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하나님의 구원과 기쁨의 노래

2025-09-14 · 스바냐 전체 · 이상준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이 시간 우리 이상주 목사님 나오실 때 함께 기쁘게 환영하면 좋겠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예, 저는 예, 동도천 행복한 교회 상준 목사이고요.이 귀한 자리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강 목사님이 설교를 부탁할 때 제가 아주 주저하지 않고 오케이했던 건 제가 강 목사님 설교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 그렇게 어렵지 않게 오케이했습니다. 저보다 더 어 더 길게 더 진하게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뭐 제가 어 제 설교는 예 특징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제

강의인지 설교인지 또 언제 아멘을 해야 될지 예 모르는 설교인데 예 우리 하여튼간 강목사님 제가 설교를 이렇게 유튜브로 몇 개 보면서 아 뭐 제가 가서 설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저는 이제 동도창 행복한 교회 저희가 다음 주면 2주년 됩니다. 이제 새롭게 개척을 한지 역사는 한 20년 됐거든요. 20년 넘어 된 교회인데 한 10년 가까이 예배당이 이제 방치가 돼 있고 그다음 사건 사고가 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있어서 이제 방치된 교회를

이제 맡아서 다시 이제 재 개척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래서 딱 다음 주면 2주년 되는데 그전에는 제주도에 있었고요. 어 혹시 YM 출신 계십니까? 제가 이제 열방대학 간사였고요. 어 열방대학 간사로 있다가 제주도에서 개척 각오한 13년 12년 개척교회 섬기다가 이제 제주도에서이 동도촌으로 올라온지가 2년 된 거죠. 그래서 이제 올라와서 우리 이제 강목사님하고 하나에서 만나서 같이 이렇게 교재하게 됐고 또 어떻게 보면 사촌이죠. 뭐 기성이나 예성이나 뭐 같은 원래

교단이었는데 이제 갈라지게 돼서 뭐 저는 기성 목사고 우리 어 강 목사님은 예성 목사고 예 그렇게 나누어졌지만 원래는 한 가족이죠. 그래서 같이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교회를 어떻게 세울 건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함께 이렇게 자주 만나서 고민하고 또 같이 나눔을 갔습니다. 그래서 어 기쁨으로 제가 우리 사귀 사규 교회 보게 됐고요.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나 반갑고 감사합니다. 자, 오늘은 여러분과 이제 어 스바냐 말씀을 같이 나눌 건데 어 좀 큰 그림을 제가 그려 드릴

거예요. 어차피 여러분이 뭐 이번 주간 다 1장부터 3장까지 묵상을 하셨으니까 제가 본문 내용을 가지고 뭐 구체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냥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스바냐서를 어떻게 좀 이해하고 그걸 우리 삶 가운데 좀 적용할 수 있을까? 거기에 굉장히 중요한 개념들, 주제들을 좀 여러분하고 나누면서 오늘 내용을 같이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어 그전에 저희 가족을 좀 소개하면 저는 딸만 내십니다. 예. 저기 쭉 앉아 계신데 예, 집에

여자 다섯 있습니다. 예, 그 저희 딸들이 어디 나가서 자기 이름을 막 이렇게 아빠가 예와로 얘기하는 거 너무 싫어해서 제가 여자 1호, 2호, 3호, 4호 이렇게 부르는데 그건 여성을하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분은 오해하시더라고요. 뭐 여자 1, 2호, 3호 그렇게 부르냐? 근데 어 저희 딸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저희 딸들이 너무 싫어해서 제가 이제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여성 여자 1호 여자 2호 여자 3호 그 여자 5 영호가 있죠요. 그분 예 참아 제가

부를 수 없는 예 그분하고 여자 5시랑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유명한 애긴남이죠. 애긴남. 그렇죠. 제가 그 유명한 애긴남입니다. 예. 저는 이제 그 유교 보이거든요. 전통적으로 유교 보이. 저희 아버지가 이제 그 남자는 설거지하면 안 된다. 손에 물을 묻히면 안 된다라는 이제 그 원칙을 갖고 계신 분이어서 저도 뭐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저는 이제 후천적인 페미니스트가 됐습니다. 예. 굉장히 여성에 대한 어떤 그런 인권과 그 여성 직장에 대한 뭐

그런 저희 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 강제적으로 막 제가 억지로 그렇게 변해 있는 남자인데 하튼간 어 여자 다섯 분하고 같이 잘 살고 있고요. 예. 이건 뭐 제가 유튜버긴 하지만 제가 넘어가고 예. 자, 먼저 간단하게 저자에 대한 얘기를 좀 할까요? 자, 저자 스바냐인데 쉽게 말하면 아프리카의 유대인이죠. 굿스라고 하는게 오늘날의 수단인데 그렇다고 흑인을 얘기하는 거 아닙니다.이 스바냐가 흑인이란 얘기가 아니라 이제 그 당시 굿스 출신 아프리카계 유대인일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 추측을 하고요. 그다음에이 스바니아서는 창세기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죠. 그래서 여러분이 지난 한 주 스바냐서를 이렇게 쭉 묵상하다 보면 마치 창세기 1장 2장의 내용을 막 다 뒤집어 없는 거 같은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 창조 질서를 막 다 뒤집어 엎어서이 세상이 다 불타고 없어지고 사라질 것처럼 막 스바냐서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얘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이 스바니아서는 창세기에 영향을 받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명기이 우리다가 이따가 이제 신명기 사관에 대한 얘기를 할 건데 그런 신명기의 영향을 받았고 그다음에 동시대 활동했던 예언자들이 나오미나 하박국이나 예레미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포로 이 거의 이전 마지막 활동했던 선지자들 제가 영상 보니까 이게 강국사님이 자꾸 영상에서 사라지던데 그 이유를 제가 알게 됐습니다. 영상에서 자꾸 사라지길래 저분이 어디 가시나 그랬더니 예. 그래서 나옴, 스바냐, 예레미야, 하박국이네 명이 같은 시대에 거의 유다 왕국 말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거 뭐 다 쓰시거나 뭐 이렇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전도사님께 PDF 드렸거든요. 요거 PDF. 그러니까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뭐 받아 받으실 분 없으실 것 같지만 어쨌든 제가 이거 PDF로 몽땅 다 드렸으니까 혹시 원하시는 분들은 PDF 달라 그러면 이 내용 그대로 드릴 거니까 예 그냥 오늘은 전체적인 이해 예 그림만 잘 그려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에 활동했던 선지자 예언자가 스바냐이고요.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숨기신다 혹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신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스바냐의 고조부가 히스기아 그다음에 어 그 아들 문나세 그니까 문나세 때 스바냐가 태어난 거죠. 스바냐가 태어났고 그다음에이 스바냐의 그 탄생을 그니까 그 태어난 그 시기를 좀 살펴보면이 문화세 시대인데 이따가 또 조금 더 나누겠지만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가장 아암흑기 예 가장 타락하고 가장 아암흑기 때가이 문나세 통치 기간이거든요. 이때 스바냐가 태어났는데 아마 어 부모가 스바냐라고 하는 이름을

