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복음의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문을 열었던 마가복음은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좋은 땅의 마음만 있다면 그 문으로 다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그 문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구원받은 제자들로서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이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공동 에클레시아 교회가 어떤 것인지 한번
보았죠 오랜만에 복습 퀴즈를 함께 풀고 시작해 볼까 합니다 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는 길에 배가 고프 무화과 열매를 먹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저주를 내리시죠 그리고 이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져 하루 아침에 멀쩡이 살아 있던 나무가 하루 만에 뿌리째 말라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기서 문제입니다이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이 네 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네 PPT 좀 찍어 주세요 네 다시 하겠습니다이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타락한 성전에 대한
심판을 의미했을 만약에 맞다면 5 틀리면 x 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보겠습니다 하나 둘 셋 오네 맞습니다 정답은였습니다네 또 한 넘어가네요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등장하는 성전 이야기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이유는 이 두 이야기가 샌드위치 구조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즉 겉을 둘러싸고 있는 이 빵의 이야기 즉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의 이야기는 결국 그 안에 들어 있는 성전 정화에 대한 이야기를 어 해석하는 열쇠였다
것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외적인 종교 활동은 활발하지만 정작 영적으로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던 그들의 성전과 그 이스라엘의 타락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그 상징 행동을 통해서 그처럼 타락한 성전과 이스라엘에도 심판이 임할 것이고 어 그 심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타락한 성전의 시대가 이제 끝났음 또한 의미했습니다 그럼이어서 두 번째 문제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성전 시대를이어서 성전이 감당하지 못했던 사명을 감당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이로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대하셨던 교회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회가 가져야 할 특징은 믿음과 기도 용기였다 맞으면 5 틀리면로 답해 보겠습니다 하나 둘 셋네 정답은 두구두구두구입니다네 많은 분들이 틀리셨습니다네 주님의 주님께서 교회에 기대하시는 모습은 구원을 구원과 심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신 분을 닮아서 우리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죠 그리고 우리는 우리 교회를 주님이 기대하시는 이런 공동체로 세워가기를 난 시간에 결단했습니다 여기까지 모두 기억이 나시나요 기억이 나시나요네 그러면 이제 오늘 마가복음 14장을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마가복음 14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어 원래 대로라면
마가복음 14장을 오늘 하루에 다 다뤄야 하겠지만 어 14장의 내용이 워낙 많기도 하고 또 고난 중간 새벽 기도회 그리고 십자가 기도해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14장의 내용부터는 한 덩어리 씩 쪼개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4장의 내용부터는 주일 설교와 고난 주간 특새 그리고 십자가 기도회까지 한 흐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참고하셔서 설교를 들으시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14장에서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 1절에서 11절에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이 많이 길지 않아서 오늘 함께 본문을 낭독하고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이 나누어서 읽겠습니다 형제님들이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일으키면 안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하는가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 어라 왜 그를 롭 운 일을 했다 사람들은 으 수 있다는 제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상든지 복이라이가 두제자 가운데 하나인가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아멘 어 고대 세계에서는 한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우 중요했습니다 왜면 한 사람의 인생이 생명에서 죽음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을 그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창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음을 맞이한 그가 평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어떤 철학자나 스승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자제력을 잃고 광적으로
자비를 구걸하면서 죽음을 모면하는 모습은 좋지 못한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죽음의 상황 앞에서도 침착하고 용기 있게 그리고 품 지키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죽음이란 그들이 생각하는 고귀한 삶의 정점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고대 사람들은 이 좋은 죽음을 통해서 그들이 존경하던이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는지를 분했습니다 만약 어느 스승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 생각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좋은 스승이었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좋은 스승 참된 스승이었다는 판단은 그가 생전에 가르쳤던 가르침을 믿고 따라도 되겠다라는 판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좋은 죽음은 철학자나 스승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진실했다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수단이자 그 스승들이 전하는 최후의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결국 고대 사람들은 그 어떤 한 인물이 왜 죽었는지 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지 하는가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스승의 최후는
