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 강정규 목사

2021-02-21 · 누가복음 15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가 흔히 구원 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목표와 가치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어 또 구원받아야 씩 예수 믿고 구원 맞자 당연히 그것이 기독교의 가서 첫째 되는 목표일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의 개념을 구원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다른 언어와 다른 방법으로 성경의 표현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영생 하나인 나라 이런 모든 것은 사실 구원과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랑 쓴 기본적으로 내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억눌려

부터 해방 되서 자유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것은 즉 우리를 둘러싼 5 죄의 굴레에 여러가지 그러엄 눌림 의 굴레에 결핍의 굴레에 이런것에 벗어나서 참 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우리를 바꿔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굴레를 종합적으로 표현한 누가복음 내에서의 언어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가난한 자 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 가능하잖아요 몇 번 얘기했지만 우리가 처한 그 공구함 에 무거운 굴레가 우리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뜬 정서적 어 또 육적으로

된 그로 말미암아 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하거나 예수님이 우리의 3대 행복을 줄 수 있고 참 회복을 가져다 신분이나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서 누가 우리 모두가 가나안 4 가 되어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매우 중요한 말씀이 가보시는 것이 바로 이 구조인데 한번 다시 한 고백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쓰듯이 이사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구원을 주는 데 구원의 누구에게 주냐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서 그들을 구한

다 잃어버린 자 가난한 자 이 모든 것은 다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가 누가복음의 세계 살펴보고 있는데 이게 15장 이에요 근데 그러면 25 는 어디에 있는거냐 면 9장 부터 19장 까지가 누가 보게 나오는 여행 단락 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행은 단락의 매우 주용 할 수 있는데요 왜냐면 이제 그 전에는 갈릴리 지역에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양

유카 시고 하나의 백성들을 이렇게 가르치고 이루어졌다면 이제 이 9장 부터 시작된 여행 기대한 것은 이제 주님께서 이들이 가르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더 단계로 펴서 너희가 참된 나으세요 살아가길 원한다 라는 마음을 담아서 여행길에서 쪽 가르치고 계신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갈릴 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여행 들도 이제 어느덧 끝나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 여행 다른 특별히 누가 보며 찾고 있는 수많은 잃어버린 자들이 나오고 있는데 당시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영적 상황에서 속이 상해서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도 주님 앞에 나오는 자리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 대상의 돈이면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하면 이 당시 c 적으로 여인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 가 나한테 몸이 병든 자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 탈색 지탄의 대상이 됐던 세리와 죄인들 이런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또 우리가 어느 새 탭 어 단연 15장 2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는 마음이 무엇이

날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이하 나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마음 가운데에 함께 나아가기 원하는데요 먼저 예수님은 잃어버린 것과 관련해서 3가지의 비율을 15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하게 했던 이유가 성령이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15자 1 저기서 뭐 읽어 보겠습니다 시 이사 세례 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발이 습할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의 맞아들이고 그릴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어 여기 부분에 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가 되고 나오고 개업 개정에서 바로 이 고자가 서기관 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제 있었다는 것이죠 그들이 예수의 무소 초사랑 회절 해 수금 됐다는 거예요 바리새파 사람들과 이성이란 들의 그들의 주된 하신 모여 내면 의인이 죄인과 구별되는 엄격한 삶을 살면서 죄인에게 물들지 않고 2대 우리가 오염되지 않게 찍혀 내는 것 이것이 그들의 관점 이었어 이 관점이 뭐가 전재

되고 있는 거냐면 아 자신들이 자신의 죄인 이어 그는 저드 특혜 제인과 3 레이드의 이러한 사람들과는 우린 달라 우리가 그들과 다른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고 그 다음을 계속 웨어 확인하고 싶은 방식으로써 자신들이 안식의 규례와 정결 규례 등을 즉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었어요 열심히 지금 밭이 우리 낸 이렇게 율법의 열심히 지키는 사람들이 야 너 이랑 우린 달라요 그러면서 저들과 어울리면 안 됩니다 저들에게 얼면 저들에게 물들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욱 더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부정한 삶과 식사를 같이 다루지 말고 의인 들끼리 모여서 더 우리의 믿음의 공부하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따뜻한 아서 예수님은 부분 다른 거예요 그 뒤에 부정하다 고 하는 사람들 대표적 나온 것이 세리와 창녀와 어져 그래서 선해 굽고 다 가지 않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달라 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이내 유대인들의 지켰던 금기를 깨는 것이었어 누가는 이런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비꼬듯 말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의 모습에 대해서 그들이 예수 용서 불평했다 60 무도 투덜댔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 불평하다 투덜대던 한 편의 디아 공기 주 라는 헬라어 인데 이것은 마치 그들의 조상이 광야의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 그의 불평 했던 그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그 구원 방식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 저렇게 해야 돼 그들의 눈에 최 인들은 그대는 에 악인들은 의 인들을 더럽히고 의인들의 물들게

하므로 멀리 아 최대한 멀리 해야 될 대상이지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교시 하고 긍휼과 구원을 베풀어야 될 태생이 아니라고 봤던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누군가를 구별하고 멀리에서 자기 집단의 보호하려는 것은 세상이 가장 씩 있는 방식입니다 세상은 저런 3대가 어울리면 안 돼 물들어 그럼 그리고 안타깝지만 교회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을 때가 있죠 나와 맞는 사람 우리들과 맞는 사람은 우리 가정 해 버리는 순간 그런 사람을 반기고 우리가 좀 다른 사람을 멀리하는 모습들이

