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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신약으로" / 강정규 목사

2023-02-05 · 마태복음 1-3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신약의 시작, 마태복음입니다. 오늘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로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신학, 즉 성경의 논리를 깨달아가는 시간 말입니다. 성경을 일단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성경이 어떤 책인지 최선을 다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제 기대는 알고 믿고 따르기 원합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장과 절이 없는 상태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장절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종종 메시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66권의 책은 각각의 두루마리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큰 틀에서 보자면 어떤 순서로 책을 배치하느냐도 하나의 메시지가 됩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은 성경의 배치가 정해져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성경의 배치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번역본의 특성에 따라 성경의 배치가 바뀌기도 합니다. 그럼 마태복음은 왜 신약의 첫 번째 책이 되었을까요? 저는 마태복음을 연구해볼수록 매우 탁월한 배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마태복음이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복음서란 예수님의 생애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복음서는 모두 네 편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죠. 원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에 대한 복음적 증언들을 구전으로 전달하고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30~40년 동안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의 증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게 되면서, 후대를 위하여 구전으로 전달되던 복음을 책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은 마가복음입니다. 그리고 후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고, 가장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이란 마태라는 저자가 전하는 복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는 기본적으로 마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달자요, 도구일 뿐 마태를 통해 복음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님이라고 믿습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가르치시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에게도 성령께서 임하셔서 생각나게 하시고 기록하게 하셨다고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손이 움직여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좀비처럼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인격적이시기에 각 사람의 기질과 특성, 지혜를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책마다 상황성을 갖고 있고, 흔히 말하는 독자가 특정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같은 경우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증언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게 됩니다. 그

점에서 구약과 깊은 연관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각기 복음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죠. 그들 또한 각자가 복음을 전하는 대상에 맞게, 또한 각 저자의 특성을 따라 기록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가 후에 집에 돌아가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혹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그림이 다 같겠습니까? 같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많은 초상화가 있지만 각각이 모두 다릅니다. 뭐가 진짜입니까? 다 이순신 장군을 자신이 본 그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린 것입니다. 복음서도 4편을 비교하고 대조하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르니까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는 반대로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쓰여진 4편의 복음서가 모두 세세한 부분까지 일치한다면 조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네 명의 저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소개하는 네 명의 병사의 그림을 모두 모아놓고 봤을 때,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가 네 편인 것은 풍성한 은헤입니다. 그 중에서 마태복음은 신약의 가장 앞에 배치됩니다. 우리가 그럼 마태복음 1-3장의 내용을 살펴보며, 구약이 신약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성취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족보 마태복음은 족보로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럼 우리는

역으로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 족보로 시작했을까? 아니, 왜 족보가 필요했을까? 성경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면, 왜 마태복음은 17절이나 족보를 기록하는데 사용했을까? 바로 이 족보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여기에는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두 명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함께 사용됩니다. 메시아이고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가장 첫 메시지인 것이죠. 그럼 왜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할까요?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워가시는 일에 있어서 시작점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를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시작되었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 교회 또한 이 사명을 갖고 사는 것이라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실제로

언약을 맺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창 15: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 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고대 세계에서도 부족 간의 동맹,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혈맹을 맺기도 했습니다. 언약과 같은 것이었죠. 언약을 맺을 때 그에 맞는 의식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같이 피를 섞어서 마시는 행동도 있죠. 쪼개 놓은 고기 사이로 횃불이 지나갔다고 하는데, 횃불은

