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기대" / 박예진 전도사

2024-03-10 · 마가복음 11~13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은 퀴즈 대신 지난 전반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의 첫 시간을 통해서 복음의 시작을 나눴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이고이 복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과 어떤 구원을 주는지 살펴 보았죠 마가는 이것을 마가복음의 첫 문장 마가복음 1장 1절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이죠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라 믿고 황제만이 복음이라고 생각하면 살아가는 그 세상을 향해서 그것은 모두 거짓이고 진짜가

여기 있다라고 마가는 담대하게 외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진짜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깨어짐을 회복시킬 진짜 복음이 시작되었다고 선포한 것이죠 그리고 누구든지 이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에게네 가지 밭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 있습니다 복음은 씨앗이 모든 땅에 뿌려 지듯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아무나 열매 맺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서 오직 단 하나 좋은

땅에 반응을 할 때 그 사람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먼저 선택받았던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좋은 땅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정하다 여겨지던 이방인들 천하다고 여겨지던 소대전 자들이라 할지라도 초청하신 주님의 손을 잡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 그 자체로 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식하게 치시고 나의 형제 자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복된 이들은

이제 구원의 길을 떠나며 제자의 길로도 초청습니다 세상을 향해 걷던 걸음을 예수님과 함께 돌이켜서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 세상과는 다른 제자의기를 걸어야 하는 것이죠 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 말입니다 구원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주어이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의 길 그 길 위에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마가복음 1장부터 10장 까지의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항해 걷는 그 길의 여정을 담고 있었죠 그리고 오늘 살펴볼 11장은 드디어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이 아는 책에서 장소의 변화는 마치 연극의 새 마귀 시작하는 것과 같은 요소입니다 전반부 보면 크게 갈릴리 유대 지역에서 이방인의 지역으로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의 장소로 이동하 하면서

내용의 전환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후반부에서는 예루살렘이라는 새로운 장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화제가 전환됩니다 마가복음의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굳지 아무도 타보지 않은 새끼 나기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구약에 기록하고 있는 스가랴서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정시나 그게 기뻐하여라 성마 성을라 그 왕이게 모시다 그는

모이 오시는 왕를시는 왕이시다 그는셔서 기고 자기 끼 어린 나를 다 내가 라인에서 벌을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말을 없애며 전쟁할 때 쓰는 발도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활을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이이 에서까지에서 끝까지 이 것이다 스가랴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이신 새끼 나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죠 예수님은 이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굳이 아무도 타보지 않은 약하디 약한 새끼

나기를 타고 들어가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겸손의 왕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자 많은 무리가 거리로 나아와 예수님을 환호하며 반깁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고요 나뭇가지를 꺾어서 깔기도 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니 그들이 이렇게 외쳤던 이유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의

