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에는이 시간을 알게 되고 어 걱정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또 특별히 우리 사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어이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까 그 걱정과 불안은 어느새 감사와 감격으로 이렇게 바뀌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찬양하면서 한 번 더 그 감사를 깊이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말씀의 주제로 감사를 가지고 왔는데요. 여러분들과 함께 이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가장 감사할 때가 언제인가요? 맛있는 밥을
먹을 때일 수도 있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월급이 통장에 꽂혔을 때 그때가 감사하다고. 또 누군가는 아침에 눈을 뜨고 눈을 떠봤더니 내 팔다리가 잘 움직일 때 그때 감사를 고백한다고 합니다. 제가 말한 모든 순간이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시간이죠. 제가 이 질문을 우리 교회 다양한 연령때인 분들 세 분께 해 왔거든요. 한번 화면을 통해 만나 보시겠습니다. 제가 그래도
익명으로 가렸습니다. 제가 손흔 드는 라이언에게 이렇게 물어봤어요. 중경아, 너는 어떤 때 하나님께 가장 감사하니? 자기 전해요. 이거만 보고 좀 기분이 안 좋았는데 그래서 왜 물어봤었는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게 감사해서요. 오케이.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이번에는 엄지척 제이지 자매님한테 제가 물어봤습니다. 서진아, 너는 어떨 때 하나님께 가장 감사하니? 저는 길이 없다고 낙담하고 있을 때 길을 보여 주셨을 때 든든하고 감사해요. 굿이라고 나눠 주셨습니다.
이번에 멋쟁이 네. 프로도 형제님께 이제 여쭤봤습니다. 안수 형제님 궁금한게 있습니다. 언제 감사하시나요? 감사하기는 항상 감사하지. 가장 감사하는 건 나를 선택하셔서 내 멋대로 살던 곳에서 여기까지 인도하신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어 청소년부 학생도 또 청년 자매님도 우리 교회 사역자이자 장년부인 형제님께서도 이런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에는 다양한 그룹이 있고 또 나눔을 할 시간도
엄청 많습니다. 저도 그 여러 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때 분들과 또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나눔을 할 때가 많은데요. 제가 그곳에서 나눔을 하고 또 여러 사람들의 나눔을 듣다 보면 아 참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과 기쁨을 내가 잘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감사로 고백하는 분들이 참 많음을 봅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분들의 나눔을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삶의 자리에 나아가서는 몰래 따라해 보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예배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도 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제가 나눔을 해 보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아까 전도사님이 처음에 얘기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의 가장 핫한 붉음에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여러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또한 기쁜 일이 생기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며 살아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말씀 주제로 감사를 가지고 왔지만 감사한 일이니까 누가 봐도 기쁜 일이니까 안도의 순간이니까 감사하자는
그런 내용보다는 고난과 가까이 있음에도 감사가 나오지 않는 순간에서도 감사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전해 보려고 합니다.이 내용을 가지고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새 인무를 통해 오늘 말씀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단계별로 이렇게 1단계, 2단계, 3단계 가져왔거든요. 그까 여러분들은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점검해 보시면서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양주사람 박현우입니다. 저입니다. 풍삶초의 표현으로 십자가를 물고 태어난 저는 모태 신앙인이고
초등학생까지는 교회 가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교회 사람들과 이렇게 관계를 맺고 교재하는 걸 너무 행복해 했어요. 근데 제가 청소년식이 중일이 되자 저에게는 첫 번째 고난이 어 시작했습니다. 그 초등학교 때까지 다니던 교회가 사라졌어요. 단임 목사님이 은퇴하셔서 사라지고 제가 부모님을 따라가게 된이 어 교회에서는 제가 첫 번째 고난을 맞이하게 됐는데 제가 그 전 교회에서는 정말 나의 무슨 말이든 무슨 행동이든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또 따뜻하게 대해 줬다면 새로운 교회
가서 똑같이 했는데 이제 저를 잘 모르니까 오해를 많이 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뭐 그 교회 사람들이 나쁘다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왜냐하면 저도 너무 어렵기 때문에 미숙하고 실수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순간을 제가 지금 고난이라고 고백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그 시선들을 느끼고 정말 숨이 안쉬어지는 그런 저의 마음들이 제가 교회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그 순간들이
되었고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 순간을 고난으로 고백합니다. 어쨌든 그 청소년 시기에 제가 교회에서 그렇게 고난을 받고 있을 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한 마디도 안 해야겠다. 내가 말하면 다 오해받아, 비난받아 안 해야지. 근데 부모님덕에 교회까지 매주 갔어요. 근데 부모님이 이제 어른 예배드리로 이렇게 시야에서 사라지면 저도 같이 반대로 사라지고. 근데 부모님이 어쩐 날은 끝까지 이제 절 보실 때가 있어요. 들어가나 보면 그때 저는 끝까지 들어갔습니다.
