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사무엘하 톺아보기

2022-10-30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에서 나온다라는 제목으로 같이 나눴던 메시지를 제가 오늘 다시 오늘의 버전으로 전해보겠습니다 사무엘하는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 다윗이 듣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사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공백이 생깁니다이 상황에서 다윗은 아 이제 이거 절호의 기회다라고 여기기보다 하나님이 사울 왕이 죽었는데 이때 내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어쩌면 이 질문이 질문한 태도가 사무엘하에서 가장 중요한 우리의 답임을 여러분 이제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 하나님은 다윗에게 유다 지파의 헤브론으로 가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우선 먼저 그곳에서 유다 지파 공동체의 리더가 됩니다 그때 나머지 모든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통치자로 삼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유다 지파는 다윗을 왕으로 나머지 11시 반은 이스보셋의 왕으로 섬기는 부녀의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 사이에도 몇 번 다윗은 자기 뜻대로 행할 법한 그런 시간들을 마주합니다 대부분 우리 눈을 보기에는 왕이

될 기회입니다 통일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힘씁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방식은 기회의주의자 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는 신뢰함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질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가까이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헛점도 많고 인간 냄새도납니다 다윗의 삶 또한 완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평생을 비정하는 하나님의 손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에서 길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약속한 그것들이 이루어 가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으로 겉면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원합니다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후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모든 나라의 수도로 삼습니다 이제 그는 그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두 번의 시도가 반복되어 기록되는데 우리가 그 두 번의 시도를 비교해서 틀린 그림을 통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사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첫 번째 언약궤를 옮기는 시도와 두 번째 언약궤를 시도를 시도 안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이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고 안 묻고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가져오는 곳은 좋은 의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 좋은 일이면 좋은 목적이면 괜찮다라고 쉽게 여기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내세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때에도 물어야 됩니다 두 번째 수레로 옮긴 첫 번째 시도와 매어서 옮긴 두 번째 시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블레셋지 이방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편한 것이 다 좋은 곳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죠 여러분 온라인 예배가 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최선의 예배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예배일 수 있고 그렇다면 받으실 예배이지만 만약에 내 어떠함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 되면 온라인 예배가 여러분의 신앙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다윗이 왕으로서이 일을 진행한

것과 다윗이 예배자로서이 일에 참여한 것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첫 번째 수도의 실패합니다 그 실패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습니다 내가 왕으로서 나의 자리에 하나님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비자로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함을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다윗은 압살롬 아들이 반역할 때 반역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성 밖으로 다윗과 함께 그 언약궤를 가져가고자 할 때 그것을

거절합니다 자신이 왕좌에서 물러나 도망한다고 언약궤도 다윗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있는 곳에 즉 왕궁의 다윗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라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 언약의 왕이 아니라 그 모든 행렬 가운데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예비하는 한 명의 예배자로 그 행진 가운데 춤을 추며 예배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 나아갑니다 다윗이 그렇게 춤을 추는 모습에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이 불쾌해야 합니다 왕 같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죠 왜 그녀가 그렇게 얘기했을까요 그녀는 단 한 번도 지금 다윗이 누리는 그 진실한 예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쩌면 다윗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춤을 출 때 다 비웃겠지만 그러나 그들도 주 알게 되면 함께 기뻐 춤을 추게 되리라 그리고 그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싶습니다 네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다윗도 언약 바로 보기라는 제목입니다 다윗이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드릴 수 없을까 고민합니다 그는 자신이

좋은 궁궐에 살고 있으나 하나님의 궤가 천막에 머무는 것을 죄송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워야겠다라는 마음을 먹는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다윗의 행동을 막으십니다 나는 성정호초 반대세 하나님이 반대하신 곳은 다윗에게 너무나 중요한 곳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건물 성전이 하나님의 진정한 집일 수 없다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물질세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큰 건물 좋은 건물에 있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큰 예배당에

