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 예배 오늘은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마리아의 마음으로 예배하는 '마리아 예배'입니다. 예배팀, 방송팀, 안내팀 등의 활동 없이 모두 예배자로만 사는 하루입니다. PPT는 없고, 유튜브는 카메라 고정으로 송출합니다. 오늘은 신명기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신명기 31~34장까지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설교의 본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4개의 메시지로 정리하여 전달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제식 훈련 출애굽 1세대를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이제 신명기 시대에 남은 사람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현존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어른이기도 하고, 향후 역사에도 쉽게 견줄만한 이가 없을 만큼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 개인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끝없이 훈련받았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에게 이집트의 왕자가 되는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왕자의 권위를 사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모세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은 40세의 이집트 왕자로 있는 모세를 통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뜻이 앞섰던 모세는 결국 실수를 하고,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도망자가 됩니다. 그 일로 모세는 심히 위축되었죠. 그렇게 자신감 넘치고, 뭔가를 하고자 했던 모세가 광야의 목자로 40년을 살면서 이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삶은 사실 하나님의 큰 사명을 감당할 사람으로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셨던 훈련은 ‘자기중심성 버리기’였습니다. 모세의 의도는 좋았지만, 모세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명목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모세의 계획이 모두 망가지게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80세가 된 모세가 이제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이 되자, 반대의 훈련을 해나가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르는 훈련입니다. 제가 모세의 온유함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성경은 모세가 지면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온유함에 담긴 뜻은 ‘야생마가 길들여짐’의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야생마가 날뛸 때는 길들여야 하죠. 반대로 본인이 달릴 수 있는 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달리게 하고, 때로는 야성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은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훈련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도 모세의 인생처럼 훈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애굽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도 경험하게 하시고, 출애굽의 과정에서는 그 강력한 애굽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광야의 40년은 실패의 경험도 하죠. 또한 그것을 딛고 다시 승리로 나아가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십니다. 저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하신
훈련을 ‘제식 훈련’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가라면 가는 것이고, 옆으로 꺾으라면 꺾는 것이고, 멈추라면 멈추는 것이 제식 훈련이죠. 이 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주 말씀처럼 ‘여호와께만 듣고’ ‘순종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하나 하나님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진을 치는 방법부터 배우죠. 진을 칠 때는 항상 이스라엘 백성 한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이 있도록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하나님이 가장 앞서가십니다.
하나님의 상징인 언약궤가 가장 앞서갈 때, 그들의 모든 역사는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후에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든 힘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뒤따라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배움이 그들의 삶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삶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수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모세가 없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훈련한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길 기대하셨습니다. (신 31: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뒤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싸인을 항상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바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금 뭘 하고자 하시지? 하나님은 여기서 무엇을 기대하시지?’ 저는 이 질문 하나를 던지고 그 뜻을 살펴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제식 훈련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의 지휘관이 되셔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을 우리는 경험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방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문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신 것입니다. 그 전달자의 역할을 모세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이죠. 모세는 당대 최고의 국가였던 이집트에서 40년간 지도자 수업을 받았던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시간이 가진 의미를 모세는 잘 몰랐기에 자기 뜻대로 사용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것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언제나 그 말씀 가운데 머물 수는 없습니다. 말씀이
계속 그들에게 울려 퍼지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몇몇 사람들을 임명하죠. 그들은 모세에게서 배운 말씀을 각자의 역할과 임무 안에서 전달하며 가르칩니다. (신 31:9) 모세가 이 율법을 기록하여, 주님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에게 주었다. 신명기에서는 대표적으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모세가 말씀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정기적으로 율법을 낭독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듣게 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훗날 유대인들은 신명기의 명령을 따라,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3년에 걸쳐 모세오경과 시편을 차례로 낭독하였습니다. 또한 구약에서 말하는 장로는 부족의 ‘어른들’을 의미합니다. 각 지파와 족속별로 모일 때마다, 장로가 중심이 되어서 말씀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팸예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팸예배를 할 때면, 늘 팸리더들과 먼저 말씀을 나누죠.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오늘 팸예배에서는
당신들이 목회자이고 당신들이 설교자입니다.” 결국 우리의 팸모임도 말씀이 그 안에 울리도록 하는 시간이죠. 저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곳에서 소그룹 사역을 맡아 봤어요. 그 과정에서 오랜 관찰을 해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중심에 두고 나눔이 있는 공동체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같이 노는 것도 중요하고, 삶을 나누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나 말씀 앞에 함께 설 수 있을 때만이, 그 안에서 의미있는 삶의 변화가 생기거든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지속적인 나눔을 가지며 서로를 돕는 가장 핵심적인 힘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은혜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많이 있습니까? 부부가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다면 너무 좋은 것이고, 교인들이 만나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면, 그런 관계들이 내게 있다면 참 감사한 것입니다. 특히 형제님들은 서로 그런 것을 어색해해서 예배 후에도 모이면 사실 다른 이야기들부터 하거든요. 다른 이야기도 하십시오. 그러나 말씀에 대해서
