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은 저희가네 초청해서 또 설교자 초청해서 함께 예배하는 그런 날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말씀은 아니고요. 오늘은 사도행전 말씀을 같이 볼 건데 오늘 성경 봉독 저희가 좀 오랜만에 한번 같이 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궁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이 그대로 있음에 구원의 여왕마저 없어졌더라.
아멘. 오늘 우리 위해서 함께 말씀을 증거해 주신 우리 목사님은 저의 스승님입니다. 네. 저희 성결대학교에서 뭐 저나 뭐 성문관사나 예진간사나 저희에게 설교학을 가르쳐줬던네 교수님이신데요. 작년에 어 오셨기 때문에 아마 얼굴 보신 분 있겠지만 작년에는 오히려 제가 어 얼굴을 뵙지 못해서 어 보고 싶은 마음에 예 또 오랜만에 뵙고 싶고 듣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추청하게 됐습니다. 오늘 오교수님 나오셔서 같이 말씀 전해주실 때 우리 함께 은혜 있기 바라겠습니다. 우리
환대하는 마음으로 박수로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신학 대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통적으로 신학대학 교수들은 기도도 안 하고 말씀도 안 보고 매마른 사람 책만 보는데 책도 제대로 보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들이 있는데요.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단임 목사님이 저희 이번 주에 휴가하셔서 그런 기회가 아니면은 새벽 예배도 안 나가고 제가 협동 목사로 있으면서 단임 목사가 어디 나가야 새벽 예배도 지키고 수요 예배 설교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 말씀도 읽고 하나님 앞에 또 무릎도 꿇게 되니까 저는 설교학 박사 정도 되면은 설교가 그냥 쉽게 될 줄 알았는데요. 일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맨 예배이 되는 건 없구나. 그래서 신학대학의 교수들도 그렇고 과거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어른 목사님 세대와 달리 저나 젊은 제자들은 아무래도 기도도 좀 부족하고 말씀에 대한 그런 성찰도 좀 부족하고 뭐 거룩해 거룩한 삶에 대한 노력도 좀 부족합니다. 그래서 1세대 목사님들, 2세대 목사님들은 다 성대 결절인지
알 수 없는 목에 그 컬함이 있고 신령한 목소리가 나오잖아요. 저와 같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제 벌써 목소리가 아 목소 안 기도 안 한 사람이다. 티가 딱 나는데 어르신들은 안 그러시죠. 그때는 이제 PA 시스템, 방송이나 이런게 제대로 안 돼서 좋지 않은 마이크를 가지고 소리를 크게 지르다 보니 목이 상한 경우도 있었고 사실은 그거보다는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는 시간이 몇 배나 많았던 분들이셔서 아마 그랬을 줄로 아는데요. 저는 또 제자들은 뭐 그렇지 않아서
과연 어 신학대학의 현조는 뭔가에 대한 보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전도사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신학대학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말씀을들은 후에 여러분들도 그 귀한 고백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부족한 종을 말씀의 종으로 세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본문의 뜻을 드러내는데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본문은 제가 다 읽지 않았는데 우리가 1년에 한번 성경 독도가신다 그랬는데 27장 18, 19, 20절 세 절만 읽었습니다. 사실은 한 9절부터 26절 정도까지 읽어야이 에피소드의 전후 사정을 다 알게 되는데 사실은 교회를 오래 다녔던 분들은 대부분 아마 알 텐데요. 어 바울이 로마로 이제 끌려가는 압성되는 그 뱃길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백길이니까 아무래도 그 시기가 그러했는데 어 광풍이 불어닥쳤던 지난 여름에
우리가 포염의 포구의 태풍의 살인 예고에 어 무서운 그런 여름을 우리가 지금 보내 왔는데이 본문에도 무서운 바람이 부는데 바람이 불어서 배가 항해를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우니까 본문을 보면 배의 기구를 버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배에 짐을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는 일들은 종종 우리가 경험하거나 아는 내용인데 배의 기구를 버린다는 거는 나중에 바람이 잦아들고 풍나 정상적인 항해를 위해서 필요한 도구일 텐데 그걸 내버리는 거잖아요. 그만큼 어 미래를 도모할 수 없는 내를
알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 있는 거죠. 해와 발이 별이 보이지 않고 또 어 구원의 여왕이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풍랑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이 본문에 보이는 것이 세 가지인데 그중 첫 번째는 아무래도 미친 바람 광풍입니다. 회에 죄수가 탔던 노련한 선주나 선장이 탔던 백부장이 탔던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이 탔던 상관없이 배에는 광풍이 불어 터쳤습니다. 아무도 원치 않은 거지만 우리 삶에도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종류의 얘기차는 바람 원하지