있다면 안타깝지만 우리가 발이 3 뉴 우리가 서기관 입니다 제가 처음 전 생각을 했을 때 인데요 제가 중구 등을 맡았습니다 주무 동반의 소위 이제 좀 불량해 보이고 예 저에게 돌아서니까 있었습니까 약간 그런 문제가 있어보이는 친구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희 중고등부 가하고 30명 되는데 그 중에 한 대여섯 명 정도가 학교 자퇴 아내 드렸어요 그야말로 무슨 큰 의 의의 에서 사택에 나 학교 가 되셔서 내 학교 안단 이래요 사퇴 볼더 해드렸습니다 어 그 친구도 제가 처음

중 3때 만났고 고등학생 된 아이 만나보겠습니다 근데 걔 내가 교회를 자주 옵니다 잘 와요 그리고 집에 끼리 모여서 밤마다 볼 맞냐는 술을 많이 마시는 데 술을 마시면 좀 친해졌다고 저한테 그렇게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해서 천사님 제가 좀 헤어졌어요 아 저 죽을 거예요 처음에는 걱정되서 막 가보고 했는데 아 이게 좀 뻑뻑하다 꼬장 이구나 아 예 그럼 아 노즐 안뜸 있거든 않어 반대로 교회는 항상 그렇지만 그 교회의 도 올해 효율을 다녔고 얌전한 말 잘 듣는 그런

여 3 하나 있었는데 이어 3 온다 저한테 그런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가 어머니는 그 교회 다니지 않고 있었는데 약간 제 불량해 보이는 동네에서 그렇게 보이는 친구들과 한 교회 한 주고 동부에 있는 것을 조문에 걱정하신 다 염려 하신다 이런 얘기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뭐 이 해도 되죠 네 제가 그 여학생은 앉혀놓고 이렇게 얘기 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래도 교회는 n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 친구들이 교회는 것은 당연한 거야 4 이래 가 이제

평일에 같은 없으니까 교회의 자르고 예 그리고 얘 내가 모던 친구들의 보통 하지만 운동을 좀 잘해요 그래서 같이 이제 축구팀 안 들어서 저는 신나 쪽에는 인해 듣고 나가는 다 이기는 거죠 이러한 운동을 잘 하니까 그렇게 같이 어울려서 교제를 나누다가 얼음나라 제가 정말 마음에서 궁금함 있어서 물어봤습니다 노래는 학교를 잘 안 나는데 이렇게 교회 자라가 그래도 니 친구가 했던 얘기가 참 마음에 많이 남았는데요 이런 얘기 였어요 교회는 저희가 어떤 모습이든 지 사랑하고

반겨 주니까 학교나 안그래요 그 말이 제 마음을 참 깊이 울렸습니다 그게 벌써 12년 전 인데요 저는 가끔 c 지금의 제 모습이 그때 사용처 보였던 강정 도전사 만큼도 못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과연 바리새인의 닮아 있을까 예수님을 닮아 있을까 그럼 우리는 다 관계 적으로 불편한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 누구에게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좋은 사람이 있고 어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조안의 사라가 있고 싶어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읽기 싫어 합니다 그러나 그 본성은 죄 부종 입니다 이게 보여서 기니까 이렇게 하 게 당연해 마세요 세상에서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본성을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성령을 따라 살기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안에 그런 마음이 없다고 봤습 말할 수 없죠 그러나 그런 마음이 부스 부스 올라서 나하고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기 싫고 주 불편해 그럴 때마다 그 마음과 우리는 싸워야 해요 여러분 그 본성에 편을 여러분이

들어 오시면 안됩니다 아 맞아 다 그런거 야 나도 좋아할 것이라 셈이지 난 좋아 3대가 어울릴 래 여러분이 그 편 해주시면 안되요 예술이 사용 마다 옆에서 비꼬고 불평하며 챙겼다 라고 말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데 그대로 주님은 때로는 그저 책망할 때도 있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차 잃어버린 자로 여기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의 그들 대화의 대상으로 또한 가르침을 대응 삼아서 오늘 그들에게 이 말씀을 들려 주시는 거예요 그들 조사도 깨달아서

하나님 마음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것을 원한 앤 예수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럼 비율을 한번 살펴보죠 첫 번째 뭐 있겠습니까 시 이자 4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그 중에 한 마리 양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짐승 이어서 물이 타면 생존한 게 없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허리가 꼭 한번 대관령 양떼 목장에 가서 아 양이란 놈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안 보면 이 맛있 어 어 깨달았을 텐데 우리 한번에

지자기 그 한번 해봅시다 콜라 이후에 매 이안은 요 재밌어요 양은 요 엄 우리를 지어서 함께하여 량 약 혼자 있는걸 본적이 있어요 양 혼자 다니는거 보기 힘듭니다 양은 보통 같이 다네요 예 전에 필히 몽골에서 작가 있었기 때문에 양들이 어떤 성질을 참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요 정말 무리죠 다닙니다 목자는 상태라 주 최 씨를 따라 다네요 앞의 네 구덩이에 빠지면 돼 튀네 2기 빠져요 4 바보들이 에요 예 자 목자는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그 양의

양이 철 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인 거죠 99 마리 양을 비판해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여러분의 세상의 방법으로 머리를 굴려 보면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 우리는 왜냐면 배를 위해서 소르 희생시키는 것을 좋아하고 99명의 평안함을 위해서 1명에 희생을 묵인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 100마리 양 중에 학 빨리 양이 없어진 것을 귀 약이 없고 찾지 않으면 이제는 99 만에 중에 한 마리가 되고 더 나아가면 9 10 마리 중에

