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옥정 사귐의교회 금요기도회 설교 / 히브리서 10:1-20 / 어린양의 피로 바뀐 삶 / 강정규 목사

2021-04-30 · 히브리서 10:1-20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저는 성경을 공부할 때마다 깨닫고 배우며 재미를 느끼고, 매번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낍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메시지는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만들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근에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일에는 열 재앙을 순서대로 살펴보았고, 수요일에는 열 번째 재앙과 유월절을 공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시기 위해 열까지 재앙을

내리시고,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출애굽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출애굽 사건은 영적으로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기 때문이죠. 구약 마지막 부분에 있는 출바벨론 사건의 모델이 되고, 또한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모델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라는 것은 곧 구원하시고 지키시는 은혜이고, 이것은 수천 년 전에 애굽에 살던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오늘날 우리까지

계속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0번째 심판이었는데, 처음난 모든 것이 죽는 이 심판은 애굽인과 이스라엘인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애굽에 속한 모든 땅에 내려지는 심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고 있던 ‘고센’ 땅도 애굽에 속한 지역이었으므로 고센 땅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임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적용해보면, 우리도 죄악 된 세상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고, 이 땅의 죄악은 모두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 적용되는 일이죠. 인간은 모두 원죄라고 하는 죄의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는 애굽 모든 땅에 심판이 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방법을 내시는 분이잖아요.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출 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출 12: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애굽에 속한 모든 것을 심판하시지만, 그때에도 심판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죠. 마치 노아의 시대에도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방주를 통해서 그들을 살릴 방법을 마련했듯이,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약속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세상은 심판하시지만, 그 안에 구원의 방편을 마련하셨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린 양의 피’입니다. 이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것입니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 땅에 내려집니다.

애굽 안에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도 죽음의 사자가 찾아 갑니다. 애굽 땅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집 문에 어린 양의 피가 있으면 그 집은 지나쳐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유월’, Pass over,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죽음이 찾아왔지만 생명을 얻습니다.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승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죠.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이 약속하고 바라보았던

메시아 예수께서 오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또 바울도 동일하게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5:7b)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그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갑자기 예수님에게 ‘어린 양’ 프레임을 씌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예수님의 오심은 언제부터 준비되었습니까? 창세기로 가야해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이 먹으면 죽으리라 말씀하셨던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명령을 어겼으면 끝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악에 빠진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손 내미시고 우리를 구원할 방법을 마련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배에서 떨어져서 사망이라는 강물에 빠졌습니다.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해 생명의 끈을 던져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구원의 길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되는 것이죠. 여자의 후손. 왜냐하면 그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이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는 무죄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와 관련이 없는 분이어야 하는 것이죠.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유월절 예식을 다시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 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어린 양의 조건이 있어요.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흠 없는 제물. 이것이 어린 양 중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사용된 제물의 조건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으려면 그 또한 흠이 없는 분이어야 하는 것이죠.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인류를 죄의 심판에서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께 드려질 희생제물은 보통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류 스스로 인류를 구원할 수 없어요. 자력 구원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희생 제물로 삼으신 것은 흠이 없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죠. 죄에 물들면 사망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을 그는 에덴에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를 유혹하여 죄에 물들게 한 이후로 그는 이제 이 세상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공의이시므로 하나님 스스로가 세운 창조세계의

질서를 지키셔야만 하는 공의를 갖고 계세요. 여러분, 공의롭고 정의로운 판사는 자기 자식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죄에 맞게 형벌을 내려야 하는 것이죠. 사탄은 이 세계는 이제 죄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동물의 희생이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아주 조그맣게 열려 있었어요.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 그 또한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방법이었어요.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전의 에덴은 하나님의 보호로 둘러싸여 있는 하나님의 품이었어요. 그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만 있으면 계속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죄를 지었고 이제 인간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수치를 깨달아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을 가립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세요. 가죽 옷은 동물의 희생입니다. 죄를 지었기에 에덴에서는 살아갈 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죠. 그리고 이제 세상 가운데 살아가며 하나님께 죄를 지을 때면, 동물을 제물 삼아서 죄를 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끔 한 것입니다. 수고로운 삶이죠. 물질적으로도 손실이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여 인간이 죄로 인하여 당할 죽음을 동물의 죽음으로 대신하게 한 것입니다. 제가 레위기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이 참 섬세하고 디테일하심을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가 죄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양이나 염소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요? (레 5: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깊이 생각하시죠. 어린 양을 잡지 못할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둘기를 바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셨어요. 여러분 신약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가 ‘비둘기’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집도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기는 비둘기조차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한 규례를 가르칩니다. (레 5: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곡물로 드리는 속죄제.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하심에는

