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은 어째서 이런 일이 점점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 요엘서 1장을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어 요엘서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재난의 실체는 무엇이며 또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또 어떻게 그 재난을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어 설교에 앞서서 먼저 이 요서 설교는 김현국 목사님이 쓰신 다시 재난 다시 하나님 나라라는 책을 참고하여 준비했 을 알려 드립니다네이 책인데요 혹시 읽고자 하신 분은 말씀하시면
빌려 드리겠습니다 어 저는 현재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참 많은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전도사이기도 하고요 또 팬을 맡고 있는 팬 리더이기도 하고요 또 주일 예배 팀의 싱어이기도 합니다 사역을 많이 맡게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또 들여다보고 듣게 되는 또 고민을 나누게 되는 나눔에 참여할 기회가 저절로 많아졌습니다 어 제가 매주 나눔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다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고 있으니까 몰랐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고 고민이 없는 사람이 없고 어 눈물이 없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과 삶의 고단함 그리고 막막한 현실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기 때문입 입니다 그런 나눔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또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저의 삶을 돌아보면서 요서를 어 묵상하며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요는 문제와 고난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우리 삶에도 여전히 존재하는이 문제와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 우리는 왜 예수를 믿도 늘 이렇게 힘 나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데 왜 내 삶에 여전히 고난이 함께 하는가라는 의문이 저처럼 드시는 분이 계셨다면 요서를 통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 삶의 고난이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른 시선으로 고난을 바라보고
또 그 속에서조차 은혜를 누리는 방법을 요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먼저 요사가 어떤책인지 번 살펴봐야겠죠 요엘서의 장르는 예언 문학입니다 즉 요엘서 문학 작품이라는 것이죠 문학 작품을 기록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문이라고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운문 있니다 산문은 운문과 비교했을 때 정해진 틀이 거의 없는 자유로운 문학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비교적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다루기에 참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문에는 소설이나 어 세이 보고서 기사 등이 어 많이 자리잡고 있죠 그런데 반대로 운무는 주로 정형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반복되는 구조 또는 은율 또는 어떤 표현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 은문 있니다 또 직유법이 은유법 등의 문학적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해서 감정을 표현하기에 능통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 노래 희곡 등이 바로 이 음문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문학의 어 형태로 기록된 우리 요일은 산문과 음문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 책일까요네
조용하시네요네서는 운문 형식으로 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네 잘못 넘어갔습니다네 운문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요는 그렇기 때문에 마치 실을 읽는듯한 또는 어떤 노래를 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죠 요는 책의 전반을 걸쳐서 주요 어휘들이 모티브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표현들 때문에 개념적 통일성을 다르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 책이기도 합니다 요서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일되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이 외에도 요엘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아주 많다는 특징이 또 있습니다 심지어 요엘 선지자의 이름 이름도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뜻입니다 요엘의 이름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어 이름까지 합치면 벌써 요엘서 1장 1절만 하더라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두 번이나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요엘서 여호와라는 단어가 총 33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총 11회 그리고 그 외에도 하나님을 다른 방식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50회 이상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이 요엘서의 분량이 총 세 장밖에
되지 않은 아주 짧은 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매우 많고 매우 반복적으로 주님을 부르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에서 요엘은 매 구절마다 평균적으로 하나님을 한 번 이상 부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요엘서 왜 이렇게 하나님을 많이 언급하고 있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요엘서의 목적에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어 요엘서 간단하게 말하면 메뚜기 때 재난을 만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 을 던지게 하죠 이스라엘의 닥친 재난이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같이 느끼고 절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서의 궁극적 메시지는 절망이 아닙니다 뚜기 때를 만나 고통받는 자기 성 가운데 함께 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그 목적과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요서의 궁극 메시지는이 법에도 드러나 있는 것이죠 로 어찌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고통과 절망 그리고 