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가복음 어 6장부터 8장의 내용을 가지고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정결법을 폐지하다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은 정결법을 폐지했다라는 의미로 모든 음식이 이제 깨끗하다고 말씀하여 주셨죠 예수님께서는 왜 정결법을 폐지하여 자 잘 생각하시고 한 개만 손가락으로 골라보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어 답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요 정답은 1번이었던 이방인 선교를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인 사람들은
자신이 정결하고 이방 사람은 부정하다는 인식이 아주 강하게 사로잡힌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결법을 폐지되지 않는 함 그들이 이방 사람과 접촉할 수 없고 그 말은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야 할 것 것이다라는 말씀을 담아서 이제 정결법을 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 이제 다음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보여주셨던 기적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리되었고 그리고 그 기적을 유대인과 똑같이 이방인에게도 행하셨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생하지 종류에 속하지 않은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아주 쉽죠 잘 생각하시고 자 하나 둘 셋네 정답은 2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간 이동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바다를 걸어 가실 때는 있었지만 순간 이동 하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공생계 동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동시에 귀신을 내쫓거나 병자를 치료하시는 아니면 5천명을 먹이셨던과 같은 자연
이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가르침과 회복에 관한 것이 그분의 사역이었다 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친과 회복에는 차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그리고 우리가 살펴보았던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똑같이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네 이렇게 우리가 지난 시간 세 번째 시간에 나눴던 설교를 짧게 복습해 보았는데요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자면 복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그곳에는 회복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모두가 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열매 맺는 좋은 땅에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유대인이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 이러 하나님의 마음을 나와 함께 할 사람은 여기 붙어라라는 표현으로 비유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님과 함께할 사람 그분께 붙는 사람 그분의 손을 잡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은 그들에게도 임마누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 어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제목이 그 길 위해서인데요 이렇게 제목을 잡은 이유는 오늘의 본문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의 여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할 걸어가신 그 길의 여정이 마가복음 8장부터 10장에 잘 겨 있습니다 마가복음은이 길의 여정을 중요하게다고 있습니다 왜면 예수님께서 자들과 면서 앞으로 그들이 걸어가야 할 제자의 길 즉 제자도에
대해 가르쳐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이 길 위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가 등장하죠 그래서 이제 마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내용이 중요한 내용이야 것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독특한 문학 기법을 사용하여 기록했습니다 이젠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지오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죠 이 방법은 중심 내용을 필로 해 양옆에 앞뒤에 유사한 내용이나 표현을 두어서 중심 내용을 감싸는 형태로 기록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주제를 앞과 뒤에 배치하여서 주제를 강조하는
방법이죠 제가 도표를 한번 준비해 봤는데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세다 맹인을 고치신 이야기로 이 여정이 시작되어서 그 가운데에는 제자도와 예수님의 순환 예고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다시 맹인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기 위해서 이런 독특한 방법까지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했을까요 주님이 그 길 위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이 길을 거르며 예수님이 전해주고자 하셨던 그리고 마가가 우리에게 중요해라고 강조했던 그 내용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한 사람에게 어서 손을 내주시기를 말씀하다 예수께서 그 무한 사람의 손을 부으시고 바라을서 그의을고게 손을시고 다 무엇이 보이냐 그 사람이 쳐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에 셨다 그 사람이 어지니 하여 모든을 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보았듯이 장애가 있는 사람의 눈에 침을 뱉거나 안수하는 등의 행위는 정결법 부정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미 그것을 다 폐지하기 때문에 이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눈먼 사람에게 손을 직접 대시고 그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뭐 크게 이상한게 없죠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전과 달리 베세다 눈만 사람은 두 번에 걸쳐서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단 한 번만에 그 모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왜인지 그렇게 하지
않으시죠 대체왜 예수님은 굳이 두 차례 걸쳐이 사람의 눈을 회복시켜 주셨을까요 좀 전에 말했듯이 인클루지오 현재 저자의 마가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문화 기법입니다 그 말은이 눈먼 사람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이죠 먼저 이 이야기에 핵심은이 눈먼자가 예수님에 의해서 그 눈을 뜨고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클루지오 구조의 중심에 위치하는 제자도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제자들 또한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서이 맹인과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아직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맹인이 처음에 실력이 회복되었을 때는 희미하게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볼 때 마치 나무가 지나가는 거 같아요라고 고백하죠 처음엔 희미하게 보았다가이 이후에는 그가 온전하게 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또한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오랜 시간 동안 예수님을 통해서 복음에 대해 들었고 그분이 왜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었죠 실제로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아직 도 이해하지 하는구나라는 책망을 줄곧 듣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아직은 희미하게 깨닫고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해줍니다 그들의 영적인 눈먼 상태가 분명히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하게 바라보고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제자들의 상태는 다음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좀더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빌립보 가사로 가는길 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부르니 이에 제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죠 아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그래요 어떤 사람은 엘리야 그래요 아니 어떤 사람은 예언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대답이 끝나자 예수님은 그분께서 진짜 하고 싶으셨던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제자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니 그리고