계신 하나님이 크신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은 하나님께 소중히 받으시지만 그것을 자칫 건물에 어떠함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오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다윗에게 바로잡아 주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적 차이를 다윗으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예를 들었죠 개미가 아무리 여러분이 좋아도 여러분의 집을 지어줄 수 없습니다 개미가 열심히 지어준 집이 여러분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집을 지어 주는 곳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사실은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그 순수한 마음은 받으시지만 이렇게 물으시죠 네가 나를 위해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체를 바꾸십니다 다윗이 내가 너를 위하여 나라와 왕조와 집을 짓겠다 네가 짓는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지어 주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게 성전 건축을 하는 일도 맡기실 것인데 그가 그 일에 동역함을 통해 그의 왕위 또한 튼튼하게 해주겠다는 복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하나님 위해서 무언가 해 드리는 목적이 아니라 그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그 초청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깨달은 가운데 내가 기꺼이 내가 즐거이

내가 좋아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다윗에게 하나님이 하신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그의 나라 영원한 그의 집이 세워지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완전하게 성취됩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이 언약은 영혼이 깨지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루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을 통해 지어진 그 나라 그분을 통해 지어진 그 하나님의 집에 우리가 회심하여서 참여하시는 은혜가 열려 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넘어질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해서 변화 없는 사랑으로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가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라는 제목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있을 때나 혹은 사울에게서 도망하는 광야의 삶을 살 때가 그의 위기가 사실 아니었습니다 그게 위기가 아니었던 것은 그때는 그 고난이 다이소라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칭찬받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고 스스로 잘하고 있는 여길 때 이것이 그의 신앙에는 독이 됩니다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평안은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안할 때 사실 더욱 경각심을 갖고 우리는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윗이 죄로 넘어진 일을 우리가 밧세바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바스라 석권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이미 다윗의 마음 안에 그의 내면 질서가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내면에서부터 이미

점진적으로 죄를 향해 다윗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어떤 죄의 행동을 하기 이전에 사실 내 마음에 먼저 하나님의 주인 됨 하나님 명을 질서가 무너지는 조짐이 있는지 우리는 잘 점검해야 합니다 다윗이 암모난과 대립 관계에 서게 되고 전쟁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다윗의 마음이 무너져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갈등 상황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가 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쟁이 벌어졌는데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버리고 다른 곳에 있지는 않으신지요 다윗의 영적 민감성이 떨어지고 둔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전쟁 때에 그는 왕궁에 남아 있다가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욕정을 품고

성적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일의 숨기기 위해 자신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니다 결국 다윗이 죄를 은폐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전쟁터에서 충신 우리아를 죽게 만듭니다 사실상 다윗이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이런 일이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습니다 사실 그것이 어쩌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의 변호하거나 감추어 줄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이중성이라고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순간에 짓지 않습니다 이미 다윗의 내면에서부터 하나님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기가 주인된 삶을 살아가고 그때부터 다윗의 죄는 예고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나아가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나아갈 수 있고 반대로 죄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어쩌면 갈림길에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며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누릴 수 있고 죄를 따라가면

언젠가는 죄의 중독되어 죄책감조차 잃어버린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격이 될 것인가 죄가 곧 나의 인격이 될 것인가 우리는 잘 분별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도 넘어졌다면 우리 누구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누구나 다윗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안에 내 힘이 아니라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인 됨을 갈망하고 간구할 때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 정직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마음을 담아서 우리 주님을 구하며 찬양합시다 다섯 번째 메시지입니다 다윗이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죄에 빠져버린 다윗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버리지 않은 증거는 다윗의 죄를 직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죄의 처단이 목적이라면 그냥 심판하시면 되죠 그럼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죄를 직면하고 그 직면들 죄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죄로 묵살할 것인지 우리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존재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는 곳이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맡기셨다고 표현하시죠 사탄이 그간의 주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곳네 거야 너에게 있는 거 다네

