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흔히 말하는 mdb 하는 그 신학대학원을 어 다니면서 이제 공부 특히 성경 공부 성서학 공부에 관심을 갖고 아 그다음에이 자문을 구했던 기억이납니다 성경을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학교가 어디가 좋습니까라고 했을 때 많이 들었던 곳이 에스라 성경 대학원이 그곳에 가면은 성경을 잘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또 제가 그때 어 관심을 갔던 분야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인데 에스라 가면 양 교수님이라 분이 있고 그분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어쩌면
가장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분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어 저는 그곳에 가서 우리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어 어쨌 여기기도 써 있는 우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들에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셨던 그런 제가 존경하는 어 승입니다 우리 전에도 한번 코로나 때 한번 모셨었는데 늘 실 맞아서 다시 또 우리 여러분들에게 어 함께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 우리 강원도에 계신 교수님을네 이렇게 모셨습니다 어 우리 오늘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실 때
우리 먼저 본문을 한번 같이 어 한번 읽고 그다음에 어 청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오늘 본문 한번 한 장 넘겨 주시겠습니까 5장 13절부터 16절이네 우리 같이 한번 한 목소리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이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게 버려져 사람에게 발 뿐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 못할 것이 람이 등을 켜서 말 아에지 아니하고 경 위에 나니 이러 집 모든 사람에게 치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리 아멘 오늘 우리 설개로 오신 우리 양 교수님 박수로 맞이하도록 이렇게 하겠습니다 네 아 여러분 이렇게 그 제 으로는 4년 만에이 사귐의 교회를 방문을 했습니다 그때도 아마 3주년 기념 예배 이곳으로 이사하셔서 이렇게 3주년 맞이하셔서 생일 잔치로 어 이렇게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는 코로나 기간이라서 여기 앞에 몇 분 안 되는 분들이 앉아 계셨고
사실은 허공을 향하여 설교를 하는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왜 냐면 다 이제에 그 유튜브나 그 이렇게 SNS 통해서 설교를 들으신다고 그랬어요데 오늘은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을 얼굴을 보면서 어 말씀의 교재를 할 수 있다는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나 아마 그때 저를 못 보셨던 분들이에 대부분이 텐데 오늘 이렇게 함께 말씀의 교제를 나누게 돼서 참 행복합니다 음 어 오늘 저희들이 그 사귐의교회 일곱 살 되는 아 일곱 번째 도를 맞이해서 어떤 말씀으로 함께
나눌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어 당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너무나 선명하게 주신 그런 말씀이 있기에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사귐의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 어떤 교회로 세워져 가야 할지를 아 깊이 또 한번 같이 고민해 보는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기회로 기해서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 본문을 우리 함께 읽었습니다 세상의 소음 그리고 세상의 빛이라는 그런 원리의
말씀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있으므로 교회가 되고 그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도 한 모토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잡지 중에 이라는 잡지가 있죠 예 그게 그 1980년대 그 초반부에 그 창간을 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요 아 그 잡지를 참관할 때에 그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아 그 제가 영국에서 요할 시대 그 교회 목사님이 이제 그 잡지를 참관하는 일을
맡으셨는데 그래서 빛과 소금이라 하자 그래서 제가 그러지 말고 소금과 빛이라고 합시다 이렇게 했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 보면 소금과 빛이 아아 근데 아이 잡지에 쓰다 보면 빛과 소금 하면 딱 떨어지는데 소금 과빛 이건 좀 아니다 해가지고 빛과 소금으로 그때 결정했던 기억이납니다 아 우린 누구에게나 아주 익숙한 보터 빛과 소금 혹은 소금과 빛 예수님은 어 우리가 교회로서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세상의 소음과 빛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 이렇게 유명한
아 모터가 되어 있는 세상의 소음과 빛이라는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 할까를 잘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이 나오는 그 말씀 말이 문맥상 어떤 위치에 있고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잘 살펴보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산상 설교에 나오는데요 어 그 산상 설교의 구조를 한번 보면 어 서론과 본론 결론으로 돼 있습니다 아 그런데 서론 부분을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죠 어 제자의 특징인 여덟 가지의 복 우리가 잘 아는 팔복 그리고 제자의 구별됨 주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구별됨 주제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죠 어 주님으로 인한 고난 팔복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게 된다 세상과 제자의 관계가 교회와의 관계가 그렇게에 그 무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죠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어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선한 