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금요기도회 설교

2025-09-19 · 에베소서 4장 31~32절 · 이광현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그정국 뉴시티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이광현 목사님의 설교를 어 들으려고 합니다. 어 우리 주일에 오셨던 목사님은 따님이네 분이었는데 오늘 오신 목사님은 아드님이네 분이시랍니다.네 더 대단하시죠? 어, 오늘 용서 사랑의 시작이라는 말씀 전해 주실 때 여러분의 어, 졸지 마시고 마음과 삶에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목사님 모시 모셔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우리 같이 말씀 먼저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15장 어 7절. 또 에베소서 에베소서 4장

31절 32절 말씀. 어 말씀 읽고 어 제가 간단하게 인사를 좀 나누고 그리고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물 마십죠. 네. 혹시 말씀 PPT가 있나요? 네. 없으면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게 긴장이 돼서 그러나 아니면은 목요 목이 좀 잠겼습니다. 양해를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어, 55장 6절 7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에게를 불리한 자는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아멘. 네. 에베소서 4장 31절. 음. 32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아기와 함께 버리고 아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아멘. 네. 뒤에 잘려.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 반갑습니다. 아 금요일 저녁에 쉬고 싶을 그런 시간일 텐데 어 이렇게 예배

나오시는 분들 이렇게 보면서 어 사실은 되게 이제 감동을 많이 하면서 들어왔는데 어 제가 우리 하나복 네트워크를 통해서 강정규 목사님하고 사역하면서 아 내가 이분이 참 젊은데 배울 점이 참 많다고 항상 생각을 해 왔어요. 근데 어 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또 한번 제가 깜짝 놀랬습니다. 어떤 우리 자매님을 만나서 인사를 가볍게 나누고 아이고이 저녁에 이렇게 어 예배 나오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는데 어 강정규 목사님이 계셨으면 안 나왔을 텐데. 네. 네. 오늘

이광현 목사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아 나왔습니다. 그래요. 옆에 있던 어떤 형제님이 아이 나도 안 나오려다가 나왔는데 아네 정말 배우고 싶은 교회다 생각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저는 의정부에서 어 개척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를 만나고 한동안 참 힘든 기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주 작은 그런 공동체를 이제가 세워 가기 시작한 그런 교회인데 어 의정부 뉴시티 교회이고요. 저는 세말역 앞에 있는데 오늘이 저녁에 이렇게 귀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또 귀한 성도님들

우리 체들 있는 교회 와서 말씀을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아 주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 우리를 십자가의 그 보혈의 은혜로 사랑하여 주시고 어 주의 자녀 삼아 주시고 어 주님의 백성 삼아 주셔서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오늘 하나됨을 이루며 귀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시간이 복음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 부족한 종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또 말씀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이 귀한 아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환절기가 되면 이렇게 목이 이렇게 갑니다. 저희 성도님들한테는 인원이 적으니까 아 제가 별로 긴장을 안 하고 목이 좀 갔어요. 죄송해요. 그러고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 아 이렇게 갑자기 큰 초대원교회 와서 이 빨리가 또 이렇게 막 안 나오는 거 같아. 네. 오늘 어떤 제목 가지고 우리가 좀 기도를 하면 좋을까?

어 고민을 하다가 아 몇 어 사진을 몇 장 좀 들고 왔습니다. 어 총네 장의 사진이 있는데요. 어 여러분이 사진이 어떤 사진인지 보면은네 느낌이 오죠.네 네. 왼쪽 위에 있는 사진은 다 이제 비슷한 분위기인데 인도네시아 오른쪽 위에 있는 사진은 네팔 왼쪽 아래 있는 사진은 프랑스 오른쪽 아래 있는 사진은 미국입니다. 얼마 전에 어 지난 8월 달이죠. 인도네시아에서 어이 젊은이들이이 반정시를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은 이제 수상을 받는 것 때문에 분노한 청년들이

길거리에 나왔는데 어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배달 기사가 배달하는 기사가 차에 치웠습니다. 아 그리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죠. 어 그때 그 그 창년을 추모하면서 이렇게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이렇게 길거리 나왔습니다. 어 두 번째 사진은 네팔 어 2030세대라고 하더라고요.이 지세대 그 시유하는 모습인데 어 네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SNS 차단한 것 때문에 어 시위가 시작게 됐는데 어 실제 이유는 청년들이 너무 가난한 삶을 사는 겁니다. 또 정부 지도자들이