나라와 같이 강국으로 회복시킬 메시아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들든 기대감 사이를 보란듯이 힘없고 연약한 새끼나귀를 타고 지나가 그야말로 동상 이몽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기대와 달리 군마 대신에 새끼 나기를 타신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무력으로 맞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승리하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이스라 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알려 주시고자 몸속 힘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이스라엘의 헛된 기대를 뒤로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 곧바로 성전으로 향하셨다 성전으로 가시는 길에 배가 고프던 거 같아요 그래서 무화과 좀을 먹고자 무화과나무를 살펴 보십니다 하지만 무화과 열매는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무화과 하는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무화가가 언제 열리는지 아마 잘 아셨을 거예요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수박 하면 어떤 계절을 떠올리죠네 그런 것처럼 예수님에게 무화과 하며 아 무화과 이때 먹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다 아심에도 다소 충격적인 반응을 보여 주십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 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혼이서 열 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 여러분 이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인가요 지금이야 뭐 수박을 겨울에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조금만 몇 년 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제철이 아니면 과일을 먹기 힘들었죠 만약에 자녀가 겨울에 수박을 찾으면서 왜 겨울에 수박을 주지 않냐고 땡깡을 부리면 그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굳이 그런 행동을 하시며 애꾸은 나무 하나를 저주해 버리시죠 그것도 앞으로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하실 일인가라는 의문이 우리 가운데 듭니다 예수님이 너무 배가 고프 잠시 이성을 이루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성전을 향하여 가십니다 그리고 방금 무화과 저주하신 것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더욱 거칠고 더욱 충격적인 행동 을 보여주시죠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리고들은 예루살렘에 다께서을 들어가셔서 성에서 팔고 사하는 사람들을 내주시면서 돈을 바고 주는 사람들의 삶과 들 위는 사람들의 자를 불러시고 전들을 가로질러 불러는 것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가시면서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과 내수 마이 수라고 것 지냐 그런 너희는 그곳을 도의으로 만들어버렸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일은 매매하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꾸짖으신 일이었습니다 다소 폭력적인 모습까지 보여 주시면서 그들을 거세게 책망하시고 왜 이렇게 주님은 거센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하셨을까요 이런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내 쫓으신 그리고 꾸짖으신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부류는 매매하는 사람들 즉 장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사고 팔았던 것은 제사에 꼭 필요한 제물이요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흠도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제사장들이 제사장이 백성이 가져온 재물을 보고 아 이것 흠이 없습니다라고 판단해 주면 백성들은 그 재물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사장이이 은이 있기 때문에 제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주는 척하며 성전에서 직접 기은 미 없는 소나 양 비둘기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백성들이 직접 가져온 재물보다 훨씬 비싼 값을 쳐서 말입니다 만약 백성들이 집에서 자신이 기린 흠없는 재물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제사장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백성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쩔수없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성전의 재물을 사야만 했을 것입니다 제사를 안 드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내쫓아 버리신 것이죠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챙기는 장사 르미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분노하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돈을 바꾸어주는 즉 환전을 해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나 반세계 값 해당하는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요 성전세를 납부하기 위해서 당신 당시에는 반드시 환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이를 이해할 수 있죠 평상시에 그들에게 통용되는 일상 어 생활 속에 사용되는 돈은 로마 황제의 우상이 새겨진 동전 데나리온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일상 생활 하는 것이 문제는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전으로 성를 납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죠 왜냐면 그들이 지키던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20장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를 위하여 세인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실 때 너희가 그 무엇이든지 우상을 새기지 말고 만들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일상 속에서는 데나리온을 사용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세를 납부할 때는 황제의 우상이 새겨진

그 동전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이스라엘의 화폐인 세일이라는 돈으로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돈을 바꾸는데 많은 문제가 있었겠죠 그래서 이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 사항이었습니다 어 당시 환전은 적게는 4% 마켓는 88%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환전을 할 때 보통 료가 평균 2% 정도가 되는데요 우리도 이 수수료를 낼 때 어 좀 비싼데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당시의

수수료가 오늘날 기준으로 계산해 봤을 때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4.5배의 수수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은 가뜩이나 로마 제국의 지배로 인해서 백성들이 온갖 세금을 납부하느라 허리가 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성전세 아지 고리에 어 금리를 내고자 수술를 내 내야 했기 때문에 성들의 형편이 더 어려워졌던 것이죠 이것은 가난한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하고 자비로 할 그리고 본을 보여야 할 성전이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을 위한 돈리 장소로 전락한 것에 진노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요 매매와 환전은 성전 바깥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경하는 일에 방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성전은 총네 종류의 공간으로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영역마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한계가 다 정해져 있었죠 이방인들은 성전 바깥 들이라고 하는 첫 번째 뜰까지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곳에서만 예배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미 그곳은 재물을 파고 사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로 가득차서 마치 시장통을 연상 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유일하게 오픈된 성 시장으로 바뀌어서 그들이 전혀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예레미야 말씀을 용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이 되었구나 주님은 만민을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을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탐욕에 물든

