딸이 고침을 받겠구나 그러나 그 기쁨은 많은 무리들 때문에 또 혈증 여인 때문에 사그라들다 결국 따라가 죽었다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마 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 죽게 되었구나라고 망연 자신하던 그 제자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제자들과 다른 선택을 했 두려워 말고 나를 믿으라고 여전히 자신의 곁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끝까지 그분과 함께 걸었던 것이죠 제자들도 예수님이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야이로 주님이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여러분 야이로의 이름뜻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야이로는 여호와께서 깨어나기를 이제 는을 이끝난 것같은 그럼 주님을 라이를 않는것 같는 것같은 그려 상에서 그는 주님을 따라서 죽은 딸 아이의까지 걸어갔습니다 그 마 은딸을 마고지 어을 절하게 기도하 걸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이제
깨어나 주십시오 소망도 기쁨도 다 꺼진 내 삶에 다시 빛을 비춰 주십시오 제 딸아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이 여전히 제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가 제자들처럼 밭에 머물러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밀이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이런 고난과 환난과 박해는 끊임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 때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
던져 놓으시고 대체 주님은 지금 어디서 무하고 계시냐고 마치 제자들처럼 주님 왜 지금 주무시고 계시냐고 원망하는 것이로는 그렇게 울부짖는 울부짖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울부짖음과 원망에 춰 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로럼 주님 사실은 제가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 고난을 마주할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 곁에서 저와 함께 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이제 깨어나셔서 나의 삶을 비추시고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믿음을 가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번째는 가시덤불과 같은종 의 사람입니다 어이 사람들도 처음에는 돌과 같이 사람들처럼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욕심들 때문에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 가시덤불에 쓰인 막다 하는 동사의 원형은 제압하다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유혹과 욕심이 말씀을 제압해 버려서 그 말씀이 더
성장하지 못하고 우리가 주님께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다는 것이죠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회로당 마치 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분봉왕이란 남부 곳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많은 불을 거느렸고 왕궁에 살았으며 그 누구도 그를 감히 대적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다들 그에게 잘 보이려고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이든 잘한다 잘한다 내내 맞습니다 이렇게 아부하며 살았을 것입 니다 그런데 그 많은 아부쟁이 중에서 세례 요한이
나서서 헤롯에게 쓴 소리를 합니다 왜냐하면 헤롯왕이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에게는 빌립이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요 빌립에게 헤로디아는 아내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동생 부부인 거죠 그런데 헤롯과 헤로디아가 서로 불륜을 저지르고 맙니다이 관계를 알게 된 세례 요한은 나서서 그들을 담대하게 책망합니다 모두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실시하던 그때 요한은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났습니다 너희는 잘못했다라고 그들을 책망합니다 헤롯과 헤로디아 그 말이 얼마나
달갑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헤로이 그래 내가 너를 하겠어 한마디면 되는데 자꾸이를 질질 끕니다 참마 그를 죽이지 못해요 그 이유를 성경을 함께 통해서 보겠습니다 시작은 와 오 다 그이 자기와가 다 그이 그라게을는 것은고 다 그래서의는 하였나 그라은고고 그 헤롯이 참아 세례요한을 죽일 수 없었던 이유가 오늘 읽은 성경에 자세이 나와 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으로 알았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려고 합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헤롯은 세례요한의 말을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어요 세례요한이 전해주는 말씀을 면 양심에 찔려서 괴로워하면서도 그가 전해주는 말씀을 달게 들었다라고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놀랍게도 헤롯왕은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헤롯이 말씀을 꽤 제대로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말씀을들을 때 그가 그냥들은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한 찔림이 그의 안에 있었으며 또한 말씀을 달게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헤롯의 모습으로 볼 때 어쩌면 그는 복음 앞에서 회심의 기로에 서서 회심을 고민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가시덤불의 땅처럼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유혹과 욕심과 염려가 먼저 그 말씀을 제압해 버리고 맙니다 헤롯은이 일 이후에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어 춤을 쳐준 공연을 해준 헤로디아의 딸에게 감사와 보답의 의미로 무엇이든 들어주는 소원권을 주게 니다 심지어 그 딸이 나라의 절반을 주십시오 하면 그래 게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소원권을 가진 딸이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서 어떻게 할까요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헤로디아가 기회는 있다 싶어서 세례 요한을 처형시키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해라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소원을 빌도록 합니다 헤롯은이 말을 듣고 아차었을 거예요 그리고 요한을 죽여야만 한다는 상황이 마음이 것 그는 세례요한을 지켜주고 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그이는 마가복음 6장 26절에 나 있습니다 왕은 마음이 몹이 웠지만 맹세한 것과