너무 부패했고 어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반정부 시의를 하는 모습입니다. 어 프랑스에서는 그 너무 많은 국가 부처가 생겨서이 IMF 위기가 다가왔다고 합니다. IMF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어 그래서 우리 어 일하는 날수를 좀 늘립시다. 함께 우리가 짐을 칩시다. 정부에서 이런 정책을 내 놓으니까 어 국민들이 그것 반발해서 시위를 하는 모습입니다. 어 오른쪽 아래 사진은 어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반대하는 그런 시민들이 나와서 또 이렇게 어 시위를 하는 그런 모습들입니다.이

이 사진을 보면서음 공통점이 한 가지가 있는데 어 오늘 우리가 어이 제목을 가지고 우리 기도를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왔는데 이런 거죠. 어 갈등과 분노의 사회.네 네. 시대적으로 어 전 세계적으로이 시민들이 갈등, 분노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이렇게 가득한데 오늘 이밤에 페로 우리가 기도를 한다 그러면 이런 제목 가지고 우리가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됐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2025년 어 3월 25일 한국 리서치에서 어 세대 인식

조사를 했습니다. 어 여러분들은 그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듣십니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 응답자의 84%가 어 세대 갈등에 심각한 심각하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어 그리고 이 어 세대 인식 조사가 2021년부터 5년간 쭉 진행이 되고 있는데 한 번도 80%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계속 이 갈등이 심각하다고 느껴왔고 어, 2025년 조사 때 어, 시민 응답자 중 25%죠. 그 25%가 매우 심각하다라고 어, 대답을

했습니다. 어, 그 갈등의 내용을 보니까 아, 세대별로 가치관이 차이가 납니다. 이게 55%. 미디어 정치권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44% 또 청년층에 취업 죽어 경제적 불안정이 41%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어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모든 그런 사회 영역들에 걸쳐서 어 갈등이 심각하다라는 것을 볼 수 있죠. 어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한국 교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어 교회 밖에 이런 갈등, 이런 분노 지수들이 이렇게 높을 때 그럼 교회 안은 괜찮은가?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도 이런 갈등과 이런 분노가 그대로 어 존재를 하는 것이죠. 아 여러분들은 교회 그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아, 예수님의 사랑, 원수, 사랑, 용서, 치유, 화해. 그래서 어떤 치유와 화해하는 공동체 그 그런 이미지가 어, 좀 그려지지 않시나요? 자, 근데 우리 한국 교회가 정말 그러한가? 이런 걸 생각을 해보면 어 좀 아닌 거 같아요. 어 최근에 언론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런 보도들을 우리가 좀 살펴보면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의

정치적 그런 갈등과 분쟁 가운데 서서 갈등과 분열를 부추이는 그런 자리에서 있는 것들을 이렇게 좀 보게 될 때가 있죠. 어, 그리고 이것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는데 한국 교회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 왜 그럴까? 생각을 좀 해 보는데 한국 교회가 이 알맹이를 잃어버린 겁니다. 복음의 핵심 진리를 잃어버린 겁니다. 용서 용서와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거죠. 어떻게 해야 될까? 오늘 이밤에

말씀을 통해서 이 용서와 사랑에 대한 그런 원리들 우리가 좀 찾아서 살펴보고 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밤에 기도의 자리를 통해서 그런 고민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첫째 어 오늘 첫 번째 메시지는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돌아설 때 시작됩니다. 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돌아서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 우리 옆에 분들 어 이렇게 서로 격려하면서 우리 오늘 밤에 이렇게 한번 서로 어

권면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갑 나아갑시다. 네. 오늘 제 목소리가 별로 은혜롭지 못해서네 말씀을 잘 전해야 될 텐데 우리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 말씀 들었시면 좋겠습니다. 자 여러분 용서란 아 무엇일까요? 용서. 예. 제가 한자로 이렇게 가져와 봤는데요. 용자는 얼굴 용자. 서자는 용살 서자입니다. 그리고 용살 서자를 보면 이것도 두 개의 한자로 돼 있는데 위에는 여자 마음자로 구성이 돼 있죠. 어 그래서 이 한자의 의미로 용서 이걸 좀

