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사무엘하 톺아보기" with 다윗을 지켜준 사람들 / 강정규 목사

2022-10-30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제가 토파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토파보다라는 뜻은 사사시 흩어 가며 찾아본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보통이 토파 보기 소개를 언제 하냐면 한 권의 책에 대해서 좀 오랫동안 설교했을 때 그 설교의 자체를 마무리하면서 되짚어볼 때 그 한권에 찬찬히 하나씩 훑어본다는 훑어본다는 의미로이 표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사무엘하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마지막 사무엘할 설교하면서 오늘의 메시도 끝에 있지만 그동안 나왔던 다섯 번의 메시지 가운데 우리가 중요한 것들을 전체가 흐름

안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또 하나의 메시지 뒤에는 그때마다 불렀던 우리 결단을 찬양을 다시 한번 부르면서 그때 내가 가졌던 그 하나님에 대한 그 마음들을 잊지 않고 오늘 다시 한번 그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이를 통해서 우리가 전체적으로 사무엘하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고 우리 마음이 다 뜨거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메시지를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장 넘겨주십시오 네 기다림은 믿음에서 나온다라는 제목입니다 사무엘라는

어떻게 시작하냐면 사무엘상의 주인공은 한 명이었던 사울 왕이 죽는 이유에 죽음에 대해서 다윗이 듣게 되는 장면으로 사무엘하가 시작됩니다 사울 왕이 죽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거예요 정치적 공백기입니다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던 다윗은 이제 내가 왕이 될 절호의 기해야 이렇게 여기지 않고 혹은 속으로 그렇게 여겼을지라도 나서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차피 이것이 사무엘하의 가장 중요한 답이라고 했어요 하나님께 묻는

것 하나님은 다윗에게 응답하셔서 유다 지파 땅에 있는 헤브론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서 추대해야 됩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지도가 되었다면 나머지 11개 지파는 4월의 아들이었던 이세보셋이 통치자가 됩니다 그렇게 7년 동안 분열된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 사이에도 몇 번씩 다윗은 자기 뜻대로 행하면 유리해질 만한 상황을 만납니다 대부분 우리가 보기에는 기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 안에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자 힘씁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때로는 쉬운 길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해하는 삶은 기회의주의자와 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하나님을 향한 기다림과 신뢰함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윗도 여러분 가까이에서 그의 삶에 보면 허점도 많고 사람 냄새도납니다 왜냐면 다윗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인생 또한 평생에 걸쳐서 하나님이 빚어가는 하나님의 선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그렇게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에 때로는 길을 내시고 우리에게 약속한 곳에 이르시되 그 하나님의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이 메시지로 권면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이루실 짐에 바라보며 함께 찬양하고 싶습니다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잖아도

일하시네 일하시네 주는 결코 멈추지 않는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잖아도 일하시네 일하시네 주님 결코 멈추지 않네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진 사람도 일하시네이 자신의 주 멈추지 않네 비록 내게도 있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잖아도 일하시네 일하시네 주님 결코 멈추지 않네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잖아이 자신의 주님 주님 결코 멈추지 않네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잖아도 일하시네 이러시 내 주님 주님

결코 네 Way Back Home a the wone primescaper 라임이 너 당신 마이 갓 내린 수유와 매일매일 매일 꽃 미라클 워터파비스키퍼 라이딩 더 덤핑 맑아 데리수를 큰일을 만드시는 주께 기적을 행하시는 줄 그대 나의 하나님 아멘 약속을 지키시는 약속을 지키시는지 어둠 속에 빛이 되시네 나의 아버지가 큰 길을 맞으시다니 나의 하나님 약속 을 약속을 지키시는 주 모든 속에 빛이 되시는 그대 나의 하나님 께서 오시는 우리 삶에 인도하시고 길을 내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문제에 믿습니다 아멘 그 마음을 우리가 나가길 원합니다 다윗이 그 이후에 결국에는 온 이스라엘 갈 수 있는 왕이 됩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예루살렘이라는 성을 정복하게 되고 그것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국 수도로 삼습니다 이제 그리고 그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합니다 그 시도가 두 번에 걸쳐서 반복되는데 우리가 그 두 번의 시도를 비교하며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무엇이 달랐는가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다윗이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고 안 묻고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하는 마음은 굉장히 좋은 마음일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할게 뭐냐면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한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라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물어야 됩니다 교회 또한 하나님의 일을 내세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 분별이 필요한 것이죠 두 번째 차이 수레로 언약궤를 옮긴 것과 매워서 옮긴 것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매어서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거든요 수레로 옮기면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블레셋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편한 것이 다 좋은 곳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험했지만 온라인 예배가 참 편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내 최선의 예배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는 분명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일 수도

