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나는 지금 어디 위에 서 있는가?

2026-03-15 · 마태복음 7장 24~27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어, 우리는 최근에 주일 설교를 통해서 계속해서 신앙의 기초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요. 어, 매번 이미 메일 성경이라고 하는 정해져 있는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다가 어, 이렇게 신앙의 기초라고 하는 어떤 큰 주제 안에서 자유롭게 본문을 정하고 내용을 정하려다 보니까 아, 어떤 내용을 해야 될지, 어떤 본문을 선택해야 될지 나름대로 참 고민이 많은 한 주였습니다. 어, 이렇게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조언을 해 주셨어요. 어, 청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어, 신앙의 기초라고 한번 생각해 봐. 어, 그리고 이 목사님의 조언이 오늘 설교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곳곳에 앉아 있는 우리 사랑하는 청년들 네. 제 눈 맞치 우리 청년들 오늘 열심히 잘 들어 주시고 마음은 언제나 청년이신 우리 모든 우리 성도님들도 집중해서 잘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설교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드리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네. 방금 읽은 이 말씀이 오늘 함께 나눌 본문 말씀인데요. 어,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종 받았던 오해가 있습니다.

어, 특히나 교회 안에 있으면 더 많이 받았던 오해인데 하나는 목사님 따일 것 같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처음부터 신학을 했을 것 같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 이미지가 좀 그런가요? 그렇게 생겼나요? 네. 그런데 저는 뭐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목사님 딸도 아니고요. 처음부터 신학을 전공했던 사람도 아닙니다. 저의 전공은 유화 교육입니다. 어 그래서 저는 대학교 4년 내내 어 다양한 학자들의 교육 이론, 발달 이론, 또 교수법 등등등 이런 교육학을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또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그 단계마다 필요한 교육 과정들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어 이러한 요화 유아 교육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고요. 또 무엇보다 제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꽤 괜찮은 학생이었어요. 어 그래서 저는 졸업을 앞두면 앞뜰수록 아 나는 참 좋은 교사가 될 거야라고 하는 확신이 점점 차올랐습니다. 수업도 잘할 자신이 있었고 제가 만난 아이들을 그 발달에 맞게 잘 도울 자신이 있었죠.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당착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잘 해냈을까요? 어, 잘 해냈으면 참 좋았겠지만 출근을 하고 세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생각이 정말 아주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야, 이거 큰일 났다. 여기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빨리 도망가야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분명 학교에서는이 연령 때에는 이런 발달을 보여. 그러니까 이렇게 도와주면 돼라고 했는데 현장에서 제가 만난 아이들은 같은 연령때데 다 다른 발달 수준을 보이는 거예요. 얘는 혼자 밥을 먹는데 얘는 혼자 숟가락질을

못 해요. 얘는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얘는 앉아 집중하는게 어려운 거죠. 어, 그러니까 수업을 할 때도 이런 어려움이 계속 되었습니다. 아, 저는 내가 이런 걸 가르치고 이런 말을 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하겠지, 이렇게 이해하겠지라고 예상하며 수업을 계획했는데 막상 수업을 해 보니까 아이들은 언제 제 예상과 다른 답변, 다른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저의 계획과 다르게 또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어라고 했던 저의 그런 기대감과 다르게 어 저는 굉장히 좌충우돌, 실수,

투성인 그런 초보 교사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었죠. 어 이렇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했던 저의 기대감이 와르륵 무너지면서 당시에 어렸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론과 현장은 다르구나. 그런데 만약 누군가 저에게 유아 교육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서 조언을 구한다면 어 저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을 때 열심히 배우라고 어 말해 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나고 보니까 제가 짧지만 또 현장에서 5년 동안 일하면서 느꼈던 것이 제가 배웠던 이론들이 틀린게

아니었더라고요. 그리고 쓸모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제가 그걸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어떻게 방식으로 적용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거죠. 그러면서 그때 제가 배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 이론만 열심히 공부해서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없구나. 그 이론을 가지고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실제로 적용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만이 진짜 좋은 교사가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 그런데 이걸 배우고 나서 보니까 이미 세상은

이 원리로 잘 돌아가고 있었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자격증을 딸 때도요. 이론을 배우고 실기를 배웁니다. 운동이나 악기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죠. 이론을 배우고 그다음에 그 배운 것을 몸에 습득하기 위해서 계속된 연습을 합니다. 어, 여러분, 저는 어떤 부분에서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신앙이 되려면 먼저 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계속해서 기도, 구원, 회심, 죄, 사귐의 신학 등등 어 꽤 많은 신앙의 기초를 배워 왔어요. 어 저도