그가 생전에 가르쳤던 내용과 일치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마지막 죽음으로 주는 메시지 또한 그가 살아오면서 지키고 가르쳤던 내용의 연장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의 대표적인 예가 소크라테스가 있을 것입니다 당시 뛰어난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불리한 판결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에 억울함을 느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타할 것을 요구했죠 그러나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에 수능하루전 생전의 영혼이 불멸하고 믿고 주장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그는 그가 가르쳤던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는 모습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것이죠 이로서 그의 죽음은 그의 가르침이 진실 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가르쳤던 내용의 연장선이 되어 그가 전하는 최후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당한 처형법 스스로 독을 먹어 죽게 하는 음독 형입니다 아무리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철학자였다 해도 독 의해 죽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온 몸에 스스로 독이 퍼져가며 서서히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끔찍하게 죽어간 그런 역사적인 죽음보다 그의 죽음을 통한 가르침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 지금까지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보다 그가 선택했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 그로 인한 르이 중요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 당시를 살아가는 유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고대 세계 그 유대 세계에서 고대 전개
형태로 기록된 마가복음 또한 예수님의 죽음이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의 다른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가르침과 일치해야 했고 그 가르침이 진실하며 참이었다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투명한 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것을 강조하여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사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저 뛰어난 철학자나 스승 정도에 불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이가 참 스승이었고 그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그가 가르치셨던 진리가 불변하는 영원한 생명의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공을 들여 마가복음을 기록합니다 어 실제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 비교했을 때 예수님의 고난과 순환을 다루는 어 순한 이야기의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그래서 마틴 켈러는 마가복음은 확장된 서론을 가진 순한 이야기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의 전반부
내용은 예수님의 순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한 서론과 봤다는 것이죠 실제로 다른 복음서들 다르게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순환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흘려줍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어 책의 중후반을 지나야 등장하는 반면에 마가복음은 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장에서 터 바로 등장을 합니다 즉 마가복음은 이야기를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결국 그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예수님의 죽음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순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했던만큼 저자였던 마가는 가까지 전승과 일화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의 가치를 나이 따져보고 선별하여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의 단락을 연결하여서 그 이야기가 가장 의미 있게 전달되는 의미가 가장 극대화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짜임새와 구조 그리고 다양한 문화 기법이 사용된 어 책입니다 다시 말에서
마가는 예수님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르침을 그저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적절이 편집하고 배치하여 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그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4장이 한 장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봤던 샌드 구조가 무려 세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마가가 얼마나 이 이야기에 공을 드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 샌드위치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4장 1절부터 11절의 이야기입니다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중간에 향유를 부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죠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 는 유월절을 하루 앞둔 때였습니다 성경에는 이틀이 지나면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통상적으로 그 다음 날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달력으로는 니산월 14일이라는 날입니다 니산월 14일은 우리에게로 치면 고난주간
목요일에 해당하는 날짜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보다 하루 전인 고난 주간 수요일 유대인에게는 니산월 13일에 일어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작 유월절이란 절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할 때 마지막 번째에서 받던 것을 기념하 지키는 절였습니다 애 하은애 가지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중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 장자 첫 번째가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재앙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어린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어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피가 발라진 집은 죽음의 천사가 재앙을 내리지 않고 넘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실제로 재앙이 임하고 죽음의 천사가 그 땅에 임하던 날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의 장자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피가 발라져 있지 않았던 애굽의 장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것 즉 유월 한 것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이 지나면 곧바로 7일간에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무교절은 무교병이라는 빵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것이 였습니다 그들이 무교병을 먹었던 이유는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누룩없는 빵 즉 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아주 긴박하게 나와야 했겠죠 그래서 그들은 참아 빵이 발효될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빵을 발효시키는 누룩을 빼고 그저 반죽만 구워먹는 무교병을 먹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출애굽 사건 그리고 구원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미하는이 유월절과 무교절은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종교 축제 중에 가장 중요한 축제였습니다 그리고 이 축제는 유월절 무교절지 시작하여 총 8일간 어 이어지는 축제였습니다이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했는데요 그래서 매 사람들은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 모여 들었습니다 학자들은 모인 사람의 수가 아마 평소보다 적게는네 배에서 많게는 여섯 배까지 수가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만큼 이 시기는 여기저기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들든 축제 분위기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양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사람들 이곳 저곳에서 예루살렘을 지키겠다고 모여든 순례객들의 들든 대화소리 그리고 부모를 따라온 어린아이들의 크고 작은 말들 뭐 이런 것들로 우리나라의 명절과 다름없이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겠죠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는이 본문의 이야기는 이런 들뜬 분위기와