거기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소가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롯은 명히 복음을 들었고 그 말씀에 고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이에 그 을해을 끝까지 지켜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맹세했던 것 그리고 그 맹세를 함께 들었던 그 사람들의 체면 그것 때문에 그 염려 때문에 그는 결국 세례 요한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에게 있었던 욕심과 그에게 있었던 염려와 근심이 그 마음을 제압해 버리고 만 것이죠 결국 그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었고 이에 대해 고민했으나 결국
열매 맺지는 못했습니다 어 여러분이 저를 보시기에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생각보다 부담감이 꽤 많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어떤 일을 책임져야 하거나 어떤 일이 저에게 맡겨지게 되면 이 부담감이 그냥 몇 배가 아니라 한 몇 제곱으로 늘어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막 심장이 막 터질 거 같고 막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식으로 사귐의 교회에 어 이제 인턴에서 전도사가 되었을 때 목사님과 여러 회의를 하면서 아 내가 이제 이만큼
책임을 져야 되는구나 이만큼 사을 해 라는을 했을 때 심장이 또 쿵쾅쿵쾅 하면서 숨이 안 쉬더라 제가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느꼈던 것 전도사가 되어서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숨막히는 부담이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하지만 그러더 잘하고 싶은 나의 욕심 이런 것들이 온갖 뒤섞여서 몸집을 키워 부담감이 되어 저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죠 그랬더니 저에게 기쁨이 사라지더라고요 하나 섬기던 그 기쁨이 제 안에 있었거든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와 함께 사역하며
또이 나라를 누리는 그 기쁨이 제 안에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제압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었지라고 생각하며 목적성과 방향성을 이따금씩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겠다고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돌아가는 어 길에는 단 세 줄만 적힌 원고를 들고 갈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행복을 누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누리게 했던 사역도 또 성경 앞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고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말씀도 제 안에 있는 염려와 제 안에 있는 욕심이 제압해 버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그 무엇도 느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저는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 그러던 중에 송구영신 예배가 이제 왔었는데요 2024년을 그 마음으로 시작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주님 앞에 저의 한계를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모든 감정과 부담감을 다 토로했습니다 주님 저를 아시죠 저를 만드셨으니 가장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그 예배를 통해서 주님 앞에 맡겼을 때 주님께서 저를 짓누르던 부담감에서 저를 자유케 하시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함께 성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희을 다 주께 주 너희를라 아무것도 연하지 말고에 와으로 너희 것을 감사라이 모든에 어난 하나의 스에서 마 여러분 우리는 인정하기 싫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걱정거리 하나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달려오는 유혹의 손길 하나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자꾸만 소끝로는 욕심의 충동도 우리는 절제하기
버거운 그런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유혹과 염려와 그 어떤 욕심도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흔들리고 염려될 때가 있죠 내 욕심이 주님보다 앞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이 정말 좋은 땅으로서 열매맺기를 바란다면 그 마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 생각과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며 메시지 성경을 읽다가 저는 저에게 있었던 가시덤불을 먼저 보았습니다 메시지 성경에는 가시덤불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잡초 밭에 떨어진 씨는 천국 소식을 듣기는 듣지만 해야 할 온갖 일과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염료로 람을 스트레스에 숨이 막혀서들은 것 아무 소득이 없다 혹시 여러분 중에 저와 같이 짓눌려 계신 분은 없으십니까 해야 할 일에 짓눌려 있고 갖고 싶은 욕심에 짓눌려 그것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는 분들은 계시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오려 우리에게 주어졌던 복음 힘을 잃고 러져 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그 모든 스트레스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며 여러분을 돌보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대한 것을 보겠습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좋은 땅은네 가지 땅 중에서 유일하게 열매를 맺는 땅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씨앗은 오직 좋은 땅이 떨어질
