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광야를 지나며

2025-05-02 · 마태복음 4장 1절 · 정순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태복음 4장 1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의 말씀. 신약 성경도 4페이지에 있습니다. 앞에 화면이 준비되어 있죠. 우리 한 목소리로 함께 마태복음 4장 1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 저 사실 오늘이 예배 정말 오고 싶었습니다. 네. 사귐의교회 예외에 정말 오고 싶었어요. 제가 강정규 목사님과 함께 교재하면서이

교회의 과정과이 교회의 열정과 뜨거움들이 제게 그대로 전달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 예배에 꼭 오고 싶었는데 강정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11시 예배는 올 수 없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 강정기 목사님께서 저를이 시간에 초대해 주신 거 같아요. 어 하나님께서 제게 오늘이 말씀 전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영광의 자리에 세워 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광정 기사님과 우리 성도 여러분 어 저를 초대해 주시고 또 말씀으로 함께 은혜 나눌 수 있게 하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 제가 제 소개를 해야겠죠. 저를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아 제가 한 두 차례 강점 세미나로 여러분들을 만났었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 이름을 모르고 강점 목사님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예. 어, 제 이름은 정순태 목사입니다. 네. 목사라 부르기 좀 부끄러운게 약 한 달 전에 사임했어요. 아, 그래서 당분간 어, 한 달간은 목사가 아닌 자연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아, 근데 제가 그 얼굴이 좀 탔어요. 좀 뭔게 뭔가 어두워 보이지 않습니까? 근심 있어서가 아니고

탔습니다. 어, 제가 4월 10일부터 24일까지 이스라엘에 다녔습니다. 어, 네. 선크림을 발랐는데도 이렇게 됐어요. 아,가 보고 싶은 나라였고 또 성경의 인물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아, 제가 상상했던 그 영화에서 보았던 또 그 목사님들께서 혹은 설교가들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 장소에 직접 가서 보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큰 먹고 자연인이 된 김에 아, 2주간 다녀왔습니다. 아 그런데 이스라엘이 생각보다 갈 수 없는 환경들도 있었어요. 왜냐면 여러분 전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테러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어 쉽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한테는 말하지 않고 다녀왔어요. 아내한테는 끝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고 다녀왔는데 사실가 보니까 어 미사일도 날라오고 또 아직 가자 지구에서는 어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또 전쟁 때문에 세금이 또 많이 거쳐지게 돼서 우리나라의 물가에 한 두 세 배 정도 되더라고요. 어 그래서 햄버거가 3만 원이었습니다. 네. 그래서 어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고

아침 저녁은 집에서 먹는 걸로 하고 점심은 꾸역꾸역 먹는데 3만 원짜리가 그 우리가 일반의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그런 음식이 아니고 길거리에서 파는데 3만 원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복수를 다짐했죠. 한국 가서 다 먹어야지. 네. 아, 그리고 또 제가 이스라엘을 다녀와야 하는데 한 가지 또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50이 안 됐는데 50견이 왔어요. 혹시 여러분 50견 오신 분 있어요? 아, 있나요? 네. 그 그걸

진짜 누구 말할 수 없어요. 이거 진짜 그 이스라엘 순례를 다녀오는데 혼자 갔는데 마치 제 위에 누굴 얹혀서 간 갔다 온 거 같아요. 어, 그 아, 표정 보니까 지금 느낌 맞잖네. 와, 그래서 너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갈까 말까 고민하고 염려가 됐었는데 다녀오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정말 다녀오길 잘한 거 같아요. 평생 안 갔으면 후회할 뻔 했는데 다녀와서 또 여러분 앞에서 제가 이스라엘에 다녀와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할 순 없지만 또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 혹시 여러분 이스라엘을 다녀오신 분 있습니까? 다행이네. 제가 마음껏 얘기해도 되겠군요. 오늘 뭐 뭐 거짓으로 얘기해도 여러분 뭐 뭐 저에게 컴플레인 하실 분이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진실되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어 여러분 만약에 이스라엘 가신다면 어디에 가고 싶습니까? 어 예루살렘 예루살렘 좋습니다. 예루살렘 또 어디 가고 싶으십니까?네 사마리아. 사마리아 좋습니다. 어 네 요단강 좋습니다. 요단강.네 예.

