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이기적인 고통이라는 설교의 제목을 가지고 예레미야 12장과 15장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이 말씀을 온전히 여러분들과 고통에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느끼는 고통 예레미야가 느끼는 고통에 집중하여서 지금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 요리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고통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함께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함께 예레미야의 고통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살아가시면서 혹시 아마 혹시가 아닐 텐데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난 혹은 영혼의 영혼의 밤에 갇혀서 힘들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그런 시간에 지금 보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분명한 것을 우리는 누구나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우리는 고난의 문제에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밤에 지나는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에 우리는 맞이하게 됩니다 근데 이것은 내가 특별히 못난 사람이어서 내가 어떠한 죄인이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의 문제는 학생에게는 입시의 문제가 청년들에게는 자격증 시험이 취업이 결혼이 작년 분들에게는 자녀와 부부의 문제 가정의 문제가 여러분들에게 고난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고난이라는 것은 마치 철저하게 짜여진 시간표 속에서 기계처럼 작동하는 우리를 괴롭히고자 만들어진 고문기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고난이 우리에게 마냥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고난을 흘러가는 물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이 고난의
문제를 유려하게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고 비원지 해 뜨는 날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이 고난이 너무나도 버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고난은 나의 예측과 준비를 늘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이 고난의 문제라는 것을 얼마나 다양한지 사람의 악함이나 선함을 따지지 않습니다 단지이 고난은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에 내가 참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가장 지독한 그 순간을
찾아오는 것이 고난입니다 우리가 견뎌내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도 그 문제들을 고난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 살아가는 아주 긍정적인 상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고통없이 사랑하는 나의 인생을 꿈꾸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래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몸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에 건강하게 건강해서조차 없을 것입니다 내 몸에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경고 장치가 아주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하여서 내가 몸으로 겪을 다양한 고통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에 갖추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으로 나누는이 예레미야라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변명을 갖고 있는 이 예레미야는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예레미야를 가장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또 가장 중의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가 수없이 흘린 그 눈물은 자신이 겪는 고통과 조국을 향한 애통함 하나님을 향한
그 신실함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간략히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와 역사를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7년부터 581년의 활동한 예언자로서 남유다의 가장 악한시기 역사적으로 가장 비극적인 식의 활동한 예언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586년에 유다가 멸망하였으니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한 이후에도 5년이나 더 활동한 비극적인 예언자입니다 요시야 왕 13년부터 활동하여서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눈물로이 유달은 애통해 하고 하나님의 섬기며 자신의 고통을 견뎌야 했던 인물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겪는이 고통을 부당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는 순종해서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오히려 나는 고통받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오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공정성 문제의
한 가지를 여쭙겠습니다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지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그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다면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하는 마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된 일인지 유달의 심판하시겠다 말씀하시고 나서도 어떠한 처벌도 어떠한 심판도 유다에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소리칩니다 아니 하나님 도대체
심판이 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판은커녕 하나님 앞에 악행을 저지르는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 형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지켜봐야 하는 예레미야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큰 비통과 비참함이 느껴야만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1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소명할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 소명을 처음에는 거절합니다 내가 아래였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도 어립니다라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고백함이 하나님께서 처음 예레미야를
소명한 장면에서 그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스스로 어리다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위로하시며 약속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아멘 하나님이 이렇게 예레미야의 부르심을 위로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제게 아니 공정성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예레미야가 느끼기에는 정당한
정당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한번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호해 줄게 내가 나의 말로 너를 지켜줄게 이게 나의 너와 나와 너가 맺힌 약속이라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면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에도 유다는 여전히 형통했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언하는 자신은 너무나도 비참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의 삶이 비참해졌으면 우리는 어떤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해야 되는 이유로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당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에 선언했을 뿐인데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 말하며 그를 부정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애터와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아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계십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내 집을 버렸다 내 소유로 택한 내 백성을 포기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백성을 바로