있고 오늘 그런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 드리시는 분이라면 저는 전혀이 얘기에 정지함이 없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진심을 아시니까요 그럼 만약에 예배가 온라인 예배 드린 이유가 내가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어떠함이 더 중요해서라면 저는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을 망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첫 번째는 다윗이 왕의 입장에서이 일을 진행하고자 했고 두 번째는 다윗이 예배자로서이 일에 참여했던 것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첫 번째 언약궤를 옮겨오는

시도에서 실패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왕으로서 나의 자리에 하나님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움직이신 가운데 따라가는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어야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위치가 어떠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에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할 때 도망하게 됩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도망치는 다윗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근데 그때 다윗이 거절하죠 내가

왕좌에서 물렀다고 언약궤가 나를 따라가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는 왕궁이 있을 것이고 언약궤가 있는 곳에 만약에 하나님 뜻이라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라는 것이 다윗의 고백이었습니다 또한 두 번째 시도에서 그는 왕이 아니라 그 행렬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자로 춤추며 나아갑니다 왕의 지혜를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가 나아갑니다 근데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다윗의 아내 사울의 딸로서 공주로서 살았던 미갈이 불쾌합니다

왕의 체통을 지켜야죠 그리고 왜 그렇게 얘기했을까요 왜냐면 그녀는 단 한 번도 다윗이 누리는 예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 내려놓고 예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그런 사람을 향해서 다윗이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내가 춤을 출 때 다 비웃겠지만 그러나 그들도 주 알게 되면 함께 기뻐 춤을 추게 되리 아멘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주님의 노래하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춤을 출 때 답이 없겠지만 그들도 좀 알게 되면 함께 기뻐 춤을 추게 되니 나를

향한 주의 사랑 산과 바다의 넋이니 내 마음 열 때 주님 나에게 잘 주셨네 늘 진리 속에 거하며 나의 손을 높이 언제나 주님의 사랑의 노래 나를 향하 나를 향한 주의 사랑 산과 바다에 넘치니 내 마음 열 때 주님 나에게 감사해요 나의 손을 높이고 언제나 주님의 사랑의 노래하리 주의 사랑 노래 아니야 영원토록 노래 다 니라 주 예수 노래 영원토록 너를 주의 사랑 노래 아니라 영원토록 노래 다리라 주의 사랑 노래 아니라 영원토록 노래 다리라 주의 사랑 노래 하리라 영원토록

노래 하리라 주의 사랑 노래 하리라 영원토록 노래 하리라 삶이 하나님이 예배하는 예배자의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다윗 언약 바로 보기라는 제목인데요 그 이후로 다윗이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는 자신이 좋은 궁궐에 있으나 하나님의 궤가 천막 안에 머무는 것을 죄송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다윗의 행동을 막으십니다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물으면 나는 성전구축하는

것이 반대야 다윗이 오해하게 되는 것이 생기기 때문에 다윗의 바로잡아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오해들이 무엇이냐면 첫 번째 건물 성전은 하나님의 진정한 집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처럼 물질 세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좋고 크고 웅장한 건물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큰 예배당에 계신 하나님이 크신 것이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계신 하나님도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지워지겠다는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아시죠

소중히 받으셨지만 그 옷을 그대로 두면 마치 건물로 표현하는 그런 그렇게 뭔가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오해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시는 겁니다 둘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적 차이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됐죠 여러분 개미가 아무리 여러분의 사랑해도 여러분에게 집을 지어줄 수는 없습니다 아니요 집을 지을 수 있지만 그 집이 여러분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집을 지어주는 곳은 사실 그런 의미 보자면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의 마음을 그 순수한 마음 하나님이 아시고 받으셨지만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네가 나를 위해서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게 되느냐 수사 의문문입니다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하는 곳은 하나님이 아무리 다윗이 왕이어도 하나님이 다윗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을 지으시는 주체를 바꾸어 버리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다윗이 네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나라와 왕조와 집을 짓겠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성전 건축일에 맡기실 것이고 그 성전 건축을 하는 일을 통해서 그의 왕위가 튼튼하게 해주는 복을 누리게 했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제가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어떠한 사역의 동참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해드린다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그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초청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깨달음 가운데 내게 맡겨진 사역을 할 때 내가 기꺼이 내가 즐거이 내가 좋아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누리실 특권이라고 여기고 우리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하나님이 하신 이 언약은 솔로몬을 통해서도 성취되기도 하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후순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영원한 집이 세워지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사무엘의 7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이 언약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깨지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주님의 그 나라에 주님의 그 집에 회심함으로 말미암아 참여하신 은혜가 열린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넘어질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해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가 함께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며