않는 바람들이 불어 닥치곤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등록금입니다. 등록금이 이제 한두푼이 아니잖아요. 큰 돈이고 어르신들도 좀 참석해 계시는데 일부 예배에는 교사들이 좀 많이 참석해 계시고 어르신들이 학생 시절에는 학사금을 내지 못하면 뒤에서 있기도 하고 뭐 부모님을 불러와라는 말도 듣고 했었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국가가 우리를 위해서 별로 해 주는게 없는 국가가 국가 장학금이라고 하는 걸 만들어서 세학생들을 좀 돕 돕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어 성결대학교는 큰 사이즈의 학교가 아닌데 성결대학교만 하더라도 제가 학생 처장으로 있을 때 한 200억 정도를 해마다 지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필요한 사람에게 얼마든지 지원을 할 수 있는 어 금액이 되는 거죠. 한 친구가 제 연구실에 찾아왔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등록을 아직 다 완납하지 못했다라는 얘기를 하기 중에 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냐? 그래서 어떻게 노력을 하고 있냐 했더니 일부는 냈고 그리고 아르바를 두 개 하고 있고 뭐 교회에서
섬기고 있는데 이런저런 것들을 좀 충당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걸로 다 되겠느냐? 뭐 부모님은 뭐 하시냐? 아버지 뭐 하시냐? 이렇게 물어봤는데 어쨌든 아버지도 좀 어렵고 해서 자기가 노력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기도도 하고 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도 안 되면 은행을 좀 털어야겠다. 그런 얘기도 하고 뭐 쉬운 방법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니까 그건 최후 수단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간구한 후에 기도하고
보냈습니다. 사실은 뭐 주머니를 좀 열어서 이렇게 이제 카드 법화다 써라 이렇게 하면 좋겠지만 법화를 또 그런데 쓸 수도 없고 교수들이 항상 학생들의 필요의 돈으로 도와주는 것만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보니까 여름에 지난 여름에 그 제자들이 학교를 본부로 해서 수련회를 많이 진행했었어요. 뭐 대규모 수준에도 있었지만 뭐 세 개 교회, 여섯 개 교회가 모여서 하는데 지난주가 몇 명의 제자들이 올라오길래 짐들을 가지고 어 수련해야 했더니 그렇다 그래서 근데
한 놈이 교수님 배고파요. 그래가지고 제가 카드를 꺼내서 이렇게 줬거든요. 어 근데 그날 안 먹더라고요. 그래서 받아야지 하고 있는데 그다음 날 문자가 왔는데 27만 5,000원인가 나 이런 한 27,000원도 그냥 맨놈이서 먹으라고 해서 그날 배고프다 그래서 준 건데 지네들은 안 먹고 참석한 학생들 치킨을 다 돌린 거예요.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는데 하니깐 뭐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그냥 같이 욕하고 같이 토닥토닥하다가 보내는게 제가 하신 일 중에
하나죠. 삼성연구소의 연구원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제자가 있습니다.이 친구는 여학생이고 또 장교를 지원하려고 준비하는 친구라 운동장을 미친 듯이 맨날 뛰는 친구예요. 여학생인데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남자 친구도 물론 있고 이 친구가 이제 방학대 찾아와서 전 청첩장을 들고 온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놔 했더니 내놓을게 아니라 교심 사실은 제가 지난 여름에 그 자살을 두 번 시도했습니다. 한번은 동해에 인적이 좀 드은 때에 바다가에 보니까 사람이 없어서 오케이 하고서
바드러 들어가서 죽으려고 들어갔는데 동해니까 경계 근물을 쓴 군인이 보고서 찾아와서 살려낸 거예요. 한번은 자기가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죽기에 좋더래요. 그래서이야 영화의 대사처럼 죽기 너무 좋은 날씨다라고 판단이 돼서 베란다를 이렇게기에 올라가고 있는데 그 집은 자매만 새 있는 집이에요. 딸 딸 딸 저희 집은 아들만 새지는 집인데요. 우리는 좀 그 험악한 분이고 저쪽은 좀 향기롭고 아름다운 제 편견이겠습니다만 근데 막내가 그 제자의 동생이 유도를
배운 친구인데 언니가 이렇게 보니까 뻘짓을 하고 있잖아요. 달려가가지고 뒷떨는 바람에 어 살은 거예요. 어 우울증이 심해서 신경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는이 친구. 엄마도 이제 새 자매가 있는데 큰 언니는 독립을 해서 나가서 살고 있어요. 그리고 얘는 집에 있고 막내도 있지만 막내는 아직 어리고 어 심맛을 줄 알지. 그리고 남편과 이렇게 헤어져서 딸들과 함께 사는 어머니데 어이 둘째가 신앙도 좋고 자기 앞가림도 할 줄 알고 신체
건강하고 하니까이 딸을 많이 의지했었는데 얘가 이제 연애한다고 그냥 날 늦게 들어오고 곧 결혼해서 이제 집을 떠날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좀 의지했던 어머니 입장에서는 좀 많이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어 저녁에 집에 와 보면 어머니가 항상 주방에 앉아서 술을 드신다는 거예요. 뭐 그럴 수 있겠지. 근데 이렇게 불을 다 끄고 너무 무섭게 악귀인가 이렇게 무섭게 막 맛있 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좀 분위기가 좀 무섭기도 하고 하루는 어머니가
집에 왔더니 자기 방에 모든 책과 옷가지를 다 찢어 놓으셨대요. 그 어머니도 좀 상태가 메롱이신 거죠. 언니가 있다고 했죠. 그 언니도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고 그리고 귀신 들린 경험이 있고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언니하고 한 방을 썼는데음 자다가 좀 잠자리가 있어서 뒤숭숭해서 눈을 떠 보니까 언니가 칼을 들고 자기를 죽이려 했었던 그런 기억도 있대요. 장난이 아닌 거예요,이 집안이. 그 무서운 언니하고는 어떻게 잘 지내냐라고 물어보니까 다행히 옛날이고 다행히
