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창리 5주년 예배에 오신 모든 분들을네 사랑하고네 축복하며 환영합니다.네 어 여러분 우리가 어 이제 산입 5주년이 되었습니다. 네나 감사하고 너무나 벅차기도 하고 어 또 여러분과 함께 이 여정을 갖고 있음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습니다. 우리가 우리끼리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여러분 원래 할렐루야 하면 이거 명령어거든요. 할렐루야 하면은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그러면 아멘 하면 아멘 이 끝나기 우리가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되는데 우리 시간 우리의 5년 5주년과의 모든
동행을 함께 해주신 주님을 우리 한번 좀 어 높여 드리고 우리 좀 환호하고 좀 그렇게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어 우리와 함께 하신 그 주님 찬양했습니다 할 때 제가 한 5초에 10초간 여러분이 함께 우리가 환호성과 우리 하나님을 향한 박수와 우리 좀 그렇게 함께 하나님을 높여 드리며 우리가 예배를 올려 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아멘. 네. 우리의 모든 여정 이끄신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네. 우리 함께하신 모든 여정을
이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네. 앞으로의 모든 날들도 주 함께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네. 네. 잘하셨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어, 우리 회 한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함께함이 기쁨입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기쁨 아멘. 네. 우리가 함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인 줄 믿고 네. 오늘도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신 특권으로 여기며 수중하게 잘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저희가 외부에서 설교자를 모셨습니다.
네. 저의 은사님이기도 하고 저의 신학적 멘토이기도 하고 또 인생의 선배이자 아 저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셨던 그런 교수님인데네 성결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지금 신학 대학원장으로 어 또 사역하고 계신 우리 박정수 교수님이 나와서 같이 말씀 나눠 주실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넘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기대하는 마음으로 박수로 맞이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젊은 교회 와서 어 설교단 위에 이렇게 함께 설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또 그리고 감격스럽습니다. 초대해 주신 성도 여러분들과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생일 잔치인데 아 여러분 보니까 지금 사람이 이렇게 처음 보면 이렇게 좀 경직되고 눈도 너무 동그랗게 때문에 제가 무서워요. 나는 여러분을 잘 알아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만 아 지난 한학기 동안 목회 특강을 통해서 우리 강정규 목사님을 초대해서 아 그 저희 제자들 우리 여기 간사님으로 오신 두 분도 계신데 그 이제 이 사기 교회에 대해서 너무 좋은
소식과 또 그리고 내용들을 잘 알고 있어서 여러분의 교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가 어떤지 잘 모른 거 같아서 내가 좀 설명을 좀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교회의 존재가 어떤지 잘 모르고 있는 거 같아서 제가 좀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코로나 이후 그 경제가 말할 수 없이 힘든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비난까지 받느라고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아, 저도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목사요 신학 선생으로서
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 위기를 절감하면서 어, 이렇게 표현을 정확히 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교회의 선생이요, 지도자로서 어, 어쩌다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이 지경이 되었을까 할 정도의 고통을 어,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여기 중고등학교 학생들 어 제가 다닐 때 60명 클래스가 60명 중에서 진짜 15명 정도가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었어요. 근데 여러분 지금 학급에는 한 명 여러분 혼자일 거예요. 그죠? 이런 시대가 오리라고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이런 고통스러운 시기를 살아가면서 그 졸업하는 우리 그 제자들에게 3년 동안 별로 가르킨 것도 없고 어 이제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까 그래서 너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 너무 이제 책망을 받을 거 같아서 목회 특강을 이렇게 개설을 했습니다. 그근데 쭉 서치를 해 보니까 역시 그이 사귐의교회가 굉장히 중요한 지금 모델이 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 목사님을 초청해서 여러분의 그 그동안의 그 어떤 그 성장했던 과정들을 이렇게 어 개척 이후에 교회의 이야기를 잘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학생들 졸업하는 리포트도 이렇게 쭉 보면서 이 사귐의교회와 강정규 목사님의 그 사역이 또 사귐의교회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임팩트를 주고 있다. 이거를 여러분한테 좀 보고를 하려 그래요. 제가 아부하는게 절대 아니긴 진실을 말하는 겁니다. 진실을. 아, 그 진짜 위기에 처한 고통스러운 저에게는 뭔가 이렇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을 보게 됐어요.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교회 형태와 본질은 너무 중요합니다. 어느 신학자의
말대로 교회는 그 교회의 존재 자체가 복음이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복음 자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지금 목회자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성장 중심에서 성경 중심으로 그리고 직분 중심에서 형제 자매 공동체로 바뀌어 가고 있죠. 여러분 지금 장로님도 안 계시고 여기 뭐 권사님 뭐 그런 거 없죠? 이게 여러분 볼 때는 별거 아니네.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한국 교회는 이게 혁 혁심 직분 없는 교회라는
