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3일차 / 마태복음 23장 /

2023-04-05 · 마태복음 23장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할렐루야 고난주간을 통하여 이렇게 아침에 여러분을 만났는데요 이렇게 또 아침에 함께 찬양할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고난도 묵상을 하지만 제가 좀 크게 묵상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머리로는 너무 잘 알겠는데 어렸을 때부터 들어와서 이게 마음에서 잘 수용이 안 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어요 풍삶초를 하면서도 그랬고 그래서 좀 더 그 사랑을 묵상했던 것 같고 근데 그 사랑이 정말로 믿어진다면 내가 이 상황이

좀 힘들지라도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 또 어떤 일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 안에 가득 채워서 낮아지는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품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목숨까지 내주셨던 그 예수님의 사랑 함께 찬양합시다 아 324장입니다 저만 알고 저만 혼자 찬양할 뻔했네요 324장 324장 예 수 자기 몸버려 죽으신 주 다 항상 생명 주신 그네 마음의 새겨 봅니다 다시

한번 찬양할까요 예수님 이 생기억할 때 자기만 봐 라 죽 으신 다 혜 생명 주신 내 새겨 엄마의 새겨 봅니다 저 달린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님의 답이 내 마음을 겸손하게 해 2절 부를게요 이제는 이제 높은 곳에 앉으신 하늘과 땅에 왕 되신 숨 나의 이제 놀라운 구원의 은혜 높이 찬양합니다 높여 찬양하리라 시달리신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님의 잠이 내 마음을 온섭케 해 감사하며 내 생각 주께 드리네 2절 한번 더 하겠습니다 이제는 이제는 저 높은 곳에

앉으신 하늘과 땅이 왕 되신 주 나 의 놀란 구하고 봄비 찬양하리라 높여 찬양하리라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님의 잠이 내 마음을 겸손하게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 달리시 십자가를 내다볼 때 주님의 답이 내 말 겸손케 해 주께 감사하며 내 생명 주께 드리리 한 번도 고백하겠습니다 주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수달리신 십자 가를 볼 때 주님의 삶이 내 마음을 겸손하게 해 그 감사하며 내 생명 주께 드리네 감사드리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 되신 주

감사드리 니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 되신 감사드리 아 들이 나의 친구들 감사 드리리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 되시죠 감사드리리 너구리를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들 실수 나의 친구들 수달이신 십자가를 내다볼 때에 주님의 점이 내 마음을 겸손하게 해 주께 감사하며 배신자 주께 그대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주님의 자비님 마음을 겸손케 해 주께 감사하며 내 생명 주께 드리 아멘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목숨을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고

세상에 나가서도 우리가 그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함께 결단하며 기도하며 예배로 나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보호 시간대 본래만 또 못하고 정말 너무나도 죄로 물든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셨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우리가 묵상하고 우리가 어떤 자들인지 어떤 사랑 어떤 대가를 받은 자들인지 잊지 않고 정말 세상에 나가서 그 사랑을 기억하며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또 말씀을 통하여 영혼의 양식을 묻습니다 아버지

또 우리가 이 영혼의 양식을 먹고 아니 아침에 우리가 함께 다시 주님께 모였습니다 하느님 피를 주심도 감사하고 하나님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할 수 있도록 하심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엽에 아버지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옵시고 우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기도드립니다 메인 네 우리 저와 있는 분들과 좀 인사합시다 당신은 비보다 강합니다네 네 저희 모교회에서도 한 목사님 맨날네 비 오면 안 오는 신앙은 창고지 신앙이다 비를 못 뚫어서 그렇다는데 여러분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감사하고 어제 아내하고는 비가 오니까 아 이제 우리 꽃은 다 떨어지겠구나라는 것만 생각했는데 아침에 또 이렇게 애들도 만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아 비가 와야겠구나네 또 우리 산불도 있고 그러니까 또 그런 마음이 들어서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입에 오게 됐습니다 오늘 밖에만 비가 오는게 아니라 우리 마음도 적셔질 수 있는 우리 마음의 고갈도 갈증도 이기게 하는 주님의 은혜에 비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네 셋째 날 모두 참여하신