잘 지낸대요. 다행이다. 언니의 집에 놀러도 가고 가서 밥도 해 먹고 놀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뭐 그런다는 거예요. 근데 지금도 언니의 집에서 자고 오지는 못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여전히 거기까지는 극복이 안 되는 거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엄마를 칼로 잔인하게 찔러 죽이면서도 미소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꿈을 자주 꾼다는이 친구. 20대 중반밖에 안 된이 어린 친구. 그의 삶에 얼마나 실린 바람이 불고 있길래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그 제가 뭐 아무 얘기나 해도 막 이렇게 반응해 주시고 리액션이 너무 좋잖아요. 예능 프로도 아닌데 뭐 지금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환영해 주시고 작년에 보고 1년 만에 뵙고 아까 화장실에서 만난 우리 성도님은 7개월 전에 오셨다고 그러는데 이렇게 저하고 그렇게 말도 편안하게 하시고 너무 좋은 분위기인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루어진 현장 같고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지만 저 여러분들을 개인적으로는 하나도 모르지만 강종희 목사님 정도만
할까 우리 인턴들하고 그러나 여러분들 한 분 한 분 그 가슴 가슴마다 상처가 있고 사연이 있고 또 눈물이 있고 크든 작던 광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까 일부 예배 때는 어떤 성도님께서 저를 그냥 치근하게 쳐다보시더라고요. 그렇지. 좀 안 됐다. 이런 눈으로 쳐다보셔서 제 마음에 유료가 많이 됐는데 2004년에 벌써 20년 전인데 이제 유학을 마치고 이제 한국에 돌아와야 될 타이밍인데요. 2003년 12월 지음에 11월에 논문이
통과되고 4월 졸업을 앞두고 이제 아내와 함께 좀 쉬는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뒷바하지 않느라 수고했으니 아내를 위해서 좀 좋은 곳에서 여행도 좀 하고 와야지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모국에서 좀 모국 모교에서 우리 은사님들과 선배 교수들께서 목사 이제 우리가 교수청을 하고 있는데 지원을 해라. 이번에 지원 안 하면 주님 오실 때까지 언제 또 학교 교수를 뽑을지 모르니까. 아 그래요? 분위기가 주님 오실 때까지 안 뽑을 것 같다는 거는 좀 걱정스러운 얘긴데 저를 그런
중요한 타이밍에 오라고 자꾸 연락을 하시니 전 저를 뽑아 주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4월까지 버티고 아니하고 놀다가 와야 되는데 11월에 급하게 12월까지 준비해서 다 정리하고 한국에 나온 거죠. 4차까지 올라가야 되는데 총장 이사장 면적까지 가야 되는데 2차에서 똑 떨어진 거예요. 완전 거지 같잖아요. 그래 뭐지 이건? 허망하게 사실은 뭐 교수 된다는게 쉬운게 아니니까 뭐 누가 죽어야만 된다는 그런 학교도 있고 그래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래 뭐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뽑혔 오셔도 박정수 교수님들 그때 뽑힌 거예요. 아, 이런 진짜. 그러니까 이제 박정수 교수님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좋은 분인 걸 아니까 이제 거기다 화살을 쏠 그런 마음은 없는데 전공도 다르고 그 저저를 밀어내고 뽑힌 건 아니니까. 어쨌든 제가 와서 자리를 잡고 부모님을 모시고 이런 모양을 생각했는데 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한구에 와서 낙동강 오리알처럼 있으니 결국은 제가 혼자 살았던 우리 부모님게 제 방 한 칸에 아내와 두 아이와 살림을 틀게 된
거죠. 그 아내도 좀 힘들었겠죠.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는 입장이 안주인이 아니라 부모님 때에 그냥 얹혀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모습이 됐으니까 어린 아내에게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36에 이제 결혼을 했어요. 늦게 제 아내를 저를 구제한 사람이 아내거든요. 27살 저하고 아홉살 차이거든요. 장모님 저하고 아홉살 차이고 이렇게 위아래로 은혜가 넘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또 아내는 한 교회에서 만났어요. 반조하던 참이었고 나이 차가 있으니까 제가 대학생 초등학교
3학년였으니까 서로 세계관이 달랐죠. 공간이 있었을 뿐이지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었는데 서로를 이제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건데 입장에서도 존경하는 목사님 저희 아버지가 우리 감목사님처럼 목사님이신데 존경하는 목사님 사모를 사모님을 사모님을 무슨 위에 나오죠. 사모님을 이제 시부모로 이제 모시고 사는 거는 또 별기의 얘기잖아요. 목사님 사모님이 다 예뻐했던 청년 중에 한 아이고 신실한 권사님의 딸인 거 다 좋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이제 시부모가 돼서 실에 사는 것은
다른 그림이었죠. 어 1년을 그렇게 시집사리를 하고서 아내가 크리스마스 이부에 재정 예배를 드리러 가기 전에 이렇게 방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저를 안 바라보고 등을 돌리고 있는 거예요. 분명히 결혼할 때는 등이 요만했었는데 등이 이렇게 씨름을 했는지 역도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근데 좀 이렇게 우는 거 같아요. 그럼 이렇게 미치지 않고 새 웃지 않을 거 아니에요. 서 오는 거 같아서 어 무슨 오늘 무슨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아내가 한 말은 당신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아니 내가 음수도 치워 주고 뭐 재활령도 치워주고 다 한다고 했는데 뭐 설거지도 해 주고 했는데 정작 아내의 마음은 제가 만져 주지 못했던 거죠. 그러니까 또 1년을 아내가 잘 견뎌냈어요. 견뎌내는 중에 하나님께서 셋째도 주셔서 셋째를 갖게 된 걸 너무 기뻐했던 하루 만에 어 하나님 그 생명을 거둬하셨죠. 2년차 크리스마스 이후 때 아내와 함께 방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또 등을 보이고 있어요. 전 크리스마스가