여리고는 안 가고 싶으신가요? 사게오가 살았던 또 무너졌던 여리고송인 여리고 또 베들레헴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리고 사회 가서 좀 띄워보고 싶지 않습니까? 사회네 혹의 바다에 가고 싶지 않으신가요? 예. 그 아 갈릴리 나사렛네 선교사님께서 저기 물어보시더라고요. 목사님 어디 가고 싶으세요? 사실 제가 사임을 하고 나서 얼마 안 돼서 정신이 없어서 아파서 생각을 안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가고 싶은 곳이 있었어요. 광야가 가고 싶었습니다. 광야.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그 광야는 어떤 곳일까? 어디에 피 어디로 피했을까? 그리고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면서 지냈던 그곳 어떤 환경일까? 그리고 세례 요한이 천국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가 광야에 있었잖아요. 그 광야는 어떤 곳일까? 너무 궁금했어요. 우리나라에 광야가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 광야 있나요? 어, 질문하면 안 되는 거야, 목사님. 여기서 혹시 질문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에요. 아니요. 아, 날 죄송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하는게 안 된다면 이제 제가

이 그 분위기와 문화에 맞춰 가야 되니까 질문해도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아, 그럼 일부러 답변을 안 하신 거군요. 네. 알겠습니다. 네. 아, 우리나라에 광야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광야는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프란폭이 나지 않는 곳인가? 그런 이미지인데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계셨던 세례요한이 있었던 다윗이 있었던 그 광야가 어떤 곳인지 상상 속에 있던 그 보고 싶어서 광야를 갔습니다. 막 그 끝이 없는 그 이글이글거리는 그 사막 한가운데

있는 광야인지 아니면 모래산이 쌓여 있는 그런 광야인지 흔히 우리 성경 공부하다 보면 아 지금 제가 광야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제 삶이 지금 광야예요.라고 라고 말하는 그런 광야에 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인도하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광야는 어떤 곳일까라고 생각이 되었 여러분은 광야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제가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어 제가 교재했던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교재했다고 해서 한 번 만났어요. 근데 그분이

저를 위해서 천사와 같이 무려 일주일간 저와 동행해 주셨어요. 네. 별로 제 일이라서 그렇게 감동이 없으신 거 같은데요. 한 번 만났거든요. 제가 잠깐. 근데 그분이 저를 일주일간 시간에 내어서 저와 동행해 주셨는데 아 너무 감사했어요. 왜 그랬냐면 그때 제 시기가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7일간 휴 어 휴일이에요. 유대인들이. 그래서 그 그들이 말하는 패싹 그 히브리어 패싹이라고 하거든요. 그 기간에 제가 방문해서 다녔는데 이스라엘의 축제 기간입니다. 베들레헴의

사람이 정말 많아요. 아 예루살렘에 그 예루살렘의 성전에 유대인들이 각 세계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 절기를 지키러 오거든요. 지금도 와요. 여러분 뭐 영화 TV 보면 통곡의벽 앞에서 그 하고 있잖아요. 그죠? 예루살렘 앞에 있는 그 모든 성전을 다니고 방문하고 또 유대인들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가족을 다 데려와요. 놀랬어요. 정말 사랑이 많은데 제가 정말 모든 세계에 있는 유대인들 다 본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시아인는 저 혼자였거든요. 아 근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광야를 낮에도 한번 가고 밤에도 한번 갔거든요. 광야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실 광야는 가는 곳이 아니고 볼 것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알고 있어요. 광야 아무것도 볼 곳이 없다는 걸. 그러니까 선교사님은 저 때문에 광야를 간 거죠. 한 번은 낮에 가고 한 번은 밤에 다녀왔는데 그 장면들이 어떤가? 그니까 제가 말로 하면 여러분들이 잘 인식이 안 될 거 같아서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아네 사진 한번 보여 주시죠. 네. 이스라엘이 여기 있습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여러 아 이게 우리 어 우리나라가 저쪽에 있고 이 아프리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이 이스라엘 그 요단 요단강을 중심으로 요르단과 이스라엘로 나눠져요. 이렇게 나눠져 있고 지형이 이렇습니다. 지형이 이쪽이 예루살렘이고 그 아래 베들레헴인데 어 우리나라도 이제 편수풍이 불러와서 그 태백 선명을 넘어가면서 건조해지잖아요 바람이. 아 이런 네. 갑자기 과학 얘기를네 맞습니다.이 이스라엘도 바람이 불러오다가이 베 예루살렘 지역을 지나가면서 바람이 건조해지면서