여기서 유명한 베드로의 대답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차이는 조금 있겠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인 이것을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마쉬아흐 단어가 됩니다 이것은 기름을 분 받은 사람이란 뜻이죠 기름을 부 받은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유대인들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 즉 구원자를 나타내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베드로의 고백은 그냥 우리가 말하는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인 민족이 그동안 고대하고 고대하며 기다렸던 그 구원자가 바로 주님이십니다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하시고 인정해 주시죠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정체성과 예수님의 사명을 마치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진짜 사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고 예수께서는가 드시 많 난고 장들과들과 자들에게 받다 나는 것을게 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내놓고이 말씀을 하시니 그와 예수를고 그에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 제자들을 보시고를 말씀하셨다 사아 내게로 가라 너는 하나님의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야기를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들이 전 예상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라고 항의합니다 여기서 항의하다 단어의 원어는 꾸짖다 의미를 가진 에피티비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데요 언제 등장했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실 때 그리고 거친 파도를 꾸짖어 잠잠케 하실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인 예수에게 용하 꽤 거친 표현이죠이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에 거칠게 항의하고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를 꾸짖으면서 말입니다 마치 엄마에게 절대지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대드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그들은 제자들에게 듭니다 그럼 베드로의 반응을 본 예수님께서는 더 거칠고 더 무섭게 짖으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하시며 사아 뒤로 물러가거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인정받았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사탄이라고 이루셨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전에 하셨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에는 하나님이 정하셨고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조 동사 데이라는 표현이 쓰여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이 그 단어에 어 속해 있는 것이죠 이 표현을 베드로와 제자들이 몰랐을 리 없어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으나 그러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메시아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구원자가 저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처용 당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거칠 게 했겠죠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이끌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진 그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모든 외세로부터 독립시켜 주고 또 자신들을 강국으로 세워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모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평범한 유대인이었던 베드로와 제자들도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그렇게 바라봤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도 생각했겠죠이 분이라면 그 메시아가 될 수 있겠는걸 이분이라면 우리를 독립시켜 주고 이분 이런 능력과이 정도의 권세 있는 가르침이라 우리를 얼마든지 강한 나라로 세워줄 우리의 왕이 될 수 있겠는걸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제자들의 희미한 깨달음에 불가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하나님이 메시아는 아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분명 왕으로 오신 것은 맞았으나 강력한 왕으로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마가복음에서 강조한 예수님의 모습은 왕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아를 더 뚜렷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리스도 그분이 앞으로 걸어갈 길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라 고난과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은 분명 옳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희미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신 그리스도는 달랐습니다 그들이 아직은 희미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영적인 눈을 떠서 온전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우리를 불러놓고에게 말씀하셨다 나 를 하는 사람은 자기를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라오라든지 제 목숨을 하고자하는 사람은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숨을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사고 제 목숨을으면 무슨 일이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길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적으로 읽히지만 당시의 제자들은 피부로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직접 십자가를 보며 살아가는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죠 죄인들이 십자가에 어떻게 매달리는지 그 높은 장대 위에서 사람이 어떻게 말라 비틀어져 죽어 가는지를 그들은 직접 보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 길을 따라야 해라고 말씀하신