그들의 원수에게 넘겨 주었다 이어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내 땅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았다 황무지가 된이 땅이 나를 보고 통곡한다 온 땅이 이렇게 황무지가 되었는데도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애타는 마음으로 그 예레미야의 공정성 문제를 대답하십니다 나는 내 집에 버렸다 내 소유를 택한 내 백성을 내가 포기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백성을 이제는 그들의 원수에 이렇게 넘겨 줘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혹시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아니 애타는 마음이 너무 이새는 더 이상 태울 마음이 없어서 시들어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설교에서 하나님의 심판에는 임계점이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하나님의 유다를 향한 심판은 사실 예레미야가 생각한 것보다 큰 임계점을 지녔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자기가 거의 집을 버렸을뿐 아니라 내 소유를 택한 백성을 포기하셨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예레미야는 묻습니다 아니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내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죽음의 위기 속에 살아가야 하며 악행을 일삼는 저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형통해야 합니까 예레미야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묻습니다 유다의 심판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심판과 별개로 예레미야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예레미야에게 침묵하고 계실까요 12절 말씀처럼 포도원이
망가져 황무지가 오히려 황무지가 하나님께 통곡하고 호흡을 판이 된 포도원은 하나님 앞에 버려졌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고통을 자기 선지자에게 가감없이 드러내고 계십니다 하나님 자신 또한 고통과 애통 속에 있음을 예레미야에게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이거나 기계적인 신이 아닙니다 제사법을 받아먹으면서 자기 기분에 따라 자신의 추종하는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으로 택한 그 시간부터 지금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이 시간까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반증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는 긍휼의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분 그 긍휼을 우리는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삶은 고통만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삶을 살아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희망과 용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희망과 용기이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다시 얻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선함만 존재한다고 해서 이런 희망과 기쁨만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함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온전히 우리가 누릴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하나님이 절대적 옳음의 기준이라는 것을 예레미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옳음 뒤에 유다의 간악함과 하나님의
떠나 살아가는 영적 외도에도 불구하고 그 선한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옳은 말씀에 전하는 자기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 됨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소리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온전히 자신의 고통으로 인한 하나님의 부재와 불공정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는 물놀이를 되게 싫어합니다 갑자기 물놀이를 되게 싫어합니다 제가 물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제
중학생 때입니다 제가 바다에서 이렇게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수영을 잘 이렇게 하다가 파도에 밀려서 제가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다에서 이제 너무 크게 겁을 먹고 발바닥을 치다가 바다에서 발버둥치면 어떻게 되시는지 아시죠 물을 먹게 됩니다 바닷물을 먹게 되고 바닷물이 먹으면 사람은 당황하게 되고 당황하게 되면 사람은 바다에 빠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당황해서 물을 먹게 되었고 너무 너무 물을 많이 먹게 되었고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진심으로 아이씨는 내가 정말 죽겠구나 싶어가지고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손짓과 발짓을 통해서 살려달라는 표시를 저와 함께 놀러온 그 사촌형들에게 막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살려달라고 근데 너무 거리가 멀어서이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발버둥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제가 바다에 빠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꽤 오랜 시간에 발버둥 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이상하게 여긴
저의 그 사촌 형 중에 가장 큰 형인 사촌형이 저를 구해줬고 저는 저를 보면서 제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저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면 놀리고 있던 사촌형들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이 무섭습니다 고통이나 이런 것 같습니다 내가 내게 직접적으로 다치지 않는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되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이 고통은 남이 보기에 희극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실로 엄청난 고통입니다 자신의 삶을 들여
순종하고 사선에 넘나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은 무책임하게 침묵하고 계신 겁니다 마치 그렇게 예레미야의 눈에는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이 시간이 오기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습니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 화장실에 썼다는 이유로 교회 사역자네에서 왕따를 당해 하나님과 교회를 떠난 제 친구도 목사의 아들로서 누구보다 하나님께 부모님께 순종하고 삶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전도사이자 신학생이었으나 백혈병에 걸려 수열의 받지 못하면
죽을 위기에 처한 저의 친한 형도 무슨 나이에 개척교회에서 전도사로 부름을 받아 60이 넘는 나이에 하느님 말씀을 배우고 전하다가 새벽 예배에 나가는 횡단보도에서 뺑소니로 세상을 떠난 저의 전도사님도 며칠 전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사역하던 함께 율동하고 찬양하던 후배가 여행 중 음주차량에 의해 사고로 세상을 하루아침에 떠났을 때에도 제가 수년간 동고등록하며 함께 사역한 동역자가 여러 문제로 나를 떠날 때 자신과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다른 사람을 시켜