것은 거의 전통적인 교회에서 매우 혁명적인 얘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이 사귐의교회라는 이름답게 형제, 자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자체,이 존재 자체가 한국 교회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그이 목회자들이 굉장히 요즘 이제 교회는 어찌 이제 성장을 멈추고 쭉 디클라이닝 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음 목회자가 개척에 이르기까지 여러분 교회처럼 3년 혹은 5년 동안에 이 참 어려운 그 시련들을 겪어냈지 않습니까? 이런 목회자들을 보통 일하는
목회자들이라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마 이제 위임 목사님으로 목사님을 이제 목사님 이제 그만하세요. 거기 가서 스타디 카페 그만하시고 이제 저희만 좀 양육해 주세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된 거예요. 이건 놀라운 일이에요. 만약 이런 교회들이 앞으로 계속 세워지는 것이 제 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지금 한국 교회의 중요한 대안이에요. 다시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복음이 될 수 있고 되고 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이러한 그 귀한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들이 오늘 5주년 생일 파티에 제가 메신저로서 온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제가 요즘 그 뭐 여기저기 다니면서 우리 저 성결대학교 그 교직원 예배 한 200명 모이는 곳에서도 여러분 얘기를 제가 했고요. 또 제가 다니는 교회도 한 천명 정도 다니는 다 이제 교회인데 거기서도 15분 동안 여러분이 교회를 사진까지 해가지고 프리젠테이션 했습니다. 내가 박수 한번 쳐야 돼요. 이럴 때 아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복음인 교회 이런 교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이제 그 영적인 어린이에서 이제 청년으로 넘어가는 세 청년이 되면 아이를 낳아야 돼요. 그죠? 그런 것처럼 이런 귀한 생명의 공동체가 그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그 오늘 그 설교 부탁을 받고 창립 그 5주년에서 어떤 말씀을 나눌까 하다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역시 교회론이랄까 교회가 무엇인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 그래도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크고 넓은 성도 높고 깊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이
이제 영적인 어린이를 넘어서 성인이 되는 청작년이 되는 그 시대에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할 그 어 그 교회를 말씀드리고자 오늘 에베소서 전체를 좀 보게 됐습니다. 시간을 어쨌든지 좀 줄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자들은 에베소서를 바울 서신을 요약한이 바울 사상의 모자이크다. 말하자면 바울 서신이 로마서, 갈라디아서 뭐 굉장히 많잖아요. 그중에서 바울 사상을 정말 이렇게 모자이크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에베소서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는 이제 긴
중보 기부도가 저렇게 파란색 1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쭉 돼 있고 쭉 중보 기도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이제 새 사람의 삶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주로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이제 실제적인에 권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중딩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딩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까? 청년들은 또 작년들은 어떠한 그리스도인을 살아야 될까 이런 것들을 이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번 저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 사람에서는
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자, 여러분 교회에서 하고 있는 풍삶초 그다음에 두 번째 풍삼기든가요?이 이 풍삶초라는 것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 비즈니스 때문에 오는 사람들 저 대형 교회도 보면 저 모 교회 저 강남에 있는 교회들 거기 안 나가면 비즈니스가 안 되니까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 좋습니다. 어쨌든 교회 나오는 거 좋은 일 안 해요.여 혹시 뭐 여기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내가 좀 결혼을 위해서 그 귀한 형제
자매를 좀 구하기 위해서 교회 왔다. 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그죠? 어쨌든 그건 불순하진 않다. 중요한 거는 어떤 경우로든 예수를 만나면 되는 건데 예수를 만나지 않고 교회 생활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모두 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아멘.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혹시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거기서부터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줄 믿습니다. 아멘. 세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고 또 어떠한
인격체인지 이게 지금 복음의 비밀의 한 부분이거든요. 영적인 실체 생명을 어떻게 설명할까 바울은 참 고민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영적인 새 풍삶초를 한 그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통해서 정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성숙되어 나갈 것인가? 이제 그것을 이제 두 번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 제가 이제 첫 번째 이제네 가지 메시지를 좀 전돼 있어요. 첫 번째가 뭐냐? 교회의 인격석입니다. 에베소서는 가장 중요한 그 그 뭐랄까