지어 준 이유는 그 하나님의 어떤 구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 준 거 같아요. 자, 무슨 말이냐면이 스바냐가 여호와께서 숨기시다. 근데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여호와께서 드러내신다. 드러내신다는 건 심판을 얘기하는 거죠. 심판. 그리고 숨기신다는 건 하나님의 그 여호와의 구원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의미가 그 안에 들어가 있고 또 숨기신다는 것은 남은자이 스바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이 사상이 남은자

사상인데이 남은자에 대한 어떤 그런 그 의미로 어 그 이름이 연결된다는 거죠. 그래서 스바냐 2장 3절 읽어보면 여호와의 귀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할 때 여호와께서 숨기신다.이 구원을 얘기하는 거고 그렇게 숨김을 당한 자들이 남은 자들이죠. 남은 자들. 그리고 오히려 드러난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그 이름 안에

있고요.이 기록 시기를 보면 이제 스바냐가 요시야 왕 때 활동한 거 같아요. 어, 여러분 혹시 구약의 3대 부흥 운동이 있어요. 그 왕정 왕정 왕이 다스리던 그 구약의 그 기간에 세 번의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첫 번째 부흥 운동이 여호사밧. 예. 그 유다네 번째 왕 여호사밧 때 부운동이 일어났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가 히스기아. 예. 그 13대 왕인데 히스기아 때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그다음에 세 번째가 마지막 부흥 운동인데 그게 16대 요시야거든요.

요시야. 그리고 그래서 스바냐가 활동했던 데가이 그 요시야 요시야 왕때 스바냐가 활동을 했고 어이 요시야 왕때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냐면 성전을 재건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한 거죠. 근데 아마 이 스바냐 내용을 보면 이 율법책을 발견하기 직전이었던 거 같아요. 예. 그 내용을 스바냐 내용을 보면 그래서 주전 622년 이전에 아마 이 스바냐아서가 기록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 스바냐의 메시지는 신명기에 영향을 받았다. 이것도 뒤에 좀 얘기를 할 거니까

뒤에 가서 더 얘기하고요. 자 유다 유다는 문화세와 암문 암문왕 시절의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리로 인해서 신앙적으로 매우 타락한 상태 가장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타락하고 어두웠던 시대에에 그 문화세가 아이 스바냐가 태어났고 그다음에 잠깐 반짝한 거죠. 요시야 때 이제 마지막 부흥 운동. 어떻게 보면 꺼져가는 불을 이제 잠깐 다시 그 불을 살려내는 그런시기 때이 스바냐가 활동을 한 거 같아요. 어 여기서 혹시 이제 그 한 가지만 여러분하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우리가 부흥이라고 하면 영어로 리바이벌이라고 하잖아요. 리바이벌. 그게 어떤 의미입니까? 리바이벌이 리가 다시라는 의미가 있고 바이벌은 생명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부흥은 성장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수적인 성장. 뭐 100명 뭐였던 교회가 200명 되는게 부흥이 아닙니다. 예. 부흥은 죽어가는 그죠? 꺼져가는 어떤 신앙. 죽어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어떤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으로 되살아나는 거. 마치 중한 자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이 심패 소생에서

막 살살려내는 그런 것을 부흥이라고 하죠. 그리고 그런 부흥이 세 번 있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호사밧 그다음에 히스기아 요시야 마지막 요시야가 이제 그 시기에 겹쳐 있는 거고 스바냐에. 근데 이제 이 요시야가 너무 이제 그 빨리 죽죠. 물론 올해 왕이 있었지만 어 그 전전투에 나갔다가 그냥 갑자기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유다가 거의 이제 이 패망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그런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자, 그래서 어 다시 뭐 말씀드리지만 그 스바냐가 저 요시야

그죠? 요시야 왕 때에 활동을 했고요. 이미 북 이스라엘은 패망을 했고 이미 패망을 했고 어 요시야 왕때 어떻게 보면 어 유다의 마지막 거의 마지막시기 때에 활동을 했고 그런 예언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시기를 좀 이해하면 어 스바냐가 왜 그런 그 예언 사역을 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자, 어, 이거는 이제 그 북 이스라엘하고 남유다 왕들 표인데 방금 얘기했죠. 여호사바 때 한번 부흥운동이 있었고 히스기아

때 또 한번 있었고 마지막으로 요시야 때 있었는데 재밌는 건 스바냐가 문나세 때 태어났다고 그랬잖아요. 문화세. 근데 가장 악한 왕이거든요. 근데 그 아버지가 히스기아인데 가장 어떻게 보면 선한 왕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왕인데 그 아들은 아주 막난이가 태어난 거죠. 아 막난이가 태어나서 아주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저녁을 가장 초화시킨 왕이 문나세예요. 문나세. 근데 또 그 문나세의 손자가 요시야인데 요시야가 이제 마지막 부흥 운동을 일으키죠. 그래서 저는 이런 걸

보면 그런 그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경건한 부모에서 경건하지 않은 자녀들이 태어날까? 혹은 반대로 경건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어떻게 경건한 자녀들이 자랐을까? 아, 그런 질문을 만들게 되는 거 같아요. 아무튼이 스바냐가 그런 배경이 있다는 걸 여러분이 좀 이해하시면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 문나세 왕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좀 드리고 싶은데 유다 왕국 역사장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12세 왕이 올라서 가장 오랫동안 또 왕이 있었어요.이