슬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외선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마치 그 고통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잠깐 살펴본 이 책의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분량이 겨우 세장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책임에도 요서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서 1장에 나타난 메시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말했 성 만난 재난 즉 메뚜기 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 1장 4절에서는 풀무치 메뚜기 누리 충에 의한 피해를 기록하고 있죠 어 이것들이 내 종류의 메뚜기 있지 아니면 메뚜기의 유충부터 성충까지 의미하고 있는지는 어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다릅니다 두 설명 중 무엇이 맞는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금 총네 차례의 뚜기 때 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서아시아에 주로 서식하는이 메뚜기 때는 1제곱 km 안에 무려 8천 마리가 모여 있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150km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메뚜기 때가 한 번 날아오르면 하늘이 온통 덮여서 새까맣게 보인다고 해요 또이 메뚜기 대가 하루 만에 껏 치우는 작물의 양이 얼만지 아십니까 인간 35,000 명이 먹는 양을이 메뚜기 대가 하루 아침에 먹어 치울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초토화된 면적이 약 100제곱 km 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 3천만 평에 달하는 어 면적입니다 여러분 수치로 계산해 봐도 어 만만치 않다라는게 짐작이 되시죠 그런데 우리가 너무 이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대체 그게 어느 정도일까 메뚜기 때가 한 번 이렇게 날아오르면 그 메뚜기 때가 지나가면 그 땅은 어떻게 될까라고 감히 짐작조차 안 되는 그런 일들이 이스라엘의 터전을 휩쓸고 지나갔어 한번 지나가고 이제 좀 숨을시나 했더니 또 한 차례 메뚜기 때가 그들의 삶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또 한 번 날아오르고 또 한 번 날아올라 그들의 삶을 계속해서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마치 그들에게 단 하나의 곡식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너희의 삶의 하나의 희망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메뚜기 때가 마치 강한 군대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악하고 힘센 군대가 돌아와서 자신들의 모든 삶의 터전을 부수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빼앗아가 뚜기 때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분 농경 였잖아요이 작물로 남은 1년을 또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에 단 하루 아침에 3 5천명이 먹어치을 애버 뚜기가 에왔다 생해 을을 그들이 과연 망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못했겠죠 그런데 여러분 오늘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도
이 메뚜기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강한 군대와 같이 느껴지는 삶의 문제들이 있죠 단지 그들의 이름이 바뀌었을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두개 때는 돈이란 이름으로 건강이란 이름으로 또 가정이란 이름으로 관계 신의을 한채 없 불쑥 찾아오는 우리 삶의 고난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한 차례 두 차례 세 차례 내 차례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우리의 삶을 찾아와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고난을 마주할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신가요 저는 저의 삶에 그렇게
끝도 없는 고난이 날아 들어올 때 마치 이스라엘 군대가 느꼈던 절망을 아주쉽게 마주하곤 합니다 이스라 에게 그저 짓밟히는 아주 약한 백성들처럼 메뚜기 대에게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그들이 어디서부터 날아 들어왔는지 그리고 왜 날아오는지 대체 왜 내 밭을 지나가야만 하는지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대비할 예방책도 또 해결할 해결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치 이것이 오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요즘에 우리 삶은 어떻죠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뛰어난 지식을 클릭 몇 번으로 우리는 다 알아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돈을 저축하고 보험을 들고 건강검진을 매년 해마다 받으면서 말입니다 또 여러 통계자료와 박사들의 논문 전문가들의 의견 또는 어떤 결과값을 통해서 빅데이터를 계산해 미래를 예견한다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 정보를 가지고 대비책을 세우기도 하죠 실제로 이런
것들이 몇 가지 문제들을 예방해 주고 해결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저축하자 하고 더 많은 것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 대비합니다 마치 파도가 넘어지 못하도록 막는 방파제를 쌓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싼 그 방파제에서 우리는 안전해 우린 이만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잖아 우린 이만큼 알고 있잖아 우리가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어 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 해결할 수 있어라고 자신만만하게 있죠 그러나 아무리 방파제가
경고하다 한들 쓰나미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뛰어난 정보가 있어도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찾아오는 문제와 위기 앞에서는 그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죠 우리는 실제로 지난 코로나 19를 통해서 국가적 또 전 세계적적인 고난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은 재 벌이도 쓸 데가 없었고요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진 박사들이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지식이 무용 지문인 시대를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어디 코로나 19 뿐이었을까 지금도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와 기근 감음 전쟁 환경 문제 등을 우린 예방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 우리 삶에 너희를 다 쓸어버리겠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쓰나미와 같은 문제들이 우리 삶 도처에는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 광주가 작년에 가뭄으로 굉장히 고생을 했습니다 어 실제로 물이 끊겨서 물이 나오지 않는 집들도 있었고요 아파트마다 방송을 했어 저녁이 되면 물을 많이 쓰잖아요 퇴근하고 사람들이 돌아오면 그러니까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물을 조금씩 혀서 씁시다라고