한 말일까 되고 50만 중에 한 마리가 되고 한 알에 수준이 어기지 않으면 계속 일어 가능 거에요 계속 찾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고 찾는다 가르치십니다 자꾸 나서 사는게 끝이 아니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매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사람 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이것도 우리 계산이 바로 우리들은 아니 양 한마리 가격이

모였고 열심 1 한다고 또 이거 찾았다고 또 어 이웃의 4초 대잔치 여로 그러면 그게 본 저리 나오나 근데 말씀은 요 이런 곳을 찾는다는 강조 함께 그것을 찾았을 때 심히 기뻐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이 비유 가진 0점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7 잘 맞습니다 시 자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곳에 하나님은 너무나 너무나 기뻐하신다 바로 그러한 죄인들이 하나님께서 이 더 물인 양말이 이고 하나님은 크게

하면 자꾸 겠습니다 회계는 그 양을 되찾은 것과 같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오히려 벌려고 가 찾는게 아니라 죄인들을 우리 않게 할 수 없다 부정하고 정제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주님의 잃어버린 자로 여기며 작곡에 씁니다 말씀 하는 것이죠 그 첫번째 pu 두번째 위험을 읽어보겠습니다 시 이사 두번째 비유는 드라크마 라는 동전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이야기 입니다 한번 읽어보면 쏟아 8 저리 요 이렇게 쓰듯이 2장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 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낼 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4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할 따는 두라 크라우드 지 얼마 내는 돈이 길래 왜 안 동전은 100원짜리 는 그래도 조금 주소검색 하지만 10원짜리 밑에 있으면 허리 굽히기 를 싫어서 어차 고 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니까 볼거 끼기 도대체 뭐길래 일단 그런 트라 크마 의 단위를 좀 알아야죠 이 드라크마 는 그리스 은정 로 서일대 나 리옹과 유사한 동전 입니다 1 댄 아이온은 하루 품삯

이에요 그럼 좀 소개 타죠 지금만 5만원 10만원 더 가치가 있으니까 그 참 찾아 금식 한데 라고 할만한 되죠 근데 자손이 위반한 것으로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큰 같이 큰 액수 란 곳에 말하는 것보다 우리가 이 중동 이 지역의 당시 환경에서 이애 보면 어 이 들여 트 1 돈을 어떤 경제적 활용을 하기 위해서 지니고 다니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우 였다고 해요 이것을 매진이 보 서 있냐 이것을 보통 중동의 문화 가운데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여인의

목걸이 동전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동전의 보통 결혼 때 증표 외로 주고받는 그런 결혼예물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결혼 패물 이었던 것이죠 이런 만약 여러분이 결혼반지를 저와 같이 결혼 반지를 새 수저 하다가 이렇게 올려 놓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떨어져서 세면대 구멍으로 쏙 들어갔어요 그럼 그래 그런가 보다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 이거 이상 가치를 위해서 만 하더라도 이 것의 소중함 번 갖고 살면 있고 찾지 않겠습니까 보통 우리가

아빠 빨리 망 물이 멈추고 얼른 백암의 밑에만 여러 수라도 닷지 차저 보도 이렇게 꽤 있네요 기 이제 있게 있으니까 찾겠죠 더군다나 당시의 과 연습에서 여자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구실을 주면 이훈 당하기 일쑤 였습니다 절대 말한적 있지만 심한 경우는 아침에 요리하다 가 땅을 태워도 이훈 사회가 됐어요 그렇게 보면 이 여인의 입장에서 이 드라크마 는 하루에 품삯 가출 넘어서 때론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그런 중요한 물품 이니까 찾게 되는 것이죠 그 여인이 다행히 이

드라크마 를 찾았습니다 15장 구조 이어 뭐 있겠습니다 시작 또 찾았는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자칼의 찾아내어 넣으라 하리라 그러니까 이 세 이 여인의 이 기쁨이 왜 여행 이렇게 사람들 불러와서 잔치 이러는지 이해가 좀 되십시오 100 영업으로 동조 하나 갖고 잔치를 위해 이상해 보이지만 그만큼 여인에게는 2탄 는 기쁨이 걷던 것이죠 그러면서 예술도 통해 바랍니다 지브라 10절 이것이 이사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한 사람이 이 땅 가운데 회개하여 돌아올 때 이 안에서의 기쁨 도 있겠지만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들과 함께 기뻐한다 그만큼 할 사람의 회계 함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pu 가 이어지죠 예 마우스 한번 찍어 오십시오 4 거기에다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흔히 탕자의 비유 라고 하는 마음 마야 그 이야기가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죠 앞선 두 이야기 해석해서 동일하게 있 어

