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광야 40년의 훈련" / 강정규 목사

2023-04-28 · 민수기 15-19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리들을 어 두 가지 모습으로 분석해 왔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첫 번째 뭐였죠? 불평입니다. 두 번째는요. 자기 생각입니다. 결국 불평하기를 좋아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 앞에 불신앙과 불순종을 일삼은 출애굽 1세대의 모습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연기되게 됩니다. 물론 어떤 의미로 아예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1세대조차도 남은 광야의 시간 동안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땅을 주시겠다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허락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지연되었을뿐 그 언약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점은이 부분에서 잘 기억해야 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의이 이후의 이야기 14장에서 이미 이제 그 땅은 출애굽 2세대가 들어가는 것으로 1세대는 광야에서 사는 것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 출애굽 민수기 15장 이후부터는 광야에서 지내는 40년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자, 근데 그렇게 시작된 민수기 15장의 이야기가 언뜻 보면 앞에 있는 내용의 흐름과 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면 갑자기 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에요. 제사 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번 민수기 15장에 있는 부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라. 그에게 이렇게 말하라.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줄다. 곧 너희가 잘못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소대왕이 양떼가 없는 재물을 몰라. 다 주에게 달라는기를 것 선한 것을 갚고 있는 바에서는 재물을 드리 너희가 지키는 여자 저에게 있는 권한 생를 네. 여기 보시면 어 갑자기 내용이 어 제사제도에 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흐름이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관점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로 앞장에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죽게 된다는 심판 선언을 받았는데 그런데도 하나님의 결정에 그들은 1세대는 불복해서 왜 우리가 가나안 땅 못 들어갑니까라고

하고 진격하여 올라갔다가 패하는 장면이 바로 기록됩니다. 그것이 출애굽세대 실패입니다. 근데 이어지는 15장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너희가 지켜야 될 제사의 제도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씀이 주어지고 있어요. 즉이 자체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적 지위가 유효하다. 그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향한 이스라엘의 불신과 원망과 배신 속에도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제사장 나라를 세우겠다는 그 언약적

그런 약속을 처리하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약속의 땅을 얻겠다는 것은 처음 그 약속의 시작은 어디로 가야 됩니까? 누구에게부터 주어진 거죠?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서 내가 너로 나라를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그 나라로 하여금 이 땅을 얻게 될 거야. 그래서 그곳에 나를 드러내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할 것이야라는 약속을 시작하신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한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어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했다. 나는 주다. 너에게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었다. 아브라함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볼 수 있는 언약적 징표를 주시는데 그 뒤에 나온 내용입니다. 해가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바로 그날 주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 너의 자손에게 준다. 즉이 언약식이 뭐냐면 고대 부족은 동물을 쪼개 놓고 그 사이로 두 개의 부족의 족장이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언약을 맺어. 그럼 이제부터 너와 나는 이 약속의 목숨 걸고 약속하는 것이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어기면 역시 동물이 쪼개진 것처럼 우리가 죽음을 각오한다라는 건데 하나님의 실체는 우리의 몸처럼 육체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횃불이 나타나서 아브라함과 함께 그 아브라함 앞에서 그 횃불을 지나갔다 오시는 것으로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 맺어지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을 이스라엘 그 출애굽 1세대는 어쩌면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대하신만큼 그들이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이 배신당하고 그대 거절 당하신 것이지만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비록 약속의 땅에 광야이 들어지 못하고 그들의 후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약속이 연기되지만 그럼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이 약속 땅을 주시겠다. 민족을 주시겠다. 나라를 세우겠던 약속은 여전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민수기 15장에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이렇게 될 수 있겠죠.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허락하시고 그 나라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나라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그 사이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우리가 완성시키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 완성은 우리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어도 그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거예요.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 거예요. 그러나 그 나라가 우리의 것인가 우리의 것이 아닌가 그것은 여러분의 삶의 모습 가운데 결정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믿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내가 그 완성 나라에 함께 참여하는 백성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가 실패한다고 그 나라가 완성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패하면

여러분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할 수 있어요. 이게 민수기 15장에서 우리가 봐야 될 첫 번째입니다. 그럼 이 내용적으로 15장 안에 있는 거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 제사제도의 내용 가운데 우리가 깨달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한번 두 가지로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주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린 배워야 됩니다. 주님이 왜 제사를 가르치는가? 그걸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한번 15장 10절부터 내용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작. 되어 여호와의 로다 그들이 니 여왕의로 이하소 너희 중에 거하는 너희 중에 죄를는 자나 여호와께 강의로 말을 에니 너희가 아는 대로 구할 것이다 그들이에은 여호와께 고 소리와를 드리고 마귀를네 제사에 대한 설명이 계속 나오는데 그 설명 중간중간에 10절 13절 14절 24절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드라오고 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 제사는 여러분 알다시피 기본적으로 화제입니다. 화제는 무슨 제사냐면 불로 드리는 제사라 거예요. 불로 재물을 태워드리는 형태입니다.