영향을 미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역할은 여덟 가지의 복 아 그 특징으로 살아가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드러난다 이런 그 원리를 서론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소음과 빛이라는이 교훈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팔보 의 원리로 따라 살아가면서 소과 빛이 되기 때문에 팔복이 뭔가 좀 잘 상고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죠 어 팔복을 살펴보면 그 구조에서 그 팔복의 전체 주제를 좀 살펴보게 되는데요 첫째 복과 여덟 번째 복을 보면 영으로 관하는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로 시작해서 하늘나라로 끝나는 어 이런 감싸기 구조 인클루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이 인클루지오 구조의 기능은 맨 앞과 맨 끝에 그 단락 전체 주제를 보여 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활복 여덟 개 복의 총 주제가 무엇이냐를 얘기하면 그 주제는 하나님 나라다 하늘 나라다라고 보여주는 그한 기능을 하지요 자 이처럼 팔복을 이해하는데 하나님 나라가 중요하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면 팔복의 의미가 잘 깨달아질 수 있고 그러지 않으면 팔복의 의미 자체가
아 잘 드러나지 않겠죠 저도 실은 그 어렸을 때 교회에서 그 성경 암송대회를 그때는 참 많이 했습니다 주 학교에서 아 근데 성경 암송할 때 단골 손님이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팔복을 외워 가지고 상도 참 많이 탔어요 그때 상이 노트하고 책하고 연필하고 이게 상어요 그래서 팔복 외워서 참 저희 집 가게 큰 보템을 예 왜냐면 그때는 공책이나 연필이 꽤 쌌거든요 그렇게 상을 많이 탔는데 그때까지 저는 팔복을 외워서 상을 팔복의 주제가 뭔지를 몰랐어요 그냥 외우기만 했어요
사실 우리가 열심히 외워도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는 여러 성경 구절들이 있는데 아마 주기도문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주기도문의 주제가 뭐냐 하면 아 그 주제가 있나요 이럴지 모르는데 주기도문의 주제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중요한 주제예요 근데 팔복의 주제 도 보니까 구조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그 주제가 드러나죠 하늘나라 하늘나라 시작과 끝에 그 핵심 주제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팔복을 잘 이해해야 너희가 세상에 소금이요
빛이다 교훈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팔복이 뭐냐 잘 이해해야 되는데 팔복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다 했으니이 팔복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팔복을 잘 이해할 수도 있고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냐를 잘 이해하는게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복만이 아니라 산상 설교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총 주제도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하겠지 그래서 제가 아주 간단하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강목사님 통해서 이미 계속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으셨겠지만 아주 간단하게 한번 정리를 해 보면요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우리의 그 개념 우리는 성경에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 나라라고 돼 있죠 이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성경 본문에는 원문에는 헤 바실레이아 투 세로 돼 있습니다 여기 보면 써져 있죠 예 이게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아 그 개념입니다 사실이 본문의 해 바실레이아 투우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여러 가지 거리들이 있어요 시간적인 거리는 2천
년이나 떨어져 있고요 공간적인 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사용되던 개념입니다 그런데 가장 실감나는 거리감은 무엇인가면 언어의 거리감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데 본문은 헤 바실레이아 투 세우라고 돼 있습니다 이게 뭐냐 를 우리가 잘 이해해야만 아 하나님 나라가 그런 거구나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에 두 요소 두 개념이 있데 하나님과 나라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어떤 분이신가 많이 배워 왔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느 정도 우리가 성경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문제는 나라예요 나라 우리가 나라라는 개념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의 요소인 국 국민 주권 영토 이렇게 나라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국민 주권 영토 그러면 이 나라의 중심이 뭐죠 나라의 주인이 누군가요 우리가 배워 한 바라는 누가 주인이에요 국민이 주인입니다 나라는 국민이 원하는 대로 세워져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투표를 하는 것이죠 국민의 뜻이 뭐냐 찾기 위해서 국민 중심적인 나라 개념이 우리에게 가득차 있습니다 저변에
항상 나라는 국민 중심이어야 돼요 그런데 과연 해 바실레이아 투 새우의 바실레이아 개념은 무엇인가 나라가 바실레이아 번역한 것인데요이 바실레이아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실레이아 기본 개념인 바리스는 개념을 이해하는게 필요한데이 바루스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왕 자 왕의에 그 개념이 바실리우스면 바슬리 이아는 뭐냐 그 왕과 연관된 제반 개념들이 바슬레아요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왕 되심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다 하면 이미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에요