건데 무슨 상관이야 너의 삶도네 거야 사탄이 그것만 속일 수 있으면 사탄이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회복해야 됩니다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제 삶이 주님의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의 지적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회계라는 은혜의 길을 그는 붙드는 것 입니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인정과 반성과 돌이킴입니다 같은 일에 반복하지 않겠다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적어도 거기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서 보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처분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예로 들어서 예로 들었던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의 비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약 제가 사장인데 아르바스팅이 현금 보관함에서 돈을 훔쳤습니다 근데 제가 이 친구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이 일을 갖고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애정이 없으면 그냥 자를 것이죠 확인하고 그 반응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사실 네가 돈을 가져가는 것을 알고 있어 그때 만약에 이 아르바이트생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용서하여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알겠어 네가 진심으로 반성하니까 내가 용서할게 대신 내가 네가 가져간 금액은 너가 받아야 될 월급에서 차감하고 줄 거야 왜냐면 그래야지 너도 일이 돼서 떳떳해질 수 있으니까 제가 하는 행동은이 친구와이 죄의 책임을 스스로지게함으로써 오히려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제가 이 친구에게 향한 그 용서와 함께 하게 된 약속은 유효할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죄를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덮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 어쩌면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오히려 완전한 죄사함입니다 저는 아르베스팅에게 그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였다면 하나님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 죄의 책임을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왜냐면 죄의 책임이 죽음이니까 그 책임조차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감당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봐준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과거의 죄는 하나님 떠나 살던 그 집의 모든 죄는 다시 나를 옭아맬 수 없는 나와함이 청산이 끝난 내가 다시는 그 죄로부터 정죄함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을 믿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사탄이 자꾸 과거에 죄로부터 나를 놓아주지 않을 때 그 정죄함 가운데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의 가문의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 우리는 다윗 또한 하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닮아서 정의와 사랑으로

행했어야함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동일하게이 말씀은 이제 우리에게 질문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닮아서 살아갈 것인가 정의가 없는 사랑 즉 불의한 사랑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 없는 정의는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셨던 사랑을 배우고 주님의 나라가 추구하는 정의를 배워서 사랑과 정의로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지혜롭게 책임져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우리 그 마음을 주님께 구함에 함께 찬양합시다

오늘 새롭게 난을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다윗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아들들이 다윗 시행했던 죄를 반복합니다 첫째 아들 암로는 성적인 범죄를 압살롬은 살인죄를 저지릅니다 다윗은 그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아버지이자 왕의 자리에 있었으나 그는 어떤 것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그들은 잘 따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암노네 동생 압살롬이 살해하고 또 그러한 압살롬을 다윗이 어설픈 용서로 복귀시키게 되자 이제 압살롬이 다윗의

대하여 반역을 일으킵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역을 해서 아버지 다윗이 왕궁에서 도망하여서 다시 광야로 도망 안에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자면 타일 삶이 광야에서 훈련받았고 왕궁에서 쓰임 받다가 다시 광야로 쫓겨나가는 여정을 겪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이 두 번째 광야 여정은 처음보다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왕의 자리 올랐다가 다시 광야로 나아가게 됐을 때 다윗은 모든 곳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다윗의 광야에서의 모습을

보면 어떤 부분은 여전히 멋있고 어떤 부분은 여전히 부족한 모습도 저는 이것이 우리의 인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어느 누구도 성경 어떤 인물도 위대한 신화 속에 전설 같은 인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우리가 흠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나고 상한 그 삶을 하나님이 붙들어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저와 여러분 해도 여전히 연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그것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듬어 가지만 점점 그래서 주님을 닮아가도록 하시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부분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그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사람에게 여전히 끝까지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어려움의 시간들을 버티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들이 사무엘하 후반부에 계속 소개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제가 주목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멋졌던 시절이나 다윗이 초라했던 시절이나 다윗에게 인간적 흠이 느껴지는 시간이나 그래도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의 곁에 늘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게 되었을 때 일입니다 이렇게 보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마음이 압살롬에게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양 사람을 공격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할 때 다윗의 따르는 신하들이 다윗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은 임금님께서 결정한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 종들은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다윗의 그 피난 행렬에 블레셋 출신의 장군인 이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민자 출신으로 가족을 다 데리고 다윗에게 의탁한 인물이었죠 다윗은 그에게 새로운 왕 즉 압살롬의 모시고 지내라 권합니다 당신까지 따라올 필요 없다 우리가 남아도 된다 그러나 이때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 이다 물론 다윗의 곁에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히도벨과 같은 인물이죠 그는 다윗의

