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2일차 / 마태복음 22장 /

2023-04-04 · 마태복음 22장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할렐루야. 아멘. 어, 고난 주간입니다. 음. 고난 주간 특별 세 기도 중에 어 저희들이 예수님의 길을 생각하며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어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패배, 죽음 그런 것이 아니라 승리이며 생명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찬양드리실 때에 그 찬양의 고백이 저희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위에 십자가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하는 주가 보혈을 흘리세 최후

승리를 얻기까 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멸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가 붙들겠네. 멸시함을 받은 멸시함을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 양이 영광버리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험한 십자가에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하고 내 죄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일세 최후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멸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가 붙들겠네. 주가 예비하신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보양집에

나를 부르실 그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를 항상 달게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멸관 받기까지 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멸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빛난 면류관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성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오직 주만이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성 나의 구원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 마지막으로 찬양하겠습니다. 오직 주만이 오직 주만이 나의 판정 나의 구원 나의 구원이시니 아멘 주만이 오직 주만 나의 산성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아멘.이 이 시간 우리 특별 새벽 기도를 위해서 시간에 같이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 아버지 이 시간에 저희들이 나오게 하여 주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고난을 함께하는 것이을 기억하며 아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도 오늘도 우리를 이 시간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수도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며 나아가오니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옵시고 주님께서 홀로 높임과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이 시간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 함께 하셔서 우리의 하루에 필요한 말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시고 바르게 새길 수 있는 마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반갑습니다.

네. 어, 저는 어제 네, 그 다른 곳에 가서 참여하느라 못 봤는데 이렇게 많이 나오실 줄은 몰랐는데. 네. 어, 우리 새벽에 좀 서로 얼굴이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네. 최대한 눈에 피하면서 같이 좀 인사합시다. 네. 어,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함께하기 바랍니다. 네. 세 번째 때는 이렇게 약간 흐리멍통하게 봐주는게 소의 예의니까 네. 잘 보시면 되겠습니다. 네. 어 특입니다. 마음 다해서 참여하신 모든 여러분들이 환영하고 예 우리 뭐 어린 아이들부터네 그리고

청소령부 뭐 청년네 작년 할 거 없이 다 같이 참여해서 너무 의미가 있는 거 같습니다. 어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은 단순히 슬퍼해야 하는 고통 주간이 아닙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십자가를 묵상하고 따라가고자 힘쓰는 경건 주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그럼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해해야 될 텐데 주님의 십자가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위해서 자신을내어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의 헌신이었듯이 우리도 이 시간을 보낼 때이

한 주를 보낼 때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주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한 끼씩 금식하자고 이야기한 것이고 한끼를 금식하면서 그 시간 동안 주님 앞에 더 머물고 또 그렇게 드려지는 헌금을 통해서 금식 헌금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힘쓰는 것으로 우리가 한 줄에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 주에 이렇게 아침에 특새 참여하시는 것이 훈련이라면 훈련입니다. 이런 시간도네 우리의 신앙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 누군가는 내 삶의 리듬을

바꾸고 주님께 나를 맞추는 그러 훈련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더 누리고 싶은 것은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어떤 곳인지를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여러분들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임재가 가득한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말씀은 마태복음 22장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2장 본문을 먼저 한번 본 후에 같이 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잘 묵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훈 사모님 뒤에 커튼 지금 쳐 주시면

이따 기도할 때 도움 될 것 같습니다. 네. 앞에 화면 띄워 주시면 같이 화면 보시고 네. 함께 마트복음 이시 보겠습니다. 제 22장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으니 오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죽이니 임금이 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의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데 종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본인체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거기서 예복을 입지않는 한

사람을 이친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냐니 그가 아무 말도 못 임금이들에게 말 그손을 어두운데던지라서 슬슬 일을 가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만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저이라.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이는 사람을 외모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르니까. 옳지 아니하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하시고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대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이 형상과 이글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부활이 없다 하는 사도개인들이 그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치영제가 있었는데 마지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 일곱 중인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거로 오해하였도다. 부호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데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예수께서 사도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까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라인들이 모였을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구의 자손이냐의 자손이니 그러면 다이 성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네 원수를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 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네. 아멘. 여기까지가 22장의 내용입니다. 네. 22장에 대해서 함께 좀 나눠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은 혼인 잔치 비유로 시작합니다.이 비유는 우리가 어제 봤던 앞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이 어 종을 보내고 아들을 보냈을 때 그 아들을 죽였던 비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이 비유는 먼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유대인들의 실패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마태복음이라는 복음서가 1차적인 독자가 누구냐면 유대인들이에요. 어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왜 복음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첫 번째 기록 목적입니다. 물론 유대인만을 위해 쓴 것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복음이기도 하지만 1차 독자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아프지만 유대인들이 왜 복음의 첫 번째 대상에서 마지막 대상이 되었는지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됩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예수님이 왔음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다시 한번이 복음서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실패를 깨닫고 이제 너희가 왜 마지막이든지 깨닫고 돌아와야 된다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그런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인만의 유대인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님을 또한 기억하셔야 됩니다. 복음에는 늘 초청이 있고 초청하여 주시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여러분 잔치에는 초청받지