너의 왕이 누구냐라는 고백 속에 저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습니다가 포함되 있어요 그니까 내 왕이 누구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이 하나님 나라의 나라 바슬레 이아는 왕 중심 개념이에요 왕 중심 국민 중심이 아니에요 왕 중심 개념이고 왕이 나라의 모든 의미의 기초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 되심 왕권 그리고 그 왕이 통치하심 그래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신다 그분의 뜻대로 그래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매우 실질적인
개념이에요 나와 무관해 보이는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나의 하루하루의 삶 속에 모든 삶의 현장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런 실체다 그래서 늘 우리는 질문해야 됩니다 내 왕이 누구시지 그러면 누구 뜻대로 내가 살아야 되지 내 뜻대로 살면 나의 나라가 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우리가 정리하는게 필요하고요 이것을 조금 더 이제에 그 개념 정리를 다시 해 보면 오늘 본문에 보면 천국이라고 나옵니다
천국 하늘천 나라국 이죠 그래서 어 우리말로 풀어서 얘기하면 하늘 나라인데요 원에는 이게 하늘들의 나라 하늘이 수예요 그래서 하늘들의 나라로 돼 있고요 이건 유대인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방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그런한 표현은 하나님의 나라 왜냐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하늘이라고 부르는 그런 왕고 어법이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다 근데 나라를 좀더 풀어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왕 되심 혹은 하나님의 통치 이렇게 우리가
풀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팔복은 뭐냐 팔복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여덟 가지의 행복이 복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팔복에 어 하는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행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이라 하셨고 빛이라 하셨을까 과연 소금의 어떤 특징 빛의 어떤 특 을 염두해두시고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소금과 빛의 독특성 혹은 구별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제자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원리 그것을 보여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먼저 소금의 특징을 생각해 볼까요 소금은 무슨 맛을 내죠
짠맛을 내죠 소금만 모르는 분은 아무도 없죠 짠맛을냅니다 근데 소금 이외에 짠맛을 낼 수 있는 물질이 혹시 있는가요 예를 들면 단맛은 다양한 물질로냅니다 으로 뭘로 단맛을 내죠 설탕 또 예 예 꿀 과일이야 과일 그리고 뭐 엿도 있고요 뭐 여러 가지 당들이 있습니다 다 화학 분자식이 달라요 그런데도 다 단맛을냅니다 단맛은 여러가지 물질로 낼 수 있어요 신맛은 어떤가요 신맛은 기본적으로 뭘로 내죠 식초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이 신맛을 내죠 레몬 라임 또 신김치 신맛납니다
자 신맛 뭐 하루 종일 얘기해도 만 나는 물질은 굉장히 많 많아요 음식물들은 근데 짠맛은 어때요 짠맛은 소금 말고 또 짠만 낼 수 있는 물질이 있나요 하루 종일 시간을 들이면 뭔가 나올까요 간장 그럼 간장만 나와요 쌈장 된장 뭐 다 나와야죠 간장이 왜 작죠 예 간장에 소금이 들어가서 짜온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소금 이외의 짠맛을 낼 수 있는 물질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주 특이한 맛입니다 소금의 맛은 소금만 낼 수 있는 맛이에요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세상 가운데 어떤
다른 존재들도 낼 수 없는 제자들만 a 독특한 맛을내는 존재들이다 이게 바로 소음의 맛을내는 제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 빛은 어떤가요 빛은 무엇과 구별이 되죠 어두움과 구별이 됩니다 어두움과 빛은 너무 너무나 선명하게 구별이 돼요 그래서 아 깜깜한 밤에는 깜깜한 밤에는 작은 불빛이라도 그게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어이 시내에서는 모르는데 깜깜한 그 밤에 밖에 나가서 어 별들도 별로 없고 그런 깜깜한 밤에 반딧불 보신 분 계셔요 반딧 아 그 반딧불이 얼마나
반짝반짝반짝 빛나는지 그 선명한 빛을 여러분들 한번 느껴 보시기 바라 양주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반딧불이가 보이거든요 예 근데 그 반딧불도 그러한데 아 작은 그 등불 하나만 있어도 온 집안이 환해집니다 요즘엔 지금 여기 등이 몇 개가 있나요 상상할 수 없는 세 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집안에 딱 등불 하나만 켤 수 있었어요 일반 선은 특선 아고 일반 선이 있는데 죄송합니다 옛날에 그랬어요 60년대 70년 60년대 아마 그랬을 거예요 일반 선은 30w
하나만 써야 돼요 특선은 100W 쓸 수 있어요 30w 100W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근데 우리 집은 그래도 전기를 쓰라고 일반 선을 썼는데 30w 근데 그 전기가 들어오면 온 방안이 그냥 환해지는 거예 근데 그전 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호롱불을 썼습니다 호롱 호롱불이 호롱불 한번 보신 분 계시는가요 호롱불 쓰고 바느질 해 보신 분 아 저기 계셔요 호롱불 켜고 바느질해 보신 분 저희 어머님은 항상 호롱불 켜고 바느질을 하셨거든요 근데 바느질할 때는 심지를
조금 더 올립니다 좀 더 환하게 그리고 아 이제 바느질 끝나면 힘들을 내려요 작게 왜 그랬을까요기로 맡기려고 지금 제가 휘발류를 갖다 막 차에다가들이 붙고 다니잖아요 40m 들어가요 50m 들어가요 상상이 안 됩니다 옛날에는 이런 병에다가이 석유 하나 가져오면 그 한 달 써야 돼요 불 계속 키면서 불 키데만 써 그런 시절에는 그한 밤에 호 하나 켜도 온 방안이 그 불로 가득 찹니다 불의 영향력이 그죠 그리고 불이 어두움과 얼마나 구별되면서도 작은 불빛 하나가 얼마나
