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열 재앙 : 완고한 마음을 다스리심 / 강정규 목사

2021-04-25 · 출애굽기 7-11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는 출애굽기 7:14부터 11:10까지 나오는 ‘열 재앙’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때로는 한번 작심하고 외우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피, 개, 이, 파, 악, 독, 우, 메, 흑, 장’ 일단 이 사건은 본격적인 대결 전에 금요일에 말씀으로 나눴던 지팡이가 ‘탄닌’이 되었던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바로는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 사건의 마지막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출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바로가 하나님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본격적인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열 재앙이라고 부르죠. 결론부터 말하면 10번째 재앙이 애굽에 임하고 나서야 바로는 백기를 듭니다. 그때 항복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결의 결과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가 어떻게 저항하는지 입니다.

그런 바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열 재앙 사건을 시작해 보도록 합시다. (출 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이 재앙의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길 거절한 바로의 완강한 마음입니다(14절). 바로의 마음이 ‘무겁고 둔하다’고 표현됩니다. 이적을 보이라는 요구에 응해서 모세가 이적을 보여주었음에도(9-10절) 변하지 않는 바로의 강퍅하고, 완고하고, 우둔한 마음이 이후

재앙을 초래한 것입니다. 마음이 완강하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확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번역과 메시지 성경은 공히 이것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바로의 고집이 세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지금 어떠한 모습일까요? 여러분, 혹시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실 성경에는 고집이 센 사람들이 더러 있었죠. 모세도 야생마가 길들여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다듬어질지, 바로처럼 부러질지 어쩌면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첫째 재앙 : 피 - 물이 피로 변함(7:14-25) 재앙이 내려지기 전에 모세는 바로에게 경고를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바로에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듣지 않습니다. 결국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강이 핏빛으로 변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물에서 악취가 났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여러분은 이 기록을 보면서 혹시 어떤 현상이 떠오르십니까? 적조현상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강물이 붉은 빛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고, 그로 말미암아 악취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주의적 해석을 따르는 학자들은 이것이 초자연적인 적조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적조현상이 아닌 전무후무한 재앙으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집트의 술사들이 마치 지팡이가 뱀이 된 것처럼 이 일도 따라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 중에는 이것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재앙을 막은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행하여 상황을 악화시켰기 때문입니다(22절). 만약 이것이 정말 이들의 능력이라면 그치게 하는 것도 가능해야 할 텐데, 오염된 나일강을 원상태로 회복시킬 시도는 하지 않고,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일을 따라서 행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자기 술사들도 행했다는 이유로 다시 마음이 완악하여 집니다. 이 현상은 7일이 지속되고 사라집니다. 7일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죠. 창조의 시간과 같습니다.

이는 애굽에 이룩된 창조의 완전함이 7일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창조세계의 파괴입니다. 이제 그 역창조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2. 두 번째 재앙 : 개구리(8:1-15) 이번에는 강에서 개구리가 뭍으로 올라와 온 땅을 뒤덮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주의 학자들은 적조현상으로 인한 결과로서 개구리가 강물을 탈출하여 온 지면에 가득하게 된 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개구리를 생각하면 군대 시절이 생각나는데요. 제가 있던 곳은 포천 이동이었고, 훈련을 하러 일동으로 자주가고,

행군을 오래하면 철원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보직이 박격포라서 무거운 포를 메고 하염없이 걷는데요. 행군을 하다보면 개구리가 그렇게 많았습니다. 걷다보면 이미 밟힌 개구리도 있고 살아있는 것도 있는데, 어쨌든 죽은 것이라도 밟기 싫어서 피해서 걷죠. 그런데 너무 많기도 하고, 한 3~4시간 걷다보면 그거 피할 힘이 없어서 그냥 밟든 말든 나중에는 생각 없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뿐인가요. 훈련 나가서 밖에서 자다보면 얼굴에 개구리가 올랐다가 내려가고, 때로는

그게 느껴져도 힘들어서 그냥 자곤 했었죠. 개구리가 덮힌 세상은 어땠을까요? 이스라엘의 번성은 축복이나, 개구리 떼의 번성은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개구리가 번성한 재앙까지도 바로의 술사들이 따라했다는 기록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바로의 술사들은 여호와의 기적을 저지할 능력은 없고 단지 모방하는 능력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정말 능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바로는 개구리 기적에 질려서 이렇게 요청을 하죠. (출 8: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모세는 이 기적을 행할수도 멈출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애굽의 술사들과의 차이이죠. (출 8: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자, 모세가 바로의 부탁으로 재앙을 멈춥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주목해보십시오. (출 8:15) 바로는 한숨을 돌리게 되자,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또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 이것만 해결해주시면....”이라고 많이 말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막상 그 일이 해결되면 다시 마음이 변합니다. “하나님 이 병만 고쳐주시면....” 그러나 고쳐주시면 다른 길로 가버려요. 우리는 바로로 대표되는 인간의 죄성을 이 본문 안에서 보면서, 내 안에 혹시 동일한 죄성이 있다면 말씀으로 소멸하고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3.

