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거인의 발자국" / 강정규 목사

2023-09-24 · 열왕기상 11-16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우리가 보고 있는 열왕기서는 상하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연결시켜 보면 더 연결성이 잘 보입니다 또한 이 책은 그 앞에 시리즈인 사무엘 상하도 연결되어 있는 책인데 결국 이 이야기들은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아이 사무엘 상부터 사울의 이야기 다의 이야기 그리고 솔로몬의 이야기부터 이제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39명의 왕의 이야기까지 모두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나라

어떤 나라인가 물론 여기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다 것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우리는 그럼 이 실패를 딛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큰 틀인데 저는 근데 이 문제를 다 있어서다가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보면 더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왜 나라를 세우라는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라를 세우실라는 질문이 먼저 있어야지 그 나라가 어떤 나라여야 되고 하나님이 그 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하게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 분들이라면 대부분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를 통해서 의 원래 계획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지난번에 통계 한번 내 봤더니 풍 3초를 98명을 끝냈더니 거의 대부분 다 하셨겠죠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그 얘기 뭐냐면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삶이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래 죽어 던 삶을 지금 우리는 못 살고 있다 그 삶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살아가던 삶은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주셨던 삶이 아니라 망가지고 깨어지고 아픈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가 그 깨어진 세상에서 깨어진 마음과 깨어진 모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래의 모습이 어떤지 모른 채 그 깨어짐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습이 그 우리의 원래 모습인 것처럼 원래 우리 이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삶에 끝없는

공함을 느끼고 서로가 깨어져 있으니까 그 안에 상처들로 서로가 또 상처를 내면서 종종 무엇을 붙잡고 열심히 살아보지 그것으로 끝내 채우지 않는 어떤 공허함 갈증함을 느끼면서 그러면서도 그저 이것이 인생의 니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살아간다 는 것입니다 근데 성경이 말하는 것은 원래 우리에게 주신 삶이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그것보다는 깨어지기 전에 어떠한 모습이 있었고 그것이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풍 3초도 끝냈고 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이 이야기를 이해하겠지만 그냥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이것이 믿겨지는 하잖아 당신 원래 삶은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야 지금 당신 망가진 삶이야 당신이 깨어진 삶이야 이렇게 말하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것을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 뭐 난 원래 이렇게 태어났는데 뭐 내가 망가진 삶이라 뭐 내가 더 나아진 삶이 있때 원래 인생 다 이런 거지 여러분 교회 밖에 나아가서 당신 삶이 지금

깨어져 있어요 이것이 원래의 삶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누가 믿어 줄까요 그럼 여러분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지이 성경의 진리가 즉 우리의 원래 삶이 있다라는이 진리가 사실로 믿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럼 지금의 이 삶이 아니라 깨어지기 전에 그 삶의 모습으로 회복된 그 그렇게 정말 살아가고 있는 실체가 있어야지 믿을 것입니다 깨어진 삶이 회복돼서 하나님이 주고 싶은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것을 보면서 아 저것이 하나님이 정말 죽으 삶이고 저것에

비해서 보니 내가 정말로 뭔가 돌아가야 될 부분이 있는 것이 맞구나 아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것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죄로 인해서 님 멀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사람을 부르시는 거예요 제일 먼저 그 일을 위해서 부르신 사람 가데 하나가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에 주 사명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정말 믿음을 두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어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다른 깨어진 인생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돌아오도록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지만 아브라함 한 사람 부르지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함께 세워져 갈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함께 부르고 계셨던 거예요 근데 정작 그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도 꿈꿀 수 없는 비현실적인 약속 가운데 부르십니다데 아브라함의 현실이 뭐였어요 아브라함은 지금 고민이 뭐였어요 자녀가 없어요 대를이어야 되는데 족장 사에서 대려이는 건 너무 중요한 건데 근데

하나님이 부르시면서 하신 약성 뭐냐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거야 그니까 아브라함에게도 그 일은 자기의 상황 속에서 도저 일어난지 아닐 것 같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일을 행하심으로 그의 마음 가운데 확신을 주시면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100세까지도 아이를 갖지 못한 부림의 부부를 하나님의 이 계획 관으로 부르신 것도 어쩌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분명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다 알고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다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라는 것을 믿었고 그래서 때로는 안개와 같은 그 여정을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부 때 했던 약속이 뭐냐면 내가 너로 큰 민족으로 이룰 거야 약속하셨고 근데 그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불림의 문제를 해결 준다는 얘기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 싶었던 일을 알려주시는 거예요 큰 민족을 이루겠다 그리고 내가 너에 너와 약속하는데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더나가 너는 복을 받을뿐만 아니라

너는 복을 전하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말씀하셨어요 그럼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주신다 했던 복이 뭘까요 아브라함이 자녀가 없는데 자녀 주신게 보일까요 복에 아주 일부분 파편일 수 있죠 근데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하나님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누리게 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면 하나님을 누리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은 감에 비교할 수 없고 다른 것은 사실 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수준이

될 겁니다 여러분 어떤 존재를 누린다는게 뭘까요 한번 이런 예화는 어떨까 싶습니다 세계에서 부자를 뽑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자주 들어가는 사람이 워렌 버핏이 사람이 있습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 사람이죠 그가 회장으로 있는 회사의 자산이 이 애플 회 세배 규모입니다 그 얼마나 큰 회사인지 아시겠죠 그는 매년 경매를 통해서 뭐 하냐면 버핏과의 점심 식사권 대상자를 모집해요 월렌 버핏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사권 어 경매를 통해서 가장 많은 돈을 낸 사람이 거기에