키워드 아니 표현이 자주 반복되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게 뭐냐면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 보통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뭐 이런 얘기를 많이 성경을 읽다 보면 나오잖아요. 근데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이 표현은 바울 사상의 핵심인데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 뭐라고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신 일 이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에 자주 나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이게 중요한데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연합된 상태. 그리스도의 가장 친밀한 교재의 상태를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사귐의교회이 교회 이름 굉장히 잘 지은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예. 본질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과 한몸 한 한 몸된 성도들의 거룩한 코인원이야.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죠.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풍삶초를 통해서 그 새생명이 탄생됐을 때 그게 새 피조물인데 여기서 중요할 것은 교회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피조물이라고 하지 않고 성도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아멘. 왜냐? 여러분 교회 본질은 제도나 조직이 아닙니다. 아멘. 인격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교회 본질은 인격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교회를 보통 여러분이 볼 때
그리스도의에 그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교회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데 여러분 모임 이전에 모임 이전에 인격적 존재 자체가 교회입니다. 아멘. 예.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한 여러분 성도들 자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아멘. 네. 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이 몸이라는 말은 이게 이제가니제이션이 아니라 어르간이라는 뜻이에요.제이션 하면 조직을 말하잖아요. 그죠? 근데
어르간하면 유기체이거든요. 아멘. 이것도 바로 교회의 인격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유기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과 하나된 존재 그 자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교회입니다. 자, 여러분 같이 한번 해 보실까요? 성도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게 참 이해하기 어렵지만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데 있어서 꼭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풍성한
삶을 시작할 탄생이 일어나는 순간 여러분과 저는 어떤 상태로 되냐면 집단 인격체 말하자면 집단 인격체가 되는 그런 개념이에요. 이것을 이제 잘 보여 주는 것이 다니엘서를 보면 이런게 있어요. 뜨인 돌이라고 있어요. 주님이 마지막 인자로서 이렇게 뜨인 돌로 이렇게 쫙 날아오는데 거기에 어떻게 돼요? 많은 돌들이 막 이렇게 뭉쳐져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그 어떤 형체를 이루게 되는 거잖아요. 다니엘서 바로 그 모습이 교회의 모습이에요. 그것은 그 돌들을 뭐라고 하냐면
뜨인 돌 말고 뭉쳐지는 막 모이는 그 돌들을 다니엘서에서는 성도들이라고 말합니다. 아멘. 아멘. 그러니까 성도들인 우리와 그리스도와 한 몸된 상태가 집단적 인격체으로 채로서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오시고이 이제 여러분 안에 시작된 이 새로운 생명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상태도 상태 그대로 이제 나타나는 거예요. 이게 부활의 그 신비이고 복음의 신비인데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마침내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으로 부활체로서
그 이게 흐물흐물 해 가지고 뭐 그냥 막 그 영처럼 이렇게 흔들흔들거리고 뭐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그게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한 몸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 몸 그대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과 완전히 동일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한 상태로 마지막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죠. 아멘. 그래서 아직은 완성되지 못하고 아직은 도달하지 못했지만이 지상에서이 한 몸된 교회 공동체 본질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이 교재들을 완성하게 될 때 우리는 마지막 그 한 몸된 교회의 인격체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죠. 아멘. 여러분, 보통 교회에서 상처를 받으면 참 고통스러워요. 여러분 가운데서도 어느 교회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목사님한테 상처받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프로틴 크리스천이라고 그러잖아요. 요즘 그죠? 예. 교회 저게 아니면 이제 교회도 안 나가고 이렇게 안 나가 성도들도 가나안 성도 있고 이렇게 되다가 여기 블로그가 참 잘 돼 있는 거 같은데 어 이제 보고 뭐 이런
교회도 다 있나 그러고 이제 와 보니까 이렇게 귀한 그 생명행 넘치는 젊은 교회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상처받으면 술 한잔 먹고 툭 털어 버리면 돼요. 왜냐면 뭐 길어봤자 5년 뭐 한 10년 정도 있으면 할 건데 거기서 뭐 상처받고 뭐 아 상처받으면 나오면 되는 거죠. 근데 교회는 다른 이유가 이게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서 상처받으면 회복되는 방법은 결국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그 생명체의 젖붙을 받아야 우리의 영혼이
사는 것이고 우리의 삶이 거기서부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누리게 되는 이게 바로 교회의 인격성이라는 말인 것이지요. 아멘. 여러분, 오늘 제가 교회론을 이야기를 하면서 성도가 우리가 교회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 그 말씀의 중심에 무엇이 있냐면은이 바울은 교회와 성도의 이런 신비로운 연합체 한 몸된이 연합체가 바로 어 그이 에베소 전체를 를 통해서 한 몸된 교회 그리고 성도들의 그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오늘 에베소서 5장 31절 32절