무서워요. 아내가 울먹이더니 저에게 했던 말은 목사를 시아버지로 목사를 남편으로 준 사람으로서는 하기 쉬운 말이 아니지만 나를 분가시켜 주는지 정신병원에 보내 주는지 저 아내에게는 그만큼 힘든 힘든 시부모가 남편이 잘 해 준다고 해도 어린 아내에게는 어려웠던 제 삶에도 아내의 삶에도 광풍이 불어닥친 시간이었습니다. 배수가 탔던 노련한 선주가 탔던 백부장이 탔던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이 탔던 상관없이 우리의 이 인생이라는 항의에는 이렇게 광풍이 불고합니다.이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에 삶 속에 또는 내가 나는 괜찮은데 아 오케이 근데 내가 하는 누군가의 삶에 실림 바람이 부는 걸 알고 계시다면 그 바람을 하나님께서 잠잠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전에 나왔으니까 괜찮은 척 하지 마시고 괜찮지 않으면 저한테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 오늘 예배에이 영으로 임하신 하나님 앞에 맞습니다. 하나님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겉으로 웃고 있고 뭐 다 교재를 하고 있지만 괜찮지 않아요. 주님 제게
와 주세요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본문에는이 광풍만 휘적고 다니는게 아니라 그 미친 바람 속에 한 사람 바울이 있습니다.이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의 순간에 그 힘겨운 순 순간에 절망하지 않는다. 근데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까? 그죠? 22절과 25절에 보면 그 아무런 구원의 가능성과 희망이 없던 상황에서 바울은 두 번이나 안심하라. 안심하라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26절에 우리가 섬에 이을 거야. 아마 배는 부서질
것 같고 우리가 다 물에 빠져서 물 좀 먹을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거래. 그러니깐 안심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평안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등록구 못 낸 친구가 또 찾아왔어요. 뭐 어쩌라고 자꾸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좀 많이 냈냐 했더니 이제 얼마까지 커버를 했고 얼마가 남았어요. 근데 마지막이 남은 한 덩어리는 좀 힘겨울 것 같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 어떡하지? 힘겨오면 그 최후 수단을 쓸 수밖에
없네라고 해서 이제 운행 중에서 어디가 만만하냐라고 얘기하고 네가 아무을 맡을래 내가 전문을 받 영화는 많이 봤잖아. 그들은 거 많이 방법은 많이 배웠기 학습이 됐기 때문에 이제 그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화 와서 잠깐만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안양의 성결대학교가 있고 안양 지역에 교회를 둔 목사님이 전화를 하신 거예요. 제자 목사가. 그래서 아 목사님 제가 지금 학생과 면담 중이어서 다 끝나고 전화드리겠습니다라고서 끊고 다시 자리에 앉는데 그런 마음을 하나님 주시는
거예요.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좀 규모가 있는 교회고 우리 예성교단에서 역사가 있는 교회이기도 해서 혹시 뭐 가능할까라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음 다시 전화를 해서 그 목사님께음 좀 얘기를 했죠. 지금 내 방에 오는 학생의 사정이 이러 이러 해서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근데 혹시 목사님이 그 지난 그때 연말이었어요. 그래서 연말 동안 아마 목사님이 돕고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은 아마 거의 다 사용하셨을 거고 교회적으로도
아마 다 쓰셨을 거라 생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 친구를 위한 몫시 있을까요라고 제가 조심스럽게 전하고 그러나 목사님 뭐 상황이 안 되면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준비하셨겠죠라고 하고서 끊었어요. 앉아서 다시 야 학자 도생이다.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 이고서 이제 뭐 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학생이 제방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 노크를 하는데 그 목사님이 오신 거예요. 아안양이니까 빨리 달려오신 거죠.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하시는
첫 말씀이 제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 학생이 그 사람이냐 그렇다라고 하니까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그 학생에게 전달을 하면서 전사님 전사님이 필요한 돈의 전부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가진 것의 전부입니다. 대선배 목사님이 이 학생에게 사랑의 선을 전한 거예요. 사실은 얘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도 이제 되지 않으니까 돈도 문제였고 연극영화학과 복수 전공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과목이 4학년 2학기인데 F가 뜬 거예요. 그러면 이제 졸업을 못 하잖아요.