당첨되는데 2022년에 월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 당첨권을 당첨된 사람이 지불한 금액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한께 식사를 위해서 246억 있니다 네 246억 내고 그 사람은 버핏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잠깐 동안 버핏과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여러 대화를 하면서 삶의 경험을 얻을 수도 있고 어 그 당첨된 사람과 동반 최대 일곱 명까지 한기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금액입니다 그 사람은 그 시간 동안 버핏을 누리는 거죠 그리고 월렌 버핏은 그 금액을 전부

기부합니다 사실 핏의 가족이라면 핏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와 식사하는 것은 매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가족 삼아서 자녀 삼아서 함께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누리는을 날마다 우리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리에게 주신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서 하나님과 맺 그분을 누리는 것을 성경은 복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다른 어떤 거 내가 원하는 뭔가 잘되는 거 그것을 복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성경 말한

복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믿는다면 그분이 내 삶에 함께하시는 것 외에 도대체 어떤 것을 내가 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먼저 그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그가 복에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당신도 하나님을 누릴 수 있어요라고 전하는 사명이 그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아브라함을 먼저 깨운 시상에서 회복시키시고 그를 통해 그의 주변이

돌아오게 하고 그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하나님 섬기는 나라를 만드시고 그 나라를 제사장 삼아서 모든 열방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바로 그 부르심에 부름받은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이란 나라 가진 사명입니다 그들이 먼저 깨어진 세상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통해서 회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어쩌피 저는 이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과 부르는 교회 또한 같은 사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제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정리하고 깨어진 세상에 대해서 정리하고 난 다음에 깨어진 세상이 정말 깨어졌다 하고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이 세상을 분석해 보고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어 저는 이 세상이 정말 깨어졌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하나님을 잃어버린 깨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모두 존재하는 하나의 아주 근원적인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불안 있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샬롬이라 말 샬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말해요 그것과 정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못 누리니 당연히 불안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을 보면 어떻게든 다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지불을 하나 마련하라고 합니다 영끌네 영웅까지 끌어서 아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여러분 오늘 먹을 것에 걱정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사실 대다수 사람에게 아주 특이한 케이스 빼고는 현재 먹을 것을 걱정하진 않습니다 다 오늘 먹을 것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면 한없이

불안한 것입니다 내 소유에 집이 없어도 사실 오늘 다 길바닥에 주무시지 않잖아요 다 집에서 주무시고 오셨잖아요네 내 집이 없어 사실 월세와 전세 살아도 내가 집에서 살아가는 것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겠지만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방편을 도모합니다 우리 불안을 극복하고 불안을 예방하고 불안을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모으고 재산에 불리자 노력합니다 돈이 있으면 안정감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재

못살만큼 정말 그러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진 않아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 불안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은 일을 하지만 일을 계속 못할까 봐 불안하고 없 불안합니다 노후를 걱정하면 노후가 불안하고 뭐 하면 뭐가 불안하고 근데 여러분 이것도 또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가 유독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불안증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 저희 누님이 외국에 살고 있어요 그니까 가끔 얘기를 나누는데 그 외국만 하더라도 집에

대한 념이 저라는 르다고 낄 때가 있어요 대부분의 외국에 있는 많은 나라에서 집은 그냥 거주를 위한 수입니다 내가 이 집을 자녀에게 물려줘야지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렌탈로 살아갑니다 월세로 살아가요 무리에서 집을 살아가려는 사람을 보면 바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무리에서 고생하냐 근데 우리는 유 모아둔 것이 없으면 가진 것이 없으면 불안하게 만드는 일에 우리가 가진 이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세뇌와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모이면 주거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끊임없이 토로하고 이야기하면서 그 불안을 잘 준비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근데 여러분 다시 한번 좀 그런적 질문 던져보면 불안은이 세상에 왜 생겨났을까요 세상이 원래 불안만 부족할까요 유의 통계를 보면 전 세계에서 땅에서 생산되는 음식은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만큼 충분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 주만 또 자료 사때 동화에 보여 나왔던 기사를 하나 보니까 어 지금 인류가 버리고 있는

것에 255% 활용하면 모든 기근을 다 채울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욕심이 문제입니다 불안한 심리가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낳고 그로 인해서 사실상 지구에는 모든 사람이 먹고 살만큼 충분한 음식이 있지만 그중에 일부은 더 가지고 살다가 버리고 그래서 3분의 정도의 음식은 버려지고 있고 동시에 반대쪽에는 그 게임에서 밀려나 있 사람들이 먹지 못해 굶어 죽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오랜세월 반복되다 보니까 지금 상위 0.1% 갖고 있는 전체 자산이

하위 90% 가지오 자산보다 더 많습니다 러분 정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을 주셨고이 세상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기 바란다면 이미 충분한 땅의 공급은 있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독점하고 대대로 소유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빈곤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하나님 원하신 세상의 모습일까요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모으려고 하고 누가 먼저 모으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모으며 경쟁하기 시작하고 그 안에 누군가는 너무