못한 자가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초청에는 늘 거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반응하는지 모르면 우리는 초청에 거절 어 한 자 혹은 거절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이 비유를 살펴봐야 됩니다. 물론 이것은 실제 상황에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설명할 때 주님은 비유를 잘 설명하시는데 비유는 기본적으로 비유일 뿐입니다. 비유는 그 핵심을 통해서 어떤 것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비유에

대해서 도덕성의 잣대를 가져다될 필요가 없습니다. 비유에서는 예수님이 뭐의 비유되게 다니면 도적의 비유되게도 합니다. 그러니까 비유는 비유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여기에만 집중하면 되고 그 외에 뭐 왜 여기서 이렇게 하느냐 이런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 비유의 내용은 왕이 혼인 자체 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일반적인 세상에서 혼인 자체 거절해도 되지만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자체를 거절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즉 이거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네. 그런데 거절한 사람들의 거절 이유가 나타나는데 무엇이었냐면 다 자기 갈 곳으로 갔다는 거예요. 누구는 난 밭에 가야 돼서 못 가. 나는 장사러 가야 돼서 못 가. 그리고 자꾸 자기에게 오라고 하니까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그니까 누군가는 외면한 것이고 누군가는 추청을 보내는 오히려 종들을 박해함을 통해서 어 대항한 것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우리가 이 초청이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초차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종은 누구겠습니까? 종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듣고 복음을 드리고 초청했던 복음을 전했던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과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과 어쩌면 예수님 어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랬지만 그들이 종으로서 복음을 전했을 때 누군가가 그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과 초청이 바뀝니다.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야, 이제 걔네 필요 없다. 그럼 아무나 가서이 잔치에 추청할 수 있도록 불러라. 자, 근데 문제가

발생하죠. 그러다 보니까 이 잔치에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함께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의 결혼 예복 이야기로 이 이야기가 전환됩니다. 자, 무슨 얘기냐면 초청이 이제 모두에게 향해 있어요. 하나님의 구원의 어 초청이 모두에게 자유의 열린 어 가능성이 열린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원칙도 없이 주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완하는 비유입니다. 자 22장 12절부터 14절 제가 읽어보면 제가 세 번역으로 읽어 볼게요.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입보고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바깥 어두운으로도 내던지라. 그러면 거기서 그가 슬피우며 일을 갈 것이다. 부름받은 사람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즉 불러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최소한의 어떤 것도 갖추지 않는 사람들도 오게 됐을 때 그는 다시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여기서 말하는 예복이 중요한 건데 예복이 있는 사람은

예복이 있어야 되고 잔치에 초청받아야 되고 응해야 되고 예복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여기서 말하는 예복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예복을 준비해야 되는가? 결국 이 문제로이 비유는 향하게 됩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19장 6절부터 8절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자신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마지막 8절에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로 허락하셨으니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완성된 나라에 갈 때 우리가 아무렇게나 아니라 우리에게 세마포 옷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그것 진짜 이런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세마포옷이 뭐라고 말하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 착한 행실입니다. 자, 중요한 것은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라가 나와 있어요. 테마포 옷은 여러분이 스로 입고자서 입는 것이나 입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 여러분들의 옳은 행실은 내

힘으로 내가 준비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된 거예요. 은혜의 산물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되면 잘 이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내가 착한 행실을 내가 행하는 거지. 하나님이 나에게 착한 행실이 주신다고. 내 주시는 거예요. 성경은 늘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착한 행실은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여 빌립보서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자, 우리 준경의 빗별이가 나왔습니다. 물론 준경의 빗별이 의지로 나오고 어머님 도움을 받아서 나왔지만 아, 내가 여기 나가야겠다라는이 착한 마음은 누가 시작한 거? 누가 시작한 것이냐면 저희들 안에 있는 어 성령 우리 안에서 착한 일 시작하신 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가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할 때 예수의 날까지 주님의 그 나라에이를 때까지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실 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이야기가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앉 착한 일을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 기뻐 일을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자만하지 않는 거예요. 자만한다면 그건 어떤 사람입니까? 아 내가 한 거야. 나 좀 착해. 나 좀 이렇게 어 의로운 사람이야. 그러면 오히려 그것이 넘어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철저 어떻게 하면 아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런 마음을 주셨구나. 아 나 순종한구나. 순종하는 그 힘도 어쩌면 하나님 내 안에서 행하시는 결과구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구나. 내가 주의 백성이 되었구나.이 마음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행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결과입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살 수 없어요. 근데 내가 누군가는 막 돕고 있어요.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아 내가 진짜 하나님한테 변해 가고 있구나. 진짜 하나님이 내 안에서 뭔가 하고 계시구나. 어 내가 이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됐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지 않은 것에 대해서 변명할 여지도 없습니다.