셋째 재앙 : 이 – 모기류(8:16-19) 세 번째 기적은 경고 없이 즉각적으로 내려집니다. 그런데 ‘이’로 번역된 ‘킨님’은 해석이 좀 갈립니다. 이로 보기도 하고, 모기류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제 바로의 술사들이 따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출 8: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출 8: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세 번째 기적에서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에게 술사들이 말하였을 때 바로가 들었어야 하지만, 마음이 완고한 자는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면 안 됩니다. 그것을 이길 힘은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생각나게 하고 우리가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4. 넷째 재앙 : 파리 - 곤충 떼(8:20-32) 네 번째 재앙은 파리 떼를 보내는 재앙이었습니다. ‘파리’라고 번역한 ‘아로보’는 파리를 포함한 여러 해충을 지칭하는 포괄적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파리와 같은 곤충 떼가 들끓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재앙에서부터 눈여겨 볼 것은 애굽의 모든 지역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에는 파리 떼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주고

싶은 메시지는 22절입니다. (출 8: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구별’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죠. 이번에는 재앙 가운데 하나님의 구별이 일어납니다. 구별의 이유는 여호와가 진정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출 8: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여 대하실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구별을 통해 이스라엘도, 애굽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달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는 부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표현을 내비칩니다. (출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제사를 드리지만, 나가지는 말라는 것이죠. 그러나 모세가 거부합니다. 광야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바로는 그럼 너무 멀리가지는 말라고 모세의 의견을 수용하며 이제 이 재앙을 없애달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파리 떼를 사라지게 하자, 바로는 또다시 고집을 부리며 백성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죄의 유혹과 특성인지도 모릅니다. 죄는 단호하게 끊지 않고 여지를 주면 조금씩 다시 우리의 삶에 파고 듭니다. 아주 조금씩 다시 자기의 자리를 우리 마음에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문을 열고 타협을 하면 곧 죄가 우리의 안방을

차지합니다. 5. 다섯째 재앙 : 악질 - 가축의 죽음(9:1-7) 다시 하나님의 경고가 주어집니다. 바로가 이 경고를 듣고 오늘 따르지 않으면, 내일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가축이 죽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나 바로는 듣지 않습니다. 모든 가축이 죽었다면, 그 다음 재앙들에 나오는 가축이야기와 모순이 됩니다. 자세히 보면, 9:3에서 들에 있는 가축을 칠 것이라 하였습니다. 들에 있는 것은 죽고, 축사에 있는 것은 살아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이집트인들의 가축은 죽을 것이지만, 고센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가축은 죽지 않을 것으로서 다시 구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바로는 백성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돌보지 않고, 지지 않으려는 완고한 마음을 계속 나타냅니다. 지기 싫어하죠. 하나님께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악된 마음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때라도 깨달았어야 합니다. 6. 여섯째 재앙 : 독종 - 악성 종기(9:8-12) 곧이어 여섯 번째 재앙은 악성 종기가 나는 것입니다. 화덕의 재가

날아가서 짐승과 가축과 사람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화덕은 이스라엘 백성이 벽돌을 만들기 위해서 매일 노동을 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하나님이 누구의 편에서 어떤 일에 대해서 심판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에 계시고, 그 견고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바로를 치시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의 모든 부분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통해 온 애굽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를 깨달아갑니다. (출

9:11)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말미암아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 이제 바로의 측근들까지도 종기로 인해서 심판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바로는 여전히 완고합니다. 7. 일곱째 재앙 : 우박(9:13-35) 하나님의 경고가 다시 한 번 주어집니다. 여기에 의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출 9:15) 내가 팔을 뻗어서 무서운 질병으로 너와 너의 백성을 쳤다면, 너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출 9:16)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 주어,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 하나님이 바로의 생명을 거두는 일은 쉬운 것입니다. 즉각적인 심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를 남겨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이 시대에 악이 즉각적으로 심판을 당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안에서 악에 대한 심판은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악을 심판해도 또 다른 악이 등장하죠. 악한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악이 존재하는 이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도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짙은 어두움 속에서 빛이 더 강렬하고 멀리 퍼져나가듯 말입니다. 바로 한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어쩌면 하나님이 더욱 하기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대하심이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출 9:20) 바로의 신하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자기의 종들과 집짐승들을 집 안으로 피하게 하였다. 말씀이 누군가에게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자들에게는 순종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우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이번에도 달랐습니다. 우박심판을 당한 후에 “이번에는 내가 확실히 죄를 지었다. 하나님이 옳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르다. 하나님께 기도해 다오.”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말만 번지르르 합니다. 바로는 비와 우박과 천둥소리가 그친 것을 보자 다시 고집을 부립니다. 그의 말은 바뀌었으나 그의 마음의 태도, 그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 여덟째 재앙 : 메뚜기(10:1-20) 여덟째 재앙에 앞서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다시 섭니다. (출 10: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이전과 달리 이제 바로를 질책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맛보았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비하다’라는 표현은 오랜만에 우리가 마주하는 단어이죠. 이 재앙을 앞두고는 바로의 신하들조차 바로에게 애원합니다. “왕이시여. 우리를 언제까지 괴롭히도록 두십니까? 저 사람들을 보내어 예배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여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시작합니다. 모두를