제가 그때 청소년부 예배에서 제일 싫어하던 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일어나서 박수 치며 찬양합시다. 제가 주일마다 주구 장창 외치고 있는 이 말이 저는 제일 싫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제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저는 교회만 가면 숨이 막히고 괜히 막 등이 간지러웠어요. 그리고 조금은 사람들이 무섭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어 고등학생 거의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당연히 그렇게 제 삶에는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청소년부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중간에 다른 사역으로 아주 잠깐 어 공백이 있었지만 약 4년째 청소년부 친구들과 교회에서 사랑하면서 또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은 저렇게 사진처럼 잘 지내는 거 같아 보이지만 처음에 제가 청소년부 교사를 맡고 나서는요. 걱정이 되게 많았어요. 아니 청소년부를 그렇게 보낸 내가 어떻게 청소년부 교사를 하지? 애들한테 본이 돼야 되잖아. 선생님이면
나는 어떻게 무슨 모습으로 본이 돼야 되지? 아, 진짜 모르겠네. 이런 생각으로 어, 청소년부 교사 처음으로 이제 하게 됐는데요. 막상 그 예배당에가 보니 제가 할 일이 보였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저와 같은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친구들, 또 땅만 보고 있는 친구들. 일어나서 찬양하자고 하면 바로바로 일어날 것이지 꼭 제일게 막 이렇게 두리번 걸 이러 마지막에 일어나는 친구들네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한테
좀 먼저 다가갔던 거 같아요. 근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가갔습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나에게 다가오는 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짓기 원하셨을까? 이런 것들을 마음이 새기고 학생들한테 다가가다 보니까 카톡을 다섯 번 보내야 한 번 답장하던 친구는 두 번 중에 한 번 답장하기 시작했고요. 한 주간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6개월 내내 그냥 잘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라고 답 대답하던 그 팬 모임에서 대답하던 현서는 어느 순간 아 이번 주는 빡셌어요라고
처음으로 진심 있는 나눔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3, 4년째지고 볶으며 교사 사역을 하고 있는 저는 지금도 하나님한테 종종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청소년부 시절 그 고난이 나에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저는 이렇게 고백해요. 어, 그리고 저에게 오늘 나늘 두 번째 고난도 찾아오는데요. 제가 22살이 넘어서 이 고난은 한 번 더 찾아옵니다. 제가 세례 대식 때 나눠서 아시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거의 어렸을 때 저와 맨날 저를 키우시던 외할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지시고 그리고 바로 또 엄마가 암에 걸리시고 제 남동생이 엄마가 암 걸리니까 마음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나중에 말해 준 건데 엄마 그 가방 사 주려고 몰래 배달 알바를 처음 시작했다가 교통 사고가 크게 나서 엄마보다 더 누워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또 동생이 나니까 엄마가 또 한번 암이 걸렸습니다. 사실 가족이 아픈 것도 너무나 힘들었는데 제가 지금 돌아보면
의지할 곳이 없어서 힘들었던 거 같아요.이 모든 상황을 혼자 해결하시고 그 돈을 버시는 아빠한테나 제가 의지할 수 있나?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막내 동생한테 제가 의지할 수 있나? 저는 가족에서 의지가 의지하기보다는 어 가족의 그 힘이 되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끄러운 세상이 잠들고 고유함을 마주했던 어느 순간 하나님이 제 기대 곳이 되어 주셨어요. 물론 나타나시고 얼굴을 보이시고 목소리를 들려 주신 건 아니지만 갑자기 찬양을 생각나게 하셨고 처음으로 제가
찬양을 찾아서 듣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후에는 불안해서 찬양이 없으면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매번 모드찌 찬양을 찾다가 한번 예배에 나가 보자 해서 우리 사귐 금요일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안에 처음에는 듣기만 하다가 어 좋아서 한 소절 불러도 보고 찬양만 하다가 어느 순간 말씀을 딱 한 마디만 들고 집에 가고 그러다가 정신 차려 보니까 지금 찬양을 인도하고 있고 이렇게 말씀도 전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하나님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난도 제가 떠올리며 이런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세상 속에 의지할 곳 하나 의지할 것 하나 없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서른을 앞둔 지금의 저에게도 여러 가지 모양과 깊이의 고난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난이 언젠가 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게 어 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다 보면 어느새 찾아오는
평안과 기쁨을 어 마주하고 그 기쁨에 잠기고는 합니다. 또 고난을 통해 나를 더욱더 하나님 곁으로 부르시는 그분의 크신 계획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지금 찾아오는이 고난 또한 멀어져 갈지 모르는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자 내게 너무나 기쁜 복음임을 인정하니 저한테 또 한번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저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저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귐의교회에서 많은 분들과 나눔을
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는 특히 이런 나눔을 많이 들어요. 돌이켜 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더라고요. 여러분들께서도 저와 같은 아니 어쩌면 저보다 더 큰 삶의 고난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고난 중에는 어 그때는 진짜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는 그런 고난도 있으실 거예요. 저도 앞선 두 고난을 생각해 내느라 진짜 힘들어서 죽을 뻔했습니다. 거짓말 하면 안 되니까.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주어졌던 고난들이이 시대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누군가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면 그 고난은 저의 고백처럼 없었으면 큰일날 고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어떤 고난을 지나오셨습니까? 과거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고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근데 있잖아요. 