강도의 속로 전락한 성이었습니다 타락한 성을 향한 의 진노와 탄식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다음 이어지는 말씀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들을는 것을 하셨다 예수님은 매매하고 돈을 바꾸어 주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시고이어서 성전에서 물건을 나르는 것 또한 금지시키다 어 여기에서의 물건은 성전에서 제사할 때 사용하는 성전 기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전 기구를 사용하지 말라 이것을 들고 이동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신 것과 같은 의미인 거죠 주님께서는 성전 제의를 폐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하는 행위만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이 가지고 있는 기능 제사인 기능까지도 금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타락한 성전을 향하여 이제 타락한 성전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포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이 좋게 봤을 리가 없죠 자신들에게 좋은 수익을 내주고 있는 그런 일들을 금지시켰고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질투와 시기가 이제는 그저 그 미움을 번져서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까지 번져 가게 됩니다 이제는 단순한 질투와 미움이 아니라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분의 죽음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전에서의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에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똑같이 예루살렘 거리를 걷고 있는데 전날 예수님이 저주하던 무화과나무가 제자들의

눈에 들어옵니다 그 나무가 진짜로 뿌리째 말라서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배고픔으로 인해 저주하신 무가 나무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샌드위치 구조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죠 마치 샌드위치 빵 사이에 다른 재료가 들어간 것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학자들은 이것을

샌드위치 구조다 그래고 이름 붙혔습니다 샌드위치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입니다 이야기 안에 다른 이야기가 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 즉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는데 빵의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쪼개서 그 가운데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샌드위치 빵 속에 속 재료를 채워 넣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서 더 중요한 핵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빵일 아니면 속 재료일까요 제가 한번 쉽게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여러분 샌드위치를 드실

때 빵 때문에 드시나요 그 안에 재료 때문에 드시나요 재료 때문에 먹죠 심지어 우리가 그 재료 때문에 그 샌드위치 이름이 결정되기도 하잖아요 햄 치즈가 들어가면 햄치즈 샌드위치 에그마 들어가면 에그마 샌드위치라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구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 있는 빵의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욱더 저자가 핵심을 두고 기록하고자 했다는 것은 그 속재료에 해당하는 가운데 이야기였다는 것이죠 이처럼 샌드위치 구조에서는 더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속재료에 어 자리잡게 합니다 가운데 내용이 진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빵의 역할을 하는 바깥 이야기는 가운데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에서이 샌드위치 구조를 아주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들 비교했을 때 마가복음에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 복음이 구조를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제가 질문을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우리가 방금 살펴본 이 무화과나무와 성전

이야기 중에서 빵의 역할을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네 그렇죠 바깥에 있는 무화과나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속 재료에 해당하는 것은 반대로 가운데 있는 성전 정화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환전하는 사람들을 내 쫓으신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이야기 중에서 더 핵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 까요 그렇죠 가운데 속재료에 해당하는 성전 강화에 대한이야 어 성전 정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성전 정화의 핵심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에 있는

빵 즉 무화과나무 이야기로 잘이 내용을 감싸서 먹을 때 우리가 이 두 이야기를 모두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화과 저주하신이 사건을 그냥 배고파서 저주하신 이상한 사건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앞에 나오는 성전에 관한 내용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셨나요네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무화과 저주하신 것은 배가 고파서 짜증을 부리신 것은 확실히 아닙니다 이것은

성전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은 타락한 성전에 대한 심판이 그 즉시 곧 임할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 이스라엘 지역에는 무화과나무가 굉장히 흔하다고 했는데요 그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3월에서 4월 경에 열매가 먼저 맺힙니다 그리고 나서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열매가 무르 입고 8월에서 9월 경이 되면 잘 익은 열매를 사람들이 따먹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신 시점은