생각을 해 본다면 상대방의 얼굴을 이렇게 마주대할 때 어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어 그 사람을 대하는 것 아 이게 용서죠. 또이 사전적인 의미로 한번 더 이렇게 살펴봤습니다. 용서란 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나이 잘못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 아 이게 사전적인 의미다라고 돼 있습니다. 어 그래서 이 한자 또 사전적 의미를 좀 이렇게 같이 이렇게 얼어무려서이 용서가 뭘까 이렇게 생각을 해 보면 어 나에게 뭔가 잘못이나 해를 끼친

사람이 있습니다. 근데 그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대할 때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어 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 봐주는 것이 용서죠. 자 그런데 나한테 잘못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대할 수 있을까요? 그니까 여기 용서는 한 가지 전제가 좀 필요합니다. 아,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해 주고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이렇게 사과를 해 주는 것. 아, 그러면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돼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용서는 어떨까요? 자, 이사야서 55장 6절, 7절 말씀 가져왔는데요. 우리 다시 한번 좀 찬히 살펴보면서 읽어 읽어 볼게요. 시작.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데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에게 길을 불리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자,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실 때입니다. 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 자, 그런데 어떻게 돌아갑니까? 악인은 그의 길을 불리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악인 것을 깨닫고 내가 죄인이었던 것을 깨닫고 내가 폐역한 이스라엘이었던 것을 깨닫고 그동안 나는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걸어왔는데 그 길을 버리고 또 나는 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생각을 버리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더 그렇게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거죠. 자, 그러니까 우리는 지식적으로도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또 우리의 마음과 감정도 주님 앞에서 돌이켜야 되고 의지적으로 삶을 돌이켜 줄께로 돌아오는 거죠. 우리 이것을 회개라고 부르는데 전 인격적인 회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이렇게 돌이켜서 돌아와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 거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너그럽다라는 단어예요. 자, 이것을 원어의 의미를 좀 찾아보면 이거는 넉넉하다, 풍성하다. 너그럽게라 넉넉하다, 풍성하다 이런 뜻이거든요. 자, 하나님이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데 이게 얼마나 너 얼마나 풍성한 걸까요?이 이 은혜가 어 여러분이 영화를 어 보신 분도 있고 못 보신 분도 있을 것 같아요. 2002년도에 어 개봉되었던로만 폴린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입니다. 어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어 그 당시에 독일 나치 군대가 그 아웃츠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그런 사건들 홀로코스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죠. 자,이 영화를 보면 이 어 유대인 그 피아니스트 주인공이죠. 주인공의 가족이 이제 아웃스 비치로 끌려가기 위해서 기차역 앞에 집결해 있을 때입니다. 어, 그때 저 주인공이 옆에 앉아 있고 그 동생이 이렇게서 있죠. 어, 그때 주인공의 아버지, 나이마인이 아버지가 지갑을 꺼내요. 그리고 집회를 다 꺼냅니다. 근데 그 옆에 카라멜를 팔고 있던 한 어린 소년 그 노점 장사는 어린 소년이 있었죠.

집회의 돈을 다 꺼내 주면서이 돈을 가지고 어 몇 개를 살 수 있냐 그랬더니 카라멜를 한 개를 줍니다. 아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이 가족들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거죠. 아버지가 작은 나이프를 꺼냅니다. 그리고 어이 가방 위에 카라멜 한 개를 올려 놓고 6시 군인데 6등분을 하죠. 그리고 이 가족들 손가락 위에다가 1분 조각씩 손에 올려 줍니다. 아, 그리고 이제 아웃슈빛을 가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그걸 입에 넣으면서 어, 이렇게 나누는 그런 장면입니다. 자,

이들이 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오늘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 저녁에 가정에서 우리가 평범하게 즐기던 그 식탁에서 비록 풍성하진 않았다고 할지라도 어머니가 아주 맛있게 주는 밥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 평범한 시탁에서 행복하게 나누었던 그 함께 식사 아버지가 얘들아 밥 먹자 같이 기도하고 손잡고 기도하고 형제들이 다 어머니가 퍼 주는 국으며 뭐 이렇게 빵이며 먹던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 행복했던

식사를 기억하면서 이분의조각의 카라멜를 입에 넣지 않았을까요? 어, 여러분, 오늘 저녁에 어떤 음식을 드셨습니까? 아, 평범했던 여러분들의 그 저녁 식탁에는 어떤 요리가 있었나요? 어, 저도 이 영화를 저렇게 보면서 저희 어머니가 해 주셨던 그 평범했던 어느 날에 식사를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 요즘은 저희 아내가 밥을 해 주니까 제가 이제 어머니 밥을 1년에 한 번이나 돼야 명절 때나 돼야 이렇게 얻었습니다. 그런데 밥상의 차이가 굉장히 차이가 나요. 저희