많이 누리고 누군가는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기적 경쟁적인 삶을 살아가니까 그 안에서 누군가는 모아서 조금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다라 발생 현상이 있습니다 이기적 경쟁한 삶 속에서 모두의 깨어진 마음이 더 깨어지고 상처받으며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데 이 병도 같이 발전하고 있죠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발생하는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뒤섞이다 보니까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어다가

된통 당한 경험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적당하게 국민 이보의 2023년 통계 자료를 보면 나와 같이 있어줄 사람이 부족하다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남겨진 것 같다고 느껴진다는이 질문에 대해서 난 그렇다라고 대한 사람이 모든 질문에 30% 이상이 나왔습니다 사회학적으로이 질문에 대한 응답률을 고립감이 표현합니다 30% 이상의 사람들이 고립감을 느끼고 있어요 여러분 실제로 우리 정부에서 작년에 처음으로 고독사 고독사가 뭔지 아시죠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거 죽은지도 모르는 거예요 며칠 지에 발견되는 거예요 처음으로 고독사 실태조사를 결과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의 한해 동안 고독사 발생 건수가 378명 378명이 한해 동안 고독하게 죽고 있습니다 10만 명당 66명이고 하루로 계산해보면 하루 평균 아명이 고독사로 죽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형제들이 좀더 긴장하셔야 되는데 고독사 발생 비율 중에 성이 84% 아홉 명이 죽으면 일곱명 이상은 남자라는 얘기입니다 그 남자들은 고독하지 쉬운이이 생태에이 시대에 살고 있어요

여러분 한국의 외로움 지수가 발표된게 있는데 OECD 국가 중에 41개 국가 중에 한국이 외로움을 어 지수가 38위 이거는 좋은 쪽 나쁜 쪽으로 이제 있는 거예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없으니까 의지 사람이 없다는 쪽에 가까운 겁니다 도움이 필요할때 의지할 수람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결과가 우리나가 뒤에서 새내 번지 할 정도로 우리는 없다 우리나 그만큼 경쟁적이고 더 삶은 치열하고 경쟁적인 레이스를 막 해서 살아남았다 하고 있으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외로움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러분 우울증 증세가 OECD 국가 가운데 한 통계를 보면 1위입니다 한국이 우울증을 느낀다 사람이 37% 여러분 여기도 우리 지금 공동체 있지만 세 명 중에 한 명은 우울증을 느끼고 있 수 있어요 불안 지수도 30% 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실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어요 설교를 하는 저조차도 때때로 가만히 있으면 불안이 찾아와요 아 나 미래에 대해 준비한 거 없는데 아 나 집 없는데 나 갑자기 목사 못 하게 되면 어떡하지

우울할 때도 있어요 당연히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거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게 아니라 고민하는 거죠 이 세상에 이 삶이 진짜 최선일까이 세상이 다 이렇게 말하고 있고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도 편성에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세상 앞에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것이 우리의 존재적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아멘 우리는 지금이 세상의

모습들이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삶이 아님을 깨닫고이 삶에 우리도 확 휩쓸려 가지 않으려는 의지와 결단을 갖고 힘들지만 뒤돌아 맞서야 됩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돼요 남들 다 이렇게 살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바보 같은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렇게 다 살아가고 있을 때이 판을 바꾸지 않고 나 혼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남들 다 모으고 경쟁하면 살아가는데 혼자 다른 마고 살겠다는 것은

살아남아서 내가 무슨 모델이 되기도 전에 어 다 죽기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지금 내 삶의 방식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들이 꼭 최선이 아닌 것 같음에도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렇게 그냥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함께 부르십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늘 만들어 오셨고 그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지켜 주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러분 교회는 그 금요 표면을 뭐 해야 되냐면 한 주간 내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다음에 그 방식에 대해서 같이 나누고 또 내가 혹시 무너졌다면 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그래 나 혼자 이렇게 사는 거 아니구나 우리 같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더 나아가서 내가 이렇게 살다가 망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 지켜 주겠지 나는 믿음으로 연대하는 곳이 된다면 전 그것이 하나님의 공동체라고 믿고 있어요

이스라엘 부르시면 하나님 꿈꾸셨던 것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돌아오게 하는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그들의 그 특별한 삶의 모습을 통해서 깨어진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회의감을 느낀 사람들이 궁금증을 안고 돌아오게 하는 것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일을 위해서 가장 세상의가 고했던 애의 그 제 안에서

하고 있는 성들을 모세를 통해서 꺼내시고 그들 통해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들 또한 그들의 시대가 있었던 그들 시 다 이렇게 하고 있을 때 감당해야 던 다른 길이 있었어요 시대마다 세계관도 계속 변하기 때입니다이 약의 시대에는 세계는 론 세상이었어 다 다신론 사회적으로는 왕정으로 대표되는 피라미드 신 문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세상에 역행하는 나라로 살아가야 했던 거예요 당대의 보기 힘든 유일신 그리고 신정 안에서의 하나님 통치 안에

있는 왕정이 독특한 모습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에 등장하게 하셨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이 깨어진 상에 역행하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하나님 원하신 계획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까 우리가 모는 얘기 뭐 이런 얘기 불안에 대한 극복의 얘기 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가르쳤던 삶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세상과 달랐어요 만나의 법칙 기억하시죠 만나의 법칙 만나의 법칙 뭡니까 하나님은 더 모으는 것을 금지합니다 내것 이상의 것을