이 악한 왕인데 제일 오랫동안 있으면서 하여튼 어 유다 이스라엘 전체를 아주 엉망 징창으로 만들어 놓은 가장 우상숭배와 또 하나님을 저버리는 어떤 그런 죄악들을 가장 많이 행했던 왕이 문나세죠. 그리고 방금 얘기해 드린 것처럼 가장 이해가 안 되는게 그 아버지가 또 히스기아 어떻게 보면 어이 신앙의 회복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시키려고 가장 왕이 또 히스기아데 그 어떻게 그 자식이 또 가장 악한 왕으로서 이스라엘 유다를 저렇게 패망의 길로 가도록 만들었을까라고

하는 어 질문을 만들게 되는 그런 어 사람이죠. 죠. 자, 그 문나세의 죄가 여섯 가지로 표현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우상숭배의 부활. 그 아버지 히스기아가 철패했던 우상숭배와 산당들을 다시 세웠고요. 성전을 모독했고 또 천체 숭배 하늘 뭐 달과 별과 해를 어 섬기는 그리고 또 인신 제사 자기 아들을 또 제사로 재물로 드리는 그런 악행을 범 범하기도 했고 점술 또 무구한 피를 흘리는 그런 죄를 범한 사람이 문나스죠. 문났어요. 자, 반대로 이제 스바냐가 활동했던 시기가

이제 요시야 왕 때인데 또 요시야 왕은 반대로 다윗왕과 함께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그니까 다윗와 다윗 이후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요시야거든요. 요시야. 자, 여덟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그래도 오랜 기간 31년 동안 그 통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대적인 신앙 개혁을 했죠. 그니까 이것도 참 우리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할아버지. 그리고 자기 아버지는 이제 2년만 왕이 있었어요. 암살를 당해서 2년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요시야가 굉장히

어린 나이 여덟 살 때 왕이 됐는데 보고 배운게 없잖아요. 그 할아버지도 막나니 자기 아버지도 막나니 완전히 엉망 징창인데 도대체 요시야가 무슨 영향을 받았고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다시 하나님을 찾는 어 하나님께 돌이키는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어 우리는 질문을 한번 좀 던져 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대대적인 신앙 개혁을 했죠.네 네 가지 했는데 첫 첫 번째가 철저한 우상을 척결하고 철저하게 우상을 척결하고 그다음에 율법책을 발견한 거 이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죠. 성전을 재건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율법 책을 이제 서기관 제상들이 와서 이제 그 요시야 왕 앞에 읽다가 요시야가 그걸 듣고 막 자기 옷을 찢잖아요. 그니까 얼마나 이들이 말씀에서 떠나 있었는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무지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떠나 있었는가라고 하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든 그 요시야가 그렇게 하나님의 그 율법책을 발견하고 언약을 갱신하죠. 언약을 갱신하고 그다음에

흩어져 있던 예배 막 곳곳에서 산당에서 막 어 막 그 엉망 증창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을 성전 중심으로 예배를 회복하는 그런 운동을 했고 그다음에 유월절을 준수하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근데 이제 아쉽게도 무기도 전투에서 너무나 급작스럽게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마지막 어떻게 보면 불길이 이제 사그어든 거죠. 사그어들고 유다는 이제 패망의 길로 이제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거의 유다 말년 그러니까 패망의 마지막 길을 가게 된 거죠. 그때 이제 활약했던 활동했던

선지자가 바로 스바냐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어 팬보임할 때 질문을 좀 달라고 그래서 그냥 저의 어떻게 보면 오래된 하나님 앞에서 질문입니다. 경건한 부모 밑에서 왜 경건하지 못한 자녀가 태어나고 혹은 경건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또이 경건한 자녀가 어 잘할까 한번 여러분의 의견들 생각들을 한번 나눠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자, 좀 본문으로 들어가서 근데 제가 본문 구절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 드릴 겁니다. 자, 우리가 스바냐서를 이해하려면

가장 중요한 거를 여러분이 좀 알아야 되는데 그게 뭐냐면 그게 신명기 사관입니다. 신명기 사관. 그러니까 구약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게 신명기 말씀으로 그 구약의 역사를 바라보는 건데이 역사를 단순히 그 사건의 나열이 아니거든요. 사건을 순서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의 의미와 원인을 파악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틀이 있었어요. 관점. 그게 신명기 말씀으로 그 바라봤다는 거죠. 그 신명기 말씀의 핵심이 뭡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그 신명기 말씀의 가장 핵심이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계속 적용이 돼요. 그리고 구약 예언자들의 예언의 핵심은 뭐냐면이 10명기 말씀을 갖고 예언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바벨론에 의해서 아니면 아시아에 의해서 아니면 주변 나라에 의해서 지금 이스라엘이든 남유다든 엉망징창이 됐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뭐냐? 너희들이 여호와를 떠나서 그렇다. 여호와를 떠났고 너희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그래. 신명기 말씀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미 말씀하셨다. 여호와를 찾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그러나 반대로 그 여호와를 떠나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 우리가 지금 당하는이 일이 그 신명기 그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야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이 신명기 사관에 대한 이해를 여러분 잘 알고 계셔야 되고 그래서 흑망 성세 예 흑망 성세의 기준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 순종 하나님 그 언약의 관계 언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이

언약이라고 하는 의미가 이게 나중에 예수님에게로까지 연결돼요. 구원도 언약의 관계예요. 신약의 구원도 언약의 관계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언약이거든요. 언약 언약이 언약이라고 하는 걸 잘 이해하고 계셔야 됩니다. 자, 뭐 이거는 잘 뭐 제가 구절적인 설명 안 해도 될 거 같고 근데 오늘 여러분하고 나누고 싶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게 주의 날, 여호와의 날, 야외의 날이 개념인데 스바니아서에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뭐죠? 그날 그렇죠? 그날에 그날에 계속 심판을

얘기하면서 어떤 특정한 날을 계속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도대체 그날이 뭐냐? 자,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이제 주의 날 혹은 여호와의 날, 야외의 날인데 주의 날이라고 하는 건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날에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신다는 거예요. 개입하신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로 몸소 정하신 날. 그래서 하나님이 그날에 하늘에서 찾아오셔서 구원과 심판을 이루신다는 거예요. 구원과 심판.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데

반대로 뭐예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어떻게해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에 구원과 심판을 하나님이 이루실 거야라고 하는 그것이 이제 주의 날이거든요. 그래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계속 주의 날 주의 날 그날 어 야외의 날 여호와의 날을 얘기합니다. 자 근데 아마 이 얘기는 대부분이 못 들어보셨을 겁니다.이 이 개념을 조금만 정리하시면이 구약이든 신약이든 좀 정리가 되는 부분들이 많은데이네 가지 단어만 잘 이해하시면

좋겠어요.이 이 여호와의 날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이네 가지 단어 창조, 반창조, 역창조, 새창조 어 자 이제 예를 들면 출애굽이 그 모델이 되는데 창조라고 하는 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창조 질서를 정하셨죠. 그죠? 창조질서를 하나님이 세우셨는데이 반창조라고 하는 건 그 창조질서에 반하는 거. 예를 들면 출애굽 그 바로가 어떤 명령을 내려요? 이스라엘 여인이 이제 아이를 낳는데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나 살려 살려라. 그러니까 창조질서에 반하는 거죠.