아내는 음식 남는 걸 참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 NGO 단체 출신이에요. 인조 단체 사역을 하다가 간사로 있다가 만나서 이렇게 결혼했는데 어이 친구는 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면서 음식 남는 거를 거의 그 죄악으로 여깁니다. 아 근데 저희 어머니는 어 완전히 반대없어요. 어 음식을 먹는데 부족하면 안 된다. 어머니 철학이에요. 자 저희 어머니가 잘했던 음식 가운데 고등어 김치찜 제가 좀 가지고 왔습니다.에 먹음직스럽죠? 네. 우리 청년들 오늘 집회 맞추고 가면서

우리도 고등학교김 짓지 먹고 갈까 그럴지 모르겠는데이 저희 어머니가이 만들면이 김치찜을 이렇게 막 높이 쌓아 놓습니다. 김치를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고등어도 푸지 막혀 놓고 밥을 고봉밥을 떠 주십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제가 좀 통통했어요. 어머니 어 저 이렇게 먹으면 살 쪄요. 조금만 주세요. 야 그래도 그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주는 거 다 먹어. 그래서 그걸 먹는데 그날 저녁에 먹은게 별로 표시가 안 나요. 근데 이 푸짐한 건 좋은데 단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다음 날에도 고등어 김치찜. 그다음 날에도 고등어 김치찜. 그다음 날에도 바닥을 볼 때까지 고동어 김치찜. 아주 고등어 김치찜. 아주 아 씨름을 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자 너그럽다라는 단어예요. 풍성하다, 넉넉하다라는 단어는 먹어도 표시가 안 나는 그 고등어 김치찜 같은 거죠. 넉넉한 거, 푸짐한 거. 자, 이것이 너그럽다라는 단어 의미인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용서가 이렇게 풍성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요.이 은혜가 너무나도 풍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모든 죄를 폐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도 그 은혜가 줄지를 않아요. 그렇게 말씀합니다. 아,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여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게 되리라. 네. 이게 빨래 이미지죠. 빨래하는데 지저분한 옷을 빨라 그러면 세제도 많이 들어가고 물도 많이 들어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폐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더러운 죄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괜찮아. 내가 깨끗하게 다 빨아 줄게. 그런데 그 깨끗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다 써도 써도 써도 부족함이 없어요. 너희 죄가 주 같을지라도 눈과가 같이 어지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왜요?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사야서 11장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화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러분 바닷물을 한번 퍼 보셨습니까?

내가 이 바닷물을 바닥을 내가 말려 보리라 퍼 보셨습니까? 아무리 퍼도요. 수위가 줄 않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아서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줄지를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이와 같다. 그래서 이 은혜를 압도적인 은혜라고 부를 수 있죠.이 압도적인 은혜 앞에서 죄인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두 손으로 내밀어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자, 이것이 용서와 사랑이 시작되는 그 출발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자,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또 돌아가야 될까요? 두 번째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용서의 물줄기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용서의 물줄기가 회복되기 때문에 자, 용서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 용서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죠. 용서는 함께 서로 하는 것입니다. 그니까 용서는 공동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니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의미가 있습니까? 없죠. 어, 용서는 공동체가 있다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의 물질기로 우리에게 흘러서 들어올 때 자, 여기서 멈추면 사실 의미가 없어요. 용서는 우리를 통해서 공동체로 또 공동체를 넘어서 세상 밖으로 용서가 흘러 들어가야 되는 것이죠. 자, 그래서 용서를 비유적으로 이건 은혜의 물줄기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 그런데 용서는 그냥 물줄기가 아닙니다.