모으고 쟁여 놓는 곳을 금지시킵니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더 모으는 순간 경쟁하게 되고 한 명이 모으면 같이 모으면서 경쟁하게 되고 모은 것을 통해서 내 불안함 속에서 안정감을 거기에 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하나님은 우리를 불안함 속에 살아가도록 훈련하세요 다만 하나님이 함께하실 말미암아 그 불안함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도록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멘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하나님 저기는 왕이 있어요 우리도 왕 눈에 보이 왕 주세요 요청하기도 하고 불안함

속에서 이제 가난한 땅에 살아가니까 만나 때는 자기 마음대로 못했지만 가난한 땅에 살아가니까 불안 속에서 농경 사회에서 각자의 그 출에 따라서 빈부 교차가 생기며 하나님 원하시는 것은 손을 려서네 옆에 사람을 채우라는 거였는데 내 불안함을 이겨내고자 자기 곡간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돕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돕고 각자 자게 주신 재능으로 서로를 섬기며 연대하기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이 닮아가는 모습은 자꾸 애의 피라미드 가나안의

피라미드 주변나라 모습들을 닮아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나라와 자신들의 왕조와 자는 땅이 어떤로 유지되고 지켜지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사실상 열왕기서와 포로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서 가르치고 싶은 것은 바로 핵심이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끌려간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생존법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 것입니다 그 왜 성경이 왕정 시대에으로 다윗 이야기를 주목할까요 결국 이스라엘의 생존 방법이라 것 축소해 보면 다윗의 삶에 다윗의 생존법이

다 녹아져 있기 때문이에요 다윗의 삶이 언제 가장 아름다웠는가 언제 가장 그가 가장 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는가 모두 다윗이 하나님만을 굳게 의지할 때입니다 다윗이 자기 힘을 의지하여 자기 왕권을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방식으로 사용할 때 다윗도 위기가 왔어요 분 사실 성경은 다윗의 부끄러운 실패까지도 우리를 위한 교훈으로 숨기지 않고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그런 다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저는 기서가 솔로몬을 매우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솔로몬여 고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입술로는 아버지 다윗을 승하고 따라간다고 말하였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인생은 구와 같다고 말하고 있냐면 애의 하루와 같으다 번 우리 9장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서 내 아버지 다윗처럼 살아라 하여 내가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내게 준 율례와를 전한 마음으로 올가 주시더라 그리하면 내가네 아버지 다윗에게 이라엘 왕자의 사람이에서 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한대로 이스라엘을 다 여자를 영지 멘 솔로몬에게 다윗에게 주셨던과 똑같은 기회를 주셨어요 다윗과 솔로몬을 차별하지 않으셨다고요 네가 다윗처럼 살면 내가 다윗과 함께했던 것처럼 너와 함께할게 내가 너가 꼭 필요하단다 왜냐면 하나님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 왕이 필요해요 그런 왕의 다 나라가 필요하다고요러이 시대에도 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필요해요 하나님 마음에 맞는 교회가 필요해요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솔로몬이 성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보다 자기의 마음을 성전 삼기에 더 치중해야 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삶에 대해서 그 사 전체를 바라본 평가는 이렇게 맺어지고 있어요 그의 아버지 다윗은 주님께 충성을 하였으나 솔로몬은 그러지 못하였다데 여러분 솔로몬이 이렇게 되는 동안 하나님이 손 놓고 있었나요 그렇지 않아요 한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와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음 주님께서

스로에게 증거하셨다 주님께서는 번식이나 서로에게 서 다른 신들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로몬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하지 않다 솔로몬이 잘못된 길에 가고 있을 때 하나님 가만히 방치하지 않으셨다고요 여러분이 다른 길로 가고 있을 때 하나님 여러분 방치하지 않으실 거예요 근데 솔로몬이 그 하나님을 그럼에도 불 무시했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계시고 그래서 그 일에 성공하기를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삶에 삶을 통해 함께하고 싶으셔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셔서 찾고 찾으시며 때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바른 길로 와야 된다라고 당하셨고 선자 분내 말씀하셨고 하지만 결국 솔로몬은 자기에기를 가요 끝까지 깨어진 세상에서 깨 똑같이 가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그 택하고 갑니다 자기으로 기 을 추구하면서 결국 다실로 세상에서 유일신을 지키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누가 망쳤으니 솔로몬입니다 왕으로서 이러 이런 거 하지 맞는 않는 그런 왕이 돼야 된다라는 약속도 솔로몬이 다 하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건축 사업을 위해서 업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강제 노역 시킵니다 이거 누가 했던 일입니까 바로가 했던 일들이에요 애굽의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사람들을 강제 노역 시켜서 그때 강제 노역 당했던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거 아닙니까 우리 살려주십시오 근데 솔로몬이 제 2에 바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근데 이러한 솔로몬의 모습을 보고 아 잘못된 일 갖고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아 저것이 나의 롤 모델이야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죠 누구예요 아들입니다 역시 우리 아빠 아 우리 아빠처럼 통해야지 아 왕은 저어지 솔로몬의 모습을 강력한 왕이라고 바라보면서 나도 저 강력한 왕권을 갖고 싶다 소망하는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르보 이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은 12지파에게 땅이 분배되고 지파가 모여 사니까 어떻게 보면 그 안에 12개 공동체가 연합 있는 곳입니다 그스 왕이 되려면 12두 지로부터 다 인정받아 왕이 되는 거예요 그 다윗도 12두 지파에게 인정받아 왕이 됐거든요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죽은