버린 것에 대한 자 즈음에 주제가 반복되었습니다 이 세 번째 bus 도 이안의 세우는 표현들도 앞과 똑같아요 즐거운 않아도 반복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에 그 단어도 반복되고 회개 라는 하늘도 다 반복됩니다 공통된 구조와 주제를 갖고 있으면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 세계의 이야기 낸 점점 그 범위가 커져 가고 있으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100 개 중에 하나 그 다음에는 10 개 중에 하나 이제는 두 아들 중에 하나 데일은 그런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 어떤 설 두 아들이 있었어요 bb 획 시작합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세상 가운데서 4개의 돌아오 복스 내게 주십시오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n 살림을 어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럼 우리도 그렇지만 적절한 아직 창창한 돼 어제 아들이 선태 와서 오직 돌아가시면 죽어서 먼저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관리에 많지 않는 거였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자식이 유산을 유관 경우는 아버지 빨리 돌아가십시오 라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가문의 수치이며 용인될 수 없는 그러한 이었습니다 이것은 나는 더 이상 이 가족과 이 가뭄과 함께하지 않겠다 라는 선언과 같았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첫째 장 자넨 2 배스를 상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 아들이니까 그럼 3분의 1을 첫째가 불려 받고 3분의 1을 둘째가 물려 받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자신의 몫을 챙긴 아들은 미련 없으 아버지가 찾지 않을 수 있는 뭣 나라로 떠나 버립니다 뭐 나라고 3 이방 나라를 바라는 것이죠 아버지의 터치가 없는 곳 자유로

오일은 고생해서 갑니다 여러분이 이야기를 대부분 잘 알고 있으니까 내용을 중 약하고 그늘 그 곳서 재산을 흥청망청 쓰게 되고 돈을 다 날리게 되죠 그리고 그 나라에 흉년이 되면서 그가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존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게 뭐냐면 돼 지 치 내의 되었어 예 유대의 세계에서 돼지는 2 이 약을 듣는 사람들이 되시는 부정한 동물이고 그것은 즉 이 아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로 나아가 씀에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죠 하나의 품을 떠나서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만 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간 존재가 되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가 주 꿀 거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깨닫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로 가야겠다 15 장 17 절 59 전까지 한번 읽어봅시다 그 내용을 뵙겠습니다 시 잘 그제서야 그 내내 재 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풍 분들에겐 뭘 것이 남아 도는데 남의

여전히 여기서 굶어 죽는 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 드리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의 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 아들 되고 분리 자격이 없으니 나라의 품 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아들이 2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우리 아버지 집에 4품 꾼이 많은데 그들은 다 풍요로운 데 즉 그들이 생존의 이후에 겪지 않고 딴 거센 아버지의 자비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생존을 위해 수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

가는 것인데 비운 내가 탕자 같은 망나니가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 양심 으로서 드 인간으로써 내가 용서를 구하고 차마 다시 아들 되게 때 말은 붙어있고 아내가 품 꾼 으로 와도 나를 좀 살게 주시라고 이야기 하고자 마음을 먹고 자기 생수 네 아버지 키에 타카 며 돌아옵니다 그가 그가 자기가 가지 모든 것을 다 잃고 정말로 많은 고생을 하고 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이죠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룬 다음에야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는 이 어려움을 통해서 그가 삶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합니다 15장 이 시점에서 보면 이렇게 나와있어요 그래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우리가 이 짧은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했죠 아버지가 아들이 떠난 위로 계속 그 아들의 돌아올 수 있는 것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처음 멀리서 거지꼴을 하고 있는 사람이오 했는데 그게 자기 아들인지 얹어 알아보고 갈려 나가서 글을 봐 준 거에요

아들의 한번 돌아오는 클랜에 연습하면 왔을 거야 몸무게 없으니까 내가 아버지 만나면 아쉽다 젖 너무 잘 못했습니다 저주글 졌습니다 저를 아 아버지 북구는 종으로 라도 써 주십시오 태 속 아마 얘기하면서 어떻게 많아 저택 말하자면 왔을 거예요 그래서 그가 준비한 대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을 합니다 21 자위와 물고 껴 시 이상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2 자로 또 없습니다 자

이 다음에 해야 될 게 모여 그러니 이젠 알의 큰코 놀아도 써 주십시오 이 얘기를 이제 해야지 아들이 생각한 모두 문장이 완성되는 거죠 이제 그렇게 얘기하는 한데 아버지가 먼저 말을 끊고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오소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 얘기에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의 신겨 라 손에 반지를 끼운 다는 것은 아들의 지위가 회복되었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는 기쁜마음으로 잔치를 엽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 이 기쁠 표현하는 거예요 아마도 그 아버지의 종교의 중에서는 이 아버지의 모습에 의 함을 느낄 수도 있었을 거에요 아니죠 망나니 같은 아들이 왔다고 코 대로 우리 홀랑 받아 줘 이런 아버지 봇은 당시의 문화의 비춰볼 때 암호 줄 수 의 기강을 어떤 가족의 그 기강을 무시하는 그걸로 뒤쳐져 수도 모릅니다 라 아버지 된 계시잖아요 왜냐면 아버지가 장수 위한 마음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모든 수긍 거림

그 모든 것을 돕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쓸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여기까지만 보면 앞의 이야기와 거의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비유 만큼은 뒷 이야기가 존재하죠 바로 첫째 아들 의 등장입니다 그럼 사람은 참 재미있어요 아 그 첫째 비해서 양은 한 마리가 돌아왔다고 나머지 99 말이 향이 불평하는 법이 없고 동전 9개는 더더욱 그러 하거니와 사람은 참 치게 합니다 동생이 들어오니까 자체가 거리 잤어요 우리가 참

신기하게 배고픈 것은 찾는 데 뭘 못 참아요 배 아픈 것을 잘 못자요 부교재 것이 여러분의 2 1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개척 교회가 힘들거라 달고 쪼개 척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서 낭만 하기 보다 더 많이 넘어진 것은 남이 잘 되요 나는 지원 루머 꿀처럼 뭐 지원 음악 바꾸려면 그게 그렇게 배가 아프 소 사람이 그래요 첫째는 착하디 어떤 것 같아요 하루종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동생이 떠난 유로 항상 적막하고 우울감이 감돌던 그 집에 잔치가 열려 있는