올해를 시작하면서 목사님의 지난 설교들을 들으면서 어 저의 기초를 더 탄탄하게 한 부분들도 있었고요.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아 내가 이건 오해하고 있었네. 내가 이 부분을 미쳐 보지 못했네라고 다시 바르게 재정립해 나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신앙에 좋은 기초를 쌓기 위해서는요. 잘 배우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그런데 잘 배웠다고 해서 또 그 배운 것들을 내가 잘 이해하고 정리했다고 해서 모두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교육학 이론을

잘 배우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좋은 교사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내가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해서 살아내려는 고민과 애음이 같이 동반되어야 하죠. 이론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교사가 진짜 좋은 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배운 말씀들을 삶에 적용해서 실제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지식만으로 세워지지 않고 순종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단단하게

세워져 갈 수 있기 때문이죠. 어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좋은 신앙 또 좋은 어 삶이라고 하는 이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잘 배울 수 있는 들음과 배운 것을 잘 살아낼 수 있는 행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이 본문에는 어, 두 명의 건축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이 이 두 사람은 모두 각자 자기의 집을 지어가고 있어요. 여러분, 여기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요. 지금 이들은 다른 사람의 집이 아니라 자기의 집을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무엇일까요? 신앙은 각자가 자기의 집을 지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의 집을 또는 자녀가 부모의 집을 대신 지어 줄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집을 또는 아내가 남편의 집을 대신 지어 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내가 짓지 않으면 절대 내 신앙이 세워질 수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은 각자가 자기의 집을

세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물론 누군가 옆에서 그 집을 잘 세워가고 잘 지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나를 도와줄 수 있고요. 나의 에클레시아 목자가 또는 나의 양육 입금미가 나를 얼마든지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라 하더라도 아무리 사랑이 많은 목자나 성숙한 입금이라 하더라도요. 내 집을 그들이 대신 지어 줄 수는 없는 거예요. 여러분, 결국 내 집은 내 신앙은 내가 지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세워 가야 하는

것이죠. 내가 짓지 않고 내가 세우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교회 안에서 흘렀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신앙의 집은 어떻게 지어가는 것일까요? 제가 앞에서 짧게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무엇이었죠? 방금 말했는데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잘 건축하기 위해서는 들음과 행함이 모두 필요해요. 그렇다면 먼저 먼저 나온 들음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까요? 어, 여러분, 좋은 신앙을 짓기 위해서는요. 반드시

이 들음이 필요합니다. 듣고 배우는 과정이 먼저 되어야 하죠. 만약 여러분 제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없었다면 그 들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아마 더 형편 없는 교사가 되었거나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을 아마 시행 착오를 겪으며 고생해야 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내가 어떤 목표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교사로서 수업하는 나에게 또 내가 만나는이 아이들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조차 진단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적용도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신앙도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들은 말씀이 없다면, 여러분이 배운 진리가 없다면 여러분은 절대 그 말씀을 가지고 삶을 살아내실 수 없을 거예요. 이것은 제가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았는데 흘러가는게 당연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이 두 건축가도요. 모두 주님의 말씀을들은 사람들이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먼저 이 듣는 것부터 잘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좋은 들음을