이후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 줄 거라고 믿으면서 왕으로 추대 받으려고 세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근데 이 로보이 남쪽에 있으니까 북쪽에 있는 지들로 지지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 이스라엘은 통이 왕국이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지파들이 다윗의 가문이었던 유다 지파의 통치권 인정하고 중앙 정부에 협조하지 되는 그런 형태였어요 근데 이 북쪽에서는 솔로몬 때가 참았지만 지금 이제 불만이 가득차서 여로보암이 왕이 될 때 자신들의 아 여로보암이 왕이 될 때 자신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협상 대표로 여로보암을 세웠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왕권을 인정하려면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얘기한 겁니다 그래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온 회중에 르호보암이 그 뜻을 전했어요 근데 르호보암이 그것을 무시하고 로바 꿈 뭐예요 나는 솔로몬처럼 갈 거야 솔로몬 아버지보다 난 오히려 더 강한 철권 통치를 하겠다라는 비상식적이고 백성들의 시흥과 고충을 전혀 듣지 못하는 모습으로 로바이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한번 그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는 자 수로 상에게 하였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를 소 그러나는 이제 보다 더무를 신들에게 소 내 아버지는 당신들지 나는 당신들 스 이스라 그 다 어떤 상황이냐면 위에 있는 것이 아까 그 협상에서 아시겠죠 지난주에 했지만 그렇게 어어 기는 철권 통치에 힘의 통치 펴겠다고 하는 것도 무식한 건데 그 협상을 할 때 르이 누굴 보내냐 강제 노동 감독관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까 지금 그것 때문에 불만이 터져 있는 건데이 사람을 보냈으니 그래서

사람들이 열받아 갖고 죽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보고 르이 깜짝 놀래 갖고 도망온 거예요 그니까이 로우이 얼마나 감각이 없었던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거 얼마나 무지한 왕이었는지 그 솔로몬은 으로 똑똑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고 그의 아들 로은 인간적으로도 무식하고 실력도 없는데 하나님도 의지하지 않는 거예요 그 그는 왕의 자질 종의 자질 다 없었던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래서 이제 두 나라가 완전히 나눠지나요 근데 이게 분열 왕국이라 그러는데이 분열왕국 시점에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될 것이 하나 있어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의 나라인 남유다를 택하시고 북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비록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나눠졌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아까 이제 하나님께는 그런 도구 세상 앞에 하나님을 드러낼 모델이 너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북 이스라엘 왕이 여로보암이 됐 때 쿠데타를 켰지만 불구하고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은 똑같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로보암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했다 너는내는 모든 지역을가 것이다 내가 나의 속 다리시 것 같이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고 내가 가르신 대로 살며 내와 명령을 지켜서 내가고 앞에서가 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가 다 왕들을 경하게 세운 것 같이 내 왕도 고하게 어서 이스라엘을 너희에게 맡기겠다네 그 여로보암에게 북이 여로보암 하신 말씀이 놀랍게도 내가 다윗 왕조를 경고하게 세운 것 같이 여러분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다윗 언약이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그 약속을 솔로몬에게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에 만든 로에게 주시기 때문이에요 다윗은 그만이 누릴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은혜를 누린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도 주고 계세요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살면 네가 다윗처럼 살면 내가 다 은혜를 너에게 함께 하겠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는 다윗이 누렸던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원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원하고 그 끈끈함을 원하지만

다윗과 같이 다윗 같은 마음으로 태도로 하나님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나는 다윗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다윗과 같은 건 누리고 싶어요 다윗에게도 어쩌면 너무 우리에게는 위안이 되게 다윗에게도 연약함이 있었잖아요 근데 다윗이 삶에서 다 무엇 냐면 그 다에 하나님이 끔찍한 마음 정말 진실된 그 마음을 하나님은 보셨던 거예요 다윗에게 주셨던 그 기회를 여보에게 주십니다 다윗에게 주신 복을 여러게 주시는 거예요 내가 나를 너에게 줄게 네가 다윗이 한것같이 명을 따르고

가르치 살며 율리 시키며 내가 바르게 살면 근데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 좀 걸리는 것은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고 거예요 아 저 어떻게 해 그럼 난 다윗처럼 못 살겠다 저 부분에서 쉽게 낙오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분 잘생각 다윗은 그럼 하나님 영향 모든 걸 따르냐 문자적으로 지켰고 하면 그렇지 않아요 다윗도 실수하고 다윗의 잘못된 선택으로 해서 주변에 피해가 발생하거나 다윗 삶도 위태로워지는 순간도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말 문자적으로 하나도

빠지지 않고 지켜야 된다라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 향한 정말 간절한 태도를 말하는 걸 거예요 너의 그 마음이 진짜인가 하나님 따르기 위한 그 진실한 애의 과정들이 있는가 넘어질 때가 있어도 계속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가 우리의 연약함으로 잘못된 결과가 나오거나 결과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 진실한 마음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서이 세상은 다 이렇게 가지만 반대로 돌아서서 위태롭고 힘들 때 있지만 살아가고자 하는