혹시나 그 고난 덕에 여러분께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 고난이 다시 꺼내기 어려운 힘든 그런 고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고난까지 주시며 하나님 곁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여러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우수사람 욥입니다. 욥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자녀뿐만이 아니라 욥은 재산도 많았는데요. 양은 7천마리가 있었고 낙타는 3천마리 또 소와 암나귀는 각각 500마리씩 있었습니다. 게다가 종 또한 셀 수 없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했죠. 욥의 재산이 현시 현재 시세로 얼마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약 400억 이상의 자산가라고 합니다. 과연 그 자녀도 많고 재산도 많았던 욥을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수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렇게 자녀도 많고 재산도 많고 부족한게 없이 사는 사람은 주로 꼭같이라고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잘날에 살고 죄를 저지르며 사는게 대부분입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우리가 볼 욥은 그러지 않았어요. 온전하고 정직한 인품을 가졌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악에서 떠난 사람 삶을 사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욥에게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고난이 찾아왔는데요. 어 욥이 받는 고난이 무엇인지 길지만 함께 성경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꾼 하나가 욥에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말하였다. 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나비들은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축들을 빼앗아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이 일꾼이
아직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서 양떼와 목동들을 살라버렸습니다.저혼자 저 혼자만 겨우 살아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갈대아 사람 새무리가 갑자기 낙타대에게 달려들어서 모두 끌어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이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아드님과 따님들이 큰 아드님께서 한창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광야에서 광풍이 불러와서 그 집 모퉁이를 내리쳤고 집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젊은 사람들이 그 속에 깔려서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어 우리는 궁금한게 있습니다. 앞선 우리가 구절을 읽을 때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흠이 없는 자였는데 왜 성경이 인정하는
의인에게도 이런 고난이 찾아올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인과부로 돌아가고 운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욥과 같은 의인도 하나님을 주로 섬기고 그물밤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에게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이제 그렇다면 오늘날로 치면 욥은 어떤 고난을 받고 있는 걸까요? 제가 한번 어 상상의 나라를 펼쳐 드릴테니까 한번 여러분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봐 주십시오. 친구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사업장 아니면 직장에서 사기를 당해서 폐업하게 되었고 일자리를 한 순간 잃게 되었습니다. 퇴직금 줄 수 있어요? 못 준대요.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일해야 되지? 뭐 먹고 살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전화가 와요. 집에 도둑이 들어서 집문서며 통장이며 돈 되는 모든 물건을 가지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어 이번에 진짜 어쩔 몰라서 어 이렇게 막 떨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옵니다. 뭐라고 전화 왔을까요?네 네. 자녀가 네. 여러분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서 제가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써 놨어요. 그래서 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그대로고요. 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상상만 해도 너무 힘든이 일이 몇 분 사이에 이렇게 닥친 욥은 매우 좌절했고요.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성을 잃은 상황이었어요. 성경에서는 욥이 너무 슬퍼서이 슬픔을 못 이기고 겉옷을 다 찢어버리고 자신의 머리를 다 밀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합니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라고 말이죠. 이후에도 욥에게는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온몸은 악성종기로 가득해져 하루 종일 긁어야 했고 뼈를 쑤시는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겉모습까지 혐오스러워져서 사회적으로도 격리를 당해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남은 사랑하는 가족 아내이자이 모든 고난을 함께 견뎌온
그 아내 또한 비난과 저주를 합니다.이 이 상황에서도 욥은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고 하겠냐고 외치며 다시 한번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데요. 우리 그 말씀 한번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 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네. 물론 욥도 매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지는 못했습니다. 욥에서 유명한 친구들과의 토론을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화도내고 항의를 하는 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혼돈하면서이 세상을 통치하고 주인되신 하나님의 그 주권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고난이 닥칠 때 어떻습니까? 여러분 도저히 하나님께 기도가 나오지 않고 감사가 나오지 않고 원망만 나오지는 않으십니까? 저는 욥 같은 일이 저한테 있어서 제 가족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원망해서 멈추지 않고 정말 저주할지도 몰랐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시선으로나 경험으로 볼 때 나에게 닥치는 고난이 너무나 아프고 크게 느껴질 때면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누구인지를 한번 잠잠히 생각해 봅시다. 바다를 지으신 분이
