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선명한 복음, 흔들림 없는 진리" / 강정규 목사

2022-07-17 · 히브리서 8-10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기독교인은 영의 세계를 믿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동시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악한 영,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주는 시험이 우리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라는 기도 문구가 있겠습니까?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공격하는데, 특별히 사탄은 자기 편에 있는 사람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자기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럼 공격은 언제 일어납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그리고 예수님 편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어서 공격하면 넘어질 것 같을 때 자주 공격하지요.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즉, 우는 사자와 같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말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이길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시험이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요 8:44b)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의 가장 큰 특기는 ‘거짓말’입니다. 그가 거짓으로 말하지만,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거짓으로 유혹하거나, 무너뜨립니다. 사탄의 거짓말임을 잘 깨달으면 우리가 넘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의 치부와 약점을 정확히 공략하기에 우리 힘으로 분별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의 반대는 ‘진리’이죠. 그래서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사탄의 거짓말 대신 말씀의 진리에 귀를 기울일 때만, 우리가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에 거하여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사탄이 찾아와 시험하죠. 그때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으로 세 번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신앙적 위기에 빠진 성도에게 쓴 간곡한 권면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어설픈 개인의 위로보다는

철저한 말씀에 근거한 권면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정확한 진리를 붙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굉장히 많이 이용해서 설명합니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으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성경을 바르게 깨우쳐주어 그 진리로 이겨나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도 복음의 진리가 희미해질 때, 히브리서를 읽으면 선명한 깨달음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볼 8-10장의 본문은 구약성경을 풀어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구약성경 중, 예레미야 31:31-34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예레미야의 이 말씀은 ‘장차 있을 새 언약’에 대한 유명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대한 히브리서 인용 부분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히 8: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히 8:9)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새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 조상들과 맺은 언약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내 언약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히 8:10)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날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다가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히 8:11)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기 이웃과 자기 동족을 가르치려고, 주님을 알라고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히 8:12) 내가 그들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겠고,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구약 예레미야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즉 그는 출애굽한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옛 언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새 언약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성취하신 것이죠. 언약이 무엇이냐면, 일반적인 약속 이상의 약속입니다. 결혼도 언약입니다. 내가 평생 배우자만을 사랑하며 살며 가족으로 하나되어 살아가겠다는 약속이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은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함께 하시겠다는 서로의 약속입니다. 서로 언약에 충실하면 이 언약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누가 언약을 깹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언약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구약 백성은 언약대로 살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적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맺겠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시대(구약시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의 시대(신약)에 맞는 새언약 백성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즉 교회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옛 언약이 완전했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대안으로서 새 언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대안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보다는 성경은 옛 언약의 시대는 예고편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언약적 관계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예고된 실재입니다. 예화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옥정이 신도시이다 보니, 여기저기 참 모델하우스가 많이 있습니다. 모델하우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중에 언젠가 지어질 실제 집에 대한 모형입니다. 모델하우스를 보고서 실제 집이 어떠할 것이다 예측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모델하우스는 모델하우스일 뿐입니다.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의 참모습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그림자와 참모습은 엄연히 구분됩니다. 모형과 그림자는 실제에 미칠 수는 없죠. 바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대안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구약의 모든 요소는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히 8:1) 지금 말한 것들의 요점은 이러합니다. 곧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한 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지엄하신 분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 8:4) 그런데 그가 땅에 계신다고 하면, 제사장이 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땅에서는 율법을 따라 이미 예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 8:5b)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땅에 있는 성전에서 섬깁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살아가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막과 성전의 기능 또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세계로 오셔서 예배를 받으시고 거하기 위해 하나님은 성막/성전을 짓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던 성막과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막은 그래서 인간의 발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를 따라서 모세가 순종으로 직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하셨습니다. 그곳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 중의 대표 한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십니다. 모세가 왕과 같은 인물이었다면, 그의 형 아론이 대제사장 역할을 했고, 아론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과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 속에서 그것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보여주심으로 실체가 왔을 때 그 사역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진짜 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모형으로 있는 성막과 동물 제사, 대제사장의 사역 등을 이해하고 경험했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실체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히 8:6)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그가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하여 세운 더 좋은 언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첫 언약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졌고, 그때는 모세와 제사장이 중재자가 되어서 언약식을 맺었습니다. 마치 부동산 계약을 할 때 공인중개사가 중재하고 보증하듯 말입니다. 개역개정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신약시대에 새언약을 맺으실 때 중보자는 누가 되실까요?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대제사장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중보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 약속의 보증입니다. 예수님만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하게 연결고리가 되는 분이 없으시죠.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봤듯,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유대교 신앙은 구약에만 머물러 있기에 하나님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믿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체로 오신 예수님은 부인합니다. 모형과 그림자만 붙들고 있으며 실체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풀어서 다시 복음으로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새언약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8:7) 그 첫 번째 언약에 결함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언약이 생길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히 8:13) 하나님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번째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첫 번째 언약, 즉 모세와 제사장이 중재자가 되었던 언약에 결함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을 통해 맺는 새언약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언약이라 스스로 칭하시며 옛 언약의 한계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시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주어진 임시적 성격의 것입니다. (히 9:10) 이런 것은 다만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예식과