아파트마다 방송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비가 오지 않으니까요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어 저수지가 말라 붙기 시작하니까 돈이 많아도 지식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아파트에 살아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우리의 삶에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죠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고난을 모두가 만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고난은 모두에게 찾아와 우의 삶을 흔들고 무너지게 만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어이 메뚜기 때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도 모든 가지가 하얗게 보일만큼 껍질이 다 벗겨졌다고 7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뚜기 때가 나무의 잎사귀도 모자라서 나무 껍질까지 모조리 다 벗겨먹고 가버린 것이죠 곡물과 더불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주요 식량 공급 원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런데 메뚜기 때가이 나무들의 껍질까지 먹어 치웠다는 건 그들에게 남은 열매도 없었다라는 것이겠죠 이스라엘은 다음 수학의 기회마저 빼앗긴 채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존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어 이스라엘을 또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들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 그 백성 그들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죠 도저히 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성들 그들도 고난 앞에서는
마치 바람 앞에 등처럼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인 우리의 삶에도 살다 보면 여러 모양의 고난들이 찾아옵니다 재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가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등등등 없이 날아오는 메뚜기 때를 우리도 경험하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유형의 고난이 날라오이 고난과 문제는 결국 우리 자체를 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마 감당하기 어려운 를 만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돈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흔들렸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떤가요 새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고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나요 무너져 가는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그렇게 무너져 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도무지 마음이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고 기쁨과 감사보다 깊은 한숨과 탄식이 우리 입에서 저절로 나올 때가 우리는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남들과 달리 힘이 더 치거나 감사와 기쁨이 더 가득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 하나님께 우리를 빨리 이 고난에서 주 를 기도하죠 그리고 이또한 지나가리라 외치며 꿋꿋하게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딥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게 다일까요 하나님도 우리가 고난에서 벗어나기만 기도하며 인내하기을 기다리고 계실까요이 질문에 요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가요네
슬퍼하고 울고 하라라고 말씀하시죠 고난 앞에선 그들에게 하나님은 부유하고 풍요로워 술을 즐기는 사람들부터 농부 백성 제사장까지 너 할 거 없이 모두가 통곡하고 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당장이 고난을 벗어날 방법을 주시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 고난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이 하길 내가 빨리 이곳에서 자유하여 평안을 얻기 기도하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우리의도 하나님께 있으니 도움을 구하며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 슬퍼하며 울어야 합니다 13절은 밤을 세워 통곡하라 이야기하고 있죠데 제가 이 1장의 말씀을 읽고 읽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막막한 고난 앞에서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엄청난 메뚜기 때가 내 차례나 지나갔다 과연 그 땅에 행복하다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이 어렵지 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 아니었을까 여러분 만약 우리의 삶으로 한번 대입해 볼까요 여러분의 회사가 만약
부도가 나고 집이 망하고 큰 병에 걸려서 나의 생사가 또는 가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내 자식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괴롭 당하고 있다면 그런 고난이 우리 삶에 쉬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면 우리 중에 울지 않고 버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이 질문 앞에 저는 감 당당히 저는 못 그럽니다라고 말하겠다고 저는 고난 앞에서 매일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삶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제가 다른 설교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었지만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저는 매일 울면서 등하교를 했습니다 매일 밤 울며 어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가가 취업은 했지만 코로나 1년 동안 월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때 정부 원금조차 자격 미달 나이 미달로 받지 못했을 때 그래서 통장 장고가 몇 개월을 영원히 찍혀 있을 때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 암에 걸려서 힘들어할 때 전 예배당에서 수없는 날을 혼자 울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눈물을 감추며 미소짓는 것이 그때는 더 힘들더라고요 내 마음은 이스라엘처럼 한없이 무너져 가는데