그 불빛의 모습을 환하게 들어나게 하는가 구별됨 있니다 자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특징이 바로 소금이나 빛과 마찬가지로 세상과 구별된다 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 제자의 구별된 모습은 오늘 반문 본문 바로 앞에 나타나는 팔복의 가르침에서 잘 드러납니다 팔복에서 언급되는 제자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제자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원리와 기준을 보여 주는데요 그 행복의 기준이 세상의 기준과 제자의 기준 사이에 너무나 드러나는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구별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주 둘 사이에 반대적인 그러한 모습이 있다 그래서 제자는 세상에 살 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 왜 행복의 기준이 다르니까 삶의 목표가 다르니까 행복의 목표가 달라지면 사람의 삶이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 어 까지의 복이 있는데 그 행복의 내용이 있는데 그걸 우리가 다 살펴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그래서 두 개만 좀 살펴볼까 합니다 두 가지만 첫째로 첫 번째 복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으로 관하는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러분들 세상 사람들은 가난한 거 좋아하나요 부자 좋아 아요 예 다 부자 좋아하죠 제가 여러분들은 물어보지 않겠어요 혹시라도 오답이 나오면 민망스러운 아 세상 사람들은 다 부자되는 것 좋아합니다 근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영으로 가난할 때 진짜 행복 영으로 가난한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 그러니까 여러분들 중에 아유 그건 영적인 거예요 근데 그렇게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에 보면 그냥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배고픈 자는 행복하다 우는 자는 행복하다 영어가 없어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도 가난한게 행복하다는 거예요 근데 그 가난함이 행복할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가 뭐냐 영으로 가난함이 있다는으로 가난 그러면 여기서 영어로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사용된 가난하다는 그러한 형용사는 가난한이라는 형용사는 헬라어로 프토코스 헬라어인이 프토코스 헬라어에서 성경에서 사용되는 가난한이라는 의미를 갖는 어대 의 단어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가난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학자들은 상대적인 가난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난이다 다시 말하면 가진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 그런 상태를 프토코스 한다 아 그래서 이렇게 경제적으로 가진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에 먹는 문제까지도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뭐라고 하죠 전문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냥 일반 세상에서 남에게 의지해서 그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거지 아 실제로 프토코스 단어가
거지와 같은 상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비유가 있는데요 여러분들 나사로 하시나요 그때 나사로를 어 무슨 무슨 나사로라 얘기하죠 거지 나사로라 번역이 돼 있어요 근데 그 거지가 프토코스 가난한 나사로 있어요 근데 그 프토코스 거지와 같은 상태고 실제로 나사로는 거지로 살아가요 부자 집 앞에서 얻어먹으면서 살아가죠 그때 사용되는 단어가 코스요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가난해요 뭔가 있는데도 남에게 의존하는게 아니라 가진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를 코스 가난 영으로 그렇다는 거 영으로 그렇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없어서 먹을 걸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진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영적인 생존을 위해서 누구에게 의존하는 걸 얘기할까요 하나님께 하나님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놓을 만한 무엇인가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저를 봐도 참 너무나 부끄럽고 부족하고 가진게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고 저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세요 당신께 의존하지 않으면 저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게 영으로 가난함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무엇처럼 나간다 좀 말이 좀 그렇죠 거지같이이 말이 좀 부정적인데 영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길이에요 하나님 앞에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나아간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거예요 그냥 부끄러운 모습으로 부족한 모습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가 하나님 저정 도와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압니까 내가 누구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누구를 부르러 왔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무슨 뜻일까요 아니 어찌 보면 어 이렇게 말하는게 낫지 않아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왔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 나 부르러 왔다 근데 죄인도 부르러 왔다 하면 예수님이 좀 공평해 보여요 그리고 자비로 보여요 근데 나는 의인은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면 너무 좀 불공평하지 않아요 열심히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안