화제는 뭐 우리가 알 번제 이런 종류가 아니라 방법이에요. 화제 불로 드리는 제사로 드린다. 근데 모든 화제가 갖고 있는 이 제사의 목적은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리는 향기롭게 해 드리는 그런 제사다. 세 번역의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서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럼 제사는 기본적으로 누굴 기쁘게 하는 겁니까? 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예배 가운데 얼마나 기쁘냐 안 기쁘냐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쁘셨느냐 안 기쁘셨냐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구약의 제사는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은 아니었어요. 다시요. 여러분, 제사를 내가 제사를 드리니까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하고 드리는 제사는 아니고 그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그 은혜에 대한 감격과 반응을 드리는 거예요. 즉 이미 은혜는 주어졌고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감격과 반응 가운데 드리는 것이 제사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앞에 그 은혜에 대한 간격으로 향기롭게

기쁨으로 우리도 응답하는 거예요. 하나님 주신 은혜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입니다.이 점에서 우리 예배 동일합니다. 여러분 뭐 이런 것이죠. 누군가는 잘못 생각하면 내가 예배를 드리니까 주님 날 구원해 주십시오. 이게 바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배를 하는 거예요. 사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은혜 주신 주님 앞에 내가 그 은혜 받고 있는 자로서 감사함과 은혜로서 응답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면 쉽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집에 가서 열심히 설거지를 했습니다. 제가 설거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결혼하기 위해서 결혼해 달라고 설거지 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혼하는 자로서 내가 아내와 가족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거죠. 이걸함으로써 나와 어떤 특별한 새로운 관계를 맺고 하는게 아니라 관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관계를 누리는 측면에서 그 관계의 기쁨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다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예배를 구원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의

구원이 확전된 순간부터 예배는 약화될 거예요. 난 이미 구원받았으니까. 그게 아니라 예배는 구원받은 자로서 그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더 깊어지고 더욱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서 끝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을 이미 받았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 구원이 시작됐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 이후에 더욱 그 감격을 깊게 누리고 더 우리의 마음도 함께 올려들 말미암아 우리 예배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지고 더욱더 수중한 마음들이 더해져서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아주 깊은 그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런 예배가 있잖아요. 하나님 나라 완성되도 그치지 않는 곳인데 그것이 뭐냐면 예배인 거예요. 완성되도 그치지 않는 곳이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내 기쁨으로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을까? 그것에 집중하는 최선의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우리의 예배 어쩌 우리의 화제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는 여기서 가르치는 것 중에 중요한 것은 첫 것을

드리는 것의 의미입니다. 한번 말씀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처음 믿는 공식과 바닥바닥에 같이 너희를 처음 있는 곡식 여호와께 자 여기서 보면 처음 익은 것을 드리라라고 말하는데 이스라엘은 처음 소 수 수학물을 거두면 가장 먼저 처음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여러분 처음 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해야 돼요.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사실 전부가 주님의 것인데 전부를 다 드리는 것이지만 대표하여 처음 것을 드리고 나머지 것은 주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처음이 들 때 이미 거기에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드리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서 표현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 처음 것을 드리라라고 요구하셨던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요구가 유월자 사건 관련 있습니다. 유월적 사건이 뭐냐면 출애굽할 때 애굽에 있는 처음 난 거 모든 처음 난 거 처음 난 사람 처음 난 동물이 다 죽음의 심판을 당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손길를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가 심판당해 되지만 하나님의 구원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제 그 장자는 내 것이다라고 하나님 말씀하시고 이스라엘도 그렇게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자를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려야 돼요. 근데 모든 집에서 장자를 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드릴 수 없으니까 대표로 어떤 지파를 드렸다고 그했죠? 레위 지파를 드리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우리가 민속기 초반에 배웠지만 레위 지파

전체 숫자와 이스라엘 장자 전체 숫자가 안 맞으니까 나머지 1대일로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예물을 드려서 속권하는 그런 예물로 우리가 배웠던 적이 있지만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성막에 가서 일을 하고 섬기는 것은 사실은 모든 지파 가운데 있는 장자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하나님 안에 속한 존재로 살기를 가르치고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드려야 될까?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해야 될까요? 여러분,

저는 우리가 지금 뭐 수학물을 거두지 않잖아요. 네.데 네. 저희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재정 원칙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마음으로 사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못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때로 내가 재정을 사용한다는 것은 내가 쓸 것을 다 쓴 다음에 남는 것 중에서 이거 한번 헌금해 볼까라고 하는게 아니라 첫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구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 다음에 내가 남은 것을 갖고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이 시대에 우리가 첫 것을 드리는 우리의 적용일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저도 저도 이렇게 목회를 해가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냐면 재정 원칙이 올바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세워진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오늘 말씀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분 고민하며

그 원리를 여러분이 적용하기를 권면드립니다. 재정 원칙이 하나님 올바르게 세워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을 실제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제가 목회를 하다 보면 저희 교회 특히 회심을 강조하니까 목사님 제가 회심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어 묻거나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 제가 알까요?네 네. 사실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근데 여기까지 부분을 잘 생각해 볼 필요 있어요. 정확히 알 수 없다 말씀드린 이유는 회심