압도적인 은혜 물줄기예요. 어, 양주에도 올려놓으면 비가 이렇게 많이 왔습니까? 아, 저희 집 앞에 부용천이라고 하는 개천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나가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저녁에 걷기도 하고 하는 그런 부용천이 있는데 어, 어느 날 8월 달쯤이었던 거 같아.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는데 이 경보음이 핸드폰에서 막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링띵 하면서 경보음이 올려요. 뭐지? 그래서 열어봤습니다. 열어보니까 부용천이 법남 위기입니다. 낮은 저지대 주민들은 안전한 것으로

대피해 주세요. 그 부용천 옆에 저희 집이 아파트 1층이거든요. 뭘 피해 괜찮을 거야? 그리고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아, 다행히 다음날 아침에 하천을 내려가 보니까 아, 물이 수위가 좀 줄었더라고요. 다행히 넘칠랑말랑하다가 안 넘치고 그냥 흘러갔습니다. 자, 그런데 이 물줄기가 지나갈 때 흔적이 남았더라고요.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풀들이 다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 앞에 부영촌에 그 건너가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 옆에 세워놨던 안전바가 있어요. 빠지지 말라고

안전바 이렇게 유자로 이렇게 세워 놓은 거 있거든요. 그게 다 날아갔어요. 그러니까 그 다리에 진입하지 말라고 바리케이트를 개쳐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자,이 압도적인 은혜 물줄기가 지나갈 때 이렇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고여 있던 썩은 물들은 다 흘려보내고 너무 좋았던 것은 전에는 썩은 냄새가 막 났는데 물 냄새가 났는데 그날가 보니까 흙 냄새가 올라와요. 그런 썩은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더라고요. 그니까 압도적인 은혜의 물질기가 흘러내려가면 뭔가 흔적을 남기고

하는데 안 좋았던 것은 쓸고 내 쓸고 이렇게 다 지나가면서 맑은 물로 이렇게 정화를 시켜 놓는 것이죠. 자, 요번에는 주 에베소서의 말씀을 좀 나누겠는데요. 어,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장에서 이제 교회의 하나됨과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아, 우리가 믿음이 안 하고 믿는 주님이 한 분이시고 아버지가 한 분이시고 그래서 교회가 하나됐다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 있죠.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 공동체 생활해 보면 갈등의 문제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죠. 그래서 이제 에베소서 4장 말미에 끝 끝에 있는 마지막 두 구절에 바울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교회 하나됨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러면서 오늘 말씀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아기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용서하라는 거죠. 자, 교회 하나됨

서로 용서함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은혜 물기가 흘러갈 때 여기서 버려야 될 것들이 있죠. 너희는 모든 악덕과 노함과 분행과 떠드는 것이 비방하는 것이 모든 악이 이런 것은 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공동체가 정화될 때 이것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것이 회복되어서야 된다. 이게 하나됨을 지키는 원리죠. 자, 그러면 은혜 물질교와 함께 사라지는 것들이 뭘까요? 어, 이게 좀 제가 이렇게 한 단어

한 단어 하늘 좀 찾아봤는데 첫 번째 피크리아라고 하는 단어 악독입니다. 자, 이것은 악이에요. 내 마음속에 악이 존재합니다. 마음을 구벌어뜨리지 않습니다. 아, 그런데 이것이 이 악함이 오랫동안 머물다 보니까 독이 돼요. 그래서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비르니스 그러잖아요. 쓴 쓴 것입니다. 독이 보통 쓰잖아요. 누군가를 향한 적계심, 원한 감정 이런 것들이 나는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게 이제 악한 마음인데 독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독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노함, 분냄 둘 다 분노라는 단어죠. 자, 첫 번째는 아, 티모스라고 하는 분노고요. 두 번째는 오르게라고 하는 분노 분노입니다. 근데 이 두 단어가 차이가 있어요. 어, 시모스라고 하는 것은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분출하는 것처럼 건들면 폭발하는 그런 분노입니다. 어떤 사람 건들면 팍하고 터져 올라와요. 어, 저희 어머니 평상시에는 좀 잠잠히 가시다가 어느 날 제가 조심해야 되는 날 있어요. 어,이 어릴 때 이게 그날은 조심해야 됩니다.

막 터져올 때가 있습니다. 근데 제가 왜 우리 어머니 예를 들었을까요? 갑자기 실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 두 번째 분냄속에 지속적으로 쌓여 있는 그런 분노입니다. 항상 분노가 차 있죠. 터지진 않지만. 자, 그래서 두 가지 그런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떠드는 것. 헬라오은 크라우게. 떠나는 비방. 이거는 블라스페미어라.이 이 크라우게라고 하는 것은요. 멱살 자꾸 싸울 때 떠드는 소리예요. 어떤 사람이 그 멱살 자꾸 싸웁니까? 폭발한 사람. 아 갑자기 운전하다가