그렇죠? 창조질서에 반하는 거. 그래서 하나님이 그 이집트 땅을 그리고 그 바로를 하나님이 심판하시죠. 근데 뭐로 심판하세요? 역창조. 그러니까 창조 질서를 하나님이 뒤집는 거거든요. 예. 이해되세요? 역창조. 그게 열 가지 재앙이에요. 열 가지 재앙.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할 때 역창조로 묘사합니다. 스바니아서도 마찬가지예요. 스바냐서를 읽어 보면 마치 하나님이 창조질서를 다 깨뜨리시고 완전히 다 불태우시고 멸망시키고 그냥 다 없애 버리실 것처럼

얘기하시잖아요. 창세기 1장 2장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 세계를 하나님이 다 없애 버리실 것처럼 묘사를 하세요. 그게 역창조다. 역창조. 창조질서를 뒤집는 거죠. 뒤집는 거. 근데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심판을 얘기할 때 역창조로 하나님이 많이 말씀하세요. 창조 질서를 뒤집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분은 누구세요? 하나님밖에 없어요. 하나님 하나님만이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 그 창조 질서를 뒤집는 분도 하나님이신 거죠. 그리고 그것이

뭐로 묘사된다? 그게 심판이다. 그게 심판. 그래서 열 가지 지향을 보면 뭐 이집트에 뭐 어 신들을 심판하신거다 뭐 그런 표현도 많이들 하시는데 그것도 맞지만 역창조로 이해하면 열 가지 재앙이 이해가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가 다 뒤집어 뒤집어지는 거잖아요. 뭐 어 낮인데 막 하루 종일 그 껌해진다든지 개구리가 있어야 될 영역을 넘어서 막 온 사방으로 개구리가 어 나타난다든지 그런게 다 심판이거든요. 근데 재밌는 건 그 심판과 함께 뭐가 같이 주어져요?

구원도 함께 주어진다. 그래서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심판만 있는게 아니에요. 심판은 뭘 따라와요? 심판만 있는게 아니라 구원도 따라온다. 그래서 바로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다. 그렇죠? 그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끝나지 않고 또네 번째 뭐예요? 새창조. 어,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세요. 하나님이 역창조를 하신다면 반드시 새 창조를 하신다. 그래서 억압과

앞재에서 자유케하고 해방케하고 그게 구원이죠. 그게 회복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새롭게 시작되죠.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그 심판 구원을 통해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그 이집트에서 나오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출발하게 되고 시작하게 되죠. 그게 하나님의 새 창조를 얘기한다. 그래서 어 계속 얘기하겠지만 스바녀서는 어 세상을 하나님이 다 불태우시고 없애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것은 심판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 심판을 통해서 새창조이 여러분 요한계시록 지난주 하셨죠? 예. 새 창조가 뭡니까?에 새 하늘과 새 땅. 우리는 죽어서 저 하늘로 가는게 아니에요. 예. 우리는 죽어서 저 하늘로 옮겨가는게 아닙니다. 예. 제가 예. 그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강 목사님이 설교해 달라고 할 때 제가 어 뭐 고민하지 않고 오케이한 이유는 이런 얘기를 사귐의교회에서는 할 수 있으니까 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하면 예. 권사님들 반은 거품 물고 쓰러지세요. 거품 물고 쓰러지시고

막 기절하시고 막 어어 막 막 째려 보시고 막 난리가 납니다. 막 예 그렇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배웠습니까? 우리는에이 세상에서 벗어나서 저 하늘로 가는 거 예 천당으로 가는 거 그 불교 용어죠. 천당은 불교 용어입니다. 예 본당 뭐 천당 사찰 그런 거 다 불교 용어예요. 그러니까 이 죽어서 우리가 저 좋은 것 극락 천당으로 간다는 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개념이 아니에요. 어 하나님은 새창조를 얘기하는 거죠. 새창조.이 이 창조이 죄로 인해서 망가지고

깨어진이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그리고 그 심판이 굉장히 무섭게 표현되죠. 다 불타고 다 없어 없어지고 다 하나님이 그냥 다 어 완전히 그냥 뭐라 그까요? 그냥 깨 부을 것처럼 하나님이 묘사하지만 그건 죄에 대한 엄격한 심판 예, 정화, 정결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로 그걸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그 세상을 새롭게 하시죠. 이게 새 창조.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서 땅 아, 땅에서 하늘로 가는게 아니다. 예.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가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가는게 아니라 우리는 땅에서 땅으로 갈 거예요. 어, 제가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우리는 하늘로 가지 않아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우리는 땅에서 사는 존재들이에요. 어, 이해되세요? 그래서 제가 계속 강조하는데 부활을 왜 하냐? 그러니까 부활을 어차피 여기 우리가 땅에서 벗어나 저 하늘로 갈 거면 부활을 왜 하냐는 거야? 부활을 왜 몸을 입냐는 거예요. 새로운 몸을 땅에서

살 것이기 때문에. 이해되시죠? 그게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이 죄로 인해서 망가진 세상을 온전히 회복시키셔서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고 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거라는 거예요.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다. 예. 천국의 소망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는 부활의 소망. 그래서 여러분 바울 사도 바울의 그 서신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가졌던 소막은