거야 그러니까 분위기 파악 하려고 총을 먼저 나 부릅니다 수분이 16절에 보면 4 중원의 불러서 모습인지 물어보았다 종이 그에게 바랐습니다 아온 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함 으로 돌아온 것을 당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이 형이 이해를 듣고 동생이 돌아왔다는 이 말에 기쁨보다 분노가 잦았습니다 이유가 있었어요 성경 이렇게 그 첫째 아들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해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 대회가 어울려서 아버지의 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래 위해서는 살 찌의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첫 자들의 항변이 우리는 모두 2가 됩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 아들이 아 정말 이 마음 안에 서 나를 컸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이발을 통해서 누구에게 있는 거죠 네 알수 있어 그 동생의 분노한 것에 나누게 분 나고요 아버지에게 본

나옵니다 그리고 이상 않았고 세상에 사람들한테 논리대로 물어 보자면 이 상황에 판결 하자면 아마 첫째 한테 손을 들어준 하며 훨씬 많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배 10월에서 판단해 본다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 둘째 아들은 다 지사 날려먹고 랜드 이미지 못하 받아 갔는데 아 첫 자들이 화환 애만 안에 아버지가 너무 했네 이런 소리가 나올 지도 모릅니다 첫 자들의 논리가 더 강력해 보입니다 상점 보자면 차드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분 원래 모든 곳에 된다 논리가

있는데요 사랑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를 따져보면 정말 많아요 내가 이 옆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 다지면 상 하지 못할 많아요 따지면 굉장히 많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여러분 의 주 분들이 많이 계신데 왜 굳이 힘들게 남편과 자녀의 밥을 해 줘 합니까 그게 아버지도 그런데 왜 우리가 굳이 힘들게 번 돈을 자녀가 용돈 달라고 하면 촉촉 줘야 됩니까 논리 속이지 않아요 요런 왜 남녀가 서로

만나서 서로 바라보 사랑하게 될까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안에만 1 모습들이 충분히 있는데 사랑하게 된 것은 논리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한번 같이 있겠습니다 시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시 미 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네 하나님 논리가 참 이상하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께

배신의 카레 꽂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 약 2분 날마다 하나의 배신 하는데 하나님의 그런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기이한 독설을 아끼지 않고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우리에게 화해의 손길을 램 이셨다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요 그리고 여기서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이 가진 신학적 의미를 우린 잘 생각해봐야 된다면 되는데요 어떤 님의 면제 몽의 질문하겠습니다 론 사자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럼 이 아들이 뭡니까

사죠 호라이 가 아들을 낳습니다 그래야 돼 모여 호랑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은 그런 뭐겠어요 하나님은 거에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얘기는 예수의 속해서 하나님 이라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표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라는 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께 소 우리를 살리겠다 고 우리의 세계로 오신 것이죠 당의 논리로는 말이 안됩니다 너무 논리로 말이 안되서 사탄이 그 모습 보여서 깜짝 놀랬어요 이것의 무엇으로 만 설명할 수 있냐 사랑

그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아들의 한 변을 듣는 아버지가 첫째 되게 하는 말씀은 단오 합니다 함식 1점 말씀이에요 아버지가 ud2 은 항상 나와 함께 쓰니 내 곳이다 니 것이로되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던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던 이 첫째 아들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가장 키아 하는 나라를 상속받을 유업을 받을 아들이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게 돼 그러나 드립니다 내 모든 것이 다 넣을 것이다 그는 그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을 누리고 있고

아버지 사랑을 받고 가장 많은 것을 누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러므로 그는 어쩌면 세상은 다 보지를 보고 조 아버지 이해가 안돼 라고 하더라도 그 아버지를 가장 옆에서 오랫동안 않아 왔기 때문에 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 아버지의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생을 위해서 사랑을 베푸신 아버지도 이해하면서 함께 동참하고 아까워 하지 말아야 돼 그러나 들다 그것이 바로 너희 다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들아 오는 날 가장 잘 얘기해 주는

아드리안 이게 왜 꼬시다 있고 세냐 내 마음도 너의 마음이 아니겠네요 그러면서 너의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어 끼로 너와 내가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맞나 가지 않겠냐 니가 나의 이마 모르겠네요 이런것을 찾았을 때 그 로만 이마 함께 지구 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는 하나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런것 4s 보다 화산체 달렸어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거 차 잡아 잔치할 그런데 지금 그 잔치에서 유일하게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할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첫째 아들인 거에요 그러면 이 말씀은 앞에 서있는 비유 와 비교했을 때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입니다 앞에는 100분의 1을 이런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10분의 일을 이루고 시작했어요 그리고 두어야 도중에 한 아들을 잃은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끝에 마음의 일은 바로 노 얘기하지 바리새인과 서기관 으로 대표되는 유대인 데 그들은 이런 것을 살 c 된 예수님 아무 이해하지 못하고 죄인들을 우리가 다르다면 선을 그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금액에 입이 말씀을 시작하실 때 100마리 양 중에 한 마리 양 이런 일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남의 이야기 듣는 것처럼 들었을 것입니다 10분의 1 이 그때도 탕자의 대한 얘기 할 때까지도 남의 이야기에 저울이 는 문제가 없고 남의 예처럼 그러나 이제 말씀은 바로 그들을 향해 소 너희가 하나의 마음에 잃어버린 그 안합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은 구원과 그래서 죄인이 돌아오고 있는 이 기쁨의 산 치에 오히려 잃어버린 것 하나가 있는데