주어진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모두가 주시겠다. 모두에게 주시겠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 안 주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회심하고 하나님이 주인 살겠다 다짐한 자에게 모두에게 성경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혜의 결과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옳은 행실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너무나 중요한 문제예요. 마태복음은 자기 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나타난 의, 우리에

있는 옳은 행시 바로 나더로 주여 주여한 자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행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라는 말이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 주석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왕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들어간다. 하나님 나라는 추청받습니다. 여러분도 추청받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반응합니다. 근데 그 반응할 때 우리 안에 필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성령을 따라서 날마다 살아가는 그 적어도 그 마음. 그로 인해서 내

삶이 변화되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대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이 이 구조는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말씀인데 어 두 가지 측면을 강력하게 요약해 주고 있어요. 어떤 자는 청함에도 응하지 않습니다.네 가지 밭에 비유로 말하면 길가예요. 청암에도 전혀 다 튕겨냅니다. 아무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청함에 응했으나 택한 받지 못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돌짝밭과 가시밭이 잃었습니다. 그들이 택한받지 못한 이유는 거절 때문입니다. 끝까지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주님을 초청에 대한 거절, 예보고 입는 것에 대한 거절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거절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식간에서 시선을 볼 때 그것은 곧 하나님 택한 받지 못한 것입니다. 애초에 선택받지 못한 자 못한 사람 기회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예 초청을 응하지 않고 누군가는 초청에 응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준비해야 될 것을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부분은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논쟁들입니다. 먼저 세근 논쟁이죠. 이것은 어떻게 예수님을 어 흠집내고 싶은 거예요. 만약에 여기서 예수님이 세금 내려갈 때 세금 내라라고 답하면 야이 사람은 황제나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하려는 거고 세금 내지 말라고 답하면 로마의 법 어기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의 대답에 말이 막히고 합니다.

답은 간단히 외 뭐라고 하냐면 가이사 로마 황제의 것은 로마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라.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주어진 세상 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지만 여전히 우리이 땅에 살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질서와 하나님의 법을 함께 존중해야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국가에 속해했다면 국가의 질서와 법, 여러분이 회사에 속했다면 회사의 질서와 법 그런 것을 따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특별한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것이 가까 어 적용돼야 되냐면 어떤 이단 종파에서는 어 나라의 법을 지키지 않죠. 어떤 분을 안 지키려면 뭐 뭐 일단 증집에 응하지 않습니다. 네. 군대에 가지 않아요. 근데 우리는 군대에 갑니다. 네. 군대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가셔야 됩니다. 여러분 CS 루이스라는 어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가 있는데 그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각기 다른 나라의 기독교 청년 군인들이 군대에 가서 전쟁했는데 총알이 빚받치는

전투 상황에서 각각 적으로 만났는데 둘 다 기독교인이면 각각 기독교인인데 적으로 만났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거기서 야 네가 먼저 쏴. 내가 너희 희생하겠다. 이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거기서 기독교인 청년이 해야 된 건 무엇인가? 국가를 위해서 최선 다해라. 우리는 하나님이 세워준 질서에 대해서 인정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CS는 걱정 말아. 국가에 체선을 다한 것에서 하나님을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땅의 지서의 존중 지서 존중하는데

갈등을 일으키는 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어 심각한 갈등. 그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 마음을 구해야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어쩌 낮지 정권에 대해서 그렇게 반응했던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그러나 그때는 정말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 사랑의 마음 가운데 지혜롭게 우리가 행하며 길을 찾아야 될 거예요. 그러나 그런 절대 순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두 가지 안에서 함께 그 두 가지를 지혜롭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 힘써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다음에 나타난 논쟁은

부활 논쟁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수원법 때문이에요. 유대인들은 대를 있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첫째 형이 어 형수와 아이를 갖지 않으면 둘째가 그 형수를 어 어떻게 보면 아내로 받아들여서 그 안에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첫째형의 족보에 올리는 이런 것이 수음법이었습니다. 근데 이 이걸 갖고 이제 논쟁을 만든 것입니다. 아, 그렇게 해서 일곱 명의 형제가 다 아내와 아내의 관계를 맺게 될 경우에 나중에 누구 아내가 되냐 이렇게 물은 것이죠. 근데 그 논쟁이 무의