관련된 것이고, 개혁의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입니다. 시내산 언약에 관련된 여러 가지 율법과 의식이 있지만, 그것은 ‘개혁의 때’까지만 유효합니다. 개혁의 때는 새 언약으로 갱신되는 시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모델하우스가 보여주었던 것을 없던 것처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 아니라, 실체로서 완성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결되기 때문이죠. 옛 언약의 언약식이 시내산에서 있었다면 그것은 결혼식과 같습니다. 이제 결혼생활은 언약적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성막의 제사 규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레위기에 잘 설명된 것이죠. 레위기 신학은 상하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 중심은 레위기 16장입니다. 대속죄일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이해할 때, 비로소 히브리서에서 설명하는 예수님이 이루신 실체적 사역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대속죄일이 되면, 그날을 매우 특별합니다. 1년에 유일한 하루, 대제사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다른 날 이곳에 들어가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찾아간 것이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속죄일이 유일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이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나아오도록 하신 것은 언약 백성 가운데 있는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들과 동행하시려면 이들 안에 부정해진 것들이 거룩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속죄의 은혜를 주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제물을 잡아서 그 피를 성막 안에 뿌리는 속죄의식을 진행합니다. 이 의식을 통해서 언약 백성 모두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는데, 그것을 깨끗하게 하는 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 뿌리는가? 이것입니다. 왜 성소에 피를 뿌리면 인간들이 지은 죄가 해결되는가? 이 속죄의 과정과 방법을 이해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속죄의 사역이 이해가 됩니다. 대속죄일이 모형과 그림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일 처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만나서 언약식을 맺습니다. (출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즉, 언약식에서 피의 절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언약식 제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에게 뿌립니다. 그것은 피로 맺은 언약을 의미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심을 상징하는 ‘성소’가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1년간 죄를 지으면

그만큼 성소가 부정해진 것입니다. 속죄일에 성소를 정결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히 9:18) 이러므로 첫 번째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은 아닙니다. (히 9:19) 모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말한 뒤에,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 피와 염소 피를 취하여 언약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고서, (히 9:20)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히 9:21) 또 같은 방식으로