생각과 은혜를 나누는 것도 늘 힘써 보십시오. (신 31:12-13) 당신들은 이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성 안에서 당신들과 같이 사는 외국 사람도 불러모아서, 그들이 율법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하는 땅에 살게 될 때에, 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당신들의 자손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나누어 갈 때, 그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갖게 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해나가시는 일을 나누고 듣고 경험하면, 모두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어린이나, 같이 사는 타국인에게도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옳습니다.” 어떤 분야의 권위자를 만나면 우리가 듣잖아요. 그것이 경외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삶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사람은 말씀을 걸러 듣는다고요. ‘이건
안 들을래, 이것도 별로야. 오, 이건 내 생각과 좀 맞네. 적자.’ 말씀의 취사선택은 ‘경외’가 아닙니다. 저는 복음 전파에 신비한 과정이 동반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신앙인이 내 주변에 있으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좀 남다름을 느낀다고요. 그 사람에 대한 맨 처음 생각은 어떠냐면, ‘세상을 저렇게 살아서 되겠나?’ 걱정과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으로 그렇게 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나 나나 별반 다름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오래 지켜보고 계속 지켜보고 자꾸 지켜보면, 그와 나의 삶에 있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게 되는 뭔가가 자꾸 느껴져요. 그가 나보다 더 뭔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더 잘살고 이런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삶에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고, 품위가 있어요. 저는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멋’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성도는 멋있습니다. 매력이 있습니다.
진짜 복음을 품은 사람의 매력, 그것으로 우리는 주변을 설득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당면한 눈앞의 문제가 있어요. 뭡니까?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엄청난 일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은 별 관심이 없으세요. 그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세상의 어떤 소리들보다 말씀의 요구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왜 그럴까요? 우리 앞에 당면한
큰 문제가 하나님께는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것으로 우리가 죽지 않도록 하나님은 충분히 하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면 그것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놓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더 시급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도 당면한 여러 문제가 있겠죠. 여러분도 지금, 이 예배당 밖을 나가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고, 여러분을 걱정스럽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우선순위가 달라야 합니다. 이 예배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 앞에서라면 내 생각과 방법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내 삶의 길을 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대로만 살다가 망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제가 지금껏 경험한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저는 말씀대로 살다가 망하는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으면 결코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라면, 우리가 서로 그 삶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삽시다. 우리 주님이 찾으시는 그런 사람이
됩시다. 3. 영원히 기억해야 할 노래 (신 31:19)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이 노래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증언할 것이다. (신 31:20)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뒤에, 그들이,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업신여기고, 나와 세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신 31:21) 그리하여 그들이 온갖 재앙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한, 이 노래가 그들을 일깨워 주는 증언이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아직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전이지만, 지금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신 31:22) 그 날에 모세는 이 노래를 적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주었다. 신명기 32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고 가르친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후에,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배신하도록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시지 않으세요. 다만 하나님은 이들의 미래까지도 아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미리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주님의 마음이 늘 이들 곁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에 문맹률이 낮지만, 고대 사람들은 문맹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써서 가르치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노래로 만들어 외우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의 방법이죠. 하나님이 섬세하고 디테일하십니다. 원데이 원바이블을 함께하시는 분은 최근에 신명기를 읽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긴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죠? 바로 그 부분이 모세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 저
산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모세는 그것으로 증인 삼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제가 하나님을 압니다’라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드리는 방법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를 우리가 고백하며 그분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행하였던 반역에 대해서 말합니다. (신 32:15) 이스라엘은
부자가 되더니, 반역자가 되었다. 먹거리가 넉넉해지고, 실컷 먹고 나더니,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반석이신 구원자를 업신여겼다. 이스라엘이 프토코스의 상태에서는 하나님께만 의존하더니, 먹고 살만하니까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음을 부정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그들을 돌봐주시고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셨건만, 그들은 도리어 그 환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어떤 상황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되었다고 느끼는 결과를 맛봤는데, 도리어 그 이후 신앙에서 더 멀어진 경험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것만 해결되면, 이 상황만 도와주시면, 이 관계만 풀어주시면...’ 과연 무엇이 진짜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되는가? 다른 무엇이 있어도 하나님이 내 삶에서 자리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복이 아닙니다. 모세는 우리가 그렇게 행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상처 입으셨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명을 잃고 이 깨어진 세상에서 괴로움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음 아프세요. 그런 우리를 돕기 위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셔서 회복의 길을 내어주셨는데, 그것을 알지 모르고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깨어진 세상에 대해서는 특별히 금요일에 그 주제로 설교를 했으니 우리 사귐 가족들은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처한 상황을 잘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사랑과 정의’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깨어진 세상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께 돌아온 사람들을 용서하고 죄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의도 있습니다. 그 구원의 밧줄을 외면한 사람까지 살리실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깨어진 세상이 경험하는 모든 저주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반드시
멸하십니다. 악을 봐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야 선한 사람들이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 32: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신 32: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모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명령하여 이 모든 계시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게 하십시오.