그 말이 제자들에게는 이제 같이 죽으러 가야 돼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라는 것이죠 오늘날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아 이건 진짜 죽으라는 건 아니야 그냥 그만큼의 결단과 각오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러나 마가가 성경을 기록했을 그 당시에도 과연 그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말이었을까이 말씀은 그들에게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였죠 그들은 실제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주거하는 자신들의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도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며 살아가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를 따랐어요 그래서 마가는 지금이 마가복음을 통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교회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우리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끝까지 예수를 한번 따라보자 왜냐하면 이 길이 죽음의 길처럼 보여도 사실은 진짜 생명의 길이라는 걸 우린 알잖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잖아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목 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3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끝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예수가 아닌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 그리고 목숨을 걸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표면 쪽으로 봤을 때는 전자가 목숨을 부지하는 거 같고 제의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그 반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36절에 나오는 없다라는 것을 의미한 단어는 케르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타를 의미하는 단어는 제미스 나이고 이득이 있다라는 단어는 오펠레이라 단어가 쓰였습니다이 단어들은 모두 상업적인 표현입니다 장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다는 것이죠 아주 계산적이고 아주 상업적인 그런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단어들을 사용해서 영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근데 왠지 계산적 상업적 실리적 이런 표현들은 영생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죠 그런데
주님은 굳이 그런 표현들을 사용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세요 주님은 왜이 표현을 사용하셨을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얻는다는 것은 이익을 의미하고 잃었다는 것은 손해를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36절을 다시 읽으면 이렇게 읽을 수 있겠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이익을 보더라도 제 목숨에 대해 손해를 본다면 그게 무슨 이득이겠지만 을이입니다 그래서 울은 이렇게 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루었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기함 나는 그밖에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에서 앞서 마가복음에 쓰였던 상업적인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다 손해보고 잃었더라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자신에게 최대 자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코 예수를 따르는 삶이 손해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는 주는 일이라는 것을 바울은 가르치고 있죠 바울과 같이 똑똑하고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 성에 많이 장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런 똑똑한 사람 바울이 계산을 해봐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래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어느 한 선교사의 고백처럼 말이죠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마가복음 당시의 사람들은
실제로 영원한 것을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호흡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요 우리의 상황은 그 당시 사람들과 조금 다르죠 사실 우리는 굳이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교회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사실 내가 가진 전부를 다 걸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목숨을 건 사람은 자신의 돈 명예 학벌 인맥 등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결단이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교회에는 다닐 수 있겠으나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결코 제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내가 가진 돈과 명예와 학벌 등등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 우리의 가치관 우리가 품고 있 헛된 욕심과 기대감을 모두 버려야만 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 사람들보다 더 몸을 곤두세우고 우리가 과연 정말 제자의 길를 걷고 있는가를 항상 점검하며 걸어야 돼요 왜냐면 우리는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내가 단지 지금 당장 내 생명을 진짜 걸진 않지만 내 생명의 위협은 없지만 나는 과연 내 목숨을 걸만큼 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고 있는가 그만한 각오와 결단이 내 삶에 분명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린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그 길은 조금이라도 방신 순간 떨어질 수 있는 아주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예수를 따르지 못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재물이 아주 많은 부자였어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전혀 부족함이 느낄 틈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딱 하나 얻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이 그래서 그는 왠지 그것에 대해 가르침을 줄 것 같았던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아 영생은 네가 알고 있는 계명을 다 지키면 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아 선생님 그런 것이라면 저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계명을 다 지키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에게도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네가 모든 계명을 다 지켰지 그런데 아직 하나 부족한게 있구나 그건 네가 가진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때 그 남은 하나가 채워질 것이다 이 말을들은 사람은 고민하다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을서는 사람들에라 그면 내가 하늘에서를게 될 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우상을 짓고 심하 떠다 그에게는 제상이 말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들러 오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를 가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했던이 부자는 결국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주님은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시죠 재산을 가진 사람 그래서 모든 것을 하는 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 어렵단다 그러자 이 말씀을는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술렁술렁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대체 어느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어 과연 모든 것을 버린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리는 과연 그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제자들의 그임을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께서 말씀하다 가으로 너에 말한다 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목숨을 내어놓고 걸어야 하는 길일