부르고 막 자기 마음대로 사는 죄인들은 부르시고 근데 거기서의 의인은 그런 의인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세요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도 예수님이 의인이라 했다면 그 의인은 어떤 의인 이까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 의롭다 생각 는 람 자기도 죄인이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지적질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풍자적으로 말하는 거예요 사실은 의인이요 아닐까요 의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나는 그래도 좀 의롭게
살았습니다라고 내세울게 있는 모습으로 나가는 사람을 예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받아주시지 않는다는 왜요 영으로 가난하지 않기 때문 영으로가 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모습으로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하나님 앞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를 불쌍 하시고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합니다라고 나가는 그 모습이 영으로 가난한 모습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푸시게 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렇게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그 말을 우리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 나라란 먼저 자기를 부정하는 자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존재를 내세우는게 아니라 완전히 내려놓은 자에게 자기를 부인한 자에게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라올 것이니라 십자가를진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죽겠습니다 사실 죽기 전에는
누가 왕일 내 삶에 내가 왕이에요 누구 마음대로 사나요 내 마음대로 사는 누구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나요 누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요 내 목표를 근데 내가 죽었어요 그러면 그 나의 왕 자리에 누가 이제 오시겠다는 거예요 내가 죽고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내가 죽으면 그 자리에 누가 오시겠다고 하나님이 왕으로 오시겠다는 거예요 그게 조건이에요 나를 부인하고 나를 죽이는게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시는 조건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시면 그때부터 하는 나의 모든
생각은 누구의 생각을 따라가야 되나요 하나님의 생각 나의 모든 삶의 목표는 누구의 목표를 쫓아가야 되나요 하나님의 목표 나는 누구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사나요 하나님의 뜻 이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신 아까 하나님 나라의 가장 기본 개념이 하나님의 왕 되심이라고 했죠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시면 하나님 나라가 그때부터 당한 모습으로 나의 삶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게 영으로 가난함이 조건입니다 영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빈손들고 나갈 때 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이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우리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를 통해 우리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가시는 그 선물을 주신다 자 이게 이제 첫 번째 팔복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너무나 다르죠 우리는 가난한 가운데 내 주장이 관복 것이 아니라 내 주장이 죽어지고 하나님의 주장이 세워질 때 기뻐한다는 하 그것을 소유함으로 기뻐하는 자들이 된다 세상과 우리가 얼마나 구별되는가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 뜻이 관철되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케 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사실은 반대 그래서 리 우리는 세상에 소금이 되 세상이 빛이 되는 것이죠 두 번째의 그 어 살펴볼 본문은 예 여기에 보면 여덟 번째 복이 하늘나라 하늘나라 인클루저 돼 있었죠 그래서 팔복의 총 주제가 하늘 나라다 하나님 나라다 했는데 어 넷째와 여덟째 둘로 팔복을 둘로 나누면 몇 개로 나눠지죠 몇으로 나눠지죠 넷 넷으로 나눠지죠 그래서 마태는이 넷과 전반부의 넷과 후반부의
넷을 매우 균형잡히게에 나눴습니다 그래서 전반부 앞에네 복과 후반부네 개 복에 단어 수가 똑같아요 36 단어 36 단어 3위는 6이 36 둘로 나눠졌다 단어 36 단어 자 첫 번 첫 번째네 개의 결론에 의가 들어가고 여덟 번째 결론에 의가 들어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의 삶의 결과가 무엇이냐를 보여 주는 거예요 그건 뭐예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된다의 그래서네 번째 복은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 그들이 행복하다라고 의에 주이고 마태복음에서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 그것을 의라고 해요 근데 이 의는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누가 우리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심으로 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통치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속에 의가 나타나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노력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의라면 누구의 의일 나의의 자기 의요 이런 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서 의를 이루었는데요 그건 자기가 노력해서 이런 의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주님이라 고백함으로써 아니라 그분을 개척하고 우리는 율법대로 행한다는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이 있었어요 자기의데 그런 자들의 의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분명히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의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제자들의 