다르게 다른 한 편의 초조한 긴장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로 로마 관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 유월절은 출애굽 이야기를 다시 체험하고 또 기념하는 절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났 그이 지금 자신들이 처한이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감정과 들뜬 희망이 가득해지는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 폭동이 일어날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및 유대 관리들은 아주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죠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긴장감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붙잡을 궁리를 했습니다 민심을 얻어서 만약 로마를 압박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죽이는데 이보다 적절한 타이밍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살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로 되지 않고 만약 반대로 민심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모여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 그 일은 자신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분위기를 자세히 살핍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예수님의
등장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환호하고 지지하는 무리가 상당했습니다 민심을 자신들의 편으로 돌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예민해져 있는 로마제국의 눈에 띄는 것은 그들에게도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속임 수라도 생각해보지만 결국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예수를 잡더라도 명절이 지나고 하자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정은 이후에 어떤 한 인물의 선택으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를 뒤로하고 이제 단이 시몬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자 성경은 지금 잔치를 베푼 시몬이 나병 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과 같은 대명절을 앞둔 시점에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결이 그런데 이러한 시점에서 부정한 나병 환자의 집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매우 독특하고도 의문이 드는 일이죠 마가복음 14장에 시이라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를 나병 환자였던 시몬이라고 기록하는 것을 볼 때 어쩌면 시몬은 과거에 나병 자였으나 현재는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아 회복된 사람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시몬은 님덕분에 정결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몬도 민족의 명절에 마음껏 참여하며 그에게 주어진 구원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월절을 기다리던 시몬에게 진짜 구원이신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몬이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은 이제 곧 모든이가 누리게 될
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잡히시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한 시몬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을 르는 제자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웬 여자 하나가 장을 하죠 사람들이 의하며 그 여자를 바라봤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식사 관습을 고려할 때 남자들만 참여하는 시공간에 여자가 끼어드는 것은 관습을 파괴하는 무한 일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같 고 할 수 없겠지만 마치 과거에 우리 나라 분위기와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식사를 하고 남자들이 하는 일에 여자가 끼는 것이 어 도무지 용납되지 않던 그런 시대 말입니다 아마도 이 여자도 비슷한 상황 가운데 있었겠죠 그러나 그녀는 전혀 개이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소 뻔뻔 하리만큼 그 공간에 꿋꿋이 끼어들어서 기어히 예수님 옆자리까지 걸어갑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져온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모두 부어버리는 아주 과감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향유의 향이 순식간에 그 방을 가득 채우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황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향유가 매우 값지고 순수한 나드 있다고 기록합니다 나드는 인도산 식물의 뿌리에서 짠 향유로 어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던 최고급 향유 성경은 이 향유의 순도 즉 그 가치를 하기 위해서 순전한이라는 단어 피스티스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향유의 값은 약 300 데나리온 정도였는데요 이것은 당시 시세로 한 노동자의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최저 시급으로 계산하면 약 2,500만 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향유는 어림잡아도 최소 2,500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의 가치를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향이었다 것입니다 또 분명 학자들은 당시의 문화를 살펴볼 때 아마도 이 향유가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물려준 유산이었다 추측합니다 여러 가지를 따지면 따질수록이 향유는이 여인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나드는 향기가 좋은 기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향기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 목이 좁고 긴 항아리인 옥합의이 한류를 보관했습니다 그래서 이 향유를