분들 진심으로 축복하고요 오늘도 말씀을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 위해 우리가 오늘 주어진 본문을 한번 잘 따라가 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3장입니다 우리 먼저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같이 말씀에 대한 속을 나누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23장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느니 곧 그 경문지를 넓게 하며 옷수를 길게 하고 잔치에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 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 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 진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에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하며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하며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자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과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처에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에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만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기도 해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리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네 너희가 그 중에서 덜어낸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게아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내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몸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려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 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절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네 여기까지가 마태복음 23장입니다 마태복음 23장 개인적으로 봤을 때 마태복음을 우리가 잘 안다고 말하지만이 뒷부분에 있는 내용은 잘 설교되지 않는 내용이다 보니까 아마 어쩌면 이렇게 또이 길을 통해서 이 시선을 다룰 수 있는 것이 감사한 것 같습니다 이 지점장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비평 경고 이런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사소한 율법적 규율들의 지나친 관심을 빼앗김으로써 정작 그 율법에 나타난 중요한 하나님의 근본 원리들이나 마음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큽니다 23장은 우리가 쭉 봤지만 36절 가운데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1절부터 12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관하여 그들에게 직접 한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이고 13절부터 36절은 서기근과 바리새인 되게 직접 하시는 경고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럼 기본적으로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두 구약에 나타나지 않죠 모두 그 이후에 구약과 신약 사이에 등장한 사람들인데 서기관은 헬라의 통치식이 생긴 그룹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고 그것이 기록하고 가르치는 성경 전문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모든 율법 전통을 계승해서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을 세부적인 것까지 규율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고 적용하는 또한 율법에 대한 교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한 시기는 다르지만 신약시대의 그들의 모두가 각각의 그룹 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의 지도자들로 따라가야 될 선생들로 평가받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더 많이 들지만 당시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어쩌면 율법의 교사이고 랍비이고 율법 학자 성경 교사 이런 측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일 스스로도 소개가 바리새인은 자칭 구약성경을 가장 우리가 잘 알고 율법을

가장 잘 안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a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편지를 기록했는데 모조리이 내용을 a가 아니라 b로 왜곡하고 비로 해석하고 비로 듣고 있고 나에게 동작 당신이 비라고 말하지 않냐 말하고 이렇게 만약에 우기기 시작한다면 여러분 어떨 것 같습니까 아마 분명히 a라고 말을 하고 a라는 마음을 전달하기를 원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없을 것입니다 서기가 바리새인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약의 말씀과 하나님의 법률법을 통해서 a라는 말씀을 이들에게 전해 주셨는데 이곳을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로 자신의 기준대로 b라고 해석하여서 적용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비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시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 동일한 본체이신 예수님께 보셨을 때 하나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이들은 전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a가 아니라 b라고만 하고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봤을 때 기가 막히고 답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아니야 하나님 되신 a에 있어라고 아무리 해석하고 아무리 설명해줘도 한번 비라고 이야기로 마음먹은 서기관과 바리새들이 좀처럼 그것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선 첫 번째 단락에서는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 본받지 말라 영향받지 말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무리라고 하는 것은 제자에는 아직 포함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제자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의 물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즉 무리 중에는 물이라라고 할 때는 거기 안에는 뭐 무리가 있고 그 안에는 함께 있는 제자들도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물 위에서 제자로 한 단계에 나아오는 그런 과정으로 성경은 보통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저도 무리는 예수님 곁에 머물고 예수님 가르침과 행동에 관심이 있어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무리들인 겁니다 즉 무리는 예수님의 반대자나 적대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물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제자들과는 좀 구분될 수 있는 표현 아직까지는 예수님을 진짜 마음 다해 따르기보다는 관심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 정도로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그럼 우리들과 또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것은 지키되 그 일은 따르지 말라고 우리 보물이 그렇게 말합니다 말하는 것은 지키되 일은 따 르지 말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시킨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그 가르침의 해석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항상 다루고 있는 곳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들이 전하는 그 말씀과 율법 자체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 돼 그들이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말씀은 죄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나라 이단들도 우리와 같은 성경을 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삼겹살에 이단이 많습니다 성경은 죄가 없어요 문제는 어디냐면 그것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그들이 낭독하는 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되지만 그들이 그 율법을 해석하고 말씀을 해석하는 그 일 그 행동은