천국 소망이 아니라 부활 소망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소망이죠.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부활에서 그분이 완성하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거다. 그래서 창조, 반창조, 옆창조, 새창조라고 하는 개념을 잘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스바자에서는 주의 날을 얘기하죠. 주의 날. 근데 그 주의 날이 이스라엘 땅,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임할 것이 아니라 스바냐서의 특징은 뭐예요? 그 하나님의 심판이 온 열방, 온 민족, 온 나라에 임할 거다. 그니까 스케일이 큰 거죠. 스케일이 커요. 그리고 어 도덕적 타락과 우상숭비에 대한 질타죠. 질타. 그리고 남은 자, 그 가운데 남은 자가 있을 거다. 하나님이 숨겨 놓은 자들. 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다. 어, 그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거라는 거예요. 그런 그들을 구원하실 거고 그들을 어 구원하셔서

어떻게 해요? 어, 완성될 그 메시아 왕국, 그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게 될 거다. 언제요? 주의 날에 주의 날에 그 일이 이루어질 거야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런 주의 나를 스바냐서만 얘기하는게 아니라 요엘서에서도 얘기해요. 요엘서. 근데 요엘서의 특징은 뭐냐면 성령 강림을 얘기하고 성령이 강림하실 거고이 종말 말세라고 얘기하죠. 말세. 말세.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겠다. 그게 주의 날의 특징인데 요엘서는 그런 특징을 갖고 있고 아모스서는

정의와 공의를 강조해요. 정의와 공의. 에스겔서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 예.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 성전의 모습. 그러니까 에스겔서에서 어 성전이 회복되고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잖아요. 근데 그게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그게 뭐예요? 새 예루살렘이다. 그러니까 어 스케일이 커지죠. 에스겔에서는 그냥 정중앙에 어 새 성전이 세워질 거고 그리고 각 지파별로 이제 새 이스라엘이 회복될 건데 그거를 새 예루살렘으로 요한계시록은 얘기하지만 스케일이 더 커져서 전 세계 차니까 창세계

전체의 회복을 얘기하는 거죠. 자, 뭐 예를 들면 요엘서 같은 경우 2장에 보면 주의 나를 얘기하는데 그게 메뚜기 심판이죠. 그러니까 메뚜기가 살아야 될 그 영역을 넘어서 온 열방의 메뚜기로 가득 찰 거다. 그게 역창조잖아요. 역창조. 하나님의 심판. 역창조. 그러므로 너희들이 뭐 해야 된다? 회개해야 돼. 회개. 진짜 회개해야 돼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뭘 얘기해요? 너희들이 그렇게 회개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너희들에게 임할 건데 그 구원의 특징이 뭡니까? 땅의 회복을

얘기한다는 거예요. 땅의 회복. 우리가 죽어서 저 천국 가는게 구원이 아니라 이 너희들이 사는 그 땅 전체를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거야. 그리고 그 회복된 땅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거라는 거예요. 임재하시고. 그리고 요엘서의 특징이 뭐라고요? 성령을 부어 주실 거다. 말세에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거야.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에 그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죠. 그니까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서 요엘서를 인용하잖아요.이 성령을 부어 주신 사건은 요엘서에서 예언된

약속된 그 사건이 성취된 거야. 그러니까 말세가 이미 시작된 거죠. 그렇죠? 우리는 지금 말세에 살고 있는 거예요. 이미 말세 종말이 시작된 거예요. 정말 이 무슨 얘기 하나 그러신 분들도 계신데 어쨌든 주의 날은 구원과 심판, 회개, 성령의 부호 주심, 땅의 회복 이런 것과 관련이 있고 자 그런 차원에서 구약의 종말론을 얘기하면 구약으로만 보면 메시아가 그러니까 메시아가 오시는 날이 주의 날인데 메시아가 한 번 오는 거예요. 한번 딱 와서 이 땅에 메시아 왕국,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는 거거든요. 여기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게이 땅에서 벗어나 하늘로 가는게 아닙니다. 구약에서이 메시아 어 그 왕국은이 땅에 이루어지는 거예요.이 땅에 예. 그래서 그 메시아가 오면 구원과 심판을 어 이루실 거고 그 완성될 메시아 왕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영생이 죽어서 저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걸 영생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여러분 영생을 가지고 있는 거죠. 이미 요한복음에서 말한 영생을 잘 이해하셔야 돼요. 자꾸 영생 그러니까 죽어서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걸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영생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얘기하는 거예요. 새로운 질서 그 메시아가 새로운 왕국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올 건데 그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얘기한다. 근데 어 방금도 얘기드렸죠. 뭐 다시 한번 뭐 반복한다면이 세상이 불타고 없어지고 그런 걸 얘기하는게 아니다.

그 죄의 요소들이 사라지고 정결하게 되는 것을 그런 거로 묘사하는 거죠. 그래서 마치 다 불타고 막 없어지고 다 사라지는 것처럼 스바냐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그건 땅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세상이 불타고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그렇게 돼서 우리가 하늘로 간다고 얘기하죠. 그죠? 우리 옛날에 배울 때 그 휴거라고 얘기하죠. 휴거. 우리는 휴거될 거야. 그래서 이 땅은 다 불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우리는 휴거돼서 뭐 14만 4천만 하나님이 쑥쑥 뽑아

갖고 아무도 14만 4천에 누구 누가 들어갈지 모르니까 어 우리는 이제 막 그런 그니까 두렵고 무서운 거로 가르쳤잖아요. 저도 막 80년대 그 만화책으로 보면서 막 얼마나 무서웠는지 막 굉장히 두렵고 떨림으로 어 막 휴거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휴거는 성경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또 이러면 이제 나머지 권사님 반이 이제 거품물거 쓰러지시거든요. 예. 휴거는 성경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말하는 거고. 그래서 저는 왜 한국 교회가 이렇게

신천지에 잠식 당했냐?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한국 교회나 신천지나 전 도끼인 개이다. 우리가 종말로는 너무 오해했다. 어 잘못 이해한 거죠. 잘못. 어 그래서 진짜 구원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이 좀 잘 이해하시면 좋겠지만 어떻든 최근에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어 묵상하셨고 제가 우리 강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그 영상을 한번 쭉 봐봐서 봤기 때문에 이런 얘기 해도 어렵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다. 근데 신약으로 갔더니 그 어 하나님의 그 말씀하신 주의 날이 구약에선 한 번 이루어질 것처럼 얘기했는데 신약에선 어떻게해요? 실제로는 두 번 이루어진 거죠. 두 번.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 예. 그래서 구약에서는 마치 메시아가 한 번 올 것처럼 얘기하고 그 한 번 와서 메시아 왕국이 완성될 것처럼 예언을 했는데 신약에서는 실제적으로는 두 번 오신다. 두 번. 초림과 재림. 그래서 이미 구원과 심판은 시작된 거죠. 어,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구원이 시작됐고 심판이 시작된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이미 영생을 가지고 계신 거죠. 그렇지 않으세요? 예. 죽어서 저 하늘 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리는게 아니라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아는 것. 어, 저 극락에서 천당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구약의