사용할 때는 옥합의 긴 목을 깨뜨려서 사용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이 향유를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옥합의 길고 좁은 어 그 입구도 조금씩 향유를 부어서 사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옥합을 깨뜨려 모든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쏟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 비싼 향유가 예수님의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바닥에는 예수님의 머리를 타고 흘러내린 향유가 뚝뚝 떨어져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매우 흥분하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 람이서 자기를 다 어찌하여 하이는 상에라서 그를 가한 사람들에게 주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다 여인의이 당황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합니다 아니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이 아까운 향유를 이렇게 의한다고 사람들은 이 여자의 행동을 몰랐죠 그리고이어서 차라리이 항을 팔아서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마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한 이후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곧 다가올 명절인 유월절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때도 그렇겠지만 특별히 이 유월절은 한해 중에서 가난한 자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돌봐야 하는 명절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구제하고 그들을 섬겨서 그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래서 모두가 이 구원의 기쁨의 날을 누리도록 하는 날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들은 차라리 유월절에 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 한류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이 향유가 아까웠을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이들이 향유를 허비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값비싼 향유가 이렇게 낭비되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사실 향유를 사람의 머리에 붙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의 풍속에서 잔치를 베푼 주인이 귀한 손님을 초대하고 그 손님에게 어 기쁨과 축하 그리고 존귀의 의미를 담아 머리에 기름을 붙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꽤 익숙한 한 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이 귀한 손님이라 하더라도 1년 영복 만큼의 값어지 하는 이 항을 붙는 것은 좀 과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여자는 집주인도 아닙니다 이 풍속을 행할 의무가 전혀 그녀에겐 없습니다 만약 집주인이 있던 시몬이이 향유를 붙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똑같이 아까워 했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그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 때문에
나병을 치 치료받았고 예수님을 초대한 집주인이 그요 그러나 적어도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그녀가 이런 일을 할 만한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굳이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일에 굳이 이렇게나 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계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이 여자의 행동이 단번에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솔직히 여자의 행동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3천만 원을이 여인처럼 주님을 위해 그저 부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솔직하게 망설여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만약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의 1년 영봉을 하나도 없이 예수님을 위해 깨뜨리 수 있으신가요 또는 여러분이 그토록 어이 집구하기 어렵다이 시대에 집을 구하기 위해 모으고 모은 그 청약 통장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깨뜨릴 수 있으신가요 또 누군가는 결혼하기 위해 결혼자금으로 모아놓은 적금을 깨뜨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일이 가능하신가요이 여인처럼 단 한푼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우리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요 그중에 우리는 1년 연봉은 커녕 한 달 월급의 11조를 드리는 것조차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순 있지만 솔직히이 정도로 헌신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 대다 질 것입니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있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오늘날 이 여인이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에게 이건 너무 과하다고 그건 너무 아깝다고 그 믿음은 너무 극단적이라고 나무 났던 몇 사람이
바로 우리였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 문명의 여자는 주저 없이 옥합을 깨고 그 비싼 향유를 자신이 아니라 오롯이 주님만을 위해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살면서 의지했던 든든한 뒤였 것이며 그녀의 미래를 위한 준비였습니다이 향유를 말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연봉 청약 통장 적금과 같은 것들이겠죠 그런데 어떻게 이 여자는 이렇게 무무한 믿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이 바보 같은 여자가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고 자신이 가진 이 향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 왜 몰랐어요 그도 그 향가 얼마나 귀중하고 비싼 것인지 그의 부모가 마게 모아 그것을 자신에게 려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익을 가져다주는지 그녀는 조목조목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그녀가 그녀의 행동으로 이미 대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단순한 대답입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이 향가 얼마였지간에 전혀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마치 그 향보다 예수님이 더 귀하다고 느껴 그러니 오을려 모든 향 부 수 있었겠죠 그는 단지 1년 봉의 갑 하는 3천마리 향보다 더 귀한 것을은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했던 그 든든한 와 전부를 모두 쏟아부어도 자신을 미래를 위한 그 자금을 모두 쏟아부어도 전혀 깝지 않을 진리를 그는은 것 향 부 는을 대접하기 위한 의미를 훨씬 넘어섰습니다이 여자의 행동은 예수님에 대한 참던 헌신과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즉이 여인은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예비한 첫 번째 사람이 됩니다 과연 그녀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하였는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녀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몰랐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행동은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일을 한 여자에게 매우 극찬을 하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라