의는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의 통치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실 때 그 통치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 그게 하나님의 의요 그래서 우리는 자기 의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의에 주이고 목마른 자들이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편 41편 1절 2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판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 나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배울까 여기에 갈급하는 모습 갈망하는 모습 찾는 모습 다양한들로 하나님을 향한 갈증 갈망 이것이 잘 표현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그 갈망의 대상이의이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음으로 그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는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이 의기 때문에 그래서 어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그러한 제자들의 모습 사실 세상도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헌법대로 법대로이 헌법을
지키고 법을 지키면 그게 의가 되는 것이죠 그걸 어기면 죄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의 기준은 어 어느 정도의 도덕률과 법률과 헌법 이게 의의 기준이에요 그런데 제자의 의의 기준은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제자의 의의 기준이 너무 달라요 한번 볼까요 어 마태복음 5장 22절 우리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21절 22절 있데요 우리 21절 22절 읽으실 수 있죠 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는마다 심을 받게 되고를 대하여 카라 하는 자는 공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예 옛 사람에게는 구약성경 시대의 사람들이에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살인하지 마라 살인하면 안 된다는 거 여러분들 다 인정하아요 세상 사람들도 인정합니다 살인하면 안돼요 근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의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뭐도 내지 말라고요 화도 내지 마라 도하지 마라 화를
내지 마라 라카라 말은 골빈 놈이라는 욕이에요 골빈 놈이라는 욕도 하지 마라 바보 멍청이라는 욕도 하면 곧바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예 살인 안 하는 것은 매우 어렵나요 그리 어렵지 않나요 그 그리 어렵지 않죠 여기 살인하는 사람 혹시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드물어요 살인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아주 예외적으로 하는게 사인이에요 그러니까 살인 안 하고 살아하는 건 충분히 가능해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게 세상의 기준이에요 근데 예수님은 제자란 그것과는 비교할
수없는 다른 기준을 주시는 거예요 뭐도 내지 마라 화도 내지 마라 여러분 사람이 노력 해서 화 안 낼 수 있나요 화 안 내고 사아하는 사람람 보신 분 혹시 봤을지 모르는데 그 사람 마음 속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했잖아요 마음속에 분이 막 차올라도 겉으로 깨끗하게 이렇게 가식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요 근데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도 안 된다 화내지 마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몇 년을 노력해야 가능할까요 죽을 때까지 노력하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화를 안 내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지 마라 화를 우리 아이들을 보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저 많은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를 부르면 그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게 너무 행복해요 근데 우리 그 동네에는 저런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 어디를 가도 할아버지라고 그래가지고 아주 제가 할아버지의 그 세배도 바고 놨는데 이제 내일 모레 새배 오면 세배도 줘야 됩니다 예수님이 저런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참 보니까 여기 젊으신 분들 자녀들이 많아가지고 우리 사기 교회가 얼마나 행복한 교회인가 참 느낄 수 있습니다 자가 가지고서는 화를 안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화를 안 낼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가 노력하지 말고 나를 죽이라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면 그 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비밀입니다 아무나 알 수 있는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제자들만 할 수 있는 예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있는
특권입니다 특권 근데 여러분들 그 한번 생각해 보시면 그 화를 안 내고 살아 가시나요 지난 한 주간 동안 화 안 낸 거 같다라고 잘은 기억이 안 나시겠지만 손을 드실 수 있는 분이 꽤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겸손해서 안 들지 한 달 동안 안 내신 분 올 한해는 가능하네요 이제 한 달 지났으니까 작년 1년 동안 화를 한 번도 안 내고 살아가신 분 혹시 계신가요 있어야 되는데 있어야 그게 정상이에요 제자는 화를 내고 살아는게 정상일까요 안 내고 살아가는게 정상일까요
제자의 왕은 누구예요 하나님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화를 내요 안 내요 안 내요 그러면 제자는 화를내는게 정상이 가요 안내는게 정상인가요 안내는게 정상이에요 화 안내는게 근데 가끔씩 화를 내나요 안 내놔요이 말은 굉장히 빨리 답이 나오네요 그런데도 화를 내요 이건 정상이에요 비 정상이에요 예 제자가 화를내는게 정상이에요 안내는게 정상이에요 안내는게 정상이에요 이게 이게 헷갈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화를내는 건 비정상이 비정상은 그대로 도도 될까요 바로 잡아야 될까요 바로