그 애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의 그 마음을 받으시는 거예요 근데 그 마음도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아 다 이렇게 하니까요 하나님 하나님 아시죠 여러분 여로보암에게 다윗과 같은 길에 걸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것은 는 남유다 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과 남 모든 왕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여러분 분열왕국 이후에 열왕기서는 서술 방식 교차 서술 방식을 어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연대기로 기록하지 않고 남유다 왕 이야기 북 이스라엘 왕

이야기 다시 남유다 왕 이렇게 교차로 서술하면서 두 왕국을 골고로 보여줍니다 이 서술 방식 자체가 남한국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비록 분열되어 있지만 두 왕국 모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고 하나님께 두 나라 보 통치하고 계시며 두 나라 모두 그래서 잘못했 때는 예언자를 분해서 하나님 뜻 전하시면 함께 이루어서 원하셨던 거예요 이 두 왕국을 평가할 때 평가의 기준이 무엇이냐면 다윗의기를 따라가는 가요 북 이사라의 경우는 여로보암이 다윗 세기를 따라가는가

그 실패한 이후에는 너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즉 두 길이 있는 겁니다 다윗의 길가 여로보암의 길 그 길 가운데 어떤 길을 갖느냐를 갖고 평가받고 있어요 여러분 뭐 저도 옛날 그렇지만 여러 부암 르함 이름이 비슷해서 여러분 아마 늘 헷갈리고 오늘을 알았다가 내일 지나면 다시 누가 북 이스라엘 왕이었다네 할 수 있어요 네 저도 한참 또 고생했습니다네 제가 그나마 외우기 한 방법은 솔로몬 아들이니까 솔로몬의 리를 좀 기억해서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아들

남유다 왕 맨 처음에 어 이스라엘 유다로 하려고 때 둘 다 이응이네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왕이며 르호보암이 북이 왕입니다데이 두 왕이 똑같이 같은 출반 선에 똑같이 있는 거예요 다윗의 길에 갈 것인가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 솔로몬의 길 다른 모든 악한 길 세상의 길 바로의 길에 갈 것인가 근데 여로보암은 안타깝지만 그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처럼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왕의 길을 갑니다 우선 여로보암은 베델과 다니라는 북 이스라엘

두 지역에 금송아지를 세워요 원래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되는데 그 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 여보이 여러분 왜 그렇게 했을까요이 말씀면 잘 나와 있어요 지난주도 설교때 얘기했지만 한번 읽어 봅시다 시작 그런데 여호와의 마음에 하이 다시 나의으로 돌아갈수록는 다 이이 예 에 있는 주의 성전으로 제사를로 올라갔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에게 주인이 인자와 로로 돌아가게 나라 그들이 자기를 죽이고 다 여호와게으로다는 자이었다 다들에 성한 지상 계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 너무 러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를께서 신심이게 네여 여로보암의이 문제점을 잘 보셔야 돼요 여러분 여로보암에게 북이스라엘 왕을 맡긴 거는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여로보암에게 알 정도로 선지자를 보내서 예표하고 알려주셨어요 근데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생각을 까맣게 입고 아 내가 지금 쿠레타 일으켜서 왕이 됐는데 다시 이 백성이 날 버리고 가면 어떡하지라는 헛된 불안감 세상에 주는 헛된 불안감에 빠지는 거예요 자기가

하나님의종 라고 믿으면 가지지 않아도 되 불안감 있데 자기 피라미드에 꼭대기 있다고 생각하니까 누가 날 끌어내리고 내 나라를 다시 가져가면 어떡하지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살아가고 있는 삶의 어떤 자리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어떤 어 그 사명과 소명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거라고 생각하면 사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반대적인 헛된 불안감에서 좀 벗어나야 돼요 아 지금 내가 주신 이 직장이 하나님이 나 보내셨다고 믿으면 하나님이 만약에 이 직장에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그럼 책임지겠어 나가 돼야 되는데 우리는 괜히 헛된 불안을 갖고 일을 만들죠 나이 시장에 잘리면 나 불안한데 어떡하지 뭐 저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정말 기명의 목사로서 저 세우셨다면 하나님이 쓰실만큼 쓰시도록 믿고 가면 되는데 아 혹시나 나중에 뭐 안 뭐 몸이 안 좋아서 뭐 어떻게 해서 목회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고 그 불안감에 거기에 대한 준비를 나혼자 먼저 하고 있 그러면 저 또한 여러분의기로 가는 거죠 여러분이 불안감이 모두에게 있어요 여러분에게도 있습니다

이 불안감 앞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도 불안감을 그렇게 이겨내야 돼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찾아와요 불안 가면 예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말씀 붙들고 그렇게 불안감을 이겨내야 되는데 여로보암은 계속 헛된 행동을 합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그 성소에 세운 황소 신상은 농경시대의 신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나의 강 유역은 대대적으로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애굽에서 그들은 그 신을 받고 그러니까 그들이 금송아지 만든

거죠 하나님의 성체를 어떻게 만들 수가 없으니까 뭔가 눈에 보이는 건 필요하니까 여기 여기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 농경사 이니까 여호와를 상징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우상숭배와 혼합된 것입니다 즉 여러 보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한 거 동시에 행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판단은 정치적이 어떤 거예요 바로 앞부분에서 여로보암이 어떤 길를 가야지 하나님 말씀이 주셨지만 여로보암의 나라를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인데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정치력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생각이에요 제가 앞에서 깨어진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깨어진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삶을 삶에서 우리에게 찾아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돈에 집착합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처럼 여기고 없는 것 큰 두려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방법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그들은 하나님이 없으니까