함께 나아갑시다 내 백성이 나를 떠나 돌아섰지만 내 사랑이 내 백성을 포기 내 모든 것 내어주고 나 그들은 어디를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리 돌아서도 그대는 지었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리 넘어져도 그 사람 영원하네 내어 주네 서로 사랑할 때 세상에 주보네 사랑의 절대지지 않네 여호와께 돌아가 자 그림 돌아사고 그는 편치 않네 여호와께 돌아다 다 그린 넘어져도 그 사람 영원하네 우리 넘어져도이 사람 영원하네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고 내게 나아가는 자들에게 그 하나의

사랑이 우리가 오늘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네모지 메시지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있을 때나 혹은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광야에서 쫓겨 사는 삶을 살 때나 그때가 사실 다윗에게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오히려 그 어려움들이 다윗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칭찬받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고 스스로 잘하고 있는 영일 때 이것이 그의 신앙의 독이 됩니다 여러분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평화는 자칫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평안할 때 내가 그러한 경각심을 갖고 사실 더욱 힘써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죄로 너머의 사건에 밧세바 사건이다라고 기억하겠지만 사실 성경 보면 그 이전에 이미 다윗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면의 붕괴가 먼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점진적으로 사실 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순간 이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죠 이것은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가 나에게 어떤 행동으로 드러나기 이전에 사실

내 안에서 먼저 하나님을 향한 그 관계의 그 질서에 붕괴가 없는지 조짐이 없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주변 국가인 암모니아 나라의 왕과 대립 관계에 서게 되고 전쟁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도 다윗이 이번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엄청난 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데 하나님께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묻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갈등 상을 맞이할 수 있는데 그때 우리는 이렇게 모를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가 이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이것에 묻고 듣고 따르고자만 해도 우리의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묻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다윗이 전쟁이 벌어졌는데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의 사명의 자리에 여러분 있어야 돼 예배의 자리에 혹시 잊지 않고 다른 곳에 머물고 계시진 않습니까 다윗의 영점 민감성이 떨어지고 두뇌해지기 시작합니다 다음에 전제 때에는 그는 결국 다시

한번 왕궁에 남아 있다가 범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자신의 충신인 아내 밧세바에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욕정을 품고 성적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다윗이 살인죄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면서 다윗이 그 믿었던 다윗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습니다 근데 여러분 사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성경은 여러분 다윗의 변호하거나 감춰줄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이중성이라고 폭로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 다윗의 삶을 보십시오 죄는 한순간에 짓지 않습니다 이미 다윗의 내면에서부터 하나님과의 그 주도권 주인 됨의 싸움에서 하나님 필요 없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입니다라고 하면서부터 어쩌면 다윗이 죄는 예고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나아가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 내면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들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듣지 않으면 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갈림길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는 길과 반을 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앞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리로 가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점점 더 누릴 수 있고 이리로 가면 죄의 점점 중독되어 나중에는 죄책감조차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격이 될 것인가 죄가 곧 나의 인격이 될 것인가 우리는 잘 분별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 여러분 다윗이 넘어졌다면 우리 누구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누구도 다윗과 같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안에는 주님

주님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약하면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인됨과 하나님의 보호를 갈망하고 간구할 때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나의 필요를 하나님으로 구할 수 있는 그 정직함이 우리에게 이 시간 필요합니다 우리 그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에 날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얻으신 장비 추억 온전히 나를 위해서 살듯이 나의 나의 인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속임 되어 가난한

영혼 지칭 영원히 주님께 인도하고 끝에 주의 사랑이 사랑 가없이 그 자신의 사랑 그러다가 나를 주는 것보다 받는 것 거울 좋아하니 나의 입술이 주님 닮을 때 담아 내 맘 아직도 추가요 하늘 사랑아 내 사랑 아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우리 삶의 길을 잃은 순간마다 그 자리에 맞춰서 주님을 찾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다섯번째 메시지입니다 다윗이 큰 죄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죄에 빠진 다윗을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버리지 않았던 증거는 그 죄를 직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죄의 처단이 목적이라면 무조건적인 심판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달 지시를 들추시고 그 들쳤다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따른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는 곳이 곧 하나님을 무시하니이다