웃으며 등교를 하고 출근을 하고 언제나처럼 아무일 없는 듯이 이렇게 설교를 하는 것이 저는 더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가 눈물 짓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안 그래도 슬픈 우리에게 애 눈물을 참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려고 버티고 있는 리 에게 왜 울라라 말씀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이 말씀은 힘들고 어려우니까 그냥 울어 너의 마음이 시원해질 때까지 그냥 울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깨어진 세상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또 우리의 삶이 얼마나 깨어져 있는지를 정신 차리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짐을 보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죠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즐기는 부유한 사람도 깨어진 현실을 바로 보야 합니다 그의 부유함이 언제까지 그를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 성들도 다 그 깨어짐을 보야 합니다 제사장도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로 인해 깨져
있었습니다 하을 사랑하는에 사랑하는 영적 간음이 그들에게 있었고 죄의 열매로 나타나는 수많은 사회적 부리 등이 그들의 죄였습니다 그리고 이 죄로 인한 심판은 하나님이 메뚜기 때를 보내신 것으로 이루어졌죠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의 원인이 죄에 있다고 죄로 인한 깨어짐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 모두도 우리는 죄로 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깨어짐이 조금씩 회복되어져야 한은 아닙니다 세상 또한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가 고난과 위기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 깨어진 세상을 살아간 우리에겐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완전히 회복된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안타깝지만 고난은 우리 삶에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런 위기를 만날 때마다 이 세상에 깨어짐을 그고 리 안에 히 복지 못한 깨짐을 직면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어짐의 원인이 죄에 있음도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단순히 주님 저 힘들어요 좀 도와주세요 빨리 지나가게 해주세요라고 우는 것이
아니라 아 죄의 결과는 이런 것이구나 우리가 살고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은 이렇게 깨어져 있구나 우리의 죄가 우리 스스로를 이렇게 깨어지고 괴롭게 하는구나 이것이 죄의 상이나 하는 것을 우리는 계속 고난을 통해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로 인한 깨어짐을 슬퍼하며 울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시기 때문에 너희 모든 백성들은 통곡하며 울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진 세상을 너희는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 앞에서 아니야 난 이런 방법이 있어 아니야 난 이렇게 해볼 거야라고 그것을 회피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그 고난을 직면하고 그리스도 인 우리만큼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우리 삶에 주시는지 왜 우리 가정과 우리 나라와이 세계 주신지 직면하며 슬피 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울기만 하고 있을 순 없죠에서는 충분히 통곡한 백성들을 향해서 고난의 시간에 지혜롭게 지나갈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기뻐하고 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죠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으로 인해 삶 전체에 새로운 생명이 가득차 풍성해지면 저절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도저히 하나님을 예배하지는 못 예배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런 사람들이 되죠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에는 고난 때문에 기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10절에는
하나님의 성전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의 삶의 어려움이 예배를 멈추게 하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매말라 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가장 큰 위험성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말라 가게 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예배를 통해 체험 받던 그 모든 것을 그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힘들 때 찬양이 잘 나오시나요 정말 참담한 고통 속에 있을 때 기도할 힘이 나던가요 우리 모두는 고난 속에서 의연하게 믿음을
지키는 그런 믿음의 장부와 같은 삶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도무 해결할 수 없는 대체 내 삶에 이게 왜 일어나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그런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죽기 살기로 매달릴 것 같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예배가 무너지고 영성이 고갈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과 지혜와 힘을 공급받고 참된 심과 회복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문제가 생기면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던 것들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우리가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그 고난에 잡아먹히는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죠 그래서 요는 우리에게 모이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라고요에게 말씀합니다 왜일까요 혼자는 너무 어렵거든요 서로 모여서 같이 끌어주고 당겨 주어야 겨우 함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 예배팀 사역을
하다 보면 예배 팀끼리 매주 나눔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눔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공동체 예배의 힘입니다 우리 삶에서 크고 작은 고난 앞에서 지칠 때 힘이 다빠져서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그저 나는 오늘 예배에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다 갈 거야 하는 마음으로 왔다가도 이상하게 그 예배를 통해서 돌아갈 때는 다시 힘과 위로를 얻어 돌아간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을 아주 자주 하곤 합니다 한 주를 힘겹게 살다가 어