수도 있죠 그래서 신중하게 아주 오래 고민해야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따질 거 다 따져보고 계산기 다 두드려보고 그렇게 걸어야 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시죠 그래 계산해 봐 마음껏 채고 따져봐 그러나 그 모든 계산의 결과는 결국 그 모든 것보다 나를 따르는 것이 더 이득일 거한다 나는 절대 너희를 손해보게 하지 않아 왜냐면 그을 나도 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란다 사귐의 가족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남는 장사 흑자를 위해서 먼저 목숨을
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죠 너희가 나를 따르면 밖에 있을 수 있지 고난 있을 수 있어 여전히 힘들 수 있단다 하지만 너희가 끝까지 나를 믿고 따른다면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거야 이제는 그것을 믿고 너희가 나에게 생명을 걸어보는 건 어떻겠니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시금 길을 떠나 이번에는 갈릴리를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갈릴리를 통과하는 그 길에서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3일 후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희미하게 깨닫지 못하죠 제자들은 이미 들었던 예고만 다시 한번 들에도 또 당황스럽고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 대체 예수님이 잘 지내시다가 이런 말씀 왜 하시는지 이제 우리나라의 독립과 우리나라의 출세가 당장 눈앞에 있는데 왜 자꾸 죽겠다고 하시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를 참아 묻지도 못하죠 과거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음껏 질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이건 무슨
뜻인가요이 비유를 저에게 설명해 주세요 하지만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거운 말씀 앞에서 그들은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의 이런 신정을 묻기도 두려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죠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을 더 괴롭게 할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마 예수님께 질문만 하지 못했을뿐 그들은 자신들끼리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두 번째
죽음 예고 이후에 제자들은 가버 함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아주 격한 논쟁을 버립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는 가오 나음으로 갔다 예수께서 수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에서 무슨 일로 다느냐 제자들은 하였다 그는 위에서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서 던 것이다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제자를 불러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가 여자하면 그는 모든 사람에 도치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 가 그 다음에 그 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으로 어는 나를 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접하는 사람은는 보다를 신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예고 이후에 가나무로 가는 길에서 아마 계속 다투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 도착하자 마아 제자들에게 왜 다는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다툰 이유를 정말 모르셨다 보다는 제자들의 잘못됨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서였죠 제자들은 가함으로 오는 길 내내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를 놓고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나면 그 다음에 누가 그 뒤를이어야 할
것인가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다툰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 모두가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사회에는 사람의 지위가 그 사람의 종기를 평가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더 많은 것을 거느리고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싶어했죠 예수님도 제자들의 이런 마음을 모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 제자의 길을 갈
수 없음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불러다가 치시고 섬김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애들아 한번 앉아 보겠니 큰 사람 되고 싶지 그런데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단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가치관에 또 하나의 파장을 다시 한번 일으키십니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하나 끌어
으시고 영접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은 방금 전 가르치셨던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본보기였다 굉장히 사랑스럽고 보호받아 마땅한 그런 존재로 인식하 그러나 고대 사회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당시 어린이들은 부모 없이 또는 어른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쓸모 존재 권력도 지위도 가진 것 한푼 없는 남에게 완전 의존해야만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열등한 존재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아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겨졌죠
다시 말해서 당시 어린이는 여자들과 같이 성경에서 약자 중에 약자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겠죠 제자들은 남자이고 어른이 강자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보란듯이 그 아이를 제자 가운데 세우시고 그를 끌어 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이 어린이를 하나를 영접하면 그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거란다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단다 제자들 눈에 어린이는 하등 쓸모없고 약자 중에 약자였습니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반대로 능력과 지혜가 많은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따르고 싶어할 만한 그런 강자 중에 강자라고 보였겠죠 절대 어린이와 예수님이 같은 레벨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제자들의 가치 체계를 흔드시는 가장 약자라고 여겨지는 어린 하이를 영접하는 것 그를 섬기는 것이 그들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그
사소한 것 그들이 무시했던 그 약한 것으로부터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마가복음 전체에는 이러한 주님의 겸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을 그냥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인자로 많이 표현하고 있는데요 무려 인자라는 표현이 16번이나 마가복음에 등장합니다 또 전승 자료에 의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나는 인자야 불렀을 가능성이 참 높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예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자신을 낮추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왕으로 오기보다이 마가복음에서 고난받는 종 섬김의 종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유난이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고귀한 후와 사람들의 찬사를 더 거부하는 것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러분 사실 예수님께서 베푸셨던 기적과 유들 그리고 그분이 가르치셨던 가르침들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죠 마땅히 사람들로부터 명성과 명예를 얻고 마치 이것을 이용하면 많은