잘 채워야 합니다. 어, 제가 이것을 여러분께 좀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 어, 영단어 두 개를 가져왔는데요. 어,이 단어입니다. 한 두 단어예요. 어, 이제 교회 안에 영어 선생님들이 많아지셔서 제가 조금 부담스럽지만 한번 설명을 잘 해 볼게요.이 두 단어는 모두 듣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어요. 먼저 첫 번째 단어인이 here이 단어는 그냥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청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들을 수 있는 소리예요. 그런데 리스는 어떨까요? 리스는 내가 의도적으로 경청해서 듣는 소리예요.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지? 내가 귀를 기울여서들을 때 들리는 것을 우리는 리슨이라고 말합니다. 어, 여러분이 많이 사람이 많은 카페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웅성웅성 사람들의 뭐 수다 소리 그리고 뭐 커피 내린 소리가 들리겠죠? 그냥 앉아 있어도 들리는 그 소음들은 히어에 어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 그 자리에서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집중한다면 그것은 리슨이 되겠죠. 여러분, 저는 좋은 경청은요. 그냥 듣는 것, 그냥 집중해서 듣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도 어 좋은 경청일 수 있겠지만 신앙에서의 좋은 경청은 진리를 분별하여 듣는 것입니다.이 말은 우리에게 he이 아니라 리슨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죠. 아, 그냥 좋은 말이니까 또는 좋은 사람 유능한 목회자가 했다고 하니까 그냥 들린 대로 다 듣는 들음이 아니라 진짜 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지? 성경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을 분별하여 경청에서 듣는 리슨의 들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 성경에 보면요. 좋은 신앙을 가졌던 베레아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요. 그렇게 훌륭한 바울이 와서 설교를 해도 그냥 듣지 않았어요. 바울이 전하는 그 말씀이 정말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가? 이것이 정말 주님이 가르치셨던 진리가 맞는가를 분별하고 상고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경청했습니다. 그들이 리슨 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들음의 자세,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냥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리인가를 분별하고 상고하여 듣는 들음이죠. 어, 두 번째로는 좋은 신앙의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어, 자주 이거를 이거를 간과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듣는 것을 이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집을 잘 지어가고 있다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잘 배우고 있으면, 그것을 잘 듣고 잘 이해하고 있으면

나는 좋은 신앙인이 된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아닙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절대 집을 잘 지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여러분 성경이 오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들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요. 왜냐하면 그가 지은 집은 결국 무너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어,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과 경고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요. 당시 그 고대 근동의 지형을 이해하면 더 좋은데요. 어, 아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모래 위라고 하는 곳은 와디라고 하는 땅이었을 것입니다.이 와디는요. 고대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또 시리아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지형 중 하나였어요. 어,이 와디는 평소에 보면 다른 땅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냥 땅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요 길처럼 그 위를 걸어다니기도 하고요. 또는 양들이나 목죽들이 이동하는 경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와디에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때가 있어요. 바로 비가 올 때예요. 와디는요.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금색 강처럼 변해 버립니다. 그래서 마치 홍수가 난 것처럼 그 지역일대가 물에 휩쓸려 버리곤 하죠. 이것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와디의 진짜 얼굴입니다. 아, 분명히 마른 땅인 줄 알았고 단단한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가 내리니까 급격하게 홍수처럼 물이 불어나고 그 주변에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것이 와디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이 와디 위에 만약 집을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 말씀하신 것 당연히 엄청나게 무너지게 되겠죠. 그냥 비바람이 좀 드리치고 강한 어 창문 바람의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이런 수준이 아니라 집이 마치 휩쓸러 가는 것처럼 홍수를 만난 것처럼

그런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마치 그곳에 처음부터 집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여러분 말씀을 들었지만 행하지 않은 사람은요. 집을 짓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이 사람도 집을 지었어요. 어쩌면 나름대로 열심히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이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았죠. 마치 그곳에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집을 열심히 지었지만 결국은 집을 짓지 않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님께서 경고하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이 건축가는 왜 이런 와디 위에 집을 지었을까요? 어, 제가 실제로 그 당시에 이 왓이라고 하는 지형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알아봤는데요. 아, 실제로 있었더라고요. 예수님이 그냥 비유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당시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어, 물론 그중에서는 그것이 정말 와디인지 모르고 단단한 땅이라고 반석이라고 생각하고 지었다가 호대게 당한 사람들도 있었겠죠. 반석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대요. 어, 사막이라는 당시의 그 중동의 극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그들의 생존 전략이자 경제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와디는 와디라고 하는 땅은 그 땅 밑에 지하수가 흐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와디가 비가 오면 집안이 급격하게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죠. 그러나 어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지하수가 흐르기 때문에 어 우물을 파기에 굉장히 쉬었다고 합니다. 어 또 제가 앞서서 와디는 평소에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고

또 목축들이 다니는 길이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거친 언덕을 넘고 돌아서 가는 것보다이 평평하게 깎여 있는 그 와디를 따라서 이동하고 물자를 송하거나 목축을 이동하게 하는게 더 효율적이고 편리해 보여서 이곳의 거처를 마련하기도 했었다고 해요. 또는 와디 근처에는 지형 쪽으로 진흙이나 돌처럼 당시에 집을 짓는 재료가 많았기 때문에 집을 좀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짓기 위해서 이 와디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맑은 날에는 와디의