의미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냐면 완성대하는 나라는 이 나라와이 지금의 세상과 연결성도 있지만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뭐 연결성이라고 하면은 예를 들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는 흐릿하게 성경의 어떤 관점부터 보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몸에 몇 가지 연결성과 불 연결성이 있었어요. 연결성이라 하면 그런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알아봤어. 형태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이 그 부활의 몸을 입고

뭐 하십니까? 식사를 하십니다. 물론 그것이 완성하는 나라에도 그럴지 않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부활하신 몸, 죽음을 떠난 몸에 대해서도 그런 측면이 나타나요. 근데 불연속도 있습니다. 어떤 거예요? 가족 홀련이 사라지시고 벽을 뚫고 들어오시고. 네. 이런 측면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몸이 지금의 몸. 예수님이 그 전까지 벽도 입고 다니지 않으셨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측면이 있으면 우린 기억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론 이건 잘 어렵습니다.이 문제는 어려워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과 같은 관계와 똑같은 관계는 아닐 거야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러나 여기까지만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서 그럼 어떤 관계가 맨날 알 수 없어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중요한 더 끈끈한 어떤 죄가 침범하려 하는 완전한 사임을 누리게 되기라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 그래서 저희가 이 수업을 들 때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럼 하나님 나라 가면 서로 못 알아보나요?이

관계가 가족 관계가 깨워지니까 못 알아보나요? 아, 근데 적어도 저를 가르치기니다.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연속성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관계를 맺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거 한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쩌 여기까지가 제가 드릴 수 있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가장 큰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가? 여러분 잘 아시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우리가 사귐의 교고 위드갓 위드 네이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저 위드 N이 왜 위드 n인지 아시나요?네 with드 네이버 네이버의 첫 글자 N을 딴 거예요. 예위드 N. 저 공간은 우리가 이웃과 교재하기 힘쓰는 공간이다. 여기는 어쩌면 위드 어 G일 수도 있어요. 네. 우리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여기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힘쓰는 공간이다. 우리 교회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한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이곳에 어 설계를 하게 됐었습니다. 우리가 잘하듯이 이중 사랑의 계명이에요.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이웃 사랑하는 것. 근데 전이 구절은 너무 잘 알고 중요한 핵심은 39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하나님 사랑이 1등 이순위가 이웃 사랑 이게 아니라 첫 번째가 하나님 사랑 둘째도 그와 같다. 우리 가끔 이렇게 선언할 때 1 2 3 4고 하나 하고 두 번째도 또 하나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의 크기가 같다는 거잖아요.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이웃 사랑의 크기는 같다. 뭐가도 우선하지 않는다.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하시죠. 네. 여기서 뭐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사람 어떻게 이 새벽에 나오겠습니까? 하나님 사랑하시니까 나왔죠.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여러분 하나님이 받아 주실 거예요. 그리고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신데 딱 한 가지만 안 갖고 계시기 때문에 원하는게 있는데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래요. 근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네가 날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기를 또한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내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하나 준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받으신 것처럼 기뻐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했어. 네. 잘하셨어요. 끝이 아니에요. 오늘 여러분 삶 가운데서 여러분이 이웃에게 있는 이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원래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을 의지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작은 이웃 사랑을 하나 실천할 때 그것을 보면서 너 진짜 날 사랑하는구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하루가 좀 달라야겠죠. 부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일까? 아, 내가 어떻게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따라서 옳은 행실을 내가 옷으로 입을 것인가? 그것은 큰 것이 아니라 내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원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그 일을 행하는 곳에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 내일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말씀을 먹습니다. 말씀을 길과 같이 튕겨내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내 잣대로 다 잘라서 행하는 자와 같이도 되지 아니하고 오늘 말씀에서 우리 가르치는 것만큼 또 내가 이해한 것만큼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내가 말씀을 먹고 내 삶을 바꾸어 갈 때마다 내 삶이 조금씩 조금씩 더욱더 하나님을 향해서 선명해지고 한건없이 나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이 말씀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소화할 수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겠다고 한 자들에게 함께 하시는 거룩하신 영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이해되게 하시고 또한 삶으로 살아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의지하고 나아가오니 오늘 우리 하루가 말씀과 동행하는

하루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네. 우리이 시간 불 좀 내려 주시고요. 우리 각자 기도하고 나아갈 때 어 먼저 말씀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하시고요. 내 기도 다 끝나고 바로 가시지 마시고 좀 조용하게 주님의 마음도 듣고 하루 살아갈 때 주님과 동행하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우리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