회복했고 살아 있는데 바로 첫째 아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얘기에 아버지를 닮은 마음에 필요하다는 거예요 바로 바리새인과 소개한 너희가 그저 차례가 왔다 제가 누가 보고 15장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면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의 성격이 3명 악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절대 나서 유대인들 어떻게 생각하면 매 세 나라 보면 저 최인 들은 다 심판 당할 거에요 파멸당하게 거야 우린 것을 보며 것이 어 그걸

되면 기뻐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바라 보셨어요 그래서 앞이라면 최대한 저 세리와 죄인들과 참 여대가 거래를 두는 것 슥삭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셨어요 너희를 찾는 것이 아버지 자를 말합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일까 15 전체 는 이렇게 약 될 수 있죠 아버지가 탕자의 영접하고 그렇게 잔치를 베풀어 줌에 대해서 큰 아들이 지금 불평을 털어놓고 있는 것은 예수께서 죄인들의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심 에

대해서 원망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영접하고 그와 함께 잔치 해버린 예수 pa 의 모습은 그 로만 며 모여서 입이 우도에서 완성 대 한 해가 좀 어떻게 주님이 만들어 보고 시를 하나 일할 쓰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로부터 2천 년이 지나서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주 에 가족이 되기 위한 나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 말씀의 두 가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따라 볼까 시자 장자와 같은 당신에게 당신에게는 제가 소개 수 없게 쓰고 한번 날에 만지면서 한번 나에게 란 곡이 볼까 시장 장자와 같은 아이 여러분 바리새인이 어떻게 기도 했었거든요 이렇게 길을 그것이 2가 보고 나타나는데 바리새인이 소 따로 기도회 로드의 하나님이요 나는 다른 사람들 고토 3 불이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 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로 자치의 이 네 잘못은 무엇인가 그도 이런 말 나와 그들은 메쎄 잔치 오히려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큰아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하나님의 백성이 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을 알고 따라야 합니다 여러 무리가 있을 때에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저는 이 말씀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여러분 우리 교회는 n 결코 엘리트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바탕 예술 및 있고 같은 사람들의 그런 사람들이 바글바글 넘치는 우리 때문에 산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탕자 와 같은 사람들 4 끼 와 같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고 그들의 맞아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 품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교회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잖아요 교회는 우리가 그 외에 우리가 바뀌어 하지 아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어요 로저는 이사 김에 회를 목회하면서 굉장히 회복하고 좋습니다 여러분 바라볼 때 제한 행복이 있고 우리가 정말 분위기가 더 분위기도 좋고 함께 서로가 힘을 모으고

잘 어울려 하고 잃어도 생각합니다 청년들도 그렇고 참 년들도 그래요 친해요 그러나 제가 저를 보고 제가 우리를 볼 때 가끔씩은 우리는 여전히 담이 높은 것이 아닌가 우리 안에 친밀함이 너무 높은 담을 만들고 이것을 아닌가 고민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기존에 맺고 있는 관계들이 친밀하고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높은 벽 에 대해서 누군가가 이 교회 공동체의 들어오기 힘들어 하고 와서도 그 격차를 느끼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우리의 그 장벽을

없애야 합니다 해체 해야되요 그게 채 되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좀 더 커지면 미 편 내 편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는 리 편 내 편 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내 모두 예수님 편의 되기 위해서 죽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자신할 수 없어요 우리 그가 성장이 갈수록 낯선 새로운 사람 들어 옷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부단히 힘쓰지 않으면 외도 세상과 같아 저 쉽습니다 의도적으로 내가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 그런

모습이 되어 버려요 왜냐면 우리는 카 나고 좋은 것을 추구 하니까 우리가 스스로 불편한 것을 하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색하지만 어색한 것을 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럼 모든 사람의 본성은 첫째 아들이 이해합니다 마세요 그 아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아버지도 그 아들을 이해 못하는 곳에 아닐 거예요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용인하고 행동을 닮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손에 들어오면 세상에 말았을 또 얼마나 많이 이해가 되는지 몰라요 그러나

거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이에요 그럼 세상은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u 빛이 유익이 있지 않으면 나오고 체제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친해질 요구하지 않습니다 카난 살리게 어울려 고 합니다 세상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담이 높지 않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오름 직한 동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 안에 부족하고 상처가 있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자라 가며 함께 변화되어

가는 것이 우리의 교회가 추구하는 가장 큰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제 아내도 항상 교회가 커진다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뭔가 양쪽 불금 꾼 것처럼 보일까봐 제 스스로 그런 마망 4경기 하고 한번도 것을 목표로 3원칙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그 교회의 어떤 성장하면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되고 하나님을 다시 문제인데 반대로 바다는 그러고 추구 하지 않아 추구 하잖아 이러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쓰는것도 칸에 발생 하는데 반대로 우리가 함께

하게 좋은 숫자를 정해놓고 교회는 100명 정도가 딱 추가 교회는 300명 정도가 딱 좋아 우리가 합계 하게 좋은 차로 우리가 정해놓고 좋은 분위기의 교회 마치 그들 안에서 많이 한해서만 좋은 유토피아 같은 교회를 만들려는 그런 교만함을 갖게 될 때가 도안 있습니다 교만 함이요 교회가 상당히 숫자 놀음을 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죄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마음 맞는 상대 이것은 모여서 우리끼리 즐거운 사랑하는 것보다 죄인 한 사람이 들어와서

e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더욱 기뻐 하세요 여러분 그 기쁨의 참여하지 못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교회의 숫자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그 뜻이 나타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지 않습니까 구체적인 실천 있었잖아요 여러분 수경 도우리 크지 않은 고통 체해서 내가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는 사람이 있고 제대로 눈에 맞추면서 인 사랑나무 장사 밌다면 다 가십시오 적어도 이 한 장소에서 지금 같은 시간대에 200 들고 있는 분들 안에서 라도 노력하십시오