때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은 어떻게 그렇게 유일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나머지 앞에 있었던 새 종류의 땅과 좋은 땅에 대한 설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땅은 단지 듣고 받아들였다에는 다른 설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 여기서가 수 있는 것은 은에 대한 종류에 나왔던 들음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선 세 가지 종류의 땅에서 표현되었던 들음은 모두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만이 유일하게
현재 시제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영향력이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좋은 땅의 삶의 속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합니다 즉 좋은 땅이 다른 종류의 땅과 다른 결과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그들이 맺 있었이는 그들이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며 과거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오늘 내 앞에 주어진 삶에서도 주님을 붙들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들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앉아 삶을 변화시킨 일들이 그들에게는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그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그토록 찾으시던 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했다는 정도 끝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의 삶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씨앗이 농부의 손에의 지든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떤 사람 예외없이 그 복음은 다 뿌려지고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을 어떻게 받아내고
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있느냐입니다 길가의 반응 돌밭에 반응 가시덤불의 반응 좋은 땅의 반응 여러분 오늘 어떤 땅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시나요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땅의 반응과 변화들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나는 과연 어떤 땅인가 나는 과연 어떤 땅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질문을 진지하게 스스 던져 보야 할 것입니다 어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더 소개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 언젠가는 꼭 듣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5천명을 먹이신 이야기입니다 이때도 예수님을 보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다 보니까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거예요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치고 이제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 이제 사람들을 좀 돌려보내야 되겠습니다 밥도 먹고 이제 집에 가야죠라고 말을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너희가 밥을 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엉뚱한 이야기죠 제자들이이 많은 사람들을 저희가
어떻게 다 먹입니까 저희 돈도 없습니다라고 반문합니다 왜냐면 그곳에 모인 인원이 남자들만 세웠을 때 5천 명이었어요 학자들은 아마 여자들과 아이까지 다 합치면 거의 2만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면 안 돼요 저희는 다 먹일 수가 없어 돈도 없고 저희가 가진 것은 겨우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저희 나눠 먹으면 끝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근데 엉뚱한 예수님께서 안 되긴
뭐가 안돼라는 그런 마인드로 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이 일이 그 음식을 먹었던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는 그냥 우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라고 하는 신기한 일로 그쳤지만 사실 주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계셨어요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께서 큰를시고 마 운과으로 그를 상이 셨다 그래서 그을 여러가지로 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자 하 지하 그 다 예수께서서 하고 하신 다음에 어서 자들에게시고들에게
게하다 그도 람 그 모 34절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시고 꼭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하게 또 측근이 여기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앞에 31절에 보면 많은 인파를 피해서 도망가신 거였거든요 한적한 가세에 가서 좀 쉬자고 가신 거였는데 딱 배에서 내렸더니 그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거예요 근데 예수님 눈에 그들이 꼭 목자 없는 양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자신의 쉼을 포기하고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이죠 또한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돌보시기 시작하십니다 어 39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푸른 풀밭에 앉게 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목자 없던 양들이 목자를 만나자 이제는 푸른 풀밭에 앉습니다 자신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지 않아도 목자되신 예수님에 의해서 그들은 배불리 먹고 누렸습니다 또 40절에 100명씩 또는 10명씩 때를 지어라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무리를 연상케 하는 그들에게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무리의 장으로 백부장 부장을 세우기도 했었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먹이셨던 것처럼 이제는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직접 먹이시고 돌보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마치 편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도록 달래 주기 위해서 이 일을 일으키셨고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그들에게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목자없는 양같이 불쌍한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의 목자로이 땅에 왔단다 나를 따르는 양들은 내가 주는 평안으로 푸른 풀밭에서 쉴 것이며 내가 준 양식으로 배불리 먹을 것이란다 그러니 이제 나를 따르거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이런 마음과 의도를 눈치챈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도