또 기차와 지하철에 몇 시간을 실려서 이거에 딱 도착하면 힘이 다 빠지죠서 저도 어떻게 사람인데 매주 매주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겠습니다 거기다가 정말 힘든 한 줄을 살다가 온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와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차오릅니다 여기까지 아니고 여기까지요 그래서 일부러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서 숨어 앉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앉아 있는 어느 날이었어요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이 설교는 내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아 그래서
이 말씀에 들게 오늘 하나도 없어 에 예배를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는구나 제 마음은 그랬지만 그래도 제 나름의 최선의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어 그 노력에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래도 내가 전사인데 멍때리고 있을 순 없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듣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조금씩 제 마음을 바꾸고 가시더라고요 아이 말씀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아 님 저는 이게 힘들어요 아 사랑는 필고 믿음 필요 없다고이 문제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라고 입을 다물고 하게 있는 저에게 아니야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말씀이라는 마음을 계속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마음 여전히 무거웠어요 그래도 제 상황이 바뀌진 않으니까요 여전히 말씀은 말씀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제 삶은 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된 마음이 생 입니다 그런데 그때 목사님이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하라고 시키시고 어 제가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줄게라는 인사를 시키셨습니다 제가 인사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안 했죠 이런 못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인사를 합니까 나도 지금 힘이 없는데 잘 차려진이 예배도 내가 지금 받아먹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감히 누구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는가라는 마음이 있어서 안 했습니다 근데 제가 그날 저 현우 형제님 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 주위에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아무도 몰래 숨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저에게 인사해 준 사람도 없고 그냥 남들이 막 인사한
소리를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힘이 되어 줄게 내가 힘이 되어 줄게 이렇게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고개를 들었더니 이제 기도의 반주를 하려고 지나가는 아기 팀 친구들이 보였습니다 어 그들의 얼굴을 볼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나님이 내 삶을 모르시지 않았구나 내 마음도 내 힘듦도 내가 한 숨 짓고 앉아 있다는 것도 주님이 다 알고 계셨구나 주님은 그날 그 예배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 주셨습니다 내 마음이 너를 향하고 있고 공동체의 마음이 너를 향하고 있단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 온갖 짐을 다 껴고 들어왔던 제 마음이 나갈 때는 가득한 샬롬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처럼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공동체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힘이 다빠진 우리의 영혼을 끝끝내 일으키고 일으켜서 결국엔 샬롬으로 다시 걸어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고난 앞에서 반드시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도저의 힘을 낼 수 없을
때 그때라도 죽을 힘을 다해 저를 예배당에 앉혀 놓는 것입니다 그저 나를 이 공동체 예배 속에 그냥 던져 놓는 것이죠 그럼 신기하게도 주님께서 저를 회복시키시고이 공동체 말도 안 되는 그 사랑의 힘이 저를 채운다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공동체는 그저 우리끼리 좋아 모인 모임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가서 살아숨쉬는 생명체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동체 예배의 힘이 강력한 것은 우리의 예배가 어떤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예배
주님이 함께하시는 예배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합니다 너는 힘이 없을 때 함께 모이거나 너희가 고난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모여서 나를 예배하라 혹 여러분 중에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잘 오셨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난을 지혜롭게 지나간 두 번째 방법은 주님만을 의지하고 찾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실제로 의지하고 있는 것 가짜 신과 우상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앞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사랑한 영적 간음으로 인해 고난을 마주했다고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는 죄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보다 의지하고 있는 것 아니 어쩌면 주님과 같이 의지하고 있는 돈이나 성공이나 어떤 내 나의 인맥이나 경치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전님 복속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죠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는 19절에서에서 주부 있고 부르짓는 주님을 구하다 주님을 찾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냥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죠 우리는 우리 개인의 깨어짐 또는 공동체에 깨어짐 또는 가정의 깨어짐 사회와 국가의 깨어짐을 솔직하게 주님 앞에다고 주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20절에 짐승님께 짓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만 보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다 주님을 찾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만큼만 정말 지독하게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거 같습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데 인간만큼 지독하게도 