민낯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단단한 땅이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착각은 대부분 쉽고 편리하고 빠른 비교적 대가지불이 적다라고 생각하는 그 이후에서 시작된 것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언어를 빌려서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들고 느리게 반석이의 집을 짓는 그 좁은 길보다 아 이왕이면 쉽고 편리하고 빠르게 와디 위에 집을 짓는 그 넓은 길을 그들은 선택했다는 것이죠. 어, 저는 한때 정말 많은 설교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 교회 예배는 당연히 빠지지 않았죠. 주일 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새벽 예배도 매일매일 빼먹지 않았었습니다. 그 외에도요. 거의 매일 유튜브에서 어 좋은 설교자들의 설교를 세 편씩 찾아서 들었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던 어, 방학 이런 때는 진짜 한 여섯 편까지도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그 들었던 것을요. 같이 신앙생활 잘하고 있던 제 사촌 언니에게 매일매일 조잘조잘 어, 전해 주곤 했어요. 이런

걸 들어봤는데 이게 좋더라.이 이 설교자 이런 말씀에 이거 참 괜찮더라라고 참 많은 것들을 나눴습니다. 저는 그때 제 신앙이 당연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니었습니다. 허무하고 공허했던 제 마음이 잠시는 채워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2년도 못 가서 더 공허했더라고요.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제 안에 있던 문제들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라는 거를 느꼈어요. 어느 날 제가 아,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지? 나는 왜 이게 아직도 이렇게 어렵지?

왜 이게 안 되지? 난 안 되나 봐.라고 아주 깊은 슬픔 가운데 빠졌던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공동체에서 갈등이 생기면 생길 때마다 또는 제 삶에 작은 문제들과 고민들이 생기면 생길 때마다 한 번을 이기지 못하고 다 무너지더라고요. 여러분, 왜 그랬을까요? 어, 저는 제가 들었던 그 설교들이 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전해 주셨던 그 진리가 약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와디를 반석이라고 착각하고 모래 위일 집을 지었기 때문이죠.

교회 생활 열심히 하면 예배에 빠지지 않으면 내가 유튜브로 설교를 찾아서 들으면 말씀을 듣고 깨달은 그 느낀 것을 잘 나누면 그것이 저의 반석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그 당시에 저에게도 많은 순종의 기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순종의 마음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그 말씀대로 사는 건 불편하고 어렵고 때로는 내가 무언가를 손해 봐야 하는 대가지불이 필요하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 삶의 씨름은 외면한 채 그저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설교 열심히 잘 듣고 잘 나누는 그런 것들로 저의 그 불편한 마음들을 달랬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이렇게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 이렇게 내가 말씀 많이 듣는데 내가 이렇게 나눔 잘하는데 난 좋은 신앙인이야 나는 괜찮아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갈등에 비가 내려보니까 제가 어디에 집을 짓고 있었는지가 다 드러난 거예요. 제가 와디 위에서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삶의 문제라는 비바람이 들이쳐 보니까 그제에서야 제 신앙이 모래 위에서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어,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이 어디 위에 지금 지어져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혹시 저처럼 내가 지금 짓고 있는 집이 모래 위에 짓는 집, 와딩 위에 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지 않는지는 돌아봐야 해요. 우리는 종종 좋은 설교를 어 하는 그런 목회자들을 찾아헤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들음으로써 만족하죠. 어이 말씀 좋네. 그렇지. 이렇게 살아야지. 이게 진리지. 만족합니다.

또는 나를 잘 챙겨주고 살들이 잘 도와줄 좋은 리더를 찾아헤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숙한 나눔과 따뜻한 위로와 돌봄과 어떤 그 나눔을 들음으로써 만족해요. 또는 유튜브나 책을 통해서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많은 강의를 찾아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으면서 만족합니다. 좋은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다임으로써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제가 앞서 말씀드린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신앙에 분명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분명한 유익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들어도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 진리라고 선포되는 그것들을 들어도 듣는 것에서 만족하고 멈춰 있으면 우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교회를 다녀도 그저 다니는 것에 만족하고 있으면 좋은 신앙인이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어, 오늘이 말씀을 듣고 계신 여러분 어떠신가요? 혹시 여러분도 과거에 어리석 같은 저처럼 모래 위에

지금 집을 짓고 계시 않으신가요? 듣는 것으로 만족하며 들음에만 머물러 계시진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많이 자주 들어도 선명한 진리를 들어도 여러분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워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에 비가 내리고 현실의 문제가 홍수처럼 밀려들고 유혹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게 뻔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기 위해선 반드시 들음과 행함이