뭘 의지하고 살겠어요 근데 성경 말하면 뭐냐면 우린 달라야 된다는 거예요 너희은 달라야 된다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은 그렇게 할지라도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삶을 살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 있는 거 알고 계세요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정말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지키시 있다고 날마다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제발 좀 믿어라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 약속을 진짜로 믿지 않습니다 결국 여기에 판가름이나요 신앙은이 문제에서도 진짜로 믿는가 예배 때 하나님 믿는 건 다 믿죠 내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 믿는가 안 믿는가 어떤 사람들 하나님 믿는 말하지만 실상에서 하나님은 그저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시는 분 정도이고 내 삶에서 진짜 믿음이 필요한 순간에는 믿지 않고 세상과 똑같은 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날마다 예배했을 쉬지 않고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바알을 섬기는 가나안의 문화를 따랐습니다 농사가 잘 돼야 되니까 농사가 잘되는 것도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인데 농사가 잘되기는 바을 섬겨야 된다고 하니까 광야에서는 하나님 필요했지만 농경 사에서는 발이 필요하지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일상에서는 바알도 붙잡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예배하지 않나 하나님 예배하지 근데 그것을 하나님은 간음이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여러분 우리도 질문해 봐야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나는

도대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다 믿고 있는 걸까 하나님은 그냥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분인가 내 입을 받아주는 분인가 내 삶의 문제 앞에서서 잠잠 하신 분인가 난 그런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 정말 내 삶에 함께하고 계시고 내 삶을 돌보시고 지키신 분이라 것을 믿는다면 그럼 나는 그 믿음 대로 정말 살고 있는가 여러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자기 왕권을 수호하려는 그는 레위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았고 절기도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남유다 부기사 신앙을 분해서 자신의 나라의 백성들이 남녀로 가지 않도록 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실수였어요 여러분 이거 성공했을까 안 성공했을까요 정치적으로 성공했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 함정이 있어요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여러분이 깨운 시상에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일하면 여러분의 삶이 안정적인 같은 생각에 빠집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는 거 같아요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정치적으로 성공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망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망한 것과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방법에서 성공한 것이 함께 나타날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리도 어느 누가 내가 여러분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그 마음이 왜 없다고 얘기하겠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내 경험과 내 판단과 나의 방법과 나의 노하우를 의지해서 나아가기 쉽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하나님은 예배 때만 믿고 삶의 수많은 부분에서는 하나님보다는 다른 것이 내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우리 안에도 왜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근데 그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세운 그 안정감이이 땅에서 아무리 크고 경고하고 해도 그것이 진짜 나를 지켜 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내가 권력자가 되면 근심이 없을까요 불안함이 살던 거요 제가 봤을 때 걸렸을때 더 불안해 하는 거 같은데요 부자가 되면 근심이 없을까요 부자의 집에 담은 왜 다 그렇게 높을까요 자기가 누리는 것에 만족할까요 여러분 인류 역사 최고의 거부라고 하는 록펠러 회장이 있었죠 로펠로세라 돈이 충분한

것입니까 로펠로세라 얘기했는지 아세요 just a little more 조금만 더요 끝이 없어요 충분해 끝이 없습니다 예전에는이 형편 다 조금 나아지면 좋겠다 하지만 그 형편에 가면 더 나아졌으면 좋겠고 더 나아졌으면 좋겠고 끝이 없어요 여러분 끝없는 경주를 통해서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이 참 많으면 우리는 깨달아야 돼요 제가 가끔 이런 야 되지만 여러분 우리가 멋진 집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한 가정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멋진 침대를 살 수도

있어요 그것이 내 단잠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가질 수 있다고 아무리 세상에 외치고 있어도 정말 필요한 것은 그렇게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 하나님이 근원되시는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생명을 주는 햇빛 시원한 바람과 공기 참된 사랑 영원한 생명 상 수 없는 평안 모두 하나님이 근원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입니다 아멘 근데 우리가 세상에 가치를 쫓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이 되면 우리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공허하고 불안한 거예요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복의 근원이자 도구로 사용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나라의 왕인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이 기회를 버립니다 두 왕 모두 다윗의 길를 가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평생 동안 뭐하다 끝나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 두 왕의 인생을 로망과여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 사이는 늘 전쟁이 있었다 똑같은 놈 둘이 만났으니 서로 뺏길까 봐 자 암의 뒤로이어서 아비아 아비 혹은 아비고 하 암 니다

왕 다음에 아비야가 왕이 됩니다 그는 그럼 다시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너는 어느 길에 갈 거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마리아는 그 아버지가를 모두 그대로 따랐으며 그의 두산 다의 마음만을라서 주 하나님 앞에서 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는 다을 생각하셔서 예루는를 주시고 그의를셔서 예루살렘을께 세워주셨다 다윗은 주께서 고의는 그 안에 주님의 다네 다윗은 그랬지만 아비야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아비야는 다윗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3년의 짧은 통치