주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 임으로 해보겠다고 끝까지 뻐팅기고 버틴 기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지도자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을 계속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요엘 선지자는 온 백성이 함께 모일 것을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제사장 그리고 장로들이 모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고 돌이키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장본인들이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미가 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미숙한 따르 이들에게 본이 되어지고 그들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통 우린 여기서 아 그러면 이들은 제사장 장로 회자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지나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러고 계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전신자 제사장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본이 되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성숙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성숙을 목표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뒤에 따라오는 이들을 기꺼이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금이 그리고 따르미 되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본을 보고 따라감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을
내밀어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 2024년이 아직 3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어 저에게 있어 올해의 시작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또 교회 사역에서 크고작은 고난을 마주하며 어이 한해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살아내야 하는 막막한 현실 두렵기만 했고 맡겨진 사악을 잘 해낼 자신도 저는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막연하게 고민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속에서도 다른 길을 걷는다는데 다른 선택을 한다는데 세상과는 다르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저의 지난 고민의 답을 요서가 주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삶은 아무 고난 없이 안녕하십니까 이중 누군가는 저처럼 어째서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대체 내 삶에 왜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난의
시간을 버티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 시간을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그런 고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요회서는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어짐을 직시하고 충분히 통곡해 그런데 그것에서 멈추지 말고 함께 모여서 나를 찾거라 나를 찾고 나를 의지하고 너희가 너희 힘으로 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을 너희 손에서 내려놓을 때 너희가 서로 금이와 따미가 되어줄 때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세상은 고난 속에서 그저 절망의 눈물을 흘리며 홀로 깊은 굴속에 숨어버립니다를 수 있을것이라 했던 모든것이 허하게 무너지고 모두가 서로를 몰라라 외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살아내는 방법은 이와 같지 않다고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는 없는 하나님과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죠 요는 고난을 이야기하지만 임없이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설교의 서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자기 성의 고난을 하지 않으십니다 을 하 함께 모여 주를 예배할 때 예배할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예배하려 힘써 모여 있을 때 주님을 찾고 의지하며 기도할 때 주저앉아 있는 그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줄 때 고통받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에게 지정 헌금을 보내주고 내가 너의 삶을 다 수 없지만 내가 너를 위 기도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그사람들이 되 응할 우리의 삶에 주님이 함께하시며 우리를 끝끝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이 고난 속에서 다른 길을 걷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메뚜기 때가 날아왔을 때 요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순간에도 죽을을 다해 여러분을 예배당에 앉혀 놓으십시오 하여 성님께서 깊은 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너무 힘들어서 어떤 기도도 나오지 않더라도 힘써 주님을 찾고 찾으십시오 여러분이 마음으로 드 그 침묵의 기도를 주님께서 여러분의 코끝에서 다 듣고 계십니다 동굴로 홀로 숨지 마시고 공동체 품에 그저십시오 공동체 이미와 따의 거한이 분을 그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같이가고 지 않으면가 기다려서라도 너희와 함께 가겠다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요 곳곳마다 기록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곳곳에서도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고난 속에서 요서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말씀인 줄을 믿습니다 예배 함께 나와서 준비해 주시고요 어 우리의 삶에도 끝도없이 날라 들어오는 뚜기 때가 있습니다 한차례 지나가면 이제 끝까 또오고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오는 강한 군대와 같은 메뚜기 때가 우리 삶에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끝없이 날라오는 메뚜기 때처럼 우리의 삶에도 그렇게 끝없이 날아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향한 또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는 고난이 하죠 하지만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이름도 곡할 것이라고는 믿습니다 끝없는 고난보다 더 끝없이 더 끈질기게 더 확고하게 찾아와서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희를 보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주님을 우린 오늘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