미리 좀 읽어 보시면요. 자,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시작.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두루이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그와 교회에 대해서 예.이 말씀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이 부부의 신비로운 하나됨이 단지 교회에 그 부부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바울의 요점인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교회 인격성을 강조해야 됩니다. 우리 사귐의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이
시대 교회가 흘러가고 있는 마인드 즉 조직과 경영 마인드에서 탈피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창조되고 새 인격을 사모할 때 비로소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사모하고 계신가요? 아멘. 그렇습니다. 아까 사모님이 저를 오랜만에 보고 멋진 말을 해 주셨어요. 교수님 10여년 만에 보는데 참 멋진 사람이 된 거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사모님 보니까 참 힘든 시간을 통해서 이렇게 보내셨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데
또 저한테는 어 옛날에는 굉장히 왕고한 그 교수 같았는데 멋진 모습으로 보인는데 그렇게 그러신 거죠. 그래서 굉장히 이제 기분이 좋았는데 여러분 우리가 10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변하고 그냥 맨날 딱딱하게 굳어 있고 그러면 그 성장이 아니거든요.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은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상처받기 쉬워서 부서질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어서 중딩이가 고딩이가 될 때 좀 더 성성숙해지고 고딩을 통해서 청년이 됐을 때 이제는 세상을 볼 줄
알고 늘 엄마 아빠의 품에 있던 그 아이가 친구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이것이 인격적인 성숙이듯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가 인격성을 가지고 있는 교회 성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모든 영역에서이 새 사람으로 창조되고 새 인격을 사모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그리스도와 깊이 교재하는 인격적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교회는 인격성이다는
거 첫 번째 메시지 하나된 성도입니다.이 이야기들은 여러분이 많이 들어봐서 더 이상 내가 얘기를 안 할까 하다가 에베소 전체에서이 부분을 뺄 수 없는 부분이에요. 왜냐면 제가 생각할 때는 교회는 지금 이제 이제 세 번째 나올 이제 다음번에 얘기할 부부 관계하고 본질적으로 이제 유사하게 비유를 하고 있는데 부부 관계나 교회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하나됨이에요. 하나됨 성도 하나된 부부 이것이 복음이 추구하는 신비의 깊은 지점입니다.복 복음은 결국 이 부부 관계를
통한 하나됨 그것이 그리스도와 성도와의이 하나됨 그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 복음의 신비인데 에베소서는 이것을 너무도 깊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말씀을 뭐라고 생각을 하냐면 오늘 이제 그다음 본문을 우리가 한번 읽어 보도록 할까요? 오늘 본문인데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것 때문에 저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원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분명함을 따라서 그분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이 속사람에 있어번하게
되도록 하시고 사랑에서 그를 고를 잡으면서 믿음을 통하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하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가를 이해할 능력이 있어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말 개혁 계정에 보면 그게 틀린 것은 아닌데 순서가 조금 약간 애매하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이렇게 돼 있는데 사실은 이 원문을 번역해 보면은 정확하게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너 그 18절 여러분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넓이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가를 이해할 능력이 있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 여기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 여기서 그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면 그것이 그냥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안다. 그렇게 그 원문이 되어 있지 않고 원래
성경에 보면은 이것은 지시어로 그 넓이와 깊이, 높이와 깊이 이렇게 얘기했는데이 그게 그가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복음의 비밀, 복음의 신비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성장에서 마지막 때에이 연합된 집단 인격체로서의 어떤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젖붙침을 받은 그 상태가 되느냐? 이이 신비를 사실 여러분과 저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데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신비, 그 넓이, 그 높이, 그 깊이를 이해할 능력을 갖게 되는 겁니다. 풍삼
조합 풍삼 길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성장에서 어디에 가는 건지를 알게 돼야 그다음에 어떻게 되냐? 그다음에 인간의 지식을 훨씬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거기 있다라. 그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바울은 지금 그것을 기원하면서 무엇을 이야기를 하느냐면은 그리스도의 높고 깊은 사랑을 행하는 부부가 되라라고 뜬금없이 부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부부 얘기는 조금 있다 하겠지만 바울이 그 중간에 하는 얘기가 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세 사람 그 한 세 사람에 대한 비밀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거룩한 공동체 그것이 바로 한 세 사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 2장 14절부터 15절을 한번 좀 읽어 보면 우리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원래 있었던 그 상태에서 어떻게 한 몸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자신의 보내 유대인과 이방인이 둘을 바다시고 불리의 즐거를 버리셨습니다. 자신 안에서 평화를 이루면서이 둘을 한 세 사람으로