졸업을 하고 대학원 시험도 붙고 장교로도 가야 되고 자기 꿈이 계획이 있는데 다 막히는 거잖아요. 졸업 시험도 떨어졌었어요. 그래서 다 좌절 속에 있었는데 그 선배 목사님의 그 따뜻한 사랑과 어 베품으로 좀 용기 백배해서 어 그 연영과 교수님 찾아가서 막 지문이 다 없어질 정도로 사바사바 빌고 그래서 F를 잘 구제받고 C나 D를 받고 그래서 졸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졸업 시험도 통과하고 대학원 시험도 합격하고 장교 시험도 합격하고 동북부 최정선 최전선 22단 그
까치봉 12시간 올라가야 근무를 쓸 수 있 높은 산에 올라가서 경계 근무도 쓰고 근무도 잘 마치고 결혼도 하고 유학도 갔다가 지금 어 시내가나무 교회 예성의 교회 중에 교회에서 부목사로 잘 섬기고 있습니다. 여제까지 설교을 작성하다가 그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는 꿈을 자주 꾼다는 제자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 봤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괜찮냐라고 하니까 괜찮겠어요라고 하더니 여전히 우울하지만 어 이번 주에 수요일에는 제가 가까운 교회 가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렇게
서삼스럽게 말하는 거 보면은 그동안 예배도 제대로 안 드린 거인 거죠. 잘했다. 어 지금 제가 뭐 하고 있는지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겠니? 지금 자기 방을 치우고 있대요. 그 방이 무슨 방이죠? 엄마가 다 책과 옷을 다 찢어 놓은 그 방을 이제 치운다는 거예요. 그걸 왜 이제 치우냐고 했더니 아니 왜 내가 치워야 되는지 모르겠더라는 거죠. 엄마가 치워야지. 어지럽힌 사람이. 그래서 안 치우고 있다가 이제야 쉬운다는 거예요. 그것도 좋다. 교수님, 여전히 우울하지만
방을 다 치우면 운동장을 좀 뛰어야겠습니다. 기도해 주셔서 고맙고 힘이 됩니다.이 친구는 뭐 그 이후에 바로 광풍이 없어지고 좋아지진 않았어요. 결혼은 했으나 결혼 생활이 1년을 가지 못했어요. 여전히 실린 광풍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잘 견디고 지금은 기관제 교사로 섬기고 운동으로 몸과 마음도 건강해졌습니다. 저도 2004년에 이제 교수청에 떨어지고 박정수가 뽑히고 의연처럼 떨어지고 근데 이제 2006년에 주님 오실 때까지 한번 다시는 교수를 안 뽑을 것 같다고
했던 그 학교가 2년 만에 교수 초빙을 다시 한 거예요. 제가 연세대 교수청도 떨어지고 저 성결제도 떨어졌었는데 2년 만에 다시 지원하라 그래서 지원을 했고 이번에는 1차 2차 3차 4차 다 올라가서 합격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부모님이 그 소식을 들으시고 저희 내외를 앉치고 그 학교는 안양이 있고 부모님과 제가 살았던 곳은 서울에 강북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편도로만 두 시간 정도 거리가 되니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들을 섬길 수 없어서 전님 교수로 분가하라.
할렐루야. 아내에게는 그만한 복음이 어디에 있었겠어요? 근데 그 복음을 쟁취하기 위해서 아내와 제가 때를 써서 분가시켜 달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부모님이 먼저 손을 여으셔서 분가하라고 축복해서 보내시는 방법이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죠. 어, 제가 좀 두통이 심했었는데 그때 아까 제가 교수가 안 됐을 때에 사실은 뭐 마음으로는 아, 그래 뭐 교수는 누가 죽어야만 된다고 하는데 뭐 좋은 분들이 뽑혔으니 괜찮아라고 쿨레 쩔게 이렇게 받아들이고 했었는데요.