따라서는 안 된다라고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 곳곳에서 서기경과 바리새인들이 성경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정확합니다 그들은 미가소에 근거해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말합니다 그 정확한 거예요 신명기 규정된 근거해서 구약에 있는 말씀 말하기 시작하고 예수님께 이혼에 관해서 지리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 맞는 얘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가 되신다는 어떤 측면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기근과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까 때 하나의 말씀을 자꾸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마음 주셨는데 자꾸 이렇게 듣고 이것이 맞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수백가지 수천가지 세부적인 규정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이것을 지켜야 한다라고 요구합니다 말씀에서 하는 말씀에 신령과 진정으로 최선으로 예배 드려라라고 했다면 거기에 대해서 세부적인 사항을 수백가지를 만들어서 다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도 그 말씀의 요지가 있는데 그것보다 더 예배 올 때는 항상 구두 신고 와야 되고 정장 입고 와야 되고 이런 규절도 다 만들어서 안 지키면 정죄하고 이러는 어떤 지나친 선을 그들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정작 최선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측면 너무 세세한 것이 얽매여 있는 측면에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무거운 귤의 짐을 사람들을 어깨에 지우고

정작 그 짐을지고 나르는 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것이 너희의 모습이다 이게 예수님이 그대와 비판입니다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지게 만들어 놓고 정작 사람들 그걸 지키는 힘들고 있는데 너희는 거기에 대해서 자신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채 아무런 도움도 주고 있지 않다 또한 그들을 위선적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스스로 높이고 남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줄곧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 섬김의 원리와 반대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은 몸이 안에 놓고 낮음을 만들 것이나 우리 모두가 한 형제가 되어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서로를 돕고 더 섬기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고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양요일 교수는 마태복음 주석에서이 부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경고는 특별한 호칭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하는

오늘날 교회의 상황에서 깊이 경청 되어야 할 것이다 울리는 물론 보다 표면적이 나타난 직분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자칫 한국교회 갖고 있는 직분이 내가 그 호칭을 통해서 남들보다 더 높임 받길 원한다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거죠 우리가 짚을 수 있는 우리가 완전 자유롭습니까 그렇지 않죠 우리도 어떤 것을 통해서 내가 자꾸 높은 대우를 받기 원하고 높임 받기 원한다면 우리 똑같이 앞에서 우리는 아파야 할 것입니다 섬김과 겸손의 원리가 하늘나라 백성 고노시에 가장 기본이라는

거죠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리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서기음과 바리새인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부터는 이제 직접적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시는 책망과 경고입니다 여기는 화 있을진저라고 하는 것을 7개의 화가 선언됩니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아 위선자들아 이런 형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그들의 모습을 위선자라고

자주 표현하는데이는 그들이 율법에 해석자로 있으면서도 율법의 참된 의미를 따르지 않고 그 결과 자신들뿐 아니라 그들에게 배우는 자들까지 함께 멸망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향해서 눈먼 인도자들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와 만약에 우리 교회에도 팬 리더가 있고 우리 교회에도 예배 인도자가 있고 우리 교회도 교사들이 있는데 만약에 그러한 사람들이 눈먼 인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들이 유대인들 사회에서 어떤 성경을 전하고 이렇게 신앙생활한다고 가르치는 입장이 있는데 정작 그들이 눈먼 인도자가 되어 있으니 그들을 따라간 자들이 함께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7가지의 화는 기본적으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과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팔복은 8가지 복이라면 여기는 7가지의 화를 다루고 있어요 탈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친다면 일곱 환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그릇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98을 다 다루지 않겠지만 몇 가지만 설명해보면 첫째 화가 일곱 화를 대표하는데 13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들은 잘못된 삶의 모습으로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뿐 아니라 그릇된 가르침을 따라서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에 안내자 책임을 맡은 자들이 그 나라 문을 닫아 놓고 길의 가로막고 있다는 표현은 충격적인 역설입니다 넷째 화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로 드리되 율법에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지니라 맹인된 인도자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이것은 앞서 그들이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율법을 지금 대하는 적용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사소한 율법의 어떤 부분들에겐 얽매여 있고 정작 율법의 가장 큰 가르침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율법 가운데 여기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율법 가운데 지붕에 난간에 만들라는 율법 규정이 있어요 그것은 건축법이기 이전에 이웃 사랑의 법입니다 왜냐면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 다 1층 집이기 때문에 2층 집에서 올라가서 뭔가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간에 만들지 않으면 떨어져 죽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돌보는 입장에서 난간에 만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 난간에 만들라는 규정에 꽂혀서 더 심화 세부 규정을 지키느라 전혀 난감 만들다가 이웃과 싸운다면 난감 만들다가 이웃집과 불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처로 표현되는 무언가를 거둘 때마다 거기에서 다 십일조를 드린 것을 강조해요 그러나 율법이 더 중요한 부분인 정의와 긍휼과 믿으면 버렸다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 그것에 11조 드리는 것은 오라