그쪽에 광야가 형성이 되는 거예요. 아 좋습니다.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래서 광야가 되는 것인데 예루살렘이 해발이 800m 정도 됩니다. 근데 이 요단강과 사회가 얼마 정도 있냐면 -400이에요.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그니까 1200m가 바람이 쭉 내려가면서 권자한 바람이 내려가면서 그 지역이 광야가 되는 거예요. 자, 어, 이스라엘이 가장 위쪽에 가면 헐몬산이 있습니다. 헐몬산이 3,000m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산 할라산이 얼마죠? 1800에서 1900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보다 높은 산이 있죠. 그래서 거기는 이스라엘에도 습기장이 있대요. 어 눈이 1년 내내 있어서 헐몬산에 높은 곳에서 눈이 내려 녹아서 내리면서 그 수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가장 낮은 요단강과 사회가 있고 또 800m의 고산지된 예루살렘 그 지중애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도 있고 어 평 평 평야도 있고 광야도 있고 이스라엘은 다양한 지역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막이 있는 것인데요.이 사막의 그림

보시면 어떠십니까? 이제 4월 초에 그림이에요. 원래는 이제 우기와 건기로 나눠지는데 이제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간 사이여서 식물들이 없지만 어 오기 때는 제법 그래도 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넘겨 주시겠습니까? 이런 지역입니다. 유다의 산지 유다에 있는 광야 또 넘겨 주십시오. 어, 광야 중에 이렇게 동굴이 있어요. 석키암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 동굴이서 저쪽에 그 짐승들이 저 안에 피하기도 하고 그리고 다윗이 어디 숨었었죠? 동굴에. 맞아. 이런 동굴이 숨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 하면은 한 굴이 아니고 굴이 연결돼 있어서 각각 거기 숨었던 거예요. 저도 굴에 들어갔는데 죽을 뻔했습니다. 제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제가 어디가 아프다고요? 50년이 50년. 악소리 내면서 들어갔다 왔는데 어 그곳을 가니까 정말 어둡고 침침한데 어 다윗이 그곳에 사울을 뒤숨었다니 어떤 마음이었을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50견 때문이 아니라요. 눈물이 났습니다. 아 이곳에 숨먹했구나. 기약 없는 곳에서 동물들이 거처를 잡는 그곳에 숨먹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넘겨 주시겠습니까?이 밤에 봤던 광야입니다. 네. 밤에 그래서 기온차가 낮에는 40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한 5도 정도가 됩니다. 기운차가 30도에서 40도 정도 되는 거예요. 아마 예수님은 이 광야에서 낮에는 굴에 계시고 밤에는 나오셨을 거예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반복을 하면서 광야를 지나시지 않으셨거이 저입니다. 네. 컨셉 사진. 네. 네. 아, 하지만 제가 느꼈던 건 뭐냐면이 사람은 살 수 없겠다. 사람은 살 수 없다.

광야에는 물론 동물들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생물들도 있지만 간혹 물들도 흐르지만 사는 것은 아니구나. 왜냐하면 지금 이렇게 개발이 되고 과학이 발전하고 있는데 아무도 살지 않으니까 지금도. 네. 여전히 광야입니다. 버려진 땅. 그곳 광야. 광야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광야를 다녀면서 광야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지고 또 알고 싶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4장 1절에 그때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그때가 언제일까요? 4장 1절에이 앞절을 보면 알 수 있겠죠. 그때는

바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시기에 가장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죠. 어디에서 받습니까? 요단강에서. 요단강이 어떤 곳이라고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 예수님께서 저 하늘 위에서 내려오셔서 가장 낮은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에서 세례를 받으셨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겸손하신 거죠. 세례를 받지 않으셔도 되는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 구유에서 태어나셨잖아요. 어떤