근데 사실은 몸은 좀 머리로 받아들였는데 몸은 못 받아는지 고혈압이 생기고 두통이 심해서 펜자 같은 걸 하루에 세알씩 먹어도 두통을 잡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너무 힘들었었죠. 근데 두통 건강 검음진을 가러 갔다가 두통 클린이 눈에 띄어서 가서 이제 들어가서 좀 보니까 제가 원래 눈이 그 두통이 심했던 거는 눈 때문에 그런데 눈의 실력차가 크거든요. 여기는 2.0 아주 좋은 눈이고 여기는 -6.5. 원래 두 눈이 이렇게 포커스를 맞춰서 책을 읽든지 뭐 총을 쏘든지
멀리 있는 뭐 사물을 관찰하든지 해야 되는 건데 두 눈이 초점을 마치려면 너무 빠하는 거죠. 그러니까 의사들 말로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고 두통을 유발하는 눈입니다. 저는 그렇게 뭐 평생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도통 콜리닉가 들어가 보니까 눈도 원인데 사진을 찍어 보니 당신은 지금 목도 문제다. 경추 치료를 좀 받아보겠느냐? 오케이. 한 달만 치료를 받아보시라. 한 달 뭐 머리에 주사 맞고 뭐 이렇게 했는데요. 한 달 만에 맑아졌어요. 매일 먹던 약 세 아시 먹던
제가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맑은 머리로 머리가 좋아진 건 아닌데 그냥 두통만 잡힌 거죠. 사실은 이런 눈으로 이런 머리로 제가 한 시간 이상 책을 보라고 보지 말라고 했을 때 땡큐 할렐루야 뭐 이렇게 하고 나왔었는데 어이 눈으로 하나님께서 공부를 계속 시키시고 유학을 두 번이나 시키시고 박사까지 교수까지 인도하신 것은 세간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셋째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 만에 아이를 잃어버리고 아내도 저도 마음에 상심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셋째도 주셔서 아들만 셋시어서 좀 거지 같긴 합니다만 이제 군대 갔다 와서 대학생 대학교 2학년이 된 큰애와 이제 고3을 잘 견뎌내고 그다음 대학교 1학년이 된 둘째 아직고 1일 1 막내 고일 막내는 지금도 교회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제 얼굴을 이렇게 잡고 하는 그런 친구인데요. 막내가서 그런지 한번 짐 보겠습니다. 네. 큰네들 넘겨 주시고. 네. 가정 예배 때. 예. 소리도 안 나는 악기들. 네. 예. 설정된 예. 둘째가 이렇게 바보 같잖아요.이 형이 너
형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형이 어떤 짓을 해도 완전한 사육. 어떤 짓을 해도 다 좋아하는 넘기시고 게임 아빠 닮아서 게임 좋아하는데요. 둘째 조이스틱 보면은 선이 연결이 안 돼 있어요. 안 되는 건데 열심히 자기도 자기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죠. 볼에이 파란 자국은 형한테 꼬집힌 자국이고 상태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랑 셋째가 태어났어요. 너무 못생겼잖아요.이 웬 일이래? 예. 인간이 아닌 거예요. 약간 정종철 닮은 거 같고 오현철 닮아야 되는데 정종철 씨한테 미안하지만
네. 점점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한국을 탈퇴 청년과 함께 찍은 사진 새 아이 막내 점점 커가고 있고 넘겨 주세요.네 거가는 모습들 이제 마지막 사진네 저까지 와이프는 어디 갔나? 자기 설교 자기 설교 때 자기 얘기 좀 하지 말라고 날 배에 죄수 같았던 뭐 노련한 선주가 탔던 또 하나님의 사람이 탔던 상관없이 어 우리의 삶 광풍이 벌어지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절망의 순간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절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힘내자고 말하고 하고 다시
일어납시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어 단임 목사님들이 되면 하는 머릇 중에 하나가 이렇게 옆 사람들에게 뭐 말을 시키고 이렇게 인사해라. 사랑한다고 얘기해라. 일사도 아닌데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런 거 시키잖아요. 저게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그런 거. 오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옆 사람에게 어떤 사정 있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힘내세요. 힘내세요. 자, 버전을 바꿔서
잘 모르지만 잘 모르지만 당신은 당신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크게 쓰실 분입니다. 크게 쓰실 분입니다. 아멘. 아멘. 믿겨지지 않지만 아멘 좀 하시고요. 네.이 이 마지막 두 번째 말은 그냥 좋은 덕담이 아니라 제가 실제로 경험했던 건데요. 어, 제가 이번 지난학기에는 일곱 과목을 강의했고 이제 가을학기에 내일부터 개강되는 가을학교는네 과목을 강의하는데네 과목이 다네 과목 중에 세 과목이 월요일에 몰려 있어요. 월요일은 좀 힘들겠죠. 마지막 강의까지 끝내면 아마도 1,
2, 3교시 4, 5, 6, 5, 7, 8, 9, 10, 11, 12까지 강의하는데 그렇게 한 날에 강의가 몰려 있는 때는 아무래도 힘들어요. 그래서 지친 상태로 그냥 가방을 지질 끌고 와서 던지고 집에 가기가 일순인데 어느 날이었는데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제 연구실로 오고 있는데 저쪽 벽에 자매 하나가 여학생 하나가 앉아 있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원뜻 보니까 온 거 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상태가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같으면 찾아가서 누가 그랬어?