부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실뿐 아니라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그 명예와 명성 그 모든 불을 다 거절하십시오 기적을 일으키신 뒤에 이런 표현이 참 많이 등장하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말하지 마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말하지 마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앞에 서서 뭔가 높임을 받기보다 그저 자신의 애를 묵묵히 행하는 그런 종의 모습을 더 강조하고 싶으셨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최고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거느리게 충분하나 주님은 높은 자리에 앉아 섬김 받는 왕이 아닌 종처럼 무릎 꿇고 섬기는 겸손한 왕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아주기를 부탁하고 계시죠 주님의 이 가르침은 제자들의 가치관을 흔들었이 오늘 우리의 가치관도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 사람 높은 곳에 앉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주님은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자 어울리면 나도 약자가 되지 않을까
내가 그들을 섬기면 내가 무시받지 않을까라고 망설이며 걱정한 우리에게 그것이 오히려 강자 중에 강자인 주님과 함께하는 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제가 평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즘 부모님들 자주 이렇게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부모님들로부터들은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요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것입니다 어 요즘 아시다시피 왕따 또 학교 폭력이
아주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죠 이것이 큰 문제가 되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혹시 우리 아이가 그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우리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방하고자 많은 것을 가르치고 많은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부모님들이 생각한 방법 중에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따돌림 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친구가 있지 도와주지 마 그냥 못 본 척해 또 이런 표현을 사용해서 참 죄송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표현을
많이 씁니다 찐따랑 같이 놀면 나도 찐따 돼 그러니까 나 그렇게 안 하는 거야 여러분 이런 말을 제가 일을 하면 한 세네 번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요 자신 아이가 괴롭힘 없이 잘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저라고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이 세상 속에서 그렇게 가르쳐야만 자신의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그래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 부모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저도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라는 고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저도 제 자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차마 쉽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 그래도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되잖아요 도와달라고 해야죠라는 말이 참아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들에게 잘못되었다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무라 말하든 또 내가 무엇이 옳다라고 말하든 주님이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요즘 청소년부가
예배 전에 이런 질문을 나누는데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질문입니다 사마 쉽게 말할 수 없는 이 무거운 질문 앞에서 저도 그 질문을 한번 던져 봤습니다 예수님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을 살아가는 부모라면 과연 그는 어떻게 하실까 그랬더니 여전히 어렵고 마음은 무겁지만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이미 주님이 삶으로 다 보여 주셨으니까요 주님은 요즘 아이들의 표현으로 말하는 그 찐따와 같은 그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당시 가장 약하고 천하다고 무시 받았던
그런 아이들 여자들 소외된 자들을 세상 앞에서 보란듯이 끌어 으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비교하며 평가하고 등급과 서열을 나누는 시대죠 얼마만큼 가졌는가 또 얼마만큼 소비할 수 있는가로 사람의 급이 갈리는 시대라고 모두가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대도 동일했습니다 그 시대라고 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런 세상 속에서 그들과는 반대로 모든 등급과 서를 허물고 그 모두와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또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가르치시지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소음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음이을으면 너희는 무엇으로을느냐 너희는 너희와의 소음을 어두어서 서로 하게 지하다 너희는 세상에 소음이 를면 무엇으로 그를느냐은 아무가 없 짠맛을 잃은 소금은 모양이 아무리 소금이 더 이상 소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우리의 겉모습이 제자처럼 보이고 그리스도인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자의 맛 그리스도인의 맛을 이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9장 절을 통해서 자가
져야 할 제자의 맛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죠 우리 사이에 소금을 쳐서 우리가 그 세상의 모든 설과 등급을 뛰어넘는 화목을 이루시기를 주님은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 작고 힘없는 것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들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명은 제자로 살기를 하는 오에게도 되는 말씀입니다 는것이 쉽지 않겠죠 어쩌면 우리가 걱정했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멸시받는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주님처럼 살겠다고 시작했지만 살다 보니 우리가 가진 것은 다 잃어버리고 어쩌면 무시받고 있는 그런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스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기꺼이 내려가 앉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높아지고 섬김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나를 희생하기 다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일러 서기를 우리는 바라죠 내 자녀가 따돌림 받기를 원치 않는 마음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야 그냥 도와주지 마 못
