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청년 공동체 여러분😊 여러분을 아주 소중하고 은혜로운 자리에 초대합니다! 청년들만 할 수 있는 예배!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 드리는 예배! 격월 청년예배로 만나요♥ 소중한 우리 청년들과 우리 교회에서 청년들만의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원래 우리가 올해 주일 3부 예배를 고민하다가, 아직 청년 중심으로 매주 드리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만을 위한 메시지를 나누고 청년들이 예배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모아져서 올해부터 2개월에 1번씩 그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이 그 첫 시작입니다. 저는 그냥 의미 없는 예배를 하나 더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 예배가 ‘청년예배’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작된 만큼, 이 시간은 우리 청년들과 함께 신앙을 고민하며 티키타카를 하며, 청년의 세대에 맞는 설교를 하고, 설교 후에는 그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나누고 결단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덮어놓고 믿지 마라”입니다. 우리는 이해가 쉬운
<새한글성경>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누가복음 14장에는 ‘잔치’와 ‘초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서 잔치 비유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모임’이나 ‘어떤 섬김의 기회’를 의미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잔치에 참여할 때 겸손하라’는 이야기를 7~11절에 담고 있습니다. 또한 잔치에 초대하는 사람에게는 12~14절을 통해서 ‘이 잔치에 네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어떤 모임이나 섬김의 기회를
가질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5~24절까지는 예수님이 여시는 잔치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청에 대한 반응이죠. 16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저녁에 잔치를 크게 벌이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17 잔치 시간이 되자 그는 자기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했어요. ‘오십시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지난 주일설교에서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들에게 “구원의 잔치가 열렸어. 어서 너도 참여해.” 우리가 이 잔치에 납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덮어놓고 믿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초청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구원하기로 결정한 하나님의 주권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내미심입니다. 여러분이 풍삶초라는 과정을 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웁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서 배워요. 거기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대상은 세상에서 그 사람이 잘났던지, 못났던지, 성공한 사람이든지 실패한 사람이든지 모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건을 보고 사람을 부를지 안 부를지,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와 함께 살아가자고 손 내미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필요한 것이 ‘인간의 반응’입니다. 잔치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보통의 잔치면 내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만 초대했을 텐데, 하나님의 잔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18 그러자 모두가 하나같이 못 가겠다고 둘러대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 사람이 종에게 말했어요. ‘내가 밭을 샀는데, 어쩔 수 없이 나가서 그걸 살펴봐야 하네. 부탁이네. 나를 좀 봐주게.’ 19 다른 사람이 말했어요. ‘내가 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해 보러 가는 길이네. 부탁이네.
나를 좀 봐주게.’ 20 또 다른 사람이 말했어요. ‘내가 결혼해서 아내를 맞았네. 이 때문에 갈 수가 없네.’ 잔치에 대한 초대 앞에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자기 사정들을 말하며 ‘거절’ 의사를 밝힙니다. 여러분이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잔치라면 그냥 사정에 따라 안 갈 수도 있겠죠. 저도 결혼식에 잘 못 갑니다. 토요일에 제가 결혼식을 다녀오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태준, 예지 결혼식에 안 갈 수
있나요? 결국 우리는 모두 우선순위를 결정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시간을 어디에 쓸지. 내가 밭을 돌보러 갈지, 잔치에 갈지. 소를 돌보러 갈지, 잔치에 갈지. 내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지, 잔치에 갈지. 뭐가 우선순위냐의 문제라는 것이죠. 여러분도 제가 보기에 바쁩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학업, 취업 준비, 연애,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초청에 지금 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선순위에 두시고,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늘 자신의 최선을 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와 손 내미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따져서 결정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따져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해요. 덮어놓고 믿으면 덮어놓고 떠납니다. 고민하고 결정해야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잘 따져서 결정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그 잔치를 초대한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잔치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여러분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여러분을 초대했어요.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 여러분을 초대했습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어떻게든 그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던 나,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 있습니다. 이 초청에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건’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초청을 들었다고 다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빠요. 나름대로 각자의 삶에 이미 채워져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기에도 바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초청을 가볍게 여깁니다. 저도 복음을 전하다 보니, 복음에 반응할
수 있도록 2가지를 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것과, 지금 ‘당신의 삶이 처해있는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 2가지를 잘 이해할 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과의 관계를 위해서 조금씩 어떤 것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조정이 있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나의 삶이 처한 위태로움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삶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다른 길을 빨리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금 자기 삶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터 위에 있다는 것을 모르면 거기서 천하 태평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앙에 대해서 배워가면서 이 두 가지 질문을 깊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요. 특별히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고백을 듣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없는 나의 삶은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추구하는 그 삶의 방향에 편승해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장 좋은 삶일까? 이 세상의 가치관과 삶의 모습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실망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기니, 그냥 마지못해 살아갑니다.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 신앙은 이렇게 질문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도와주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곧 교회에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잔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연결해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는 되고 싶지만, 제자는 되고 싶지 않다, 이런 것이 아니라 자녀가