뭐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잘못 곳이 없어서 누일 곳이 없어서 구회에 태어나신 겸손한 그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막 치어로처럼 삼각 팬티를 잃고 여기 이 여기 뒤에 이렇게 망도가 있어서 하늘을 울면서 진동하며 내려오셨다면은 그냥 해결될 일이었는데 아기로 태어나셨다는게 얼마나 은혜입니까?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그리고 헤로당의 죽음을 피해서 도망가야 했던 그런 상황. 그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죠. 그 음성이 무엇이죠?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또 내 기뻐하는 자라. 진한 사랑의 고백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겁니다. 영광 받아야 할 그분이 가장 낮은 곳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그곳에서 받지 않아도 될 죄인들이 받아야 할 세례를 우리를 위하여서 받으셨으니까요. 자, 이제는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그 음성을 들렸다면 당연히 당연히 러브 스토리가 진행돼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이 말씀을 마가복음 1장 12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이 말은 예수님이 원해서 간 건 아니라는 거죠. 성령이 이끌어서 몰아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위로 그곳에 간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성령을 통하여서 광야로 내모르시고 이끄셨다는 거죠. 겸손하게 낮아진 예수 그리스도를 왜 다시 광야로 인도해야 됐습니까?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내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라고 그렇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바로 곧 광야로 내모르쳤을까요? 게다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은 정말 많은 지역이 있어요. 어 이왕이면은 높은 곳 헐몬산에서 시원을 받으면 어 어떻습니까? 좀 멋있지 않을까요? 가장 높은 곳에서 아니면 지중에 요단강도 있고 갈릴리바다도 있고 예루살렘도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려가셨어요.

제 질문은 이거예요. 왜 광야라는 거냐? 왜 광야일까요? 제가 봤던 광야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볼 수 있는게 없어요. 사람도 없고 다체로움도 없고 역사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요한복음에는이 사건 이후에 어 물론 이 세례 사건이 나와 있지 않지만 공생의 시작이 유월절로 시작하거든요. 그렇다면은 40일간에 금식을 했으니까 약 2월에서 3월 사이에 광야에서 40일 정도를 금식했을 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략 1교차가 3, 40도 정도 돼요. 마가복음 1장

13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간혹 광야에서도 수도사들이 어떤 수련을 하기 위해서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들짐승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은 더 깊은 곳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짐승만 있는 곳으로 가셨다는 거죠. 외롭고 척박한 곳으로 가셨다는 거죠. 말 그대로 그 광야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신 겁니다. 게다가 광야에 간 목적이 그냥 간 것이 아니라 시험받으러 가셨잖아요. 사탄에게. 그 말은 그 광야 안에서 수많은 유혹의 메시지 속삭이는

그 사탄의 음성들 현상들이 있었겠죠. 엄청 났을 겁니다. 외로움과 두려움. 제가 광야를 갔을 때는 일행들과 같이 왔으니까 다행이지. 한번 제가 광야에서 버스를 잘못 내려 가지고 혼자 있 적이 있었거든요. 너무 무서웠어요. 예수님이 혼자 그 홀로 시간을 보내셨을 때 외로움과 두려움, 정막함과 육신의 연약함들이 몰려왔을 겁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연약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으니까요. 화려한 대비를 한 것 같았으나 세례를 받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기뻐하는 자야라고 하는 그 아름다운 멋있는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내려서 그 아라움다운 화려한 대비를 한 것 같았으나 바로 바로 광야로 예상치 못한 경로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자 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만 했습니까? 그것도 왜 광야에서 물론 예수님의 광야 광야의 첫 사건이 아니죠. 우리는 모세가 이미 40년간 광야에서 양을 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장인의 양을 쳤죠. 본인의 양도 아니라 살인자의 그 신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조용히 숨어지냈던 광야의 시간.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40년간 다녔던 그 일들. 또 엘리야는 바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다 이기고 나서도 두려워서 호렙산에서 40일을 지냈던 일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광야로 피해 다녔습니다. 사도 바울도 회심 이후에는 아라비아 광야로 다녔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자, 이렇게 우리가 광야에 있는 사건들을 돌아보면 광야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어떤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우리 함께 예레미야 2장 1절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2장 2장 2절의 말씀입니다. 2장 2절의 말씀 시작.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내 청년 때의 인해와 내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하나님은 이 광야를 신혼의 때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어, 저이 말씀을 읽으면서 너무 놀라웠어요. 하나님은 이 시간을 광야의 시간을 신혼 때라고