하나님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도 동물을 쪼개어 놓고, 그 사이를 함께 걸어갑니다. 아브라함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고기를 쪼개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이유는, 생명을 걸고 하는 약속인 것입니다. 피로 맺은 언약도 다 같은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와 하셨던 약속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국가를 이룬 후,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윗이죠. 하나님은 다윗과도 언약하셨습니다. 바로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다윗 언약입니다. (삼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 7: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다윗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어지는 왕조를 지키시겠다는 것이죠. 이것이 실제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서 성취되지만 그것은 모형에 불과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 약속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통해 메시아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연결됩니다. 구약이라고 부르는 첫번째 언약의 시대에 그 약속과 가장 관련 있는 두 사람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 약속 안에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마태복음의 첫 구절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는 이 글을 기록할 때 헬라어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마태가 기록한 것은 이렇습니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예수 크리스투 휘우 다윗 휘우 아브람 ‘계보다 / 예수 그리스도의 / 다윗의 자손 / 아브라함과’ 한글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 – 다윗 – 예수님 순으로 이름이 나오지만, 헬라어 원어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 다윗 – 아브라함 순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의 앞에 두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소개하려는데, 내가 소개하고 싶은 복음의 핵심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아브라함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윗 언약을 성취하시는 메시아이시며,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 족보는 족보 하나만 가지고도 몇 시간에 걸쳐 설교를 해야 할 정도로 재미있고 다양한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족보 자체가 인클루지오

구조로서 가장 처음과 마지막에 예수님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것은 족보 전체가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 예수님임을 의미하는 신학적 표현법입니다. 또한 족보는 3등분으로 서술되며 각각 14대로 나누어 기록했는데, 사실 구약의 족보를 그대로 가져왔으면 14대를 넘습니다. 즉, 인위적으로 14를 맞춘 것입니다. 그 자체가 의도입니다. 그것은 ‘게마트리아’라고 하는 기법으로서 숫자로서 인물을 상징하는 고대의 표현법입니다. 요한계시록의 666은 사탄이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했던

네로 황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족보에서 14는 다윗을 나타내며, 예수님이 다윗 언약의 성취자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족보에 나타난 여성들은 모두 이방인 혹은 이방적 배경을 가진 여성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모두 다사다난하며 깨어져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하나하나도 모두 메시지입니다. 제가 이미 마태복음의 족보에 관해 몇 차례 설교를 했었고, 이런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혹시 더 알고 싶은 분은 ‘족보’ 혹은 ‘마태복음’

등으로, 블로그를 검색하시면 충분한 도움과 설명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신약 (새 언약) 우리는 얼마 전까지 민수기를 통해서 첫 번째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만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을 때, 그 사이에 선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첫 언약의 백성이 실패했습니다. 구약은 그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메시아를 약속해주시며,

소망을 갖고 기다리도록 하십니다. 구약의 예언서에는 그런 메시아 약속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지금 언급한 키워드가 ‘모세’와 ‘구약의 예언들’입니다. 마태복음은 그 키워드를 활용하여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1) 새로운 모세 먼저 예수님이 ‘새로운 모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 : 출애굽 홍해를 통과 광야에서 40년 산 위에서 율법을 받음 예수님 : 이집트를 떠남 요단강에서 세례를 통과 광야에서 40일 산 위에서 새 법을 가르침 마태복음은 모세와 예수님을

병행시키며, 첫 언약의 중보자 모세,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을 연결시킵니다. 언약의 성취이자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더 뛰어나신 메시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면,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된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십니다. 모세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율법의 성취가 무엇인지 완성된 가르침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함께 맺었던 첫 언약(구약)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예쉰ㅁ은 새로운 언약(신약)의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를 새 언약의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 구약 예언의 성취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십니다. (마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성취하려 한다 - 원어에 맞다) 이

표현에서도 보듯,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모든 삶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정말 많은 구약의 인용구절과 해설, 그리고 성취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다룰 수는 없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몇가지 내용만 기억해 봅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마태복음 초반의 장면들입니다. 동방박사 이야기는 이사야 60편의 예언을 성취합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 60: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미가서 5장의 예언을 성취합니다. (미 5:2a)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요 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요 7: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요 7: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메시아(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야 하고, 동시에 나사렛 사람이라 불려야 합니다. 그것이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의 이름인 임마누엘은 어떤가요? 이 말씀은 마태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존재적 의미이며, 마태복음 전체에서 인클루지오를 이룹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것 또한 이사야 7장의 예언을 성취합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은 임마누엘을 낳는 여인은 처녀 잉태한다고 예언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그의 정혼자 요셉이 마리아와 헤어지려 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도 아십니까? 하나님은 마리아만 택한 것이 아니라, 실은 요셉도 함께 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입니다. 즉, 요셉이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가 되어 그의 호적에 예수님이 들어가야지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말 디테일합니다. 이런 디테일이 한 명이 아니라, 40명이 넘는 한 번도 서로 만나보지 못한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기록에서