그들의 명절인 유월 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기를 생각해 볼 때 이때는 아마 4월쯤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그쯤 있었기 때문이죠 아직 나무에 이파리가 무성할 시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아직 설익은 열매인 하지만 열매가 한두 개 정도 맺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상하게이 두 시기가 서로 반대로 바뀌어서 나타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성한을시고에 하여 는데이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열매가 맺히고 나무가 이파리가 무성해져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은 그 반대였다고 기록하고 있죠 이파리는 무성한데 설익은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무화과나무의 모습만 보자면 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혹시 열매가 있지 않을까 하고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살펴 보셨을 때는 성경과 같이 무성한 입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이 무화과나무는 그렇다 무엇을 상징할까 이것은 타락한 성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성전은 마치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어 겉으로 보기에는 활발한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성전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아무 문제 없이 그들의 모든 종교 활동이 착착 진행되어져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안에는 주님께서 그토록 기대하셨던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죠 또 3월에서 사월에 열린 열매는 아직 다 있지 못해서 상품의 가치는 없겠지만 이것은 주로 가난한 사람이나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객들의 급한

허기를 달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프던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신 것은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꽤 보편적인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월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설익은 열매는 커녕 아무것도 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또 술 순례객들을 품듯이 만민을 품어야 하는 그런 기도하는 지배 했던 성전이 그들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고 뿌리째 말라 비틀어져 죽었습니다

뿌리가 마른 나무는 다시 살기가 어렵죠 이처럼 성전도 그들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받아 성전의 시대가 이제 끝나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서 타락한 성전에 대해 말씀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의 시대가 끝났음 또한 말씀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타락한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질지 그분의 행동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죠 무화과나무 이야기와

성전의 이야기를 맺 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은 무성하지만 열매없는 무화과나무 그것은 곧 종교 활동만 활발하고 영적으로 타락했던 이스라엘의 성전을 의미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향한 예수님의 저주는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은 성전의 시대가 그처럼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죠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심판만 선포하고 그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버린 성전 시대를이어서 새롭게 시작될 새로운 시대에 대해서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끌어갈 그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알려 주시죠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께서는에게 말씀하셨다 하나을라 내가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려서 바에 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 될 것을 믿으면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지 이미 것을 받는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진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장을 주 것이다 성전 시대가 끝난 이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신앙 공동체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예수님 하나님을 믿어라고 말씀하시고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믿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죠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치 요술램프의 진니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무엇이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주는 그런 요정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말씀이 아니죠 예수님은 이 말씀을 면서 산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 더어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고 말하고 이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이 믿음은 우리의 원함이 이루어지는 어떤 소원권 이런 것이 아니라 이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앞서서 타락한 성전에

대한 심판 을 예언하시고 곧바로이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이 말씀도 성전 심판에 대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마 저자인 마가는 그것을 염두해 두고 성경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 산은 성전이 있었던 성전 산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이 말씀은 성전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은 앞서 말씀하신 성전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신 것으로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 성경에서 흔히 바다를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의 장소로 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마가복음 5장에서도 어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에서 귀신이 돼지 대에게 들어가 그 돼지대가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악한 군대였던 그 귀신이 심판당한 것을 바다에 빠진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심판뿐만 아니라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자유롭게 된 구원에 대해서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이 산이 바다에 빠지라는 것을 믿어라 하고 하신 말씀은 타락한 성전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구원을 펼치실 그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게 성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건물의 교회가 아니었어요 그들에게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였고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너의 성전 이제 끝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느끼기에는 어 우리 이제 끝났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나 하나님이 이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나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타락한 성전은 심판 받겠지 그들은 끝날 거야 그 시대는 이제 끝났어 하지만 그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시에 구원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서 성전이 감당하지 못했던 그 일들을 이제 그 새로운 공동체가 감당해 나갈 것을 믿고 어 나아가라는 것이죠 타락한 성전의 모습만 보면 절망이고 어둠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절망과 어둠을 그냥 내버려 주시지 않습니다 새로운