가운데는 급진적인 회심이 있고 점진적인 회심이 있어요. 급진적 회심은 정말 이 사람이 마치 성령 받은 것처럼 갑자기 삶이 확 변하는 거예요. 어 얘가 왜 이러지라고 느낄 정도로 확 변하는 거예요. 몇몇 사람에게는 그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급진적 회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만큼 빨리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게 조심해야 됩니다. 그 일반적인 대부분의 사람은 점진적으로 회심해 나갑니다. 점진적 회심은 마치 키가 자라는 것처럼 조금씩 자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혹시 우린 성장이다 끝났지만 혹시 여기서 아직 잘하고 있는 분 있다면 나 오늘 잘한 거 느끼신 분 있습니까? 네. 없을 거예요. 우리는 잘하고 있지만 자라가는 것을 잘 못 느낍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까? 긴 시간 다녀 보면 알 수 있어요. 지금 내 아이를 키워 보면 내 아이가 어제보다 오늘 얼마큼 잘한지 안 보입니다. 얘가 잘하고 있는게 맞나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근데 어떻게 보면 알아요? 1년 전 사진 꺼내 보면 아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으로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내가 회심하고 내가 주님이 주인된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내가 과연 얼마나 잘 성장하고 있나 잘 변해가고 있나 잘 모르겠다면 1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면 3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그것을 내가 한번 체크해 보면서 아 내가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 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때로 살고자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라고 하면 그런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고 칭찬 칭찬해 주십시오. 반면 나는 오히려 1년 전보다 더 하나님

뜻과 멀어진 거 같아.라고 라고 하면 가슴을 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셔야 됩니다. 특별히 회심은 그냥 회심했다가 아니라 회심은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주인된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저는 보통 세 가지 지표를 항상 말씀드립니다. 내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에너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즉 내가 내 시간을 나를 위해서만 쓰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주인대만 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는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고 적용이 있는지 물질에 대해서 나의 에너지에 대해서 민수기 15장은 그냥 보면 규정이에요. 근데 그렇게 보면 하나님이 무엇을이기 원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아까 했듯이 처음 드린 것은 물질에 대한 주인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가르치는 거예요. 15장에는 뭐가 또 있냐면 안식의 준수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치시는 거예요. 너의 삶의 시간이 다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주일 중에 하루는 나를 위해서 내가 가장 우선을 실제로 살아감을 통해서 나의 삶의 시간에 전부가 하나님 것입니다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한 늘 말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또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뭐냐면 에너지예요. 힘이 들어갑니다.여 여, 우리 어, 여기 당사자들 없으니까 우리가 오늘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네. 네. 어, 준비 하나 죽을 뻔했습니다. 네. 그럼 왜 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에너지 쓰는 거예요. 사랑하는

일, 섬기는 일는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만 에너지 쓰고 있으면 그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일에 그 일에 나도 에너지 쓰고 있는가? 내 시간과 나의 무죄 나의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 보면 내가 하나님의 주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가 드러납니다. 내가 스스로 아 저는 회심했어요라고 얘기했는데 1년 전에 지금이나 하나님 위에 쓰는 시간 에너지 물질 어떤 것도 변화가 없다면

나는 고민해 봐야 돼요. 그것이 꼭 교회를 위해 쓰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세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과 또 그 적용이 넓어지고 넓어져 가고 있을 때 성숙해 가고 있다고 저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심은 그러므로 실제적인 변화를 반드시 동반해요. 왜냐면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라.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뜻대로 성장하기 원하셨고 신약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뜻을 따라서 온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르쳤어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삶 가운데 실적이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단순 요구가 아니에요. 여러분 그 삶을 살고 있는 분 모두 느낄 거예요. 하나님대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 단순히 너 그렇게 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야지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있어요. 비로소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정말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어떤 사람들은 동의만해요. 저는 주님이 나의 주인 걸 동의합니다. 어떤 삶도 그렇게 살지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왜 저는 예수님 믿는데 제 삶에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문의한 크리스천이 됐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지적 동의가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거예요.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거예요. 예수님 사신 것처럼 나도 살기로 결단하고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

움직임이 없으면 결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없어요. 한번 따라볼까?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난 예수 믿는다 말한다면 반드시 예수를 따르십시오. 사실 민수기의 규정들을 보면 여러분 하나같이다 보내면 실제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라는 거예요. 다 행동 지침입니다. 왜냐면 신앙은 앎이 아니라 신앙은 삶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리고 이 15장에 16장부터는 본격적으로 광야에서

그리고 40년 동안 이들은 어떻게 살았나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이들이 어 백성들 불평 또 그 불평의 것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에 대해서 원망하고 배반하고 반역하고 이런 것을 이미 수차례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실패하게 됐어요. 다시 40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자, 그럼 이 40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그것이 16장부터 이어지고 있어요. 근데 너무 안타깝게도 16장에 바로 보여준 사건이 뭐냐면 그 전과 동일한 어쩌면

그 전보다 더 심각한 이스라엘의 실패였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선별되어서 부름받은 레위 지파, 레위 자손 중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혹시 민수기를 같이 묵상하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세라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모세의 삶을 묵상 묵상해 보노라면 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12장에서는 누이와 형의 배신 14장에서는 야 모세 안 되겠다. 지도자 가라치워서 다시 애굽으로 가자는 가데스바니아의 반역 사건. 그 이후에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패배했던 그 사건. 그리고 광야에 살아가는 16장 17장에서도 모세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건은 여파가 컸어요. 여러분 이런 어떤 반란 가운데서 구약에 있는 반란 사건을 신약에서 계속 언급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 이번에 나타 민수기 16장에 나타난 고라의 반란은 민수기 외에도 다른 성경에서 세 번이나 더 언급될 정도로 대표적인 반란 사건입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그래도