누구이고 바다와 땅에 그 경계를 지으신 분이 누구이며 우주를 지으시고 그 별자리를 운행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떠올려 봅시다.이 세계 많은 동물들을 지으시고 각 동물마다 다른 본성들을 불어넣어 주신 그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빛을 통제해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매일마다 정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떠올려 봅시다.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그곳까지 다스리며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합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 큰 세상을 계획하시면서도
다스리시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나의 삶, 나의 길 또한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반드시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큰 복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인물인데요. 나사렛 사람 예수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감사 기도를 드렸을까요? 예수님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오병이요 사건이 있습니다.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여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말씀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사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네. 잘 들어보십시오. 축사하시고 노란 색깔 쓴 거는 자 복을 빌다, 축복하다입니다. 그래서 이게 에울로게센이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축사하시고 아니고요. 에올로게센이고 목사님이 아마 깜짝 놀랐을 겁니다. 지금 제가 목사님과 비슷한 모습을 보고 네. 그래서
이 축사하시고 에올로게센은 복을 빌다, 축복하다라는 의미인데요. 유대 전통에서 음식 앞에서 드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이 축복 기도는 감사 기도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로 5, 명을 먹이신 후에 감사기도 한게 아니에요. 5,명이 그 떡을 먹는 중에 감사기도 드린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이 기적이 행하여지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고요. 그 후에 떡을 떼어서 사람들에게 먹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이루어진 그때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처한 현실이 어둡고 막막했음에도 한발 앞서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하시는 그분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한 발앞합선 감사가요 한 번 더 나오는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마지막 만찬 때에 마태복음 말씀을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죄를 사하여 주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네. 마지막 만찬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죠? 내가 곧 고난을 받겠구나. 내가 곧 죽임을 당하겠구나. 하지만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둔 그 마지막 시간에도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어 여러분 예수님은 도대체 뭐가 감사했을까요? 그냥 하나님 순종하겠습니다. 힘내겠습니다라고만 기도해도 됐을 텐데 예수님은 감사를 고백합니다. 왜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시는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향기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어 근데 여러분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어요. 예수님은 신이니까 가능한게 아닌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자기가 고난을 받을 것도 아셨고 죽임을 당할 것도 아시지 않았나요? 저는 저에게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르는데 나는 어떻게 한 발 앞서 감사를 드릴 수 있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어, 근데 여러분, 놀랍게도
우리도 한 발앞선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회심을 고백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누가 계시죠?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회심을 고백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고 또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성령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원하시나요? 제가 누군가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기 원하시나요? 저 지금 어떤 길로 가야 합니까? 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길 바라십니까? 이렇게
우리가 질문을 하고 나아간다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선한 길로 이끄실 거예요. 근데 그 선한 길이이 세상에서는 고난의 길일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또 뭐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그런 동료가 있습니다. 모두가 막 뒷담마를 하고 있는 순간에 저한테도 동조를 요하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때 제가 성령님께 물어봐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령님은 반드시 동조를 명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동조를 명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제가 하나님이 하라는 말을 하면 그 메시지에 순종하는 순간 나는 그곳에 있는 모두가 동조하는 그 잔잔한 분위기에 돌을 던진 사람이 되고 유별난 사람이 되고 팀의 단압을 깨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머지 하나 내게 고난으로 다가오죠. 하지만 이럴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내게 주어질 고난을 앞두고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그 주의 일꾼이 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 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편법을 살짝 써서 마케팅을 하면 수익이 배로 날 수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방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않은 방법이야. 그렇게 생각해서 포기한다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용기를 얻고 살 수 있게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한다고 세상이 멋있다, 아름답다 이렇게만 바라보지 않아요. 오히려 그게 뭐야? 그거는 정직한게 아니고 미련한 거 아니야?
