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굳이 그렇게 살래요

2026-03-12 (올린 날짜) · 요한복음 12장 1~7절 · 박현우 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이 자리에서 있는게 또 떨리고 또 다리도 후들후들하고 하지만 그래도 제가 찬양하며 고백한 것은 내가 간절히 주님 앞에 서기 원하니까 시간 저와 함께 준비하시고 또 여러분들의 삶에서도 함께하신 그 하나님만을 믿으며 저도 담대하게 어 말씀을 어 선포하겠다고 좀 결단했으니까 여러분들도네 잘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네 네. 바로 말씀으로 들어가면 어 유월절 엿의 본문은 오늘 매일 성경이었던 요한복음 12장 말씀이고요. 6월절 세전 즉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약주 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동쪽 베단이라는 땅에서 하룻밤을 머무십니다. 그곳은 얼마 전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의 동네이고 그곳에서는 나사로의 소생을 기념하며 잔치를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잔체의 풍경을 어 보면 우리의 마르다는 역시 열심히 일하며 사람들을 섬기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한 책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생각해 보면 이랬을 것 같아요. 예수님 진짜 저 어떻게 살리신 거예요? 분명히 나 죽었는데 왜 저

다시 살아난 거죠? 알려 주세요. 뭐 몰라 녀석아 뭐 이런 대화가 나 오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런 기쁜 분위기에 이야기가 오가는데 갑자기 잔치집에 향기로 가득해졌습니다. 어떤 향기였을까요?네 네, 맞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한근을 예수님의 발에 붙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발랐던 겁니다. 마리아가 쏟아부 향유는 300 데나리온으로 오늘날로 치면 1 데나리온이 하루 품싹이기 때문에 어 1년치 연봉을 쏟아부게 오늘날의 가치로 4천만

원에서 5천만의만 원의 가치로 추정하고 있는데 당대 여인들에게 이런 향유는 일종의 결혼 자금이나 또 비상 자금으로 이렇게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쨌든 잔치집에 소리 없이 향만 가득하던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유다가 마리아를 꼬짓는데요. 우리 함께 말씀 읽게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주는 자가 말하되이를 어하여 성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아멘. 네. 우리가 읽은 것처럼 성경은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대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인자하게 말하지만 유다는 결국엔 이렇게 말한 거죠. 야 뭐해? 이게 얼마짜리데 그걸 예수님 발에 다 쏟아부어. 그걸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 발에 아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으면 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으면 더 의미 있게 썼겠다. 이렇게 했겠죠. 여러분들은 이런 유다의 주장, 이런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 우리에게는 유다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이 있습니다. 뭐죠? 네. 예수님을 팔아버린 나쁜 제자. 그래서

우리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삐딱하게 보고 있지만 솔직히 오늘이 본문에서 유다가 한이 말이 정말 잘못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심지어 유다는 단순히 낭비만을 안타깝다고 말하며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자며 매우 효율적이고 성경적인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평소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수없이 가르치셨죠. 어 누가복음 14장을 통해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을 청하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19장 부자

관원과의 대화를 통해 너의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줘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내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가르침들을 떠올리며 아마도 마리아를 꾸짖었을 겁니다. 유다는 말을 하고 마리아를 꾸짖고 같이 계신 예수님을 쳐다보며 저 잘했죠.라는 라는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이 마음은 제가 종종 갖는 마음인데요. 저도 가끔씩 청년들이나 예배 팀원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혹은 사역을 하면서 겪는 고민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그들에게 목사님한테 제가

들었던 이야기 또 에클레시아 디딤돌이나 언약 가족 디딤돌이나 하나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그러면은 거기 앞에 있던 분들이 아 이로 돌아가요. 그럼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방금 좀 목사님 같지 않았어? 나 방금 너무 카리스마 있지 않았어?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유다도 아마 저처럼 스승님이 가르쳐 준 것을 스승님 옆에서 말했기 때문에 아주 당찬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은 오늘 효율적이고 예수님의

가르침까지 인용하며 옳은 소리를 하는 유다의 논리가 아니라 갓비싼 향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의 발에 쏟아부은 마리아의 가성비 없는 낭비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왜냐하면 유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향유가 아깝다고 생각했던 욕심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6절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자들을 생각하며 그는를 고기는 것을 하라. 네. 6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에서 우리는 알 수 있는데요. 그는 제자들의 재정을 담당하며 신뢰를 얻었습니다. 근데 실상은 그 신뢰를 이용해서 사익을 취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나오는 이 훔쳐 가밀러라 넘겨 주시면 네.이 이 마지막에이 가미러라의 제가 강조점을 둔

이유는 도둑질이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표시해둔이 가미러라는 헬라어 원어인데요. 미완료 과거형입니다. 과거에 시작됐던 일이 지금도 마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거. 즉 자신의 욕심 때문에 돈에서 돈을 훔쳐가는 일이 과거에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정말 가난한 자들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득을 취하려고 한 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런 것도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저희 리더이신 이제 은영