나의 팔과 다리를 자르겠다며 위협할 때에도 하나님은 부처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부채는 부모님이 이혼도 아니었습니다 이혼 후에 나를 외모의 차에게 밀어낸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함께 저를 키워주시던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관계가 하루아침에 거짓 관계임을 알았을 때 내가 가진 모든 물질과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내 상황에 의해 철저히 부셔졌을 때 저는 인생의 흔들리고 책에 속한
모든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의 지독한 악함과 불신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예레미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이 길을 걷겠노라고 걸었을 뿐인데 하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저의 상황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제 주변은 너무나도 비참하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 보독하고 부정하고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부재함을 경험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저를 괴롭게 했던 그 사람은 이 세상
가운데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를 죽이겠다 위협하였던 그 사람은 지금 해외로 떠나서 외제차를 사고 목사 안수를 받아서 또 누군가 앞에서 말씀에 전하는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습니다 제 삶의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제 인생에 주인 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제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은 그리고 저의 삶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 고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금일 연단하여 천금같이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도 뜨겁고 고통스럽듯이 연단은 고통을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맺습니다 혹여 우리의 연단의 과정이 소망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위로와 신실하심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눈에 나타나는 소망이 없을 때 내가 가장 그 힘든 순간에 나보다 더 슬퍼하며
애통해하며 하나님을 우리는 애써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포도원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서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의 바라보며 사장님이 내게 주신 고통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이것을 우리는 견딜 수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겪는 고통만 이해하고 하나님께 토로 할뿐 하나님 또한 애통 중에 있음에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매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이 겪는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의 크기와 통증을 우리는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처주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 단순히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겪는 그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나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레미야 고통에 대해서 첫 번째로 나누어 봤다면 두 번째로 함께 나누기 원하는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어떠한 마음이 되십니까 저는 단순히 하나님의 분노하심으로이 말씀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하나님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신음하는 신음 소리로 들렸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보좌로 부재하심으로 고통스럽다고 소리치듯이 하나님 또한 자신의 고통과 애통함이 지금 예레미야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네게 와서 간청한다고 한들 나는 그것이 들리지 않을 거야 내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만큼 나는 너무나도 큰 고통 중에 있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의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타는 하나님은 고통 속에 계십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고통스럽습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이 당신이 만든 피조물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심판해야 하나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백성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하나님은 애통해 하시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선택하고 계십니까 아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고난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면서도 정말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택할 용기가 있으십니까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는 우리를 간 사람 취급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이 시간이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말씀에 나누고 우리가 세상 가운데 선행의 베풀고 우리가 선의를 베푼다고 한들 세상은 우리의 선행은 기억하지 않고 이 세상 가운데 완연한 불의와 고통을 말하며 하나님의 부재를 토로합니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완연한 죄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를 원망합니다 마치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예레미야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세상의 선함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상황은 결국 하나님의 원망하고 하나님의 탓하며 우리는 우리의 고통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공정성을 의심합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믿는 것이 정말로 고통뿐이라면 그리고 고난이 존재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이 도대체 믿어야 합니까 이에 대해 성경은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탕자는 탕자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의 첫째 아들은 예레미야를 의미합니다 둘째 아들은 멸망당할 유다와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유다는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아버지 유업을 받아 방탕하게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이런 못난 둘째 아들은 하나님은 내치지 않으시고 다시 받아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내가 다시 얻었으니 우리가 함께 즐거워함이 마땅하다 우리가 찬실의