멍청한 거 아니야? 바보 같은 거 아니야?라고 라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그런 거 말고 나의 상황 또한 나아지지 않죠. 재정도 어려움 가운데서 긴 시간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회사에 존폐 여부가 달려 있어 고난일 수도 있고 생계를 위협해서 고난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을 먹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그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향기를 품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이십니다. 하지만 그 길은 여전히 세상이 보기에는 고난을 향해 달려가는 미련한 길, 바보 같은 길일 것입니다. 세상은 말하죠. 아, 내가 아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말하지. 누가 말하겠어? 이런 말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잡고 휘두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눈물 나도 그냥 눈물 닦고 가는 거. 다가올 고난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거.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앞서 보았던 예수님이 한 발 앞서 감사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기도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너무 감사가 고백되는 순간, 기뻐서 죽겠는 순간 그때 하나님한테 엎드려서 기도를 드리는 것 또한 하나님은 너무나 기쁘게 받아들이시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도무지 웃음이 안 나고 도무지 감사가 안 나오더라도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셨던 것들, 지금 하고 계신 일들, 앞으로 하실 일들을 신뢰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듣기 원하시는 십니다. 어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감사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아직은이 첫 번째 소망이 가득할 때, 기쁨이 가득할 때, 행복이 가득할 때만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좋습니다. 너무 잘하고 계신 거죠? 근데 우리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봅시다. 나를 하나님께로 붙들기 위해 내게
과거에 있던 그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합시다.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견딜 힘 또한 주신 그분께 감사하며 우리에게 지나온 그 고난을 더 이상 고난으로만 바라보지 맙시다. 또이 자리에 저의 고백처럼 두 번째 나와 있는 것처럼 과거의 고난을 감사로 고백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나요? 슬픔 가득했고 눈물로 보내던 아이들이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임을 깨닫고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감사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그것은 지금 과거에 내 고난 말고 지금 내게 있는 고난 혹은 나에게 찾아오는 그 고난 그것을 마주했을 때도 감사기도 드리는 것입니다.이 고난을 통해서 나의 삶에 역사하실 하나님 지금은 너무 힘들고 괴롭고 희망이 꺾여 넘어질 것만 같습니다. 예배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를 찬양합니다. 주께 감사합니다. 박수가 안 나오지만 박수치며 소리 높여 찬양하겠습니다.이
시간을 통해 나를 더욱 주의 자녀로 만드실 것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감사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큰 은혜,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세 번째처럼 욥처럼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하는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나보다 나를 잘하시는 주님이 나보다 나의 고난을 더 아시기에 괴롭고 슬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이에게 큰 은혜를 부어 주시리라는 어떤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배와 기도를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여러분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시고 여러분을 덮치는 그 고난과 최전선전에서 싸우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마지막에 있는 것처럼 우리도 나의 막막한 상황과 어둠이 아니라 그분의 일하심을 신뢰하면서 예수님처럼 한 발 앞선 기도를 드립시다. 하나님 주의 자녀으로 순종하며 살다 보면 고난이 찾아올 것은 뻔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솔직히 무섭습니다. 하지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고난 무섭지만 고난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걸 더 무서워하겠습니다. 때로는 고난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를 지키시는 주님 내게 고난 주심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깨어진 세상을 살아가기에 여전히 고난이 찾아오고 고난 한 가운데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처럼 내 과거의 고난, 현재에 닥친 고난, 미래에 다가올 고난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고백하는 것이 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밤이
없을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