아 분노가 폭발을 해요. 그럼 차를 멈추고 막 문 열고 나오죠. 막 무서워요. 그러. 어 그때 이제 크라우게. 또이 비방이라는 것은요. 말 그대로 비난하고 험담하고 욕설하고 그 항상 이 사람에게 이 사람 마음속에 분노가 차 있으니까 좋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 세트로 모아 가지고 모든 악이다. 카케르다 이야기를 하죠. 자, 이런 것은 쓸려 내려가야 돼요. 그리고 어떤 것이 회복되냐면 친절 비하인드. 어, 아주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 저 상대방에

대한 오너한 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 그다음에 불쌍 여김 영어로는ate 컴패션입니다. 컴 함께 패션 고통을 느끼는 거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친절하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공감하는 능력이 주어지고 그럴 때 뭐가 되냐면 서로 용서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아 이게 자꾸 이게 왜 넘어가죠? 아 일 났습니다. 예. 우리 제가 그 아까 했던데 페이 찾아 주실래요? 어네 죄송합니다. 예 좀 더 넘어가시면 됩니다. 예 친절 불쌍 오케이네 여기 될 거 같아요. 자,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지나갈 때 우리 마음속에 있던 모든 아기는 쓸려 내려가고 아 상대방을 친절히 대하면서 그 사람을 위하는 태도로서 어 마음속에 그 사랑에 그 사람의 어려움들을 공감을 하면서 서로 용서하는 것 그럴 때 공동체 하나됨이 지켜지죠. 베아 포용이라는 글을 쓴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님이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를 내 마음에서 지워 버리는 배제가 아니라 그를 위해 내 안에

기꺼이 공간을 만들어 주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할 때 이렇게 해요. 저 사람 내 마음속에 삭제 딜리트 탁 누릅니다. 그다음 또 아는 채도 하고 싶지도 않고 내년에 저 사람 어 지어 버렸죠. 없는 사람. 그런데 그게 용서가 아니고 그를 위한 공간을 내 마음에 만들어 주는 거 친절히 대하는 태도가 있고 그 사람을 컴패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그 진정한 용서가 이렇게 어 이루어지는 거죠. 자 하지만 막상 용서하려고 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 혹시 여러분 여기서 사형제 키워 보신 분 계신가요? 예 없습니까? 예. 의정부에서 이제 육남매 키우는 집 봤어요. 아, 우리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을 했는데 어 저희 아이들 홈스쿨링을 합니다. 아, 큰 아이가고 1, 둘째가 중 2, 셋째가 초 5, 막내가 초 2입니다. 그래서 홈스쿨링을 약간 언스쿨링 방식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까 놀라운 것들이 있어요. 보통 대학 갈 때 아이들이 공부 열심히 하고 학 다니고 해서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지?

이렇게 고민들 하잖아요. 근데 홈스쿨링 해 보니까 얘네들이 어떤 애들인지 어릴 때부터 드러나요. 어 저희 애들은요. 손체주가 좀 있어요. 저희 큰아이 이제 종이 접기 이런 것 되게 좋아하고 어 독화고를 이렇게 피아노를 해 가지고 최근에 피하 피아노 학원을 보냈는데 이게 귀가 먼저 열린 거 같아요. 피아노를게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옆에 사람들 좀 힘들죠. 아 거기 막 편치고 있으니까. 근데 둘째는 공부에는 소질이 굉장히 없는데 어 운동하는 거를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축구 뭐 태권도 농구 어 뭐 최근에 이제 또 뭐 뭐 뭐죠? 테니스 배운다고 또 뭐 그러고 있는데 집안에서 농구를 하면서 축구를 합니다. 분위기 대충 아시겠죠? 저희 셋째는 꿈이 어 자연인이에요. 나는 자연인. 아빠 나는 산 속에서 살고 싶어요. 곤충 곤충 키우면서 살고 싶어요. 저희 집에 곤충 채집이 막 있는데 거기 뭐 이렇게 사마귀도 있고 뭐 집 끼어다니 에벌레도 있고 막 이런 애벌레도 막 갔다놔요. 어 어느 날은 아빠 이거 그 개미 사자 그런 권충 있나요?

