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 팸 예배] 10분 메시지 + 3C 나눔 + 공동체의 약속 / 예레미야 6-11장

2023-08-11 · 예레미야 6-11장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죄의 어원은 과녁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기준 활로 쓸 때 그 과녁이 되기 때문에 말씀을 벗어나 살아간다는 삶은 당연히 죄와 가깝기 쉽습니다 예레미야가 활동을 시작한 요시야 시대에 그 남유다의 모습이 바로 그런 죄악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남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그들에게 하신 일이 두 가지가 일이 있는데 하나는 예레미야를 보내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율법책을 요시야가 발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말하고 싶은 뭐냐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셔야 될 일을 다 하신 거예요 이제는 그 예레미야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율법책을 발견하게 한 그 하나님의 그 일 가운데 각 사람의 반응이 필요한 것이죠 아마도 이때 요시야왕이 발견한 책은 신명기 말씀의 일부였을 거라고 보입니다 왜냐면 신명기에는 약속의 땅 가나 지금의 그 유다의 영토에 들어오기 전에 여호수아 통해서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약속의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이

뜻대로 살게 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너와 너의 자손이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지만 만약에 그 땅에 들어간 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버리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리라라는 말씀이 신명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켜서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냥 하나님만 잘 믿는 것이지 않고 성경을 보면 매우 실제적인 변화를 동반하고 있어요 종교적으로는 당연히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정말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는 것이고 또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싫지 않았지만 우리가 주의 받던 신명의 말씀에 보면 너희 이전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다 왜냐면 너희가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말씀을 사는 공동체에 그런 모습이 있는 곳은 가난자를 돕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말씀을 발견한 후 말씀대로 살지 않았던 자신과 남유다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변화를 위해서 결단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 그것이 육신의 시대에 있었던 종교개혁입니다 예레미야 소에 나타난 대한 평가를 보면 예레미야서에 나타나기를 그는 정의와 공의를 행했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한 왕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이 얘기는 그가 신명기에서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대로 살고자 힘썼다는 것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변화는 신앙심만 좋아지는 것을 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신 것은 우리의 종교심의 변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한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면 그 한 사람 말미암아 점차 그 공동체가 변화되고 그러한 공동체가 생겨나게 된다면 더 나아가서 그 나라가 변한다라는 곳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문제는 무기 또 전투에서이 뛰어난 왕이었던 요시야가 죽게 된 거였어요 남유다는 죽음과 함께 다시 요시야의 종교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서로를 돕고 연대하기는 커녕

자신의 이익만의 추구하는 모습을 살고 있었다고 예레미야서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신명기 말씀이 바꿔놓기 전으로 다시 종교교하기 전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기 전에 주셨던 마지막 그 회개의 기회를 남유다는 놓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회초리를 드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것이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심판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서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그런 심판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 심판도 큰 의미를 보자면

영원한 심판이 아니라 회초리죠 돌아오라고 하는 그러한 따가운 심판입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위해서 외치지만 사람들의 예레미의 외침도 무시합니다 도리어 그 시대의 하나님과 무관한 예언자들의 달콤한 메시지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이 정도면 괜찮잖아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예레미야 소에서 가장 충격적인 액션 중 하나는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외치는 성전문 앞에서 서서 외치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하나님은 성전의 봉헌했던 다윗과

그 솔로몬의 하나님의 집을 지어주고 싶은 그 마음을 받아주셨고 기꺼이 우리의 세계에 하나의 건물을 자신의 거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사실 건물이 하나님의 크심을 대변할 수 없지만 그것을 허용해 주셨던 이유는 그렇게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예배자들의 마음을 진실한 마음을 그 정성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마음은 다 잃어버리고 형식적인 성전지사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성전에 자신의 마음과 존재를 두지

않기로 결정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것입니다 당시 남유다의 신앙은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도 저주른 후에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며 악행의 용서받고 자유해지는 그런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자신들의 범죄를 신앙적으로 정당화 시키려는 자들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었던 거예요 즉 우리가 죄를 저지르지만 성전 가서 죄사하면 되지 성장을 재산이 우리 괜찮아라고 하는 마음이죠 그리고 그들은 종교 행위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우리는 그래서 여전히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용서하기는 커녕 그들의 그러한 예배를 그런 형식적인 예배 그런 뻔히 보이는 어떤 그들의 세탁하는 예배 같은 그 예배를 가증스럽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것은 깊이 새겨 드려야 할 말씀입니다 왜냐면 자동적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예배를 가진 자들에게 예배는 계속 죄를 범위도 좋다는 악의 면허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름에서의 고발은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바벨론 땅에 포로로 보내셔야만