리더급, 지도자급 안에서 250명이 고라와 함께 반란을 일으킵니다. 근데 여러분,이 일의 속성은 사실 16장을 피자마자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 그것이 드러납니다. 1절 2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성자 이스라엘 아들의 돌라와 자손 리아의 아들의 바람과 아들의 이해지고 이스라엘 자손에서 또 가운데서 지간 250명과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당을 짓고라는 표현이에요. 여러분, 어떤 건물의 붕괴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아요. 거기에는 원인들이 있고

그 원인들이 모여서 어떤 사건을 만듭니다. 여러분, 여기 당을 짓고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여러분, 교회 안에는 여러 조직, 여러 모임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팬, 팬도 조직이고 뭐 예배팀, 목양 팀, 뭐 교육팀, 교사 뭐 사역별 주식도 있고 교회 시스템 안에서도 여러 가지 풍삶초 입금이 어 뭐 어떤 거 사역자 운영위원회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 여러분 정말 저희 교회 안에 제가 속해 있는 카톡방만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 네. 여기

가톡방 여기 카톡방. 네. 자, 여러분, 이것이 당짓는 것일까요? 여기까지 당 짓는게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당 짓는 것은 그런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단순히 어떤 그룹이 나눠지고 어떤 일을 위해서 결성되는 것을 당짓는 거라고 본다면 예수님도 당진 분이에요. 예수님은 수많은 제자 가운데서 12명을 따로 구별하셔서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 중에서도 항상 세 명만 데고 다녔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어떤 공동체 안에서 어떤 구조가 있고 그 안에

어떤 사역을 위해서 어떤 것이 생기는 것은 다 뭐 성경에서 봤을 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당짓는 것은 무엇이냐면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모일 때 그때 성경이 봤을때 그것을 당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 중에 모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마음을 추구하는 모임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모임으로 인간적인 마음으로 모이는 모임입니다. 사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혹은 사람을 중심으로도 목회적이거나 목양적 차원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적으로 모여서 인간적인 그 공동체에 머무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교회에 조직되 있는 이미 조직들도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우리는 경계하고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패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의 것들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서로 돌보지 않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가득한다면 얼마든지 당지 있는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 분당 우리 교회를 개척한 이찬소 목사님이 어 지금은 그런 얘기 많이 안 하시지만 개척 초기에 제일 많이 했던 얘기 중에 하나 뭐냐면 교회는 성가들이 없어야 된다. 그 얘기는 상징적인 거예요. 정말 없애장이다. 그분이 왔을 때 자기가 여러 교회 겹쳐더니 항상 성가대에서 찬양만 하는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소문이 시작되고 권력이 시작되고 예 성가대 안에서 항상 모여서 찬양 연습 한 시간 하면 두 시간 동안 노닥거리면서 오히려 거기서

더 신앙의 위배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러면 성가대 없어야 된다. 저는 100% 동의합니다, 여러분. 어, 공동체 안에서 분명히 우리는 함께 갈 때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어요. 한국 교회 안에는 몇 개 교회에서는 이제 뭐 지도자에 대해서 신인 투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90% 넘게 신임 받으면 엄청나게 리더십이 좋다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야기는 어떤 공동체든 아무리 좋은 공동체도 10%의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해서 아쉬움이나 불만이 있을 수도 있어요.

우린 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안에도 그랬고 고라가 그들을 그러나 결집해서 그것을 어떤 하나의 세력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16장 6절에 보면 너 고라와 내 모든 무리들은 고라와 무리들 고라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고라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모았을까요? 그 교묘야말로 그들을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 보면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여호와 말고는 모두 동등하게 거룩한 백성인데 모세와 아론 왜 둘이 회중 위에 굴림하려 하느냐? 자, 여러분, 고라 주장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충분히 설득 있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왜 하나님 앞에 다 동등한데 왜 모세아로 너희만 굴림하냐? 근데 여러분, 성경은 왜 이것을 잘못된 모습이라고 말할까요? 여러분, 이단은 처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끝이 교묘하게 달라요. 비슷한데 다르기 때문에 사입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사입비가 한자인 거 알고

계시죠? 사이비가 한자입니다. 예. 어, 같으사 아니비 같아 보이지만 다른 거 아닌 거 여러분. 고라 주중에는 옳은 부분이 있어요. 여호와 외에 우리 모두는 동등해요. 목회자나 성도나 리더나 구성원이나 다 동등합니다.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어떤 사역에 세운 것은 굴림하라고 세운 것도 아니고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굴림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그렇게 프레임을 씌운 거죠. 왜 굴림하느냐? 여러분이 메시지는 이미 우리가 다뤄왔던 민수기가

다뤘던 앞선 설교대 충분히 다뤄왔던 교회 안의 질서 공동체 질서이 내용과 유사합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에 속한 분이라면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 권위는 뭐고 권위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서로 존중해야 되는지 잘 기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더 이상이 부분에 대해서 다루지 않고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매일 성경의 해설을 소개하며 우리이 내용을 한번 다시 한번 마지막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메이성의 해설인데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을 무시한