여자 그래서 잔치를 둘째 아들을 위한 잔치를 아버지가 열어줍니다 이때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돌아온 첫째 아들의 눈에 아버지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성대한 잔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자기의 첫째 자신의 종을 불러서 묻습니다 도대체 도대체 이 잔치가 무슨 잔치냐 그게 종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오가 당신의 동생이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께서 잔치를 둘째 동생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이게 첫째 아들은 분노합니다 그 분노한 첫째 아들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는 그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위로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께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단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 나에게는 이렇게 대해 주셨으면서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들고 도망가서 세상의 모든 방탕함과 세상의 모든 유익을 즐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온 둘째에게는 왜 이런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까 정말 이것이 내게 공정한 일입니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지 모든 것은 이미 다 너의 것이야 그러나 둘째 아들은 나를 떠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그를 다시 찾았으니 우리가 함께 그 아들을 기뻐하는 것이 봤다 우리는 삶이 너무 고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시련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믿고 하나님의 따르기를 결단했기 때문에 내가 겪는 불의함과 억울함에도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열심히 청소하고 헌금하고 예배드리며 주의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의 상황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세상의 방법과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를 떠난 저들은 형통 가운데 살아감을 봅니다 우리는 고통과 불의함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얘야 사람 나의 아들아 살았나에 따라 너희는
이미 내게 속하여서 내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믿어야 하는 누군가가 고통과 고난이 존재한다고 존재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가 도대체 왜 믿어야 됩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그렇다고 하여 우리 삶에 나타나는이 고난의 형태를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 인과 관계를 우리는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깨어진 믿음 속에도 하나님이 향한 그 깨어진 믿음의 보고서도 하나님은 그 고난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여서 우리와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통에만 집중할뿐 하나님이 받으시고 고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그 고난의 문제가 내게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난을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수많은 인물도 하나님의 허락한 그 고난 앞에 줄줄이 쓰러졌습니다 하느님 앞에 당대의 최고의
의인이라 칭한 받았던 욥도 피부병이 생기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불렸던 아담과 하와마저도 쓰러지고 하나님이 주신 그들에게 주신 고난의 문제를 서로에게 전가합니다 그리고 저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난의 통해 내가 성장할 것과 하나님이 내게 주실 교훈과 축복을 우리는 온전히 바라보기 힘듭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태도로 너무나도
이기적인 태도로 고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으로 고통을 대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가장 큰 약점이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대다수의 악한 문제의 시작점일 것입니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난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괴로운만큼 하나님 또한 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도하는 황무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삶이 주어진 고난은 나를 이기적으로 만듭니다 마치 하나님도 이기적인 듯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람들의
세상에 계속해서 보이는 불의함과 죄의 문제를 보며 정말로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라면 도대체 이렇게 고통받는 나의 삶에 그리고 혼란스러운이 세상에 왜 침묵하십니까라며 묻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부재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불의와 고통 속에도 우리에게 침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보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이런 고통과 실현 속에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전능하고 자비하신 하나님을 무능력과 폭력적인 하나님으로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지은 세상에 이 완연한 고통을 내버려두는 무능력한 신으로 생각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낳아준 어머니를 원망합니다
예레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받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에 신음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막힌 소명 때문에 자신의 조국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되었으나 침묵하고 유다를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을 예레미야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은 커녕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자기
환멸과 하나님의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예레미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음은 하나님이 자신의 고난 뒤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기적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함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침묵은 부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애통함입니다 우리 곁에서 침묵하고 계시나 지금도 존재하고 계시듯이 하나님은 침묵으로서 우리와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새에게 먹이를 받기 위해 누구보다 목청껏 우는 아기 새처럼 우리는 교만하고 허락하여서 내가 겪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의 부재함을 느낄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원망하고 하나님의 찾지 않겠다 말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으로 하나님 당신의 고통을 버티고 계신 반증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단장지혜라는 고사성어를 알고 계신가요 진나라의 장소 환원이이 촉나라를 징벌하러
가는 길이였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군사를 싫은 배가 강원규의 정박하여 쉬고 있는데 숲에서 온 새끼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병사들은 원숭이에게이 원숭이에게 음식을 줍니다 새끼 원숭이에게 그래서 환원의 군사들은 이제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고 다시 길을 떠나려는 찰나 병사 중 한 명이 그 원숭이 새끼 원숭이를 데리고 같이 배에 오릅니다 그리고 배가 출발하는 순간 저 숲속에서 다른 원숭이가 한 마리 뛰어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 병사들은 직감적으로 아 저 원숭이가
엄마 원숭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이미 배는 출발했기 때문에 육지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배를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배를 멈출 수도 없고 그 멀리서 뛰는 어미 원숭이를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 배는 야영을 하려고 이제 내렸는데 그때 백리를 쫓아온 백리를 쫓아온 어미 원숭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미 원숭이는 배에 뛰어 오릅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어미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를 앉자마자 풀썩 쓰러져
