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언약 백성" / 강정규 목사

2023-01-15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민수기에 대한 두 번째 설교를 시작합니다. 한 주간 민수기 묵상을 잘 해오셨나요? 어제까지 묵상 본문이 민수기 8장이었습니다. 묵상 순서가 민수기 10장까지 본 후 마태복음으로 갑니다. 묵상의 흐름에 최대한 맞추려면 오늘까지 민수기 설교를 하고 다음 주에는 마태복음 설교를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주가 창립 주일로 외부 설교자가 오기 때문에, 저희는 민수기를 세 번 설교하고, 2월부터 마태복음 설교를 들어가려고 합니다. 제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2019년에 마태복음을 12번에 걸쳐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6년마다 매일성경이 성경 전체를 일독한다고 했는데, 그 6년 주기가 2020년부터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2019년까지의 주기 순서와 2020년부터의 순서가 다르다 보니, 2019년에 마태복음을 우리는 한번 전체적으로 다뤘던 것입니다. 그러니 1월의 마태복음 묵상을 하는 동안에는 2019년에 했던 설교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민수기라는 책이 어떤 뜻이고, 어떤 배경에서 쓰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설교를 통해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전체적인 민수기의 흐름에 대해서 큰 그림으로 한번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수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약속의 땅 입성 준비 (1-10장) 2) 약속의 땅으로의 여정과 실패 (11-25장) 3) 약속의 땅 입성을 위한 새로운 준비 (26-36장) 첫 번째 단락인 약속의 땅 입성을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가 1월에 묵상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장소는 ‘시내산’입니다.

출발을 위한 준비이니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지은 시내산에서 이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곳에서 인구조사와 하나님의 계명을 전수 받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까지가 기록됩니다. 두 번째 단락인 약속의 땅으로의 여정과 실패는 민수기에서 가장 긴 분량을 담당합니다. 장소는 ‘광야’입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공동체를 깨드리는 악행들이 기술됩니다. 불평, 리더에 대한 도전, 반역, 불신앙의 모습 등이 기록됩니다. 저는 만약 제가 모세의 자리에 있었다면 저는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모세를 배신한 것이 관계적으로 먼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주특기가 불평입니다. 제가 봤을 때, 불평은 늘 하는 사람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 불평의 습관을 고치는 것은 정말 그 사람이 성령님 앞에 붙들릴 때입니다. 불평은 하려고 마음먹으면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여기서 마음먹으면 제가 가진 불평을 10개는 아주 우습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불평은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평하려는 내 마음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주변에 불평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셔야 하는지 아십니까? 가르친다고 바뀔까요? 가르치면 가르친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보다 불평하지 않으므로 더욱 하나님 안에 기쁨으로 거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긍휼하게 여기며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아직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진짜 주인되시지 못한 상태라서, 마음도 입술도 자기 뜻대로

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단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대충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몇 번은 참으십니다. 그러나 끝내 이들이 달라지지 않자, 하나님은 이들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연기시킵니다.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 두 번째 단락에서 38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준비됩니다. 세 번째 단락은 바로 38년이 흐른 시점에서 다시 인구조사를 하며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다시 하는 것입니다. 몇 년 만에요? 38년이 지나서 말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모든 준비를 다 마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 ‘신명기’인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민수기의 가장 핵심은 결국 ‘순종’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그 순종은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기독교인이 진짜

신앙인인가, 아닌가는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그렇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는 쉬워요. 진짜인가 아닌가는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불평도 하나님에 대해서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합니다. 민수기가 가르치는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자에 대한 순종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보십니다. 모세에 대한 순종을 하나님이 보세요. 동시에 지도자 모세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리더를 잘 따라주지 않고 불평하는 이 상황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것을 보세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와 역할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잘 깨닫고 따르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민수기의 세 단락은 이렇게 구분됩니다. 첫째 단락은 1세대의 순종이야기. 둘째 단락은 1세대의 불순종 이야기, 셋째 단락은 2세대의