잡아야 돼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추구해 기도를 해야 됩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화를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 사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성취되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도 화를 과거보다는 훨씬 두드러지게 안 내지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리를 보고 야 저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화를 안 내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말을 들어야 되지만 그러다가도
어쩌다가 화를 내면 그건 비 정상이에요 그래서 아직의 요소이기 때문에 빨리 그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때가 기도하는 거 하나님 또 제가 실수했습니다 아직 도제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셔서 빨리 이 화가 가라앉게 주세요라고 기도를 딱 한 번 하면 해결되겠죠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왜냐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몇 번 기도하셨다 겟세만의 동산에서 똑같은
기도를 몇 번 세 번어요 세번 하나님 뜻대로 해 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세요 쉬운 기도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3이라는 숫자는 끝까지 한다는 거예요 응답받을 때까지요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끝까지 기도를 안 해서 그런 거예요 물론 야고보서의 보면 의심하며 기도하면 안 돼요 근데 믿음의 기도는 끝까지 하면 반드시 응답 돼요 그러니까 화를 냈을 때 그 화 내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의 응답 은
뭘까요 화를 안내는 거죠 그 화가 사라지는 거죠 언제까지 기도해야 기도의 응답이 나오는 거예요 화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기도 그래서 이건 전쟁과도 같습니다 화화의 전쟁이에요 근데 전쟁은 그 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기도록 보장돼 있어요 그 보장되 있는 그 승리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게 기도입니다 그강 지 기도하는거 그 기도의 내용은 다른게 아니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할까요 아 죄송합니다 예 6장 33절
있니다 예 자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돼요부터 구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왕되신 그 왕께서 저를 좀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거예요 제가 화를냅니다 왜 화를 내겠어요 제가 왕 자리에 앉아 가지고 화를내는 거죠 그런 저를 좀 죽여주세요 이게 먼저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왕으로 다스려주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보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는데 이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 나와 하나님 사이에 왕 자리를 가지고 내가 자꾸 전쟁을 붙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나를 죽이는게 우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저를 죽여 주세요라는 기도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다스려 주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러면 그의 의가 우리에게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뛸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에요 항상 함께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
뭐가 나타나도록 되 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도록 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구하라 의를 기도함으로써 그 의가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지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아 그 13절을 보면요 5장 13절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이루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 맛을 이으면이라는 표현 그 맛을이 소금이라는 이름은 있는데 맛이 없어요
그러 그거 소금이요 아니에요 아니라는 거예요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라 뭐가 중요한 거예요 맛이 중요한 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거는 우리가 제자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 주님을 부르는 대로 우리의 삶 속에 의가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나라를 주장하면 그 나라의 결과인 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있느냐 없느냐는 뭘로 입증이 될 수 있겠어요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의로 그죠 나라와의 나라는 동인이라는 의는