함께 필요하다라고 가르치십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어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던이 어리석었던 그 건축가와 달리이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듣는 것으로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들은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는 모래위가 아니라 반석위의 집을 지을 수 있었죠. 내가 짓는 집이 와디 위에 세워질 것인가 아니면 반석 위에 세워질까는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석에 세워진 집은 똑같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렀지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어, 여러분,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는 것은 작게 보면 삶을 살아가다가 우리가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인생의 풍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 좀 더 큰 영역에서 본다면 마지막 때에 성도가 겪게 되는 환난과 시험을 의미하기도 해요. 그래서 반석에 지은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그 성도의 시험과 환난에도 구원을 잃지 않고 지켜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반석기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좋은 신앙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받은 구원,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얻게 된 그 은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런 좋은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 원하시나요? 아멘. 저는 여러분이 이미 받은 은혜와 구원을 끝까지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여러분이들은 것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들은 것을 행하는 진짜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해요. 어 그러기 위해서 제가 오늘은 크게 두 가지를 권면드리고 싶은데요. 첫 번째네 첫 번째는 좋은 것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 아직 누군가에게는요. 듣는 것이 좀 부족할 수 있어요. 만약

여러분 중에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주일의 시간을 뺀다는 결코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주일 예배를 먼저 잘 지키는 것부터 힘쓰셔야 합니다.이 이 예배를 통해서 찬양과 기도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경청하여 들으십시오.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듣지 못하면 행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흘러갈 수 없습니다. 또는 어떤 분들은 아 나는 이제 주일

예배 지키는 거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이제 주일이 아니라 평일에도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뭐 우리 교회 안에서 예를 든다면 수요 기도에 나오실 수도 있고요. 매일 성경으로 날마다 큐티를 하실 수도 있습니다. 매일매일 여러분에게 들려 주시는 그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연습해야 돼요. 무엇은 무엇을 연습해야 하냐면 아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을들을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듣는 것도 연습해야 하고 훈련해야 해요. 그렇게 잘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잘 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좋은 것을들은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어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은 대부분은 이미 잘 듣고 계신 분들일 수도 있어요. 교회 생활에 성신이 참여하면요. 사실 우리는 좋은 것을 어렵지 않게들을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매일 성경으로 큐티를 하고 또 여러분이 하시는 그 소그룹별로

말씀을 나눕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좋은 것들을 듣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말씀과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행함이 필요한 때일 수도 있습니다.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어 짓지 못하고 모래 위에 지었던 가장 큰 문제는요.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들은 것을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신앙의 집을 잘 세울 수 있는 이 기초인 반석을요. 말씀이라고만 하지 않으셨어요. 진리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삶의 순종에 함께 만날 때들은 것을 행하는 그 상태가 곧 반석이다라고 말씀하셨죠. 신앙의 기초는 들음에서 시작하지만 행함으로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앙의 기초를 잘 세우시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거창하게 시작하거나 어 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이미 들었던 말씀 중에 하나라도 내 삶에 적용하려고 고민하고 실제로 애쓰며 삶으로 부딪히시는 훈련이 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 메시지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번역하는데요.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내 말을 너희 삶으로 실천하면 너희는 든든한 바위 위에 집을 지은 현명한 목수와 같다. 비가 퍼붓고 강물이 넘치고 돌풍이 쳐도 그 집은 끄덕 없다. 바위 위에 꽃곳이서 있다.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성경 공부 때만 사용하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너희는 모래 사장의 집을 지은 미련한 목수와 같다.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거세지자 그 집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네. 메시지 성경은 우리의 행함을 삶으로 실천하면이라고 어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 여기 보니까 너희가 내 말을 성경 공부 때만 사용하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걸 우리 교회의 버전으로 좀 더 맞게 번역한다면 너희가 내 말을 에클레시아 나눔 때만 사용하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미련한 목수다라고 하시는 것과 저는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끔 청년들과 이런 팬 모임 이런 말씀을 듣고 나눈 후 어떤 나눔을 가질 때 어 어떤 결단이나 순종에 대해서 권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해 주고 하는데요. 아 네가

지금 잘 이해하고 잘 깨달은 거 같아 그러면 그것을 이제 너의 삶에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게 뭔지 고민해 보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제가 오늘 말씀을 들으니까 아, 이웃을 사랑해야 될 거 같아요. 그러면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렇게 살아내고 순종하는게 말씀을 따라 사는 거야라고 이야기해 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행함이 말씀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치에 오차도