뭐 그런 권총이 있는데 나중에 이게 잠자리가 막 날라다니더라고요. 그니까이 그 개미 사자라는 벌레가 나중에 이게 뻔데이가 됐다가 잠자리가 이렇게 되는 건가 봐요. 그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그랬습니다. 작년에는 어 유정 유정난을 사다가 그 부하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될까 했는데 어 알 여섯 개 넣어 놓고네 개가 부하가 된 거예요. 어 근데 이 병아리들이 어 이게 집에서 정말 감당이 안 되거든요. 어느 날 조그만 애들이 날라다 시작하는데 털이며 오므이며 그 장난이 아니어서

어딜 보내려고 그러니까 안 키워요. 그래서 보낼 때도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걔는 아빠 나는 자연인 꿈이에요. 막내는 이렇게 손으로 뭐 이렇게 만드는 거 크래프트 이게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뭘 만들고 있습니다. 집이 난장판이에요. 근데 피아노 치고 있고 축구하고 있고 그래서 건축 만지고 있고 막 만지고 그 집이 정상인 날이 거의 하루도 없습니다. 둘째가 공 이렇게 차고 가다가 막내를 툭 건들고 지나가요. 그랬더니 아씨 왜 건드려?

막내가 일어났어. 형한테 팍 되니다. 그랬더니 형은 웃습죠. 하나도 안 아프죠. 그래서 꿀밤을 톡 안데도 때려요. 아이씨 왜 때려? 어떻게 될까요? 아 싸움이 나중에는요.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요. 그래서 야 너 형인데 네가 동생한테 이렇게 하면 되. 나의 차이가 몇 살인데? 야, 너 동생한테 좀 미안하다고 네가 사과 좀 해라. 동생한테. 야, 넌 조그만 애가 형한테 왜 덤비고 그래? 어, 하지 마. 너 형한테 미안하도록 사과해. 사과할까요? 안 합니다. 그날

밤에 씩씩 안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참 감사한 거는 저희 집 아이들한테 망각의 은사를 세게 주셨어요. 다음 날이 되면 어, 무슨 일이 있었어? 그리고 너무 잘 놀죠. 어, 그냥 그 서로게 용서가 되고 잘 놀고 그럽니다. 자, 그런데 어떤 경우는 100년이 지나가도 용서가 안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어, 한 일간의 역사 문제, 강제 직명, 또 위안부 할머니 문제. 어, 이분들이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이 그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적인 잘못을 인정하고 어,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어, 적절한 배상을 해 주면 우리도 용서하겠다. 자,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잖아요. 왜 용서가 안 됩니까?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죠. 자,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요. 상대방이 징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는데 용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서 어떤 상담가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만 다칩니다. 함부로 용서하지 마세요. 함부로 용서하지 마시 마세요. 자,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 브런치 스토리라는

카카오을 쓰기 플랫폼이 있는데 여기에서 브 브런치 스토리북이라는 걸 이렇게 만들어서 글을 개제하죠. 18번째 용서의 의미라는 그런 챕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응어리를 평생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이 가해자에 대한 복수의 마음은 아니다. 응어리진 마음이 가해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자기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원망과 복색칼를 상대가 아닌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다닌다는 말이다. 저는 아까 우리 함께 고민해 봤던

악독이라고 하는 단어 있잖아요. 악이라는 단어에게 용서하지 못하는 응어리인 거 같아요. 그걸 마음속에 아, 평생지고 있으면서 복수의 칼을 갈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사람에게 꽂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자,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게 보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자기 가슴을 찌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꽂치는 것이 아니라 이 원망과 복색화를 내 마음에 품고 사는데 이게 내 가슴을 찌릅니다. 그래서 내가 병이 듭니다. 얘기를 하는 거죠.

자, 그러니까 용서를 한다는 것은요. 결국에는요. 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먼저는요. 자기를 사랑하는 겁니다. 내 마음에서 놓아 버려야 내 마음이 회복이 되는 것이죠. 그럼 그래요. 그래도 못 하겠는데요. 한번 좀 내 마음을 어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어요.이 시간에. 아, 제가 처음에는 각 나라에 있는 어떤 갈등과 분노의 문제로 거대 담눈에서 시작을 했지만 어, 사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보면 이게 내 문제일 수도 있잖아요. 아, 용서가 안 돼요. 또는

어, 내가서 용서를 구해야 되는데 그럴 만한 용기가 없어요. 그렇게 용서가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자, 우리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나요? 자, 성경 말씀은 아주 심플해요.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로 우리도 할 수 있다. 성경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제가 카카오톡을 쓰면서 와이 기능은 정말 좋다 싶은 기능이 있습니다. 그 오늘도 어 생일자가