그 결과예요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뭐가 나타나도록 돼 있다고요 의가 나타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의 말씀 중에 5장 아 7장 21절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 믿음의 고백만 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 이게 의예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반드시 그 주장의 결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가 나타나도 돼 있다 그리고 그 의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정성이 입증 내 고백에 믿음의 고백에 의 진정성이 입증이 된다 자 이렇게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갈 때 그러면 왜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가 그 궁극적 목표가 예수님께는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했는데요 우리가 세상에 세상과 구별되기 때문에 세상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될까요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아야 될까요 예 자칫 생각하면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는이 구별됨을 잘
유지해 하기 위해서 세상과 따로 살아야 되겠다라는 착각을 하기가 쉬워요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세상과 무관하게 사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과 긴밀하게 영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너희는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 들다 너희가 왜 세상과 구별되는 그 세상을 위하여 구별되는 것이다 자 여러분 우리가 세상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 그 세상에 영향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러면 구별됨이 유지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되겠죠
그냥 세상처럼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근데 예수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했으니까 소금은 구별됨이에요 그럼 세상과 또 긴밀한 관계를 가지라 했어요 그 말은 뭘까요 세상과 관계를 가지고 살지만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뭐를 끼치는 역할을 해야 된다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해야 됩 관계가 반대로 되면 안 돼요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때문에 세상의 소금의 맛을내는 소금이 아 여러분들 그 어제 저녁에 식사하실 때 소금을
직접 찍어 먹으신 분 계세요 상에 소금이 있어 가지고 소금을 밥 한 숟갈 먹고 소금 먹고 밥 한 숟갈 예 옛날에 가난할 때도 소금을 찍어 먹지는 않았고 간장을 찍어 먹기는 했어요 간장을 소금은 반드시 음식에 들어가서 그 짠맛을내는 기능을 합니다 그니까 소금이 음식에 들어갔을 때 음식 전체를 짠맛으로 변화시키자아요 영향을 치잖아요 그니까 제자가이 세상 가운데 솜이라는 말은 세상 가운데 제자의 짠맛을내는 영향을 미쳐라 그 결과이 세상 사람들이 그 짠맛에 영향을 받고
그래서 결국은 복음에 노출이 되는 거예 그래서 그들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는 그러한 변화가 있게 된다 그래서 빛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 1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볼 수 있나요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요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이게 팔복의 원리를 따라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로 의가 열매로 맺혀져 가는 우리의 모든 성도들의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 근데 이 착한 행실을 세상 사람들이 보게 된다는 거예요 아 저 사람들은 달라 사귐의교회는 좀 달라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라고 궁금해하면서 그 답을 어디에서 찾느냐 야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렇게는 못 살아 그럼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살지 아 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인가 봐 해서 우리가 의롭게 사는데 그 우리의 의로운 삶을 보고 결국 세상 사람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나님께 하나님께 그래서 그들은 결국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어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결국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목적이 뭐냐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의 구별된 삶의 모습을 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자리로 나오게 되는 결과가 우리의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이 교회의 정체성과 관련된 교훈의 결론이라고 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귐의교회가 7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주변에 세상 가운데서 그리고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모든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각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짠맛을 내고 주변을 환하게 밝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드리고 하나님께로 이끄는 그러한 역할을 충실하게 잘 감당하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리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를 제자로 불러 주시고 사귐의교회로 세워 주시며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게 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말씀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금과 빛처럼 세상과 구별되는 그런 삶을 살게 주시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통하여서 세상의 소금으로서 빛으로서 맛과 빛을 드러내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도록 그러 성도들이 되도록 주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사귐의교회를 통하여 나타나도록 주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I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