기억하시는구나. 여러분 결혼하신 분들 계시죠? 네. 신혼의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사랑이 넘지는 꿀과 같은 그 사랑의 메시지들이 오가는 그 시간 하나님은 그 광야의 시간을 신혼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네가 나를 따랐던 그 시간 그 시간이 신혼 때였어라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죠.이 이 광야라는 히브리어의 말이 미드바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다바르라고 하면 말씀을 뜻해요. 미란 뜻은 장소라는 뜻인데 아 말씀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광야. 하나님이 대화하고

소통하고 말씀으로 인도하는 곳이 바로 광야라는 것이죠. 어떤 말씀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그 광야에 있는 자들 특별히 오늘이 40일간의 금식을 통해 시험을 겪고 있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물론 성경에 나와 있지 않아요. 우리 성경은 상상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 상상력이 저를 이스라엘까지 이끌었던 것처럼 여러분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뭐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상상을 해 봐요. 그 전에 있던 말씀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고 광야에서 수없이 예수님에게 속삭이지 않았을까요? 왜냐? 광야를 하나님은 신혼했대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어쩌면 더 사랑하려고, 더 교재하려고 더 기쁨에 나눔을 하려고 사랑의 그런 달콤한 시간을 보내려고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던 건 아니겠습니까?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저도 광야에 앉아 보니까요. 할게 없어요. 볼 것도

없습니다.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갖고 있던 다른 생각들, 제 시선을 뺐던 것들을 다 내려두고 하나님을 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왜 광야에 왔지? 내가 왜 이스라엘을 왔지? 내가 왜 사역을 그만뒀지? 내가 왜 목사로이 세상을 살아가기로 결정했지? 내가 왜 첫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이렇게 살아오기로 결정했지? 그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과 나와의 달콤한 교재가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세상 살다 보면은 혼자 있지 않게 되면 혹은 혼자 있더라도 대중 매체나 여러 가지 언론이나 혹은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기기들 통해서 집중할 수 없잖아요. 재밌는게 많고 들리는게 많고 신경 써야 할게 많으니까. 그런데 광야에 앉아 있다 보니까요. 오랜만에 겪는 고요함, 오랜만에 겪는 편안함, 오랜만에 겪는 아, 여기 더 있고 싶다. 예수님께서 아마 이 광야 시간 이후에 이런 기쁨 때문에 제자들을 홀로 두고, 제자들을 두고 홀로 기도하러 가신

건 아닐까요?이 이 기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제자들을 두고 기도하러 가셔서 그 시간을 보냈던 건 아닐까요? 우리는 생각할 때 기도하러 가면 정말 막 힘들게 기도하고 어렵게 기도하고 새벽을 깨우는 그런 느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닐 거라 생각해요. 저는 예수님께서 이 광야에서의 그 시간 때문에 홀로 기도하는 그 시간을 매우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고 힘을 얻고 아버지와 만나 아버지의 사랑을 얻는 또 아버지께 사랑을

고백한 우리가 마지막 찬양했던 것처럼 내 오로지 한 기쁨은 예배하는 것입니다라고 내 유일한 고백은 주를 예배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그런 고백들로이 광야의 시간 예수님의 기도의 시간이 채워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지난 3월을 마지막으로 교회 사역을 마무리했습니다. 아,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할하게 될 때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계획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계획이 있어서 사입한게 아니었어요. 갑자기 여러분 저를 보시는 한심하다 느낌이 좀 있는데요.

물론 아예 계획은 없는 건 아니시지만 구체적인 계획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해진게 없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죠 하나님은 제게 도전하라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 이러한 말씀으로 그리고 하나님은 제게 항상 중요한 순간에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같아요. 순태야 사랑한다. 아 그 음성은 뿌리칠 수가 없고 저를 무미 상태로 만듭니다. 그래서 예, 하나님 결정합니다. 제가 내려놓겠습니다. 사실 이전에 사했던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되게

잘 지냈어요. 제 국휼을 구합니다. 여러분에게 은혜가 있었고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헤어질 때 너무 많이 눈물이 나서 힘들만큼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헤어져야 하고 떠나야함을 하나님 말씀하셨어요. 그만두고 나니까요. 보이는 것이 없더라고요. 어디로 가야 할지. 광야에 앉아서 하나님께 푸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저희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요? 어, 이스라엘에서 돌아가면 아무 일어나지 않고 저의 사역의 인생은 끝나는 거 아닌가요? 게다가