예수님 제자들조차 깨닫지 못했거든요 예수님은 5천명을 먹이신이 일 이후에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서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어 그런데 바람이 이 어 자꾸 역풍으로 불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이 새벽이 되어도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바다 위에 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불쌍한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그 제자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가십니다 그런데 바다를 걸어서 가셨죠 바다를 땅처럼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다 하고 소리를 쳤어요 그런데 그럴 만도 하죠 밤이라 새벽이라 날은 캄캄하지 역풍이 분이 스산한 기운이 또 몸을 감쌌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여분 예수님 패션 다 아시죠 장발의 흰 치마 여러분 누가 봐도 귀신이라고 느낄 만한 그런 상황이잖아요 누가 봐도 제자들이 기겁해서 놀라 자빠질 만한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그들에게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 바 시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져 있었다 제자들이 예수님 곁에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던 이유 그들이 복음을 눈앞에서 보아도 깨닫지 못했던 이유 조금 전까지 그분이 베푸셨던 복음을 먹고 마시고 누렸음에도 깨닫지 못했던 이유를 성경은 그들의 마음이 무디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들을 도러 오신 예수님 그들은 바로보지 못하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기 때문입니다 그 둔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 나라 복음 그 자체로 오신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지척에 두고도 그들은 마치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에게도 경고하십니다 사귐의 가족 여러분 열매 맺는 땅은 오직 하나 단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한 신앙 머뭇거리는 신앙을 갈아엎고 좋은 땅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앞선 세 가지 땅의 결과를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제자들처럼 이런 무딘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고 그 나라를 살아내는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마치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위로자 치료로 오셨다고 우리는 지난 시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무뎌 있다면 우리는 그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내가 너희를 푸른 풀밭에 누이고 내가 너희를 먹이겠다고 말씀하셔도 우리의 마음이 무디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마음이 무뎌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저는이네 가지 밭에 비유를
묵상하면서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 말씀을 제가 메시지 성경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지름길을 찾지 마라 세상에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하는 인생에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쉽고도 실한 공식들이 넘쳐난다 다수 람들이 말에 겠지만 너희는 속지 마라 생명 곧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갈 수 있는 힘든 길이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밭에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하나님께 가는 지름길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대충대충 해서 설렁설렁 적당히 해서는 갈 수 있는 가는 생 복음에이는 은의 전부를 정신을 리고 있어야 겨 수 있는 그런든 일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비는 구의을지 있던 사람들에게 주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는 하나님의 성이니 다 구원받다는 라은 이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네가지 중에 세가지 땅 매를 맺지 못 직 하나 좋은만이를 맺었다는 것을 너희는 억해 할 것이다 주님 여기에 모에게도 같이 말씀하고
십니다 사랑하는 의족 여러분 맺는은 하나임을 는 그 좋은이 수 없을 것니다 여러분 부디 마음을 새롭게하여 좋은 땅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길처럼 앗지 마시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밭과 가시덤불의 두려움 염 욕심을 제거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뿌려진 하나님나라 복음의 씨앗 맺기를니다 직 한분 주님임을 기억해 할 것입니다는 리의 힘으로 좋은 땅이 될 수 없죠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우리 안에 밀려오는 그 수많은 근심과 걱정을 우리가
밀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이로 같이 오직 단 한분 그분을 기억하며 의지하며 걸이 죽었다는을 들었나 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우리가 좋은 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단 한 분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을 찾아오신 목자를 만나시고 목자께서 인도하시는 푸른 풀밭에 누워 그분이 주시는 양식을 배불리 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