했고 왜 예루살렘 성전에 버리셔야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매해서는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혹시 남유다가 했던 그 잘못을 우리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자각하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성전에서 예비하는 것으로 괜찮은 신앙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표면적 종교인의 모습을 내가 갖춘 것으로 스스로 난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자부하고 있는 착각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향해서 점검하도록 하는 말씀들입니다 남율의 백성은 항상 거짓된 선지자에 의해서 듣고 있는 말씀대로 우리는 평강하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는 안전하다라고 말하며 계속 악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도 뭐 여러분들이 이 신앙생활 때 분명히 여러분이 깨달아야 될 지점이 있는데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하는 사랑 많으시니까 괜찮을 거야 이 정도면 되지라는 착각 속에 혹시 내가 깨달아야 될 부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또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권면에 무시하는 곳이 되지도 모릅니다 이름에서가납니다 여러 모습을 고발하는 것은 그래야만 멸망한 원인을 나중에라도 그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너희가 이렇게 잘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곳이라고 깨달아야지 그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남윤아님 바벨론의 프로를 끌려가요 근데 이 포로로 끌려가서 그들은 거기서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서 회복하게 됐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서는 당대보다 후대에 다시 있는 다시 거론되어졌을 때 어쩌면 더 메시지가 있었던 것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앎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식론적 행위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안전한 지식이 아니라는 거예요 구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고백적 성격이 담긴 지식입니다 그것은 내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결단적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왕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겠다는 결단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뭐냐면 유다는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싫어하는지 모른 채 혹은 어쩌면 알면서도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대로 수많은 신의 섬겼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불과했습니다 유다가 하나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해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는 특별한 보호와 구원의 은혜를 언약 백성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약은 약속이기 때문에 약속에 대한 책임도 함께 존재합니다 여기 예를 썼지만 뭐 많이 대화가 드는 예지만 우리가 부부관계가 되기 전까지는 내가 누굴 만나도 상관없어요 내 부부관계가 있으면 누굴 만나는 것이 상관이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갔을 때는 우리가 더 이상 하지 않아야 될 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율법에 따라 언약을 파기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가 떨어집니다 유다 남유다와 우리 지금 신약의 성도는 동일하게 언약 백성이에요 여러분도 언약 백성입니다 우리는 유다혜를 반면교사 삼아서 우리가 어떻게 유다의 잘못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 봐야 될 것입니다 푸른 감람나무 같았던이라고 표현된 유다였으나 현재는 주 되심을 거부하고 떠났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 되었으면 예레미야는 선언합니다 이전에 특별한 관계가 현재의 잘못을 무조건적으로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내가 과거에 이랬는데 과거 열심히 여전히 기대어서 현재 나의 부족함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오늘 우리를 비추고 있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기대하는 것만큼 여러분 마음을 정하고 뜻의 정하고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를 대표해서이 3c를 나눠줄 아리따운 분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아랫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면 됩니다 네 안녕하세요네 3C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아주 바쁜 편에 속하는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직장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라 그런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면 쉽게 불만과 불평을 토로하며 표정도 저의 감정 그대로 바로 내비치게 됩니다 어쩌면 저의 하루와 일상 중에 제일 많이 시간을 두는 곳이자 가족 다음으로 저의 모습을 제일 많이 보게 되는 곳이기도 하죠 이러한 저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부끄럽기도 하고 속으로는 자책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고 매번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불편과 불만으로 무장하며 지냅니다 바쁜 직장 속에 직장에 속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나아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저의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날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저의 최근 삶은 말씀으로 따라 살아가기보단 시간이 흐르는 대로 지내왔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주일이 되며 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헌금과 예배를 드리고 한 주간 마음에

걸리는 죄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고백하고 새롭게 다짐하며 다시 바쁜 직장 속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바쁜 월요일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저는 다시 주일에 다짐했던 것들이 가루처럼 흩날리며 사라지게 됩니다 저의 이러한 일상의 모습이 남유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걸로 정당화하고 말씀을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부심과 착각 속에서 사는 남유다를 보며 경고하시고 돌아오라는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남유다만을 향한 것이 아니겠구나' 네 감사합니다 어네 우리 다음 타자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네 장준영 형제입니다네 우리 공동체 하나됨과 평화를 위한 우리 약속 함께 같이 보겠습니다 굵은 글씨 한번 읽을까요 시작 하나님의 마음과 음성을 잘 듣고 싶습니까 경청을 그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훈련입니다네 저에게 그 제가 지금 목회하는 것 중에 목회를 할 때 제가 경험한 것 중에 여러가지가 당연히 영향을 줄 텐데 사실 일정부분 많은 부분이 그 제가 경험했던

dts라는 훈련에서 제가 경험했던 것들이 녹여져 있는게 있어요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도 dts에서 하는 방식이에요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적용해서 좋았던 것들 하고 있는데 제가 몇 번 얘기했지만 거기서의 가장 중요하다는 하나님 음성 듣는 삶인데 그걸 배울 때 하나 음성 듣는 삶을 훈련하기에 가장 중요한 훈련 가운데 하나가 실제적 삶에서 옆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다 그 얘기가 생각나서 좀 적어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잖아요 근데 그것을 위해서 내가 훈련해야 되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경청이에요 경청은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그것이 어쩌면 그 첫 번째 훈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시나요 어쩌면 우리가 이 팹리뱅 시간에 다른 걸로도 위로할 수 있지만 내가 뭔가를 나눌 때 내 눈을 바라보며 따스함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누군가의 그 표정 자체가 저는 위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이 자매님이 저 극곡이 크다면 위로를

제가 받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의 나눔을 잘 듣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니면 그냥 그 얘기 듣고 나중심적인 이야기로 훈수를 두는 것은 저는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먼저 우리에게 의견에 묻거나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면 저는 이 펜비스계 만큼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잘 들어주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누이 맞추며 고객과도 잘들은 후에는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해 주는 것이 저는 우리 아름다운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

누가 얘기할 때 끼어들어서 훈수를 두거나 아니면 내가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좀 이제 훈련을 해서 내려놓고 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잘 새기고 함께 또 새긴 곳을 갖고 기도해 주시면 우리 공동체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그것이 우리가 이 패밀리의 시간을 통해서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잘 해줄 수 있으시죠네 고개도 좀 끄덕여주시고 잘 수 있으시죠네 그렇습니다네 광고 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