소망의 빛을 제자들에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모든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길이 어그러질 때마다 구원을 위해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소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막의 시대가 끝나고 성전의 시대가 왔고 성전의 시대가 끝나자 이제 새로운 시대가 또 다가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어그러져 버린 성전을 대신하여 새로운

공동체가이어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 특징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가에게 기도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죠 23절에서 산을 옮기는 믿음이 기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믿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이 사실을 믿으며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우리가 믿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어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을 심판하시고 또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보면 어디 한 구석이라도 소망 있는 곳이 있나요 조금 살만해졌다 싶으면 또 어디선가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의 아우성이 어 들려오죠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서 그 반대편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또이 사람 뽑으면

좀 바뀌지 않을까 그래도 이 공동체를 뽑아 놓으면 좀 낫지 않을까 잠시 희망을 걸어보지만 우리는 곧 그놈이 그놈이다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바뀌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아이 땅에 소망은 없구나 그런 것은 동화 속에나 있는 것이구나 우리 현실은 절망이나 외치는 것이 당연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서로 죽겠다 힘들다 배틀을 하죠 야 나 요새 너무 힘들어 야 나도 힘들어 나 죽겠어 너만 죽겠냐 나도 죽겠어

여러분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한 탄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의 공동체는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그 복음을 믿으며 기도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엄중히 심판하시고 그러나 자기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푸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공동체는 이 사실을 믿으며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말라 비틀어져 가는 생명을 잃고 깨어져 가는 그들을 품고 그들도 함께 이 복음의 공동체로 들어오도록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깨어진

이의 종말이 무화과나무와 같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소망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회복을 돕는 것이 새로운 공동체가 마주해야 할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공동체는 악한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걷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용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도 있겠지만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어 용서의 관계 즉 죄사함 있습니다 원래 죄사함은 성전을 통해서 이루어졌죠

성전 제사를 통해서 이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성전은 더 이상 죄사함의 기능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제 성전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제는 성전 제의가 아니라 죄사함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께 용서받고 싶다면 너희도 서로 용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더 이상 성전에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이제를 용서하는 세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공동체는 성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서 며칠 후면 십자가를지게 되는 것이죠 모든 사람의 대속 재물이 되어 그분이 죽으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시작된 그런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죄를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용서받은 공동체는 이제 서로를 용서하며 품어 품어주는 공동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죠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아마 당시에는 다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차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새로운 공동체 제자들이 모인 공동체 에클레시아 교회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품어주는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라면 우리도 이러한 교회를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교회여야 합니다 눈앞이 캄캄한 절망의 순간에도 함께 모여 심판과 구원을 일으키고 계시는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용서하시고 그를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과 서를 생각하며 우리도 기꺼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이 우리 사귐의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는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따지듯이 묻죠 대체 당신이 누구에게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이에 대해 대답 대신에 질문으로 그들을 상대하 그리고 이 질문에 그들이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고

너희가 대답하지 못하면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죠 그 지도자들에게 던진 예수님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거세게 비난하다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은 자기 다 여지 않다 그서 사왔다고 수도 없지않다 그들은 리를 서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을 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에 사람들이 서로 을지냐 할 사람들에

왔습니다 말면 요을 님의 람이라 굳 믿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을 할 것이 뻔했기입니다 이들은 끝까지를 구하기보다 신 이익을 한 찾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르겠습니다 해버리죠 그 주님의가 어서지지 않겠다고 그리고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답하여 주십니다이 비유는 성전을 향했던 하나님의 심판처럼 이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성전을 향한 것이었다면이 비유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죠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아주 정성스럽게 잘 가꾸었습니다네 그러다가 타국에 멀리 갈 일이 생겨서 그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포도원의 수학의 때가 오자 포도원 서출의 얼마를 받기 위해서 주인은 자신의 종 한 명을 그 포도원에 보냅니다 아마 주인은 그 종이 농부들로 포도송이를 받아서 올 것이라 기대했겠니 빈손으로 돌려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다른 종을 다시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농부들이 주인의