버렸습니다 병사들이이 어미 원숭이 주변에 몰려들어서이 원숭이의 상태를 확인해 봤지만 원숭이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누구도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 중 한 명이 죽은 어미의 원숭이의 배를 가리자 모두 놀랐습니다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모두 끊어져 있었습니다 뒤늦게이 사실이 알게 된 환원장군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해도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똑같거네 어찌 억지로 이별하게 만들었냐 말이냐라고 말하며 그 병사를 꾸짖고 내쫓았습니다
단장 시에는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고통도 하나님이 침묵하며 애통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음이 우리는 어째서 하나님의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움인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가운데 예레미미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을 내 딸 시온이 나를 버렸고 내 포도원이 망가져 소리칠 때도 그들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버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가 가장 나의 가장 아름다운 포도원이었던 나의 정결한 신부였던 예레미야의 고난을 바라봐 바라봐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이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고난 중에 고통을 받고 하나님의 원망하여이를 갈고 눈물 흘릴 때에도 하나님은 그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침묵으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에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부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무능력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침묵으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흘렸던 그 수많은 눈물이 예레미야가 죽고 나서 400년이 지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자기의 독생자 하나뿐인 아들이 그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우셔서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고통 중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침묵하나 함께하는 그리고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차라리 성도 여러분 부디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이라 말하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위로하고 말씀합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내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불평도 하나님께 공정의 문제를 제기한 예레미야의 외침도 분명 하나님께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고통 중에도 그 어려움 중에도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도하며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면 하나님은 애통해 하시며 위로 받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며 침묵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세상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선포된 심판에도 불구하고 불평할지라도 하나님이 불의하다 우리가 말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내뱉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끊어지는 고통을 이겨낼 위로를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너는 그 말을 거둬 너의 생일이 원망하고 내 자비를 떠나 살아가겠다고 하는 너의 그 악한 말을 거두어라 그리고 다시 나의 말을 너가 전할 때 나의 말에 너가 대언할 때 나는 다시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나에게로 돌아갈 것은 너에게 돌아갈 것은 그들이다 라고 말씀하시면 예레미야를 위로하고 계십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사실 제가 성찬 예배가 있는 줄을 모르고 결단 찬양을 제가 사역자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순종의 고백이라는 이제 2023년에 나온 파이디온 어린이 찬양이죠 어린이 찬양을 제가 올렸었는데 결단 찬양이 없어서 찬양을 함께 부르지는 못하고 또 어린이 찬양을 이렇게 뭔가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수없이 토로하다가 제 뭔가 어린이 찬양을 하게 되면 뭔가 갑자기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이 설교에 그것도 제가 느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이 찬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찬양의 가사를 불러드릴 순 없지만 이 찬양의 가사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내 삶 구석구석 다시 감찰하시며 나를 응원하시는 분 내 길이 밝혀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며 나를 격려하시는 분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곤 하지만 항상 결국 당신의 선택합니다 나의 유일한 고백의 대상은 오직 아름다운 당신뿐입니다 나의 유일한 고백의 대상은 오직 아름다운 당신뿐입니다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사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하나님과 겪습니다 그리고 세상과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가정에서 여러분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까지도 우리는 갈등과 고난의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위로가 되어 드리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고난이 있을지언정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나님의 원망할지언정 그 원망까지도 하나님께 토해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선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레미야서가 마칠 때까지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니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의 생애 마감할 때까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그 고난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존재 자체가 애통한 가운데 침묵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만지는 하나님의 빛이 아들 하나님의 또 다른 유다였습니다 둘째 유다는 이미 멈출 수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그들의 심판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들이 심판받지 않고 그들의 삶이 더욱 형통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도 유다도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인 것입니다 설교를 맺고자 합니다 애통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눈물 흘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어떠한 고난도 고통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이기적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애통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 삶의 부재한 듯 보이는 하나님은 부재하지 않습니다 애통 중에 하나님의 침묵할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애통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침묵을 깨고 우리에게 말씀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을 우리에게 말씀할 것입니다 이러한 위로가 저와 여러분들 삶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