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사도행전 14장 / 홍해 앞에서 / 강정규 목사

2021-02-26 · 사도행전 14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은 우리에게 유명한 출애굽 사건을 나누려고 합니다. 출애굽을 바르게 이해하면, 후에 포로기 이후의 출바벨론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이해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원래 야곱의 식구들은 애굽의 손님으로 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삶은 너무나 고된 것이었고, 그들은 애굽이라는 제국 아래서 가장 신음하는 ‘프토코스’의 삶을 살게 됩니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께 생존을 의지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도움이 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보내셨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요셉 시기에 일어났던 엄청난 기근에서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으로 보내셨던 것이죠. 그러면서도

야곱의 가족들의 신앙적,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시려고 고센 땅이라는 곳에 구별하여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가장 강성한 제국의 보호 아래서 야곱의 가족은 민족을 이룰 숫자까지 커져갑니다. 그러하기에 그것이 애굽의 위협이 될 정도가 된 것이죠. 그로 인해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에 보내신 것은 야곱의 가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요람’과 같은 시기를 보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재난과 전쟁 등에 야곱의 가족은 더 큰

위기로 멸절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의 카이로스(때)가 이르렀기에 그들은 애굽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환경적, 신앙적 요인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이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보다 크신 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누구를 통해 펼쳐집니까?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때로는 악인들도 이 일에 사용하시죠.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귀한 사명은 특별히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에서도 ‘바로’도 사용된 것이지만,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철저한 도구로 준비된 것은 ‘모세’인 것이죠. 모세라는 인물 또한 삶을 보면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이죠. 일단 그는 대표적인 ‘나 혼자 산다 주의’ 이었어요. 자기 뜻대로 혼자 힘으로 어떤 것을 해보려고 하다가 크게 실패합니다. “내 힘으로 해봐야지” 했다가, “나는 안 되는구나” 깨닫고 도망쳐서 조용히 양치며 지낼 때였죠. 그런데 여기서 또 재미있는

역설은 하나님은 그가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할 때는 아무것도 안하시다가, 그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자 그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아이러니 아닙니까? “내가 못합니다” 하는 경우가 정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내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어렵고 버거운 삶입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참 그런 경험을 많이 하는데도, 때로는 여전히 제 힘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과 주도하심에 나는

함께 순종하고 반응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능력인 것입니다. 순종에 대해서 최근에 강조를 많이 하는데, 결국 전적인 순종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도의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 의지로는 순종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순종하기 싫은 것이나, 혹은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일이 있지만, 기도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을 물을 때, 주님은 깨닫게 하시며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마주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서 좀 아시잖아요. 성경에 모세를 이렇게 표현하는데요.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가 착했구나. 나는 그렇지 않은데 어쩌지?” 혹시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온유’의 어원은 ‘야생마가 길들여진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야생마가 자기 주인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십시오. 모세의 삶이 그러했어요. 모세가 민수기에 가서 ‘온유하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야생마와 같던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져서 끝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 모세가 하나님을 대리하여 애굽의 바로 앞에 섭니다. 당시 애굽에게 있어서 제국의 피라미드 구조를 굳건히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을 담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모세가 나타나서 그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하니까 순수하게 허락할 리가 없죠. 그러므로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심판하시며 그의 고집을 꺾습니다. 결국 마지막 모든 초태생의 죽음까지 경험한 후에야 바로와 온 애굽이 혼이 빠져서 백기를 듭니다. 항복이죠. (출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 12: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출 12: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그런데 제국의 가장 하층민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긴 여행을 해야 하는데 준비된 것이 없죠. 하나님께서 이 부분도 준비시키십니다. (출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열 번째 재앙으로 인해

애굽이 넋이 나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어 내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아이러니가 있는데, 여기서 받은 금을 모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죠.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인도 아래 ‘출애굽’이 현실이 됩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 그들의 길을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입니다.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그 땅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전쟁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출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즉, 아직은 전쟁을 감당할만한 공동체가 아니었기에 준비 과정들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가나안 땅으로 향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진짜 백성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큰 그림에서 보자면 이들은 시내 산에 가서 율법을 배워야 했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죠. 또 시내 산에서 성막을 짓는 법을 배우고 제사와 절기도 배웁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예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죠. 그것뿐입니까? 나라의 조직, 규율, 체계. 군대조직 등, 모든 것이 가나안이라는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훈련은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끌고 간 곳은 홍해 앞이었습니다. 앞에 바다가 가로막은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사이에 애굽의 바로가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가기 위해 출격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바로의 이런 행동들을 알고 계셨죠. 그래서 모세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십니다. 출애굽기 14:4은