능기를 대어라고 오래하지 말아야 한다. 자 권력과 불의 눈이어를 무시할 만다. 인사 자들은 모세와의 역사를 게했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백성에 하며 만약에 가까이 나아가 성기는 수를 이미 고다 그 방향하고 장의 축복이 공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말씀이 없고 원하는 거 같다가 원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었다 말한 공자의 뿐의 내 공자를 나타나 더 구하는 것이다.이는 성김의 자리를 떠나 주님의 자리에 있다. 인간에 대한 관역이 아니라 그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네 뭘 말하고 있냐면 그들이 굴림하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굴림하는 걸로 보이는 거예요. 뭐 그런 말이야. 뭐 누구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근데 여러분,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의 모습 가운데 뭐가 유난히 걸린다면 사실 그 마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내 눈에 자꾸 보이고 자꾸 다 힘들게 하면 나를 좀 봐야 됩니다. 여러분, 저는 20살 될 때부터 어, 신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바로 계속 오케이

여정 가운데 있으면서 뭐가 보면 친구들 중에서 나는 한국의 조용기가 되겠다. 뭐 여의도 소목교회 같은 교회를 이루겠다. 막 이런 큰 포부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 물론 저도 어린 시절에 아,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교회 이루는 거에 대해서 상상도 해 보고 그랬던 적도 있습니다. 어제 마음 안에도 이미 많이 떠나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여전히 어떠한 욕심과 어떠한 욕망이 다 죽지 않고 꿈틀되고 있을지도 몰라요. 경계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민수기를 읽고 또

목회의 기간이 쌓여가면서 거의 한 가지 확신하고 있는게 하나 있습니다. 아 큰 교회 목사가 지금보다 더 행복하진 않겠구나. 저는 민수기 읽으면서 모세의 묵상에 보느라면 저는 정말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목회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좀 대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분들을 보면 막 부럽다 마음은 정말 전혀 없고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힘들까 안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목회자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럼 무언가 공동체가 커져 간다는

것은 다 좋지 않은 것인가?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든 목회자든 우리가 크고 작고를 결정한 권난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회는 안 커질 거야. 오늘부터 우리 사람 안 받아. 아, 우리 교회 커질 거야. 막 다 받아. 이거 우리가 결정할 수 권이 없어요. 그저 주님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보면서 우리에게 1 달란트 맡기셨다면 그것을 갖고 어떻게 최선을 다할까? 우리에게 다섯 달란트 맡기셨다면 그거 갖고 어떻게

최선을 다할까? 고민하는 것이 저는 저와 우리 교회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지금의 일반적인 다른 교회의 상황들에 비하면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제가 늘이 상황 가운데 우리 모두가 함께 갖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 일과이 상황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따라가려는 태도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 가운데 계속 영혼을 보내 주실까? 우리에게 무엇을 지금 원하고 계실까?

아, 우리는 이 정도 숫자가 제일 좋은 거 같아. 우리이 정도 숫자가 적당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하는 것도 어쩌면 저는 자기 생각이고 우리의 기준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여러분 성장보다 교회의 건강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공동체가 지금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고민하고 진단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그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주님이 우리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우리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올해도 우리 교회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등록을 하셨어요. 2021년보다 2022년 등록이 더 많았고 2022년보다 2023년이 더 많습니다. 그것에 제가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참 사랑하시고 그 영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그 영혼을 맡기시고 부탁하셨다라는 주님의 결정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가 얼마나 한계가 가득한지 하나님이 모르시지 않을 거예요. 또한 우리 안에도 그리고 저에게도 혹시 우리가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지금까지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이 잃어버릴까 고민하는 그 마음도 주님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뜻 앞에 우리는내어 맡기고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수많은 교회의 실패와 무너짐을 보았습니다. 유독 제가 부교자로 갔던 교회들 안에 어려움이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었어요. 여러분, 저는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정말로 좋은 교회, 주님의 필요를 담은 교회,이 시대

안에서 주님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가 만약에 어느 시점까지 살아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귐의 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뜻이라면 어느 순간까지 있다가 없어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주님의 뜻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잘못이나 우리의 죄악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앞당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가 뭐 해야 되냐면 날마다 말씀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지를 잘 배우고 함께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당 짓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아멘. 사람을 중심으로 모여서 사람의 마음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이야기 나누지 마십시오. 여러분, 저는 모임이 많은 건 참 좋아요. 우리 교회 여러 가지 모임이 생겨 좋습니다. 그럼 그 모임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잘 담아내고 있는 모임인지 그 일을 그 무엇을 위해서 모였고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우리는 늘 고민해 보셔야 됩니다. 뭐 예를 들어서 우리 대표적으로 우리 교회 대표 사주일 가운데 하나인 밴드부 네. 밴드부가 모여서 모이는 거 너무 좋아요. 그리고 거기에 목양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 모임을 주도하신 분 가운데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걸 통해서 작년부들을 모으고 더욱더 하나되고 함께 찬양하는 것도 나누고 그래서 응원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유지된다면 늘 응원할 것입니다. 그러 다 잃어버리고 거기서 모여서 그곳에 지배하는 이야기가

세속적인 이야기, 세상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 다른 사람에 대한 헌담, 혹시 만약에 교회에 대한 비판 이런 것만 있으면 우리는 과감히 그 모임을 없앨 수 있어야 됩니다. 모든 모임이 마찬가지예요. 또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이 교회 안에서 작은이든 큰이든 어떤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리더분들에게 같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굴림하지 마십시오. 교만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품은 마음이 헌신이 아니라 굴림이라면 우리에게 있는 책임과 권한은 우리의 독이 될 것입니다. 리더들은 공동체와이 아내에 속한 영혼들을 위해서 때로는 가장 어렵고 힘들고 헌신해야 하는 일에 먼저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결단한 분들 줄 믿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없으면 리더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 그래도 누군가가 정말 목숨 받쳐 무언가 해야 된다면 저는 항상 그 일을 해야 되나 일순인 저라고 생각하고