괜찮아 맞아 이것도 행하고 그러나 적어도 버리지 말아야 돼 어떤 하나를 지키면서 다른 걸 무시하고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특별히 어떤 것을 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마음도 잃어버리는 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곳 주위를 예배 시키고 헌금생활을 하고 경건 생활을 하는 것은 잘하는 거예요 그러나 정작 그것을 하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그 두 가지가 같이 갔을 때 아름다운

곳이다 말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모습을 너희는 지금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라고 비유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잖아요 그들의 모습이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엔 번지르르 하지만 너희 안에는 죽은 것을 담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그들이 적대적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발야가야 아들 스가랴라는 사람은 아마도 역대하 24장에 나오는 순교자의 이름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우리와 성경 배열 순서가 다른데 창세기가 제

앞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아벨은 성경의 첫 순교자이고 역대가 가장 마지막이기 때문에 역대에 나오는 스가랴는 마지막 순교자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표현하는 대로 아벨의 피로부터 스가랴의 피까지라는 것은 구약의 모든 순교자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제 너희가 그렇게 해왔는데 그들은 이제 예수님과 예수에 따는 자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계속해서 순교자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할

것이 말씀하시며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려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모아서 품고 싶으셨지만 이스라엘의 거절로 그 일이 실패하게 됨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너희 집 너의 집이라고 표현하는데 너희 집은 지금 유대인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유대인들이 자기 종교에 중심으로 삼고 있는 성전을 의미하는 거예요 여러분 성전에 대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집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얘기해요 너희 집 너희 집 너의 집이

되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 것일까요 성경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성경과 가장 먼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그들의 저지른 실수와 잘못이 우리에게도 어떤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해 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이 신앙의 시간이 쌓이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 좋은 거죠 그러나 정자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가 더 커지고 흔히 말한 것처럼 머리가 더 커지는 신앙생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더욱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안에서 드릴수록 우리가 커져야 된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어야 될 거예요 우리의 깊어짐은 위로 쌓아가는게 아니라 낮아지는 것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혹은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는 신앙생활이지만 내 마음은 정작 점점 더 주님과 멀어지고 있는 신앙생활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고 돌아보면서 내가 정말

잘 가고 있나 맞나이 질문을 갖고 있고 답을 찾고자 했기 때문에 새로운 삶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리새내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정통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깨닫고 돌이키라는 기회에 돌이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새로워졌고 돌이키고 왔더니 자신의 삶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겉모습만 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머리만 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저 주님을 더욱 닮아갈

수 있는 속사람의 성숙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외적인 것들이 중요할 수 있어요 언제나 습관은 외적인 것을 먼저 내가 추구하고 정하고 하나님께 시간을 내고 지켜가고 주님은 또 그것을 무시하시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거 주님의 위해서 시간내어 묵상하는 건 경건 생활하는 것 다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형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채우고 있느냐 무엇으로 채우고 있느냐 그것으로 해서 내 삶이 어떻게

채워지고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 살아갈 때 정말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 주십시오 종교인으로 살지 마시고 신앙인으로 살아 주십시오 내 삶 전체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쓰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하루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고난 주간에 아침에 뜻을 정하고 시간을 정해서 이렇게 주님께 예배하는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주님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의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 진실하게 주님께 올려지고 예배할수록 주 앞에 머물수록 더욱 주를 닮아갈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와 같이 낮아지고 주님같이 섬기고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오늘도 성령 하나님 예배하는 우리 마음을 바꿔 주십시오 기도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주시고 내가 변하여서 나의 삶을 대하는 방식과 나의 삶 속에서 주를 찾는 방식이 변해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내 안에 남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십시오 오늘 하루 살아갈 때에도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자녀답게 주님께 예배하는 자답게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 그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님이 지키시는 하루로서 내 삶을 바꿔가고 변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 안에 이들의 기도하며 나 이제 그 기도 가운데 머무시고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하옵시고 또 하나 이루 가운데 찢어지고 상황 보고 있다면 위로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만지시고 치유하는 우리의 시간 되시도록 주님

붙들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시간 같이 주님께 머물며 나아가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자유롭게 기도하시고 기도 끝나시면 돌아가셔서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같이 기도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