창조하기 위해 도그마 속에 있는 계명들의 율법을 폐지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정말 엄청난 분리.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상태로 분리가 돼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그 복음 안에서 이 분리와 차별이 철패가 되었다라는 겁니다. 새로운 것이 탄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폐기된 상태입니다. 더 이상 둘로 분리되지 않는 한 세 사람을로 우리가 이제 창조된 결과였습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이 세 사람은
분열되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아멘. 십자가를 통해서. 1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 안에서 원수된 것은 소멸시켜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 이야기들을 제가 할 수 있지만 여러분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서 삶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는 부활의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형상, 그 인격의 씨앗이 지금 내 안에 생명의 DNA로
설계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들, 그런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그 창조의 DNA가 있어서 이 공동체가 그리스도와 연대된 하나의 몸으로 결국 완성되도록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 아멘. 그 디자인되고 그 DNA가 결국 하나님의 언약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은 두 번째 메시지는 우리는 부름받을 때 결국 하나됨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겁니다. 아멘. 내가 이 얘기를 왜 이렇게 강조를 하는 거 같아요? 교회나 가정이나 반드시 하나됨이 약화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큰 갈등이 세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런 계기가 이제 오게 되고 그런 사건이 일어납니다. 지금 굉장히 은혜롭죠. 그런데 어느 때 어떤 사건을 통해서 한 걸음 도약하기 위해선 항상 그 일치와 하나됨에 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할 때가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이 메시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아멘. 그때 여러분은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를 찬양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될 겁니다. 그것은 정말 해산의 고통과 같이 필연적으로 우리가 그 고통을 이기고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 성숙한 그 본래의 DNA대로 하나의 공동체 한 세 사람 한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님의 창조의 그 목적에 다르기 위한 과정으로 여러분이 알면 되시겠습니다. 아멘. 여러분 말씀을 정리해 보시죠.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조직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려면 교회의 인격성을 추구해야
됩니다. 그 인격성은 다름 아닌 뭐라는 거예요? 성도들의 하나됨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에 깊이 뿌리내려 그리스도의 충만함 즉 하나됨에 이르는 크고 넓은 성도들이 되도록 우리 사귐의교회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그래서 사귐의 교회가 이 시대 하나님이 찾으시는 교회 주님이 주인이신 그 교회로 존재해서 여러분의 존재가 세상에 복음이 그 존재 자체가 복음이 빛이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제 마지막으로 5장과 6장에서
바울은 사랑에서 사랑 안에서 해야 될 실제적인 권면들을 하고 있는 두 번째에 단락으로 넘어갑니다. 자,이 권면들 중에서 부부에 대한 권면이 핵심입니다. 아, 오늘 우리 그 청소년들도 있고 또 결혼을 안 하신 분들도 꽤 있는 거 같은데이 다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될뿐만 아니라 자기의 남편과 아내를 이렇게 위해서 기도할 때 큰 유익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중학교 학생들, 초등학교 학생들도 잘 들어 주시면 우리 엄마 아빠가 저대로 잘 사나? 그래 그렇게 한번 테스트도
해 보고 안 되면 이게 콕콕 찔르세요. 지난번에 목사님이 와서 그러던데 이제 그렇게 얘기를 하셔야 됩니다. 중요한 사명이 있어요. 잘 들어 보세요. 아, 왜 부부에 대한 권면이이 두 번째 단락에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 남편과 아내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크고 넓은 한 세 사람, 인격성을 갖는 하나됨. 그 하나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 특히 부부와 교회의 관계를 이렇게 비교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저는 이 시대의 가정의
회복, 가정의 거룩함 이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성도들이 살아내야 할 가장 중차대한 사명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이제 비온으로 살아가실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 그리고 많은 아픔을 통해서 가정에 어려움이 있어서 이혼을 경험한 가정들도 있습니다. 양해를 해 주시고 어쨌든 성경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이것은 교회에 대한 것이고 동시에 부부 가정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일은
또 한 가지는 자녀들에게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이렇게 줍니다. 여러분, 코로나 이후 한국 교회는 지금 거의 그 몇 년입니까? 그 3년 동안 매주 가정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가정 교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아, 근데 우리는 이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부부가 교회 이론으로 함께 성경을 읽고 함께 예배를 드렸지 언제 부부가 교회가 되어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자녀들의 학업을 학교와 학원에 맡겼지 부모가