축복의 시간에 내가 탄 사람이 사고 싶은 사람에게만 다가가는 곳인가 오히려 그 시간 마다 내가 한번도 인사를 나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오자 힘 쓰십시오 나와 같은 기가 뭐 청년부 건 남전도회 여전도회 건 같은 사용 화내는 사람 이건 혹시 그 안에 초에 대해 사람이 없는지 하나님을 마음 갖고 살펴보십시오 만약 내게 그런 마음의 수도 없이 나는 이 교회에서 실험 4 잘하고 있다고 난 성장하고 또 기뻐하고 있다면 고급 공동체 안에서 서운함 만에 표현하고 있다면 바로

내가 그 하나에 마음을 잃어버린 첫째 아들입니다 회복해 곳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낸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두번째로 오네 말씀 정리해 오면 이렇게 나옵니다 7 에서 시자 탕자 와 같은 다시 되게 혹시 곡 가운데 아니면 또 영상으로 이설 을 접하게 되는 분들 가운데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거 나 그런 단단한 모두 아버지 가까이 있음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죄인 이기 때문에 둘째 아들의 그 머나먼 나라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교회 안에도 둘째 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여기 와 있으나 아직 하나님과 함께 함을 경 하지 못하 여러분은 말씀 가운데 둘째 아들이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존심 다 내려놓고 나에게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인정한 순간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 마음먹은 순간 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 가다가 우리가 그 아버지를 의지하며 아버지의 계속 나올 때 하나님 아버지는 달려 나가서 맞아 주시는 분입니다 아들이 채용 선을 다

구하기도 전에 먼저 달려 나가서 안아 주시는 분입니다 죄들이 하여서 다가 소스는 예수님 모습도 그러한 것이었죠 아버지가 먼저 안아줄 때 아들이 그 품안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처럼 죄인들에게 먼저 살아오다가 가야되요 가끔 저희 그러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두고 전도와 싶은데 애가 너무 좀 기질이 안좋아요 애가 너무 수단별 해서 아 좀 그런거 끊으라고 얘기했어요 저도 항상 이렇게 얘기합니다 수다 * 코코 예술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술 담배 하더라도 와서 같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들의 모습 바라보면서 저렇게 사는 보실 좀더 행함 창대 행복을 느끼면서 그 다음에 끝낸 거죠 끊고 뭔가를 죄의 끌어내고 이곳에 와야 한다는 것인가 죄인된 모습을 이곳에 와서 거 의인들의 못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내 모습을 점검하고 달라지 보자 힘쓰고 그러면서 바뀌어 가는 것이죠 혹시 여러분 주변에 5 이상한 사람 비트가 어디라도 이런 눈으로 볼 때 전혀 기독교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라도 보라고 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을 맞을 수 있어요 우리가

진짜 교회입니다 혹시 교회에 와서 그렇담 들이 점심 먹고 나가서 담배 펴도 잘 피고 라고 하십시오 저녁에 있었습니다 어디가 눈치 안 뽑힐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쪼개다 돌아 들어가면 옥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 나눔 아무도 안 올라온다 어 여러분 우리가 개인이 의인 되는 것은 내 지인의 모습 버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본은 거에요 5 여러분 우리가 구원 있어 주의할 수 2집 않는데 우리가 이렇게 4 및 고백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도 맞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달려 있는 주도권이 하나의 기능 것이 맛의 60 읽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주도권 의 실행되는 것은 조건이 있어요 바로 돌아오고 자 결심한 아들의 그 마음이 조건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청의 응답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즉 간절함과 갈망 땋아 감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 조건없이 나는 가만 인간에게서 일방적으로 너는 구원받은 삶일까 이루와 해서 기계적으로 변화시켜 이런 일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도 없는데 나를 바꾸 싫어 없어요 구원은 철저하게 우리의

태도 해보고 시행됩니다 블루 리가 계산적 나아가서 안되죠 전적으로 하나에게 두 손을 들고 하나님 달을 의지합니다 줄인 데 섬의 함께 해 줬어 종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102 둘째 아들 그 회개의 진실함을 들어오는 것처럼 이것이 전쟁 때 그 안에 주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론 여보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자는 것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은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내 마음의 주시는 그 은혜를 내가 받아들인 응가 거절 1가 우리의 선택의 동반될 수 있어요

받아들였을 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타깝지만 자존심 때문에 못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신을 의 잔나 악한 사람이 되기 시오 그대들을 바꾸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사랑해서 그런 사람이 하시는게 오잖아요 나 자식의 하시는 거예요 고난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 나 자식의 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 있어도 코리 증가 그건 아닙니다 아 이곳은