50년도 빨리 왔는데 제 건강은 더 나빠지고 더 이상 제가 사역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리지 않는 건 아닌가요? 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자꾸 누군가 비교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광야에 있으니까 제가 솔직히 지더라고요. 하나님 저 힘들어요.이 시간이 너무 버티기 힘듭니다. 그리고 제가 혼자가 아니잖아요. 제가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이 시간이 제게 너무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전 자유로 왔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하나님과의 단둘의 대화니까요.

그곳에는 오직 주님과 저만 있었으니까요. 저는 참 다양한 공동체를 거쳐왔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역할들을 해 왔습니다. 그곳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역할과 의무가 또 책임이 있었죠. 때문에 저의 솔직한 고백과 잠잠한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었어요. 적응해야 했고 그 사람의 기대에 맞춰서야 했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제가 반응하는 것이 제게는 그것이 성과였으니까요. 하나님과 대화를 아는 시간 사랑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그러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사역자로

부르시기 전에 이 광야의 시간으로 초대하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하나님이 나를 다시 사랑하셔서 광야의 시간 제가 말씀드린 광야의 시간은 이스라엘에서 앉아 있던 그 광야의 시간도 광야의 시간이지만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시간이 그 광야의 시간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 있는 시간이 아닌 그저 제가 하나님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나누는 인간 정순태로서의 하나님과 소통하는 그 시간이 아닌가? 잔잠히 저를 듣고 안기 위해서 그 시간으로 저를 부르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의 말씀이 찬양이이 말씀이 찬양으로도 나오잖아요. 여러분이 찬양 아십니까?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여기까지 하지 않고 더하겠습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부르시는 거 같아서요. 잠잠히 너를 위해 내가 기뻐서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는 그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광야에 있던 예수님도 이런 사랑의 고백을 계속 듣지 않았을까요? 정말 너랑 같이 있고 싶다. 너의 갈 길, 너의 가야 하는 그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 있겠지만 네가 또 그 안에 이적을 베풀고 기적을 베풀면서 사람들에게 도치되고 사람들 안에 쌓여서 그 인기와 열정 가운데 있을 거에 도치되기도 전에 하나님과 신혼 생활을 위해서 광야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내셔서 그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광야는 시험의 장소입니다.이 광야는 어떤 곳일까? 사랑의 장소인

동시에 시험의 장소죠. 스데반 집사는 그의 죽음 앞에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의 광야의 시간을 광야 학교라고 이야기했어요. 사도행전 7장 38절의 말씀인데 우리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스데반 집사가 했던 이야기예요. 하겠습니다. 시작.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예. 광야 교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함을 위하여 거룩한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바로 들어갈 수 없었죠. 그래서 40년간 광야에 방황하는 시간 또는 준비되는 시간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연단의 시간, 거룩해지고 정결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 음성도 있었겠죠. 당연하죠. 그러나 그곳에 여전히 유혹하고 시험하고 정제하는 사탄도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죠. 사탄은 언제나 거기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고 나서도 사탄이 잠시 물러갔다라고 이야기 나오거든요. 사탄은 언제나 예수님 진처에 머물면서 호시탐 기회를 노렸는데이 광야는 더 없이 좋은 시간이었겠죠. 하물며 우리도 그 유혹이 없겠습니까? 그 시험은 무엇일까요? 가장 어려운 시험 무엇일까요? 어, 여러 가지 시험이 있겠지만 계산하는 겁니다. 효율을 따지는 거예요. 왜냐? 광야는 비효율적인 곳이거든요. 모든 것이 없으니까요. 사탄은 계속 말했을 거예요. 뭘 금식하고 그래? 야,

너 돌 덩이를 떡으로 만들면 금방 해결되잖아. 야, 이렇게 어렵게 살지 말자라고 얘기했을 거예요. 야, 그리고 고통 없이 그냥 우리 십자가 일 없이 길 없이 단번에 네가 연명해지고 메시아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어. 성전에서 뛰어내려 봐.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잖아. 거기 너 뛰어내릴 때 선사들이 봤으면 얼마나 널 칭송하겠어. 기다려던 메시아가 왔다라고 얘기하지 않겠어?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이렇게 계산이 안 서니? 그냥 나한테 절해. 눈 한번 딱 감고 절하면