종을 때리고 머리를 다치게 하고 능욕한 채 돌려보냅니다 앞선 종보다 더 심하게 된 것이죠 주인은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봉을 아 종을 또 보냅니다 그랬더니 간이 배밖으로 나온 이 악한 농부들은 이번에는 그 종을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도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 얘네 도가 좀 지나친데 싶었는지 이번에는 자기가 어 데리고 있는 종들을 많이 한 번에 보내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농부들이 얼마나 했는지 이번에도지지 않고 그 많은 종들을 몇몇은 때리고 몇몇은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이 가지고 있던 주인이 데리고 있던 종들을 모두 잃은 것이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은 낙심합니다 농부들의 포악함 때문에 자기 종들을 다 잃었고 이제 자신에게는 사랑한 아들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나요 그 포도원으로 하나남은 아들마저 보내시겠습니까이 주인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마저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도 주인의 아들인데 내 아들인데 조금은 존중해 주지 않을까 아들의 말이라면 듣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대로 곧장 포도원으로 갔고 농부들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 그 다 그이에 될것이다 그러서 그를 죽고 다 그러니 원 주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 와서를고을 른 사람에게 주인의 마지막 기대와 달리 악한 농부들은 아들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을 죽이면 그가 상속받을 그 유산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다 말씀하시고 끝에 그 비유를 듣는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포도 주인이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으니 그가 와서 악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정성을 다해 포도원을 가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정성을 다해 가꾸시고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농부들은 문맥상 성전 권력에 실세였던 종교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을 잘 가꾸기

위해서 종교 지도자들을 세워 자신의 마음처럼 이스라엘을 잘 돌보고 가꾸어 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비유 속에 드러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죠 주인의 권위를 가지고 온 종들을 농부들은 때리고 죽였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포도원의 주인 있냐 행사 주인을 향한과 법을 치 않습니다 주인의를 가지고온 그들 하대하고 대합니다 이처럼 종교지도자들은 오랜 시간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의 종들 선지자들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들이 죽인 세례요한이 있었습니다

결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결정했죠 그이 아들은 하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의 모든 기대를 아들에게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내서 포도원 열매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아들이이 아들만큼은 포도 열매를 가지고 오기를 내가 그 포도 열매를 볼 수 있기를 바란 것이죠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포도인 이스라엘의 열매를 기대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잎이 무성했던 무화과나무처럼 건만 화려한 성전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그어떤 열매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악한 농부들 럼이 아들 예수 마저 죽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종교 지도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앞선 선지자들이 그리고 세례 요한이 누구의 권위를 가지고 이 땅에 왔는지 모르지 않았다 너희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너희의 아와 권력과 불을

위한 그 탐욕에 눈멀어 하나님의를 가진 그들을 전부 때리고 죽이고 그들 핍박했다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인 나라고 존중하 너희의 태도가 마치 농부들과 다름이 없구나 여러분 그런데 이 비를 가만히 읽다 보면 다시 하나의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이 주인은 바보인가에 종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도 아들을 또 보낼 수가 있는가 만약 제가 주인이었다 종의 죽음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아이 농부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구나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절대

아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종들조차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주인은 끝까지 농부들에 대한 기대를 걸고 아들을 보냅니다 참 이상한 주인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주인이 정말 몰랐을까요 농부들이 자기 아들을 절대 해하지 않을 거라는 100% 굳은 확신 때문에 아들을 보냈을까요 질문 한번 바꿔 보겠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었던 하나님은 대체 왜 아들까지 보내는 바보 같은 짓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100%

확신하고 계셨던 걸까요 하나님은 농부들이 얼마나 포악한 사람들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앞서 보낸 수많은 종들이 매를 맞아 죽어가고 고당 죽어 외치는 소리를 그분은 다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자기 아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포로의 기대를 걸고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이 땅에 보내십니다 그 농부들이 혹시나 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았지만 혹시나 내 아들의 말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라도 깨닫고 돌이킨다면