행위 구원이 아닙니다 철저한 아니메 어느 지만 이 안에 인간의 책임과 반응이 필요한 거에요 그것이 우리가 올바른 구원과 4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구원의 주권에 대해 잘 뭐야 면 이 구원 이기적 구원 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블로그 시고 언제든 깨달으면 내가 반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그 돌이 킴을 아버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난 교회만 있어 합니다 어떻게 하셨지 아닙니다 교회로 나오게 속옷 하나의 뜻이고 여러분이 1에서 마음일 관한 찾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나 어떻게 해 주겠지 그렇지 않아요 마음을 여자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없고 하나님께 나와서 돌이켜 줬을 때 코스의 가장 기뻐 하시며 기쁨의 잔치에 오신 분이 우리 사랑해 하나님입니다 rc 마무리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내 말씀에 두 가지로 정리해 했죠 우리 안에 1st 아대 즉 장자와 같은 마음이 있거나 혹은 탕자가 같은 마음 있거나 우리 오늘 말씀 앞에서 나를 점검하고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이 가르치고 단지

그 말씀에 따라서 날에 바꾸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진짜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는 교회라면 우리는 세상과 달란다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구원으로 나얼은 3 우리가 판단에서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대구로 안되고 그리고 교회가 절대 사람을 가려 받아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전도해 하고 이 교회의 들어오고 자는 사람에게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환대 해야 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혹시 내 안에 탕자 같은 마음으로 주리가 벌어지는 것을

발견했다면 자신의 속이지 마십시오 교회와 있지만 하니까 동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오늘 그런 탕자 와 같은 마음 혹은 장자와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주님이 우리를 다시 한 바꾸시고 자 말씀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주에 맛이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아버지 하나의 망으로 잃어버린 한 나라를 잃어버린 그 모든 사람을 향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세상을 보타 여사 후에는 둘째 아들이 나 몸은 때론 교회 알지만 하나님 마음을 잃어버린

자체가 되나 그대 무드를 주면 자꾸 계십니다 우리가 부디 그 주의 마음을 깨달아 아버지 아니메 크신 사랑을 받고 또한 우리 고 전하는 주의 귀한 아들 딸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이 말씀의 기억하며 하게 사용 나가겠습니다 우리 배팅 나와 주십시오 내가 찾아가고 싶습니다 으 으 으 아 으 아 아 ceo 0 cooper 으 정말 아아 ceo per core i5 아 there tally we 아 아 아 to use 무드 roi et de la la 오오오 사랑의

lower all we were well or the only here too oh all 사랑해 로 로 로 lee 주기에 c 입구 town ooh tell you 춤 you were too 여러분이 선행을 아시겠지만 보통 우리가 잘 주목하지 않은 그 탕자의 비유 외에는 첫째 아들을 주인공 삼아 그의 마음의 고백 으로 지어진 찬양입니다 아마도 아버지 된 첫째 아들이 대견스럽고 사랑 선수 아 둘째 아들의 그쪽 인 해 심도 기뻐하지만 묵묵히 아버지 곁을 지켜준 된 첫째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너무나 큰 기쁨이고 든든함 이었을 것입니다 담은 그 아들이 그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고 있을 때 그만큼 더 속상할 수 있겠죠 그러면서도 이 아들이 이 사건을 통해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아버지의 닮은 아들이 되기를 하실수 있고 싶어요 이 찬양은 허전하고 구했던 마음것 있던 첫째 아드님 그 아버지의 클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그 사랑을 의지하며 나도 이제 크 사랑의 함께 할 것을 기뻐하며 타지마 든 소비 어쩌면

오늘도 예비하는 여러분들 우리 안에는 첫째 아 되게 썼던 이러한 마음의 회복이 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차량을 다시마 고백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대 맛 이래 함께 소망하며 따가 시키는 가 처리 자 짜리 묘묘 10대 번창 다합시다 아 de retour de ahora te ou de ser 4개 amd a55 거 저한테 니곁에 see 여러분께 텔미 함께 씨 집이 있습니다 으 살 y2k 사라졌 u5 * we 모디아 ie there two 살 y lee tae

hee to do tell her how i feel 5 we the people who lee cooper 있고 탭 loop 해 be there to dp noche lee tae-ho lee olleh 5 2 살아라 으 write a love we 줄기 he who a hero 5 de coree too 벗이 취 메사 억이 그 줄과 야오 어업이 기뻐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줄임 우리에게 우뇌의 취미 마음을 가르쳐 주심 1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내 삶의

비춰볼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하치 나는 이미 예수님이 더 의 벤자 와 같은 기쁨의 스스로 성취되어 아버지 마음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우리가 돌아 뵙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신지 잃어버린 자리한 아버지 말 무엇인지 그 마음을 이해하고 깨닫고 달 막아낸 우리교회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만의 잔치가 아니라 1인자 나가토 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수 없어서

주님 두렵고 떨리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한 가족 묶어 줬는데 이 가족 안에 혹시 소외된 자 요 선이 아픔 자가 있을까 주님 것이 들었고 떨립니다 우리가 형제요 자매라고 고백하는 이 교회 안에서 잃어버린 자 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로 사랑 뭐 쏘쏘 함께 모든걸 도포할 수 있도록 주니 우리 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다른 누군가 아니라 내가 그러한 추위 맘을 알고 깨달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곳에 온 회사들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길 원합니다 2대 보이지 않지만 계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삶으로 증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부디 우리 삶의 붙잡아 주셔서 우리가 살아 가는 곳곳마다 어디가 머문 이고 꼬마 다 그런 주 의 사랑이 묻어 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좋으셔서 이 말씀의 씨앗을 cs5 우리 가 입 일 않아서 순간부터 수많은 4탄 우리를 기회 마다 이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할 터인데 우리가 입안에서 예치 않고 우리 마음을 더욱 토 같이 든든하게 세워 가서 이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 내리고 열매 맺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감싸주기 예수님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