성경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 다윗에게 내가 이스라엘을 너에게 맡겼다라고 표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탄은 언제나 여러분 어떻게 말할 거냐면 다네 거야 네 인생이야 왜 간섭 받으려고 해네 마음대로 살아 이거 다네 거잖아 너를 위해 쓰면 돼 사탄이 거기까지만 속삭여서 우리가 거기에 반응하면 사탄이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되심을 회복해야 됩니다 그것은 모세면 성행하시지 제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제 삶 전체가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의 지적을 듣고 선택할 수 있었어요 회개할 것인가 나다는 죽일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 순간 하나님이신 회개라는이 소중한 은혜의 기회를 붙잡습니다 회개는 뭘까요 회개는 자신의 잘못에 의한 철저한 인정과 반성과 돌이킴입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고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적어도 정말로 그것과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넘어질지라도 그 진실함을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처분을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내가 죄로 인해서 받을 어떤 결과가 두려워서 잠시 회개하는 척하는 것을 하나님께 모든 맡기는 것입니다 그 처분까지도 제가 예로 들었던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의 예화를 기억하실 거예요 제가 사장인데 만약 아르바이트생이 저희 매장에서 현금 보감을 해서 돈을 훔쳤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됐습니다 제가 이 사람에 대해서 애정이 있으면 이 일에 대해서 이 친구와 이야기할 것입니다 애정이 없으면 그냥 바로 자를 거예요 그

이야기하다는 것은 확인하고 그 반응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가 돈을 가져온 것을 사실 알고 있어 그때 만약 이 아르바트 아르바이트니 잘못했다고 그곳에 용서를 저에게 구합니다 제가 그 옷을 보고 용서해주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알겠어 네가 진심으로 하니까 용서할게 대신 네가 가져간 금액은 난 너의 월급에서 차감할 거야 왜냐면 그래야지 네가 일에 대해서 떳떳하게 책임을지고 너도 위에 대해서 자유할 수 있어 제가 아는 행동은이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지게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이 이후의 삶을 발목 삭제하지 않도록 자유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다면 저와 계속해서 함께하는 약속은 유효할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죄를 봐주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죄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사실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가 그로부터 자유할 수 있고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그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였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실 때이 죄의 책임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겪게 된 죄의 책임이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지워야 될 죄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감당하신 것이죠 우리의 죄의 대가를 실었기 때문에 그냥 봐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난 그 죄 그 옛 사람의 죄가 나를 구속할 수 없게 되었으면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더 이상 그 하나님 떠났던 차한테 죄가 내 발목을 잡지 않아도 되고요 사탄의 것을 정죄해도 나는 이미 그 해결된 죄에 대해서 정죄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사탄의 정자 앞에 흔들리지 말고 마저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담당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됩니다 다윗의 가문의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다윗에 대해서 사랑과 정의로 행하셨던 것처럼

다윗 또한 그렇게 주님을 닮아가야 했음을 깨닫습니다 근데 다윗이 잘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되죠 그렇다면 이제는 이것은 여러분을 향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닮아서 내 삶을 살아갈 때 사랑과 정의의이 두 날개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정이 없는 사랑 즉 불의한 것을 내가 사랑하는 거 함께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정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메마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이셨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가

추구하는 정의를 배워서 사랑과 정의로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지혜롭게 책임져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에게 나에게 주님 그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 마음을 나에게 주십시오라는 간절함으로 같이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아닌 내게 주소서 내가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 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만 내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햇 빛이

이루어 주님 안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일까를 지소서 날씬해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자 주인이 가게 하소서 주님 다시 말해 주셔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자 주의 길 가게 하소서 다시 말해 주소서 주님 받을 때에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만은 내게 주소서 나는 향하신 주님 이루어지도록 주님만 내게 주님만 힘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만 힘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 햇빛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안 내게 주소서 우리에게 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새롭게 나누는 마지막 사회라 메시지입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안타깝게도 다윗이 했던 죄를 반복합니다 첫째 아들 암로는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압살롬이라는 아들은 살인죄를 저지릅니다 다윗은 그 문제에 대해서 공의로서 사랑으로써 다룰 수 있는 아버지이자 왕의 자리에 있으나 그는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암논의 성적인 범죄는 압살롬이 암론을 형을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다윗이 또 그런 압살롬을 어설픈 용서함 가운데 돌아오게 하자 이제