되는 것이 곧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죠. 모든 성도는 제자여야 합니다. 나는 주님이 주시는 것을 누리고는 싶지만, 그분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잔치의 비유에 이은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을 보시죠. 25 큰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서서 그들한테 말씀하셨다. 26 나한테 오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들이나 형제들이나 자매들이나 심지어 자기 목숨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27 누구라도 자기 십자가를 메지 않고 내 뒤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잘 보시면 앞서 잔치 초청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의 문제가 병행하여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초청했으나 초청에 모두 응하지 않은 것처럼,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으나, 그들 모두가 ‘제자’가 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주님이 소중해진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고, 주님의 잔치에 참여한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소속된 것은 잔치의 초청을 받을 수 있는 지근거리까지 온 것이지, 잔치에 참여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근처에 있는 ‘큰 무리’에는 속하지만, 여기서 ‘제자’가 되기 위한 결단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아주 샤프하게 말하면, 교회에 있다고 다 구원에 속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 초청에 대하여 우리의 반응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자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삶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하게 듭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알수록, 그리고 하나님이 없는 나의 삶이 어떤 처지인지 알면 알수록, 내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의 온갖
악한 모습들이 누군가의 특별한 문제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혼해도 저마다 다 애인은 따로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든 괜찮다는 듯 말합니다. 성을 돈으로 사서 즐겨도 그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욕구에 대한 반응이고, 돈일 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을 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봐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원리라며, 조금이라도 더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몰두합니다. 자녀들을 소위 성공의 사닥다리에 올려보내기 위해, 자녀의 내면세계가 어떠하든 끌고 가는 것이 아이를 위한 사랑이라고 자위하며, 자기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일을 사랑이라고 포장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갔더라면 나는 그들과 달랐을까? 지금도 전혀 완벽하지 않지만, 이 정도의 생각과 가치관과 인격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나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제 청년 정도가 되었으면, 여러분이 추구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쫓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삶에 정말 내가 원하는 그것이 있는가?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나는 왜 돈을 버는가?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가치관에 따라서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예수님은 이 선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2가지 비유로 끝을 맺습니다. 28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탑을 세우려고 한다고 합시다. 그가 먼저 앉아서,
다 마치기까지 돈이 넉넉한지 비용을 헤아려 보지 않습니까? 29 토대는 놓았으나 다 끝내지 못하면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려 대기 시작할 테니 말입니다. 30 ‘이 사람이 세우려고 시작만 해 놓고 다 끝내지를 못했네.’ 하고 말하면서요. 31 또는 어떤 임금이 나가서 다른 임금과 맞붙어 전쟁을 하려 한다 합시다. 20,000명을 이끌고 자기한테로 오는 임금을 10,000명으로 맞설 수 있을지, 그가 앉아서 먼저 찬찬히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 32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어 화친을 맺자고 요청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것인가? 이 선택을 위해서 주님이 주시는 팁과 같은 것입니다. 과연 당신의 삶을 여기에 걸만하지 잘 계산해 봐라. 첫 번째 비유는 그것이죠. 인생을 거는 문제이니만큼, 더욱 소중한 자신의 삶을 위해 잘 생각해 봐라. 가치 판단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학업, 취업 준비, 연애 등으로 바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우선’이라는 선택은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선택이 여러분의 삶을 더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들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무엇입니까? 전쟁 상황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판단입니다. 우리의 삶이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남은 삶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상황처럼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33 그러므로 이와 같이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로 이야기는 가르침은 마무리됩니다. 주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내버리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소유인가? 아닙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지 않을 결정을 하는 것이 잔치에 대한 초청이요, 제자가 되는 길이요,
하나님께 속한 구원의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회심’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회심은 진정한 신앙의 결론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저는 오늘 그 신앙의 여정으로 우리 청년들을 다시 한번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결국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지만, 우리는 그 초대에 응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 선택은 곧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러분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유리한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 삶을 선택하는 것이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주님을 따르는 결정을 진지한 고민 끝에 내린다면, 그것은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보다도 훨씬 빠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떤 삶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청년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많은 장년들이 복음을 늦게 이해하면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회심이 무엇인지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복음을 저는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여러분이 가치 판단을 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그 과정을 돕고, 회심한 사람들이 계속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함께 걸어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지혜’를 발휘하여 여러분의 삶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적용> 우리가 이 설교를 잘 담기 위해서 잠시 묵상합시다. 1) 만약 지금 내게
필요한 어떤 결단과 고백이 있다면 그것을 마음속에 정리해 보십시오. 2) 아직 나에게는 어떤 결정을 위해서 조금 더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적용을 고민하십시오. 가만히 있는다고 알게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더 읽든지, 설교를 더 듣던지, 예배를 더욱 많이 참여해서 하나님 앞에 머물던지. 여러분 인생의 소중한 결정을 위해 시간을 쏟으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어떤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성경 읽기, 소그룹 참여, 혹은 개인 기도의 시간을 정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3) 만약 이 중에 나는 내 삶을 하나님께로 정했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 흔들림이 있는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나의 약점을 알아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