순종이야기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불순종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다루셨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이스라엘이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언약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오늘날 교회에게 매우 실용적이고,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제가 이런 표현을 종종 씁니다. ‘저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이해한다.’ 하나님을 잘 몰라서, 아직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드리지 않아서, 행하는 잘못을 어떻게 하겠어요. 민수기는 언약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언약은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존재가 만나서, 남은 삶을 모두 걸고 서로에 대하여 약속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첫 번째 언약이 시내산 언약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 즉, <순종>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함께하며 복

주겠다’ 즉, <동행>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복이니까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개인과 하셨던 약속을 이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의 결과물로 주어진 것이 <율법>과 <성막>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순종이 언약에 충실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613가지의 계명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수됩니다. 성막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그 동행을 가시적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한가운데 성막이 늘 위치합니다. 그 성막 가장 가까이에는 모세와 아론 등 지도자 그룹. 그리고 그 주변에는 레위 지파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3지파씩 4면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진의 배치 자체가 하나님 중심된 삶입니다. 그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지만,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과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자 제사장 나라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동일한 원리였습니다. 그것이 언약 백성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첫 번째 언약을 <구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어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갱신된 새언약, 즉 <신약>입니다. (렘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구약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새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예수님에 의해서 그 말씀은 성취됩니다. 언약이 갱신된 것입니다. 언약이 갱신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구약과 신약은 다른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의 말씀을 폐하러 오셔서 다른 것을 말씀하신 분이 아니라, 구약을 완전하게 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으로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으로 주어진 ‘율법’을 새롭게 갱신하여 가르치십니다. 이런 구절들이죠.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십계명에 대한 재해석을 여러번 하십니다. 살인에 대한 재해석, 간음에 대한 재해석, 맹세에 대한 재해석 등을 하시죠. 즉, 구약시대의 백성에게는 ‘율법’이 언약에 충실하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진리를 담은 복음의 말씀이 언약백성이 지키고 따라야 할 기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언약 준수입니다. 그럼

새언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언약준수는 무엇일까요? 첫 언약에서는 ‘성막’을 통해서 함께하고 계심을 보여주셨고, 후에는 ‘성전’을 통해서 그것을 이루셨다면, 새언약의 백성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고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심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보호에 대한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새언약의 결과 언약 백성이 누리는 것은 성령의 임재입니다. (고후 3: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이 표현이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 안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성도들이 새언약 안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언약식은 동물의 피를 잡아서 뿌리는 것으로 행했다면, 신약의 언약식은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와 하나됨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언약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을 다룬 민수기가 우리에게 그저 옛날 옛적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하나하나를 재해석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같은 것입니다. 언약 백성이라는 지위 말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하나님 앞에 언약백성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언약 안에서 우리의 신분은 세상에 속한 사람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존재가 변한 것이고, 이제 우리는 그 존재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다운 삶 말입니다. 그 핵심은 ‘순종’인 것입니다. 그럼 한번 물어야겠지요. 여러분의 순종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잘 순종하십니까? 여러분의 불평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불평하고자 하는 내 마음과 잘 싸워 이기고 있습니까? 내가 언약 백성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내 생각과 기준이

옳다고 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언약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실패한 1세대와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탄의 생각을 구분하시고, 내 입술을 지키시고, 내 마음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이 민수기를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출애굽 1세대도, 순종했을 때 그들이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릇된 행동을 했을 때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2세대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 앞에 그들은 1세대와 다른 모습으로 행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그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진 공동체를 수없이 보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 안에서 나는 어떠했나요? 그때의 나도 어떤 부분에서 미성숙함이 있었다고 느낀다면, 이제는 우리도 변화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변화는 말씀이 주는

깨달음과 도전을 내 삶으로 가져가 그렇게 살 때 시작됩니다. 언약백성은 그래서 매일매일 변해갑니다. 우리도 다 실수하고 다 부족함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변해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로 결단한 언약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평생을 변해가기를 소망합니다. 민수기 5장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명하시는 정결 예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가르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민수기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동행하는 삶을 살지를 다루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민 5: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민 5: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악성 피부병 환자와 고름을 흘리는 사람과 주검에 닿아 부정을 탄 사람은 모두 진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지시하여라. (민 5:3) 남자나 여자나 가릴 것 없이 똑같이 진 바깥으로 내보내어, 내가 머물고 있는 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여라." 이미 레위기 율법을 통해 가르치셨던 내용이죠. 그 율법을 다시 가르치도록