종말론, 그러니까 구약 선지자들은 초림과 재림이 겹쳐 있는 거죠. 겹쳐 있는 거. 이렇게 구약에서 보면 두 사건이 겹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마치 한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스바니아서도 마찬가지예요. 스바냐서를 읽어 보면 마치 이게 최종적인 어떤 그 메시아에 오셔 오심을 얘기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최종적인 어떤 심판을 얘기하는 것처럼 막 묘사를 해요. 아, 그럼 메시아가 한번 와서 이런 일이 일어나겠구나라고 어, 그렇게 이제 생각하게 되는데 그거는

구약에서 봤을 때 겹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겹쳐 있기 때문에. 이해되시죠? 음. 그데 실제로는 어, 메시아가 두 번 오신다. 예수님의 초림. 그래서 이미와 아직 뭐 그런 것들을 이미 다 여러분이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그런 이야기들은 제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 1장부터 3장 거의 뭐 스바냐서의 2분의 이상을 심판에 대해서 얘기하죠. 심판.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특정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아주 보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온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거야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그 심판은 창조질서 자체를 막 뒤집어 없는 다 파괴하는 거 같은 그런 심판이고 그러나 그것은 모든 죄악을 철저히 제거하실 것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그 말은 진짜 다 불타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래서 심판은 파국이나 파멸만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뭘로 이어진다? 새창조와 회복. 그래서 저는 구원을 회복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걸 좋아합니다. 회복.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은 회복의 시작.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건 회복의 시작이다. 회복. 하나님이 이 세상을이 죄로 인해서 깨어지고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그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회복이 이미 시작된 거죠. 그리고 다시 오심으로 인해서 그것이 완성될 거다. 완성될 거고. 자, 구원은 이제 3장 하반절에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나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이 구원은 겸손하고 가난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들.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구원이 임할 건데 그들의 특징이 뭐예요? 겸손하고 가난한 자들이라고 얘기하죠.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팔복이 생각났습니다. 팔복. 팔복의 그 앞부분. 예. 팔복이 이제 앞에네 개 뒤에네 개 이렇게 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부터네 번째 복이 뭡니까? 가난한 자들, 슬퍼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의 줄이고 목마른 자들. 그니까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

삶의 특징,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됐고 하나님 자녀가 됐어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여전히 죄로 인해서 깨어지고 망가져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특징이 뭐예요? 가난한 거예요. 가난한 거. 애통해하는 거. 슬퍼하는 거. 그리고 온유한 거. 그리고 의해 줄이고 목마른 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무슨 복입니까? 가난이 무슨 복이에요?이 세상의 가치에 의하면 가난은 복이 아니에요. 애통해하고 슬퍼하는게 복도 아니고 의해 줄이고 목마른게 뭐가 복입니까? 줄이고 목마른게 근데 예 그게 복 있다고 얘기하시는 거죠. 왜요? 어,이 세상 그니까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이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갈 때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가난과 애통과 온유와 줄이고 목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어, 그런 자들이

복이 있다. 그리고 이 팔복 끝나고 12절에 끝나고 그다음 어떤 얘기가 나옵니까? 소금과 빛 얘기 나오죠. 뭐가 소금이고 뭐가 빛입니까? 팔복대로 사는게 소금이에요. 팔복대로 사는게 빛이죠. 그니까 빛 소금 얘기하면서 막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뭐 그거 다 의미 없습니다. 문맥으로 보면 소금으로 산다는 거, 빛으로 산다는 건 팔복대로 사는 거예요. 팔복대로. 이해되시죠? 예. 그래서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보면 어 평화 그렇죠? 그다음에 화평케 하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그다음에 뭐예요? 의해주 아 그 의를 위해서 핍박받고 박해받는 사람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거야라고 하는 걸 얘기하는게 팔복이고 저는 이 스바냐에서 얘기하는 그 겸손과 가난한 사람들 예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가치대로 살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어요. 가난해질 수밖에 없어. 그건 마음의 가난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가난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가난일 수도 있고 전 다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약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아나빔이라고 하는 가난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그 율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이 세상에서 가난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구약의 구약의 그 하나님을 경외했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가난한 자들이에요. 아나빔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세상적으로 가난하고 어 멸시와 천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문화세 그 신앙적으로 엉망 징창이 됐던 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산다는게 쉬울까요? 어려워요. 그게 가난해지는 거죠. 애통하게 할

애통할 수밖에 없는 거고 온유에 하게 되는 온유. 온유는 사람에 대한 온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온유죠. 하나님을 향한 온유.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서부터 배워라라고 할 때 온유와 겸손 그건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자세를 얘기하는 거고 팔 아 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도 어 온유가 들어가 있는 거죠. 온유 그건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삶을 얘기하는 거죠. 자,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뭘 요구하세요? 순종. 그죠? 아, 회개와 순종. 예, 회개. 그 회개가 뭡니까? 회개가 뭐예요? 순종이 뭡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것들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일주일에 한번 와서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살았던 삶을 생각해 보니까 아, 죄를 꽤 꽤 많이 지은 거 같아. 그래서 아, 하나님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고 그게 회개입니까? 그렇게 보면 우리는 일주일 한 번씩 회개하는 거예요. 회개. 그렇죠? 근데 또 예배당 나가면서