없이 그렇게 순종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신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오체 없는 행함을 하기 위해 그런 순종을 드리기 위해 애써야 해요. 우리의 약함이 절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렇게 오차 없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살아내고 싶은 우리의 그런 마음과 달리 연약한 우리의 약함을 주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우리가들은 말씀을 그대로 삶으로 살아보려고 실천하려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그런 순종을 도와주실 거라는 거예요. 연약한 우리가 모래 위가 아니라 어떻게든 반석의 집을 지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고 있을 때 주님이 그런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연약한 나는요 지금 원수 사랑 못 해요.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마음도 먹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만큼 말씀을 실천해 보는 거죠.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게 되든 안 되든 일단 도전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나에게 서운함을 주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한 번이라도 기도해 볼 수 있고요. 아 나랑 결이 맞지 않아. 저 사람은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과 손절하라고 말하고 어 사귀지 말라고 말하지만 내가 주의 말씀을 따라서 한 번 더 인사를 건네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이 말씀을 들었다고 여러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막 자동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막 가족처럼 느껴지시나요? 여러 한번 주변사 한번 둘러 보실까요? 여러분 가족처럼 느껴지시나요? 여러분, 우리의 본성은 그렇지 않아요. 진짜 내 가족도 사랑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이 말씀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적용해 보는 거죠. 실천해 보는 겁니다. 어, 우리 교회가 이제 곧 새로운 에클레시아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죠. 여러분, 어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어떤 부분 낯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원래 나라면 아 나는 낯을 너무 많이 가리고 너무 내앙적이라서 뭔가 이렇게 하기가 적응하기 너무 힘들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족이야. 우리는 가족이라고 서로 사랑해 줘야 돼라는 그 말씀을 들었다면 그거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비록 아이지만 먼저 용기를내어 카톡 하나 보내볼 수 있는 거죠. 또는 나의 집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집을 오픈해서

식사를 대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런 사람을 주님이 도우실 거라고 생각해요. 어, 저는 개인적으로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염려를 주께 맡기라라는 말씀을 참 좋아하고 그걸 참 붙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요. 여러분,이 말씀을 제가 들었다고 해서 염려가 자동적으로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냥 가만히 두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을 밤새도로 묵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지세온 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서 아주 잠깐이라도 그 염려를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는 거죠. 단 1분이라도 말입니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답이 되시는 내가 너에게 샬롬을 줄 거야라고 약속하시는 그 짐을 묵상하려고 저는 매일 성경 큐티를 어 끝까지 어 붙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저를 주님께서 도와주고 계신다고 어 확신하며 믿고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말씀을 행하는 삶입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완벽하게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순종들을 실천으로 옮기는 거. 나의 행동으로 옮겨 보는 것이죠. 그럼 여러분 막상 해 보시면요. 아무리 작은 결단이라도 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금방 느끼실 거예요.들은 것을 삶으로 살아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결단은 아, 제가 카톡 먼저 할게요. 제가 이렇게 해 볼게요. 할 수 있지만 막상 나의 삶의 현장이 들어가면 왜 이렇게 카톡은 하기 싫고 왜 이렇게 묵상은 하기 싫고 기도는 하기 싫은지 우리 그런 것들이 참 어려워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이들은

말씀을 행하로 행함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원인은 순종을 미루기 때문입니다. 아, 지금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해야지. 아, 지금은 내 마음이 너무 어려우니까 나중에 해야지. 어, 제가 이렇게 진단한 이유는 제가 그렇기 때문이에요. 어, 여러분 아니실 수 있겠지만 저는 저를 돌아볼 때 대부분 이런 이유로 순종을 미룰 때가 참 많았습니다. 아, 내 마음이 좀 정리되면 내가 좀 여유가 생기면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핑계들로 순종을 밀었던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어, 자원하는 마음, 기쁘게 하는 순종을 주 원하시는데 이게 진리가 맞죠. 그런데 때로는요.이 순종을 미루기 위해서 그 진리를 변명삼아 핑계삼아 아 지금은 내가 마음이 그렇게 자원하지 않는 거 같아. 그렇게 편하지 않는 거 같아. 그러니까 좀 정리되면 할 거야라고 핑계를 댈 때도 참 많았습니다. 어 여러분, 우리는 게으림이 참 많아요. 그래서 자꾸 불편하고 귀찮은 것일수록 뒤로 미루려고 하죠. 그런데 말씀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귀찮게 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본성을 자꾸 거스르라고 말하기 때문이죠. 나의 자기 중심성을 거스르라고 말하기 때문이에요. 또는 너무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미루기도 하는 거 같아요. 여러분,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 우리의 너그러운 우리 하나님은요. 언제나 우리에게 완벽을 원하신 적이 없어요. 과부의 두 랩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드릴 수 있는 만큼을 온전히들을 때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행하는 삶은 거창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미션을 완벽하게 클리어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에 짓눌려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오늘 지금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말씀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분명히 빈틈이 생길 거예요. 분명히 구멍이 생길 겁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몫을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려고 애쓰고 있으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의 말씀을 실어 어 실천하려고 어떻게든