왜냐 그에 아했다 한 사람들은 그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만하며 그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는 자기가 수 있는 하였다 내 몸의를서 내를 위하여 일을 다 내가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다이 자가서 람이이 여자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녀의 행동은 미련하게 짝이 없는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이 여자는 예수님을 아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사랑이 아무도 예비하지 않던 주님의 죽음을 그분의 장례를 준비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이 여자를 극찬하다 그리고 주변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더 좋겠다라고
말했던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도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하는 그것 자체를 나몰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 돕는게 더 낫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그 좋은 핑계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 그것은 언제나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단다 그러나 너희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그 일을 핑계로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은 미루고 있구나 그러나 이 여자는 그 일을 미루지
않았다 언제든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다라는이 표현을 메시지 성경에서는 언제든 마음만 내키면 할 수 있 있 번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든 마음만 내키면 할 수 있는 일 핑계로 주님의 일을 어둘 때가 참 많이 있죠 언제든 마음만 내키면 내가 시간만 되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여유만 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그 일을 핑계로 우리는 주님을 선하는 것을로는 하기도 합니다 그분 말씀하십니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란다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는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기회가 언제든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 내킬 때 하고 마음 내키지 않을 때는 밀어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여인이 발견한 그 가치를 발견하셨습니까 우리가 진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인지 아니면 발견하지 못했는데 발견한 척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인지는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어떻게 드리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을 핑계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그 일을 핑계로 주님을 택하는 것을 미루고 있지 않으십니까 주님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값비싼 옥합을 깨뜨리는 이런 과한 행동을 하기에는 여전히 깝다 라고 여기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진짜 가치를 발견한 사람에게 망설 이미란 없습니다 밭에 묻힌 부활을 발견한 사람이 그즉시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 그분의 진리를 정말 깨닫고 그분을 따라가는 제자인지 우리의 입술의 고백보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의 삶의 고백으로 증명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고백을 잘 들어보십시오 교회 밖에 나의 삶에서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정말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그리고 그분이 전해주신 복음의 가치를 최후 손으로 두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가이 여인은이 장면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고백으로 그가 보인 행동의 고백으로 이미 그녀의 믿음은 증명됩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 사람들의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저는 이것이 주님께서 그녀의 이름 석자가이 땅에 남는 것으로 어 그치는 그런 칭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숨겨진 주님께서 전하고 찾았던 진짜 의미는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일 것입니다 세상 땅 끝까지 우리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더라도이 여인처럼 온 세상에 우리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더라도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보던 한 제자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대제사장들에게 갑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가에음을고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서 기뻐하여 그에게을 주 하였다 그래서다는 예수를 한를고 있었다 제사장들을 찾아갔던 제자는 가련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 제사장들을 찾아간 이유가 다소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예수님을 팔아넘겨 주겠다라고 찾아간 것이죠 그리고 이제 종교 지도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그 기회를 제자였던 그가 노리기 시작합니다 앞서 한 여자가 보여주었던 믿음의 헌신과 너무나 다른 배신의 장면입니다 마가복음은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준 대가로 은돈을 받기로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해서 그 돈이 은돈 서양 이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시세에서 그리 크지 않은 액수입니다 즉 유다는 지금
헐값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를 사용해서 의도적으로 향유를 부은 여자와 주님을 배신한 가륜 유다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던 무명의 여자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을 깨뜨려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라는 그 타이틀 그 명성을 가졌던 유다는 예수님을 갑사에 팔아 고작 돈 몇 푼을 얻습니다 유다는 탐욕의 눈이 어두워이 여자가 보았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자의 자리에 있었을 때 가치를
발견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이렇게 배신한 이후에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대표되는 것은 예수님의 행보가 그가 꿈꾸었던 메시아의 행보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추측입니다 우리는 앞선 설교를 통해서 제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꾸고 있는 메시아의 모습과 수님이 가고자 하신 메시아의 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최측근이었던 제자들은 앞선 가르침과 순한 예구를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뭔가 다르다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김가민가 의심하고 있는 유다에게 향 부은이 여인의 이야기는 신을 심어 줬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향해 자신의 장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찬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꿈꾸던 혁명의 어 새로운 나라는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정말 그분이 말하시는 그 메시아의 모습으로 죽을 것이라면 유다가 기대했던 