압살롬이 다윗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킵니다 결국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나서 다시 한번 광야에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광야에서 훈련받다가 왕궁에서 쓰임 받다가 다시 광야로 나아가는 여정을 겪게 됩니다 두 번째 광야 어땠을까요 전 어쩌면 이 광야 여정은 첫 번째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을까요 왕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시 광야로 나오게 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절망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다윗의 인생 후반부를 보면

여전히 다윗이 그냥 어떤 부분은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 돼 멋진 모습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경계해야 될 모습도 그 안에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어떤 신화 속에 뛰어난 흠 없는 그런 인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것이 우리가 흠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니라 모나고 상한 그 삶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제가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근데 우리 알잖아요 우리도 여자나 여전히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잘하고 다듬어져 가지만 점점 주님이 닮아가도록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부분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곳이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이 평생 동안 계속 필요하다 필요한 이유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 인생의 후반부이 어려움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었는가 물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지만 사무엘의 후반부를 제가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다윗을 지켜준 사람들입니다 다윗과 함께 해준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멋진 시절뿐만 아니라 다윗이 초라한 지금의 시절에도 다윗에게 인간적인 흠이 있었던 그 느껴진 가운데서도 그래도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압살롬의 반역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령이 와서 다행히 전했을 때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모두 압살롬에게 기울었습니다 이제 압살롬이 공격해 들어올 것을 알고 다윗이 도망하여 광야로 나아갈 때 다윗을 따르는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은 왕께서 결정하십시오 종들은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 다윗의 피난 행렬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참여합니다 그때 그곳에 블레셋 출신의 이때라는 장군이 그는 이민재 출신으로 가족을 데리고 다윗에게 몸을 의탁한 인물입니다 다윗은 그 이때에게 당신은 그냥 남아서 새로운 왕이 된 압살롬을 모시고 지내십시오 권합니다 그러자

이때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여러분 물론 다윗의 옆에 있던 모든 삶이 그러진 않았습니다 다윗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히 도벨과 같은 인물이죠 아이도빌은 다윗의 옆에 있던 뛰어난 전략과 지략가였는데 그가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힘쓰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아이도빌은 다윗의 죽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전략을 압살롬에게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대로 따랐으면 다윗이 죽었을 것입니다

근데 그 전략을 무력화 시킨 사람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후세라는 인물 입니다 그는 다윗을 지지하는 사람인데 다윗이 피나는 길에 후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이가 많았으므로 다윗의 피난 행렬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다윗은 후세를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당신은 압살롬 밑에 있으면서 이곳의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전략을 쳤을 때 그가 궁에 있으면서 그것을 다른 전략으로서 막아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도리요 아이도 벨은 압살롬이 자신의

계획을 믿어주지 않고 그로 인해 다윗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길을 날리게 되자 압살롬의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직감하고 그 길로 고향에 들어가 목매어 죽습니다 다윗이 피난 행렬 가운데서 살 수 있었던 곳은 그때 안 모은 사람 소비 로데발 사람 마길 길레야 사람 바르실래 등에게 도움을 받으며 그 얼음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왕궁에 들어간 후세와 광야에 있는 다윗이 연결해준 사람은 제사장이었던 사독과 아비아달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처음에 다윗이

도망갔을 때 궤를 메고 언약궤를 메고 따라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상징인 언약궤가 다윗을 따라간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으로 중요해요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진정한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함께 하고 있는 다윗이 진정왕이라는 그런 징표입니다 옥새 같은 겁니다 어쩌면 하지만 다 있으면 언약궤를 아까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대도 제사장으로서 그들이 자리로 돌려보냅니다 아들 아이마아스와 아비아들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이 왕궁 사이를 전달해준 통로 역할을 해주면서