자매님께 은영 자민님 주일 예배에 갔으면 됐지 수요 기도회까지 안 가도 되잖아요.라고 한다면 제가 정말로 은영 자매님의 체력이 걱정돼서 은영 자매님의 마음이 걱정돼서 한 말일까요? 주일 예배뿐만이 아니라 수요 기도회까지 하나님 앞에 찾아가면 하나님이 귀찮고 힘들어하시니까 제가 하나님이 걱정돼서 한 말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아마도 수요 기도회를 가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저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려고 제가 유익을 얻으려고 합리한 것이겠죠. 또 갑비싼 향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아낄 수 없는 자신의 사랑과 헌신으로 여긴 마리아와 달리 유다는 돈 즉 그냥 물질로 받습니다. 흘린 향를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아닌 낭비되고 버려진 다시는 쓸 수 없는 비싼 돈으로만 본 것이죠. 그랬기에 자신의 소중한 그 모든 것을 드린 마리아를 보고 감동하고 나도 배워야지, 나도 깨달아야지 나도 결단해야지. 저런 삶을 이렇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아 저 흘린 저 아까운 걸로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이 이 계산기를 두드린 것입니다.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지켜보신 예수님은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함께 7절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이를 나의 나를 위하여 그것을 하라. 네. 7절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마리아를 꾸짖는 일을 멈추라고 하시며 자신의 장를 치를 때 사용하기 위해서 그 향를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깨뜨린 향유를 예수님은 아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영원토록 사용하십니다. 사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걸 알아서 일주일 뒤에 십자가에 달릴 걸 알아서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오빠 나사로를 살려 준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이는 진심으로 그동안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고백했기 때문에 부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실수로 즉흥적인 마음으로 갑자기 이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삶에서도 이어져오던 진실된 결단이고 마리아의 온전한 순종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안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그 낭비하는 순종을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품으시고 무엇보다

의미 있게 받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심하고 향위 옥합을 깨뜨리기를 주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깨고 자신의 머리까지 풀어 예수님의 발에 바른 마리아의 그 진심을 예수님께서는 받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당대 유대 여인에게 머리카락은 여인의 영광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발은 인체에서 가장 비쳐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마리아는 자신의 자존심, 수치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심도, 수치도, 기분도, 나의 감정도 다 내려놓고 말이죠.이 이 마음과이 모든 과정을 아시는 예수님이시기에 마리아가 깨뜨린 그 향유 옥합을 가장 가치 있게 받아 주시고 사용하신 것입니다. 유다는 향유를 바닥에 쏟아져서 없어질 것, 이미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리아를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당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지워지지 않는 영광으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가 쏟아부 그 비요효율효율적인 사랑을 주님은 자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을 예수님이 크신 사랑으로 품어 주신 것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잠시 함께 침묵하면서 오늘 눈을 감고 말씀을 되내고 싶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마리아처럼 나의 향유를 들고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유다처럼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나의 편의와 이익을 생각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까 돌아보기 바랍니다. 물론 저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금 당장 마리아처럼

5천만 원을 가져와서 예수님께 받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거창한게 아니어도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그 하나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 진짜로 우리가 지금 바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주님 앞에서 무엇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동안 혹시나 바쁘다고 밀어왔던 골방에서의 기도가 있다면 몸이 지쳐서

밀어왔던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있다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날이 뜨거웠던 그 한 낮에도 그 영혼을 바라보며 다가가신 예수님처럼 굳이 오늘이 더 바쁘고 오늘이 더 다른 날보다 치열했을지라도 나의 시간을 깨뜨릴 수 있고 시간을 깨뜨렸기에 주님 앞에 나아가 굳이 오늘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회생활을 하며 또 학교를 다니며 관계 속에서 갈등이 있다면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은 적고 내 자존심이 너무나도 상하지만 그 자존심을 깨뜨렸을 때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영광을 위해 굳이 내가 사과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여러분에게 도움은 커녕 피해만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의 이치로는 세상의 조언으로는 친절을 베풀 이유가 전혀 없죠. 하지만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가르침을 깨고 굳이 가서 친절을 베풀고 먹을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이처럼 굳이 나의 판단과 자존심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고 하나님의 향기가 드러나기 바랄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그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함께 꼭 기억합시다. 마리아가 향유를 깨뜨렸을 때 오늘 3절 말씀에도 나오지만 그 잔치집은 향기로 가득찼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 발에 깨뜨렸을 때 그 향기는 잔치집에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렵지만 하나님을 위해 나의 삶에서 나의 향의 옥합을 깨뜨릴 때 그 향기는 반드시 예수님께 그리고 내 주변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계산하지 않으셨고 그렇기 때문에 하늘 보좌를

다 버리면서까지 굳이 이 땅에 오신 분. 우리를 위해 굳이 고난받으시고 굳이 죽으신 그 예수님을 위해 이제는 우리도 기꺼이 내 손에 계산기가 들려 있었다면 그 계산기를 내려놓고 내가 빈손이 될 때까지 나를 바라보시면서 기다리신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제 내 빈손을 내어드리는 그런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