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사무엘상17:34-37 / 하나님 지금 이곳에 / 강정규 목사

2020-10-23 · 사무엘상 17:34-37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느 날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로버트 인거솔’이란 사람이 큰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신론 강연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강연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그는 매우 흥분한 어조로 갑자기 자신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더니 신에 대한 유명한 도전장을 냈습니다. “내가 신에게 앞으로 5분의 시간을 주겠소. 나는 5분 동안 신을 저주할 것이요. 신이여,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시고 나를 형벌하시오.” 그리고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로 신을 모독하는

발언을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5분 후에 그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더욱 열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만하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뒤쪽에 있던 노인 한 사람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소?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내가 감히 당신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당신은 오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의 비존재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생각하오. 왜냐하면 내 경험에 의하면 내가 섬기는 나의 신은 내가 그 하나님을 거스를 때 그는 나를 책망하시고 그는 나를 징계하셨소. 왜냐하면 나는 그가 그대로 버려둘 수 없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이오. 오늘 당신에 대한 신의 침묵은 당신이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만 하오.” 라고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D.L 무디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에도 에 관해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에게 한 여성도 찾아와서 “하나님이 저를 징계하시는 것 같지 않은데요? 하나님이 저에게 벌주신 적이 없습니다.” 말하였습니다. 그 때 무디 목사님이 말했죠. “그러면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말에 그 성도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얼마나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요.” 이에 무디 목사님은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하였습니다. 즉, 이 두 가지 얘기의 공통점은 징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이며,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얻기 위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이 이야기에서 누구의 마음에 더욱 가깝습니까? 무신론 철학자의 말입니까? 한 여성도의 말입니까? 아니면 나이 많은 한 그리스도인의 말입니까? 고난을 해석해야 합니다. 내게 닥친 고난 자체를 바라보면 아프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마음으로 내게 주어지는 아픔과 어려움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지난 2주간, “하나님과 사귀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말해왔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여러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돕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고, 우리를 양에 비유해서

목자의 음성이라는 표현도 있으니 가능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의해야 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방금 말씀하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방금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에게 이 두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자칫 이 두 이야기는 다른 것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1번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육이 아니시기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육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드뭅니다. 오히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와

영적으로 교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과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합니다. 저는 기계를 좋아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공간에는 보이지 않지만, WIFI 신호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호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 신호를 잡아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기계가 있고 가능하지 않은 기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은 와이파이를 잡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컴퓨터는 와이파이를 못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무선랜카드’라는 무선 신호를 잡는 장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은 그 기능이 다 들어가 있으므로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공간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가 있음을, 전파가 있음을, 모두가 믿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공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고 믿지 않고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와이파이가 있음을 확신하려면 신호를 잡아보면 압니다. 무선랜카드의

기능이 있으면 신호를 누구나 잡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도 하나님과의 소통이 가능한지는 확인해보면 됩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사귐을 누릴 수 있는 기능이 있을까요? 있죠. 그것이 우리의 존재적 특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생령을 불어넣어주신 피조물이고,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영으로서 마주할 수 있도록 그러한 능력을 부여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예배하는 여러분들이 보이지 않는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하고,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것은... 성경이 약속한 일이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며, 오늘 이 시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은혜입니다. 여러분. 동물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그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존재하느냐의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모든 자연세계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동물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는 있지만, 그들이 성령으로 교제하며 주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동물이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은 그 세계의 일부로서 그곳에 두시는 것이지, 우리처럼 연속성을 갖고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에게 오는 세계로 부활을 통하여 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화든 뭐든 여러 가지 창조의 방법들은 토론의 여지를 두더라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특별한 존재라는 점은 우리 안에 우리를 특별하게 하신 하나님과의 매우 특별한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로봇이 기도를 한다고 하나님이 들어주시지는 않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듣기도 하고, 하나님도 여러분의 기도를 듣습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우리 또한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계신 그분의 일하심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가능한지 궁금하다면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서 그분과 접속하여 그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살아계심을 믿으며 그분으로 인해서 이끌림을 받고 있는 내 삶의 모든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이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이 땅의 상식과 마찬가지로, 내 삶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성경의 진리를 내 신앙의 상식으로 믿으며 그분이 여러분의 삶에 거할 자리가 있도록 하십시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신앙의 여정을 ‘자라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시간과 함께 성숙하고 여물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제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사귐’이라는 것도 이 안에는 그러한 시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사귐은 일시적인 한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한눈에 사랑에 빠질 수는 있을지언정, 한 순간의 시간에 대해서 사귐이라고는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감정으로 서로가 마음을 열고 깊은 관계로 나아가며

친밀함을 누리는 것이 사귐입니다. 세상은 어쩌면 둘로 나눠집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자. 다윗은 소년 때부터 눈에 보이지 하나님을 바로 옆에 계신 분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전쟁 중에 있는 형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직 그는 전쟁에 참여할 나이도 아니었어요. 그때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우고 있었는데, 이 당시 전쟁은 대장끼리의 한방이 중요했어요. 일기토. 양쪽에 대표가 나와서 1:1 대결을 벌이는데 이것이

단순한 기싸움을 넘어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상황입니다. 근데 블레셋에 끝판 왕이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 골리앗. 그 거인 같은 장수가 나와서 외칩니다. “너희 중에 한 놈이 나와서 나랑 한판 붙자. 그가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대신 내가 그를 쳐 죽여 이기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 (삼상 17:9) 근데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골리앗이 나와서 그러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왕이었던 사울은 뭘 하고 있었는지 압니까? “쟤 좀 무찔러줘. 쟤 이기는 사람에게는 많은 상을 주고, 왕의 사위로 삼고, 그가 속한 집안의 모든 세금을 면제해 줄게.” 이렇게 회유를 해도 어느 누구도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왜 안 싸웁니까? 질 것 같거든요. 죽을 것 같거든요. 죽고 나서 사위가 무슨 의미가 있고, 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형들에게 도시락 전해주러 온 소년 다윗이 골리앗의 모욕을 듣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뭐 길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대를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 할례 받지 않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의 분노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말하죠. “제가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삼상 17: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삼상 17: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삼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윗의 삶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경험들이 충만했습니다. 자신이 양을 치던 때에 사자나 곰이 양의 새끼를 물어 가면, 그 맹수들을 물리치고 양을 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자였습니다. 그것이 그가 깨닫고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경험이 쌓여서 이제는 확신이 된 것입니다. 내게 경험되어졌던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 앞에서도 떨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매일 같이 하나님의 백성,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얘기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고백이죠. 그런데 위기 앞에서 그들에게는 ‘나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교리 안에서 존재하는 아주 멀리 어딘가에 계신 분이었어요. 그냥 책 속에 계신 분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그들의 예배는 무엇이었으며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종교행위들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자신의 삶 속에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런 경험 속에서 더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것이었기에,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렇게 그 믿음이 빛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성령님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분과 대화하는 것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과 경험들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 내내 해야 하는

훈련입니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오늘 기도의 시간, 그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아뢰며 그분으로부터 들으십시오. 하나님 계십니다. 하나님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감추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아무도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경험하고 알기를 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영적인 안테나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