혹시 이제라도 뉘우쳐 그들의 걸음을 킨다면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아마 1% 안 되었다면 0.1% 확률이라도 걸고 그분은 똑같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셨고 때문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이 비유를 다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 비유 속에 악한 농부들이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비유 속에 주인을 사랑하는 아들이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 또한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죠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계획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예수님의 비속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포악하고 타락한 마음은 99% 아닌 1% 기대를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닫지 못하게 했습니다 결 이들은 주인이 농부들을 심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 맞으십니다 그러나 시에 하십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려주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여러 번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때가 다 되었음에도 여전히 탐욕과 세상에 눈멀어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심판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과 소망의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심의 하나님도 분명히 계심을 함께 믿어야 합니다 농이 심을 고나면 포도원은 주인의 권리와 권위를 인정하고 주인의 것을 주인에게 바칠 새로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따르는 선한 농부들이 있죠 그리고 이들은 이들은 성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 교회를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 끝에 다시 한번 성전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제서 한사람이 예수께 말라했다 님 보시요 얼마나 한입니까 얼마나 전한 물들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다 너는이 큰 물을 보고입니다 여기에 하나도에지 않고 다 것다이 앞에 있는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도 여전히 화려 겉모습만 바라보는 제자에게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것은 다 무너져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무화과나무의 이야기와 포도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또 새로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마가는 그리고 왜 이런 이야기를 기록해야만 했을까요 예수님은 이 성경의 시기상 이제 3일 후면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땅에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분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난 후에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신 것입니다 악한

농부들과 같이 되지 말고 만 무성하고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공동체 즉 교회 초석이 될 제자들 만큼은 제발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모습이 되어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이 찾으실 때 기 주님의을 고 열매를 드릴 수 있는 공동체 선한 농부와 같이 주님이 맡기신 공동체를 잘 보살피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가르쳐 주신 것이죠 그리고 마가는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마가복음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이 그 12두 제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질 교회의 공동체를 통해서 계속 이어져 가기를 바란 것입니다 앞에서의 마가복음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의 우리에게 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곧바로 이어진 내용이 바로 오늘이 이야기입니다 타락한 공동체가 마주할 심판과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가르침과

기대입니다 마가는이 책을 통해서 당시의 독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마가복음을 읽는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자로 부름을다면 그들 모레아 는 이러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전이 타락해서 심판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한 제자를 부르신 그 개인의 부르심이 이제는 제자 여러 명이 모인 그 공동체를 부르신 부름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모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본 내용들은 표면 쪽으로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이야기 있으나 사실은 이스라엘 그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열매를 기대했지만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또 하나님은 주인의를 인정하는 그런 선한 백성의 공동체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자신의 탐욕에 눈어 타락한 모습을 보여 하나님의 기대를 버립니다 사귐의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리는 지금 주님 앞에서 에게 세워져 가는

주님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기대하신 열매가 비록 늦더라도 끝끝내 열리는 그런 공동체 열매가 무 익어가는 그런 공동체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도 잎사귀만 무성한 그런 타락한 공동체는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선한 농부이신 악한 농부이신 저는 우리 교회가 열매 맺는 공동체 선한 농부들이 가꾸어가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행하며 살아야겠죠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음성의 귀를

기울이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가 때로 넘어지고 실수하고 서로 하기도 하겠으나 그럴 때 너 때문이잖아 네가 이렇게 안 해서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를 먼저 용서하신 그분의 마음을 닮아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되기를 힘쓰는 그런 사람 되 할 것입니다 이건 어느 한 사람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걸었던 하나님의 기대는 이제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교회 공동체를 잘 가꾸어갈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교회로 살아갈 선한 농부로서의 기대도 우리에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리 하나님을 시키는 사람들은 되지 맙시다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지 맙시다 아무도 몰라주고 세상에 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만큼은 힘써 주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공동체가 됩시다 1포에 걸었던 그 신락 같은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바뀌는 그 날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