이것은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 메시지 성경 우리에게 구원주신 그 사랑을 함께 노래합시다. 4.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 그에게도 주님이 ‘여기까지’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 옵니다. 이것은 모세가 노래를 전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외친 그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 32:48) 바로 같은 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신 32:49) 너는 여리고 맞은쪽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줄기를 타고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소유로 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라. (신 32:50)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백성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네가 오른 이 산에서 죽어서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세를 통해서 참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모세는 너무나 뛰어난 영적 리더인데, 모세는 또한 누구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리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면, 저는 예수님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요, 그다음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이 모세입니다. 저는 모세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영적인 리더들에게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영적 리더는 목회자만이 아닙니다. 가정에도 영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각 사역 안에 영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신앙으로 목양해야 하는 자리에 서 보면, 아마 다들 경험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히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을 통해 누군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기쁨이죠. 감사하게도 제 삶에는 저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록 저를 은인처럼 대합니다. 제가 은인이죠. 그러나 저 또한 저를 위해 애써준 수많은 저의 이끄미 덕분에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된 것이니, 교회는 그렇게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전하는 공동체로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40일을 대면하는 매우 특별한 경험도 하였던 하나님의 동역자인 그의 마지막은 많은 도전을 줍니다. 우선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에게 그가 지금껏 목표로 달려왔던 가나안 땅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것이었죠. 그러나 출애굽 1세대의 실패로 하나님은 계획을 바꾸십니다. 동시에 모세의 사명과 역할도 바뀐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그의 사명이 끝난 것입니다. 속상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어쩌면 출애굽 1세대와 그리고 2세대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모세도 이제 그 무거운 사명을 다 완수했다는 기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이 마지막에 대해 독특한 기록을 함께 전하는데,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라는 기록입니다. 즉, 그는 늙고 병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사명을 다한 후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의 자신의 끝이 정해지자,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모세를 위해 30일 동안 애곡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누군가를 축복하며 떠나고, 누군가를 기억하며 애도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이별이죠. 저는 모세의 죽음을 보면서 찰스 웨슬리가 남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 해나가신다.’ 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 his work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을 통해 사실 이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뛰어난 지도자였으나, 그 또한 하나님의 일꾼이었고, 그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없다고 하나님의 일이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가 저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따르미를 남긴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죽었으나, 그는 사람을 남겼습니다. 그의
일을 이어서 해나갈 동역자이자 따르미. (신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고, 우리의 삶이 가장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무엇을 남기고 싶습니까?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까? 재산을 남기고 싶습니까? 뭐, 다 좋습니다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이어갈 사람을 남기십시오. 깨어진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을 받은 내가 불빛을 내는 하나의 초와 같다면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떠나야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나를 태워서 누군가에게 불꽃을 전달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내 삶을 살아낸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빛으로 사십시오. 빛으로 주변을 밝히십시오. 빛을 남기십시오. 이 시간 끝으로 모세를 통해서 일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찬양합시다. 우리는 연약하고, 우리는 유한하지만, 우리를 변화시키고 고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계속해나가시는 우리의 전부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