차별이 없으니까요.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하나님께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중요한 것이죠. 이것이 구약의 백성이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새로운 언약을 세웁니다. 그래서 그것을 ‘신약’이라고 부르죠. 이제 구약처럼 동물의 희생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구원의 방법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옛 계획은

새 계획 속에 담겨 있는 좋은 것들을 암시할 뿐입니다. 옛 “율법 계획”은 완전하지 못해서 그것을 따르는 이들 또한 온전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희생제물이 드려졌지만 그것은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제물이 해결책이 되었다면 예배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기 길을 갔을 것이고 더 이상 죄에 끌려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이 없어지기는커녕, 동물 제물을 거듭해서 바칠수록 죄의식과 죄책감은 오히려 고조되었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해마다 드리는 제물과 예물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몸을 마련해 주셔서 희생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은 제단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연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책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방법대로 행하기 위해 내가 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치

않으십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옛 계획에 따른 의식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방법대로 행하기 위해 내가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첫 번째 계획을 폐하시고 새 계획-하나님의 방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몸을 영단번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각 제사장들이 날마다 제단에 나아가 일하고 해마다 똑같은 제물을 드리지만 그런 것이 결코 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죄를 위해 단 한 번 제물을 드리셨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런 후에 그분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셔서 원수들이 항복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것은 완전하신 분이 불완전한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드리신 완전한 제물이었습니다.

단 한 번 제물을 드리심으로 그분은 정결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일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도 이같이 증언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과 세우려는 새 계획은 종이에 쓸 수도 없고 돌에 새길 수도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 계획을 그들 속에 써 주고 그들 마음에 새겨 줄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결론 지으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죄를 영원토록 깨끗이 씻어 줄 것이다.” 이제 죄가 영원토록 제거되었으니 더 이상 죄 때문에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어떻게 그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가? 유월절 어린 양처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보혈로 가능한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집과 같이, 오늘 어린양의 보혈이 우리를 덮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혈이 죄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피가 흐른 곳이죠. 그 피는 우리를 위한 피입니다.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양을 잡는 구약의 약속을 받은 세대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새생명을 얻는 약속을 받은 세대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확신합니다. 죄악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고 ‘삶’이 있습니다.

이것을 부부 관계의 일로 설명해보면... 아내가 집에서 음식을 한다면, 그것은 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음식을 통해서 저의 신부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실한 믿음과 사랑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해주셨으며,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의 죄를 해결하셨으므로,

죄 아래 있는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진심으로 믿고, 내가 주의 백성이 되겠다고, 주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신부로서 우리가 신랑을 사랑하며, 그 사랑의 관계 안에서 행하는 일이 있죠.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대로 나도 그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생활이죠. 결혼서약만 하고 남남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신앙인으로서의 행위는 구원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의 행위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기대하셔요.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여. 이제 빛 가운데 행하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그가 살리신 너희도 빛 가운데 살라.

그것을 위해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구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이제 그 구별된 자로서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빌 2: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리도 흠 없는 자녀로서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별과 같이 빛나며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입니다. 맞아요. 엉망진창입니다. 세상은 기대할 수 없어요. 그러나 주님은 그 안에서 구원하신 우리를 기대하십니다. 그러한 승리의 힘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그의 것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 되심으로 우리에게 시작 된 이 구원의 여정이 끝나는 그때까지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 나라 이루며, 주님의 기쁨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