다윗이 위험한 상황을 극복해내고 결국에는 다시 궁으로 왕으로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즉 다윗의이 후반부의 인생은 결코 다윗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배신 어쩌면 그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감 속에서 다윗을 지켜주고 다윗과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교회 안에 거짓말이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런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한국의 많은 교회 안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거짓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사람보고 오는게 아니라 하나님 보고 오는 거야 언뜻 보기에는 너무 멋지고 맞는 이야기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야기는 자칫 스스로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 거기서 당연시 여기는 우리의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교회 왔을 때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산에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품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람보고 오는 곳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지에 우리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부분적으로나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두 번째 거짓말도 있습니다 성도 안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속내가 드러나니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좋다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그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가족으로 지내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적당한 거리감인가요 가족은

민낯을 수 없이 보고 꾸며지지 않은 삶의 모습을 마주하고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입니다 여러분 그걸 아십니까 하나님께 성경은 하나님께 주도해서 만드신 공동체가 딱 두 개 있는데 하나가 가정이고 하나가 교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의도적으로 주신 공동체 두 개입니다 근데 이것이 연결되죠 왜냐면 교회를 이끌어 오래 뭐라 그럴까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좌우에는 문양에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했다면 하고 있다면 그것이 그 증거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에 살아갈 때보다 교회에 올 때 더 두껍고 더 자신의 완벽하게 숨기는 가면을 쓰고 진짜 자신이 아닌 꾸며진 모습으로 머물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 있는 동안 좋은 모습을 연기하느라 불편해하고 교회 밖에 나가서 원래의 본 모습을 찾고 편안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잘못 이해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굳이 내

모습을 다 보여 줘야 되나 굳이 가까워져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억지로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한 거리감 속에 살면 우리가 좋은 이미지를 서로에게 고수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형제 자매를 주신 이유는 바로 이들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좌우를 바라봐 주십시오 제가 뭘 말하는지 아세요 뭘 말하라고 하냐면 우리가 사실 다 못났습니다 우리가 다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모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중적 모습이 존재할 수 있고 아직 다 벗어버리지 못한 나의 회심 이전의 모습이 나를 붙잡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냐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한번 옆에는 괜찮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저는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괜찮기를 원합니다 교회이니까 그래도 괜찮아 여러분

다윗 우리가 봤잖아요 다윗 알고 보면 참 못난 사람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냄새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또 어떤 부분은 참 닮고 싶은 모습이 여전히 있는 특이한 사람입니다 근데 저는 그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혼자 살아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진 좋은 모습으로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나에게는 부족함은 또 누군가가 갖고 있는 좋은 모습으로 도움 받고 체험 받으며 진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이 세상에서

조금은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은 자꾸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면 안 될 것처럼 나를 옥죄 올 때가 있는데 자꾸 뒤쳐지면 안 될 것처럼 나를 몰아세울 때가 있는데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같은 아버지 안에 있기에 사랑으로 서로를 붙잡아주는 그러한 사람들이 내게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무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든든함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누리고 고백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예배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는 다 설득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적어도 오늘도 이 주일에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의 자녀들 안에는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르시길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며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인하여 같은 꿈을 꾸고 교회에 소중함을 고백하고 소망한 가운데에 함께 물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차량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차량인데 우리 차량 같이 하면서 우리가 함께하는 여정이 아름답다라고 고백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혼자라면 외롭고 힘들었을 때 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 희귀를 가네 지켜보며 세워지네 내가 함께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혼자라면 거치고 워낙에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그의 영상을 봐가는 이들과 함께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세계 구하지 않으리 더불어 함께 살며 그들의 말에 드러내리

이제 더 이상 남아리 세계 구하지 않도록 드러내리 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해 이길 가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얘기하고 함께 촬영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축복의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 삶을 주라 이마트까지 함께 고백하며 나가길 원합니다 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운전하면 혼자라면 외롭고 힘들었으니 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여보며 새것이 니와 함께 더불 어 더불어 함께해 이 길을가 해 혼자라면 거칠고 나게 살 아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

이들과 함께 더불어 함께 이 길을 가네이 길을 가네 더불어 함께 이 길을가 네 그의 나라 올 때까지 더불어 함께 눈길을 가네 2000년 동안 계속이어서 함께해 이게 안에 이 길을 가네 2000년 동안 계속 이어져온 길 너와 함께해이 길을 가네 그 나올 때까지 이어지기 날아올 때까지 그의 나라 볼 때까지 이어지기 날아오는 그의 나라에 다시 이어지니 인도하심의 영광의 약속을 올려주면 좋겠습니다 아멘 우리가 나아가는 이 시 가운데 우리가 서로의 서로의 손을 붙잡고 함께

승리하며 그의 나라에 있는 그날까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 공동체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