목회하고 있어요. 우리 교회 안에 세워진 리더분들이라면 각 사역 안에서 각 목양적 관계 안에서 늘 그 공동체 안에서 가장 먼저 헌신한 마음을 갖고 계셔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내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한 사람이 그 안에서 헌신해야 된다면 가장 먼저 아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혹시 그 안에서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그 일의 일순위가 나구나라는 마음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부두 부디 주님으로 위임받은 그 사명의 기간 동안 꼭 그런 마음으로 섬겨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또한 사랑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이 공동체를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러한 리더들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안에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이 섬기는 사람들이 참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에요. 여러분 그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그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갈

때 우리가 정말 한 몸으로 연결되어서 함께 움직이는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나 안타깝게도 민수기는 우리가 자꾸 실패를 보여 줘요.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들의 실패를 보고 있노라면 때로 마음이 아픕니다. 왜냐면 이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민수기 오늘 목상의 본문들이 혹시 읽어 보시면 같이 그런 마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설교하는 본문들을 읽어볼 때 참 마음이 아프고 쓰라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고라와 그 반역한 무리 250명을 심판하세요. 땅이 갈라져서 그들이 다 죽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로 봤으면 이제 하나님 뜻이 무엇인가 찾아는데 백성들이 깨닫지 못해요. 그래서 도리어 그 일에 대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책임을 정거하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가 하나님 백성들을 죽게 했다. 회중들이 일해 보고서 깨닫지 못하고 도려이 모든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덮어 씌웁니다. 여러분, 모세와 아론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항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분노하세요. 하나님이 그 일로 백성들을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겠다고 벌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와는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이 영혼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한번 47절 48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이 모세의 명령을 따라 물을 가지고 하시니 백성의 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성을 위하여 아멘. 여러분, 모세와 아론이 그들 앞에 자신 억울함도 있고 분함도 있지만 지금 영혼들이 다쳐가고 죽어가고 있는 걸 볼 때 그곳 달려가서 그 안에 서서 속죄하고 함께 기도하고 그때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멈추십니다. 여러분 공동체는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외부의 핍박과 내부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힘써 공동체를 지켜야 합니다. 공동체는 모두가 함께 이 수중한 가치를 지켜가고 세워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희 교회 꿈은 아시살피 성경적 교회를 꿈꾸고 있어요. 성경적 교회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는 일반적인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성경처럼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한 진정한 하늘의 가족 공동체가 되는 것은 매우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죄의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기고 넘어서기까지는 어쩌면 기다림과 또한 쉼없는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실 저는 목회자로 쭉 살았기 때문에 잘

압니다. 교회는 문화 센터와 같을 때가 가장 문제없고 편해요. 저도 편하고 여러분도 편합니다. 시간 되면 정서 예, 제가 할 것만 하고 여러분도 이 시간만 있다가 예, 그냥 잘 듣고 잘 가면 제일 편합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가 불가원 무슨 뜻입니까? 너무 가깝게 지내지도 말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쉽고 제일 편합니다. 근데 그런 공동체는 제가 봤을 때는 이러기 쉬워요. 교회 왔을 때 서로에게 보여진 적당한 가면 하나 쓰고 와서 난 이런

사람으로 보이다 가야겠다. 한 두 시간 정도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지내다가 돌아가면 나의 이미지 관리도 되고 삶을 살면서 가장 괜찮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것이 성경적 교회인가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회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어느 누구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교회 공동체 서로 안에 관계 맺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면 쓰고 지내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이 하신 것을 따라가고 주님 보신 교회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그런 공도의 추구해 갈 때 그래서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고 서로에게 대해서 적극적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또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열심을내는 것이 부담스럽고 안 맞아서 혹시 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저는 목회자로서 정말 괜찮습니다. 편한 교회 혹은 부담스럽지 않은 공동체를 원해서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이 저에게 상처가 되진

않아요. 근데 저는 우리가 성경적 교회가 되고자 하는 꿈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가장 슬플 것 같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될게 있습니다. 우리가 다가선다는 것은 반드시 문제의 야기해요. 가까이 다가서면 좋은 것만 보이나요? 우리 가장 이런 하잖아요. 연애할 때와 결혼할 때 다른 이유가 뭐예요? 연애할 때는 그 시간만 나이스하게 보일 수 있잖아요. 근데 결혼은 뭐예요? 끝이 없잖아요. 언젠간 가면에 벗어 던져야 돼요. 그럼 서로 놀라잖아요. 어, 너 이런

사람이었어. 가면에 벗어 놀란다고요. 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 가까이 다가가면 언제나 이 소그룹 사역에는 처음에 소그룹을 딱 만들어 주면 3개월을 뭐라 부르냐면 신혼기라 부릅니다. 아, 다 좋아요. 아주 나이스하고 아, 그전에 사람 좀 질렸는데 새로운 사람들 이야기 듣고 가니까 좋습니다. 예. 빠르면 3개월, 길면 6개월 지나면 뭐가 오는지 아십니까? 혐오기가 옵니다. 서로가 불편해져요. 서로의 어 얘 이런 사람이었네. 놀라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안