이렇게 직접 챙겨야 되는 상황을 당해 보긴 처음이듯이 자녀의 신앙을 교회에 맡겼지 언제 체계적으로 신앙 교육을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근데 지금 여러분이 이 귀한 사귐의 공동체에 사는 것 자체가 아니 우리의 자녀들이이 옆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놀라운 교육이에요. 제 말을 믿으세요. 아멘. 이거는 제 경험에서 나오는데 좋은 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있는 가장 큰 유익이 뭔 줄 압니까? 자녀들이 그 영적으로 이미 그 안에 있는 그 영적인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가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애 많이 나오시고요. 그다음에 애를 낳았으면 일단 데려와서 여기 앉혀 놓으세요. 제가 볼 때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공동체가 얼마나 이렇게 좀 독 독특하다까? 어쨌든 귀한지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생각 같아서 나도 좀 여기 나올까? 우리 딸 아들 딸들도 좀 여기 좀 보냈으면 하고 싶은 생각이 내가 지금 있을 정도입니다. 아 그만큼 우리가 지금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단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한 거예요.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그 보이지 않는 그 공기가 우리 자녀들에게 그러한 영향을 깊이 주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어 제가 어 그 바울이 오늘 이제 그 세 번째 우리에게 주시는 한 몸된 부부에 대한 말씀 우리가 5장 31절부터 32절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바울이 남기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한몸된 비밀을 아까 여태까지 얘기했죠. 교회에 대해서 얘기했죠. 근데 그게 부부의 그 하나됨 그것이 바로 교회의 하나됨의 하나의 원형이라는 거예요. 굉장히 부부의 하나됨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이죠. 부부가 한 몸된다는 말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일치를 말합니다. 여러분, 부부 관계는 영적인 일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쉽게 부수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부분은 정신적, 영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하나됨을 깊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이 말이 이제 창세기에 보면은 이렇게 나오죠. 돕는 배필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여기서 이 배필이라는 것이 짝꿍이라는 말인데 히브리어로 에르케네그도인데 그 뜻이 뭐냐면은 돕는 반대자라는 거예요. 돕는 반대자. 신기하죠? 파트너가 돕는 사람 이게 아니라 돕는 반대자. 케네그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창세기 2장에만 딱 두 번 나오는데 랍비는이 단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 남자 그러니까 그 남편이죠. 남자가 존경을
받을 만하면 그의 아내는 돕는 자 에제르가 될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반대자 케네그도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인생의 동반자의 배필은 반드시 예와 아니요를 함께 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라는 겁니다. 어느 신학자가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모든 부분은 함께 생의 잔을 마시며 살아가야 하지만 항상 같은 잔으로 마실 필요는 없다. 부부은 서로의 잘못을 바로 잡아가며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할뿐만 아니라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홀로가 아니라 하나 되는 것이다. 여러분, 실제로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결국 남편과 아내가 의견 의견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거든요. 그죠? 특히 이제 그에 남편이 가장의 역할을 이렇게 할 때 아내는 돕는 반대자 역할을 잘해야 정말 좋은 가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아내가 무엇을 결정할 때도 남편이 돕는 반대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대화하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 함께 겪을 문제인이
함께 대화하며 길을 찾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내가 반대를 해도 돕는 반대자지 방해하는 반대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느껴야 됩니다. 예. 그래서 이제 50이 되면 남편들이 하는 정설이 있죠. 뭡니까? 마누라 말을 들어라. 반대를 해도 처음엔 기분이 좀 상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정말 나를 존중해 주고 우리 가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돕는 반대자구라라는 것을 인정하면 됩니다. 아니면 싸우고 감정상하고 결국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부부가 평생 하나됨을 서로 이루어 나가게 되는 거거든요. 이게 성경의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이것은 제 얘기가 뭡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이 말을 하노라. 성도들 가운데서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서로가 부딪칠 때도 있고 왜 생각이 다르고 우리 안에 새생명은 시작됐지만 아직 그게 완숙된 경제에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늘 서로 부딪칠 수도 있고 다툴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진짜 다툴 수도 있거든요. 그럼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돕는 반대자다. 아멘. 예. 돕는 반대자다라는 그런 생각으로 우리 공동체의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것이 주님의 DNA를 따라가는 거예요.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순종하고 복종하는 그러한 어 그 그 결단 또 그리고 기도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제일 건강한 부부란 서로가 성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등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서로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존 그 공존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부부 여러분 그렇게 살아갑시다. 예. 아멘. 저도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고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예 축원합니다. 아멘. 이제 마지막 이제 메시지입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 순종. 여러분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일 좀 걸림돌이 생겨요. 성경 본문을 이렇게 보면 성경 본문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죽게 하라. 오늘 두 번째 본문이 그렇게 나와 있는데 이 얘기를 하면은 아내들이
