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예배입니다. 송구영신예배. 가끔씩 이 예배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송구영신은 원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는 뜻이죠. 원래는 관리가 바뀔 때, 즉 이취임식에 관해 썼던 표현인데, 이것처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지 않고 신령을 맞이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일 년 동안 운수가 좋다고 믿었던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예배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예배를 우리가 드리는 마음이 올바르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소원을 적어서 그것을 성취하려는 그런 무속신앙의 마음과 구분하고,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새해를 더욱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면 이 예배는 선하게 사용 되는 주님의 시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저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예배할 수 없어서 홀로 예배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을 더욱 축복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온라인으로 예배하며 고백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의 예배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20년에도 다사다난 했지만 우리는 예배했고, 지금도 예배하고 있으며 다가올 새해에도 우리는 예배할 것입니다. 어제 사무연회를 하면서 2021년의 목회 목표를 나눴습니다. 2) 신실한 교회의 터 세우기 3)
기본에 충실한 교회 오늘 설교의 제목이 ‘교회의 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행하셨고, 또 제자들을 세우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교회’를 세우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사복음서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단 2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씀은 이것이죠.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가 주일에 살펴봤던 베드로가 죽기 직전이라면, 이 말씀의 시기는 베드로가 가장 뜨거웠던 젊은 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합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이나 엘리야라는 것은 모두 메시아를 준비하는 인물로 성경에서 등장하죠. 세례요한이야 잘 아실 것이고, 엘리야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말라기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말 4:5)는 말씀 때문이죠. 메시아가 오려면 엘리야가 와야 하는 것이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당시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힌트가 엘리야인 것이죠. 엘리야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것이 메시아가 오시겠다는 증거라고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 하냐면, 바로 세례요한이 엘리야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으로 표현하죠. 실제로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역할을 합니다. 그의 삶의 형태나, 외형조차도 엘리야를 따라하죠. 성경은 그를 통해서 세례요한 이후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런데 적어도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뭔가 선지자 같은 인물이긴 한데, 아직 메시아에 대한 확신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그러한 여론조사를 파악하여 예수님께 보고한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시죠.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우리의 멋진 베드로님께서 대답을
하는 것이죠.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자칫 이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 대답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옮기면 ‘메시아’입니다. 즉,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것이죠. “당신은 우리 민족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메시아’입니다.” 이런 고백을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러한 베드로의 대답에 대해서 예수님이 3가지 응답을 하십니다. 1)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다. 즉,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일하심이라는 것이죠. 2) 내가 그리스도(메시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이것은 고백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 사실을 제자들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사역의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3) 내가 이 반석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겠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에 대한 언급을 하시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 고백하는 믿음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특성이 여기서 함께 설명되는데, 예수님은 이렇게 세워진 주님의 교회들을 음부의 권세, 즉 죽음의 세력이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죽음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할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나라 열쇠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열쇠’는 고대 사회에서 집안의 재정과 물품 출납을 관장하는 ‘집사’의 권한을 의미합니다. 누구를 들여보내고 들여보내지 않는 ‘문지기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죠. 집사의 역할이란 주인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 설명이 바로 ‘매고 푸는 권한’입니다. ‘매다’와 ‘풀다’라는 표현은
랍비들이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을 선포할 때 쓰는 전문 용어입니다. 실제로 후에 베드로를 대표로한 교회는 이방인 선교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럼 이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인가? 동일한 권한이 제자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다른 부분들을 볼 때, 이것은 동일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주께서 맡기신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임받아 그 사명을 수행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동역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기 위해서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을 만들고 이것을 우리와 공유하셨어요.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분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무감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그분이 그것을 해나갈 누군가를 찾는다면, 내가 그 누군가가 되어 주님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사탄의 세력이 득세하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나와 함께 일 할 사람을 찾는다.” 이것이 주님이 제자를 부르시고, 교회를 부르신 이유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 속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너무나 다행인건 능력대로 부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세상의 기준과 다른 것이죠. 12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세우셨지만 이것을 무슨 취업과정처럼 면접보고 뽑으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신 것이죠. 비록 이들은 주님의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통해 세워질 수많은 교회를 보고 부르신 것입니다. 교회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작이 될 이 12명의 제자들도 실족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이도 생겨납니다. 부르심을 받았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결과도 생긴 것이죠. 나머지 제자들도 비틀대고 넘어집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다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이죠.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그 모습을 사랑하셨어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다시 찾으신 것도 결국 그들입니다. 결국 이 세상은 주님이 교회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처럼 주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들이고, 여러분에게 주님은 이 세상과 이 시대를 맡기신 것이죠. 마태복음 끝부분은
