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대화가 끊어진 관계가 가장 좋지 않으므로, 우선 기도는 시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그분 앞에 진실한 대화를 드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더 좋은 대화로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기도’를 성숙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모델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주기도문도 한글식으로 예전 버전과 새로운 버전이 있죠. 새버전으로 한번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어린이부 찬양으로 만나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시작하고, 우선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3가지 드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즉 하나님 되심이 세상 속에서 드러나게 되기를,
특별히 나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통해 드러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드러나고, 이것이 완성되는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나의 기도’를 하는 것이 익숙하신 분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어색함이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 모호해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아기들이 부모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까요? 아기가 부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기에 부모와 교감을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쩌면 아기처럼, “저 사람이 내 부모구나.”,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것만이 우리 지식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사실 정도를 믿고 우리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선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이런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풍성한 삶의 기초>를 시작하면, 2주차부터 매일 고백하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아들이셨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속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축복입니다. 나를 받아들이시고, 특별한 존재라 말씀해주시며, 가족 삼아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부나 연인조차도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관계의 친밀감이 약화되는 법이죠.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대화의 시간을 위해 함께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그 사랑 가운데 거하고자 하신다면 동일합니다. 우리의 삶 안에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바쁘고 분주하고, 또 언제나 미디어에 노출된 세상에 살아가므로, 우리가 시간을 따로 내지 않으면 하나님을 조용하게 마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적용을 위한 마음을 갖고, 오늘 주기도문 후반부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기도문의 뒷부분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어떻습니까? 자신을 위한 기도는 우리 전공입니까?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한 기도는 쉽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요청하는 것을 부모가 다 들어줄 수 없듯이, 하나님을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기도는 이 부분일 것입니다.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 무조건 우기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안 들어주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엄마, 아빠 나빠’라고 하고 삐치는 아이의 모습이 자칫 영적으로 우리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 또한 주기도문을 통해서 배워나가야 합니다. 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첫 번째 단락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오늘 쓸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옳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필요를 위한 기도의 내용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도 구해야 하고, 돈도 필요하고, 병도 나아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자식도 잘되어야 하고...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너무 소박하게 하루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의미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입니다. 그것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외적 필요가 우리 삶에 분명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충분하고 여유가 있으면 좋겠으나, 그러면 내가
그것에 안정감을 두고 그것을 의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주님 잊고 살다가 떨어질 때쯤, 다시 문제가 생길 때쯤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우리는 안정적이길 원하지만, 외적 안정은 내적 안일함으로 연결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은 미래에 대한 안정보다는 매일매일의 동행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광야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를 매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도 귀찮고, 거두러 나오는 사람도 귀찮게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방부제 빵빵 넣어서 몇 달을 보관해도 상하지 않을 것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나는 유통기한 하루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생존방식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 의지해서 살겠다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인맥도 필요합니다. 나의 경험과 경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고 기도합니다. 한 개인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기도’임을 드러냅니다. 즉,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는 ‘개인’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교회 공동체로부터,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되면, 우리가 속한 사회와
더 나아가 열방을 향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형편을 바라보며 보다 검소한 삶, 나누는 삶, 책임감 있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소박한 듯 보이지만,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겠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놀라운 고백이며 간구입니다. 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두 번째 단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관계’에 대한 기도이다. 앞선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웃 사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용서는 우리가 하는 용서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회복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이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시며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한 진지한 노력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이 품으셨습니다. 그가 나를 품으신 것은 내가 품어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품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기에 내 가시가 떨어져 나가고 찢긴 마음이 어루만져지며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도 내가 품어야 할 사람을 품고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가 있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 부분이 회복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나를 주께서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도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용서할 수 있기를 하나님 앞에서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상함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이 기도는
보여줍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일하신 주님을 따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마 5: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우리는 가정, 교회, 직장, 사회 등의 갈등 속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는 대화라고 했죠. 기도해야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기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도 알고, 그를 통해 내가 그 역할을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갈등의 관계에 있을 때,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원하시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갈등의 관계를 풀어나갈 힘과 용기도 얻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주시는 것은 유혹이 아니라 테스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에서 말하는 시험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고난과 사탄이 주는 유혹입니다. 죄로 깨어진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시험과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영적 전투를 위한 기도이다. 유혹을 받는 것은 외부적 요인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은 세상의 외부적 요소가 우리 안의 욕심이 만나면 생깁니다. 아무리 외부적 요인이 있어도 내 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깨어진 세상에 우리가 속하여 살아갈 때, 외부적
요인은 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전투에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군사가 살아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이 기도는 필요합니다. 악에서 구해달라는 것은 악한 자 사탄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신자를 늘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악한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사탄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내 힘으로 맞서면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실존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악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이미 임했기에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승리합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4.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대부분 성경에 이 구절은 겹 괄호로 표시해둡니다. 그것은 후대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후대에 주기도문을 교회 공동체 내에서 함께 하는 기도를 활용하면서 첨가된 기도의 답송일 것입니다. 2000년 동안 기독교는 이 부분을 포함하여 기도문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것은 이 고백 또한 우리의 신앙고백에 맞는다는 것이죠. 기존 주기도문은 ‘대개’로 시작합니다. ‘대개’는
‘왜냐하면’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해봅시다. 우리는 주기도문 후반부를 통해 자신을 위해 드리는 기도조차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드리는 기도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용할 양식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까? 혹시 그것이 내게 주어지면 내가 하나님을 덜 의지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에게’라는 기도처럼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하십시오.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구할까? 관계 기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우리의 깨어진 관계들입니다. 그 관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죠. 갈등을 평화로 바꾸기 위해
우리를 먼저 품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구하십시오. 나를 채우고 흘러넘쳐서 나를 통해 누군가를 채울 수 있도록. 영적 승리 우리의 약한 부분, 유혹을 잘 받는 부분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질투. 눈에 보이는 욕망. 물질. 나의 약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아버지를 의지해야 합니다. 악한 자에게 나를 내어주지 않도록, 이 세상에 속한 자로 살아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참 많이 하는데, 여전히 탐욕스럽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열광적으로 기도하면, 기도를 드릴수록 더 탐욕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를 배워가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따라서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 이 기도를 깊이 새기며 나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기도한다면, 기도할수록 우리를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이 설교가 여러분이 영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