맞는 부분이 막 부딪치기 시작해요. 갈등을 겪고 어려움도 당합니다. 멀리서 볼 때 다 그럴 듯해 보였는데 다가서 보면 서로 맞지 않는 것이 부딪혀요. 여러움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마음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르고 자기 주장과 고집들은 다 엄청납니다. 근데 여러분 그걸 이겨내셔야 돼요. 이겨 나가야 돼요. 근데 이겨 나가 주님 언제 얻을 수 있냐면 이겨 나가기가 힘들거든요. 이겨 언제 얻을 수면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되는지를 내가 깨달을 때예요. 그러면 우리에게

비전이 명확해야 돼요. 아 우리가 이런 정말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이 혐목이를 극복해 보겠노라고 노력해야 됩니다. 근데 그걸 지나고 나면 뭘 깨닫게 되면 모두의 그 내면 깊은 곳에는 다 외로움이 있어요.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옆에 누군가 있는 정말로 내 삶에 함께 해 줄 건강한 영적 가족들이 다 필요합니다. 쉽게 마음을 여지 못한 아픔과 상처가 있어서 방어적으로 더욱 가시가 돋아 있을뿐 사실 그걸 다 걷어내고 오면 사실 우리는 우리 서로서로에게 서로가 너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사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 하지 않으면 절대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교회는 어쩌면 세상에서 봤을 때는 불가능한 공동체 그게 된다고. 근데 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의 유일한 가능성의 근원이 있다면 바로 우리 안에 한 분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는 것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린 각자 다 달라요. 근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그분은 동일한

분입니다. 그럼 우리가 각자가 그분께 순종했을 때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향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그 성령님을 향한 진실한 순종과 그분이 하고자 하신 일을 향한 그 비전을 품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이에요. 그러므로 내 삶에 수많은 어려움 공동체 안에서 특히 어려움을 만날 때 여러분 오늘 모세와 아론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내 안에 성령님께 엎드리십시오. 물으십시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기 원하십니까? 서로에게 막

쏟지 말고 너 왜 그랬어? 하지 말고 내 마음 편하다고 내 감정 막 쏟아붙지 말고 그렇다고 막 다 참고 막 곰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날마다 닮아가고 공동체를 지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참 좋아하는 찬양이 있어서 하나 나누고 싶은데 강명시 형제이 부르는 승리라는 찬양인데 저는 마음의 어려움에 제 개인적으로 생길 때마다 저는 이 찬양을 부르고이 찬양을 항상 들어요.이 차량 가사가 이렇습니다.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더 좋고 편한 가능성의 유혹을 저연히 잘라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바로 승리라네.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하고 싶은 말 그 많고 많은 말 모두 힘겹게 억누르고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 결과가 어떠해도 주님만 빛나시고 주님 평안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승리라.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허역게 잠재우고 주님만

내 안에 사시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 주님만 내 안에 사시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꼭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누군가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가면 이런 태도 보면 바보 같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야 정신 승리하네라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길로 가서 참된 승리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으로 증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간증

하나를 하고 오늘 말씀 마치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그래도 리더의 자리를 몇 번 경험하면서 자라왔습니다. 그중에 가장 혹독한 훈련을 경험하는 곳이 두 곳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대학교 시설의 선교 단체였고 하나는 사귐의교회입니다. 하나는 훈련이 끝났고 하나는 현재 진행형이죠. 아마 제가 목사로 있는 한이 훈련은 계속될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설교 제목처럼 뭐 길면 수십년의 훈련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죠. 그중에 이미 지나간 훈련 제가 대학 시절에

제가 어학터 학교에 있는 동아리 선교단체가 있었는데 어 기독교 성교 단체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어 훈련은 저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이곳에서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줄 알았던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놀고 관계하는 걸 너무 좋아했고 그 관계적 친밀감에 의해서이 공동체 안에서 소그름 리더도 맡게 되고 점점점 중요한 역할들 맡게 되고 관계 중심에서 있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조금 이른 나이에 전체

공동체를 대표하는 리더를 맡게 됐어요. 사실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자리기도 했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몇 개월이 지난지서 정말 처절한 한계를 경험하게 됐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 힘으로 되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니까 깨닫게 됐어요. 특별히 이 공이 공동체는 한 80%가 신학생들 신학가 사람들이었는데 머리 큰 신학생 양반들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예 결코 쉽지 않으면 깨닫게 되었습니다. 뭐 제가 노력을 안 해 봤겠어요? 별의별 노력

다 해 봤죠. 제가 할 수 있는 너같지 노력, 내임으로 할 수 있는 거 막 만나고 설득하고 그러나 제 리더십의 부족함을 계속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원하는만큼 공동체 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잘 안 따라 주니까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졌어요. 그래서 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생각만 했습니다. 어떻게 잠수를 탈 수 있을까? 학교를 일단 휴학을 하고 좀 어떻게 사라져 볼까? 어, 합창단이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씩을 모였거든요. 그러니까 매번 그 자리 가야