이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명령과 위로로 끝이 납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으로 가서 모든 민족(차별 없이 모든 영혼들)을 주님의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고), 주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주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는 것이죠. 이것이 명령이라면 마지막은 위로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이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이 명령을 수행한 결과 뭐가 탄생합니까? 교회죠. 에베소서는 그런 교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21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결되고 연합하여 성전이 되어가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22절을 보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우리 홀로 있어도
교회죠. 두 세 사람이 있어도 교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함께 서로를 붙잡아 일으켜주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제자 공동체도 예수님까지 13명이었죠. 주님 홀로 있어도 무적이고, 더 작은 공동체여도 하나님이 일하시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겠지만, 주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로 교회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 성전을 만들기 때문에 재료와 치수 등이 굉장히 중요하게 소개됩니다. 신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으로서 교회이기 때문에 이것을 건물로 묘사하지만 그 건축양식이 매우 독특합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특징이겠죠. 첫째,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퉁잇돌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Coner-stone’이라고 부릅니다. 건축에 가장 중요한 기초 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두 개의 벽이 직각으로 마주치는 곳에 놓여 그 벽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큰 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그 시작은 예수님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예수님을 신체에 비유하여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는데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님으로부터 설명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이죠. 그 어떤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말입니다. 둘째,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사도들 즉 선지자들’로서, 선지자 역할을 했던 사도들이라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설립과 유지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을 온통 제자들 만나서 회복시키는 일에 다 썼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시지만, 주님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님이 없어도 교회가 아니지만, 헌신된 주님의 사람이 없어도 교회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그저 건물이라면 잘 만들어놓으면 그만이겠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안에서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주님을 예배하고,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2021년을 바라보며 사귐의교회 안에 ‘터’가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그런 ‘교회의 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이 목회자만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 혼자 고군분투 하는 교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선지자와 같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처럼, 오늘날 교회도 누군가의 터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아동부에도 터가 되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중고등부에도 터가 되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청년부에도 터가 되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여전도회와 남전도회에, 우리 사귐의교회 안에 터가 되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그럼 터는 뭘 하나요? 이 터 위에서 누군가의 연약한 신앙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 위에 건물이 세워져가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바로 이 터 위에 세워져갑니다. 제자 되어 제자 삼는 것. 내가 받은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교회인 것이죠.
철저한 내리사랑의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터가 되는 것은 누군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그렇게 세워지지 않습니다. 복음을 불모지였던 우리 대한민국에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까? 우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을 찾아와 목숨을 다해 복음의 터를 닦아준 선교사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억지로 누가 돈주고 하라고 해도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불신자를 품고,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라가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음 세대가 자라가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터가 없으면 자라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모래와 같다면 그 위에 쌓은 건물은 무너질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터를 닦아 두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터를 닦는 것까지가 모퉁이돌인 주님의 역할이었습니다. 이제 그 터를 굳건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것이 곧 주 안에 있는 것이며, 그렇게 교회가 세워질 때 그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비추고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 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목사로서 여러분의 헌신과 수고를 제가 뭘로 다 칭찬하고 격려하겠습니까? 그저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제가 먼저 여러분이 서 있을 수 있는 터가 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이 말뿐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 우리는 오늘도 그 주님을
바라보며 예배로 나아왔습니다. 주님이 나를 세상 가운데 택하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2020년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구원하기 위해서 베드로를 부르셨지만, 베드로만 구원하기 위해서 부른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누군가를 함께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내 신앙이 나만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것,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주님의 마음과 관심에 반응해야 합니다. 저는 2021년. 여러분을 통해서 누군가가 주님을 알게
되고, 여러분을 통해서 누군가의 신앙이 회복되며, 여러분이라는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대합니다. 부모의 희생과 수고가 없이 자녀가 자라날 수 없듯이, 교회 안에서 먼저 복음을 깨닫고 은혜에 감격한 자들이라면, 마땅히 섬기고 가르치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이 은혜의 강물이 계속 흘러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멈춰있는 은혜의 강물이라면 이제 흘려보내어 흘러가게 하십시오. 우리의 다가올 한 해에 주님이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