명하십니다. 모세가 가르치는 그 명령을 잘 듣고 이스라엘이 행한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두고 “왜 진 밖에 나가야 하느냐, 안 나가면 안 되느냐, 하나님이 나갔다 오셔라” 이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이 없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순종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기 싫은 것을 마주할 때, 진짜 순종의 사람인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죠. 순종의 사람은 방법을

찾고 불순종의 사람은 핑계를 찾습니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 가끔 관계가 안 좋은 상태에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둘이 다퉜습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경우에는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각 입장에서 이해가 됩니다. 두 사람보고 서로 용서를 구하라고 하면, 상대방이 먼저 그렇게 하면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걸 바로 알 정도의 감각이 있으면 싸우지도 않았겠죠.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실 것 같냐? 그럼 그것에 순종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지를 하나님께 물어라.” 그리고 실제로 앞으로의 관계를 위한 물음을 갖고 행해야 할 것을 따르면 그 관계는 풀립니다. 우리는 다 핑계가 있습니다. 다 자기 기준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그때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준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실 대체로 하나님의 법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일요일에 예배해야 합니까? 저는

화요일이 좋은데요. 저는 그냥 화요일에 예배할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죠. “왜 레위지파인가요? 저는 유다지파인데 저도 레위인하면 안 될까요?”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참 많지요. 그것은 즉 우리의 시작점이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그 원망이 하나님께 향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달란트 비유를 떠올리곤 합니다. 받은 것은 각기 달랐어요.

그것은 우리의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하여 내가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 그 태도를 주인이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다른 삶의 상황에 있는 사람을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나보다 더 잘사는 집에 놀러 갔다가 시험에 드시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해서 부러워하거나 없는 나에 대해서 속상해하지 마세요. 보통 우리는 거기에 너무 잘 걸려 넘어집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사탄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생각하십시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그에 맞게 하나님이 그 삶을 보고 평가하실 것입니다. 더 책임이 막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의 태도입니다. 저는 요새 큰 교회 목사님들이 부럽다기보다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내 설교를 매주 몇만 명씩 듣는다면, 내가 그 부담감에 짓눌리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환경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달려있고, 우리는 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요? 5장 후반부에는 ‘의심의

소제’라는 조금 독특한 규정이 나옵니다. 쉽게 설명하면, 간음이 의심되면 제사장 앞에 나가서 판결받는 제도입니다. 물론 여기에 여러분이 현대인의 시선으로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보통 이것이 남편이 아내의 간음에 대해서 확인받는 절차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에 간음 여부를 증명할 수 있나요? 당시에 그래서 고대 바벨론 지역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간음에 대해 남편이 의심을 재기하면, 여자를 강물에 빠뜨렸습니다. 여자가 살아나면 무죄였고(신들이

살려주었기 때문), 죽으면 유죄였습니다. 자연히 많은 무고한 아내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의학적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통해 그것이 드러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의심을 빌미로 아내를 무고히 희생시키는 당대의 풍습을 볼 때,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그러한 부분도 막으시고, 가정을 지켜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민수기 6장에서는 ‘나실인’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나실인이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나실인은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선택하는 것일까요? 나실인은 각 사람이 서원하는 것입니다. (민 6: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성경에서 몇 사람은 평생 나실인이었습니다.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등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일반적인 것은 정해진 기간 동안 나실인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약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고, 이 말씀처럼 남자나 여자 모두 가능했습니다. 구약의 시대적 배경으로 본다면 매우 독특하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실인은 하나님께 헌신 된 삶을 스스로 다짐하여 그 기간 동안 더욱 충실히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다시 되새기며, 우리교회의 사역 형태가 나실인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쨌든 사귐의교회에서는 ‘빼박’입니다. 평생 나실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역 지원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 앞에 스스로 반응하여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약한 기간 동안 더욱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내어드리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실인에게도 헌신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 평소에 허락되던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기본적으로 포도주가 허용되었지만, 나실인은 포도주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포도나무의 씨나 껍질도 금지되었습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시체나