누가 올렸어? 말해 봐봐. 이런 말에서 친한척하고 뭐 이렇게 뭔가 해 줄 것처럼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그날은 저도 지쳤으니까 뭐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그냥 지나서 연구실에 가서 가방을 놓고 문 닫고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에 그 여학생에게로 가라. 제가 아까 얘기했잖아요. 제 기도도 안 하고 말씀도 안 보기 때문에 그런 거에 취약하거든요. 안 들리거든요. 어 내가 졸려 가지고 피곤해 가지고 그리고서 이제 가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그 여학생이로
가라. 죽켜서 가세요라고 두 번 뻗쳐보다가 세 번째 다시 강력하게 부인할 수 없게 말씀하시니까 알았다고 하고 이제 그 여학생한테 간 거예요. 가서 여학생 앞에 섰는데 저도 사실은 가라고 해서 온 거지 내가 뭐 할 무슨 말 해야 될지 모르겠잖아요. 사정도 일도 모르고 그 여학생도 저를 이렇게 뻘주하게 쳐다보고 좀 정막이 몇 초 정도 흘렀어요. 그렇어요. 그런 다음에 제가 입을 여서 한 말이 제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잘은 모르겠는데 자매는 너는 하나님이 소중하게
쓰실 사람이야. 그렇게 얘기를 하고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그냥 집에 와서 자고 까맣고 그다음날 출근을 했더니 제 연구실에 카드가 하나 붙어 있는 거예요. 그 카드를 누가 남겼어요? 그 여학생이 남는 거죠. 그래서 보니까 교수님 제가 어제 하루 종일 수업을 다 빼먹고 그저 기도실에 있었습니다. 기도실에서 하루 종종일 제가 했던 기도는 딴 한 가지인데 그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저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만한 자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지 오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지 아들이지 딸 딸이구나 딸이지 하고서 안아 주시고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또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처럼 해 주시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근데 아무런 느낌도 없고 냉랭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도 없고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서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고 하루 종일 울다가 아무런 응답이 없어 결군 아 나는 아닌가 보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도 아니고 쓰시겠다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미쳐서 그냥 신학대학이 왔나 보다라고 좌절한 채로
집에 가야겠는데 너무 지쳐서 몸도 마음도 가지 못하고 있는 터에 저를 만난 거예요. 또 한 명에 지쳐 있던 저를 통해서 그녀가 그렇게 그날 하루 종일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듣게 하신 거죠. 잘 모르겠는데 너는 내가 정말 소중하게 쓸 사람이야. 광야 속에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귐의교회에 계시고 여러분과 저의 삶에 계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에 세 가지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광풍이었고 하나는
바울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절체 절명의 순간에 어떤 가능성도 없고 해화별도 보이지 않고 광풍이 계속되는 그 순간에 평안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의 믿음 때문이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많은 절망하는 사람들을 안심시켰고 우리가 물에 다 빠질 수 있겠으나 섬에 이을 거야. 아무도 죽지 않을 거야라고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니까 평안을 주는 자만이 아니라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그 마음속에
실린 광풍만 불고 있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반석과도 같은 깊은 바다 같은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주는 사람. 바울의이 믿음은 25절에 보니까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어요.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세 번이나 하나님을 부인했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일깨웠던 거는 뭐였죠? 닭의 울음이 아니라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했던 뭐가 생각나서? 말씀이 생각났어. 작년에 왔을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초대교회는 사람이 후황한 교회
같아서 우리 현재를 사는 교회들이 초대교회의 부흥을 꿈꾸지만 그러나 사실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그 성전을 채우기 전에 초대교회는 말씀이 흥황했던 교회입니다. 6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더라. 제자의 수가 많아진 것은 그 첫 번째 단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였기 때문이다. 사귐의 교회에 이렇게 1부와 2부에 또 모임마다 사람들이 다 꽉꽉 채워지고 잘 모이고 하나님의 일들을 해내갈 수 있는 것은 이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죠. 아멘. 하나님의 생수가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로 살다가 우리가 교인으로 산지는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고 좌절을 하고 뭔가 교회가 이르면 될까라고 하는 그런 지점들을 통과해 내지만 어느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자기에게 왔는데 이곳에서 생명의 물과 꼴을 먹게 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꼴과 물이 있는 곳으로 보내시니까 이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양식을 공급받으면서 살아내는
거잖아요. 바울의이 믿음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새롭게 형생 형성된 거죠. 바울은 원래 하나님을 알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믿는 열심에 있어서는 1등이었어요. 그데 잘못 믿었죠. 뭔가 잘못된 글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제대로 찐으로 이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거죠.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만난 자입니다. 바울과 저와 공통점은 딱 하나예요. 바울도 예수를 만난 자고 저도 예수를 만난 자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절망의 순간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도 전도사여서가 아니라 목사여서가 아니라 목 교수여서가 아니라 신학생이여서가 아니라 그들도 예수님을 만난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도 저도 바울도 여러분과 바울의 공통점도 마찬가지예요. 딴 하나예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 그 이름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는 동일한 역사와 능력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근데 이 바울이 어디서 예수님을 만났죠?
어디로 가는 길에? 다메. 길에서 이렇게 공동체가 모여서 예배하는 곳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다메색으로 가는 길가에서 만난 거예요. 그 길은 그렇게 훌륭한 길도 아니었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는 죄악의 길이었어요. 분노의 길이었어요. 자기가 다 알고 알지 못하는 무지 목미한이 사람들을 잡아야겠다라고 생각했었던 사실은 교만의 길이고 무지의 길에서 오히려 주님을 만납니다. 베드로는 어디서 주님을 만나죠? 그가 주님과 늘 3년을 동행했던
사람이지만 정말 주님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은 그가 그 수치의 현장에서 주님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부인할지라도 나는 부인하지 않을 거야라고 호원 장담했던 그가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주님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던 그가 그 수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을 비로서 보게 된 거죠. 엠마오로 가는 제자가 어디서 주님을 만나죠? 역시 길에서 만난 거예요. 아니 그렇게 훌륭했던 예수님, 은사님, 스승님이 세상을 호령할
것 같다고 죽은 자도 살리고 뭐 바다위를 걸으셨던 그분이 십자가에 올라가더니 이렇게 내려올 것 같았는데 달린 채로 못 내려오시고 죽었잖아요.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야기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좌절과 낙심의 눈이 어두워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그 길에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좌절에 그늘이 크니까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 길에서 주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을 제대로 만납니다. 세례 요한은 어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죠?