모두 연결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알면 알수록 사람이 쓸 수 없는 책입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것 뿐입니다. 저는 이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며, 이 진리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마리아에게도 함께 하셨고, 예수님의 모든 환경을 구약의 성취로 이끄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며 우리가 이 예배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며 따르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3)

메시아와 엘리야 마태복음 3장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그의 등장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또한 성경의 예언에 따른 것입니다. (마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세례요한은 구약성경 이사야 40:3에서 예언된 대로, 메시아의 오심을 전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에 대한 이 묘사는 생각보다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구약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가 말라기입니다. 말라기서 이후에 400년간 하나님의 뜻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는 그

기간을 ‘400년 침묵기’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주어졌는데, 말라기서의 가장 마지막 예언은 이것입니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래서 그 날을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부릅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표현으로

바꿔보자면,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예언으로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메시아는 어느 누구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봐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메시아가 오심을 알 수 있도록 힌트를 하나 주시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겠다.’ 엘리야는 과거의 인물이니,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먼저

엘리야 같은 사람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 보면 유대인들은 조금 특출난 사람만 보면, “당신은 엘리야인가요?” 묻는 것입니다.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런데 말라기서에는 메시아 전에 등장할 엘리야의 사명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가 하는 사명은 돌이키게 하는 것, 회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이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럼 세례요한이 엘리야인가? 바로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이 요한의 모습인 것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약에 보면 엘리야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왕하 1:7)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을 만나서 그러한 말을 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더냐?" (왕하 1:8)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털이 많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는 분명히 디셉 사람 엘리야다" 하고 외쳤다. 즉, 구약에 존재했던 엘리야 선지자는 털이 많고 가죽 띠를 하고 있었다면, 세례 요한은 털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낙타털 옷을 입어서 털 많은 것을 나타내고 허리에 띠를 띤 것이죠. 요한에 엘리야로서 왔다는 것이 이것으로 의심스러우면 사실 이 구절 하나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시죠. (막 9: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세례 요한은 참수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곧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즉 모세와의 병행, 구약 예언의 성취, 엘리야의 사명으로 사역한 세례 요한의 이야기 등은 마태복음이 예수님이 구약에서부터 기다려온 메시아로 오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측면들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의 대상이 구약의 당사장인 유대인들이기에 구약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는 것은 너무나 탁월하고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신약의 첫 번째 위치에 배치된 것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이것이 두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연결된 하나의 메시지이자 하나의 계획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복음으로서 그의 삶을 소개할까 고민하였듯, 저도 오늘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여러분에게 어떻게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찾고 정리하여 나누어드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신학적으로 말씀을 분석하고 설명하였습니다. 완전하게 이해하고 소화하는데 조금 내공이 필요한 설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설교를 소화한다면, 성경이 진리라는 믿음에 더욱 한걸음 다가서게 될 것이며, 구약부터 일하여 오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성경이 어떤 책인지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성경을 그래도 꽤 오랜시간

최선을 다해서 연구하고, 성경교사로 이제 제법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이 점점 더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마태복음을 우리가 다루어가는 이 시간, 진리가 가득 담긴 이 책을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민수기에서 마태복음으로 설교가 연결되었는데, 바로 옛 언약의 백성들을 향한 약속에서, 이제 우리를 향한 이야기로 연결된 것입니다. 우리를 새언약의 백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예수님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회심적 결단,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진실한 삶을 통해, 오늘도 우리는 그분께 속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 언약 백성으로서 주님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언약 안에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해드렸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우리를 진짜로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구약의 예언을 더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 속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의 시간을 통해, 그리고 이 예배의 시간을 통해, 여러분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누리고 그분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수천 년이 지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의 그리스도 되신 예수 앞에 소망을 두고 함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