크 마음부터 아니 요즘 때가 어느 텐데 복종이야. 짜증나 막 이렇게 얘기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이 성경 본문을 사실 우리가 정확히 해석하는게 그렇게 필요한데 지금 아내와 남편 얘기가 쭉 나오고 그다음에 자녀와 부모 얘기 나오고 그다음에 종과 상은 사장님과 종업원 관계가 이렇게 나오는데이 모든 세 가지 범주를 시작하기 위한 전제가 뭔줄 아세요? 자, 성경 9절 2절 보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를 경영하고 피차 복종. 이게 21절에 딱 나와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말 성경은 재밌게도 동그라미 문단 나누기를 요거 끝나는게 이게 맨 마지막 절로 돼 있어요. 근데 원문에 보면 대문자로 이렇게 딱 나와 있어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가 첫 구절이에요. 문단 나누기가 여기가 시작이야.이 이 전제부터 시작해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그리고 종과 상전의 관계가 나와 있는 거예요. 여러분, 로마 시대에 남편이 아내에게 피차 복종하라.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종이 상전에게 복종하고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고 그리고 자녀는
거의 뭐 14살 이하면은 거의 가부장이 생사 역탁권을 갖는 것이 로마의 사회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아까 얘기했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이 사상으로 바울은 이 세계의 사회 기본적인 관계를 상호성으로 바꿔 놓는 상호성으로 일방성이 아니라 상호성으로 뭐 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더 보편적으로면 은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서로 복종하라는 거예요. 아멘. 그러니까 이제 여성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성경 가지고 아내 남편이 이제 나한테 발론을 제시하는 거. 그때 박정수 교수님이
분명히 얘기했다. 여러분, 서로가 그렇게 대립된 것이 주님의 뜻은 아닌데 서로 복종하는 것, 서로 순종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서로 순종의 모양과 양태가 남자에게 따로 있고 여자에게 다른 부분의 양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사랑과 복종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언어를 만납니다. 사랑은 우선 인격적인 인격체 상호관의 관계를 전제합니다. 여러분 인격적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간이 갖는 인격의 최고봉 아니겠습니까?
사랑만이 참 자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자유란 본질상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바울은 5장 1, 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재물과 희생 재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셨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바로 타인을 위해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섬김과 복종의 행위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의 복종이란 사랑의 시면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이 성경 말씀을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순종.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순종하라. 바로 사랑의 이런 상호성만이 우리는 남편과 아내 각각을 향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어떻게 하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폭종하듯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그리스도가 교회 하듯이 어떻게?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뭘 했어요?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예. 즉 남편은 목숨을 바치는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고 아내도 그러한 사랑의 행동을 해야 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의 그 높은 죽음의 사랑을 아내는 깊은 사랑의 복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하여서 아내가 열등하다라는 사고 방식은 성경에 없습니다. 또한 남편이 권위를 행사한다 하여 그가 더
우월하다거나 더 중요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권위는 있어야 됩니다. 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권위 주인은 안 되겠습니다. 그런 거 가지고 다 요즘 쫓겨나게 좋습니다. 참다운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어떤 권위입니까? 섬김의 권위. 그건 너무 답 아니겠습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열이 없으며 서로 맡은 책임이 다를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결혼 생활이 자주 파국을 겪고 있는 문제 핵심에 권위와 순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힘겨룩입니다. 부부는 권위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비교적 간단한 문제는 빨리 결정 내림으로써 보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할 수 있게 합니다. 차이점이 있을 때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제 권위와 순종의 관계입니다.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감에 따라 그들은 거의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리더십이 이렇게 자신들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 한번이 교회에 또 이거를 적용해야 돼요. 이걸