막 올라와요. 혹시 오늘 생일이신 분 있습니까? 와네 혹시 카카오톡에 접은 이름 저장되신 분 있습니까? 네. 없으면 이따 그 연락처 하나 좀 주세요. 제가 커피 한잔 쏴 드릴게요. 예. 생일날이 되면 정말 없어요. 생일 날이 되면 어 제 커피를 보내 주고 싶은 분들이 있어요. 그때 보내 줍니다. 아 그런데 이게 돌고 돌아서 돌아오죠. 내 생일 날이 됐는데 생일 날 이름이 탁 올라가면서 아 목사님 생일이셨어요? 그래서 커피를 또 막 돌려 줍니다. 그러면 아홉잔, 열잔

막 쿠폰 생겨서 막 신나게 쓰고 다니죠. 자, 용서는 이와 같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바울이 이렇게 그 원리를 이야기를 해 주죠. 서로 용서하기를 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하라는 거예요. 자, 그런데 오늘이 본문을 좀 이렇게 보면 이사야서 본문 그것도 용서에 대한 본문이고 에베소서 이것도 용서에 대한 본문인데 본문 보면 하나의 안 그 아이러니가 좀 있어요. 자, 하나님은 너 그렇게

용서하겠다 그러는데 하나님 어떤 분이시죠? 거룩하신 하나님. 그죠? 거룩하신 하나님인데 악인들을 향해서 불리한 자들을 향해서 돌아와라. 내가 받아 주겠다. 용서해 주겠다. 그래요. 한 가지 아이런이 이겁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인데 어떻게 악인을 부리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죄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판하셔야 됩니다. 맞죠? 죽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돌아오라는 거예요. 받아 주겠다는 거예요. 어떻게 거룩과 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나요?

자, 에베소서에서 그 해결책을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다는 거.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용서하십니다. 친절이란 단어를 보면 헬라어로 크레스토이라는 단어인데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있죠. 그리스도라는 그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친절을 베푸셨는데 그 친절을 베푸신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컴패션. 그분이 우리와 함께 패션, 고통을 공유하십니다. 근데 패로부터 고통을 함께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에 그분이 함께 참여해 주셔서 우리의 고통을 그분이 짊어지십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인 것이죠. 자,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일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로마서 5장 10절 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시작.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받아 주십니까? 원수됐을 때 악인들, 불리한 자들, 죄인들 향해서 하나님이 원수였어라고요.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화목제물로 드려줬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또 오늘 밤에 죄인된 모습 이대로 나와도 하나님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면은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드여진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친절하 친절로서 다가오셨고 우리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 우리의 고통을 짊으신 그분을 하나님이 그분을 보시고 하나님 우리와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죠. 자,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세요. 독생자 아들을 주셨고 약속을 함께 주십니다. 여기 뭐라고 적게 있나요? 바실레야데.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이 죄인된 우리가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왔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미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내어 주셨을뿐만 아니라 아들과 함께 내가 가진 모든 건 내가 너에게 다 주려고 해. 압도적인 그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겠다라고 말씀하고 있죠. 자,이 은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이 이 광월한 우주에 창조주이신 그 하나님이 먼지받도 못한 우리를 부르셔서 다 주려고 해요. 그럴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손을 내밀어서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 우리 사랑하는

사규 사규 교회 어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용서하셨습니까? 누군가로 인하여 받았던 내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아 내 마음 안에 원한과 분노의 칼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용기 용서를 구할 용기가 없어서 깨어진 관계를 방치해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은혜로 나오라. 은혜 앞으로 나오라.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주님 가까이 계실 때 돌아오라.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압도적인 은혜로 우리를 덮으시는 그

은혜의 물줄기 앞에 나오라 주님이 부르십니다. 오늘 이밤에 저와 함께 우리 마음에 마음의 문을 좀 열고요. 주님과 좀 이렇게 기도하면서 좀 대화를 좀 나누셨으면 좋겠어요. 아 사실 제 마음 안에 그 칼이 있어요. 주님 사실 그 사람이 나예요. 주님 도와주세요. 내려놓기 원해요. 성령님,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마음 얼음 만져 주세요. 우리의 상처를 얼음만져 주세요. 나로 인해서 상처받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이 관계를 회복시켜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먼저 나에게 다가고 우리 사기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 물줄기가 흐르게 되고 이 교회를 넘어서 양주 지역 사회에 또 경기도에 한국 사회에 또 온 땅의 전쟁과 갈등과 분노로 가득한 이 온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흐르게 해 주십시오. 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