또 회개하잖아요. 세상을 향해서 또 회개해서 그냥 세상 방식대로 살다가 그냥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와서 또 회개하고. 음. 그러니까 여러분 회개가 뭔지 진짜 순종.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한국 교회가 그동안 너무 믿음을 얘기했는데 그 믿음이라고 하는게 너무 지식적인 동의. 응. 지식적인 동의. 내가 어떤 정보, 지식, 교리를 동의하면 어 그게 믿음입니까? 그러면 구원받습니까? 죽어서 천국 갑니까? 사형님 그냥 뭐 1월 2월리 4월리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그냥 단순한 자원리 사형리 그냥 내가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그냥 마음 동의한다고 얘기하면 죽어서 천국하는 자격을 얻는 겁니까? 아니야. 아니야. 그러니까 구약 예언자들이 더 강조했던 건 뭐예요? 순종하라는 거야. 순종하라. 너희의 삶을 돌이켜서 회개하고 순종해. 너희 삶 속에서. 그게 믿음이라니까. 그게 진짜 믿음. 단순히 교리적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내가 이해하는 거. 어, 그게 믿음이 아니다. 자, 그리고 그 구원의 특징은 뭡니까? 한마디로 기쁨이죠. 기쁨. 기쁨과

즐거운 날을 하나님이 예비하실 거고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실 것 때문에 그들 가운데 계셔서 구원을 베푸시고 그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 가운데 임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는 거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거고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라는게 도대체 뭐냐? 여러분 한번 질문을 던지셔야 돼요. 한번 여러분 스스로 질문 던져 보시고 우리가 한국 교회가 그동안 가르쳤던 구원이 구원 구원 그냥 믿으면 죽어서

천국가 그게 구원이죠. 그게 그러면 전부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전부입니까? 그 개념을 가지고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씀에 갖다 대비시키면 하나도 맞는게 없어요. 왜냐면 구역 예언자들은 그런 얘기를 한게 아니기 때문에 구원은 네가 죽으면 네가 회개하고 어 믿으면 너가 죽어서 천국 갈 거야라고 구약 예언자들이 얘기한게 아니에요. 죄로 인해서 망가진 너희의 삶이 너희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그 은혜로 회복되는 걸 얘기하는 거죠. 회복되는 거. 자, 그래서 뭐 이런

구절도 너무 유명하고 많이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마가복음 1장 15절 때가 자꾸 하나님 나라가 가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게 다 구약 예언자들. 이런 말씀을 배경으로이 스바냐서나 그러니까 이 구약 예언자들의 말씀을 이해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가 이해가 안 돼요. 그 여러분이 구약을 잘 알셔야 돼요. 잘 알으셔야지.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고 왜 그런 메시지를 선포하셨냐? 그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건 뭐냐? 그리고 회개하라는게

뭐냐? 회개 진짜 회개가 뭐냐? 어 저는 한국 교회가 회개를 다시 배워야 된다. 진짜 다시 그리고 복음이라고 하는게 뭐냐? 계속 얘기하지만 죽어서 천국 가는게 복음이냐? 복음을 우리가 너무 단순화시키고 축소시킨 거죠. 그리고 믿어라 할 때 그 믿음이라고 하는게 그럼 그 믿음이라는 것도 대체 뭐냐? 또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니까 예수라고 하는 이름의 의미가 뭐예요?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할 때이 구원 그 구원이 도대체 뭐냐? 또 마태복음 1장 23절

임마누엘 예수님의 새로운 이름이죠. 임마누엘 의미가 뭐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거예요. 그니까 성육신이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그걸 얘기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뭐 겸손해지셨다. 그 하나님이 겸손해지셔 갖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가 아니라 이 구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예요. 하나님의 임재.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그 21장에 보니까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데 뭐가 없어요? 예. 성전이 없죠. 왜 성전이 없어요? 그러니까

에스겔 그 환상에 보면 그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는데 정중앙에 뭐가 있어요? 성전이 있거든요. 그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잖아.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통치. 근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성전이 없어요. 왜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3 4절에 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거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죽음이 없을 것이고 슬픔이 울부짖음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초점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거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다른 것이. 그래서 구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 구약의 예언자들이 구원에 대한 얘기할 때 그 구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예요? 하나님의 임재거든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 하실 거야. 근데 예수님의 새로운 이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부분들을 좀 다시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배운 구원과 심판에 대한 어 이해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이해 좀 정리하실 필요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는 오늘날 그것이 적하다고 생각해요. 어. 사실 정치 얘기하는게 굉장히 민감한 문제죠. 근데 저는 뭐 진보냐 보수냐 여냐 야냐 뭐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닙니다. 이대올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걸 보십시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지금 또 어 네팔에서 혹은 저 유럽에서

지금 전 세상이 엉망 징창으로 돌아가고 있고 지금 미국에서는 제가 볼 때는 아마 진부와 보수 뭐 꼭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미국이 지금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배우에 누가 있어요? 근본주의, 보수주의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가 있거든요. 교회가 있어요. 교회가 오히려 더 분열과 갈등과 다툼과 혐오와 폭력. 그래서 뭐 뭐 얼마 전에 유명한 어떤 전 사람이 죽었죠. 굉장히 유명합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저도 그분 영상을

많이 봤는데 굉장히 보수주의 기독교인인데 누가 이제 총으로 사도 죽였 죽였죠. 그러니까 뭐 뭐 잘했냐 못했냐를 다 떠나서 이 폭력이 지금 나무하는 시대 혐오와 증후와 평가르기와 남자와 여자를 평가르고 세대를 평가르고 동소를 평가르고 또 강북과 강강남을 평가르고 근데 그 뒤편에 뭐가 있어요? 한국도 마찬가지죠. 한국도 계속 그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저는 한국도 굉장히 심각한 상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뒤에 누가 있어요? 보수 기독교가 있죠. 교회가

있어요. 저는 정치 얘기를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과연 그게 기독교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합당하냐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한 평안은 어디 갔습니까? 용서와 치유는 뭡니까?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겁니까? 저는 한국 기독교가 그냥 죽어서 천국 가는 거에 그냥 완전히 한몰돼서 세상이 어떻게 미쳐 돌아가든지 신경을 안 써요. 오히려 더 분열과 갈등과 다툼과 세상을 오히려 더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죠. 근데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어요? 어떻게 되니이

망가진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거예요. 회복하시겠다는 거예요. 심판이라는게 무서운 심판으로만 얘기하는게 아니라 그 뒤에 뭐가 있다고?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역사가 있다고요. 회복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하나님이 그냥 다 불태우고 없애고 다 지옥 보내서 그냥 하나님이 다 끝내 버리시겠다고 이야기가 끝났으면 스바냐가 그렇게 끝났으면 어 너무 편할 것 같아. 오케이. 뭐 너무 좋아. 그냥 하나님 싹쓸리 다 하시고 그냥 14만 4천 그냥 몇 명만 쏙쏙 골라갖고 우리는 저 하늘