뭐 막 목사님이 탁 그냥 넥타이 탁 매고 그냥 스토리 매고 막 빨간색 파란색 짜증나요. 그런 교회 가지 마세요. 내가 여기 좀 놀 내가 오늘 넥타이를 멜까 말까 이렇게 하다가 아 이게 저는 이제 전통적인 교회는게 여기 이제 목사님은 거의 넥타이도 매지 않고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비권위주의적인 교회 모델이 되는 거예요. 어 크리스마스 여러분이 측은 쫙 이렇게 벌리고 있는 사진 블로그에 올라온 거 보셨죠? 목사님이 어디 있던가요? 보통 같았으면 여기 딱 쓰고 딱 여기
장로님 권사님 이렇게 딱 쓰고 애들은 저 안에 있어. 세상에 그 사진 보세요. 아이들이 그냥 좋아서 이렇게 하고 있고 웬 성도가 이게 중심에서 팔을 이렇게 벌리고 목사님을 한참 찾아봤더니 처음 끝에 있다. 그리고 한 장은 또 요이 어디 어디 갔나? 이게 교회예요. 이게 참다운 권위에요. 아,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와 가지고 내가 왕이다. 나 힘 있다. 그렇게 이 땅에 오셨으면요. 그건 아예 그건 처음부터 진리하고 상관없는 길이에요. 그런데 가장 섬기는 자가 참으로
진리를 구현하는 중심에 있다는 거. 가장 주변에 있는 섬기는 자가 이 공동체 전체 유익과 영향력을 준게 교회예요. 아니 그런 공동체이 세상에서 봤어요? 못 봤어요? 없어요. 대부분 다 조직과 권위와 돈이 중심되어 있고 그것에 명령하달 이게 바로 복종인데 여기는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남편이 먼저 자신이 자녀들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그 마음이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권위와 질서는 세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칠 때가 될 거 같은데 아
너무 흥분했어 지금. 아, 부부가 가정 생활에 전체 영향 미치는 결정을 할 때는 진지하게 논의하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치되지 않 않는다면 결정권은 남편이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대체적으로 남편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치되지 않으면 그래도 와 그러다 나중에 어떻게 책임지려 그래요? 그 가족 다 이끌고 그렇게 반대 에르케네크도로서의 돕는 반대자가 될 때는 좀 더 생각해 봅시다. 그게 지혜로운 남편이에요. 그죠? 나중에 독박 쓰지 마시고 그렇게 하시기.
아, 그게 너무 좋은 거거든요. 결정이 내려지면 아내는 진심으로 순종해 주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이 결국 어렵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부분에 있어서 목사님의 권위가 어떤 부분에서 그 섬김으로 나타에 있어서 성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죠? 목사님을 또 여러 전체 빅 픽처를 보고 있는 그것에 있어서 깊이 생각해 보 목사님은 성도들이 반대하면 좀 더 생각해 보고 기도해 보다 이게 맞는 것이고요. 기도해 봤는데도
성도들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이 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돼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섬김의 권위를 인정하신다면 그 권위에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는 교회가 하나 되는 걸 아멘. 교회나 부부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이제 마치대가 됐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를 통해서 매일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천국 갈 수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사회를 이루고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곳마다 행하는 곳곳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이 새로운 사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아멘. 그 질서는 하나됨의 질서고 그 질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속적인 사회 속에서 스며 들게 되는데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아서
그 맛 때문에 여러분이 그 맛을 본 거 아니에요. 그죠? 너희들이 개 맛을 알아. 그 맛을 봤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이렇게 나온 거 아닙니까? 그 맛, 그 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를 통해서 이 세속적인 사회에도 그 짠맛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하이델베르크에서 저쪽 그 로만틱 가도를 이렇게 쭉 가다 보면 그게 높은 성이 나와요. 밤에 하이베르에서 여행을 위해서 쭉 이렇게 아내하고 갔는데 어두운 길이 계속 되다가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오뚝선
산이 나오고 거기에 밝은 빛이 나오는게 그 도시의 이름이 로텐브르크입니다. 빨간 그 저기가 보신 분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 운전을 하면서 딱 그런 생각 떠올랐어요. 너희는 땅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은 이런 겁니다. 산 위에 있는 독리는 결코 숨기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금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를 우선 좀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신비의 하나됨에 이르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여러분 속에 다 DNA가 하나씩 숨겨져서이 하나됨을
가정을 통해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아멘.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도 모르게 로템 부르와 같은 산위에 있는 독리가 되어서 동네가 되어서 숨기울 수 있는 숨기울 수 없는 거룩한 공동체로 빛을 드러나게 돼 있어요. 아멘. 지금은 겨울에 복음의 동토를 맞이하고 있습니다.이 동토 때의 중요한 것은요. 밖에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보다도 아픈 성도들, 교회로 인하서, 목사로 인하여서 상처받은이 영혼들을 다 품어 주세요. 그건
좀 더 쉬울 거예요. 게다가 여러분처럼 귀한 공동체가 있으니까 좀 간편하지 않아요. 뭐 설명 필요 없어요. 일단 일단 한번 기다려 줄테니까 한번가 보자. 여기서 그래서 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그 프로틴 크리스천들과 가나안 성도들에게 이렇게 그 치유력들을 이렇게 그리고 그것이 온 세상의 저 산위의 독리 동네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 로텐 무르처럼 사귐의교회가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로 진리의 빛을이 어두운 복음의 겨울을 를이 겨울에 소중한 빛을 그리고 힘을내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당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Ye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