보내지는 않고 ‘장정만’ 가서 예배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도가 뻔한 것입니다. 아내와 자녀와 부모까지 모두 애굽에 볼모로 잡아두겠다는 것이죠. 바로는 아직까지 이 백성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9. 아홉째 재앙 : 흑암(10:21-29) 아홉 번째로 내려진 재앙이 시작됩니다. “흑암”의 재앙입니다. 흑암의 재앙은 빛이 있기 전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주었다면, 애굽에 내려지는 심판은 바로의 죄악으로 인해 점점 창조를 역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애굽 사람들에게는 ‘태양’의 숭배가 가장 심했습니다. 태양신 ‘라’가 있었고, 그의 후손이 ‘파라오’로 믿고 있었죠. 하나님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십니다. (출 10: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출 10: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애굽의 죽음의 세계가 되었고, 고센 땅에는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에 바로는 다시 협상을 합니다.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거절합니다. 양과 소는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것을 가지고 나가겠다고 말하죠. 그러자 바로가 끝내 하지 말아야 할 협박을 내뱉습니다. (출 10: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대답합니다. (출 10: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그리고 드디어 열 번째 재앙, 마지막 최후의 심판이 애굽에 선포됩니다. 10. 열 번째 재앙 : 장자의 죽음 – 초태생 심판(11-13장) (출 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처음난 모든 것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이 재앙은 9번의 경고를 무시한 바로와 애굽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창조의 역행’의 마지막 단계이죠. 창조가 생명이라면 심판은 사망임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바로는 항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열재앙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설교를 위해 남겨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9번의 경고를 통해서

바로는 돌아왔어야 한다는 것이죠. 경고를 해도 깨닫지 못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는 법입니다. 죄에는 항상 임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계점(Critical Point)에 다다르면 하나님의 심판은 나타납니다. 큰 그림으로 열 재앙을 정리해 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1. 피 (나일강) 4. 파리 (곤충류) 7. 우박 강가에서 바로에게 2. 개구리 5. 악질 (가축 전염병) 8. 메뚜기 왕궁에서 바로에게 3. 이 (모기류) 6. 독종 (악성 종기) 9.

흑암 불분명(왕궁 암시) - 바로의 술사들 흉내 - 3번째 실패 : 하나님 고백 - 아론의 손이나 지팡이로 시행 - 바로의 술사들도 심판 - 애굽과 고센 땅에 구분 - 하나님이 직접 시행 - 바로 신하들의 동요 - 바로의 협상과 번복, 협박 - 모세의 손이나 지팡이로 시행 10. 장자의 죽음 열가지 재앙을 해석할 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모두 애굽에 성행하던 신들에 대한 심판으로 보곤 합니다. 예를 들어, 나일신 ‘하피’, 개구리신 ‘헤켓’,

황소신 ‘아피스’, 하늘신 ‘누트’, 태양신 ‘라’ 등 10재앙이 모두 애굽이 믿는 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입니다. (출 12: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충분히 납득이 가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꼭 모든 것을 종교적으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3가지 메시지로 오늘의 모든 말씀에서 배울 것을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1)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 사랑 하나님의 음성을 저는 믿고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때 ‘지속성’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선한 일에도 그분은 지속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돌이켜야 하는 우리의 악행에 대해서도 주님은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내 안에 있으면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뜻을 살펴야 합니다. 죄에는 임계점이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그 전에 마음을 겸비하여 ‘유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만을 구별하여 섬길 것 : 믿음 애굽의 술사들은 처음에 비슷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흉내 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리지 않도록 미혹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미혹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특별하지 않다는 이러한 미혹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사탄의 전형적인 수법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미혹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하나님보다 나에게 더 유익할

것 같은 수많은 것들. 우리는 그 안에서 분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며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애굽에 창조를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도 고센 땅은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자,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3) 완고한 마음(고집)을 버리기 : 신앙 바로가 10재앙까지 가게 된 것은 그의 완고한 마음, 즉 고집이었습니다. 열 재앙은 바로와 애굽의 그러한 완고한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바로는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협상을 합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말로 내뱉은 것들도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완고한 마음을 버리셔야 합니다. 나의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부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리십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맞추고,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순종의 무릎으로 주님 뜻 구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말씀을 통해 나를 점검하고, 내 안에 깎여야 할 부분, 버려야 할 부분을 주님 의지하여 도려내고,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주께 나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귐의교회는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2018년 창립되어, 고읍에서 예배하다가 2020년 옥정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이웃과의 사귐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