사랑하려고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에게는요 주님이 사랑을 채워 주실 거예요. 염려를 주님께 맡기려고 애쓰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요. 주님이 샬롬을 경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이 지키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거예요. 그를 반드시 반석에 세우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어 여러분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들음으로 만족했던 사람은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작지만 분명하고 또렷한 그 변화가 그의 삶에 하나씩 하나씩

생겨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작은 변화들이 마치 벽돌처럼 착착착 쌓여서 비바람이 쳐도 흔들리지 않는 무너지지 않는 그런 반석 위에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 반석에 선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를 한번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우리가 반석에 세워져 간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사모하며 듣고 그 진리를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우리가 흔들리지 않은 반석이 하나님께 깊게 뿌리내리는 과정이라고 어 생각합니다. 여러분, 반석의 집을 지어도 비를 맞아요. 반석이의

집을 지어도 때로는 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지만 비바람을 맞을 수 있지만 반석의 선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의 반석 안전 지대가 되어 주셨다는 것을 어 저는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어 이제 말씀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 사랑하는 사귐의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종류의 건축가를 보았습니다. 들음에만 만족하여 모래 위에 집을 지었던 어리석은 건축가 그리고

들음으로 시작한 행함으로 반석의 집을 지은 슬기로운 건축가. 이들은 모두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들음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끝을 맞이했죠. 오늘 여러분의 집은 어떤 땅 위에 세워져 가고 있으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집이 반석위기에 세워지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더 채워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들음이 부족하신가요? 좋은 것을 들으려 애쓰십시오. 듣는 것도 사모하는 자가들을 수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말씀의 자리를 사모하는 사람이

진리를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근 채 그저 그 마음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저 진리가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한 순간에 깨달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말씀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진리를 추구하는 그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요. 내가 듣기 좋은 거, 내 마음 위로해 주는

것만 골라서 듣는게 아니에요. 내 마음을 찌르고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불쾌하게 하더라도 진리인 것을 찾아서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진리를 분별하여 경청하십시오. 지리를 분별하여 경청하는 그 들음이 우리가 가는 길에 나침반이 되어 좋은 신앙으로 우리를 반석기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행함이 부족하십니까?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려 애쓰십시오. 좋은 말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 말씀이 진짜 진리라고 하더라도 내 삶에 정작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남들이 진리라고 하는데 그것이 내 삶의 진리가 되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거예요. 여러분 설교를 시작하며 제가 말씀드렸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제가 배웠던 그 많은 학자들의 좋은 이론들이 실제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고자 하는 저의 고민과 애이 필요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은 그 좋은 진리들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적용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십시오. 실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십시오. 물론 한 번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시행 착오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버거울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반석이에 집을 세우겠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들은 그 말씀이 진짜 살아서 어떻게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는지 주님의 생명의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 무엇인 여러분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말씀 앞에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들음이 아니라 더 많은 순종일지도 모릅니다. 어, 저도

청년들과 많은 나눔을 합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어리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아요. 결코 그들이 만나는 문제들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다 나눌 수 없지만 저도 경험하고 저희 청년들도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 내가 주님 믿고 순종했을 때 주님 나 망하게 두지 않으시는구나. 내가 순종해서 결단해서 무언가를 시도할 때 주님이 나를 돌보시는구나.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11조를 하기도 하고요. 어떤 친구들은 세상의 방법, 자기 다른

친구 따라가는 그런 방법 따라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노력하고 애써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그들은 경험하죠. 주님이 나의 진짜 반석, 안전 지대가 되어 주신다는 거. 비바람이 치지만 내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그 순종을 통해서 배워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한 번 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 위에서 계십니까? 어떤 땅 위에 집을 짓고 계십니까? 진리를 들었으나 듣는 것에서 멈춘 신앙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짓고 계십니까? 아니면들은 것이 삶으로 흘러가는 어 신앙으로 그 순종으로 반석의 집을 짓고 계십니까? 어 사랑하는 모든 예배자 여러분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게 요즘 시대 정말 되겠어? 이렇게 하면 정말 괜찮겠어? 여러분 그거 고민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이거 그대로 내가 살아낼 수 있지? 나 지금 뭐 순종해야 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의 성도가 되어