넘어머의 천국으로만 가면 끝. 저는 솔직히 목사로서요. 차라리 그렇게 얘기하는게 더 편해요. 이해되세요? 그냥 그게 더 편해. 그냥 죽어서 천국 가는 거고 믿음만 믿음 있는 사람만 이제 천국 가는 거고 그냥 나머지는 그냥 뭐 그냥 뭐 어떻게 되든 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냥 엉망 증창이 되든 그냥 중요한 건 그냥 영혼 구원이니까 우리 영혼만 어떻게 하든 천국 가면 돼. 근데 그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냐고요. 과연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런 비전을 갖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구약의 비전, 그러니까 구약 예언자들이 그런 비전을 갖고 있었고 하나님의 계시로 그런 말씀을 선포했고 그 말씀으로이 그 구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거잖아요. 그래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신 거잖아요. 그럼 도대체 그 하나님 나라는 뭡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요즘 마음이 무거워요. 한국 교회를 볼 때마다 무겁고 과연 우리가 선포한 복음은 뭐 뭔가? 우리가 얘기한 구원은 도대체 뭔가? 전혀 우리 삶에 작동되지 않는 이거 그런 거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그냥 죽어서 천국 가면 되는 거지. 어. 근데 과연 그건가? 어떠세요? 그래서 한번 그런 고민들을 한번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 시간이 많이 갔는데 요것만 간단하게 얘기하겠습니다. 구원의 열매로서의 기쁨. 그래서 스바냐서에서는 기쁨을 얘기하죠. 그래서 저는 스바냐를 한 구절로 가장 중요한 구절 한 구절만 얘기해 봐라. 그러면 3장 17절. 그니까 하나님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을 보실 때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라고

하는 그 말씀. 그래서 기쁨이 중요합니다. 심판 이후에 정결함에서 오는 기쁨이죠. 그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 임재에서 오는 기쁨. 임재에서 오는 기쁨.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이 먼저 기뻐하신다는 거야.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어떠하신다? 기뻐하신다. 기뻐하신다. 근데 이게 이 구약 아 신약 예수님께로도 연결이 돼요. 그 마태복음 3장, 마가복음 1장,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죠. 그죠? 물세례 받으시면서 물에서 나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죠. 뭐라고 들립니까? 내 기뻐하는 자다. 내 사랑하는 자다. 내 기뻐하는 자다라고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성령이 임하셨고 그리고 그 하늘에서 야 내가 너를 기뻐해. 하나님이 예수님을 기뻐하신다고요. 그러면 우리도 우리에게도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구원의 구원의 핵심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간다는 것의 핵심이 뭐죠? 그게 기쁨이에요. 기쁨. 기쁨. 뭐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딱 이걸로 설명하고 마무리를 할게요. 자, 우리가 기쁨의 그 용량이 있고 우리 삶에서 고통의 용량이 있죠. 뭐이 세상에서 고통을 피해갈 순 없죠. 예. 고통을 피해갈 순 없어요. 우린 죽을 때까지에 많은 고통을 경험할 거예요. 어 말할 수 없는 고통,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저도 하나님께 어 여러

가지 질문 중에 아이까지 해결되지 않는 아마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있어요. 왜 하나님 나에게 이런 아픔이 있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이 있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 해답을 저는 못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 근데요.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있고 기쁨이 있는데 기쁨이 그 고통보다 작으면 그게 뭐예요? 그게 트라우마예요. 트라우마. 트라우마. 그러면 반대로 뭐가 돼야 될까요? 우리 삶에 있는 고통보다 기쁨이 많아야 돼요. 그래야지 그 고통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가 있어요. 근데 그 기쁨은 어디서 와요? 성경을 보니까 두 군데에서 와요.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와요. 그리고 하나는 공동체에서 와요. 기쁨은 관계예요. 관계. 관계에서 경험하는 거예요. 재밌는 뭐 프로그램 보고 웃는게 기쁨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하나님이 보시면서 내가 너를 기뻐해. 내가 너를 사랑해. 어. 너의 존재를 보면서 내가 너를 좋아해.라고 말씀하시는 그 기쁨. 그리고 또 하나는 뭐예요?이 공동체에서. 음. 그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한 공동체가 지체들에게 베푸는 기쁨이에요. 그 관계 안에서. 그래서 저는 교회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중요하다. 교회 안에 여전히 문제가 많고 여러 가지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많지만 그러나 교회가 존재해야 될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그 기쁨을 나누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모였을 때 내 지체들을 향해서 내가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나눠 줄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그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다. 내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온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시 한번이 기쁨이라고 하는 거 스바냐서에서 그냥 짧게 뭐 그 앞에서는 어마어마 막 무기하다가 끝에 그냥 짧게 한 절 3장 17절 그냥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가는 삶 그 모든 것에 예, 상징적인 걸 하나 얘기하면 그게 기쁨이다. 기쁨. 그래서 여러분 안에 그런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여전히 어 예수님이 다시 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죄로 인해서 망가진 세상에서 살아가잖아요. 우리 가정 안에 고통이 있고 우리 직장 안에 우리 감기 안에서 여전히 고통이 있어요. 그리고 세상 누수를 볼 때마다 저도 고통스러워요. 왜 이렇게 폭력이 멈추지 않고 열시와 또이 극단적으로 살아 되는 이 세상 과연 이 세상을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이 과연 이 세상을 치료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을까? 근데 또 어느 어느 때 보면 내 삶도 잘 안 되는 거 같은데 내가 너무 꿈이 큰 거

아닐까? 어, 그런 또 생각을 하면서 우리 안에 느껴지는 고통은 끊이지 않고 우리를 괴롭힐 거예요. 그러나 예, 우리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기쁨이에요. 그 구원의 본질,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의 가장 정수의 핵심은 기쁨이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배당을 벗어나서 우리가 다시 우리 삶의 자리로 돌아갈 거예요. 어,

우리 학교에서, 우리 직장에서, 가정에서 여러분이 기쁨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예. 그래서 그 고통의 자리 가운데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고이 땅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한 번도 멈추지 않으신다. 주무시지도 않고 그분은 지금도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가 알고 기쁨으로 그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