본척 해라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본일 모릅니다 그래서 제자의 길은 이런 마음까지도 내려놓는 자기 부인이 꼭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각오해야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후에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방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의 마지막 여정인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길을 다시 나서시는 예루살렘으로 오다 인자와 사람들과 자들에게 하 것이다 그들은 인자에게 사을 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이사람들은 인자를 조하고고 하고 죽것다
는 사 날 것이다 방금 읽은 말씀은 마가복음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그리고 이 기의 여정에서 마지막 등장하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서 예고하셨습니다 이제 정말 그분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이번에는 서로 주님의 옆 앉겠다고 옆에 앉겠다고 답 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영광스러운 자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가서 자신들 중 한 명은 주님의 오른쪽에 또 다른 한 명은 왼쪽에 안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분노하며 예수님 옆자리 앉기 쟁탈 전에 함께 참여합니다 마치 베세다 맹인 올바로 보지 못하고 여전히 희미하게 보는 깨닫지 못하는 그런 모습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제자의길 섬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
다스린다고 자하는 사람들은 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성들에게 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 그렇게해서는 안된다 너 누구든지 하게 되는 사람은 너를 섬 람이 하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힘으로 마구 내리누르고 권세를 부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약육강식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렇게 해서 안 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다른 사람을 기꺼이 섬기며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참된 위대함은 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위대함은 그 종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제자들이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그렇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시죠 예수님의 섬김은 십자가를 통해서 절정을 맞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노예나 강도 또는 제국 통치에 반기를든 사람들이 당하는 처 형이었습니다 또
십자가형은 구경들 구경꾼들에게 볼거리와 오락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거행되고 또 많은 가학성이 마음껏 발휘되는 사형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의 문명인들은 십자가를 입부 언급하는 것조차 거렸어요 자기 입이 더러워진다는 거죠 로마의 작가들도 많은 주제를 다루고 글을 썼지만 십자가에 대해서는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수치였고 때문입니다 키케로는 사람은 십자가을 노예 제도의 가장 큰 형벌이라고 표현했으며 요세푸스는
가장 불쌍한 죽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는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꺼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종이되어 노예제도의 가장 큰 형벌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십자가에 달리기로 결정하십니다 예수님이라고이 결정이 쉬웠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겠죠 예수님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고통스러웠다고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에게도 자신의 원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기 부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지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보여주신 제자의 모습이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그분이 가르쳐주신 제자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은이 여정의 마지막을 다시 세다 맹인과 같이 맹인의 이야기로 매듭을 짓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동시에 거지였던 바디메오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여리고의 한 길가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쩌면 그곳은 그가 매일 구걸하던 장소였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옆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죠 바미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나가신라는 소리는들을 수 있었어요 그러자 그것을들은 그가 한치의 망림 없이 크게 외 의 자손 예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람들이 그를 무시합니다 어디 거지 주제 어디 병자 주제 부정하게 사람들 앞에 끼는 거야 네가 감히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조용히 해라고 박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미는 그들의 음성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외치죠 다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람들에서의 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의 자손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눈 바디메오는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장면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구원을 줄 예수를 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께 간절히 예죠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 마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인 메시아로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멍 거진 바디메오 예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것을 바로 보고 고백합니다 그 외침을들은 예수님은 가던길을 멈추시고 사람들을 시켜 그를 부르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서을시고 그 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한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기를내어 일하시고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고 그는 자기의 고을 벗어지고로 서다 계속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 바라느냐 그 원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님 내가 다시 올수 있게 하여 주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라 너를 구원하였다 여자 그 사람고 자시 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를 다 예수님이 바디메오 부르시자 바디메오는 자기의 겉옷도 벗어던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근데 성경에서 그를 부를 때 이렇게 표현하죠 용기를내어 일어나십시오 용기를내어 일어나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여러분 제자로 초청받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용기를내어 내 앞으로 나오거라 그 음성의 바디메오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 쫓아 벗어던지고 예수님 앞에 한 걸음에 달려갑니다 거지가 입고 있었던 옷이니까 얼마나 형편 없겠어요 얼마나 볼품 없는 낡아빠진 옷이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전부였을 거예요 그러나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그 전부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 