주십시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부족하지만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들음과 행함의 반석기에 세워져 가길,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깊은 뿌리를 내리는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의 말씀을 한번 기억해 보겠습니다. 어 저희가 최근에 풍삶초 입금미 또 하나도 입금 위반을 이렇게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제도 그 입금반에서 이런 내용을 나눴습니다. 진실한 반응이란 무엇일까? 거기서 저희가 함께

나눴던 것은 진실한 반응이라는 것은 내가 깨달은만큼 내가 진리를들은만큼 순종하는 것, 실천해 보는 것이라는 어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어 여러분 여러분이 진리를들은만큼 실천해 보십시오. 그럼 분명히 여러분이 순종한만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왜 이것이 반석이라고 하는지, 왜 이것이 안전지내라고 하는지, 왜 이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하는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경험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생기고 용기가 생깁니다. 그럼 또 순종하며 나아가겠죠. 그런 사람들은 반석이 더 단단해지고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지는 말씀들, 진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결단하는 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순종하는 것을 미루지 마십시오.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주신 그 마음을 묵상하면서 우리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안개가 날 가리워 안개가 날 가리워 내 믿음은 늘리려 할 때 나 주님께 나아가네. 주님은

산 같아서 주님은 산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눈을 들며 보이리 날 위한 그 사랑 주는 나의 주는 나의 도움이시며 주의 계획 영원하시네. 주의 위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해. 예배드리 주님께서 날 이끄시며 주님께서 날 이끄시며 주가 항상 함께 하시네 주의 사랑 안에 믿음으로 순종해 예배드리 영원히 미시한 자리에 드러나셔서 다시 한번 고백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안개가 날 가리워. 안개가 날 가리워. 내 믿음 흔들리려 할 때 내 믿음 흔들리려 할

때 나 주님께 나아가네. 주님은 산 같아서 주님은 산 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셔 눈을 들면 오일이라 날 위한 사랑 주는 나의 도움이시며 나의 도움이시며 주의 예외 영원하시네. 주의 위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해 예배드리 이끄시며 주께서 날 이끄시며 주가 항상 함께 하시네 주의 사랑 안에 믿음으로 순종해. 우리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주님께서 나의 도움이시며 주는 나의 도움이시며 주의 예외 영원하시네. 주의 위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해. 주의 위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해.

예배드리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주님께서 날 이끄시며 주가 항생 함께 하시네. 주가 항상 함께하시네. 주의 사랑 안에 믿음으로 순종해. 오늘의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 우리에게 좋은 들음을 채워 주십시오. 우리가 삶으로 달아낼 수 있는 순종이 용기를 주십시오. 이런 마음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주여 기도합니다. 주여 이 시간 기도합니다. 하나님 수앞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아버지 오늘 예배하는 모든 예배자들 가운데 하나님 우리가 들음을 말하신

마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진리를 찾아 추구하는 마음을 우리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상에 들리는 소리를 들린 대로 다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가 그중에서 진리를 분별하여 말씀을 분별하여 드릴 수 있는 아버지 좋은 기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마음으로 주를 사모할 때에 그 말씀을 사모할 때에 아버지 그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흘려퍼질 수 있도록 우리 삶이 들릴 수 있도록 귀로 듣는 것이나 우리 마음으로 들릴 수 있도록 주인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용기를 하여 주시고 삶을 실천할 때에 연약한 우리의 구멍들을 메꿔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말씀에서 몸부림 자들에게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되게 원합니다. 주님만 우리 성되시며 우리 안전대가 되시며 우리를 지키시라는 것에 경험하게 해주시고 경험한 서기를 갖고 주를 신뢰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아버지 오늘의 말씀이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새겨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새겨질 수 있도록 성령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고백합시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온전한 예배 온전한 예배 내 마음의 예배 내 모든 것 같기 합당하신 분 주 앞에 엎드려 예배합니다. 예배합니다.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뜻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의 주 앞에 엎드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합니다. 온전한 예배 내 마음의 예배 내 모든 것 같기 감당하신 분 주 앞에 엎드려

우리 삶으로 예배합니다. 예배합니다.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뜻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의 예배 드리기 원하네.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