40일에 금식 필요 없어. 3년에 사야 그냥 패스야. 내가 다 줄게. 십자가 그런 거 없어도 되잖아라고. 여러분 사탄이 무서운 얼굴을 찾아올 것 같습니까? 호로무비에 나오는 그런 괴상한 얼굴은 올 거 같아요? 아니에요. 사탄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장 달콤한 모습으로 그리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로 찾아옵니다. 왜 그렇게 광야에 있을 필요 없잖아. 야, 광야에 있지 마. 하나님은 비효율적인 광야에서 계산이 서지 않는 광야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탄은

도심으로 가려 하죠. 성전으로 가자. 먹을 것 있는 곳으로 가자. 화려한 곳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광야 학교에서 찔러야 할 시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너지죠. 이러한 광야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금세 변질되고 맙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런 글을 남겼어요. 가장 큰 실패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장 두려운 실패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준비되지 않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이에요. 광야는요. 효율이 아닌 계산이서는 것이 아닌

무덤이 하나님과 그 고난의 시간, 역경의 시간을 견디며 그 음성을 듣고 내 안에 있는 유혹과 정욕들을 벗어내는 정결을 정욕을 싸워 이겨내는 그런 시간인 것입니다. 사실 제가 강정희 목사님 되게 좋아해요. 왜냐면 이 교회의 스토리를 알고 있고 그의 삶의 스토리를 알고 있으니 그가 쉬운 길을 터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길을 택하고 그래서 제가 사실 어 강정기 목사님이 하신 일을 다 따라하려고 합니다. 지금네 그에게도 광야가 있었겠죠. 그 광야 시간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곳에서 사람들도 봐주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하나님과 교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그러나 여기전 사탄은 나에게 속삭이고 다른 길이 있다고 쉬운 길이 있다고 말하는 그것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그래서 제가 사기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이교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힘을 얻고 갈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보니까 광야의 시간이 의미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난주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얘들아, 그리고 여보, 이제 우리 광야. 아, 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슬프게까지 하는데 확신합니다.이 시간이 가장 잘들을 수 있고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우리의 가정의 갈길을 점검할 수 있는 절로의 기회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광야의 시간. 어쩌면 이전에는 제가 계산이 서고 뭔가 보여서 갔던 길. 제가 선택했던 효율적인 길을 선택했다면 이젠 진짜 비효율적이고 마치 성령이 나를 몰아낸 것처럼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달콤한 시간 내 안에 있는 정란한 나의 모습 정욕과 유혹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시간이 제게 열린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또한 기대가 됩니다. 광야의 시간입니까요? 사랑하는 사귐의교회 성도 여러분에게도 광야의 시간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조용히 묵상하고 그러나 그 안에서 내 안에 있는 그 더러움과 추함을 발견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나요? 언제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내 안에 연약함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까? 만일 또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서 여러분들을 광야로 이끄신다면 내 의지가 아닌 나를 광야로 이끄신다면 광야로로 그 자리로 나아가시겠습니까? 광야는 하나님과 나만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딘가요? 물론 우리나라에는 광야가 없어요. 그러나 골방이 있고 무릎 꿇고 하는 그 나만의 기도의 장소. 사람은 보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하나님과 속삭이는 그 장소. 그 광야의 시간들, 장소가 여러분에게는 지금 있습니까? 물론 이렇게 나와 같이 예배하는 이

시간도 귀하고 아름답지만 내가 스스로 혼자 나가 하나님과 교재하는 그 신혼 생활 같은 그런 달콤한 나만 나하고만 사랑을 누리는 하나님과 교재하는 그 광야의 시간이 있나요? 오늘 밤 혹시 이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힘을 내십시오. 또는 광야가 있으면 어떡하냐 두려워하시는 분들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또는 광야에 대한 그 기쁨과 기대가 있는 분들은 하나님 제게 그 시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입이 되기 원합니다. 광야는 척박한 곳일

수 있겠으나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사랑이 있고 나를 정결케 하는 연단케 하는 그 장소인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