주의 깊게 해석해야 합니다. (출 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고 나와 있는 이 구절을 오해하면, 바로는 착했고 바로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셔서 선량한 바로가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번역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새번역)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둘 터이니, 그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바꾸지 않습니다. 바로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악한 고집이 그것이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가 쫓아오리라는

것을 아셨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무엇을 심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므로, 그것에 대한 계획도 하나님께는 항상 있는 것이죠. 모세에게 그것을 말씀해주시며 대비를 시키십니다. 4절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록한 것이라면, 5절은 그야말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의 관점에서 기록합니다. (출 14: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애굽의 바로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떨결에 출애굽을 허락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이죠. 애굽이 집단 멘붕에서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군대를 일으킵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 60만이니 200만 명에 이르고, 거기에는 그 외의 민족들도 섞여 있었으며, 또 가축들도 다수 포함된 상태였습니다. 이것을 잃으면 애굽의 국력은 휘청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다시 이것을 잡기 위해 부랴부랴 힘을 냅니다. (출 14: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출 14: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당시 애굽 군대의 주력은 병거부대였습니다. 선발된 병거(7절)라는 표현은 특수부대입니다. 무려 600대입니다. 그 외에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했습니다. 그래야죠. 200~300만 인구를 잡아오려면 다 가야했을 겁니다. 이 일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실제로 이 어리석은 판단에 애굽의 운명이 걸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가로막혀 있을 때, 애굽의 군대가 쫓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출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이 오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생존의 부르짖음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니

이 부르짖음에 즉각 응답하시지를 않아요. 그 계획을 모세만 알 뿐이죠. 그런데 많은 경우 그럴 수 있어요. 출애굽기 초반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우리는 알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모를 수 있어요. 후에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깨닫는 것이죠. 홍해 앞에서도 다급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눈앞에 한 사람 보이죠. 그들의 리더. 모세.

모든 불평을 눈앞에 보이는 지도자인 모세에게 쏟아냅니다. (출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출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우리가 애굽 사람

섬기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게 또 사람이죠. 금방 출애굽하면서 찬양 했다가, 또 어려움이 오면 삐치는 것.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멋있습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진짜 이 부분은 멋진 것 같습니다.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앞에서 이끌던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의 뒤로 움직여서 애굽 군대의 접근을 막습니다. 애굽 군대 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가득하고, 이스라엘 백성 쪽에는 환하게 되었습니다. 아예 딱 나누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합니다. 바다가 마른 땅이 됩니다. (출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갔다는 성경의 표현이 참 멋집니다. 물이 좌우의 벽과 같이 되었습니다. 애굽 군대의 진격을 막았던 구름이 길을 내어주니, 애굽의 군대도 홍해 가운데로 진격합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명하여 그 군대를 바다에서 진멸하십니다. (출 14: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출 14: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고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며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걱정거리와 염려가 되는 애굽 군대는 그곳에서 끝장이 납니다. 이제 더 이상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시기에 애굽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들의 병거,

그들이 거느린 노동력, 또한 그들의 장자를 모두 잃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중요한 메시지의 포인트를 되짚어 봅시다. 우리는 홍해 사건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애굽과 이스라엘의 대결’ 혹은 ‘악한 바로와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대결’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관점을 바꿔서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홍해를 만나지 않은 이스라엘 VS 홍해를 경험한 이스라엘. 어쩌면 홍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광야의 삶도 이겨내지

못하여 가나안은 꿈꾸지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홍해는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홍해와 같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 싫은 것에 직면하게 됩니다. 내게는 답이 도저히 없는 상황에 도달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답이 없지만, 주께는 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일을 통해 모세를 중심으로 여호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물론 홍해 하나 건넜다고 우리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평생에 완성은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신다는 주의 약속을 믿고, 홍해와 같은 일을 마주하더라도 한번 이겨내 보십시오. 우리는 홍해를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홍해를 피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피하면 또 다른 홍해가 날 찾아옵니다. 누구나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점을 바꾸어

홍해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홍해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홍해. 그곳은 애굽의 군대는 끝장이 나는 장소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며 새롭게 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누구에게는 무력함과 절망의 장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믿음으로 주를 경험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문제들이 많습니다. 때론 내가 넘어서기 힘들만큼 버겁습니다. 그때는 내 발걸음이 홍해 앞에 도달했음을 고백하며,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분명히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홍해를 바라보지 마시고, 더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오늘 성경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