나라에 뛰어난 전략가였는데 그가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이는 일에 실제로 아이두빌은 다윗을 죽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전략을 압살롬에게 제시하기도 합니다 아이드웰의 전략들이었으면 다윗은 죽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 전략을 무력화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은 후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세는 다윗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는데 피난 길에 다윗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나이가 많았으므로 피난 길에 따라가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세를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압살롬의

밑에 있으면서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수식을 전해 주십시오 아이도벨의 앞에 후세가 다른 전략을 내면서 막아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살 수 있었습니다 도리어 아이도벨은 압살롬의 자신의 계획을 믿어주지 않고 그로 인해 다윗을 생포할 절호의 길을 날려버리게 되자 압살롬을 따르는 나라는 희망이 없음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매어 죽습니다 그 외에도 다윗의 피난 행렬에는 안 모은 사람 소비 로데바의 사람 마귀 길레야 사람 바르실래 등에게 여러

도움 받으며 다윗이 그 어려움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특별히 왕궁에 있었던 후세와 다윗 사이를 연결해 준 사람은 그 나라의 제사장이었던 사독과 아비아달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처음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왕궁을 떠날 때 언약궤를 매고 따라왔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상징이 언약궤가 다윗을 따라간다는 것이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전통 왕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하고 있는 왕이 다윗이란 징표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약궤를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들도 궁으로 돌려보냅니다 사독의 아들 아이마스와 아비아다니 다윗과 그 궁에 있는 제사장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해주는 통로로써 활약해 주었고 그로베마 다윗은 여러 위험한 상황을 이겨내고 결국 압살롬에게 승리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결코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배신 어쩌면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그 절망감 속에서 다윗을 지켜주고 다윗과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교회 안에 거짓말이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널리 퍼져 있는 거짓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사람보고 오는게 아니라 하나님 보고 오는 거야 얼핏 보기에 멋지고 맞는 말 같지만 자칫 그 이야기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 우리의 핑계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교회에서 하나님을 보기 이전에 사람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오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 보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마음의 품은 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람보고 오는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 뒤에 우리가 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나마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거짓말 두 번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서로의 속내가 드러나니까 적당한 거리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교회에 있는 두 번째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말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가족으로 지내지는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매일 아침 민낯을 수없이 보고 꾸며지지 않는 삶의 모습에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입니다 여러분 그곳에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도에서 만드신 공동체가 속에다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 가정이고 두 번째가 교회입니다 그 두 가지가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만든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죠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의 자매라고 부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에 있다가 교회 올 때 더 두껍고 더 자신의 완벽하게 숨기는 신앙의 가면을 쓰고 종교에 가면을 쓰고 거룩함에 가면을 쓰고 오히려 이곳에서 더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머물다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 있는 동안 좋은 모습을 연기하느라 불편해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누구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굳이 내 모습을 다 보여줘야 되나 굳이 가까워져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억지로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한 거리감 속에 산다는 곳은 우리의 좋은 이미지를 고수할 순 있으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형제자매를 주신 이유는 바로 이들이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되었을 때 세상을 살면서 경로에 수많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다 사실 못났습니다 다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모두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이 존재할 수도 있고 아직 다 벗어버리지 못한 나의 회심 이전의 모습이 나를 붙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교회라서 괜찮기를 원합니다 다윗 알고 보면 참 못난 사람입니다 가까이 보면 냄새도 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또 어떤 부분은 참 닮고 싶은만큼 멋진 모습도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 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혼자 살아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지 좋은 모습으로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나에게는 부족함은 누군가의 좋은 모습으로 도움을 받고 체험을 받고 진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은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은 자꾸 나의 부족함 못남이 노출되면 안 될 것처럼 나를 옥죄에 올 때가 있는데 자꾸 내가 뒤쳐지면 안 될 것처럼 나를 몰아세울 때가 있는데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같은 아버지 안에 있기에 사랑으로 서로를 붙잡아주는 그러한 사람들이

내게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무기가 아닐까요 저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든든함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누리고 고백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예배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 추구하자는 사람들까지 다 설득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도 이 주일에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의 자녀들 안에는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르시기에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바라보며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인하여 같은 꿈을 꾸고 교회에 소중함을 고백하고 소망함으로 함께 물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