후에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 지켜주겠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실하 때문에 우리의 불신함 불구하고 다시 그 왕로 이어갈 기회 주십니다 그래서 그의대 지켜주셨고 그의 아들이 왕니다 그가 아입니다 그이기도 한번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네 드디어 가이습니다 해야 것은 41의 다윗과 같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 남녀다 39명의 왕 중에 다윗의 길을 걸어갔다 평가받는 여덟 명의 왕 중에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다윗의 길를 걸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가 걸었던 다윗의 길은 무엇일까요 다윗의 길은 마음이 아니라 실천이 마음이 있으면 실천 아니까 그가 했던 일을 한번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는 성를 따라 으로 내고 주이든 모든 상을 세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 세라를 섬기는스러운 상활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 할머니를 마 리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사는 할머니가 만든 정스러운 상을 통해서로 신내에서 자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상당이 모든 죄

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자의 마음은 생의 한결 다네 그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하는 것은 안 하고자 애던 왕이었어요 그를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할머니 할머니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해야 되는 관계적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도 그는 왕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 마음을 살피는 왕이었다는 거죠이 왕이 일왕 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수청을 해요 같이 근데 그 같이 공동 통치하고 뒤에서 이렇게 하고 이런

것을 다 겪는데 불구하고 그가 나중에 이렇게 했다는 거 대단한 거죠 그 그는 그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왕이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왕으로서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거 저는 쉬운 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리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 앞에서 있는 사람이잖아요 거기서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보고 으로 갈 때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근데 아사가 그 길에 갔습니다 물론 그도 완벽했던 건 아니었어요 말씀에서도 들어가듯이 그의 부족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올려졌습니다 아사가 높이 평가받아야는 것은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 아까지 이어졌던 우상숭배의 길에서 그가 단호하게 떠났다는 거예요 아사가 통치도 그때 북이스라엘 왕도 바뀝니다 한번 이어 보겠습니다 시작에여 의 아 나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서 그 동안 이스라엘을 가였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오시게 악한일을 하다 그도 그의 신 어떤 악한일을 그대로 걸었으며 또 이스라엘를 게하는을 그다네 여로보암의 아들도 어 왕이 되는데 단 2년 동안 나라 다셨는데

그 짧은 기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악한 길 곧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여로분 왕조는 나답 통치 이염제 막을 내립니다 바사라는 사람이 그 아들 나답 죽이고 왕권에 빼앗은 쿠데타를 일으킨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길을 여로보암의 가문이 잘못된 길를 갔으므로 바아사의 쿠데타도 어쩌면 심판의 몽둥이로 사용하신 다음에 바사에 다윗의 길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금 여로 밤의 길을 가고 맙니다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는

속에서 이서 성 이스라엘 삼다 그런데 너는 호 같은 이스를 하고 그 죄에 내가을 다여의 아의처럼네 그래서 이 바도이어서 바사 엘라가 왕이지만 왕이지 2년만에 신하였던 군 의로 또 죽임을 당하고 또 왕조가 바뀝니다 근데 이 또 시리가 왕이 됐는데 왕으로서 인정받기도 전에 왕이 타를 한지 7일 만에 왕권을 빼앗겨서 자살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또 디니고 오리가 그 왕권을 두고 싸움 끝에 군사관 오리가 왕에 오릅니다 그리고 오므리 또한 여로의 길로 평가받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께 시 그 악한 정는 그의 전에 보다 더 심하였다 그는 가지 아들 여러를았다는 이스라엘에게 죄를 게하고 또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였다네 지금이 사선이 왕조가 바뀐 거예요 쿠데타다 다 여로보암의 나다 갖다 끊기고 바아사의 엘라 갖다 끊기고 시무이 갖다 끊기고 오물이 그니까 지금 자신들의 힘으로 왕조를 세웠던 왕조를 고자 했던 북 이스라 역사가 이렇게 흐른다는 것을 열왕기서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리가 12년을 통치 후에 그의 아들인 우리에게

진 아합의 시대가 오는 것으로 성경은 이어지고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뜻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세워서 활동하게 하는 것으로 역사가 흐르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그 이야기는 리 다음 서로 아마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소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리고 다윗을 통해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그리고 지금 교회를 통해서 하고 자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 앞으로 초청받은 것이죠 그것은 그들과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군가가 따라 모델이도록 하시는 것니다 깨어진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다른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서 그 삶이 무엇인지를 그 삶 자체로 주의 빛을 담아서 세상에 전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내가 먼저 나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성이 주는 따라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그 영적 거인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남들은 모두 다 우리 시대에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갔던 성경의 사람들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보면서 우는 그 말씀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발적을 보고 걸어 갔어야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서 왜 나는 다윗이 경만 하나님은 내 삶에 오지 않느냐 없느냐고 물으면 주님은 네가 지금 걸어가는 길이 다기가 틀렸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갈래길 가운데 한 갈래길을 오늘 걸어가고 있고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의 길이라면 하나는 여로보암의 길이에요 여로보암의 길은 자신이 왕으로서 주인되어 걸어갔던 길이고 다윗의 길은 하나님을 왕으로 따르는 종의 길이었습니다 여러 길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길이었고 다윗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나님 안에 있는 길이었습니다 다윗 삶은 하나님께 받으셨고 여러분의 삶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자국을 따라 걷고 계십니까 여러 을를 수 있는 기회가 저는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도지

않았어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다윗의기를 함께 걷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맡기신 이 시대를 밝히는 한 명의 성도 한 명의 예배자 그리고 주님의 사랑하시는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가 주님을 힘써 따르며 세상에 주님 드러낼 수 있기를 우리가 소망하며 오늘도 그길을 나아가기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