동물의 시체와 접촉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규정들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기억하고 그에 맞는 삶의 헌신으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서도 섬세하게, 나실인 서원 기간에 약속을 위반한 경우, 그 부정함을 해결하고 다시 재헌신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까지 주십니다. (민 6:12) 헌신하기로 작정한 기간 동안, 그는 나 주에게 자신을 새롭게 헌신해야 하므로, 일 년 된 새끼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바쳐야 한다. 나실 사람으로

한번 구별된 그의 몸이 이 일로 더럽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 헌신하기로 한 경우에는, 그 이전까지의 기간은 무효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그 헌신만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또 회개하고 다시 새롭게 헌신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넘어져도 어떻게든 일으켜서 함께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실인 규정에서 특히 제게 눈에 들어왔던 것은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정이 대부분 대제사장이 지키게 되어 있는 규정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대제사장은 분명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 결단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사람도 대제사장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이고, 목회자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계획하여 부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 진짜 헌신 된 사람의 모습과 삶을 보면, 영락없는 목회자와 같습니다.

성도님들 중에 제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끔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안에서 목회자의 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교회를 사랑하고, 진짜 영혼을 사랑하고, 그래서 진짜 저의 마음도 잘 알고. 제가 작년 사무연회 때 우리 리더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죠. 저는 이분들과 함께 목회했습니다. 진심입니다. 제가 봤을 때, 우리교회에는 정말 나실인과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계를 위해 자라가는 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리가 나실인 공동체가 된다면 정말

못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각자가 올해 작정하고 결단한 것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역을 맡으며 결단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중간에 쉽지 않은 위기가 올 것입니다. “내가 그때 미쳐가지고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원래 다 그렇게 성령께서 그때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셔서 하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올해 사역이 아니어도, 더 나은 예배를 위해 결단한 분들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켜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신앙은 자라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더욱 사모하며 지켜내는 것. 그 또한 너무나 아름다운 결단임을 잊지 마시고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일생이 다 주님의 것이지만, 나실인과 같이 특별한 기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는 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은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늘 제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 헌신과 결단을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내게 언제까지 이 시간이 허락될지는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주님이 그런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정리해보면, 민수기 5-6장은 백성들의 진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며, 나실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우리에게 유명한 아론의 제사장

축복이 주어집니다. (민 6: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이 축복 기도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아멘. 복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무당집 가서 부적 써왔다고 되지 않습니다. 물질이 내게 많이 주어졌다고 그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복의 통로, 복의 근원으로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지키다’로 기록된 이 동사는 성경에 무려 450번이 나오는데,

오직 하나님과 관련되어서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언약 관계 안에서 행하시는 일도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 가운데, 성령이 함께하셔서 지키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얼굴을 비추시며, 얼굴을 향하여 드시는 분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주에 비하면 순간처럼 짧고, 점처럼 작은 내 인생이 우주를 만드시고 돌보시는 그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며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이스라엘을 언약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숙한 모습으로 언약에 충실하면 좋겠지만, 이들의 죄성이, 이들의 연약함이 다시 나타나서 하나님의 주인됨을 저버리게 될까 봐 가르치고 또 가르치십니다. 부정해져서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할까 봐 정결예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주십니다. 또한 나실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고 하시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주시고, 그 서원 기간에도 부정을 행하면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결국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아론이 선포하지만, 아론은 도구일 뿐, 결국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목사의 설교, 목사의 기도, 목사의 축도는 목사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로 사용될 때 하나님의 복이 이 안에 흐르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복이 자녀들에게 흘러갑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여러분이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을 우리가 줄 수 없기에 복을 빌어주는 것이죠. 축복. 오늘도 이 예배 안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도 이 예배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마련해주신 특권으로 여기며 나아온 사람들, 그리고 나의 작음도 기꺼이 하나님 앞에 내어드려 주님께 헌신하며 나아가는 마음들. 그 마음들 안에 주님이 함께하시며, 그 마음을 모아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