그 꿈꾸는 나라의 이야기는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자신이 사랑했던 예수를 팔아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유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다라고 생합니다가 했던 것 것이 이어지지 않을 때 주님을 따르면 이거 해주시겠지 저거 이루어 주시겠지 내 삶에 이런 도움이 되어 주겠지라고 기대했던 것이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때 린 유다처럼 주님은 짜였다 돌아설지 모릅니다 우리가 진짜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했던 유다에게 예수님은은 30에 어로 끊이 나버립니다 그러나 큰 무리 속에 섞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몇 번이나 들어봤을까 하는 이 여자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1년치 연봉을 다 들여도 전혀 아깝지 않는 가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곁에 모셨던 유다는 여전히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먼 발치해서 이름도 없이 따르던이 여자는 그 가치를 깨닫고 과감히 자신의 전부를 내던 유다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배신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정보 예수님이 언제 무엇을 하시는지 그래서 언제 쳐들어가야 하는지 그 모든 정보들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탕으로 그가 경험했던 예수님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예수님께 헌신합니다 것이 이 밖에 없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값진 것이 이것밖에 없다면 나는 이거라도 드리겠다 가롯유다는 돈을 위해 자신의 믿음을 과감히 희생시켰다 있다 말하는 그 돈을 희생 제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헌금을 더 많이 하라거나 지금 당장
여러분의 뭐 적금을 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적어도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의 고백과 삶의 선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아낌없이 내 것을 깨뜨리라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주님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선택의 순간에 어떤 망설임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유다와 같이 제자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제자가 아니었는지 아니면 이 여인처럼 이름없이 묵묵히 주를 따랐으나 그것이 참된 제자의 길이지 그 선택의 순간에 기로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유다와이 여인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으로 인해 누렸던 것이 훨씬 많았던 사람은 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것을 누리고도 그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 예수님으로 누리던 은혜가 자신 원하던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 판단되었을 때 그는 주님을 돌아섭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예수님
때문에 보잘것 없는 나에게도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주님께 과감히 드렸습니다이 여인에게 은혜는 예수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가진 믿음의 차이였다고 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나요 가륜 유다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향유를 부었던이 여인의 모습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인 예수님을 지척에 두고도 나의 탐욕에 눈멀어 세상에 부르는 헐값에 주님을 팔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세상의
헛된 치에 나의 믿음을 팔아넘기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이를 하면서 이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한 것이 사랑이다 문장입니다이 말은 내가 진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깝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다 주어서 나는 빌리가 되어도 그가 원하는 것을 더 주지 못해 미안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사랑을 먼저 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고 또 주다 못해 결국 자신의 전부지 다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피한방울 남기지 않고 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내어 주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거르시는 그 걸음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분은 전혀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의 삶이 산산히 깨어져 우리가 살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이 성을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산산이 부서지겠다 선택하십니다 향 부이 난 주님은 이 주님입니다 던는이 것입니다 붙들었던 복음은이 것입니다 그를 주님이었던 사랑은 이한
사입니다 을이 주 있도다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 함께한다는 것이 마 진 것이은이 여인은 진짜 귀중한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에게 그 어떤 싼 향도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비할 수 없습니다를 신록 사랑신 그분 드리는것이 것 아닙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데나리온의 향인 것이 저 원통할뿐입니다 주님은 더 귀한 것을 받으시기에 당하니까요이 고은 그의 삶을 통해서 늘 우리에게 올려집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향유를 부
여인을 기뻐하셨던이는 그가 싼 향 니라 이심을니다 님은 향보다 자신을 그 마음으로 그록 사랑하고 있는 그 자를 얻은 것에 더 기뻐하셨습니다 자신이 쏟은 사랑을 가다와 같이 사게 여기지 않고 너무나도 귀중하게 여겨 자신이 가진 것 중가장 귀한 것을 드리겠다고 그을 들고온 그 여인을 얻은 것을 주님은 더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가 주님은를 그라보 십니다 분이 주님께로 가져올 그 향이 마인지 주님께는 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합을 귀하기 보시겠지만 주님의 시선이 먼저
머무는 것은 주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 그을 들고 걸어들어오는 여러분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그 자체를 더 귀하게 보십니다 주님의 사랑을고 나도 그렇게 사랑하겠다고는 분을 주님은 십 져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말할 때에 그래도 난 다시 일어나 끝까지 가보겠다고 부족한 걸음이라도 주님의 걸음을 뒤쫓아 쫓아가는 여러분의 삶의 걸음 걸음들을 주님은 더 중하게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기꺼이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드릴 때 세상은 그 자리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과 같이 그것은 시간낭비 돈낭비 낭비라고 미련한 짓이라며 우리를 비웃게 주님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기억하지 않겠으나 주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그 마음에 새기시고 손바닥에 새기며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깨뜨린 여러분의 삶보다 더 큰 은혜와 더 큰 사랑으로 여러분을 품어 해 주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