되는데 어, 어쨌든 리더로서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하고 있을뿐 이미 속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 짓눌려 있던 어느 날 누군가가 익명으로 문자 하나를 저에게 딱 보냈어요. 내용이 보내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당신은 익명 문자 가능했으니까. 너 같은 사람을 회장으로 둔 너희 공동체가 참 불쌍하다. 아, 우리 공동체 불쌍하다. 이런 거였어요. 네. 우리 안에서의 내용이었어요. 어, 당시에는 그 문제 받고 얼마나 이게 상처가 되든지 아, 왜냐면 이게

잘 외부에서 보낸 거면 괜찮을 텐데요 안에 있는 누군가가 보냈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누군지 모르겠고 다 그놈 같은 거예요. 네. 만날 때마다 누구 도대체 누굴까? 어, 그리고 누구 누구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무서운 겁니다. 어, 그래서 리더 성경도 그 한 해 동안 저는 계속 추락해서 바닥을 치게 됐어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혼 없는 상태로 기계적으로 그 자리를 감당할 뿐이었습니다.데 다행히 하나님은 그 시간 동안 저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크셨던 거 같아요. 그 시간 동안 저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돕는 숨길도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 안에 주님의 이러한 심들이 시작되었고 다 뭐 말할 수 없지만 결국 큰 깨달음을 얻으면서 여러이 지난 이후로는 회복할 수 있는 한해를 보내게 됐습니다. 사실 근데 그때부터 저는 아 리더가 얼마나 힘든 자리를 정말 몸속 깨달았기 때문에 난 다음부터 절대 함부로 리더 안 맞길들래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 저는 군대 갔다

온 이후에 다시 모임의 리더로 섬기게 됐어요. 그때는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저는 마음속으로 하기 싫은데 근데 이 모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필요가 느껴지고 오히려 당시에 이 공동체 안에서 제가 도와야 될 여러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 이번에는 저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다시 맡아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전에 실패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고 너무 진이 빠졌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은 그 전에 배웠던 것이

컸기 때문이에요. 그 전에 배웠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아,이 마음을 갖고 두 번째 리더를 다시 맡게 됐고 그리고 그래도 그 해는 감사하게 그를 감당하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여러분, 저는 20대에 이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저는 개척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사귐의교회를 지금 개척과 목회하는 지금 한 6년

이제 한 반 정도의 시간 아, 그때마다 저에게 이견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20대에 저런 어 경험들 재임을 하려다 실패했던 여러 가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금이 정도의 역할도 저는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그러나 여전히 믿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린 각자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 잘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민수기 공동체 안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누가 지켜줬냐면 하나님이 지켜줘요.

악을 심판하시고 어떤 부분은 용서하시고 어떤 부분은 기다리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의 무너진 공동체의 그 질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7장 유명한 장면이죠. 아론의 제 왜 아론 네가 제장고 있냐 그랬더니 12두 지파 다 대표에게 지팡이 하나씩 가져와 지팡이에 이름 다 써 장태준 박혜진 다 써 그다음에 하나님의 성막에 넣어둡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의 지팡이에 싸게 날 것이다. 누구에게 싸게 났냐면 아론의 지팡에 싸게 납니다.

그래서 공동의 그 리더십을 하나님이 세워 주세요. 근데 여러분이 장면에서 우리가 봐야 될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면 아론을 세우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에요. 아론을 고쳐 쓰시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은혜입니다. 여러분 아론을 지금 세워 주시는데 사실 아론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론은 출애굽계에서 황금송아지 만들 때 주동자였어요. 미리암이 반역할 때 미리암 혼자 했습니까? 그때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론을 계속 만져 주시고 바꿔 주시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제상으로 그를 붙들어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온전하지 않아요.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우리를 맡길 때 우리를 주님께 세워서 아름답게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세상에서는 다 그렇게 얘기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 쓰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면 우리 좀 누가 과연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겠어요? 사실 우리 모두가 그

고쳐 쓰임받고 있는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계속 고쳐서 쓰임 당하는 그 당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민수기 15장부터 17장의 내용을 제가 설명드렸어요. 18장과 19장의 내용도 앞에 있는 내용과 거의 유사합니다. 18장은 레위인에 대한 규정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방금 앞서서 제사장으로서 아론을 세우는 장로 끝났기 때문에 그럼 제사장의 역할과 직무가 무엇인지와 함께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도 첫 번째 수물을 드리는 것이나

11조를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가르치는 것도 있어요. 이거는 아까 얘기했던 설교의 초반부에 나온 내용과 거의 유사합니다. 핵심은 우리 모든 것이 다 주님께로부터 왔고 그것을 인정하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죠. 19장은 이스라엘이 부정해질 때마다 정결한 물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또 얘기한 것처럼 아론의 연약함, 모세의 연약함, 이스라엘의 연약함들을 하나님께서 고쳐가시며 사용하셨던 그 모습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것들 만나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거룩함으로 바꿔 가시는 분입니다.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그 능력을 우리는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이 우리를 바꾸어 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이미 누리며 그것을 은혜로서 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감격으로 반응하는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예배 안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 은혜가 다른 사람을 한 것이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붙들고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회복하고 치유하시고 진리 안에 살도록 하는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민수교회 40년의 훈련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삶의 광야 같다고 느껴진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광야는 내 힘으로 살면 실패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 광야에 아무것도 없는 거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광야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실패하지도 실수하지도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므로 삶의 마지막 여정에는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