말라기가 끝나고 다시 복음서가 열리기까지 우리는 그 사이에 400년의 침묵가 있었던 것을 합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내가 약 아들을 줄게라고 했는데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3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어요. 어떤 선지자도 오지 않았고 천사도 오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도 계실 수도 없었던 30년을 그들이 어떻게 인내해 냈을까? 사실은 성경은 챕터나 넘기면 이삭이 태어나는 것으로 전환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힘든 시간들이 있었을 거란 말이죠. 말라기의 역사가 끝나고 400년
동안 침묵했던 어떤 음성도 들리지 않았던 이스라엘 잊어버린 거 같고 버림받은 거 같았던 그들의 땅에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빈들에서 광야에서 이사야를 불렀던 하나님의 그 음성이 그날 다시 들리는데 세례 요한이 그 음성을 듣고 광야로 나아가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다시 만납니다. 여러분과 제가 연약해진 자리, 광풍 만난 자리, 상한 심령이 된 자리. 그곳이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들려지고 그쳤던 계시가 다시 선포되고
멈췄던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영향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런 현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찬양하고 주께 나아가겠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가사를 기억하며 함께 찬양 하겠습니다.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소망이 그어질 때 삶의 주관자 되신 그분 앞에 나의 무릎을 물어 경배하 아멘.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길 때 비로서 나의 마음 평안 비로서 나의 마음 평안해. 구원의 반석이신 구원의 반석되신
예수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송. 예수 이름 높이세 능력의 그 이름 예수 이름 높이세 구원의 그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아멘 예수 주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 앞에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이 있도다. 말하겠습니다.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소망이 어질 때 나의 소망이 끊어질 때 삶의 주한 자 되신 삶의 주관 자 계신 그 눈앞에 나의 부름을 무러 경배하네 나의 삶을 그분께 맡길래 비로서 나의 마음에 아멘 구원의 반성되신 예수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송하네 예수님이세 능력의 의를 예수 이름 높이세 구원의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아멘 예수 이름을 을 믿는 자 예수 앞에 예수 이름 앞에 다오는 자 복이 있도다 예수 이름 높이세 예수 이름 높이세 능력의 그 이름 예수 이름 높이세 구원의 그 이름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 앞에 나오는 자 복이 있도다. 함께 기도할 텐데 하나님 내 안에 사랑하는 가족 중에 내 자녀들 중에 우리 부모님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 중에 성도
중에 친구 중에 강정교 목사님을 포함해서 목회자라 할지라도 예외일 수 없는 광풍이 시리게 불고 있다면 하나님 먹게 해 달라고 제발 하나님 먹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근데 방풍이 멋진 거 같은데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나고 또 살아나서 우리를 너무 지치게 한다면 바울처럼 제자들처럼 실망하지 않고 그 실망의 자리 절망의 자리가 하나님 만날 수 있는 자리됨을 믿는 믿음게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광풍 속에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잘 견디고 올 가을에도 하나님 나라를 힘겹지만 능하게이 땅에서 살아나게 달라고 다 같이 하는 음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주 안에 살며 주의 은혜 가운데 살며 예배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자기의 교회 가운데 있고 하나님 품 안에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운데 아프고 시각이 불본합니다. 내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우리 아들들에게 딸들에게 청년들 중에 학생들 중에 성도님들 중에 장로님과 권사님과
목사님과 인천들과 사모들과 성도들 중에 내가 아는 소중한 친구들 중에 가운데 여정의 아픈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고백합니다. 주님이 아들을 이끌게 하는 방풍 멋게 해 주시옵소서.게 주시옵소서. 멋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좌절케 하고 낙심 있게 하고 믿음이 있는지는 그 왕통 먹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방품 살아나고 살아나고 또 살아난다 할수도 주님하지 않게 하시고 하시고 믿음을 보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그
절망의 자리가 주님할 때 자린 것을 믿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결코 시키지 않으신 키지 않으신 내 모리자를 믿는 믿음으로 그 손을 붙들고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 앞에 나오고 무릎 꿇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해주시.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살아낸다는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을 보고 엘리야를 보고 모세를 보았을 때는 모든 능력이 내 손악이 있는 거 같지만 하산에서 산을 내려오니 귀신 들린 사람 자녀를 데리고 온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없는 무능력함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늘의 것은 또 예수님은 길에서 만납니다. 무지와 교만과 죄악의 길에서 만납니다. 수치의 현장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믿음을 다 잃어버렸을 때 만납니다. 좌절과 낙심의 길에서 비인들에서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우리를 자녀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만나 그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믿으며 그 이름 앞에 나아오는 그리스도인 되게 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아멘. 내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린 바람이 불건하지만 내 자녀에게 부모님에게 배우자에게 성도 중에 심지어 목사에게도 그런 바람이 불건하지만 주님 멋게 해 주시고 설령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바울처럼 제자들처럼 절망하지 말고 그 절망의 자리가 하나님 만나는 자리일 수 있음을 믿는 믿음 같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광풍속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잘 견디고이 8월에 남은 날들과이 가을에도 하나님 나를 이 땅에서 힘들지만 고대지만 능하게 살아내는 주의 백성들 사귐의교회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