용기를내어 갑니다 마치 예수님을 처음 따르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 앞에 무릎 꿇는을 예수님은 치료하셔서 보게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된 바디메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섰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바디우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시력의 회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이 안에도 베세다 맹과 같이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의 맹인이 두 번에 걸쳐 치료되기 제자들의 미 을 의미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더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면 바미의 사건을 통하여서는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제자들이 이제는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의 십자가 의미를 바로보고 그길을 따라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희미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이 바디처럼 눈을 뜨고 용기를내어 기쁘게 따를 때가 되었다라고 알려주고 계신 것이죠 즉이 이야기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시는 십가 길을 따라 걸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 길 위해서 알려 주고 싶으셨던 제자의 길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고대 전기의 형식으로 책을 기록했습니다 고대 전기를 기록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한 인물의 삶을 어 소개하면서 그의 위대함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인물의 삶을 모델로 제시하여 우리도 이렇게 살자라고 어 하는 그런 도덕적 열망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모방에 대한 표현이 마가복음에서 나를 따르라는 표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표현이 다른 복음서와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빈번하게 등장합니다이 짧은 책에서 다섯 번이나 등장하고 그중에서 무려네 번이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 길 위에서 등장했습니다 마가가이 표현을 이렇게나 자주
사용한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는 대교 사상을 생각나게 해서 독자들이이 일에 참여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며 그들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대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걷고 계시잖아 그 우리도 함께 걸어야지 그 길이 두렵더라도 용기를 어야지 슬프더라도 기쁘게 주님을 따라야지 마가는 책의 전반부를 통해서 생명의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 곧 모든 사람에게 시작되었음을 가르 그리고 이 이후에 제자도에 대해 기록합니다 이것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 모든 독자들에게 너희는 제자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마가복음은 구조적으로 굉장히 짜임새 있게 쓰인 책 중 하나입니다 마가가 복음을 소개하고 유대인에 대한 복음 이방인에 대한 복음 그들에게 시작된 것을 다 설명한 이후에 전반부를 마치고 후반부를 시작하는이 사이에서 제자의 길를 설명했다는 것은 마치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너네 복음을 들었지 유대인들 이방인이든 다 구 구원 받았지 그렇다면 제자의 길도 걸어야 해 아 나는 구원만
받고 제작까지는 안 하고 싶은데요 저는 그냥 좀 적당히 교회 열심히 다니고 그냥 주일 성수하다 아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마가복음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곧바로 제자의 길이 시작됩니다 복음이 시작된 사람은 제자로서 여정이 함께 시작 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 그분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분과
함께 그분이 걸으신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걸어야 하는 길은 세상과는 다른 길입니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일어서고자 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 아래 무릎을 꿇고 섬기는 그런 종의 길입니다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지혜롭다 말하고 하는 세상에서 미련 하리만큼 진리를 추구하며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세상에 가이 가과 충돌하고 세상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그래서 미련하다고 손가락질 받고 무시당할 것이 뻔한 그런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망설여지기도 하죠 그러나 여러분 두렵고 망설여질 때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먼저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걸어가신 그 뒷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의 길은이 길은 이렇게 걷는 거란다 쉬워 보이지 않지 어려울 거야 힘들 거야 고난이 있을 거야 나도 알아 그런데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렴 나는 비록 이 길을 외롭게 혼자 걸었지만 너희는 내가 함께 걸을 거란다 너희는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사귐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된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많이 배웠습니다 세상의 피라미드를 완전히 뒤엎은 역피라미드 나라입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섬기면 섬길수록 오히려 큰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한 그런 나라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를 진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모든 것을 얻게 하고 샬롬을 누리게 하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제자의 길도 세상의 길과는 다르죠 이런 아이러니한 제자의 삶을
고린도 후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믿 없는 사람 같나 유명하고 죽는 사라가 그나 시로 살아 있습니다 증거를 받는 사람가 그나 주님을 당하 때까지 이루지 않고 의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하는 자 같으나 많은 자람을 려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 같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제자들을 부르셨던 그 길 위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함께 걷자고 말이죠 힘들겠지만 내가 너희와 임마누엘 함께
할 거니까 또 함께 하고 있으니까 나와 같이 걷 자라고 약속하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요청에 부자는 자신의 가진 것을 버릴 수가 없어 울상을 짓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과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걷고자 했던 길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바디처럼 용기를 가지고 여러분의 전부를 벗어던져 주님을 따르십시오 비교할 수 없는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다 이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겠지만 곧 그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흑자를 얻었다는 것을요 주님과 함께 섬김의 길을 걸으십시오 세상과 달리 주님은 기꺼 섬긴 여러분을 고기하다 여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안개 속에서 보이듯 흐릿하게 보는 눈을 이젠 온전하게 뜨십니다 주님은 결코 여러분을 그 길 위해 홀로 세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이 마음을 가지고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