그는 장막과 제사 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구에도 피를 뿌렸습니다. (히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한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면, 그 안에 드려진 동물의 피를 통해서도 죄가 사해집니다. 구약 수천년 동안 이것을 이스라엘은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를 가르쳐주셨고, 우리가 배웠다시피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의 제사는 모두 효력이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언약의 한계는 무엇이라고 했나요?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대속죄일 제사도 해마다 드려야 합니다.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모형이고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형과 그림자에도 일시적이나마 속죄의 능력이 있다면, 완성된 실체에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히 9:25)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매년 반복적으로 속죄의 제사를 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새언약의 백성들에게 허락된 제사는 십자가에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집례 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되신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였습니다. (히 10: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의 죄를 해결하시며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새언약의 피에 따른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거룩함으로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는 모델하우스가 예고했던 실제 집이 세워진 것입니다. 모델하우스는 진짜가 완성되면 철거합니다. 두 번째 것(새언약)을 세우기 위해 첫 번째 것(옛언약)을 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지금까지 설명한 개념을 한번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로 오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집이 ‘성막’입니다.

언약을 맺었기에 자기 백성 안에 함께 하여 주시려고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한 것이죠. 그리고 성막을 다 완성한 후,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했을 때는 이동을 해야 했기에 이동식 텐트인 성막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였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는 성막이 성전으로 대체됩니다. 성전 안에 지성소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죠. (요 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요 2: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 2: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진짜가 오기 전까지만 유효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신 육체로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몸이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완벽한 성전이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함께하시겠다는 구약의 약속이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이라고 이름지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의 실체입니다. 구약의 속죄를 설명할 때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소와 언약백성이 ‘한 몸’이 되었으므로,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성소가 오염되고, 성소를 정화하면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다고 했습니다. 성소보다 더 완전한 하나님의 임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구약과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한 연합을 이룹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가 그 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몸입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 가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는 우리에게 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속죄를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딱 한가지 전제만 필요할 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몸의 일부가 되었는가?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정말 내 삶의 주인이 되셨는가? 즉, 회심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할 뿐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전 1: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입니다. 예수님과 언약 관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모든 인류의 죄가 속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하나님의 자기 백성, 그들의 죄가 사해집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딛 2: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마치 속죄일에 성소를 정화하면 백성들이 정결케 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 백성들의 죄는 사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죄에 빠져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해결책이었다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럼 죄가 해결되기 위해 딱 한 가지 조건만 남은 것이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즉,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해서 다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 그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그의 백성들은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럼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존재가 변했습니다. 죄 가운데 거하며 신음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시 동행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의 보증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에 직접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에 거하시며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육체의 몸을 입고 우리와 함께하셨다가, 이제 거룩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아 거하시며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성령이 거하시는 것이 우리가 회심하여 새언약 안에 속한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은혜는 죄사함의 능력으로서 역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령님을 삶의 주인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늘 성령을 의지한다면 그것이 성령충만의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실제적인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마지막 약속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줍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죠. 우리가 나중에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에는 이제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보기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없는 것이 있죠. (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완성된 나라, 그곳에서는 더이상 하나님이 거하실 매개체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온전히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 되심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말씀을 구약부터 신약까지 관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더 밝은 빛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성경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완벽하신 그분의 계획과 때에 따라 이뤄졌고, 우리에게 그 구원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익히며, 분별할 수 있고, 복음의 초청 앞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매우 독특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주인된 삶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버린 후, 죄의

노예가 되어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구원하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그 일하심이 독특합니다. 세상의 방식은 ‘수고’를 통해 ‘결과’를 얻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가 고행과 수련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힘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다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거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그 일들에 대해서 듣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스스로 수고하시고 우리에게는 ‘결과’를 주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변화된 존재에 합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구원의 과정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에 임마누엘로 동행하십니다. 그 삶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삶을 살아가십시오. 구원이 우리들에게 주어져있습니다. 사탄의 거짓된 공격 앞에 흔들리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더욱 굳건히 의지하여 나아가십시오. 우리는 새언약의 백성입니다. (히 10:14) 그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히 10:15) 그리고 성령도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십니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 10:16)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날 이후에, 내가 그들에게 세워 줄 언약은 이것이다.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박아주고, 그들의 생각에 새겨주겠다. (히 10:17)

또 나는 그들의 죄와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히 10: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히 10: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히 10:23)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히 10:24)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십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우리 함께 서로 격려합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